Walt Jocketty's Farm System & Draft(6): 2000 Season

(B-Ref 2000 시즌 페이지)


지난 오프시즌에 연재하다가 시즌 개막과 함께 중단되었던 Jocketty's Farm System & Draft 시리즈를 재개하게 되었다.


2000 시즌은 Jocketty 특유의 사기 트레이드 능력이 유감없이 발휘되어 메이저리그 팀이 NL 중부지구의 강팀으로 군림하기 시작한 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팜 시스템이 똥팜으로 추락하기 시작한 해이기도 하다.


1999년에서 2000년으로 넘어오면서, 프런트 구성은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2000 시즌의 드래프트는 전년과 동일하게 "Director of Player Procurement"인 Jeff Scott이 총 지휘를 맡았으며, John Mozeliak이 스카우팅 디렉터로서 의사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산하 마이너리그 팀은 이전 시즌과 동일하게 유지되었다.


AAA : Memphis Redbirds (Pacific Coast League)

AA : Arkansas Travelers (Texas League)

A+ : Potomac Cannons (Carolina League)

A : Peoria Chiefs (Midwest League)

A- : New Jersey Cardinals (NY-Penn League)

R+ : Johnson City Cardinals (Appy League)

R- : DSL Cardinals(DSL)



1999-2000 오프시즌의 BA Cardinals TOP 10 리스트는 아래와 같았다.

(괄호 안은 전미 TOP 100 리스트 순위)


1. Rick Ankiel, lhp (1)

2. Chad Hutchinson, rhp (45)

3. Adam Kennedy, 2b

4. Ben Johnson, of

5. Nick Stocks, rhp

6. Jack Wilson, ss

7. Luis Saturria, of

8. Luther Hackman, rhp

9. Chance Caple, rhp

10. Chris Haas, 3b


BA Organization Talent Ranking: 27위


전년도에 9위였고, 90년대 중후반 내내 중상위권을 유지했던 팜 시스템 랭킹이 27위로 급락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전미 유망주 랭킹 1위였던 J.D. Drew가 팜을 졸업하기도 했지만, 전년도의 드래프트 실패와 기존 유망주들의 성장 정체, 그리고 Jocketty의 베테랑 영입 트레이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인 것이다. 게다가, 시즌 시작 전에 랭킹 3위 Kennedy를 Jim Edmonds 트레이드 때 내보내고, 랭킹 4위 Ben Johnson을 데드라인 때 Carlos Hernandez 영입에 사용해서, 팜 시스템의 상태는 더욱 악화되었다.


Ben Johnson은 1999 드래프트 4라운더로, 고등학교에서 야구와 풋볼을 병행하던 two-way star였다. 당시에 특별한 약점이 없는 고른 스킬셋을 가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Jocketty의 트레이드 칩으로 사용되었으며, 이후 백업 외야수로 메이저리그에서 3시즌을 뛰었다.


Nick Stocks는 전년도 1라운드-서플라운드에서 지명한 투수였는데, 1.4M의 당시로서는 꽤 큰 계약금을 받고 입단하였다. 나름 괜찮은 구위를 가지고 있고 제구도 어느 정도 되는 편이어서 빠른 속도로 메이저리그에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으나, 어꺠, 허리, 무릎 등 다양한 부위의 부상에 시달리다 결국 메이저에 올라가지 못했다. 2004년 Memphis에서 26.1 이닝을 던진 후 방출되었다.


Chance Caple은 전년도 1라운드 픽으로, 1.2M의 계약금을 받고 입단한 파워피처였다. 당시에는 Caple처럼 95마일을 찍을 수 있는 투수가 흔치 않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2001년 4월에 TJ 수술을 받았고, 막 복귀하던 찰나에 라인드라이브 타구에 맞아 손가락이 부러지는 등 역시 부상에 시달린 끝에 2004년 은퇴하였다. Caple의 커리어는 FSL에서 끝났다.


Saturria, Haas 등에 대해서는 1999 시즌 포스팅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2000 Cardinals 드래프트 정리 - The Baseball Cube, Baseball-Reference


첫 5픽. <라운드(전체 픽 순위). 이름, 포지션>


1(13), Shaun Boyd, of

1(24). Blake Williams, rhp

2(53). Chris Narveson, lhp

3(83). Chace Voshell, ss

4(113). Yadier Molina, c


직전의 오프시즌에서 Type B FA였던 Darren Oliver가 Rangers와 계약한 덕분에, Cards는 1라운드 24번째 픽을 받았다. 그러나 이 픽으로 뽑은 Blake Williams는 AA도 못 가보고 단 3년만에 방출되었으며, 이후 독립리그를 전전하다 은퇴하고 말았다.


이 드래프트는 4라운드에서 Yadi라는 걸출한 프랜차이즈 스타를 건졌지만, 그 외에는 망했다. Boyd는 잘 아시다시피 2000년대 초중반 똥팜을 대표하는 이름 중 하나이고, Narveson은 역시 망한 유망주의 계보를 잇는 듯 하다가 무려 9년 뒤인 2009년이 되어서야 Brewers 로테이션의 일원으로 활약하게 된다. Voshell은 FSL에서 은퇴하였다.



이후의 주요 픽.


10(293). Carmen Cali, lhp

11(323). John Gall, 1b

34(1013). Tyler Johnson, lhp


불펜에서 좌완 스페셜리스트로 잠깐 뛰었던 Carmen Cali와, 한때 마이너리그를 주름잡았던 John Gall(그렇다, 롯데에서 뛰기도 했던 바로 그 "존갈" 이다.)이 모두 이 드래프트 출신이다. 34라운드에서는 Tyler Johnson을 지명하여 계약했는데, Johnson은 2006년에 불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여 월드시리즈 우승에 기여하였으니, 이 드래프트에서 Yadi 다음으로 중요한 픽이었다고 하겠다.



Yadi를 건졌으니 나름 의미있는 드래프트이긴 했으나, 나머지 픽을 이렇게 망해서는 팜 시스템이 좋아질 리가 없었다. 더구나 Jocketty는 빅리그 팀에 올인하기 시작했으니... 이렇게 해서 2000년대 초중반 팜 시스템의 암흑기가 시작되었다.





이 드래프트가 배출한 선수들. Yadi, Gall, Johnson.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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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t Jocketty's Farm System & Draft(5): 1999 Season

(B-Ref 1999 시즌 페이지)


1999년의 프런트 구성에는 다소의 변화가 있었는데, 오랜 기간 Director of Player Development로 일해온 Mike Jorgensen이 Special Assistant to GM으로 자리를 옮기고(그는 현재까지도 재직중이다), 대신 Baseball Operation 파트에서 일하던 Scott Smulczenski라는 인물이 Director of Player Development로 승진하였다. 또한, 스카우팅 디렉터로서 98년의 과감한 드래프트를 지휘한 Ed Creech가 Dodgers의 부단장 겸 스카우팅 디렉터로 자리를 옮기면서 1년만에 구단을 떠나게 되었다.


여담이지만 Creech는 3년 뒤인 2002년에 Pirates의 스카우팅 디렉터로 다시 자리를 옮기는데, 이후 6년간 Dave Littlefield 밑에서 스카우팅 디렉터로 재직하면서 Pirates의 수많은 망작 드래프트를 양산하다가 Littlefield 해임과 함께 쫓겨났다. 현재는 Giants의 Senior Advisor로 재직 중이다.


BA의 executive DB에 의하면 Creech의 후임으로는 John Mozeliak이 Director of Scouting, Jeff Scott이라는 인물이 Director of Player Procurement로 각각 임명된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 직함대로라면 Mo가 드래프트 지휘를 했을 것 같지만, 당시 BA의 드랩 리포트나 기타 자료를 보면 Jeff Scott이 드래프트의 총 책임자였던 것으로 되어 있다. Scott은 이전에 Indians와 Tigers의 스카우팅 디렉터를 역임한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산하 마이너리그 팀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다만, Prince William Cannons가 Potomac Cannons로 이름을 바꿨다.


AAA : Memphis Redbirds (Pacific Coast League)

AA : Arkansas Travelers (Texas League)

A+ : Potomac Cannons (Carolina League)

A : Peoria Chiefs (Midwest League)

A- : New Jersey Cardinals (NY-Penn League)

R+ : Johnson City Cardinals (Appy League)

R- : DSL Cardinals(DSL)



1998-1999 오프시즌의 BA Cardinals TOP 10 리스트는 아래와 같았다.

(괄호 안은 전미 TOP 100 리스트 순위)


1. J.D. Drew, of (1)

2. Rick Ankiel, lhp (2)

3. Brent Butler, ss (54)

4. Chad Hutchinson, rhp (42)

5. Adam Kennedy, ss/2b (98)

6. Luis Saturria, of

7. Jason Woolf, ss

8. Jose Jimenez, rhp

9. Chris Haas, 3b

10. Matt DeWitt, rhp


BA Organization Talent Ranking: 9위


이런 시절이 실제로 있었다...!! Cards 팜에 전미 랭킹 1, 2위가 모두 있었던 것이다.


앞의 시리즈에서 이야기했듯이 90년대 말 BA 랭킹은 팀 랭킹과 전체 랭킹이 따로 노는 경우들이 있었는데, 이 해가 유난히 심한 듯 하다. 전체 42위의 Hutchinson이 전체 54위의 Butler보다 낮은 랭킹에 머물렀으니 말이다.


Drew와 Ankiel을 다 들고 있으면서도 팜 랭킹이 9위에 머무른 것은 역시 뎁스가 부족하고 중하위권이 부실한 탓일 것이다. Saturria는 당시로서는 나름 파워와 스피드를 겸비한 외야 유망주이긴 했으나, Woolf는 요즘으로 따지면 대략 Greg Garcia급이나 될까말까한 유망주였고, Jose Jimenez는 AA에서 1.3의 K/BB 비율을 기록한 별볼일없는 투수였다. Haas는 똥파워의 소유자였지만 마이너 통산 타율이 .250도 안되고 97년에는 싱글A에서 삼진을 182개나 먹었을 만큼 컨택이 젬병이었다.


그러니 이때부터 팜은 Drew와 Ankiel이 졸업하면 곧바로 똥팜이 될 수도 있는 위험요소를 안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 Jocketty가 2000 시즌을 앞두고 메이저리그 팀에 올인하기 위해 유망주를 닥치는대로 팔아 치우면서, 팜 시스템은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게 된다. 이 친숙한 똥팜의 모습은 시리즈의 다음 글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1999 Cardinals 드래프트 정리 - The Baseball Cube, Baseball-Reference


첫 5픽. <라운드(전체 픽 순위). 이름, 포지션>


1(30). Chance Caple, rhp

1s(36). Nick Stocks, rhp

1s(46). Chris Duncan, 1b

2s(82). Josh Pearce, rhp

3(102). Brent Cook, rhp


이 드래프트에서는 팀들이 수없이 많은 보상픽을 주고받았는데, 당시의 FA 보상 규정을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Elias Sports Bureau의 메이저리그 선수 랭킹이 FA 보상수준을 결정하도록 도입된 것은 1981년의 일이다. 구단주들은 FA를 잃은 것에 대한 보상을 원했으나, 선수노조는 이러한 보상제도가 FA 선수의 협상력을 약화시킨다고 보고 보상 제도의 도입을 반대하였다. 양측은 결국 스탯에 의해 기계적으로 결정되는 랭킹을 만들기로 합의하고, 이를 Elias Sports Bureau에 의뢰하였다. 이것이 Type A, B, C FA의 탄생이다. 포지션 별로 상위 30%가 Type A, 이후 50%까지가 Type B로 분류되었고, 나머지는 모두 Type C가 되었다.


보상 제도는 여러 차례에 걸쳐 바뀌었는데, 초기에는 드랩 픽 뿐 아니라 KBO처럼 보호 선수 명단에서 제외된 현역 선수를 보상선수로 주고받기도 했으나, 이는 선수노조가 파업을 하는 등의 강력한 반발로 인해 80년대 중반에 철폐되었다. 비교적 우리에게 익숙한 90년대 후반의 제도를 보면, Type A FA를 잃어버리면 계약한 팀의 최상위 픽과 함께 1라운드 서플 픽을 받았고, Type B FA를 잃은 경우에는 서플 픽 없이 계약한 팀의 최상위 픽만을 받았다. Type C FA의 경우는 2라운드 서플 픽을 받았다. 이 제도는 2006년 말 CBA가 개정될 때까지 유지되었는데, 2006년 말의 개정에서는 Type A를 상위 20%, Type B를 상위 40%로 상향 조정하고 Type C는 폐지하였다. 또한 Type B의 보상을 계약 팀의 최상위 픽에서 1라운드 서플 픽으로 바꿔서 Type B FA를 계약해도 픽을 잃지 않도록 했다. 이 제도는 2013년 Qualifying Offer가 도입되면서 완전히 폐지된다.



다시 99년 드래프트로 돌아가보자. Cards는 원래 전체 18순위로 드래프트를 할 예정이었으나, Type A FA였던 Eric Davis와 계약하여 1라운드 18번 픽을 Orioles에 내주었다. 또한, 역시 Type A FA였던 Scott Radinsky와 계약한 덕분에, 2라운드 픽(전체 69번)까지 Dodgers에 빼앗겼다.


하지만, Cards의 Type A FA였던 Brian Jordan이 Braves와 계약하였으므로, Braves의 픽이었던 1라운드 30번 픽을 보상으로 받았고, 이와 함께 1라운드 서플 픽(전체 36번)도 하나 받았다. 또한 역시 Type A FA였던 Delino DeShields가 Orioles와 계약함에 따라 서플 픽(전체 46번)과 보상 픽을 하나 받았으나, Orioles가 워낙 많은 FA와 계약한 탓에 이 보상픽은 무려 4라운드(전체 127번)까지 밀렸다. 한편, Type C FA였던 Tom Lampkin이 Mariners와 계약하여, 2라운드 서플 픽(전체 82번)도 하나 챙겼다.


그러니까, 위에 정리되어 있는 첫 5픽 중에 자기 순번에서 정상적으로 뽑은 픽은 3라운드의 Brent Cook 뿐이다. 1, 2라운드의 원래 픽은 FA 계약으로 모두 잃었고, 대신 받아온 보상픽이 네 장 있었던 것이다. 이 픽을 Chance Caple이나 Nick Stocks 같이 메이저 구경도 못해보고 은퇴하는 선수들에게 투자했다는 것은 상당히 아쉽다. Pearce 역시 메이저에서 24.1 이닝을 던지고 사라졌으니, 이 요란한 픽 전쟁에서 건진 것은 Chris Duncan 한 명 뿐이었다.



이후의 주요 픽.


4(127). Ben Johnson, of

4(132). Jimmy Journell, rhp

7(222). Coco Crisp, 2b/of

13(402). Albert Pujols, 3b

24(732). Mike Crudale, rhp

33(1002). Bo Hart, ss


이 드래프트는 솔직히 다른 이름을 별로 볼 필요가 없다. 13라운드에서 Albert Pujols를 뽑았고, 그것으로 장외 홈런을 날린 것이다. 끝.


그러나 이렇게 넘어가기에는 Pujols 말고도 재미있는 픽들이 여럿 있었다.


Ben Johnson은 나름 기대를 모으던 유망주였는데 1년만에 트레이드 칩으로 사용되었다. Jimmy Journell은 좋은 스터프를 가지고 있었으나 부상으로 무너졌던, 다들 아시는 애증의 이름 중 하나이고... Coco Crisp은 Chuck Finley 트레이드 때 Indians로 넘어갔다. Mike Crudale은 나름 불펜에서 반짝 활약을 해 주었고, Bo Hart는 설명이 불필요할 듯.


비록 보상픽들을 제대로 활용하지는 못했으나 Pujols 하나로도 최고의 드래프트 중 하나로 꼽을 만 하며, 그밖에도 메이저리거를 여럿 배출했으니 이정도면 아주 성공적인 드래프트이다.




-- 여기서부터는 공지사항입니다. --


TO BE CONTINUED... IN THE NEXT OFF-SEASON


정규시즌 개막이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에, 이 시리즈는 아쉽지만 여기서 일시 중단합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쓰레기 똥팜의 시대로 넘어갈 참이니, 딱 이쯤에서 쉬는 것이 적절할 것 같습니다. 팀이 너무 자주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니 오프시즌이 짧아서 시리즈물을 연재하기가 쉽지 않군요. ㅎㅎㅎ


주말에는 Doovy님의 TLR ERA 시리즈가 한 편 더 올라올 예정이며, 다음 주에는 주인장의 40인 로스터 및 페이롤 업데이트와 Skip님의 하이 마이너 로스터 예상 포스팅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Reds와의 정규시즌 첫 게임 쓰레드는 Doovy님께서 맡아 주시겠습니다.



중요: 게임 쓰레드(프리뷰) 담당 필진 추가 모집


올해 주인장은 둘째가 태어날 예정이고, Doovy님도 대학원 학업으로 바쁘신 관계로, 프리뷰를 집필할 게임 쓰레드 필진을 한 분 더 모시고자 합니다.


Doovy님께서 엄청 고퀄의 프리뷰를 써 주시고 계신 관계로 조금은 부담을 느끼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게임 쓰레드는 기본적으로 다같이 야구 보고 댓글 달며 놀자는 "불판"으로서의 기능이 가장 크기 때문에, 가볍게 간단히 적어 주셔도 상관없습니다. 형식은 완전 자유입니다.


이번에 참여하시면, 저와 Doovy님과 셋이서 돌아가며 프리뷰를 띄우게 됩니다. 정규시즌은 시리즈 단위이고 플레이오프는 게임 단위로 씁니다. 블로그에 자주 오시는 분들은 아마 익숙하시리라 생각됩니다. 현재 일정대로라면 Reds와의 원정 시리즈는 Doovy님, Pirates와의 원정 시리즈는 제가 맡을 것이므로, 새로 참여하시는 분은 Reds와의 홈 오프너(미국시간 4/7)를 맡으시게 됩니다. 대략 정규시즌 기준으로 10일에 한 번 정도 글을 쓰게 될 듯 합니다.


계약(?) 기간은 1년이며, 연말에 자유롭게 활동 지속 여부를 결정하시면 됩니다. 사정상 시리즈 시작 전에 글을 올리기 어려운 경우, 구글드라이브를 통해 일정을 서로 조율합니다.


