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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2.06 Revisiting TLR ERA [12] Rick Ankiel - Part I (20)

많은 투수들이 빅 리그에 올라오기 전에 각자 소속한 하위 레벨의 마이너리그들을 소위 "초토화" 시키면서 올라오고, 그 과정에서 "예전의 어떤 사이영상 투수와 비슷하다"느니, 조금만 다듬으면 누구보다 낫겠다더니, 별 소리를 다 들으면서 올라온다. 그렇지만 Sandy Koufax 에 대한 비교는 흔하지 않다. 2014년 시즌 개막을 앞둔 현재, 사이영상 3차례에 빛나는 현존 최고의 투수 (Wain아 미안하구나) Clayton Kershaw만이 무리없이 Sandy Koufax 컴패리즌을 소화해낼 수 있다. 심지어 아직도 Kershaw가 Koufax에 비교되기는 시기상조라며 향수에 젖어계신 올드 팬들도 많다.

Raw Talent로 밀어붙이는 폭발적인 잠재력을 지닌 유망주에 대한 갈증에 아직 목말라하는 2014년의 Cardinals 팬들에게는 참으로 믿기 힘들겠지만. 16년 전, 우리 팜에는 Sandy Koufax 컴패리즌이 유효하다는 고졸 좌완 투수가 있었다. 

오랜 Cardinals 팬으로써, 오랜 야구팬으로써, 머리에 떠올릴 때마다 정말이지 만감이 교차하는 선수, Rick Ankiel 을 돌아본다. Part I 에서는 투수 Ankiel을, Part II 에서는 타자 Ankiel을 다뤄보려 한다.


Rick Ankiel (Richard Alexander Ankiel Jr.)

RHP / Outfielder

DOB: 1979년 7월 19일 

Birth: Port St. Lucie, Florida

Time with Cardinals:  1997-2009

Childhood

훗날 한 스카우트로부터 "여태 내가 본 최고의 좌완 투수들 중 하나" ("one of the best left-handers I've ever seen") 라는 극찬을 받은 Rick Ankiel이지만, Ankiel이 투수로 두각을 나타낸 것은 11학년이 (고2)  되고 난 후였다. 그 전까지 Ankiel은 남들보다 늘 작은 키에 그다지 대단할 게 없는 재능이었고, 리틀리그 시절에도 이는 마찬가지였다. 다만 Ankiel의 정신적 성숙함과 마운드 위에서의 차분함, 소위 "멘탈" 만큼은 유난히 훌륭했다. 지금 2000년 포스트시즌에서 역대 최악의 "멘붕" (Melt-down) 을 보였던 선수의 멘탈을 얘기하는게 맞냐고 물으신다면, 그렇다.

Florida의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자란 Ankiel은 고등학교 이전까지 "실수에 대한 두려움" 으로 꽁꽁 싸매진, 소심하고 겁이 많은 소년으로 자랐다. Ankiel 은 야구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야구는 나의 길" 이라고 생각할만큼의 열정은 없었다. Ankiel보다 야구를 잘하는 아이들은 많았다. 팀에서 키도 덩치도 가장 작았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 Rick Ankiel Sr. 는 아들에게 반강제로 야구를 시켰다.

그의 아버지 Rick Ankiel Sr. 는 화려한 전과를 자랑한다.1975년 대마 소지 혐의로 체포된 것이 시작으로 이후 25년간 그는 14차례 체포 당했으며, 6차례 구속당했고, 전과의 종류도 마약 밀수, 총기 은폐, 강도, 특수강도, 음주 운전 이후 경찰로부터 도주 등 정말 다양했다. 범죄자 테크를 타기 전까지 아버지의 직업은 낚시 가이드였으나, 이 업계에서 일하던 중 마약 밀매단과 엮이게 되면서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고 말았다. Ankiel이 자란 작은 마을에서 아버지의 과거와 전과, 그리고 심심찮게 일어나던 범법 행위들과 불안한 가정 분위기는 지역 사회와 이웃들의 지나친 관심과 손가락질을 불러왔고, Ankiel이 성장하면서 이로 인한 스트레스는 어린 소년이 감당하기 힘들 수준으로 부풀어올랐다. 








아버지는 어린 Ankiel에게 가혹하게 훈련시켰다. 리틀야구 선수였던 어린 아들에게 기합과 엄포는 물론이고 미국 아버지들에게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따뜻한 부정은 전혀 없었다. 강압적이었던 아버지는 본인이 결코 아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어린 Ankiel을 더더욱 강하게 몰아붙였다. 실수를 용납하지 않던 아버지 밑에서 Ankiel은 아버지의 폭언을 피하기 위해서 야구를 했고, 늘 실수하면 안된다는 공포에 떨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 때문에 늘 소위 "군기"가 바짝 들어있었던 Ankiel은 훗날 고교야구에서 보기 드문 성숙함과 인성, 그리고 근면함으로 칭찬을 받는다.

"My dad was hard on me all the time. If I swung at a bad pitch in Little League, he'd make me run wind sprints when I got home. It was always, I could've done better. But maybe if he wasn't hard on me, I would've gone down the wrong path. He always said, 'Do what I say, not what I do."                                                                                                                                          

   -Rick Ankiel, on his father


14세가 되던 해, 어린 Ankiel은 야구를 그만두고 그냥 친구들처럼 서핑이나 낚시를 하면서 놀고 싶다고 얘기했으나, 이런 푸념을 들어줄 아버지가 아니었다. 아들이 "나는 어차피 메이저리그에 갈 재능은 안되요" 라고 하자 "If you love the game, good things will happen." 이라며 정말 무식하게 아들을 몰아붙였다. 10학년 때, 될성부른 떡잎이라면 지금쯤 고교 야구를 씹어먹고 있어야 할 그 시기에 Ankiel의 패스트볼 구속은 84마일이었다. 야구팀 코치 Messina는 "필드 밖에서 정말 훌륭한 아이지만 그다지 Exceptional 한 선수인지는 모르겠다" 라고 Ankiel을 표현했다. 

Ankiel 이 11학년 때, 갑자기 키가 급성장하면서 몸집이 커졌다. 꼬마였던 Ankiel이 6피트가 넘는 키에서 특유의 다이내믹한 투구폼으로 패스트볼을 꽂자 92마일이 넘게 찍혔다. 무브먼트도 장난이 아니었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모인 한 경기에서 Ankiel은 첫 15타자 중 14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이제야 뭔가 희망이 보였다. 그 경기 이후 Ankiel이 던지는 경기마다 스카우트들이 몰려서 구속을 측정했다. 아버지가 말한 "Good things will happen" 이 실현되는 순간이다. 

아버지의 강압에 못이겨 어쩔 수 없이 야구를 지속했지만 자신의 재능에 대해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Ankiel은 순식간에 그 지역의 자랑으로 떠올랐다. 에이전트 Scott Boras와 계약한 것도 이맘때였다. 한때 Ankiel의 재능을 알아보지 못했던 코치들은 스위치히터였던 Ankiel이 혹시라도 왼팔에 HBP를 당할까봐 이제부터 우타석에 서지 말라고 했다. 가장 좋아했던 것은 아버지였다. 아들이 던지는 경기마다 그의 아버지는 관중석이 아닌 포수 뒤에 자리를 잡고 앉아 "커브를 던져라" "직구를 던져라" Game-Calling을 했다. 한번은 6회까지 노히트를 하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갑자기 "Throw him the funk!" 라고 냅다 소리를 질렀다. Ankiel은 그 말을 듣고 너클볼 (Funk가 Knuckleball 이라고 한다) 을 던졌으나 홈런을 맞았다. 

