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t Jocketty's Farm System & Draft(3): 1997 Season

(B-Ref 1997 시즌 페이지)


1997년에도 프런트의 주요 인사들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96 시즌에 팀 성적도 좋았고, 팜 시스템 쪽도 그다지 문제가 없었으니 특별히 바꿀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이 무렵부터 John Mozeliak의 이름이 Assistant Director of Scouting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1997 년의 산하 마이너리그 팀은 모두 7개로, A Adv. 레벨에서 변화가 있었다. FSL의 St. Petersburg와 결별하고 대신 CAR의 Prince William Cannons와 계약을 맺은 것이다. Carolina League에도 산하 팀이 있었다는 것은 나도 이 글을 쓰면서 처음 알았다. Virginia 소재의 팀이라니 좀 쌩뚱맞은 느낌인데, 뭐 State College같이 더 북쪽에도 affiliation을 두곤 하니까... 유사시 콜업할 수 있는 AAA나 AA 팀은 가까운 곳에 두는게 좋다고 생각하는데, 싱글A 레벨은 솔직히 어디에 있어도 별 차이가 없을 듯하다. 참고로 Prince William Cannons는 현재 Potomac Nationals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Nats 산하에 있다.


AAA :  Louisville Redbirds (American Association)

AA : Arkansas Travelers (Texas League)

A+ : Prince William Cannons (Carolina League)

A : Peoria Chiefs (Midwest League)

A- : New Jersey Cardinals (NY-Penn League)

R : Johnson City Cardinals (Appy League), DSL Cardinals(DSL)




1996-1997 오프시즌의 BA Cardinals TOP 10 리스트는 아래와 같았다.

(괄호 안은 전미 TOP 100 리스트 순위)


1. Dmitri Young, 1b (29)

2. Matt Morris, rhp (25)

3. Eli Marrero, c (37)

4. Braden Looper, rhp (32)

5. Manny Aybar, rhp (68)

6. Brent Butler, ss

7. Eric Ludwick, rhp

8. Jason Woolf, ss

9. Blake Stein, rhp

10. Luis Ordaz, ss


BA Organization Talent Ranking: 9위


이 드래프트도 전년도와 마찬가지로 Marty Maier가 지휘하였다. 다음 글에서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Maier는 이 시즌 후 다른 구단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팀 TOP 10 순위와 전체 TOP 100 순위 간에 약간의 불일치가 발생하는 모습이 보인다. 큰 차이는 아니지만, 팀내 1위인 Young보다 2위인 Morris가 전체 순위에서는 앞서 있고, 3, 4위도 마찬가지이다. TOP 100에 5명이나 들어가 있고 40위 안에 4명이나 있는데도 팜 랭킹이 9위밖에 안되는 것도 좀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고... 이 시즌 랭킹은 뭔가 엉성해 보인다.


어쨌거나... 폭망의 길로 가는 듯하던 Dmitri Young이 96년 22세의 나이로 AA에서 .333/.378/.534 라는 훌륭한 성적을 거두며 다시 A급 유망주로 평가받게 되었다. Young은 이미 96시즌 말미에 콜업되어 빅리그 맛을 본 상태였고, 97년에는 준 주전으로 자리잡게 된다. 그러나 그가 유망주 시절의 잠재력을 빅리그에서 폭발시키는 것은 이후 Reds로 트레이드 된 뒤의 일이다.


Morris도 첫 풀 시즌을 AA에서 보내며 3.88 ERA, 2.6 BB/9, 6.5 K/9의 준수한 성적을 기록했고, 이미 메이저에 자리잡은 Alan Benes와 함께 차세대 영건으로 더욱 자리를 굳히고 있었다. 여기에 그동안 안터지는 툴가이였던 Eli Marrero까지 AA에서 .270/.336/.484, 19홈런으로 마침내 폭발하여, Cards는 매우 인상적인 유망주 트리오를 보유한 팀이 되었다.


여기에 전년도 전체 3순위 지명자였던 Looper가 또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96년에 정규 게임을 뛴 기록은 없지만, 워낙 높은 평가를 받던 대졸 신인이었으니 이정도 순위는 당연해 보인다. Looper는 97 시즌을 A+ 레벨의 Prince William에서 시작했는데, 12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4.48 ERA, 8.1 K/9, 3.5 BB/9를 기록하고는 AA로 승격되었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결정이 있었는데, 구단이 90마일대 중후반의 패스트볼을 보유한 Looper를 클로저로 키우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Arkansas에서는 릴리버로만 뛰었고, 비록 ERA가 5.91로 치솟긴 했으나 여전히 8.4 K/9를 기록하여 좋은 구위를 보였다. 요즘 같으면 전체 3순위 픽을 반 년 만에 클로저로 전환시키는 바보같은 결정은 내리지 않겠지만, 당시만 해도 클로저가 엄청나게 고평가를 받던 시절이었다.