희망하시는 분은 댓글로 남겨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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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t Jocketty's Farm System & Draft(4): 1998 Season

(B-Ref 1998 시즌 페이지)


그동안 스카우팅 디렉터를 맡아 왔던 Marty Maier는 원래 Royals의 내야수 출신으로, 선수로서 은퇴한 뒤에는 스카우트가 되었다. 그가 Cardinals에 고용된 것은 1979년이었는데, 이후 어시스턴트 디렉터를 거쳐 1993년 10월에 스카우팅 디렉터로 승진하였다. 94년부터 97년까지 드래프트를 지휘한 그는 97년 말에 Dodgers 프런트로 자리를 옮겼는데, 후임으로는 Montreal Expos의 스카우팅 디렉터였던 Ed Creech가 영입되었다. Creech 역시 80년대부터 스카우트로 근무하여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었으며, Expos의 스카우팅 디렉터로서 드래프트에서 Javier Vazquez, Brian Schneider, Milton Bradley, Jamey Carroll 등을 뽑은 성과가 있었다.


1997 시즌이 끝나고, AAA 레벨의 3대 리그 중 하나였던 American Association이 해체되었으며, AAA는 PCL과 IL의 양대 리그로 개편되었다. 이 과정에서 DBacks와 Devil Rays의 리그 참여에 따라 AAA 팀도 두 개가 늘어났는데, 바로 Memphis Redbirds와 Durham Bulls였다. Cards는 Louisville과 결별하고 새로 탄생한 Memphis와 계약을 맺었으며, Louisville은 Brewers를 거쳐 지금은 Reds의 산하 팀으로 되어 있다.


나머지 여섯 팀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AAA : Memphis Redbirds (Pacific Coast League)

AA : Arkansas Travelers (Texas League)

A+ : Prince William Cannons (Carolina League)

A : Peoria Chiefs (Midwest League)

A- : New Jersey Cardinals (NY-Penn League)

R+ : Johnson City Cardinals (Appy League)

R- : DSL Cardinals(DSL)



1997-1998 오프시즌의 BA Cardinals TOP 10 리스트는 아래와 같았다.

(괄호 안은 전미 TOP 100 리스트 순위)


1. Rick Ankiel, lhp (18)

2. Braden Looper, rhp (39)

3. Eli Marrero, c (33)

4. Brent Butler, ss (69)

5. Adam Kennedy, ss

6. Luis Ordaz, ss

7. Placido Polanco, 2b

8. Cliff Politte, rhp

9. Scarborough Green, of

10. Curtis King, rhp


BA Organization Talent Ranking: 15위


이전 시즌 리스트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TOP 100과 팀 TOP 10 사이에 약간의 불일치가 있다. 90년대 말에 계속 보이는 모습인데, 당시에는 순위를 별도로 매겼던 모양이다.


97년 리스트 1, 2위였던 Dmitri Young과 Matt Morris가 모두 팜을 졸업하고 메이저리그에 입성하였으며, 7위 Eric Ludwick과 9위 Blake Stein도 Big Mac 트레이드로 이적하여 팜은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드래프트에서 Ankiel을 지른 덕분에, 팜 랭킹은 15위에 오를 수 있었다. Ankiel은 97년에 정규 게임을 한 경기도 치르지 않았지만, 고교리그에서 보여준 모습만으로 TOP 100 리스트 18위에 랭크되었다. 이후 그는 doovy님의 Ankiel 포스팅에서 본 것처럼, 곧바로 풀시즌 마이너리그에 합류하여 싱글A 레벨을 초토화시킨다.


Looper는 드랩 1년만에 AA에 도달한 완성도와 구위를 인정받았고, Marrero는 AAA에서도 20홈런에 .273/.318/.514라는 우수한 성적을 기록하여 더욱 기대감을 높였다. 여기에 96년 드랩 출신인 Brent Butler가 19세의 나이로 MWL에서 .873 OPS를 기록하여 역시 TOP 100 리스트에 입성하였다.


Placido Polanco는 97년에도 AA에서 .291/.331/.346으로 96년과 거의 똑같은 모습이었는데, 타율은 높지만 볼넷을 고르지 못하고 장타력도 거의 없어 타자로서의 생산성은 상당히 부족하였다. 그나마 전년도에 4개였던 도루를 19개로 확 늘린 것이 조금이나마 순위를 높이는 데 일조한 듯. 스탯만으로 봤을 때는 A+, AA 레벨에서 선발로만 158이닝을 던지며 2.22 ERA, 8.2 K/9, 2.3 BB/9를 기록한 Cliff Politte가 더 나아 보인다.



1998 Cardinals 드래프트 정리 - The Baseball Cube, Baseball-Reference


첫 5픽. <라운드(전체 픽 순위). 이름, 포지션>


1(5). J.D. Drew, of

1s(32). Ben Diggins, 1b/rhp  (계약실패)

2(48). Chad Hutchinson, rhp

2(55). Tim Lemon, of

3(78). Gabe Johnson, c


전년에도 드래프트에서 과감한 모습을 보였던 Cardinals는 이번 드랩에서도 첫 픽으로 Drew를 지름으로써 드랩에서 돈을 쓰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다시 한 번 드러냈다. 97년 드랩에서 Phillies에 10M 이상의 계약금을 요구하다 협상이 결렬되어 결국 독립리그에서 1년을 보낸 Drew가 아니었던가? Cardinals는 Drew와 3년 7M의 메이저리그 계약을 맺는다. 자세한 이야기는 역시 doovy님의 포스팅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어쨌거나, 이어서 Diggins와 Hutchinson 같이 당시 "tough sign"으로 꼽히던 선수들을 연달아 지명한 것만 보아도, 드랩에 돈을 풀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느낄 수 있다.


FA였던 Dennis Eckersley가 Red Sox와 계약을 한 덕분에, Cards는 Red Sox의 2라운드 픽과 함께 1라운드 서플 픽을 보상으로 받았는데, 보상 결과는 보시다시피 실망스러웠다. Diggins에게는 1.4M이라는 적지 않은 돈을 제시하였으나, Diggins가 이를 거절하고 대학 진학을 선택했다. 결국 대학에 간 Diggins는 2년 뒤 다시 드래프트에 나와 1라운드에 Dodgers에 지명되어 2.2M의 계약금을 받고 프로에 입문하게 된다. 한편, 2라운드 보상픽으로 지명한 Tim Lemon은 AA 레벨도 못가보고 방출되었다.


Chad Hutchinson은 스탠포드에서 투수 뿐 아니라 쿼터백으로도 명성을 날리며 NFL의 주목을 받던 two-way 스타였고, 게다가 그의 에이전트는 Scott Boras였다. Cards는 드랩 후 3주만에 Hutchinson에게 4년 3.5M 메이저 계약을 안기며 계약에 성공하여 계약 가능성을 비관적으로 보던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Hutchinson은 97마일의 패스트볼로 기대를 모았으나, 고질적인 제구불안을 끝내 해결하지 못했으며, 결국 2001년 시즌 후에 야구를 그만두고 NFL의 Dallas Cowboys와 계약하여 풋볼로 돌아갔다.



이후의 주요 픽.


4(108). Bud Smith, lhp

9(258). Jack Wilson, ss

13(378). Les Walrond, lhp


노히트노런의 주인공 Bud Smith와 이후 Pirates로 트레이드 되어 좋은 주전 유격수로 성장한 Jack Wilson이 모두 이 드래프트에서 뽑은 선수들이다. 나중에 KBO의 LG와 두산에 용병으로 왔던 Walrond도 13라운드에서 드래프트하였는데, 이후 2003년에 웨이버 클레임으로 Royals로 이적하여 거기서 빅리그에 데뷔하였다.



이 드래프트가 배출한 선수들. 맨 위부터 J.D. Drew, Bud Smith, Jack Wilson.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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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t Jocketty's Farm System & Draft(3): 1997 Season

(B-Ref 1997 시즌 페이지)


1997년에도 프런트의 주요 인사들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96 시즌에 팀 성적도 좋았고, 팜 시스템 쪽도 그다지 문제가 없었으니 특별히 바꿀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이 무렵부터 John Mozeliak의 이름이 Assistant Director of Scouting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1997 년의 산하 마이너리그 팀은 모두 7개로, A Adv. 레벨에서 변화가 있었다. FSL의 St. Petersburg와 결별하고 대신 CAR의 Prince William Cannons와 계약을 맺은 것이다. Carolina League에도 산하 팀이 있었다는 것은 나도 이 글을 쓰면서 처음 알았다. Virginia 소재의 팀이라니 좀 쌩뚱맞은 느낌인데, 뭐 State College같이 더 북쪽에도 affiliation을 두곤 하니까... 유사시 콜업할 수 있는 AAA나 AA 팀은 가까운 곳에 두는게 좋다고 생각하는데, 싱글A 레벨은 솔직히 어디에 있어도 별 차이가 없을 듯하다. 참고로 Prince William Cannons는 현재 Potomac Nationals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Nats 산하에 있다.


AAA :  Louisville Redbirds (American Association)

AA : Arkansas Travelers (Texas League)

A+ : Prince William Cannons (Carolina League)

A : Peoria Chiefs (Midwest League)

A- : New Jersey Cardinals (NY-Penn League)

R : Johnson City Cardinals (Appy League), DSL Cardinals(DSL)




1996-1997 오프시즌의 BA Cardinals TOP 10 리스트는 아래와 같았다.

(괄호 안은 전미 TOP 100 리스트 순위)


1. Dmitri Young, 1b (29)

2. Matt Morris, rhp (25)

3. Eli Marrero, c (37)

4. Braden Looper, rhp (32)

5. Manny Aybar, rhp (68)

6. Brent Butler, ss

7. Eric Ludwick, rhp

8. Jason Woolf, ss

9. Blake Stein, rhp

10. Luis Ordaz, ss


BA Organization Talent Ranking: 9위


이 드래프트도 전년도와 마찬가지로 Marty Maier가 지휘하였다. 다음 글에서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Maier는 이 시즌 후 다른 구단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팀 TOP 10 순위와 전체 TOP 100 순위 간에 약간의 불일치가 발생하는 모습이 보인다. 큰 차이는 아니지만, 팀내 1위인 Young보다 2위인 Morris가 전체 순위에서는 앞서 있고, 3, 4위도 마찬가지이다. TOP 100에 5명이나 들어가 있고 40위 안에 4명이나 있는데도 팜 랭킹이 9위밖에 안되는 것도 좀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고... 이 시즌 랭킹은 뭔가 엉성해 보인다.


어쨌거나... 폭망의 길로 가는 듯하던 Dmitri Young이 96년 22세의 나이로 AA에서 .333/.378/.534 라는 훌륭한 성적을 거두며 다시 A급 유망주로 평가받게 되었다. Young은 이미 96시즌 말미에 콜업되어 빅리그 맛을 본 상태였고, 97년에는 준 주전으로 자리잡게 된다. 그러나 그가 유망주 시절의 잠재력을 빅리그에서 폭발시키는 것은 이후 Reds로 트레이드 된 뒤의 일이다.


Morris도 첫 풀 시즌을 AA에서 보내며 3.88 ERA, 2.6 BB/9, 6.5 K/9의 준수한 성적을 기록했고, 이미 메이저에 자리잡은 Alan Benes와 함께 차세대 영건으로 더욱 자리를 굳히고 있었다. 여기에 그동안 안터지는 툴가이였던 Eli Marrero까지 AA에서 .270/.336/.484, 19홈런으로 마침내 폭발하여, Cards는 매우 인상적인 유망주 트리오를 보유한 팀이 되었다.


여기에 전년도 전체 3순위 지명자였던 Looper가 또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96년에 정규 게임을 뛴 기록은 없지만, 워낙 높은 평가를 받던 대졸 신인이었으니 이정도 순위는 당연해 보인다. Looper는 97 시즌을 A+ 레벨의 Prince William에서 시작했는데, 12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4.48 ERA, 8.1 K/9, 3.5 BB/9를 기록하고는 AA로 승격되었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결정이 있었는데, 구단이 90마일대 중후반의 패스트볼을 보유한 Looper를 클로저로 키우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Arkansas에서는 릴리버로만 뛰었고, 비록 ERA가 5.91로 치솟긴 했으나 여전히 8.4 K/9를 기록하여 좋은 구위를 보였다. 요즘 같으면 전체 3순위 픽을 반 년 만에 클로저로 전환시키는 바보같은 결정은 내리지 않겠지만, 당시만 해도 클로저가 엄청나게 고평가를 받던 시절이었다.


5위의 Manny Aybar는 도미니카 출신의 유망주였는데, 96년 AA Arkansas에서 선발로 뛰며 3.05 ERA, 6.2 K/9, 2.5 BB/9의 준수한 성적을 올리고 전국구 유망주가 되었다. Young, Morris, Marrero, Aybar가 모두 같이 뛰었던 96년 Arkansas는 요즘같으면 정말 유망주 매니아들을 열광시켰을 팀이다. 이후 Aybar는 6위의 Butler와 함께 Darryl Kile 트레이드로 이적한다. 그리고 몇 년이 더 지난 뒤, 2006년 시즌 전에 Aybar는 KBO의 LG 트윈스와 계약하였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Eric Ludwick은 Jocketty의 망작 트레이드였던 Bernard Gilkey 딜 때 넘어온 유망주인데, 이후 9위의 Blake Stain과 함께 Big Mac 트레이드 때 다시 이적하여 그것으로 이름을 남기게 된다. -_-


전체적으로 투/타 균형이 잘 맞아 있고, 야수들도 Young을 빼고는 모두 유격수여서 팜의 상태가 매우 좋아 보인다. 이런 팜이 9위밖에 안되다니 정말 믿을 수가 없다.



1997 Cardinals 드래프트 정리 - The Baseball Cube, Baseball-Reference


첫 5픽. <라운드(전체 픽 순위). 이름, 포지션>


1(20). Adam Kennedy, ss

2(72). Rick Ankiel, lhp

3(104). Patrick Coogan, rhp

4(134). Xavier Nady, ss  (계약실패)

5(164). Jason Navarro, rhp


전년도 드래프트의 실패를 만회할 생각이었는지, 아니면 새 오너쉽이 전년도 플옵 진출에 고무된 것인지 모르겠으나, 이 드래프트에서는 과감한 지명을 통해 적극적으로 돈을 쓰고자 하는 의지를 보였다. Signability에 대한 의문으로 1라운드에서 아무도 지명하지 않은 Ankiel을 2라운드에서 과감하게 지명한 데 이어, 4라운드에는 다시 고졸 유격수 대어 Xavier Nady를 지명한 것이다. 그러나, Kennedy와 $650K에 계약하고 Ankiel에 무려 $2.5M의 계약금을 주고 난 Cards는 Nady까지 잡을 여력이 없었고, 결국 Nady는 계약을 하지 않고 University of California에 진학하는 쪽을 택했다.



이후의 주요 픽.


8. Jason Karnuth, rhp

9. Seth Etherton, rhp  (계약 실패)

15. Jason Michaels, of  (계약 실패)

44. Willie Eyre, rhp  (계약 실패)


이후에는 사실 그다지 인상적인 픽이 없었다. Etherton, Michaels, Eyre 등 계약에 실패한 픽들은 이후 다른 구단에 입단하여 메이저리그에 도달하였다. Karnuth는 불펜에서 뛰다가 2002년 Jeff Fassero와 트레이드 되었다.



97년 드래프트는 Troy Glaus, Lance Berkman, Vernon Wells, Michael Cuddyer, Jayson Werth, Chase Utley, Michael Young, Chone Figgins 등을 배출하였는데, Cards도 Kennedy와 Ankiel을 건졌으니 나쁘지 않은 드래프트였다고 본다. 결과적으로 Ankiel은 기대만큼의 활약을 해 주지는 못한 셈이지만, 이것만큼은 차마 뭐라고 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이 드래프트의 스타들. Adam Kennedy와 Rick Ankiel.



이미 댓글로 소식을 전해 주셨지만, Rick Ankiel이 마침내 은퇴를 선언했다고 한다. 이제는 부담감 없이 즐거운 인생을 살길 바란다...


TO BE CONTINUED...

Posted by FreeRedbird
:

Rick Ankiel - Part II (타자 편)


Rick Ankiel


2005년 - 투수 포기 선언

스프링캠프가 막 시작한 3월 8일, Ankiel이 등판할 예정이었던 Marlins와의 스플릿 스쿼드 경기가 비로 취소되었다. 그리고 그 날 저녁, Ankiel 은 TLR의 사무실을 찾아가 "할 만큼 했다" (I've had enough) 며 투수 포기를 선언한다. TLR도, Jocketty도, 말리지 않았다. 아니, 말릴 자격이 없었다. 지난 몇 년간 수 차례의 재활과 승격, 그리고 재발, 중간 중간 심심치않게 찾아온 부상들까지 이겨내면서 여기까지 온 Ankiel을 알고 있었기에 아무도 말릴 생각을 못했다. 3월 9일 아침, Ankiel이 메이저리그에서 투수로 은퇴한다는 보도 자료가 나갔다. 

다음은 당시 MLB.com Cardinals 담당 리포터였던 Matthew Leach의 3월 9일자 기사에서 발췌했다.

"I just felt like after Puerto Rico, I had changed mechanically...Just coming back, I couldn't seem to replicate it. This whole time, the frustration I built up into it. It just seemed like it was beginning to erode my spirits, and affect my personality, off the field as well. The frustration as it was, it was time for me to move on and pursue being an outfielder."

-Rick Ankiel, on deciding to give up pitching (March, 2005)


Ankiel의 외야수 전향은 Ankiel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가 아니었다. 야구를 관두기에 너무 강력한 그의 어깨, 그리고 운동신경이 아까웠던 TLR과 Jocketty 가 외야수로의 전향을 제안했고, Ankiel은 흔쾌히 허락했다. 이 둘은 Ankiel의 커리어와 시련에 있어서 일말의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고, 어떤 방식으로든 이 천재적인 선수의 빅 리그 복귀를 돕고 싶어했다. 스프링캠프가 끝나기 전, Ankiel은 Cardinals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고 커리어의 리셋 버튼을 누른다. 당시 그의 나이 25세 8개월. 그러나 아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측면에서 그에게 시간이 그다지 많은 것은 아니었다. 