코치들은 동네 깡패 / 건달 같은 Rick의 아버지가 와서 시끄럽게 구는 것도 모자라 팀 에이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이 못마땅했으나, 또 한편으로는 Ankiel의 아버지였기에 쉽게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 아들 Ankiel은 이런 와중에서도 삼자범퇴로 이닝을 끝낼 때는 혹시라도 칭찬을 들을까 해서 어머니가 앉아있는 관중석보다는 백스톱 뒤의 아버지를 흘깃흘깃 쳐다보며 마운드를 내려왔다.  

1997년, 고등학교 마지막 야구시즌이 끝나고 Rick Ankiel은 USA Today 선정 올 해의 고교 선수 (High School Player of the Year) 로 선정되었다. 그의 마지막 고교 시즌 성적은 11승 1패 평균자책 0.47, 74이닝 162탈삼진이었다. 


배우 Zach Efron을 닮았다는 의견도 있다.

1997년 드래프트에서 Ankiel을 2라운드 20픽, 전체 72번으로 뽑은 Cardinals가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접근해왔다. 2년 전만 해도 Ankiel은 University of Miami 진학이 최종 목표였으나, 패스트볼 구속과 함께 그의 기대치도 높아진 상황이었다. Scott Boras는 Ankiel이 마치 당장이라도 Miami 대학에 진학할 것처럼 Letter of Intent를 작성해 Cardinals의 애를 태웠고, 결국 $2.5M의 계약금을 받으며 계약한다. 프로 데뷔 전에 받는 계약금으로는 당시 역대 5위에 랭크되는 정도의 큰 규모였다. 

Ankiel과 계약이 성사된 후, Cardinals는 아직 고등학생에 불과한 Ankiel을 홈 구장으로 불러 클럽 하우스를 구경시켜주고, 그의 이름이 적힌 유니폼을 선사했다. 그리고 그가 곧 서게 될 Busch Stadium 마운드에 서서 공을 던지게 했다. Tony La Russa, Dave Duncan은 물론 프론트 직원들부터 구장 잔디 관리인들까지 다들 나와서 이 열 여덟살 짜리 투수가 시범 피칭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포수의 미트에 공이 Pop! 하고 꽂히며 모두들 그의 구위에 경악했다. 95마일의 구속도 구속이었지만, 부드러운 투구폼과 플레이트 근처에서의 매서운 무브먼트, 그리고 우타자 바깥쪽 낮게 떨어지는 싱커는 이미 아마추어 수준이 아니었다. 그 날부터 Ankiel은 Cardinals의 금송아지였다.

"They got excited because a lefty like that comes up once in a millenium. He was the real deal, and the world, the entire world, was Rick Ankiel's, blowing away the game with that arm born and bred in the Florida sun, able to do whatever he wanted to do whevnever he wanted to do it and nothing more Wild West in all of sports, a pitcher on a mound simply blessed with it."

 -Excerpt from 3 Nights in August, page 77

Rick Ankiel's Minor League Track Record

YearAgeTmLgLevWLERAGSCGSHOIPHERHRBBSOHBPWPWHIPHR/9BB/9SO/9SO/BB
1998182 Teams2 LgsA+-A1262.632810161.01064785022214110.9690.42.812.44.44
199818PeoriaMIDWA302.0670035.015801241210.7710.03.110.53.42
199818Prince WilliamCARLA+962.792110126.0913983818112101.0240.62.712.94.76
1999192 Teams2 LgsAAA-AA1332.352411137.29836962194961.1620.64.112.73.13
199919ArkansasTLAA600.9181149.125521675200.8310.42.913.74.69
199919MemphisPCLAAA733.16160088.17331746119761.3470.74.712.12.59

Ankiel의 마이너리그 시절은 그다지 언급할 부분이 없다. 너무 짧았고, 너무 일방적이었다. 흔히 말하는 "마이너리그에서 스스로를 다듬는 시간들" "교정" "세련" 이런 단어들은 Ankiel의 사전에 없었다. 그냥 Ankiel은 있는 그대로 압도적이었다. 첫 프로팀이었던 Peoria를 단 7경기만에 졸업. 이후 나머지 시즌은 A+ 레벨에서 126이닝 181탈삼진을 기록한다. 1999시즌은 AA레벨의 Arkansas에서 출발했는데, 8경기 49.1이닝 5실점이었다. AAA로 안보내기도 힘든 성적이다. 넘어져봐야 일어날 줄도 아는데, Ankiel은 차마 넘어질까 하는 우려를 표시하기가 민망할 정도로 빠르게 달려나가고 있었다. 

보통 프로에 첫 입문해 고달픈 마이너리그 생활을 시작하는 어린 선수들, 특히 대학을 맛보지 않고 프로로 직행한 고졸 선수들은 고향과 가족, 친구들을 그리워하며 정신적으로 힘들어하게 마련이다. 강압적이었던 아버지와 결코 행복하지 못한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일까. Ankiel은 집을 떠나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마냥 즐거웠다. 매 경기 사람들은 그의 놀라운 구위에 감탄과 칭찬을 연발했고, 함께 마이너리그에 입문한 1라운더 Adam Kennedy 등 동료 선수들도 그저 Ankiel에게 좋은 말밖에 해주질 않았다. 

Cardinals는 Ankiel의 어마어마한 성장 속도에 불안함을 느꼈고, 이에 경기당 투구수 100개의 제한을 두었다. 마이너리그 투수코치들은 Ankiel에게 팔꿈치에 무리가 가는 슬라이더를 가르쳐주면 안된다는 지령을 받았고, 이런 정도의 관심을 받는 투수를 함부로 조련하려고 하는 코치들은 아무도 없었다. Ankiel이 혹시라도 어이없는 폭투 (마이너리그 성적에서도 유난히 폭투가 많은 것을 보실 수 있다)를 던진 뒤 자문을 구하면, 코치들은 "그냥 하던대로 해라 잘하고 있으니" 라며 넘겼다. Ankiel이 답답해서 재차 물어보면 그들은 "우린 널 건드리면 안돼" ('I'm not allowed to mess with you") 라고 대답했고, Ankiel은 그제서야 자신을 향한 구단의 특별대우의 이면에 그림자가 있음을 알게 되지만, 19살의 Ankiel이 그렇다고 질주를 멈출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 해 그는 마이너리그 탈삼진 1위 타이틀과 함께 Player of the Year 상을 수상했고, 올스타전에 선발로 등판했다. 1999시즌을 앞두고 Baseball America 는 Ankiel을 전미 유망주 랭킹 2위에 올랐다.

마이너리그에서 어떤 조련도 받지 않은 Ankiel은 키가 조금 더 컸을 뿐이지 사실상 Port St. Lucie 고등학교 시절과 투수로써의 기량이 거의 다를 바가 없는 상태에서 메이저리그 콜업을 받는다.