Ankiel이 루키 리그로 내려가서 재활을 하던 2001년, TLR과 Jocketty는 Ankiel의 자신감 회복과 긴장 완화를 목적으로 Ankiel에게 종종 "DH 알바" 를 뛸 것을 제안한 바 있었다. 이 방침에 따라 Ankiel은 등판하지 않는 날은 지명타자로 뛰었는데, 44경기 118타석에서 홈런 10개 35타점 .286/.364/.638의 성적을 냈었다. 야구에 흥미를 잃지 말라고 투입했다기엔 상당히 무시무시한 성적으로, 아무리 루키 리그라지만 11타석 당 홈런 1개씩을 뽑아낸 그의 파워는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이미 Ankiel의 타격실력은 그의 짧았던 빅 리그 커리어에서도 증명이 된 바 있었는데, 데뷔 한 지 갓 한 달이 안된 4월 셋째 주에만 홈런을 2개 뽑아낸 것이었다. (결국 그는 투수로써 아주 준수한 .250/.292/.382의 타격 성적으로 2000 시즌을 마무리했다.)


수염 기르는데는 딱히 재능이 없는 듯 하다.


2005~2007: Transition

외야수 전향 첫 시즌은 성공적이었다. Ankiel은 A볼의 Quad City을 51경기만에 OPS .881을 기록하며 쉽게 졸업헀고, AA볼의 Springfield에서도 34경기만에 홈런 10개를 쳐냈다. 선구안과 컨택에 분명 문제가 있었으나, 25세에 처음으로 전문 타자로 나선 것 치고는 상당히 성공적이었다. 특히 수비에서 Ankiel의 발전은 상당히 빨랐고, AA로 승격되었을 즈음에는 이미 "ML 레벨에서 중견수를 볼 수 있을 것" 으로 기대되었다.

점점 메이저리그를 향해 한 발짝식 전진하고 있던 그는 2006년 스프링 트레이닝 캠프에서 Patellar Tendinitis (J.D. Drew가 겪었던 바로 그 무릎 부상이다) 진단을 받고 그 해 6월 무릎 수술을 받으며 시즌 전체를 날린다. 그러나 다른 선수라면 모를까, Ankiel에게 이런 정도의 Set-back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2007년을 AAA 멤피스에서 시작한 그는 초반부터 절정의 타격감을 보이며 시즌 첫 두 달만에 홈런 22개를 쳐냈다. 당초 투수에서 타자로의 전환에 희망적이지 않았던 언론에서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5월 28일 그는 Arkansas 전에서 무려 530피트 짜리 홈런을 쏘아올려서 타격코치 Rick Eckstein (그렇다, David Eckstein의 형이다) 의 입을 쩍 벌어지게 했다. 6월 16일 Ankiel이 Iowa 전에서 한 경기 3홈런을 때려내자 ESPN에서 단독 인터뷰 제의가 들어왔다. "그 날" 이후로 언론과의 접촉을 극히 불편해하던 Ankiel은 조심스럽게 수락했다. Ankiel의 절친 Tagg Bozied는 팀 동료 Ankiel에게 대해 한 마디 해달라는 부탁에 "그 친구는 자기 얘기가 언론에 실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며 멘트 요청을 거절했으나, Ankiel이 직접 "괜찮다" 고 말하자 입을 열었다.

“He’s got a ton of talent and strength. He’s a hard worker. He’s only going to get better. He works out. He eats great. He’s dedicated — 100 percent....But he is really high-strung on baseball. He’s got that dynamic in his brain that he really believes he can be successful every time he goes up there."

-Tagg Bozied, on his teammate Ankiel

Ankiel의 죽마고우이자 고등학교 때부터 같이 야구를 했던 친구 Chad의 2001년 인터뷰에 따르면, Ankiel은 어렸을 때부터 팀에서 그 누구보다 일찍 운동하러 (고교시절 매일 아침 6시반에 Work-out을 했다고 한다) 나오는 선수였으며, 자기가 여태껏 본 어떤 선수들보다 Hard-worker였다고 했다. TLR, Adam Kennedy, Matt Morris 등도 공개적으로 Ankiel의 Work-Ethic을 크게 칭찬한 바 있었기에 Ankiel이 열심히 노력하는 선수라는 사실은 그다지 놀라울 게 없다. 그러나 Ankiel이 스스로에게 얹는 부담감 측면을 짚어냈다는 측면에서 Tagg Bozied의 코멘트는 주목할만 하다. 매 타석 스스로에게 잘 해야한다는 압박감을 주는 선수가 10번 중 7번은 실패하게 마련인 직업을 선택했으니, 힘들 수밖에 없었다. 

당장 Ankiel을 보고싶었던 팬들의 성화가 있었으나, TLR와 프론트는 Ankiel에게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고, "Give him all the time he needs" 라며 Ankiel에게 여유를 주었다. Ankiel은 그 사이 전반기를 무사히 마쳤으며, 102경기에서 32홈런을 때려내고 리그 최다 득표 선수의 영예를 안으며 마이너리그 올스타에 뽑혔다. 투수로 마이너리그를 지배했던 그가 타자로 다시 마이너리그를 제패하는 데에 걸린 시간은 8년에 불과했다.

Rick Ankiel's Minor League Track Record (Batting)

YearAgeTmLgLevGPAABRH2B3BHRRBISBCSBBSOBAOBPSLGOPS
2005252 Teams2 LgsA-AA8536932151831712175003766.259.339.514.853
200525Quad CitiesMIDWA5122318533501011145002737.270.368.514.881
200525SpringfieldTLAA341461361833701030001029.243.295.515.809
200727MemphisPCLAAA102423389621041533289432590.267.314.568.883


그 날 #2 (2007년 8월 9일) 

Padres와의 홈 3연전. TLR이 무려 6년 반 만에 선발 라인업 카드에 Rick Ankiel이라는 이름을 써넣었다. 다만 9번타자 투수가 아닌 2번타자 우익수로였다. Ankiel이 지난 몇 년간 어떻게 커리어를 연장해왔는지 잘 알고있었던 동료들은 Ankiel 어떤 데뷔전을 가질지 기대할 수 없었다. 아니, 기대하기 두려워했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다만 시즌 초부터, 아니 어쩌면 2001년부터 그를 기다려왔던 홈팬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고, Ankiel의 첫 타석부터 그에게 열광적인 박수를 보냈다.

첫 세 타석에서 안타를 치지 못한 Ankiel이 7회말 2사 2,3루에서 4번째 타석에 들어섰다. 릴리버 Doug Brocail의 슬라이더가 몰렸고 Ankiel의 방망이가 돌았다. 우측 담장을 넘는 3점 홈런. 수줍고 조용한 Ankiel 도 감정을 완전히 억제할 수는 없었다. 베이스를 돌며 그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하지만 아마 Cardinals 팬들이라면 Ankiel보다 덕 아웃에서 마치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웃으며 행복해하던 Tony La Russa의 모습이 더 신기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La Russa가 이 정도로 기쁨을 표현하는 모습을 본 것은 딱 3번 있었는데, 나머지 두 번은 2006년 WS 우승 때와 2011년 6차전 Freese의 홈런 때이다.  동영상 링크 

(동영상 링크의 중계를 들으시면 Fox Midwest 의 Al Hrabosky가 "혹시 Ankiel을 거르고 Pujols를 상대할 가능성은 없을까요?" 라며 시답잖은 농담을 하는 걸 감상하실 수 있으며, 혹시 이 영상을 안보셨던 분이 있다면 꼭 Ankiel의 curtain call 장면까지 보시길 바란다.


그가 돌아왔다.


이틀 후인 8월 11일, Dodgers 전에서 Ankiel은 1회 Derek Lowe의 싱커를 걷어올려 투런 홈런을 작렬했고, 7회에는 Roberto Hernandez의 패스트볼을 넘기며 타자 전향 후 3경기만에 멀티홈런 게임을 만들어냈다. 이미 홈런을 두 개 친 상황에서 그는 타구판단 실수를 미친듯한 운동능력으로 극복하는 Reverse-Over-the-Shoulder 캐치로 팬들을 감동시켰으며, 이미 Ankiel의 복귀 자체에 잔뜩 흥분해있던 Cards 팬들은 High-Intensity 수비와 폭발적인 장타력을 보여주는 Ankiel을 금세 Fan Favorite으로 흡수해버렸다. 

그 다음 주에 Rick Ankiel은 Wrigley Field에서 라이벌 Cubs를 상대로 7회 쐐기 홈런을 치면서 팀 승리를 이끌었고, 8월 31일에는 자신을 상대하려고 올라온 좌완 릴리버 Eddy Guardado를 상대로 7회 자신의 데뷔 첫 만루홈런까지 쳐냈다. 9월 2일에 벌어진 Reds와의 홈 3연전에서는 무려 2홈런 9타점을 몰아쳤다. 팀 타선이 폭발한 9월 6일 Pirates 전에서는 혼자 2홈런 7타점을 기록하며 팀의 16:4 대승을 이끌었다. 언론에서는 Ankiel을 Babe Ruth 에 비교하기 시작했고, Robert Redford 주연의 영화 제목이자 한때 Ken Griffey Jr.의 별명이었던 "The Natural"이란 말이 Ankiel을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비록 9월 한 달간 팀이 무려 12연패를 당하면서 한  때 .358이었던 타율은 결국 .285에서 마감했지만, Ankiel의 2007시즌 마지막 두 달간의 활약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2008시즌 - The Comeback Kid

Ankiel의 외야수 커리어에서 몇 안되는 풀 타임 주전 시즌. Jim Edmonds가 떠난 Busch의 광활한 센터 자리에는 2005년 드래프트에서 건진 차세대 중견수 Colby Rasmus가 차근 차근 단계를 밟고 올라오고 있었다. 그 사이의 Gap을 메우기에 "자체생산" Ankiel은 아주 적절한 선수였다. Schumaker - Ankiel - Ludwick 로 구성된 당시 Cardinals 외야진은, 세 선수가 모두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내면서 Edmonds의 공백을 최소화했다. Schumaker는 3할을 쳤고, Ludwick은 Break-out 시즌을 보내며 올스타에 선정되었다. 그리고 Ankiel은 전반기에만 무려 20홈런 50타점을 기록하며 "이러다가 40홈런을 치는게 아니냐" 는 반응도 있었다. 

Ankiel은 2번부터 8번까지 많은 타순을 소화헸으나 (이건 TLR의 팀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120경기 중 75경기에서 클린업 (주로 4번) 을 쳤다. 2007~2008시즌의 성공의 가장 큰 원인은 그의 재능 자체였겠지만, 필자는 2006년 Ankiel이 부인 Lori Ankiel을 만나 결혼에 성공하고 정신적으로 그를 지켜줄 반려자를 만난 것이 결정적이지 않았나 싶다.

2009시즌 

2009년 5월 5일, Ankiel은 Phillies 전에서 Pedro Feliz가 친 좌중간 큰 타구를 워닝 트랙 근처에서 다이빙 캐치로 멋지게 잡아낸다. 그러나 타구를 잡자마자 머리를 펜스에 크게 박은 뒤 쓰러져 관중들은 물론 경기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긴장시켰다. Ankiel은 의식을 잃지는 않았으나 잠시 펜스 앞에 누워있다가 들것에 실려나갔는데, 실려나가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주변을 안심시켰다. 큰 부상이 있지는 않았으나 구단 측에서는 Ankiel을 DL에 올리고 휴식을 취하게 했다.

정말 큰일 나는 줄 알았다.


이미 크게 좁아졌던 Ankiel의 입지는 부상 이후 더더욱 안좋아졌다. 오프시즌에 그는 연봉 조정에서 2.8M의 연봉을 받아내 구단 입장에서 "그냥 벤치에 데리고 있기에는 부담스러운 4th OF가 되어버렸고, 좌투수 상대로 극악의 스플릿을 기록하면서 TLR의 플래툰 기용을 합리화시켰다. 이 와중에 2005년 드래프티인 Colby Rasmus는 어느 새 Cardinals의 차세대 중견수로 자리를 잘 잡아버렸다. Ankiel은 커리어 최다인 122게임에 출장했으나 받은 타석 수는 404타석에 그쳤고, Holliday 영입 이후에는 사실상 벤치로 밀려버렸다. 타석에서 스스로에게 주는 압박감 때문에 조급했던 Ankiel은 나가지 말아야 할 공을 건드리기 시작했고, 결국 .285의 창피한 출루율로 시즌을 마쳤다.  

2009년 정규시즌이 끝나고, Ankiel은 10년간 함께한 Cardinals와 이별했다. 그 해 오프시즌, Royals과 계약하면서 Ankiel은 지역 유력지인 St. Louis Post-Dispatch에 Cardinals 팬들을 향한 무려 Half-page짜리 감사 광고를 냈다. 뛰는 기간 내내 언론과의 접촉을 몹시 불편해하던 Ankiel이었기에 모두를 놀라게 한 제스처였다. 

Many thanks to Cardinals fans and the city of St. Louis for your support and cheers over the years. It was a privilege and an honor.

- Rick Ankiel's personal ad on STL Post Dispatch



2011~2012 - Nationals 시절

오프시즌에 Ankiel은 Nationals와 1.5M 짜리 (+ 인센티브) 1년 계약을 체결하는데, 여기에는 Ankiel이 마이너리그에서 타자 수업을 받던 시절 그의 인스트럭터였던 Jim Riggleman (당시 Nats 감독) 의 입김이 컸다. Cardinals 마이너리그 시스템의 인스트럭터로 일하던 Riggleman은 TLR을 직접 찾아가 "이 팀의 최고 타자 유망주는 Ankiel이다" 며 그의 스윙과 재능을 극찬한 바 있었고, 2008년 Ankiel이 Break-out 시즌을 가지며 화려하게 부활하자 누구보다 앞장서서 그의 복귀를 환영한 바 있었다. 

Riggleman과 재회한 Ankiel은 다시 한 번 좋은 시즌을 보냈다. 저렴한 연봉을 감안해서 본다면 Ankiel의 Upside는 꽤나 괜찮았다. 그는 중견수를 소화할 수 있는 4th OF였으며, 우투수 상대로 평균 이상의 파워를 지니고 있었고, 어깨는 확실히 리그 정상급이었다. 또한 어느새 빅 리그 12년차의 베테랑이 된 그는 꼬맹이 Bryce Harper가 콜업되었을 때 그에게 많은 조언을 아끼지 않았으며, 워낙 조용한 선수라 트러블을 일으키지도 않았다. 그러나 2012년에는 시즌 내내 타격 슬럼프로 고생을 하자 그를 방출하고 싶지 않았던 Nats 단장 Rizzo가 Ankiel을 DL에 올리려고 했으나, Ankiel은 이를 거부하고 자유 계약 선수가 되었다.


Nats로 간 것은 Ankiel에게 잘 한 결정이었다.


Rick Ankiel - 첫 끗발이 X 끗발?

2007년 8월 9일 데뷔전에서 쓰리런 --> 첫 한 달간 23경기 9홈런 29타점 .358/.409/.765

→ 이후 9월 6일~시즌 최종전까지 --> 24경기 2홈런 10타점, 삼진 20개, .220/.250/.330

2010년 (Royals 이적 후) 개막 후 첫 2주간 11경기 .308/.349/.615, 3홈런 9타점 2루타 3개. 그리고 부상.

→ 트레이드 당할 때까지 16경기 .226/.293/.358, 16경기 1홈런 6타점 2루타 4개, 5볼넷 18삼진

Braves로 트레이드 된 직후 --> Turner Field 데뷔전에서 Johan Santana 상대로 2타점 2루타 

→ 그 이후 45경기 2홈런 7타점 .205/.321/.321

2013년 Astros 개막전 정규시즌 첫 타석에서 3점홈런 

→ 이후 14타석에서 12삼진 --> 이후 .183/.222/.433 60타수 11안타 (4홈런, 2루타 3개), 3볼넷 34삼진

2013년 Mets 이적 직후 첫 9경기 .323/.364/.710, 31타수 10안타 2홈런 6타점 

→ 그 이후 11경기 35타수 2안타



냉정하게 평가해보자. 외야수 / 타자로써의 Rick Ankiel은 기량이 정점일 때 5할 승률 팀의 주전 혹은 컨텐더 팀의 4th OF였으며, 기량이 퇴보하기 시작한 이후에는 "Pop와 강견을 제공하는 벤치 외야수" 수준에 그쳤다. 풀 시즌 25홈런을 친 것은 경이적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투수 하다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 선수 출신 치고는" 이라는 단서가 붙을 때 얘기였다. 그는 야수로써 뛴 7년간 통산 3.9 WAR를 적립하는 데 그쳤으며, 풀 시즌을 뛰며 1.0 이상의 WAR를 기록했던 것은 (2007년의 광분은 제외) 2008년과 2011년, 두 차례에 불과했다. 

타격에서 Ankiel의 문제는 너무 간단헀다. 컨택트가 안됬다. 마이너리그 어느 레벨에서도 Ankiel은 3할을 쳐 본 적이 없으며, 그의 스윙은 정확도 상실을 어느 정도 감수하고 파워에 더 집중한 스윙이었다. 2007년~2008년의 성공은 타자 Ankiel에 대한 분석이 충분히 되지 않은 상황에서 나온 것이었으며, 투수들이 Ankiel에게 어떻게 승부하면 되는지 알게 된 이후에는 Ankiel은 더 이상 풀 타임 보장을 받을만한 공격력을 보여줄 수가 없었다. 변화구에 대한 약점도 분명했을 뿐더러, 스트라이크 존 바깥쪽에 높게 형성되는 패스트볼에 Ankiel은 사족을 못썼는데, 이 약점은 2013년까지도 고쳐지지가 않았다. 

The kid has more guts than most people. Maybe someone needs to say that to him once in a while."

-David Chase, the GM of Memphis Redbirds (2007)

Ankiel의 Plate Discipline 문제는 Tagg Bozied, Rick Eckstein이 지적한 Anxiety 이슈와도 큰 관련이 있었다. 그는 배팅 케이지에서 엄청난 타구들을 양산해내다가도 막상 압박이 있는 상황에서는 나쁜 공에 손이 나가기 시작했다. (통산 득점권 K% 28.4%, 주자 없을 때는 25.9%). 지난 5년간 Ankiel의 wRC+는 단 한 번도 리그 평균을 넘어본 적이 없으며, 그의 Z-Contact %인 66.1%는 실로 극악의 수치인데, 이에 대해서는 Fangraph의 Dave Cameron이 제대로 분석해놓은 글을 참조하셔도 좋을 것 같다. (요지는 리그 최악의 Z-Contact %, 즉 스트라이크 존 안에 들어오는 공에 대한 컨택율이 리그에서 가작 안좋았던 타자도 80%에 육박하는 반면, Ankiel의 스탯은 지나치게 비정상적이었다는 점이다.)

Rick Ankiel - Plate Discipline (Last 5 Years)

 

 K%

Z-Contact %

SwStr % 

 wRC+

 2009

 24.5%

 85.2%

 15.0%

 75

 2010

 29.6%

 76.4%

 17.8%

 92

 2011

 23.1%

 83.2%

 12.9%

 82

 2012

 34.5%

 76.5%

 17.9%

 82

 2013

 44.1%

  66.1% 

 21.2%

 79


두번째 문제는 Ankiel의 소위 "좌상바" 기질이었다. Ankiel은 데뷔했던 2007시즌에는 두 달간 좌투수 상대로 무려 홈런 7개 (11개 중) .391/.400/.783의 말도 안되는 리버스 스플릿을 보였는데, 이는 오래가지 못했다. 

점점 반쪽 선수가 되어버린 Ankiel (2008~2011년 4시즌간 좌투수 상대 성적)

2008년 116타석 7홈런 15타점 6볼넷 24삼진 .224/.268/.448

2009년   98타석 0홈런   8타점 2볼넷 29삼진 .234/.265/.298

2010년   64타석 0홈런   4타점 6볼넷 23삼진 .164/.270/.182

2011년   88타석 1홈런   9타점 6볼넷 21삼진 .228/.282/.304

Ankiel의 외야수로써 본격적으로 뛰기 시작한 것은 2005년으로, 이는 Ankiel이 은퇴를 앞둔 지금도 아직 채 외야수 10년차가 아니라는 말이 된다. Ankiel은 기본적으로 외야수들에게 있는 타구 방향 판단과 추적 센스가 있는 선수가 아니었으나, 판단 미스들을 뛰어난 운동신경으로 극복해내는 스타일이었고, 노력과 연습을 통해 빅 리그 중견수로 발돋움했다. Ankiel 은  몸을 사리지 않는 다이빙 캐치로 많은 박수를 받았으나, 베테랑 외야수들에게는 어렵지 않은 플레이들을 어렵게 해내는 경향이 강했다. 



수비에서의 Ankiel는 공을 잡기 전과 공을 잡은 후가 정말 판이하게 달랐다. 데뷔 초기 메이저리그에서 주전 CF로 뛰기에 그의 타구 판단력과 중견수로써의 Field Coverage는 좋은 편이 아니었으나 이를 뛰어난 운동신경과 주력으로 극복해냈다.  풀타임 첫 해인 2008년, 그는 중견수 자리에서 UZR -6.6을 기록했으며 좌익수 자리에서도 UZR -5.3을 찍었다. 그러나 수비에서 Ankiel은 경험이 쌓이면서 지속적인 발전을 이루었고, 2011년 Nationals에서 그는 중견수 자리에서 UZR +6.1을 기록했다. 그리고 그의 어깨는 백문이 불여일견. (동영상 링크마운드에서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했던 그는 이제 광활한 외야에서 베이스를 향해 스트라이크를 쏘아대기 시작했다. (2011년 보살 리그 3위 (Kemp-McCutchen-Ankiel), Range Factor 리그 3위 (Gomez-McCutchen-Ankiel.)  

HGH 스캔들

2007년 New York Daily News에서 Ankiel이 인간 성장 호르몬 (HGH = Human Growth Hormone)을 복용했다는 기사를 보도하면서 Ankiel 의 화려한 복귀에 커다란 오점이 남았다. Ankiel 은 "당시 나는 재활 중이었고, 의사의 처방전을 받아서 복용하고 있었다" 고 진술했고, 당시 HGH가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 금지한 물질이 아니었기에 스캔들은 더 커지지는 않았다. 당시 Ankiel은 팀 동료 Troy Glaus로부터 온라인 HGH 및 스테로이드 사이트를 소개받았다고 밝혔다. Ankiel 이 몇 년간 고생한 것을 인정하며 그에게 동정론을 펼치는 이들도 있었으나, 어떤 이들은 "의사의 처방전을 받았으면 왜 굳이 불법 사이트에서 구매를 했느냐" 며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이 부분은 Ankiel의 커리어에서 어찌 보면 가장 안타까운 얼룩 중 하나이다.



총평 - Re-Creating Yourself.

야구는 야구 선수들에게 생계수단이다. 우리는 때때로 Baseball-Reference와 Fangraph에서 제공하는 화려한 숫자의 향연에 취해 이 기본적인 사실을 종종 망각할 때가 있다. Player Stats에 2012년도 이후로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면 우리의 기억 속에 그 선수는 2012년 이후로 더 존재하지 않는 것 같지만, 삶은 계속 지속된다. Ankiel의 투수로써의 기록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2001~2004년, 보여지지 않는 곳에서 Ankiel은 외로운 사투를 계속했다. 

Ankiel에게도 야구는 생계 수단이었다. University of Miami 진학을 포기하고 거액의 계약금을 받았을 때부터 그에게 야구는 생계 수단이었다. (좀 미안한 표현이지만) 풍비박산이 나서 뿔뿔히 흩어진 가족, 중소기업에서 비서로 일하면서 살아오며 뒷바라지한 어머니, 연락이 잘 안되는 이복 형제들, 그리고 올스타급 전과를 가진 아버지. 만 18세에 전미 최고의 고교야구 선수로 프로에 입문했고, 2000년 10월 3일 (그 날 #1) 전까지 단 한 차례도 질주를 멈춘 적이 없었던 Rick Ankiel. 야구만 알고 달려온 이 수줍음 많고 예민한 20대 청년은, 야구가 주는 시련에 아파하면서도 야구를 놓을 수가 없는 딜레마에 빠져서 20대 초반을 보냈다. 야구를 그만둔다면 그는 대학 졸업장을 가지지 못한 20대 실업자에 불과했고, 그에게는 서포트를 기대할 가족들보다는 챙겨드려야 할 어머니가 있었을 뿐이었다. 



투수에서 타자로의 드라마틱한 컴백을 이뤄낸 Ankiel의 스토리는 이미 언론에 수백차례 회자되어 이제 많은 야구팬들에게 익숙하다. Ankiel은 스포츠 저널리즘에서 늘 침을 질질흘리는 소재 중 하나인 "불운/비운의 천재"에 너무도 걸맞는 선수였고, 마치 만화 주인공처럼 극적인 커리어를 보냈기에 그의 복귀 스토리는 팬들의 Soft spot을 자극하는 매력적인 헤드라인이었다. 그러나 Ankiel의 딜레마와 고통은 사실 매년 수십, 수백명의 마이너리거들이 겪는 시련과 그 근본적인 면에서 큰 차이가 없다. 매년 많은 선수들이 자신의 인생을 바쳐서 쫓아온 빅 리거의 꿈을 중간에서 멈춰야하는지, 더 쫓아가야하는지 하는 딜레마에 빠지며, 갑작스런 (회복 불가능 수준의) 제구 난조 또한 생각보다 많은 투수들이 겪는 문제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Ankiel에게는 보통 실패한 투수들에게서 찾기 힘든 "빅 리그에서 풀 시즌 30홈런 포텐셜"의 타격 재능이 있었고, 이 재능을 단시간 안에 끌어올려 "기량"과 "실력"으로 만들어낸 절박함이 있었을 뿐이었다. 

어쩌면 Ankiel은 포기를 하지 않은 게 아니고,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 그리고 좋아하는 야구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 커리어를 이어나갈 수 있던 재능의 소유자 Ankiel은, 그런 의미에서 행운아가 아니었을까. 커리어 연장을 통해 그는 (루키시절 계약금을 포함해) 커리어 내내 1500만 달러 가까운 돈을 벌었고 이는 일반 사람들은 평생 만져보지 못하는 액수의 재산이다. 데뷔 15년차 시즌인 2013년도 어찌어찌 저니맨으로 메이저리그에서 남아있었다. 투수 시절 그가 누렸던 짧지만 화려했던 명예와 스포트라이트, 듣기만 해도 부담스러운 칭송들을 생각하면 그의 지금 모습은 남루하기 짝이 없다. 기록중인 성적, 선수로써의 위치, 모든 면에서 참으로 초라하다. 그러나 30대 중반의 야구인이자 사회인, 혹은 인간 Rick Ankiel 에게는 감히 초라하다는 말, 불운하다는 말을 함부로 붙이고 싶지가 않다. 



에필로그 

2010년 가을은 Cardinals가 Reds에 밀려 포스트시즌에 나가지 못했던 해였기에, 필자는 어쩌면 차라리 잘됬다는 마음으로 오랜만에 감정적 동요 없이 가을야구를 볼 생각에 은근히 부풀어 있었다. 저녁에 집에 와서 TV를 켜니 Braves와 Giants의 NLDS 2차전이 진행 중이었고, 스코어는 이미 4:1 Giants 리드. 전날 Lincecum에게 호되게 당한 Braves 타선이 Cain을 상대로 여전히 쩔쩔매고 있었다. 리플레이와 광고가 대충 끝나고 7회 선두타자로 익숙한 이름 Rick Ankiel이 등장했다. 결과는 어느 순간부터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버린 시원한 헛스윙 삼진.

8회초 Braves가 Romo-Wilson 계투진을 흔들어 극적으로 4:4 동점을 만들고 계속된 1사 2루 찬스에서 Ankiel 이 또 등장했다. 이번에는 밸런스가 흐트러진 채로 공 밑을 때리며 좌익수 플라이. 경기는 Kimbrel과 Wilson의 삼진쇼로 넘어가면서 순식간에 연장 11회까지 흘러갔고, 연장 11회 1사 주자 없이 Ankiel에게 이 날 5번째 타석이 돌아왔다. 볼카운트 2-2에서 Ramon Ramirez의 94마일짜리 패스트볼이 살짝 몰렸다. Ankiel의 방망이가 돌았고 공은 AT&T 파크 밖 바다에 떨어졌다. 이 역시 어느 순간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버린 "맞는 순간 바로 아는" 특유의 호쾌한 홈런이었다. 그렇게 Ankiel은 자신의 처음이자 마지막 포스트시즌 홈런을 쏘아올렸다. 동영상 링크


왜 더 활짝 웃지 못하니. 왜.


TV 카메라가 Ankiel이 주먹을 쥐며 다이아몬드를 도는 모습과 Braves 덕아웃의 광적인 분위기를 번갈아 비추었고, 그 짧은 몇 초간 많은 생각이 필자의 머리를 스쳐갔다. Rick Ankiel. 현대 Cards 팬들에게는 더할 수 없는 애증의 이름. 정확히 10년 하고도 5일전, Ankiel은 야구 역사상 가장 창피한 모습으로 포스트시즌 무대를 떠나야 했다. 세상을 다 가진 듯 보였던 만 스무 살짜리 투수. 그가 던졌던 94마일 팔팔한 패스트볼에서 보였던 창창한 앞날은 온데간데 없었다. Old Busch Stadium의 따뜻한 오후 햇살이 참으로 야속해보였던 바로 그 날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Ankiel을 가슴에 묻지 않았는가. 그리고 내가 보고 있는 이 선수는 지금 나이 서른 살의 8번타자 중견수이며, 그 누구도 이 선수의 미래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스윙하자마자 손가락으로 Braves 덕아웃을 가리키며 빠른 속도로 베이스를 돌던 Ankiel의 입가에 웃음이 희미하게 보였다. 긴장과 기쁨을 동시에 머금은 그 웃음에 10년전 마운드에서 보았던 어린 투수 특유의 자신감과 배짱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Braves는 이 경기를 잡아내고도 홈에서 2경기를 내리 지면서 시리즈를 패배했고, Ankiel 에게 그 날 이후로 더 이상의 포스트시즌 안타는 없었다.

감동? 눈물? 인간 승리? 인생 역전? 글쎄...그 순간을 Ankiel이 평생동안 달고 지내왔던 그렇게 무겁고 드라마틱한 단어들로 수식하고 싶지는 않다. 아쉬움? 미련? 서러움?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그냥 고개만 끄덕여질 뿐이다.

연장 11회말을 Farnsworth가 무사히 막아내고 카메라가 Player of the Game으로 Rick Ankiel 을 비춘다. 어느 새 서른이 넘어 얼굴에 연륜이 나타나는 Ankiel 이 센터에서 마운드를 향해 무표정으로 달려오며 동료들과 시리즈 동점을 축하한다. 10년 전 NLDS 마운드에서 고개를 떨구었던 그 젊은 청년의 모습을 나도 모르게 찾고 있음을 느끼지만, 더 이상 그에게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바다 건너 먼 나라에서 그의 소식을 오랫동안 지켜봤을 뿐인, 한 면식없는 팬으로써, 그에게 이런 순간이 온 것에 괜히 감사하다.

이래서 야구를 보는구나, 하고 새삼 느낀다. 

Did you know...

  • 역사상 포스트시즌 선발 등판 + 포스트시즌에서 야수로써 홈런을 기록한 선수는 딱 두 명이다. Babe Ruth와 Rick Ankiel.
  • 선발 투수로 40차례 이상 등판하고 야수로 통산 홈런을 40개 이상 친 선수 역시 Babe Ruth와 Rick Ankiel 뿐이다.
  • 커리어 첫 홈런은 투수로 치고, 이후 야수로 또 홈런을 친 선수 역시 1947년 이후 Ankiel이 처음이다.
  • Ankiel은 2009년에 부인 Lori Ankiel와 함께 자기 이름을 내건 Rick Ankiel 와인을 런칭했는데, 2009년 이후로는 와인 관련 기록이 별로 없다. 부인 Lory Ankiel은 NFL Miami Dolphins의 치어리더 출신이다.
  • 드래프트 직후 Ankiel을 Busch Stadium으로 초청해 Work-Out을 시켰던 그 날, Ankiel은 마운드에 오르기도 전에 배팅 케이지로 먼저 가 타격부터 했다고 한다. Matt Morris는 그 날을 Ankiel이 쳤던 홈런을 회상하며 "어쩌면 그 때부터 타자를 했어야했는지도 모른다" 며 껄껄 웃었다.
  •  어려서부터 Braves 팬으로 자란 Ankiel은 2009년 Cardinals가 John Smoltz를 영입했을 때 그에게 다가가 그가 자기의 우상이었다고 말하려했다. Smoltz가 먼저 Ankiel에게 다가와 말했다. "자네가 한 일은 정말 대단한거야." (“I’ve got to give you props for what you have done.")
  • 2001년 스프링캠프를 앞두고 TLR과 Jocketty는 Ankiel에게 쏟아질 언론의 관심이 (전년도 Melt-down에 관한) 어린 투수에게 얼마나 부담스러울 지 알고 있었다. TLR은 Ankiel을 불러 "어차피 아무리 인터뷰를 거부해도 계속 괴롭힐 게 분명하니, 차라리 캠프 첫 날 기자회견을 해서 할 얘기 다 해주고 트레이닝을 시작하자" 고 말했다. 스프링 캠프 첫 날,  Jocketty와 TLR은 Ankiel을 가운데에 두고 나란히 앉아서 Ankiel이 손으로 직접 쓴 Statement (성명) 를 발표한 뒤 기자회견을 했다.  이 일이 있고 며칠 후 Ankiel은 그 기자회견이 있던 날 아침, Jocketty가 부친상을 당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Ankiel의 프레스 컨퍼런스를 모두 마친 6시간 뒤에야 아버지의 상을 치르러 갔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크게 감동했다고 한다.


by Doov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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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투수들이 빅 리그에 올라오기 전에 각자 소속한 하위 레벨의 마이너리그들을 소위 "초토화" 시키면서 올라오고, 그 과정에서 "예전의 어떤 사이영상 투수와 비슷하다"느니, 조금만 다듬으면 누구보다 낫겠다더니, 별 소리를 다 들으면서 올라온다. 그렇지만 Sandy Koufax 에 대한 비교는 흔하지 않다. 2014년 시즌 개막을 앞둔 현재, 사이영상 3차례에 빛나는 현존 최고의 투수 (Wain아 미안하구나) Clayton Kershaw만이 무리없이 Sandy Koufax 컴패리즌을 소화해낼 수 있다. 심지어 아직도 Kershaw가 Koufax에 비교되기는 시기상조라며 향수에 젖어계신 올드 팬들도 많다.

Raw Talent로 밀어붙이는 폭발적인 잠재력을 지닌 유망주에 대한 갈증에 아직 목말라하는 2014년의 Cardinals 팬들에게는 참으로 믿기 힘들겠지만. 16년 전, 우리 팜에는 Sandy Koufax 컴패리즌이 유효하다는 고졸 좌완 투수가 있었다. 

오랜 Cardinals 팬으로써, 오랜 야구팬으로써, 머리에 떠올릴 때마다 정말이지 만감이 교차하는 선수, Rick Ankiel 을 돌아본다. Part I 에서는 투수 Ankiel을, Part II 에서는 타자 Ankiel을 다뤄보려 한다.


Rick Ankiel (Richard Alexander Ankiel Jr.)

RHP / Outfielder

DOB: 1979년 7월 19일 

Birth: Port St. Lucie, Florida

Time with Cardinals:  1997-2009

Childhood

훗날 한 스카우트로부터 "여태 내가 본 최고의 좌완 투수들 중 하나" ("one of the best left-handers I've ever seen") 라는 극찬을 받은 Rick Ankiel이지만, Ankiel이 투수로 두각을 나타낸 것은 11학년이 (고2)  되고 난 후였다. 그 전까지 Ankiel은 남들보다 늘 작은 키에 그다지 대단할 게 없는 재능이었고, 리틀리그 시절에도 이는 마찬가지였다. 다만 Ankiel의 정신적 성숙함과 마운드 위에서의 차분함, 소위 "멘탈" 만큼은 유난히 훌륭했다. 지금 2000년 포스트시즌에서 역대 최악의 "멘붕" (Melt-down) 을 보였던 선수의 멘탈을 얘기하는게 맞냐고 물으신다면, 그렇다.