"If you've got a race car that's leading the Daytona 500, you don't bring it in for a tune-up. All we did was fine-tune a couple of things with his motion, but nothing major. We have a pitch count for all pitchers in the minor leagues."

-Mike Jorgensen, the Cardinals' director of player development (1999)


Pitching Mechanic

유일하게 아버지 Ankiel이 아들 Ankiel에게 전수한 것들 중 좋은 것이 있다면 바로 그의 투구폼인데, 사실 이 부분도 따져보면 악영향이 더 크다. Ankiel이 성공 가도를 달리던 시절에도 그의 제구는 결코 좋은 편이 아니었는데 (2000시즌 BB/9 = 4.63, 1999시즌 BB/9= 4.1), 이는 그의 딜리버리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간지가 나는 딜리버리 치고 문제없는 경우를 거의 못보지 않았는가. Ankiel 역시 마찬가지이다. 위 Ankiel의 투구폼 사진을 참조하시면, Ankiel은 투구시 앞발 (Front-foot, 즉 오른발) 보다 머리가 먼저 타자쪽으로 나가는 (Out), 소위 Out-in-front 증상을 보이고 있으며, 이 증상은 Tim Lincecum에게도 종종 볼 수 있다. 몸은 아직 준비가 안되어 있는데 머리가 먼저 예전 Okajima 마냥 3루 쪽으로 가고 있으니, 당연히 Pitching Arm이 앞으로 차근차근 나오지 못하고 급작스럽게 나오게 되고 릴리즈 포인트가 굉장히 높아진다. 무게 중심의 이동이 부드럽지 못하니 팔꿈치, 어깨에 무리가 가는 것은 당연하거니와, 릴리즈 포인트가 너무 앞에서 형성되거나 높이 형성되면서 포수 머리 위, 혹은 바닥에 패대기 치는 듯한 공이 나올 수밖에 없다. 실제로 마이너리그에서나 빅 리그 데뷔 이후에나 Ankiel은 릴리즈포인트가 흔들릴 경우 포수 머리 위로 던지는 폭투의 비율이 다른 투수들에 비해 월등히 높았는데, (Ankiel 본인도 인정한 부분이다) 이는 부드러운 듯 보이지만 사실은 팔 스윙이 너무 급작스럽게 이뤄지는 그의 투구폼 탓이 컸다. 

설령 포스트시즌에서의 Melt-down이 없었더라도 이런 투구폼으로 그가 롱런을 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으며, 필자도 동의하는 부분이다. 피칭 메카닉에 대한 심도있는 이해가 바탕이 된 코치들이 용기있게 쓴 소리를 해주었다면 Ankiel의 데뷔가 좀 늦어질 지 언정 조금 더 투수로 오래 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Call-Up

"최대한 그에게 압박을 주지 않으며 천천히 콜업할 것" 이라는 한 구단 관계자의 말이 무색하게 Ankiel은 1999년 8월 23일, 만 20세의 나이로 ML 마운드를 밟았고, Adrian Beltre를 제치고 리그 최연소 선수로 등재된다 (2위는 벨트레). 데뷔전 상대는 묘하게 외인구단 느낌을 주던 추억의 팀 Expos 였는데, 선발로 등판한 그는 괴수(V. Guerrero) 에게 솔로홈런을 허용하긴 했으나 5이닝 5피안타 3실점으로 무난히 데뷔전을 마쳤고, 이후 4차례 정도 더 선발 등판을 한 뒤 불펜에서 시즌을 마감했다. 평균자책 3.27에 33이닝 39탈삼진. 약간의 제구불안이 있긴 했지만 선발 로테이션에 들어가기에 충분히 합격점인 투구였다. 

아들 Ankiel이 찬란하게 데뷔하던 이 시기, 아버지 Ankiel은 다시 한 번 체포당했다. Florida에서 멀지 않은 섬나라 Bahamas의 마약 밀매단과 연계되어 있던 Ankiel의 아버지는 마리화나와 코카인을 (미국 시장에 유포할 목적으로) 소지한 혐의로 1999년 시즌 도중에 검찰에 기소되었다. 이 때 최대 80년형의 징역과 $4M의 벌금형을 선고받게 되면서 Ankiel의 어머니는 남편과 이혼하게 된다. 이제 막 피어나려는 20살짜리 어린 투수에게, 그것도 전미 최고의 유망주 투수의 아버지가 State도 아니고 연방 검찰에 구속되었으니 언론이 가만 있지를 많았다. 

슬프게도 Ankiel은 이런 관심들이 익숙했다. 마운드에서 본인이 흔들리지 않으면 이런 일들은 결국 지나갈 것이라는게 Ankiel의 비정상적으로 강인한 정신력이었다. 자라는 내내 "너의 아버지는 뭐하는 분이시니?" "왜 너네 집 앞에는 경찰차가 와있니?" 같은 질문들에 익숙해져있던 Ankiel은 아버지의 옥살이와 부모님의 이혼, 가족의 분열 (형과 누나도 뿔뿔히 흩어졌다) 을 그저 삼켜버렸다. 가슴 복받치는 자신의 풀타임 첫 정규시즌 개막전을 한 달 여 앞둔 2000년 3월, Ankiel은 아버지 Ankiel의 재판을 위해 Florida 연방 법원에 출두해서 그의 아버지가 징역 6년형을 받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한 달 후, 4만여 관중 앞에서 당당히 Cardinals 로테이션의 일원으로 선발 등판을 했다. 아버지와 가족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어린 투수답지 않게, 마운드 위에서 Ankiel은 흔들리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재능있는 투수들 특유의 보기좋은 건방진 아우라까지 풍겼다.

씁쓸하게도 "마운드 위에서 감정을 컨트롤하라" 는 그의 아버지가 Ankiel을 코치하면서 가장 강조하던 부분이었다. 


2000년 NL Central 우승을 확정 짓고.

2000시즌

드디어 정식 발매된 Ankiel의 황금팔은 확실히 강력했다. Ankiel은 시즌 첫 선발 등판 Brewers전에서 6이닝 10K 2실점 승리를 따내면서 쾌조의 출발을 했고, Coors Field에서 3피홈런을 맞으며 주춤했으나 이후 Padres전 5이닝 무실점, Brewers 전 7이닝 무실점을 잇따라 승리투수가 되었다. 5월 13일에는 한국 야구팬들에게 잘 알려진 박찬호와의 맞대결을 펼쳤는데, 당시 박찬호가 워낙 잘 던져서 (8이닝 1실점 12K) 묻히긴 했지만 7이닝동안 무려 118구를 던지면서 4피안타 9K 무실점을 기록한 Ankiel 역시 칭찬받을만 했다. (언론은 앞날이 창창한 두 젊은 투수들의 Pitcher's Duel로 관심을 모았으나, 사실 정말 관심가는 부분은 나란히 고질적 제구 불안병을 앓고 있는 두 투수가 도대체 몇 구나 던질 것인지였다.)