Florida의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자란 Ankiel은 고등학교 이전까지 "실수에 대한 두려움" 으로 꽁꽁 싸매진, 소심하고 겁이 많은 소년으로 자랐다. Ankiel 은 야구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야구는 나의 길" 이라고 생각할만큼의 열정은 없었다. Ankiel보다 야구를 잘하는 아이들은 많았다. 팀에서 키도 덩치도 가장 작았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 Rick Ankiel Sr. 는 아들에게 반강제로 야구를 시켰다.

그의 아버지 Rick Ankiel Sr. 는 화려한 전과를 자랑한다.1975년 대마 소지 혐의로 체포된 것이 시작으로 이후 25년간 그는 14차례 체포 당했으며, 6차례 구속당했고, 전과의 종류도 마약 밀수, 총기 은폐, 강도, 특수강도, 음주 운전 이후 경찰로부터 도주 등 정말 다양했다. 범죄자 테크를 타기 전까지 아버지의 직업은 낚시 가이드였으나, 이 업계에서 일하던 중 마약 밀매단과 엮이게 되면서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고 말았다. Ankiel이 자란 작은 마을에서 아버지의 과거와 전과, 그리고 심심찮게 일어나던 범법 행위들과 불안한 가정 분위기는 지역 사회와 이웃들의 지나친 관심과 손가락질을 불러왔고, Ankiel이 성장하면서 이로 인한 스트레스는 어린 소년이 감당하기 힘들 수준으로 부풀어올랐다. 








아버지는 어린 Ankiel에게 가혹하게 훈련시켰다. 리틀야구 선수였던 어린 아들에게 기합과 엄포는 물론이고 미국 아버지들에게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따뜻한 부정은 전혀 없었다. 강압적이었던 아버지는 본인이 결코 아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어린 Ankiel을 더더욱 강하게 몰아붙였다. 실수를 용납하지 않던 아버지 밑에서 Ankiel은 아버지의 폭언을 피하기 위해서 야구를 했고, 늘 실수하면 안된다는 공포에 떨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 때문에 늘 소위 "군기"가 바짝 들어있었던 Ankiel은 훗날 고교야구에서 보기 드문 성숙함과 인성, 그리고 근면함으로 칭찬을 받는다.

"My dad was hard on me all the time. If I swung at a bad pitch in Little League, he'd make me run wind sprints when I got home. It was always, I could've done better. But maybe if he wasn't hard on me, I would've gone down the wrong path. He always said, 'Do what I say, not what I do."                                                                                                                                          

   -Rick Ankiel, on his father


14세가 되던 해, 어린 Ankiel은 야구를 그만두고 그냥 친구들처럼 서핑이나 낚시를 하면서 놀고 싶다고 얘기했으나, 이런 푸념을 들어줄 아버지가 아니었다. 아들이 "나는 어차피 메이저리그에 갈 재능은 안되요" 라고 하자 "If you love the game, good things will happen." 이라며 정말 무식하게 아들을 몰아붙였다. 10학년 때, 될성부른 떡잎이라면 지금쯤 고교 야구를 씹어먹고 있어야 할 그 시기에 Ankiel의 패스트볼 구속은 84마일이었다. 야구팀 코치 Messina는 "필드 밖에서 정말 훌륭한 아이지만 그다지 Exceptional 한 선수인지는 모르겠다" 라고 Ankiel을 표현했다. 

Ankiel 이 11학년 때, 갑자기 키가 급성장하면서 몸집이 커졌다. 꼬마였던 Ankiel이 6피트가 넘는 키에서 특유의 다이내믹한 투구폼으로 패스트볼을 꽂자 92마일이 넘게 찍혔다. 무브먼트도 장난이 아니었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모인 한 경기에서 Ankiel은 첫 15타자 중 14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이제야 뭔가 희망이 보였다. 그 경기 이후 Ankiel이 던지는 경기마다 스카우트들이 몰려서 구속을 측정했다. 아버지가 말한 "Good things will happen" 이 실현되는 순간이다. 

아버지의 강압에 못이겨 어쩔 수 없이 야구를 지속했지만 자신의 재능에 대해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Ankiel은 순식간에 그 지역의 자랑으로 떠올랐다. 에이전트 Scott Boras와 계약한 것도 이맘때였다. 한때 Ankiel의 재능을 알아보지 못했던 코치들은 스위치히터였던 Ankiel이 혹시라도 왼팔에 HBP를 당할까봐 이제부터 우타석에 서지 말라고 했다. 가장 좋아했던 것은 아버지였다. 아들이 던지는 경기마다 그의 아버지는 관중석이 아닌 포수 뒤에 자리를 잡고 앉아 "커브를 던져라" "직구를 던져라" Game-Calling을 했다. 한번은 6회까지 노히트를 하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갑자기 "Throw him the funk!" 라고 냅다 소리를 질렀다. Ankiel은 그 말을 듣고 너클볼 (Funk가 Knuckleball 이라고 한다) 을 던졌으나 홈런을 맞았다. 

코치들은 동네 깡패 / 건달 같은 Rick의 아버지가 와서 시끄럽게 구는 것도 모자라 팀 에이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이 못마땅했으나, 또 한편으로는 Ankiel의 아버지였기에 쉽게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 아들 Ankiel은 이런 와중에서도 삼자범퇴로 이닝을 끝낼 때는 혹시라도 칭찬을 들을까 해서 어머니가 앉아있는 관중석보다는 백스톱 뒤의 아버지를 흘깃흘깃 쳐다보며 마운드를 내려왔다.  

1997년, 고등학교 마지막 야구시즌이 끝나고 Rick Ankiel은 USA Today 선정 올 해의 고교 선수 (High School Player of the Year) 로 선정되었다. 그의 마지막 고교 시즌 성적은 11승 1패 평균자책 0.47, 74이닝 162탈삼진이었다. 


배우 Zach Efron을 닮았다는 의견도 있다.

1997년 드래프트에서 Ankiel을 2라운드 20픽, 전체 72번으로 뽑은 Cardinals가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접근해왔다. 2년 전만 해도 Ankiel은 University of Miami 진학이 최종 목표였으나, 패스트볼 구속과 함께 그의 기대치도 높아진 상황이었다. Scott Boras는 Ankiel이 마치 당장이라도 Miami 대학에 진학할 것처럼 Letter of Intent를 작성해 Cardinals의 애를 태웠고, 결국 $2.5M의 계약금을 받으며 계약한다. 프로 데뷔 전에 받는 계약금으로는 당시 역대 5위에 랭크되는 정도의 큰 규모였다. 

Ankiel과 계약이 성사된 후, Cardinals는 아직 고등학생에 불과한 Ankiel을 홈 구장으로 불러 클럽 하우스를 구경시켜주고, 그의 이름이 적힌 유니폼을 선사했다. 그리고 그가 곧 서게 될 Busch Stadium 마운드에 서서 공을 던지게 했다. Tony La Russa, Dave Duncan은 물론 프론트 직원들부터 구장 잔디 관리인들까지 다들 나와서 이 열 여덟살 짜리 투수가 시범 피칭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포수의 미트에 공이 Pop! 하고 꽂히며 모두들 그의 구위에 경악했다. 95마일의 구속도 구속이었지만, 부드러운 투구폼과 플레이트 근처에서의 매서운 무브먼트, 그리고 우타자 바깥쪽 낮게 떨어지는 싱커는 이미 아마추어 수준이 아니었다. 그 날부터 Ankiel은 Cardinals의 금송아지였다.

"They got excited because a lefty like that comes up once in a millenium. He was the real deal, and the world, the entire world, was Rick Ankiel's, blowing away the game with that arm born and bred in the Florida sun, able to do whatever he wanted to do whevnever he wanted to do it and nothing more Wild West in all of sports, a pitcher on a mound simply blessed with it."

 -Excerpt from 3 Nights in August, page 77

Rick Ankiel's Minor League Track Record

YearAgeTmLgLevWLERAGSCGSHOIPHERHRBBSOHBPWPWHIPHR/9BB/9SO/9SO/BB
1998182 Teams2 LgsA+-A1262.632810161.01064785022214110.9690.42.812.44.44
199818PeoriaMIDWA302.0670035.015801241210.7710.03.110.53.42
199818Prince WilliamCARLA+962.792110126.0913983818112101.0240.62.712.94.76
1999192 Teams2 LgsAAA-AA1332.352411137.29836962194961.1620.64.112.73.13
199919ArkansasTLAA600.9181149.125521675200.8310.42.913.74.69
199919MemphisPCLAAA733.16160088.17331746119761.3470.74.712.12.59

Ankiel의 마이너리그 시절은 그다지 언급할 부분이 없다. 너무 짧았고, 너무 일방적이었다. 흔히 말하는 "마이너리그에서 스스로를 다듬는 시간들" "교정" "세련" 이런 단어들은 Ankiel의 사전에 없었다. 그냥 Ankiel은 있는 그대로 압도적이었다. 첫 프로팀이었던 Peoria를 단 7경기만에 졸업. 이후 나머지 시즌은 A+ 레벨에서 126이닝 181탈삼진을 기록한다. 1999시즌은 AA레벨의 Arkansas에서 출발했는데, 8경기 49.1이닝 5실점이었다. AAA로 안보내기도 힘든 성적이다. 넘어져봐야 일어날 줄도 아는데, Ankiel은 차마 넘어질까 하는 우려를 표시하기가 민망할 정도로 빠르게 달려나가고 있었다. 

보통 프로에 첫 입문해 고달픈 마이너리그 생활을 시작하는 어린 선수들, 특히 대학을 맛보지 않고 프로로 직행한 고졸 선수들은 고향과 가족, 친구들을 그리워하며 정신적으로 힘들어하게 마련이다. 강압적이었던 아버지와 결코 행복하지 못한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일까. Ankiel은 집을 떠나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마냥 즐거웠다. 매 경기 사람들은 그의 놀라운 구위에 감탄과 칭찬을 연발했고, 함께 마이너리그에 입문한 1라운더 Adam Kennedy 등 동료 선수들도 그저 Ankiel에게 좋은 말밖에 해주질 않았다. 

Cardinals는 Ankiel의 어마어마한 성장 속도에 불안함을 느꼈고, 이에 경기당 투구수 100개의 제한을 두었다. 마이너리그 투수코치들은 Ankiel에게 팔꿈치에 무리가 가는 슬라이더를 가르쳐주면 안된다는 지령을 받았고, 이런 정도의 관심을 받는 투수를 함부로 조련하려고 하는 코치들은 아무도 없었다. Ankiel이 혹시라도 어이없는 폭투 (마이너리그 성적에서도 유난히 폭투가 많은 것을 보실 수 있다)를 던진 뒤 자문을 구하면, 코치들은 "그냥 하던대로 해라 잘하고 있으니" 라며 넘겼다. Ankiel이 답답해서 재차 물어보면 그들은 "우린 널 건드리면 안돼" ('I'm not allowed to mess with you") 라고 대답했고, Ankiel은 그제서야 자신을 향한 구단의 특별대우의 이면에 그림자가 있음을 알게 되지만, 19살의 Ankiel이 그렇다고 질주를 멈출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 해 그는 마이너리그 탈삼진 1위 타이틀과 함께 Player of the Year 상을 수상했고, 올스타전에 선발로 등판했다. 1999시즌을 앞두고 Baseball America 는 Ankiel을 전미 유망주 랭킹 2위에 올랐다.

마이너리그에서 어떤 조련도 받지 않은 Ankiel은 키가 조금 더 컸을 뿐이지 사실상 Port St. Lucie 고등학교 시절과 투수로써의 기량이 거의 다를 바가 없는 상태에서 메이저리그 콜업을 받는다.

"If you've got a race car that's leading the Daytona 500, you don't bring it in for a tune-up. All we did was fine-tune a couple of things with his motion, but nothing major. We have a pitch count for all pitchers in the minor leagues."

-Mike Jorgensen, the Cardinals' director of player development (1999)


Pitching Mechanic

유일하게 아버지 Ankiel이 아들 Ankiel에게 전수한 것들 중 좋은 것이 있다면 바로 그의 투구폼인데, 사실 이 부분도 따져보면 악영향이 더 크다. Ankiel이 성공 가도를 달리던 시절에도 그의 제구는 결코 좋은 편이 아니었는데 (2000시즌 BB/9 = 4.63, 1999시즌 BB/9= 4.1), 이는 그의 딜리버리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간지가 나는 딜리버리 치고 문제없는 경우를 거의 못보지 않았는가. Ankiel 역시 마찬가지이다. 위 Ankiel의 투구폼 사진을 참조하시면, Ankiel은 투구시 앞발 (Front-foot, 즉 오른발) 보다 머리가 먼저 타자쪽으로 나가는 (Out), 소위 Out-in-front 증상을 보이고 있으며, 이 증상은 Tim Lincecum에게도 종종 볼 수 있다. 몸은 아직 준비가 안되어 있는데 머리가 먼저 예전 Okajima 마냥 3루 쪽으로 가고 있으니, 당연히 Pitching Arm이 앞으로 차근차근 나오지 못하고 급작스럽게 나오게 되고 릴리즈 포인트가 굉장히 높아진다. 무게 중심의 이동이 부드럽지 못하니 팔꿈치, 어깨에 무리가 가는 것은 당연하거니와, 릴리즈 포인트가 너무 앞에서 형성되거나 높이 형성되면서 포수 머리 위, 혹은 바닥에 패대기 치는 듯한 공이 나올 수밖에 없다. 실제로 마이너리그에서나 빅 리그 데뷔 이후에나 Ankiel은 릴리즈포인트가 흔들릴 경우 포수 머리 위로 던지는 폭투의 비율이 다른 투수들에 비해 월등히 높았는데, (Ankiel 본인도 인정한 부분이다) 이는 부드러운 듯 보이지만 사실은 팔 스윙이 너무 급작스럽게 이뤄지는 그의 투구폼 탓이 컸다. 

설령 포스트시즌에서의 Melt-down이 없었더라도 이런 투구폼으로 그가 롱런을 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으며, 필자도 동의하는 부분이다. 피칭 메카닉에 대한 심도있는 이해가 바탕이 된 코치들이 용기있게 쓴 소리를 해주었다면 Ankiel의 데뷔가 좀 늦어질 지 언정 조금 더 투수로 오래 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Call-Up

"최대한 그에게 압박을 주지 않으며 천천히 콜업할 것" 이라는 한 구단 관계자의 말이 무색하게 Ankiel은 1999년 8월 23일, 만 20세의 나이로 ML 마운드를 밟았고, Adrian Beltre를 제치고 리그 최연소 선수로 등재된다 (2위는 벨트레). 데뷔전 상대는 묘하게 외인구단 느낌을 주던 추억의 팀 Expos 였는데, 선발로 등판한 그는 괴수(V. Guerrero) 에게 솔로홈런을 허용하긴 했으나 5이닝 5피안타 3실점으로 무난히 데뷔전을 마쳤고, 이후 4차례 정도 더 선발 등판을 한 뒤 불펜에서 시즌을 마감했다. 평균자책 3.27에 33이닝 39탈삼진. 약간의 제구불안이 있긴 했지만 선발 로테이션에 들어가기에 충분히 합격점인 투구였다. 

아들 Ankiel이 찬란하게 데뷔하던 이 시기, 아버지 Ankiel은 다시 한 번 체포당했다. Florida에서 멀지 않은 섬나라 Bahamas의 마약 밀매단과 연계되어 있던 Ankiel의 아버지는 마리화나와 코카인을 (미국 시장에 유포할 목적으로) 소지한 혐의로 1999년 시즌 도중에 검찰에 기소되었다. 이 때 최대 80년형의 징역과 $4M의 벌금형을 선고받게 되면서 Ankiel의 어머니는 남편과 이혼하게 된다. 이제 막 피어나려는 20살짜리 어린 투수에게, 그것도 전미 최고의 유망주 투수의 아버지가 State도 아니고 연방 검찰에 구속되었으니 언론이 가만 있지를 많았다. 

슬프게도 Ankiel은 이런 관심들이 익숙했다. 마운드에서 본인이 흔들리지 않으면 이런 일들은 결국 지나갈 것이라는게 Ankiel의 비정상적으로 강인한 정신력이었다. 자라는 내내 "너의 아버지는 뭐하는 분이시니?" "왜 너네 집 앞에는 경찰차가 와있니?" 같은 질문들에 익숙해져있던 Ankiel은 아버지의 옥살이와 부모님의 이혼, 가족의 분열 (형과 누나도 뿔뿔히 흩어졌다) 을 그저 삼켜버렸다. 가슴 복받치는 자신의 풀타임 첫 정규시즌 개막전을 한 달 여 앞둔 2000년 3월, Ankiel은 아버지 Ankiel의 재판을 위해 Florida 연방 법원에 출두해서 그의 아버지가 징역 6년형을 받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한 달 후, 4만여 관중 앞에서 당당히 Cardinals 로테이션의 일원으로 선발 등판을 했다. 아버지와 가족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어린 투수답지 않게, 마운드 위에서 Ankiel은 흔들리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재능있는 투수들 특유의 보기좋은 건방진 아우라까지 풍겼다.

씁쓸하게도 "마운드 위에서 감정을 컨트롤하라" 는 그의 아버지가 Ankiel을 코치하면서 가장 강조하던 부분이었다. 


2000년 NL Central 우승을 확정 짓고.

2000시즌

드디어 정식 발매된 Ankiel의 황금팔은 확실히 강력했다. Ankiel은 시즌 첫 선발 등판 Brewers전에서 6이닝 10K 2실점 승리를 따내면서 쾌조의 출발을 했고, Coors Field에서 3피홈런을 맞으며 주춤했으나 이후 Padres전 5이닝 무실점, Brewers 전 7이닝 무실점을 잇따라 승리투수가 되었다. 5월 13일에는 한국 야구팬들에게 잘 알려진 박찬호와의 맞대결을 펼쳤는데, 당시 박찬호가 워낙 잘 던져서 (8이닝 1실점 12K) 묻히긴 했지만 7이닝동안 무려 118구를 던지면서 4피안타 9K 무실점을 기록한 Ankiel 역시 칭찬받을만 했다. (언론은 앞날이 창창한 두 젊은 투수들의 Pitcher's Duel로 관심을 모았으나, 사실 정말 관심가는 부분은 나란히 고질적 제구 불안병을 앓고 있는 두 투수가 도대체 몇 구나 던질 것인지였다.)