Ankiel의 구위는 베테랑 포수 Mike Matheny와의 호흡이 부드러워지면서 더더욱 강화되었다. 어린 투수들의 응석을 받아주지 않던 Matheny는 구위를 제외하고는 모든 면에서 부족했던 Ankiel에게 딱 맞는 포수였다. 그는 리그 내에서 가장 뛰어난 블로킹 능력을 지녔기에 Ankiel의 제구 불안 데미지를 최소화 할 수 있었고, Ankiel의 구위와 구질에 대해서 투수 본인보다 훨씬 뛰어난 이해도를 지니고 있었다. 5월 7일 Reds전에서 Ankiel이 5이닝만에 볼넷 4개 폭투 4개를 기록하며 유난히 "Wild' 했던 날, Matheny는 플레이프 앞에서 흙을 튀기는Ankiel의 원바운드 공들을 전부 막아내고 마운드에 올라가 "내가 다 막을 테니 넌 똑바로 던지기만 해라" 라고 말했다. 다음 경기에서 Ankiel은 Matheny의 리드를 그대로 따르며 7이닝 무실점을 기록한다 (박찬호 경기.) 이어서 6월 20일, Ankiel은 당시 Jeff Kent와 Barry Bonds를 위시한 Giants 강타선을 상대로 6이닝 8K 2실점의 압도적인 피칭을 하고 승리투수가 된다. 당시 Giants 감독이었던 Dusty Baker는 "저런 20살 짜리는 흔하지 않다. 20살에 저 정도라면 앞으론 대체 뭘 이루려고 하는가" 며 상대팀 신인을 칭찬했다.

Ankiel의 피칭 레퍼토리는 93-95마일의 패스트볼, 그리고 88~90마일에서 형성되었던 싱커, 그리고 마이너리그에서 수많은 탈삼진을 솎아내게 해준 그의 플러스 커브였다. 특히 우타자들은 5마일의 구속 차이와 함께 탁월한 무브먼트를 동반한 그의 싱커에 타이밍을 맞추지 못했으며, 어느 카운트에서나 낙차 큰 커브가 아웃피치로 들어올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Ankiel 공략을 굉장히 힘겨워했다. (2000시즌 우타자 상대 피안타율 .213) TLR은 Ankiel이 장기적으로 체인지업만 장착한다면 리그를 오랜 기간 지배할 선수라고 표현했고, 이는 결코 과찬이 아니었다.

정규시즌 후반기, Ankiel을 제외하면 대부분 노땅들로 채워진 Cardinals 로테이션은 슬슬 힘에 부쳐하기 시작했다. 팀내 최고령 투수이자 6'6피트의 장신이었던 Andy Benes는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후반기 컨디션이 이미 정상이 아니었고, 노장 Pat Hentgen는 8월이 되자 체력적인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Garret Stephenson 는 8월달에 혼자 4승 평균자책 2.63을 기록했으나 9월달이 되자 피로 누적으로 차차 구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정규시즌 마지막 한 달간, 사실상 Cardinals 로테이션은 Darryl Kile-Rick Ankiel 두 투수가 이끌기 시작했다.  그리고 Ankiel 은 신인답지 않게 시즌이 진행될수록 더 구위와 제구가 나아지며 구단의 기대에 부응했다. 그는 최종 7경기에서 4승 무패 평균자책 1.97. 45.2이닝 54탈삼진을 기록했고 이 기간동안 팀은 6경기를 이겼다. (평균 103구, 경기당 6.2이닝). 

정규시즌 종료 후 Ankiel의 성적은 11승 7패 평균자책 3.50, 175이닝 194K. 신인왕 투표에서 그는 Braves의 Rafael Furcal에 이어서 2위에 올랐다. 만 20세 시즌에 규정이닝을 소화하면서 K/9이 9.0을 넘었던 투수는 (그 때까지) 역사상 단 2명에 불과했다. (1984년 Dwight Gooden, 2000년 Rick Ankiel)

Ankiel's Last 5 Games (2000)

DateOppIPHRERBBSOERAPitStrStLStSGBFB
SeptemberOppIPHRERBBSOERAPitStrStLStSGBFB
Sep 3NYM7.0211583.8011166221249
Sep 8@MIL6.0411253.7110664171179
Sep 13@PIT6.27420113.6710671161488
Sep 20HOU7.0432283.6210159121488
Sep 27@SDP6.0500283.5096601715410
175.01378068901943.50


순식간에 조롱거리로 전락하기에 그의 재능은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그 날 (2000년 10월 3일) - NLDS Game 1

Atlanta Braves와의 NLDS를 앞둔 상황, TLR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5인 로테이션에서 건강한 투수는 20승을 올린 에이스 Kile와 약관의 신인 Ankiel 달랑 2명 뿐이었고, 이들에게 많은 경기를 맡기고 싶어하는 것은 5전3승제 단기전을 앞두고 감독으로써 당연한 어프로치였다. 게다가 Ankiel은 4일 휴식을 줘야했지만 Darryl Kile은 3일 휴식으로 등판할 수 있었다. 즉 (정상적인 로테이션 순서대로) Kile이 1차전, Ankiel이 2차전을 던질 경우 Ankiel은 시리즈에 한 번 밖에 나올 수 없지만, Kile이 2차전을 던지고 Ankiel이 1차전을 던지게 된다면 이 시리즈에서 두 투수를 2번 쓸 수 있다는 소리였다. 정규시즌 마지막 한 달간 Ankiel 이 보여준 모습까지 감안했을 때, TLR의 결정은 "도박" 이라고 불리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TLR은 전국에 중계되는 첫 포스트시즌 선발이 이 젊은 투수에게 어떤 중압감으로 다가올 지에 대해 충분히 경계하고 있었다. 게다가 상대 투수는 지난 10년간 리그를 지배했던 베테랑 Greg Maddux. 호들갑을 떨만한 이유가 충분했다. 시리즈가 시작하기 전날, TLR은 불펜 피칭을 하고 나오는 Ankiel을 재빨리 언론 접촉없이 클럽하우스에서 내보냈다.  그리고 베테랑 투수 Kile에게 인터뷰실로 들어가서 마치 그가 당연히 1차전을 던지는 양 언론을 상대하도록 했다. Kile은 당시 기자들의 질문에 충실히 대답하면서도 단 한 차례도 자신이 1차전에 던질 것이라는 언급을 하지 않았다. 언론에서도 이미 Kile이 1차전을 던질 것이라는 게 너무 당연했기에 물어보지 않은 것이다. 인터뷰가 다 끝나고 미디어팀이 철수하자 그제서야 TLR은 1차전 선발이 Ankiel임을 발표했다. 수많은 리포터들이 그 날 TLR에게 얼마나 욕을 퍼부었을지 자명하다.

TLR의 머릿속이 복잡한 이유는 하나 더 있었다. NLDS가 열리기 며칠 전인 9월 28일, Darryl Kile의 정규시즌 20승 경기가 있었던 바로 그 날, 주전 포수 Mike Matheny가 생일 선물로 받은 사냥용 칼 (Hunting Knife) 을 잘못 놀려 자기 손을 크게 베어버리고 만 것이다. (MM의 생일은 9월 22일이다.) 이 부상으로 인해 정규시즌 잔여 경기는 물론 Matheny의 플레이오프 출장 기회도 날아가버렸다. 투수 리드와 호흡에 있어서 Ankiel에게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짝꿍이던 Matheny가 결장한 것도 문제였지만, 제구가 불안한 Ankiel과 등 부상으로 인해 활동폭이 좁던 포수 Carlos Hernandez의 조합은 결코 이상적이지 않았다. 


Hernandez가 아닌 Matheny였다면, 뭔가 달랐을까?


Braves와의 1차전이 시작했고, 마운드에 Ankiel이 올랐다. 1회 2사 후 Chipper Jones와 Andres Galarraga에게 연속 볼넷을 허용했지만 Brian Jordan을 파울 플라이로 잡아내면서 무실점. 주자를 3명이나 허용하긴 했으나 뭐 경기 초반 Ankiel의 제구 난조가 그다지 특별할 일은 없었다. 오히려 1회말 Cards 타선이 Maddux를 상대로 타자일순하며 6득점한게 더 신기할 일이었다. TLR은 훗날 이 날 Maddux를 상대로 뽑아낸 6득점은 "말도 안되는 숫자 ("Crooked Number") 라고 회상했다.

2회에도 Reggie Sanders를 삼진으로 잡으면서 시작한 Ankiel은 무실점으로 무사히 이닝을 마쳤다. 그리고 마의 3회... 

Score Out RoB Pit(cnt) R/O @Bat Batter Pitcher wWPA wWE Play Description
0-6 0 --- 4,(3-0)  ATL G. Maddux R. Ankiel -2% 91% Walk
0-6 0 1-- 4,(1-2)  O ATL R. Furcal R. Ankiel 2% 93% Foul Flyball: 1B
0-6 1 1-- 2,(0-1)  ATL A. Jones R. Ankiel -0% 92% Wild Pitch; Maddux to 2B
0-6 1 -2- 4,(2-1)  ATL A. Jones R. Ankiel -1% 92% Wild Pitch; Maddux to 3B
0-6 1 --3 5,(3-1)  ATL A. Jones R. Ankiel -2% 90% Walk
0-6 1 1-3 5,(2-2)  ATL C. Jones R. Ankiel -1% 89% Wild Pitch; Jones to 2B
0-6 1 -23 7,(3-2)  O ATL C. Jones R. Ankiel 3% 93% Strikeout Looking
0-6 2 -23 7,(3-2)  R ATL A. Galarraga R. Ankiel -3% 90% Walk; Maddux Scores/Wild Pitch; Jones to 3B
1-6 2 1-3 1,(0-0)  R ATL B. Jordan R. Ankiel -4% 85% Single to LF; Jones Scores; Galarraga to 2B
2-6 2 12- 3,(1-1)  ATL R. Sanders R. Ankiel -1% 84% Wild Pitch; Galarraga to 3B; Jordan to 2B
2-6 2 -23 5,(3-1)  ATL R. Sanders R. Ankiel -1% 82% Walk
2-6 2 123 2,(0-1)  RR ATL W. Weiss R. Ankiel -12% 71% Single to LF; Galarraga Scores; Jordan Scores; Sanders to 2B
Provided by Baseball-Reference.com: View Original Table
Generated 2/6/2014.

강판된 후 덕아웃으로 돌아온 Ankiel에게 아무도 위로의 말을 쉽게 건내지 못했다. Ankiel은 Andy Benes에게 다가가 "A joke. You've got to laugh." 라며 자신이 저질러놓고도 도대체 믿을 수가 없는 이 상황에 허탈해했다. 이 때만해도 Ankiel의 투수로써의 커리어가 이 경기를 기점으로 사실상 재생 불가능 상황이 될 것이라고 상상한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Mets와의 NLCS를 앞두고 Ankiel은 자신의 문제가 투구폼 관련된 Mechanical한 문제라며 이제 해결책을 찾았다고 이야기했다. NLCS 2차전에 Ankiel이 등판했고, 초구 91마일 패스트볼이 상대 타자 Timo Perez의 머리를 향했다 (Perez는 가까스로 피했다). 삼진-볼넷-폭투-볼넷-희생플라이-볼넷-2루타. 20구 중 5개가 포수 뒤로 날아갔다. Duncan 은 볼만큼 봤다고 생각했는지 Ankiel을 내렸는데, 질책성이라기보다는 보호 차원의 강판이었다. Duncan은 경기 후 지금 Ankiel에게 필요한 것은 쉽게 한 이닝을 던지고 감을 회복하는 것 ( "have a nice easy inning and probably get back on track") 이라고 얘기했고, Low-leverage 상황에서 Ankiel을 등판시켜 감각을 회복하도록 도와주기로 한다. 시리즈 최종전인 NLCS 5차전 7회, 0:6으로 크게 뒤져 있던 상황에서 Ankiel이 올라왔다. 볼넷-번트-삼진-폭투-폭투-볼넷. 

시리즈가 끝난 후 Rick Ankiel은 감옥에 있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경기를 본 아버지는 아들에게 다쳤냐고 물어봤고, 아들은 괜찮다고 대답하자 이에 "아니 그럼 대체 뭐하는 짓이야!" 라고 말했다. 이 경기를 TV로 지겨보던 Ankiel의 고등학교 팀 투수코치 Charlie Frazier는 "Ankiel에게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Mechanical한 문제들이 많았으며, 딜리버리 막판의 Follow-Through 단계에서 몸을 꼿꼿이 세우고 있었다" 며 어이없어했다. 동영상을 보시면 릴리즈 포인트에 신경을 쓰고 있던 Ankiel 의 상체가 부자연스럽게 거의 직선으로 서있는 모습을 보실 수 있다. 동영상 링크 


그 날이 있던 후 Ankiel이 웃고 있는 사진을 찾는 것은 굉장히 힘들어졌다.


"I never saw him lose his motion like that before. I saw mechanical flaws. He was throwing across his body; he was standing up in his follow-through. I asked him what his pitching coaches told him. He said, "They don't tell me anything!"

-Charlie Frazier, Ankiel's high-school pitching coach

NLCS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 Ankiel에게 Boras가 연락이 왔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Florida를 떠난 적이 없는 Ankiel에게 그는 "지금 당장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캘리포니아로 떠나라"고 설득했다. 다른 곳에 가서 머리를 식히라는 것 빼고는 딱히 어떤 이유가 있지는 않았다. Boras는 Ankiel에게 "모든 것을 그대로 놔두고 그냥 떠나라. 내가 도와주겠다" 고 했다. Ankiel은 잠시 Florida 집에 들려 짐을 싼 뒤 그 길로 Boras의 사무실이 있던 캘리포니아 Newport Beach로 떠났다. 마이너리그 때부터 같이 올라온 드래프트 동기 Adam Kennedy (당시 Angels로 이미 옮겨가있던) 가 기꺼이 숙소를 제공했다. 둘은 야구 관련된 일은 일체 하지 않았으며, 바닷가에서 조용히 휴식을 취했다. Ankiel은 이 기간 동안 자신의 멘토이기도 했던 Darryl Kile과만 꾸준히 연락했을 뿐 은둔한 상태로 5주를 보냈다. 

5주간의 휴식이 지나고 12월 중순 Ankiel이 Florida로 다시 돌아왔을 때, 그의 연락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 스포츠 심리학계의 거장인 Harvey Dorfman 박사였다. Dorfman은 3일간 심도있게 Ankiel의 어린 시절과 그를 둘러싼 공포들, 무의식을 분석하기 위해 상담했다. Dorfman 박사와 Ankiel의 두터운 관계는 이 때부터 시작되었다.