Ankiel의 구위는 베테랑 포수 Mike Matheny와의 호흡이 부드러워지면서 더더욱 강화되었다. 어린 투수들의 응석을 받아주지 않던 Matheny는 구위를 제외하고는 모든 면에서 부족했던 Ankiel에게 딱 맞는 포수였다. 그는 리그 내에서 가장 뛰어난 블로킹 능력을 지녔기에 Ankiel의 제구 불안 데미지를 최소화 할 수 있었고, Ankiel의 구위와 구질에 대해서 투수 본인보다 훨씬 뛰어난 이해도를 지니고 있었다. 5월 7일 Reds전에서 Ankiel이 5이닝만에 볼넷 4개 폭투 4개를 기록하며 유난히 "Wild' 했던 날, Matheny는 플레이프 앞에서 흙을 튀기는Ankiel의 원바운드 공들을 전부 막아내고 마운드에 올라가 "내가 다 막을 테니 넌 똑바로 던지기만 해라" 라고 말했다. 다음 경기에서 Ankiel은 Matheny의 리드를 그대로 따르며 7이닝 무실점을 기록한다 (박찬호 경기.) 이어서 6월 20일, Ankiel은 당시 Jeff Kent와 Barry Bonds를 위시한 Giants 강타선을 상대로 6이닝 8K 2실점의 압도적인 피칭을 하고 승리투수가 된다. 당시 Giants 감독이었던 Dusty Baker는 "저런 20살 짜리는 흔하지 않다. 20살에 저 정도라면 앞으론 대체 뭘 이루려고 하는가" 며 상대팀 신인을 칭찬했다.

Ankiel의 피칭 레퍼토리는 93-95마일의 패스트볼, 그리고 88~90마일에서 형성되었던 싱커, 그리고 마이너리그에서 수많은 탈삼진을 솎아내게 해준 그의 플러스 커브였다. 특히 우타자들은 5마일의 구속 차이와 함께 탁월한 무브먼트를 동반한 그의 싱커에 타이밍을 맞추지 못했으며, 어느 카운트에서나 낙차 큰 커브가 아웃피치로 들어올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Ankiel 공략을 굉장히 힘겨워했다. (2000시즌 우타자 상대 피안타율 .213) TLR은 Ankiel이 장기적으로 체인지업만 장착한다면 리그를 오랜 기간 지배할 선수라고 표현했고, 이는 결코 과찬이 아니었다.

정규시즌 후반기, Ankiel을 제외하면 대부분 노땅들로 채워진 Cardinals 로테이션은 슬슬 힘에 부쳐하기 시작했다. 팀내 최고령 투수이자 6'6피트의 장신이었던 Andy Benes는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후반기 컨디션이 이미 정상이 아니었고, 노장 Pat Hentgen는 8월이 되자 체력적인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Garret Stephenson 는 8월달에 혼자 4승 평균자책 2.63을 기록했으나 9월달이 되자 피로 누적으로 차차 구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정규시즌 마지막 한 달간, 사실상 Cardinals 로테이션은 Darryl Kile-Rick Ankiel 두 투수가 이끌기 시작했다.  그리고 Ankiel 은 신인답지 않게 시즌이 진행될수록 더 구위와 제구가 나아지며 구단의 기대에 부응했다. 그는 최종 7경기에서 4승 무패 평균자책 1.97. 45.2이닝 54탈삼진을 기록했고 이 기간동안 팀은 6경기를 이겼다. (평균 103구, 경기당 6.2이닝). 

정규시즌 종료 후 Ankiel의 성적은 11승 7패 평균자책 3.50, 175이닝 194K. 신인왕 투표에서 그는 Braves의 Rafael Furcal에 이어서 2위에 올랐다. 만 20세 시즌에 규정이닝을 소화하면서 K/9이 9.0을 넘었던 투수는 (그 때까지) 역사상 단 2명에 불과했다. (1984년 Dwight Gooden, 2000년 Rick Ankiel)

Ankiel's Last 5 Games (2000)

DateOppIPHRERBBSOERAPitStrStLStSGBFB
SeptemberOppIPHRERBBSOERAPitStrStLStSGBFB
Sep 3NYM7.0211583.8011166221249
Sep 8@MIL6.0411253.7110664171179
Sep 13@PIT6.27420113.6710671161488
Sep 20HOU7.0432283.6210159121488
Sep 27@SDP6.0500283.5096601715410
175.01378068901943.50


순식간에 조롱거리로 전락하기에 그의 재능은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그 날 (2000년 10월 3일) - NLDS Game 1

Atlanta Braves와의 NLDS를 앞둔 상황, TLR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5인 로테이션에서 건강한 투수는 20승을 올린 에이스 Kile와 약관의 신인 Ankiel 달랑 2명 뿐이었고, 이들에게 많은 경기를 맡기고 싶어하는 것은 5전3승제 단기전을 앞두고 감독으로써 당연한 어프로치였다. 게다가 Ankiel은 4일 휴식을 줘야했지만 Darryl Kile은 3일 휴식으로 등판할 수 있었다. 즉 (정상적인 로테이션 순서대로) Kile이 1차전, Ankiel이 2차전을 던질 경우 Ankiel은 시리즈에 한 번 밖에 나올 수 없지만, Kile이 2차전을 던지고 Ankiel이 1차전을 던지게 된다면 이 시리즈에서 두 투수를 2번 쓸 수 있다는 소리였다. 정규시즌 마지막 한 달간 Ankiel 이 보여준 모습까지 감안했을 때, TLR의 결정은 "도박" 이라고 불리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TLR은 전국에 중계되는 첫 포스트시즌 선발이 이 젊은 투수에게 어떤 중압감으로 다가올 지에 대해 충분히 경계하고 있었다. 게다가 상대 투수는 지난 10년간 리그를 지배했던 베테랑 Greg Maddux. 호들갑을 떨만한 이유가 충분했다. 시리즈가 시작하기 전날, TLR은 불펜 피칭을 하고 나오는 Ankiel을 재빨리 언론 접촉없이 클럽하우스에서 내보냈다.  그리고 베테랑 투수 Kile에게 인터뷰실로 들어가서 마치 그가 당연히 1차전을 던지는 양 언론을 상대하도록 했다. Kile은 당시 기자들의 질문에 충실히 대답하면서도 단 한 차례도 자신이 1차전에 던질 것이라는 언급을 하지 않았다. 언론에서도 이미 Kile이 1차전을 던질 것이라는 게 너무 당연했기에 물어보지 않은 것이다. 인터뷰가 다 끝나고 미디어팀이 철수하자 그제서야 TLR은 1차전 선발이 Ankiel임을 발표했다. 수많은 리포터들이 그 날 TLR에게 얼마나 욕을 퍼부었을지 자명하다.

TLR의 머릿속이 복잡한 이유는 하나 더 있었다. NLDS가 열리기 며칠 전인 9월 28일, Darryl Kile의 정규시즌 20승 경기가 있었던 바로 그 날, 주전 포수 Mike Matheny가 생일 선물로 받은 사냥용 칼 (Hunting Knife) 을 잘못 놀려 자기 손을 크게 베어버리고 만 것이다. (MM의 생일은 9월 22일이다.) 이 부상으로 인해 정규시즌 잔여 경기는 물론 Matheny의 플레이오프 출장 기회도 날아가버렸다. 투수 리드와 호흡에 있어서 Ankiel에게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짝꿍이던 Matheny가 결장한 것도 문제였지만, 제구가 불안한 Ankiel과 등 부상으로 인해 활동폭이 좁던 포수 Carlos Hernandez의 조합은 결코 이상적이지 않았다. 


Hernandez가 아닌 Matheny였다면, 뭔가 달랐을까?


Braves와의 1차전이 시작했고, 마운드에 Ankiel이 올랐다. 1회 2사 후 Chipper Jones와 Andres Galarraga에게 연속 볼넷을 허용했지만 Brian Jordan을 파울 플라이로 잡아내면서 무실점. 주자를 3명이나 허용하긴 했으나 뭐 경기 초반 Ankiel의 제구 난조가 그다지 특별할 일은 없었다. 오히려 1회말 Cards 타선이 Maddux를 상대로 타자일순하며 6득점한게 더 신기할 일이었다. TLR은 훗날 이 날 Maddux를 상대로 뽑아낸 6득점은 "말도 안되는 숫자 ("Crooked Number") 라고 회상했다.

2회에도 Reggie Sanders를 삼진으로 잡으면서 시작한 Ankiel은 무실점으로 무사히 이닝을 마쳤다. 그리고 마의 3회... 

Score Out RoB Pit(cnt) R/O @Bat Batter Pitcher wWPA wWE Play Description
0-6 0 --- 4,(3-0)  ATL G. Maddux R. Ankiel -2% 91% Walk
0-6 0 1-- 4,(1-2)  O ATL R. Furcal R. Ankiel 2% 93% Foul Flyball: 1B
0-6 1 1-- 2,(0-1)  ATL A. Jones R. Ankiel -0% 92% Wild Pitch; Maddux to 2B
0-6 1 -2- 4,(2-1)  ATL A. Jones R. Ankiel -1% 92% Wild Pitch; Maddux to 3B
0-6 1 --3 5,(3-1)  ATL A. Jones R. Ankiel -2% 90% Walk
0-6 1 1-3 5,(2-2)  ATL C. Jones R. Ankiel -1% 89% Wild Pitch; Jones to 2B
0-6 1 -23 7,(3-2)  O ATL C. Jones R. Ankiel 3% 93% Strikeout Looking
0-6 2 -23 7,(3-2)  R ATL A. Galarraga R. Ankiel -3% 90% Walk; Maddux Scores/Wild Pitch; Jones to 3B
1-6 2 1-3 1,(0-0)  R ATL B. Jordan R. Ankiel -4% 85% Single to LF; Jones Scores; Galarraga to 2B
2-6 2 12- 3,(1-1)  ATL R. Sanders R. Ankiel -1% 84% Wild Pitch; Galarraga to 3B; Jordan to 2B
2-6 2 -23 5,(3-1)  ATL R. Sanders R. Ankiel -1% 82% Walk
2-6 2 123 2,(0-1)  RR ATL W. Weiss R. Ankiel -12% 71% Single to LF; Galarraga Scores; Jordan Scores; Sanders to 2B
Provided by Baseball-Reference.com: View Original Table
Generated 2/6/2014.

강판된 후 덕아웃으로 돌아온 Ankiel에게 아무도 위로의 말을 쉽게 건내지 못했다. Ankiel은 Andy Benes에게 다가가 "A joke. You've got to laugh." 라며 자신이 저질러놓고도 도대체 믿을 수가 없는 이 상황에 허탈해했다. 이 때만해도 Ankiel의 투수로써의 커리어가 이 경기를 기점으로 사실상 재생 불가능 상황이 될 것이라고 상상한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Mets와의 NLCS를 앞두고 Ankiel은 자신의 문제가 투구폼 관련된 Mechanical한 문제라며 이제 해결책을 찾았다고 이야기했다. NLCS 2차전에 Ankiel이 등판했고, 초구 91마일 패스트볼이 상대 타자 Timo Perez의 머리를 향했다 (Perez는 가까스로 피했다). 삼진-볼넷-폭투-볼넷-희생플라이-볼넷-2루타. 20구 중 5개가 포수 뒤로 날아갔다. Duncan 은 볼만큼 봤다고 생각했는지 Ankiel을 내렸는데, 질책성이라기보다는 보호 차원의 강판이었다. Duncan은 경기 후 지금 Ankiel에게 필요한 것은 쉽게 한 이닝을 던지고 감을 회복하는 것 ( "have a nice easy inning and probably get back on track") 이라고 얘기했고, Low-leverage 상황에서 Ankiel을 등판시켜 감각을 회복하도록 도와주기로 한다. 시리즈 최종전인 NLCS 5차전 7회, 0:6으로 크게 뒤져 있던 상황에서 Ankiel이 올라왔다. 볼넷-번트-삼진-폭투-폭투-볼넷. 

시리즈가 끝난 후 Rick Ankiel은 감옥에 있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경기를 본 아버지는 아들에게 다쳤냐고 물어봤고, 아들은 괜찮다고 대답하자 이에 "아니 그럼 대체 뭐하는 짓이야!" 라고 말했다. 이 경기를 TV로 지겨보던 Ankiel의 고등학교 팀 투수코치 Charlie Frazier는 "Ankiel에게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Mechanical한 문제들이 많았으며, 딜리버리 막판의 Follow-Through 단계에서 몸을 꼿꼿이 세우고 있었다" 며 어이없어했다. 동영상을 보시면 릴리즈 포인트에 신경을 쓰고 있던 Ankiel 의 상체가 부자연스럽게 거의 직선으로 서있는 모습을 보실 수 있다. 동영상 링크 


그 날이 있던 후 Ankiel이 웃고 있는 사진을 찾는 것은 굉장히 힘들어졌다.


"I never saw him lose his motion like that before. I saw mechanical flaws. He was throwing across his body; he was standing up in his follow-through. I asked him what his pitching coaches told him. He said, "They don't tell me anything!"

-Charlie Frazier, Ankiel's high-school pitching coach

NLCS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 Ankiel에게 Boras가 연락이 왔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Florida를 떠난 적이 없는 Ankiel에게 그는 "지금 당장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캘리포니아로 떠나라"고 설득했다. 다른 곳에 가서 머리를 식히라는 것 빼고는 딱히 어떤 이유가 있지는 않았다. Boras는 Ankiel에게 "모든 것을 그대로 놔두고 그냥 떠나라. 내가 도와주겠다" 고 했다. Ankiel은 잠시 Florida 집에 들려 짐을 싼 뒤 그 길로 Boras의 사무실이 있던 캘리포니아 Newport Beach로 떠났다. 마이너리그 때부터 같이 올라온 드래프트 동기 Adam Kennedy (당시 Angels로 이미 옮겨가있던) 가 기꺼이 숙소를 제공했다. 둘은 야구 관련된 일은 일체 하지 않았으며, 바닷가에서 조용히 휴식을 취했다. Ankiel은 이 기간 동안 자신의 멘토이기도 했던 Darryl Kile과만 꾸준히 연락했을 뿐 은둔한 상태로 5주를 보냈다. 

5주간의 휴식이 지나고 12월 중순 Ankiel이 Florida로 다시 돌아왔을 때, 그의 연락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 스포츠 심리학계의 거장인 Harvey Dorfman 박사였다. Dorfman은 3일간 심도있게 Ankiel의 어린 시절과 그를 둘러싼 공포들, 무의식을 분석하기 위해 상담했다. Dorfman 박사와 Ankiel의 두터운 관계는 이 때부터 시작되었다.

"...there's a lot of things in his life that could have triggered what happened in the playoffs. You're raised in that kind of environment, anything can happen. He's a very sensitive guy, and he had to be mature awfully quick. These things can have a very calamitous potential . I've seen it happen to other players where it became career threatening. So the best thing we can do is listen, understand and cover all of the possibilities."        

-Scott Boras, on Rick Ankiel's recovery (2001)

2001년 4월 8일, Ankiel은 Chase Field 원정에서 Randy Johnson과 D-Backs 라인업을 상대로 시즌 첫 등판을 치루었다. 1회 Matt Williams에게 투런 홈런을 맞았으며, 제구불안 문제도 여전했다. 그러나 전반적인 구위에 있어서 만큼은 Ankiel은 예전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5회에는 세 타자를 모두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기세등등했고, 6회에 투구수 100개를 채우고 강판되었다. 5이닝 3피안타 3볼넷 2실점 8탈삼진. Cardinals는 Big Unit을 상대로 홈런 3개 포함 11안타를 쳤다. 9:4 승리. Ankiel의 커리어 마지막 선발승이었다. 

그러나 이 경기 이후 Ankiel 이 보여준 모습은 2000년 플레이오프와 비슷했다. 도저히 봐주기가 힘들 정도로 아무데로나 가는 공들. 잦은 폭투. 24이닝에서 볼넷 25개, 폭투 5개, 사사구 3개. 2001년 5월 홈에서 Pirates 상대로 등판한 Ankiel은 Pat Meares를 상대로 다시 포수 뒤 스크린에다가 공을 던졌다. Duncan이 올라오자 Ankiel은 고개를 떨구었다.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Cardinals 구단 측에서는 Ankiel의 커리어를 "리셋" 하겠다는 의도로 그를 루키리그로 보냈고, 세간의 관심이 없는 이 곳에서 Ankiel은 신기할만큼 빠르게 영점을 잡았다. 그리고 제구가 되는 이상 ML에서 이닝당 한 개 이상의 삼진을 잡아내던 Ankiel의 구위는 루키리그 타자들이 건드릴만한 것이 아니었다. 14경기에서 87.2이닝동안 탈삼진 158개 (K/9 = 16.2) 평균자책 1.33. 이 정도면 괜찮다 싶어서 Memphis로 승격시키자 다시 병이 도졌다. 4.1이닝동안 3피안타, 17볼넷, 10실점, 폭투 12개. 공이 미친듯이 백스톱 뒤로 날아가자 상대적으로 작은 마이너리그 구장에서 관중들의 웃음소리가 Ankiel의 귀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것이다.



2004년, TJS를 받고 돌아온 Ankiel에게 아직도 Cardinals는 희망을 놓지 않고 않았다. A+ 볼에서 시즌을 시작한 Ankiel은 3차례의 선발 등판에서 8.2이닝 0볼넷 11탈삼진을 기록했고, AA볼로 승격된 이후에는 2경기에 걸쳐 9이닝 3피안타 1실점 2볼넷을 기록했다. 이어서 Memphis로 올라와서 선발 등판한 경기에서는 6이닝 1피안타 1실점. 역시 볼넷은 없었다. "그 날" 이 있기 전에도 Ankiel이 마이너리그에서 이렇게까지 좋은 제구력을 보여준 적은 없었다. 드라마틱한 부활이 가시권에 있었다.