"...there's a lot of things in his life that could have triggered what happened in the playoffs. You're raised in that kind of environment, anything can happen. He's a very sensitive guy, and he had to be mature awfully quick. These things can have a very calamitous potential . I've seen it happen to other players where it became career threatening. So the best thing we can do is listen, understand and cover all of the possibilities."        

-Scott Boras, on Rick Ankiel's recovery (2001)

2001년 4월 8일, Ankiel은 Chase Field 원정에서 Randy Johnson과 D-Backs 라인업을 상대로 시즌 첫 등판을 치루었다. 1회 Matt Williams에게 투런 홈런을 맞았으며, 제구불안 문제도 여전했다. 그러나 전반적인 구위에 있어서 만큼은 Ankiel은 예전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5회에는 세 타자를 모두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기세등등했고, 6회에 투구수 100개를 채우고 강판되었다. 5이닝 3피안타 3볼넷 2실점 8탈삼진. Cardinals는 Big Unit을 상대로 홈런 3개 포함 11안타를 쳤다. 9:4 승리. Ankiel의 커리어 마지막 선발승이었다. 

그러나 이 경기 이후 Ankiel 이 보여준 모습은 2000년 플레이오프와 비슷했다. 도저히 봐주기가 힘들 정도로 아무데로나 가는 공들. 잦은 폭투. 24이닝에서 볼넷 25개, 폭투 5개, 사사구 3개. 2001년 5월 홈에서 Pirates 상대로 등판한 Ankiel은 Pat Meares를 상대로 다시 포수 뒤 스크린에다가 공을 던졌다. Duncan이 올라오자 Ankiel은 고개를 떨구었다.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Cardinals 구단 측에서는 Ankiel의 커리어를 "리셋" 하겠다는 의도로 그를 루키리그로 보냈고, 세간의 관심이 없는 이 곳에서 Ankiel은 신기할만큼 빠르게 영점을 잡았다. 그리고 제구가 되는 이상 ML에서 이닝당 한 개 이상의 삼진을 잡아내던 Ankiel의 구위는 루키리그 타자들이 건드릴만한 것이 아니었다. 14경기에서 87.2이닝동안 탈삼진 158개 (K/9 = 16.2) 평균자책 1.33. 이 정도면 괜찮다 싶어서 Memphis로 승격시키자 다시 병이 도졌다. 4.1이닝동안 3피안타, 17볼넷, 10실점, 폭투 12개. 공이 미친듯이 백스톱 뒤로 날아가자 상대적으로 작은 마이너리그 구장에서 관중들의 웃음소리가 Ankiel의 귀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것이다.



2004년, TJS를 받고 돌아온 Ankiel에게 아직도 Cardinals는 희망을 놓지 않고 않았다. A+ 볼에서 시즌을 시작한 Ankiel은 3차례의 선발 등판에서 8.2이닝 0볼넷 11탈삼진을 기록했고, AA볼로 승격된 이후에는 2경기에 걸쳐 9이닝 3피안타 1실점 2볼넷을 기록했다. 이어서 Memphis로 올라와서 선발 등판한 경기에서는 6이닝 1피안타 1실점. 역시 볼넷은 없었다. "그 날" 이 있기 전에도 Ankiel이 마이너리그에서 이렇게까지 좋은 제구력을 보여준 적은 없었다. 드라마틱한 부활이 가시권에 있었다.

2004년 9월 7일, Ankiel이 무려 3년 6개월만에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섰다. 1이닝 무실점. 15구 중 12구가 스트라이크였다. 4일 후 Dodgers 전에 다시 구원등판한 그는 19구 중 14구를 스트라이크 존에 꽂았다. 9월 19일에는 재앙이 시작되었던 Busch Stadium 마운드에 참으로 오랜만에 섰고, 관중들은 돌아온 Ankiel을 기립박수로 환영했다. 2이닝 4K 무실점. 5차례의 등판에서 10이닝을 던지는동안 Ankiel은 삼진 9개를 잡고 볼넷은 Chad Tracy에게 내준 한 개가 유일했다. 구속은 3년 전 그의 모습에 비해 확실히 떨어진 90마일 선에 그쳤으나, 커브는 여전히 리그 정상급 낙차를 보였고, 싱커도 여전했다. 

2000시즌 이후 제대로 된 정규시즌을 치루어 본 적이 없는 이 투수는 수년 간의 방황에도 불구하고 아직 24세였다. 오프시즌에 그는 Puerto Rico 에서 열린 윈터리그에서 한층 발전된 모습을 보였고, 구단 수뇌부에서는 Matt Morris 의 자리를 Ankiel이 대신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까지 품기 시작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간신히 ML에서 통할 수 있는 수준의 상태로 기어올라온 Ankiel은 시뮬레이션 피칭에서 Edmonds, Rolen 등 Cardinals 중심타자들을 배팅 케이지에 세워놓고 다시 한 번 "나는 누구고 여긴 또 어딘가" 식의 붕괴를 겪는다. 23구를 던졌으나 스트라이크는 3개. 원바운드성 폭투는 물론이고 배팅 케이지 밖으로 아예 나가는 공도 여러개였다. 2005년 3월, Ankiel은 "더 이상 던지지 않겠다"며 투수 포기를 선언한다. 

Sandy Koufax의 재림은 신기루였다.

"I just lost it right there on the mound. I don't know what I was thinking. I'd go blank before I'd throw the ball, and then after I'd say to myself, 'How the hell did that happen?' It was definitely weird. I mean, I'd been doing it so many times in my life, and suddenly I can't throw a ball?"

-Rick Ankiel, on his melt-down (2001)


2003년 스프링캠프를 앞두고 Walt Jocketty는 Ankiel의 진로를 결정할 순간을 맞이한다.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에 참여시킨 뒤 이후 마이너리그로 보내서 다시 재활하게 하는 것이 잠재적 방안이었는데, 과연 어느 레벨의 마이너리그로 그를 보내느냐는 정해지지 않았다. TLR의 사무실에 Duncan이 찾아와 Jocketty의 결정을 알리자 TLR이 물었다. "무슨 레벨로 가는지에 대해 우리가 어느 정도의 영향력이 있지?" Duncan 이 대답했다. "뭐 어느 정도 input은 있겠지." TLR은 버스 이동거리가 많은 AA 레벨보다 조금 더 이동이 수월한 Memphis로 Ankiel을 보내는 게 어떠냐고 물었다. 그러자 Duncan은 Ankiel을 Double-A 레벨의 Tennessee로 보내는 게 좋겠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덧붙였다. 

"He's 23-years old. He should be in Double-A."

(Excerpt from 3 Nights in August, page 82)


(Part II에서 계속)

자료 출처: Hardball Times, New York Times Magazine, USA Today, Palm Beach Post, STL Post-Dispatch, 3 Nights in August, Baseball-Reference, ESPN, Fangraphs






Posted by Doov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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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ecter 2014.02.07 11:20 Address Modify/Delete Reply

    오늘도 참 잘 읽었습니다. 뭐랄까...그냥 슬프네요. 단지 플레이오프의 중압감 때문에 phenom이 한 경기만에 무너질 수 있는건지 언뜻 이해가 잘 안되었는데, 아버지 얘기 등의 background를 알고 나니 확실히 이해가 갑니다. 아버지의 학대에 가까운 코칭, 그 때문에 그냥 짓눌려져버린 마음(겉으로는 쿨하게 보이지만), 그리고 그런 선수에 대해서 정말 아무 것도 하지 않은 팀까지, 3박자가 아주 골고루 맞았네요. 비슷한 얘기로 Dickey가 생각나네요. Dickey도 어릴 때 성추행 당한 경험이 어른이 되어서까지 머리를 지배했고, 정신과 상담 등을 거치면서 겨우 해방되었죠. 요새 팀들이라면 저런 선수를 절대로 그냥 방치하지는 않을 텐데, 많이 타깝습니다.

    우리는 큰 경기의 중압감에 눌리지 않고 제 실력을 묵묵히 발휘하는 선수들을 더 좋아하지만, 어쩌면 그 선수들의 모습도 허상일 가능성이 높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정말로 mind control에 뛰어나서 consistent한 선수들도 많겠지만, Ankiel처럼 겉으로는 강해 보이지만 어떤 계기로 인해 trigger만 되면 무너질 수 있는 선수들도 많을 거라고 생각되네요.

    2편도 참 기대가 됩니다. 적어도 저는 위의 2000년 10월 3일 경기는 못 보았고, 2편에 나올 2007년의 어느 경기는 라이브로 직접 보았거든요 ㅋㅋ

  2. BlogIcon FreeRedbird 2014.02.07 12:00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3 Nights in August에서도 Ankiel 챕터를 읽으면서 울컥했던 기억이 있는데요. 이 글을 보다보니 다시한번 가슴이 먹먹해지네요. Ankiel은 앞에서 우리가 보았던 Generation K 같은 사이버 괴물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우리는 메이저리그에서 Ankiel의 압도적인 투구를 실제로 보았으니까요. Mark Prior와 함께 2000년대 초반의 가장 아까운 pitching phenom이 아니었던가 합니다. 지금 시각으로 보면 둘 다 투구자세에 심각한 문제가 있지만, 당시에는 그저 다이나믹하고 멋져 보였죠.


    2000년의 팀은 여러 번 언급했지만 저에게는 정말 정말 특별한 존재로 남아 있습니다. 청룡이 트윈스로 바뀐 후 야구에 흥미를 아예 잃고 한동안 거의 보지 않다가 90년대 말 박찬호의 메이저 진출로 메이저리그를 조금씩 메이저리그를 보게 되었는데요. 그런 MLB 라이트팬을 단숨에 하드코어 팬으로 바꿔놓은게 바로 2000 Cardinals였죠. Vina - Renteria - Edmonds - Mac/Clark - Lankford - Tatis - Drew 로 이어지는 말도안되는 사기타선(당시 .880 OPS의 Drew가 7번을 쳤습니다 ㅋ)과 Kile/Ankiel 듀오가 이끄는 투수진이 어찌나 매력적이던지... Big Mac이 중간에 시즌아웃되어 좌절했는데 은퇴 직전의 Will Clark이 갑자기 전성기에도 안보여줬던 똥파워를 과시하며 빈자리를 메꿔주는 모습을 보고는 진짜 우승하나 싶었죠. 그러나, 결과는 잘 아시다시피... 뭐 그렇게 되었습니다.


    어쨌거나 Ankiel이라는 선수를 그때부터 지금까지 보면서 느낀 감정들은 정말 "만감"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듯 합니다. 이건 말로 표현이 잘 안되네요. 2000년 플옵에서의 그 meltdown과 이후의 무수히 많은 컴백 그리고 좌절... 팬으로서 지켜보기도 무척 괴로운 모습들이었는데 선수 본인은 정말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3. BlogIcon jdzinn 2014.02.07 14:21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카즈 팬질하면서 가장 감정이입 했던 선수가 Anikel인데 아마 다른 분들도 많이 그러실 듯합니다. 당시 영상을 거의 10년만에 다시 보니 메카닉이 철저하게 붕괴됐었군요. 선수가 저 지경이면 그 즉시 셧다운시키고 처음부터 꼼꼼하게 다시 시작했어야 하는데 LaDunc를 비롯한 구단 관계자 누구도 어떻게 손써야 하는지를 몰랐던 것 같습니다. BK처럼 차라리 마운드에서 주저앉는 게 낫지 끝까지 표정관리 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참 가슴 아프네요.


    야수 전향 당시 저도 Ankiel 관련 칼럼을 썼는데 뒤적거려보니 아직 남아있군요.

    "푸에르토리코에서 팔꿈치를 다치고 돌아와서 피칭 메카닉을 수정했다. 하지만 난 정말 제대로 해낼 수가 없었다. 그 모든 시간동안 좌절감이 밀려왔다. 나는 정말 그것이 나의 영혼을 망가뜨리고 있다고 느꼈고, 마침내 일상 생활에서의 인성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좌절감... 내가 외야수로 전향해야 하는 시점임이 분명해졌다.

    마운드에 올라 효과적으로 던질 수 없고, 메카닉을 제대로 수행해낼 수 없고, 좌절감에 사로잡혀 야구장 밖에서의 생활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그건 그만한 가치가 없다. 나는 이제 편안해졌고 외야수로 전향했음에 행복하다."

    제가 창작 계통에서 밥 벌어먹고 살다보니 간혹 비슷한 생각을 하곤 합니다. 이때만 해도 앞으론 친구 같은 입장에서 응원해야지 했는데도 헛스윙 몇번에 입 싹 씻은 거 보니 팬질이란 게 참 얄팍하기도 하구요.

  4. BlogIcon jdzinn 2014.02.07 14:31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다른 내용도 길게 댓글로 달았는데 무슨 금칙어가 포함됐다고 리플이 안 달리네요. 문제가 되는 단어도 전혀 없는데 뭐가 금칙어인지나 알려주지...-_-

  5. waino 2014.02.07 17:30 Address Modify/Delete Reply

    학교에서 할 게 없어서 이거 에어컨 까지 전부 읽었네요 ㅋ
    이름만 알고 몰랐던 이야기들 알고 갑니다 ㅋㅋ

  6. BlogIcon jdzinn 2014.02.07 18:49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Pat Neshek은 언제 또 물어왔대요. 우완 릴리버 뎁스 보강은 필요하지만 영 도움이 안 될 무브네요. 마이너리그 계약이라도 좀 괜찮은 매물들이 있을 듯한데.