2004년 9월 7일, Ankiel이 무려 3년 6개월만에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섰다. 1이닝 무실점. 15구 중 12구가 스트라이크였다. 4일 후 Dodgers 전에 다시 구원등판한 그는 19구 중 14구를 스트라이크 존에 꽂았다. 9월 19일에는 재앙이 시작되었던 Busch Stadium 마운드에 참으로 오랜만에 섰고, 관중들은 돌아온 Ankiel을 기립박수로 환영했다. 2이닝 4K 무실점. 5차례의 등판에서 10이닝을 던지는동안 Ankiel은 삼진 9개를 잡고 볼넷은 Chad Tracy에게 내준 한 개가 유일했다. 구속은 3년 전 그의 모습에 비해 확실히 떨어진 90마일 선에 그쳤으나, 커브는 여전히 리그 정상급 낙차를 보였고, 싱커도 여전했다. 

2000시즌 이후 제대로 된 정규시즌을 치루어 본 적이 없는 이 투수는 수년 간의 방황에도 불구하고 아직 24세였다. 오프시즌에 그는 Puerto Rico 에서 열린 윈터리그에서 한층 발전된 모습을 보였고, 구단 수뇌부에서는 Matt Morris 의 자리를 Ankiel이 대신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까지 품기 시작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간신히 ML에서 통할 수 있는 수준의 상태로 기어올라온 Ankiel은 시뮬레이션 피칭에서 Edmonds, Rolen 등 Cardinals 중심타자들을 배팅 케이지에 세워놓고 다시 한 번 "나는 누구고 여긴 또 어딘가" 식의 붕괴를 겪는다. 23구를 던졌으나 스트라이크는 3개. 원바운드성 폭투는 물론이고 배팅 케이지 밖으로 아예 나가는 공도 여러개였다. 2005년 3월, Ankiel은 "더 이상 던지지 않겠다"며 투수 포기를 선언한다. 

Sandy Koufax의 재림은 신기루였다.

"I just lost it right there on the mound. I don't know what I was thinking. I'd go blank before I'd throw the ball, and then after I'd say to myself, 'How the hell did that happen?' It was definitely weird. I mean, I'd been doing it so many times in my life, and suddenly I can't throw a ball?"

-Rick Ankiel, on his melt-down (2001)


2003년 스프링캠프를 앞두고 Walt Jocketty는 Ankiel의 진로를 결정할 순간을 맞이한다.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에 참여시킨 뒤 이후 마이너리그로 보내서 다시 재활하게 하는 것이 잠재적 방안이었는데, 과연 어느 레벨의 마이너리그로 그를 보내느냐는 정해지지 않았다. TLR의 사무실에 Duncan이 찾아와 Jocketty의 결정을 알리자 TLR이 물었다. "무슨 레벨로 가는지에 대해 우리가 어느 정도의 영향력이 있지?" Duncan 이 대답했다. "뭐 어느 정도 input은 있겠지." TLR은 버스 이동거리가 많은 AA 레벨보다 조금 더 이동이 수월한 Memphis로 Ankiel을 보내는 게 어떠냐고 물었다. 그러자 Duncan은 Ankiel을 Double-A 레벨의 Tennessee로 보내는 게 좋겠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덧붙였다. 

"He's 23-years old. He should be in Double-A."

(Excerpt from 3 Nights in August, page 82)


(Part II에서 계속)

자료 출처: Hardball Times, New York Times Magazine, USA Today, Palm Beach Post, STL Post-Dispatch, 3 Nights in August, Baseball-Reference, ESPN, Fangraphs






Posted by Doovy+
:

삼진 먹은 Rick Ankiel. 우리는 이런 표정을 너무 자주 보아 왔었다.

Rick Ankiel이 Royals와 1년 3.25M + 6M 상호 옵션의 조건으로 계약하였다.
링크(MLBTR)

이렇게 해서, 1997년 드래프트에서 지명된 이후 무려 12년간 몸담아왔던 Cardinals로부터 완전히 떠나게 되었다.

Ankiel만큼 파란만장한 야구인생을 걸어온 플레이어도 별로 없을 것이다. 96마일의 패스트볼과 싱커, 커브를 주무기로 하는 최고의 투수 유망주였고, 20세의 나이로 2000년에 메이저리그 풀타임 선발투수가 되었다. 3.50 ERA에 9.98 K/9로 제2의 Randy Johnson이라도 될 듯한 분위기였으나, 그 해 플레이오프에서 무더기로 폭투를 던지면서 단숨에 무너져 버렸다. 이후 2004년 말까지 그는 온갖 종류의 부상과 최악의 제구력 난조에 시달리며 수술과 재활, 삽질, 좌절로 우울한 시간을 보냈다. 2005년 Spring Training 도중 그는 외야수로 전향을 선언했고, 그후 단 2년만에 메이저리그에 외야수로 재입성하는 데 성공했다. 2008년에는 .843의 OPS를 기록하며 Cardinals 외야에서 주전 자리를 꿰차기도 하였다. 그러나, 2009년에는 다시 이런저런 부상에 시달렸고, 또한 NL 투수들에게 타석에서의 약점을 노출당하면서 OPS .672의 형편없는 성적으로 시즌을 마무리하였다.


Ankiel과 그의 에이전트 Boras는 Ankiel이 주전으로 뛸 수 있는 팀을 원했다. Royals는 지금 메이저리그에서 아마도 그에게 주전 자리를 제공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팀일 듯 하므로, 어쨌든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 부상에서 회복되어 건강한 상태라면, 적어도 수비는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공격은 잘 모르겠다. 그는 확실히 한 시즌에 30홈런을 칠 수 있는 파워를 가지고 있지만, 선구안이 나빠서 아무 공에나 성급하게 휘두르는 경우가 많으며, 스윙에 약점이 너무 많다. 낮은 출루율을 장타율로 보완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컨택이 너무 안되고 삼진을 지나치게 많이 당하고 있다.

그럼 Royals가 이 딜로 얻은 것은 무엇일까? 역시 70-75승짜리 로스터이다. -_-;;; 이전에 MLB 최악의 단장 TOP 10 리스트를 만들면서 Dayton Moore 단장에 대해 "그의 특기는 주로 허접 플레이어들을 적당한 연봉으로 모아서 허접 로스터를 만들어 허접한 성적을 내는 것이다. 리빌딩도 아니고, 그렇다고 Win-Now도 아닌, 70승 짜리 팀을 만드는 작업을 반복하고 있다." 라고 평한 바 있었는데, 역시 이번 오프시즌에도 Jason Kendall, Scott Podsednik, Ankiel과 계약하여 정말 명불허전이라는 생각이 들고 있다.

Royals의 스타팅 라인업을 예상해 보면...
1. Scott Podsednik (CF)
2. David DeJesus (LF)
3. Billy Butler (1B)
4. Jose Guillen (DH)
5. Alex Gordon (3B)
6. Rick Ankiel (RF)
7. Alberto Callaspo (2B)
8. Yuniesky Betancourt (SS)
9. Jason Kendall (C)

이번 시즌 Royals의 팀 OBP가 얼마나 될 지 무척 궁금해진다.
이건 뭐... Greinke가 참 불쌍하다는 생각밖에...


어쨌거나.
안녕 Ankiel. 지난 12년간 즐거웠고... 앞으로 행운이 함께하기를...!!!!
Posted by FreeRedbird
:



Rick Ankiel(위) vs Chris Duncan : 누가 누가 못하나


지난 오프시즌 때만 해도 Cardinals의 최대 강점은 탄탄하고 풍부한 외야진으로 생각되고 있었다.

08시즌 37홈런 114타점의 MVP급 활약을 보인 Ryan Ludwick, 25홈런에 OPS .834로 성공적인 외야수 변신을 마친 Rick Ankiel, .359의 출루율로 리드오프 역할을 훌륭하게 해 낸 Skip Schumaker가 주전으로 자리를 굳힌 가운데, 메이저리그 전체 TOP 10 유망주 안에 들 정도로 가능성을 인정받던 Colby Rasmus가 메이저리그 문턱을 노크하고 있었으며, Joe Mather 또한 133타석에서 8홈런을 기록(OPS .780)하며 Schumaker 혹은 Ankiel의 좋은 플래툰 파트너로 떠오르고 있었다. 게다가 목 디스크 수술을 받은 Chris Duncan이 아무런 불편함 없이 재활을 순조롭게 진행하고 있었고, 여기에 대타 및 대주자로 좋은 활약을 보인 Brian Barton도 있었다. 메이저리그 로스터에 넣고 싶은 외야수가 무려 7명이나 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또한 마이너리그에는 마침내 잠재력을 현실에서 폭발시킨 Daryl Jones가 AA까지 올라와 있었고, AAA에는 Jon Jay가 좋은 활약을 보이고 있었다. AAA 타격왕 Stavinoha는 별로 기대가 크지는 않았지만... 벤치워머로서의 기용은 가능해 보였다.

이쯤 되다 보니 팬들은 외야수의 트레이드를 통해 전력을 보강하기를 바랬고, 실제로 그런 논의들이 공식적으로 진행되기도 했다. 대표적인 것이 Ludwick, Schumaker 및 유망주 1명을 묶어서 Matt Holliday와 트레이드하려는 시도였다. 이 딜은 결국 무산되었고 Holliday는 대신 A's의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이 트레이드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지만... 결국 아무 외야수도 트레이드되지 않았고, 단지 Skip Schumaker가 2루수로, Joe Mather가 3루수로 전업하면서 외야수의 숫자가 줄어들었다. 결국 Schumaker는 2루수로, Mather와 Barton은 AAA에서 시즌 개막을 맞이하였다. 메이저리그 외야는 Ludwick, Ankiel, Rasmus, Duncan 네 명이 돌아가면서 맡는 모습이 되었다.

그리고 나서 석 달이 조금 넘게 흘렀다. 그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시즌 스탯 (타율/출루율/장타율/OPS/OPS+)  (자료 : Baseball-Reference)
Colby Rasmus  .283/.327/.496/.823/117
Ryan Ludwick  .242/.315/.441/.755/100
Rick Ankiel  .222/.283/.373/.656/74
Chris Duncan  .238/.336/.375/.711/90
Joe Mather  손목 부상으로 수술 --> 시즌 아웃
Brian Barton  Braves의 Blain Boyer와 트레이드됨

Nick Stavinoha .234/.242/.359/.602/59
Jon Jay  메이저리그에 올라온 적 없음(AAA에서 삽질 계속)

상황이 이렇고, 중간에 Ankiel과 Ludwick이 부상을 당한 적도 있다 보니 어떤 경기에는 심지어 Joe Thurston이 외야수로 선발 출장하기도 하였다.


그 많던 외야수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위의 OPS+를 보면 Rasmus만 좋은 활약을 보이고 있고, Ludwick은 올 시즌 완전히 메이저리그 평균이며, Duncan과 Ankiel은 심각하게 삽질 중임을 알 수 있다. Stavinoha는 더욱 형편없지만 그는 애초부터 주전이 아니었고, 별 기대도 안했기 때문에 논외로 하자.

특히 LF 자리에 번갈아 출장하고 있는 Duncan과 Ankiel이 팀 전력에 심각한 누수가 되고 있다. 타격만 놓고 보면 도토리 키재기이면서도 Duncan이 살짝 나은 모습인데... 출루율의 차이가 제법 나고 있다. 그러나, 수비력을 고려하면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UZR/150  (자료: Fangraphs)
Rick Ankiel 12.0 Rus
Chris Duncan  -5.6 Runs

둘의 차이는 17.6점. 거의 2게임의 차이에 해당하는 큰 격차이다.

공격과 수비, 그리고 포지션(Ankiel은 LF와 CF를 오가고 있고, Duncan은 only LF이다)을 모두 고려한 두 플레이어의 올 시즌 기여 수준을 비교해 보면, (자료: Fangraphs)

Rick Ankiel : 2.1 RAR, 0.2 WAR, $Value 0.9M
Chris Duncan : 1.0 RAR, 0.1 WAR, $Value 0.5M

거기서 거기지만 그나마 Ankiel이 조금 나은 모습이다.


참고로 RAR은 Runs Above Replacement Level, WAR는 Wins Above Replacement Level, $Value는 해당 수준의 WAR를 FA시장에서 돈 주고 산다고 생각했을 때 예상되는 소요 비용이다.

대충 시즌이 반 정도 지났으니... 현재의 삽질을 연말까지 계속한다고 치면 위의 숫자에 2를 곱한 정도의 기여 수준이 될 것이다. Rick Ankiel은 0.4 WAR에 $Value 1.8M, Duncan은 0.2 WAR에 $Value 1M이 되겠다. 그런데 둘의 올해 연봉은 Ankiel이 $2.825M, Duncan이 $0.825M이다. Ankiel은 몸값에 미달하는 활약인 반면, Duncan은 그럭저럭 밥값은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워낙 연봉이 싸다 보니...).

정리하면,
올 시즌 활약(?)만 비교하면 Ankiel > Duncan.
몸값을 고려하여 가격 대 성능비를 따지면 Ankiel < Duncan.


그래봤자 도토리 키재기지만...



지금 얘네들은 3루에 종종 기용되는 Joe Thurston과 함께 정말 팀의 블랙홀이다. 최소한 둘 중 하나가 정신을 차리고 제대로 플레이해 주지 않으면, 플레이오프 진출에 커다란 걸림돌이 될 것이다.

PS. La Russa 감독이 종종 Rasmus를 빼고 Duncan과 Ankiel을 모두 선발 출장시키곤 하는데, 팀 전력에 엄청난 손실을 입히는 어이없는 라인업 기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바보같은 짓은 하지 말고 Rasmus를 매일 매일 선발 출장시켜야 한다...!!

Posted by FreeRedbird
:
명색이 Cardinals 팬 블로그인데 요즘 카즈 소식을 너무 안 다룬 것 같아서 조금 써 볼까 한다.
최근 발생한 이런저런 루머 및 로스터 이동을 살펴보자.

<루머>

Cardinals, Khalil Greene을 트레이드 시장에 매물로 내놓다.


Khalil Greene

루머 링크
오프시즌 트레이드를 통해 영입된 Khalil Greene은 공격과 수비 양쪽에서 삽질을 거듭해왔다.
그의 slash stat은 .210/.287/.310 (OPS .597)에 불과하며, 수비 역시 UZR/150이 현재 -17.8에 이를 만큼 좋지 않다. 수비 스탯은 논란의 여지가 많으나, 올 시즌 그의 Range가 비정상적으로 작아 보인다는 점에는 많은 이들이 동의하고 있다.

문제는 Khalil Greene이 일종의 정신병적 불안(Anxiety)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이며 자해("he has several times punished himself physically")까지 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역 언론인 St. Louis Post-Dispatch의 보도에 따르면, 그의 정신 불안 및 자학 분위기는 매우 위험한 수준이라고 한다. 안좋은 성적이 그의 "불안"을 부추기고, 정신적으로 불안해지면서 성적이 더욱 나빠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La Russa 감독은 그에게 육체적, 정신적인 휴식을 주기 위해 선발 유격수에서 유틸리티 플레이어로 그의 보직을 전환한 바 있다. 이런 플레이어를 과연 데려갈 팀이 있을까? 올 시즌 그의 연봉은 650만 달러인데... 대부분의 연봉을 Cardinals가 부담하지 않는 이상 트레이드는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위 기사의 마지막 부분을 보자.

Greene admitted to feeling increasingly overwhelmed by his situation and did not dispute accounts that he has several times punished himself physically.

Several team members have expressed concern about the degree of Greene's self-punishment.

"That's the way it's always been," Greene said, referring to his condition's compulsive nature. "It's not rational. It's not something I think as an intelligent thinking human being. ... I understand the disorder of it. It just doesn't help."


Greene은 그가 처한 상황에 의해 점점 압도되고 있음을 인정했으며, 그가 여러 번 자기 자신을 자해한 일에 대해서는 자세한 언급을 피했다. 여러 동료 선수들은 그의 자해 수준에 대해 우려를 표한 바 있다.

Greene은 그가 처한 상황의 강박적인 본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것(자해)은 언제나 그런 식이었다. 그것은 이성적인 일이 아니다. 지성을 가진 인간이 생각할 일은 아니다. 나는 그것의 부조리함을 이해하고 있다. 그건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그는 작년에도 성적 부진이 계속되자 주먹으로 엉뚱한 물건을 쳐서 팔을 크게 다침으로써, 시즌 중반에 자기 스스로 시즌아웃 된 바 있다. 올해에도 그가 경기 후에 자해로 피를 흘리고 있는 모습을 목격한 동료 선수들이 이미 나오고 있다. -_-;;;

Mozeliak 단장은 어쩌다 이런 문제아를 데리고 왔는지... 헐...


Cardinals, 트레이드를 통해 3루수를 영입할 가능성.


Mark DeRosa

루머 링크 1
루머 링크 2

Troy Glaus의 공백이 장기화되고, 도대체 언제 복귀할 지도 오리무중인 상황에서... 외부에서 3루수를 영입할 가능성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현재까지 카즈의 3루 자리에는 Joe Thurston, Brian Barden, Tyler Greene 등 다양한 플레이어들이 땜빵으로 출전해 왔는데... 이 3루수들의 성적은 오늘 현재 .253/.323/.414 (OPS .737)로 메이저리그 30개 팀 중에서 OPS 기준 19위이다. 유틸리티 플레이어들로 돌려막은 것 치고는 그럭저럭 봐 줄 만한 성적이긴 하나... Brewers 및 Cubs와 지구 선두다툼을 벌이기에는 역시 좀 불만이며, 대부분의 경우 유틸리티 플레이어들은 너무 많은 출전으로 약점이 많이 노출되면 성적이 추락하는 경향이 있다.

영입 대상 3루수로는 Mark DeRosa, Garrett Atkins, Melvin Mora, Adrian Beltre 등의 이름이 떠오르고 있는데... 이중 가장 현실적인 선택으로 떠오르고 있는 플레이어가 Mark DeRosa이다. 이미 소속팀 클리블랜드가 그를 트레이드 매물로 내놓은 상태인 데다, 연봉이 $5.5M으로 상대적으로 저렴하며,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어서 하반기에 Glaus가 복귀하더라도 2루수나 외야수로 선발 출장이 가능하다는 여러 장점이 있다.

팀은 DeRosa 영입 가능성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고 있는데, 실제로 트레이드를 하거나 하지 않거나 간에, 딜이 성사되기 전까지는 말을 아끼는 것이 바람직한 태도라고 본다.


Jake Peavy 영입이 가능할까?




최근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Jake Peavy 영입 시도가 Peavy 본인의 거부권 행사로 무산되었다. 투수 유망주 Aaron Poreda를 중심으로 한 화이트삭스의 유망주 패키지는 지난 오프시즌에 논의되던 여러 종합선물세트 들에 비하면 격이 떨어지는 것으로, 아마도 샌디에고의 Kevin Towers 단장은 오프시즌에 트레이드를 하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아쉬울 것 같다.

어쨌거나... 이렇게 Peavy 트레이드의 가격(?)이 다소 낮아짐에 따라 언론이나 팬들 사이에서 Jake Peavy 영입 주장이 다시 솔솔 흘러나오고 있는데... 역시 문제는 남아있는 그의 연봉이다.
올해 연봉은 8M이며... Cot's Baseball Contracts 사이트를 참고하면...
'10:$15M, '11:$16M, '12:$17M, '13:$22M club option ($4M buyout)

그는 트레이드 거부권을 가지고 있으므로, 바보가 아닌 이상 2013년의 옵션을 당장 실행하는 것을 트레이드 조건으로 걸고 넘어질 것이다. 따라서 그를 영입하는 팀은 2010~13년의 4년 동안 무려 $70M의 연봉을 지불해야 한다. 투수와의 고액 장기계약은 그 자체로 리스크인데다, Jake Peavy의 소위 Max-effort 투구폼에 대해서는 내구성에 대한 의문이 계속 제기되어 온 상태이다.

만약 카즈가 어떤 식으로든 유망주 몇 명을 내주고 Peavy를 영입한다면... 예를 들어 2011년의 연봉은 다음과 같게 된다.

Albert Pujols 16M
Chris Carpenter 15M
Kyle Lohse 11.88M
Yadier Molina 5.25M
Adam Wainwright 6.5M
Jake Peavy 16M

6명의 플레이어에게 7000만 달러가 묶이게 되는 것이다. 만약 그때까지 Ryan Ludwick이 팀에 남아 있다면 그도 제법 큰 돈을 받고 있을 것이다. 페이롤이 대략 100M 정도라고 하면 로스터의 나머지 17명을 2000만 달러 정도만 가지고 짜야 되는데... 만만찮은 작업이다.

더욱 큰 문제는 2012년이다. Carpenter의 옵션은 거부할 것으로 보이지만, Peavy의 옵션이 트레이드와 동시에 실행될 것이므로...

Jake Peavy 22M
Kyle Lohse 11.88M
Adam Wainwright 9M (옵션 실행 가정)
Yadier Molina 7M (옵션 실행 가정)
Albert Pujols 30M(???)

2012년은 Albert Pujols가 새로운 계약을 하게 되는 첫 해이다. 그가 FA시장에 나가게 되면 연간 3000만 달러는 가볍게 넘길 것으로 예상되고 있으므로... (Fangraphs의 분석에 의하면 그의 2008년 성적을 FA시장의 몸값으로 환산하면 무려 $40M 이다) 홈 팀이라고 좀 봐 줘서 연간 30M 정도에 연장 계약을 해 준다면 참 다행인 상황이다. 그렇다고 하면... 위의 5명에게만 무려 80M의 연봉이 지불되게 된다. 게다가 2012년이 되면 Colby Rasmus가 연봉 조정 신청 자격을 얻게 된다. 카즈가 양키스도 아니고... 이렇게 되어서는 구단주가 로또라도 되지 않는 이상 팀을 꾸려 나갈 방법이 없다.

Peavy는 포기하고 다른 대안을 찾는 것이 좋을 것이다.


<로스터 이동>

Rick Ankiel(OF) : DL(부상자 명단) --> ML 25인 로스터


Rick Ankiel

Rick Ankiel은 수비 도중 전력질주 후 펜스에 정통으로 머리를 부딪히는 사고로 인해 부상자 명단에 올라 있었고, 계속해서 몸 여기저기가 쑤신다고 하여 앞으로도 얼마간 DL에 머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었다.

그러나, Royals와의 3연전 마지막 경기 전에 갑자기 DL에서 25인 로스터로 복귀하여 오늘(미국시간 5/24) 게임에 우익수로 선발 출장하였다. 기록은 4타수 1안타(2루타).

아마도 5월들어 리그 최하위 수준으로 갑자기 떨어져버린 빈곤한 공격력을 보강하기 위한 조치인 것 같다. Cardinals의 5월 공격 Stat을 보면... 이 경기를 포함해서 21게임에서 71득점. 경기당 3.38점의 저조한 모습이다. Slash Stat으로 봐도 Avg/Ops/Slg = .224/.285/.388로 팀 OPS가 .673에 불과하다. 5월 팀 OPS는 NL 14위로, Cardinals보다도 팀 OPS가 떨어지는 팀은 Giants(.650), Padres(.630) 뿐이다.

Tony La Russa 감독은 앞으로 (적어도 당분간) Ankiel을 우익수로 기용할 뜻을 밝혔는데... 이제라도 정상적인 수비 기용이 이루어져 다행이다. 어느 면으로 보더라도 Rasmus가 Ankiel보다 CF 자리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Tyler Greene(SS/Infield UT) : ML --> AAA Memphis


Tyler Greene

공격력 강화를 위해 Ankiel을 빨리 복귀시킨 것은 그럭저럭 이해할 수 있는 결정이지만, 그 결과 Tyler Greene이 마이너리그에 내려가게 된 것은 매우 실망스럽다.

Tyler Greene은 최근들어 부쩍 유격수 선발 출장이 잦아지고 있었으며, 타격 성적도 .263/.300/.500 으로 우수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공격도 공격이지만 더욱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의 빠른 발과 뛰어난 수비였다. 신인으로서는 나무랄 데 없는 활약을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결정이 이루어진 배경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Ankiel의 몸 상태를 아직 알 수 없으니, Nick Stavinoha(OF)를 로스터에 남겨 두자는 의도인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투수를 한 명 줄이면 되지 않는가? 안그래도 요즘 선발 투수들이 이상하리만치 잘 던지고 있는데... 구원투수를 무려 8명이나 데리고 다닐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메이저리그에서 현재 13명짜리 투수진을 운영하고 있는 팀은 카즈가 유일할 것이다. 이것은 로스터 낭비라고밖에 할 말이 없다. 역시 Brad Thompson을 마이너로 내려보냈어야 했다.

이렇게 13인 투수진이 유지되면서... 벤치에는 Stavinoha(LF/RF), LaRue(C), Khalil Greene(IF UTIL), Joe Thurston(IF UTIL) 이렇게 네 명만이 남아 있게 되었다. 이럴 바에야 돌글러브의 Stavinoha보다는 수비가 되는 Shane Robinson을 메이저에 남겨두는 것이 차라리 나았는데... 어쨌든 4명짜리 벤치는 너무나도 비상식적인 로스터 운용이다.

결국 AAA로 돌아가기는 했지만... Tyler Greene은 충분한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2005년 드래프트 1라운드(전체 30순위) 지명자로서, 그동안 지나치게 많은 삼진을 당하며 기대에 못미치는 모습을 보여 왔지만.. 작년부터 조금씩 나아지더니 올해 괄목할 만한 발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Khalil Greene이 떠난 뒤 내년 주전 유격수는 Tyler Greene이 차지할 지도 모르겠다.


Brett Wallace(3B) : AA Springfiled --> AAA Memphis


Brett Wallace (사진 : Brian Walton)

David Freese가 부상자 명단에 오르면서, Brett Wallace가 AAA로 승격되었다. 22세의 그는 작년 드래프트 1라운드(전체 13순위) 지명자로, 1년도 채 안되어 AAA까지 온 것이다.

Cardinals는 최근들어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공격적으로 유망주들을 프로모션시키는 구단으로 변모해 왔다. 작년 시즌에도 2007년 드래프트 출신인 Clayton Mortensen이 1년만에 AAA에 도달한 케이스가 있었으며, P. J. Walters, Jess Todd, Jon Jay 등도 매우 빠른 속도로 AAA에 도달하였다. Low A 급의 마이너리거가 뛰어난 성적을 올리면 시즌 말미에는 AA에 올라가 있을 정도로.. 1년에 2개의 리그를 넘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다. 거의 모든 산하 마이너리그 구단 로스터가 해당 리그에서 가장 어린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을 만큼, 카즈 프런트의 공격적인 마이너리그 운용이 두드러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공격적인 유망주 관리는 그 결과가 엇갈리고 있는데... 작년의 Jess Todd나 David Freese와 같이 상위 리그에 잘 적응하고 유망주로서의 가치가 올라간 경우가 있는가 하면, Tyler Herron과 같이 삽질을 거듭하며 오히려 발전이 더디게 된 경우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Brett Wallace는? 작년에 드래프트되어 작년 말에 이미 AA에 갈 만큼 작년에도 공격적으로 프로모션되었다. 이러한 조치에 Wallace는 성적으로 대답하였는데... AA에서 .367/.456/.653으로 무려 1.109의 OPS를 기록한 것이다. 올 시즌 OPS는 AA에서 .840, AAA로 승격된 뒤에는 .849로 계속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직까지는, 적어도 타격 면에서는 신속한 프로모션이 좋은 쪽으로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

다만 문제는 수비인데... 3루 수비가 불안하다는 점이 계속 지적되고 있으므로... 마이너리그에서 좀 더 시간을 보내면서 수비력을 향상시키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 될 수 있겠으나, 빠른 프로모션으로 인해 그러한 부분이 다소 소홀히 되고 있는 듯 하여 아쉽다.

올 시즌이 끝나면 Troy Glaus와의 계약도 끝나게 된다. Glaus는 오프시즌에 수술을 받은 후 현재까지도 재활 운동을 시작하지 못하고 있고, 게다가 약물 복용 사실이 밝혀지기까지 해서 사실상 앞으로 메이저리그에서 야구를 할 수 있을지 자체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구단이 Brett Wallace를 빠른 속도로 승격시켜 벌써 AAA에 도달시켰다는 것은, 내년 시즌 메이저리그 주전 3루수를 그에게 맡길 수도 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팜 출신의 젊은 선수들이 메이저리그 로스터를 채워가는 모습은 참 흐뭇한 광경이지만... Wallace가 3루를 맡게 되면 내야 수비가 더욱 안좋아질 것이다. 최근 카즈 프런트가 자꾸 공격력을 위해 수비를 희생시키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약간 우려스럽다. (Schumaker의 2루수 전업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Casey Mulligan(RP)  A Quad Cities --> A+ Palm Beach


Casey Mulligan : 제 2의 Jason Motte??

고작 구원투수 한 명이 싱글 A에서 하이싱글 A로 올라간 것이 뭐 대단한 뉴스거리냐고 할 수도 있지만... 카즈팬이라면 무척 흐뭇한 일일 것이다. Casey Mulligan은 원래 2006년 드래프트 22라운드에서 포수로 지명되어 입단했으나, 작년 시즌 중반에 구원투수로 전업하여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올 시즌 그의 성적은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이다. 18.2이닝에 달랑 1자책점으로 ERA는 0.48이며, 무려 35개의 삼진을 잡는 동안 볼넷은 겨우 5개를 허용했다. 피안타율은 .132에 불과하며, FIP는 0.25이다..!! 팬들은 제 2의 Jason Motte라며 열광하고 있다. 이제 겨우 하이싱글A이므로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그의 나이 또한 21세에 불과하므로 25세에 전업한 Motte보다도 오히려 발전 가능성이 많다고 할 수 있다.

Mulligan의 이야기는 따로 포스팅할 계획이므로...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겠다. 항상 이런 이야기가 재미있지 않은가? 투수에서 외야수로 전업한 Rick Ankiel이라든지... 이렇게 포수에서 투수가 된 선수라든지...
Posted by FreeRedbird
:

어제(미국시간 5/4) Philadelphia Phillies와의 게임에서, Rick Ankiel이 외야 수비 도중 전력 질주 후 펜스에 머리를 정통으로 부딪히는 끔찍한 사고가 있었다.


치명적인 부상으로 연결될 수도 있는 위험한 순간이었다. 별 일 없어야 되는데...


펜스에 부딪친 후 쓰러져 있는 Rick Ankiel.

Ankiel은 그라운드에 쓰러져 5분 이상 꼼짝 못하고 누워 있었으며, 목 보호대를 댄 채로 들것에 실려서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이송될 때 관중들을 향해서 엄지 손가락을 치켜올렸다고 하는데.. 무사하니 걱정 말라는 의미였던 것 같다. 이날 Tony La Russa 감독은 Ankiel의 병상 옆에서 밤을 지샜다. (선수를 진심으로 아끼는 멋진 감독이다...)


실려나가는 Ankiel. 엄지손가락을 올리고 있다. -_-

최악의 경우 심각한 목 부상이 염려되는 상황이었으나, MRI 및 CT 촬영 결과는 일단 큰 이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오늘(미국시간 5/5) 퇴원하였으며, 그의 상태는 현재 Day-to-Day로 표시되고 있다. 부상자 명단에 올릴 지의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은 듯하다.

Ankiel은 퇴원 후 인터뷰에서 "펜스에 머리를 부딪히는 순간 내 야구 인생은 여기서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내가 걸어다닐 수 있는 것 자체가 행운이다."고 말했다. 목의 신경 부위는 다행히 다치지 않은 듯 하나 온 몸이 쑤시고 아픈 상태라고 한다. 당연하지... 저런 충돌을 하고 무사하기는 불가능하다.

적어도 당분간은 Colby Rasmus가 CF로 선발 출장할 것이다. 문제는 벤치 운용인데... 13인 투수진의 운영으로 인해 벤치 운용이 이미 제한되어 있는 상황에서 Ankiel의 부상으로 인해 이제 백업 외야수가 아예 한 명도 없는 상황이 되었다. 하루 이틀 사이에 Ankiel이 최소한 대타로 나설 정도로 회복되지 않으면 Brendan Ryan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원활한 벤치 운용을 위해 15-Day DL에 올릴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에는 아마도 Joe Mather가 메이저리그에 올라올 것이다.

Posted by FreeRedbird
:
4/21 (미국시간)
Cardinals 6, Mets 4
(9승 5패, NL Central 공동 1위)

Box

- Today's Player -

Rick Ankiel(CF)
(수염은 안 길렀을 때가 더 나은 것 같다.)

Rick Ankiel(CF) 3-5, 1 2B, 1 RBI
Yadier Molina(C) 3-4, 1 2B, 1 BB / 1 Pickoff(수비)
Brendan Ryan(2B) 2-4, 1 3B, 1 BB
Todd Wellemeyer(SP) 5 IP, 10 H, 4 ER, 2 BB, 1 K
Ryan Franklin(RP) 1 IP, 1 K  (S)

6-4 역전승. 이 게임은 사실상 상대 외야수 Daniel Murphy가 헌납해 준 것이나 다름없다. Murphy는 1루에서 Molina의 견제구에 걸려 주루사했고, 외야에서는 4-4 동점 상황에서 Brenday Ryan의 아주 평범한 타구를 어이없이 놓쳐서 3루타로 만들어 주었다. Ryan은 Ankiel의 2루타 때 홈에 들어와 결승 득점을 올렸다.

최근 20타수 1안타의 부진에 빠져 있던 Rick Ankiel이 모처럼 3안타를 날리며 활약했다.
올 시즌 절정의 타격감을 보이고 있는 Yadier Molina도 3안타. Molina는 수비에서도 1루 견제로 주자 한 명을 아웃시켰다. (이러한 Pickoff는 Molina의 주 특기이다.) 수비를 고려하면 Molina가 오늘의 베스트 플레이어인 것 같지만... 그래도 정말 오랜만에 Ankiel이 좋은 모습을 보였기에 그냥 Ankiel을 골라 보았다.

선발 Todd Wellemeyer는 5이닝동안 10안타를 맞고 4실점하는 부진한 투구를 했다. Molina가 때마침 주자를 1루에서 잡아 주지 않았다면 더 많이 실점했을지도 모른다.


Prospects

- Today's Prospect -

Steve Hill(C/1B/3B/DH/OF)

AAA Memphis 1-9 패
Adam Ottavino(RHP) 2.2 IP, 6 ER, 6 H, 2 BB, 0 K   -_-;;;
Shane Robinson(CF) 2-3

AA Springfield 7-4 승
Steve Hill(DH) 5-5, 3 2B, 1 HR, 1 RBI
Daniel Descalso(2B) 3-5, 1 2B, 4 RBI
Brett Wallace(3B) 2-5
Francisco Samuel(RHP) 1 IP, 1 H, 1 ER, 2 K

A+ Palm Beach 6-16 패
Paul Vazquez(C) 3-4, 1 HR, 3 RBI
Shane Peterson(DH) 2-5, 1 RBI
Nick Addicton(LHP) 1 IP, 6 H, 7 R, 2 ER, 1 BB  -_-;;;

A Quad Cities 15-2 승
Niko Vasquez(SS) 2-4, 1 BB
Chris Swauger(DH) 2-4, 3 RBI, 1 BB
Osvaldo Morales(1B) 2-5, 1 2B, 4 RBI, 1 BB
Adam Veres(RHP) 3.1 IP, 3 H, 2 BB, 5 K
David Carpenter(RHP) 1.2 IP, 1 H, 1 K
Arquimedes Nieto(RHP) 3 IP, 2 H, 1 BB, 3 K

대승과 대패로 점철된 하루였다.
Quad Cities를 제외하고는 투수들은 대체로 엉망이었다. 여기에는 단지 대표 격으로 Ottavino와 Addicton만 적었을 뿐이다.

이날 Steve Hill은 2루타 3개 포함 5타수 5안타의 맹타를 휘둘렀다. 전날 홈런 2개를 날린 데 이어 이날의 대활약으로 그의 특집 기사가 MiLB 공식 홈페이지의 대문에 올랐다. 그의 slash stat은 10경기에서 474/523/921로 OPS는 무려 1.444에 이른다. 수비가 좋지 않아 포수, 1루수, 3루수, 외야수, DH 등 다양한 포지션을 전전하고 있는 것이 문제이지만, 이런 타격을 계속 보여준다면 메이저리거가 되는 데 별 지장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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