    • doovy 2014.02.07 19:25 Address Modify/Delete

      포스트시즌 경험있는 베테랑에, 사이드암 우완이라는 희소성에, 전형적인 Mid-West 스타일 캐릭터에 우직한 Work Ethic, 우타자 상태 통산 피안타율 .181... 마이너리그 계약이라면 제 생각엔 Upside가 많은, 꽤나 괜찮은 뎁스 보강 같은데요? 이 선수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아기가 태어나자 마자 사망하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는데 아이 사망 당일날도 경기장으로 출근해서 1이닝 무실점 기록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물론 Neshek이 로스터에 합류한다면 그 말은 현재 젊은 투수들 중 하나가 삐끗한단 말일텐데, 아예 배제할 수는 없는 시나리오죠. 저는 차라리 예전에 Scott Linebrink보다는 나은 무브라고 봅니다 ㅎㅎㅎ

    • BlogIcon jdzinn 2014.02.07 19:40 신고 Address Modify/Delete

      아... 역시 work ethic이 좋은 타입이었군요. 제가 보기엔 슬라이더 원피치에 삼진 못 잡고, 땅볼 유도도 안 되는지라 우투 버전 loogy로 제한하지 않는 이상 리플레이스먼트 레벨 이하의 선수 같은데요. Motte-Martinez 라인을 보강해야 한다고 보는지라 저는 차라리 Linebrink 쪽을 선호합니다ㅎㅎ

    • BlogIcon jdzinn 2014.02.08 05:50 신고 Address Modify/Delete

      원자복탄이 무려 1.1M이나 받고 화이트삭스 갔네요. 제가 생각을 잘못한 듯합니다. Neshek 딜 찬성으로 입장 번복합니다ㅎㅎ

    • lecter 2014.02.08 16:54 Address Modify/Delete

      전 원래 Neshek 계약에 만족이었는데 Boggs 소식 듣고서 더욱 흥분 ㅋㅋㅋ 우완 불펜 중에서 마무리 이름표 단 녀석들은 다들 최소 4~5M 씩은 줘야할 것 같아서 떙기지가 않더군요. Dotel 형님은 어떻게 좀 모셔왔으면 했는데 이분도 마이너리그 계약은 안 할 거 같고...

    • skip 2014.02.08 23:11 Address Modify/Delete

      어짜피 motte 올라오기 전 1달 땜빵자리 노려야 할텐데, 개막 1달 뒤 motte 돌아오면 다시 자리없죠 뭐 ㅎ

      neshek이 좋은 베테랑이라면 옵트아웃 기간 없을 시 gotay 데려와 srod 옆에 붙여주고(물론 아무 효과도 못본 것 같습니다만), 랍좀비 데려와 AAA 투수들에 붙여준거 처럼 높은 확률로 불펜으로 돌아설 몇몇 선수들 케어해줄 역할로 딱이지 않나 싶습니다, 팀이 언젠가부터 이런거 꽤 중시하고 있는지라.

  7. yuhars 2014.02.07 21:40 Address Modify/Delete Reply

    오늘도 정말 즐겁게 읽었습니다. 전 투수일때 엔키엘은 거의 본적이 없어서 타자로서의 기억이 더 많이 남아 있습니다만 후에 엔키엘이 마이너리그에서 투수로서 거둔 성적보고 이게 인간인가 하면서 놀랐던 기억은 있네요. ㅋ 과거 최훈카툰에서 프라이어랑 엔키엘이랑 둘다 같은 컷에 나온적이 있는데 지금은 둘다다 시대를 대표하는 망주가 되었으니 역시 투수의 미래는 알수가 없습니다.

  8. lecter 2014.02.08 16:56 Address Modify/Delete Reply

    BP Top 10이 나왔는데, 10위에 아무도 모르는 녀석 끼워넣는 게 요새 트렌드인가 보군요. O-Wong-Piscotty-Reyes-Gonzales-Kelly-Kaminsky-Grichuk-Cooney에다가 10위는 Vaughn Bryan이랍니다. Rivera는 그래도 이름이라도 들어본 녀석이었지만 얘는 대체;;

    • BlogIcon jdzinn 2014.02.09 03:32 신고 Address Modify/Delete

      브라이언 뽕도 아니고 뽕 브라이언...;;
      작년 35라운더/ 93년생 흑형/ 파워 없고 볼넷도 못 고르는 우타 쌕쌕이 중견수 프로필이네요. 뭥미..

  9. skip 2014.02.08 23:07 Address Modify/Delete Reply

    주말출근+야근+느즈막히 내리는 함박눈 삼종세트 참 죽이네요 으으 ㅠ 계정이 없어 보진 못했지만 뽕은 parks형이 운동신경 죽인다고 극찬했다던데, 그냥 저희가 리스트 만들때 에라 이놈 한번 쌔게 밀어보자, 하던 것과 다를바가 없어 뵙니다. 딱히 우리 팜이 잘 키워내는 스타일 등등 이것저것 감안하고 고심한게 아니라 그냥 쓱 자료들 보다가 자기들 취향 하나 딱 보이니 이거 월척이거니 하며 냅다 꽂아 버린듯. 두사람이 워낙 괴짜기도 하구요.

  10. skip 2014.02.08 23:22 Address Modify/Delete Reply

    2000년은 제가 지금과는 정 반대로 카즈팬이라기 보다 야구팬에 가까웠던 시절인지라 '투수' ankiel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네요. 딱 10년, 10년만 늦게 드래프트 되었어도 저런 사단은 겪지 않았을 텐데 정말 아쉽습니다. 저 당시의 cards는... 맞는 표현일련진 모르겠지만 그냥 old school 팀 그 자체였던 것 같아요. 현재의 팀은 막말로 piscotty 말대로 마인드가 잡힌 선수들만 뽑고 있기도 하지만, 2년 전부터 시작된 cardinal care라는 컨설팅 프로그램은 물론 오프시즌, 스캠 가리지 않고 꾸준히 어린 선수들과 베테랑들을 엮어주고 또 여러 인사들과 비단 야구 뿐 아니라 삶과 미래에 대해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주고 있어서 야구 외적으로도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비단 ankiel이란 천재투수의 안타까운 몰락 뿐 아니라 중간중간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doovy님.

    • gicaesar 2014.02.09 00:12 Address Modify/Delete

      저도 카즈 팬이 된건 03년 이후였고 제대로 경기 보면서 한건 오래되지 않은 입만 살은 팬이라 뭐라 말하기는 어렵습니다만^^;

      그 말씀하신 10년이라는 것도 역사전공을 업으로 삼고 있는 제가 보기에는 아쉬운 만큼 지금 팀의 무형적 유산이 되었던 것도 같네요. 앤킬이나 드류같은, 지금 이 팀과는 어울리지 않는 보석들 제대로 써먹지 못했던 경험이 00년대 중반의 어두웠던(?) 시기를 통해 지금과 같은 철학을 낳은 건이 아닌가 싶구요. doovy 님의 이 멋진 리뷰에 우리가 감동하는 이유가 그런게 상전벽해 같으면서도 또 지금까지 알게모르게 그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어쨌든 AP같이 솔직히 얻어걸린 슈퍼스타 말고, 라즈나 셸비같이 솔직히 완전 탑유망주보다는 좀 떨어지는 애들 말고 앤킬이나 드류같은 최고급 포텐덩어리들 보고 싶은 생각이 가끔 들기는 하지만...지금이 낫기야 당연히 낫겠죠? ㅎ

      아무튼 doovy님의 멋진 글들은 늘 감탄하고 갑니다.

  11. billytk 2014.02.14 17:49 Address Modify/Delete Reply

    저 역시 2000~2001년엔 박빠였기 때문에 엔킬이 그냥 불쌍하다 정도만 생각했더랬죠.
    그리고 기억은 타자로 전향하기 전에 애처로운 구위를 구경한 뒤였으니...


    아, 이 글좀 퍼가겠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