5위의 Manny Aybar는 도미니카 출신의 유망주였는데, 96년 AA Arkansas에서 선발로 뛰며 3.05 ERA, 6.2 K/9, 2.5 BB/9의 준수한 성적을 올리고 전국구 유망주가 되었다. Young, Morris, Marrero, Aybar가 모두 같이 뛰었던 96년 Arkansas는 요즘같으면 정말 유망주 매니아들을 열광시켰을 팀이다. 이후 Aybar는 6위의 Butler와 함께 Darryl Kile 트레이드로 이적한다. 그리고 몇 년이 더 지난 뒤, 2006년 시즌 전에 Aybar는 KBO의 LG 트윈스와 계약하였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Eric Ludwick은 Jocketty의 망작 트레이드였던 Bernard Gilkey 딜 때 넘어온 유망주인데, 이후 9위의 Blake Stain과 함께 Big Mac 트레이드 때 다시 이적하여 그것으로 이름을 남기게 된다. -_-


전체적으로 투/타 균형이 잘 맞아 있고, 야수들도 Young을 빼고는 모두 유격수여서 팜의 상태가 매우 좋아 보인다. 이런 팜이 9위밖에 안되다니 정말 믿을 수가 없다.



1997 Cardinals 드래프트 정리 - The Baseball Cube, Baseball-Reference


첫 5픽. <라운드(전체 픽 순위). 이름, 포지션>


1(20). Adam Kennedy, ss

2(72). Rick Ankiel, lhp

3(104). Patrick Coogan, rhp

4(134). Xavier Nady, ss  (계약실패)

5(164). Jason Navarro, rhp


전년도 드래프트의 실패를 만회할 생각이었는지, 아니면 새 오너쉽이 전년도 플옵 진출에 고무된 것인지 모르겠으나, 이 드래프트에서는 과감한 지명을 통해 적극적으로 돈을 쓰고자 하는 의지를 보였다. Signability에 대한 의문으로 1라운드에서 아무도 지명하지 않은 Ankiel을 2라운드에서 과감하게 지명한 데 이어, 4라운드에는 다시 고졸 유격수 대어 Xavier Nady를 지명한 것이다. 그러나, Kennedy와 $650K에 계약하고 Ankiel에 무려 $2.5M의 계약금을 주고 난 Cards는 Nady까지 잡을 여력이 없었고, 결국 Nady는 계약을 하지 않고 University of California에 진학하는 쪽을 택했다.



이후의 주요 픽.


8. Jason Karnuth, rhp

9. Seth Etherton, rhp  (계약 실패)

15. Jason Michaels, of  (계약 실패)

44. Willie Eyre, rhp  (계약 실패)


이후에는 사실 그다지 인상적인 픽이 없었다. Etherton, Michaels, Eyre 등 계약에 실패한 픽들은 이후 다른 구단에 입단하여 메이저리그에 도달하였다. Karnuth는 불펜에서 뛰다가 2002년 Jeff Fassero와 트레이드 되었다.



97년 드래프트는 Troy Glaus, Lance Berkman, Vernon Wells, Michael Cuddyer, Jayson Werth, Chase Utley, Michael Young, Chone Figgins 등을 배출하였는데, Cards도 Kennedy와 Ankiel을 건졌으니 나쁘지 않은 드래프트였다고 본다. 결과적으로 Ankiel은 기대만큼의 활약을 해 주지는 못한 셈이지만, 이것만큼은 차마 뭐라고 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이 드래프트의 스타들. Adam Kennedy와 Rick Ankiel.



이미 댓글로 소식을 전해 주셨지만, Rick Ankiel이 마침내 은퇴를 선언했다고 한다. 이제는 부담감 없이 즐거운 인생을 살길 바란다...


TO BE CONTINUED...

Posted by FreeRedbird
:

많은 투수들이 빅 리그에 올라오기 전에 각자 소속한 하위 레벨의 마이너리그들을 소위 "초토화" 시키면서 올라오고, 그 과정에서 "예전의 어떤 사이영상 투수와 비슷하다"느니, 조금만 다듬으면 누구보다 낫겠다더니, 별 소리를 다 들으면서 올라온다. 그렇지만 Sandy Koufax 에 대한 비교는 흔하지 않다. 2014년 시즌 개막을 앞둔 현재, 사이영상 3차례에 빛나는 현존 최고의 투수 (Wain아 미안하구나) Clayton Kershaw만이 무리없이 Sandy Koufax 컴패리즌을 소화해낼 수 있다. 심지어 아직도 Kershaw가 Koufax에 비교되기는 시기상조라며 향수에 젖어계신 올드 팬들도 많다.

Raw Talent로 밀어붙이는 폭발적인 잠재력을 지닌 유망주에 대한 갈증에 아직 목말라하는 2014년의 Cardinals 팬들에게는 참으로 믿기 힘들겠지만. 16년 전, 우리 팜에는 Sandy Koufax 컴패리즌이 유효하다는 고졸 좌완 투수가 있었다. 

오랜 Cardinals 팬으로써, 오랜 야구팬으로써, 머리에 떠올릴 때마다 정말이지 만감이 교차하는 선수, Rick Ankiel 을 돌아본다. Part I 에서는 투수 Ankiel을, Part II 에서는 타자 Ankiel을 다뤄보려 한다.


Rick Ankiel (Richard Alexander Ankiel Jr.)

RHP / Outfielder

DOB: 1979년 7월 19일 

Birth: Port St. Lucie, Florida

Time with Cardinals:  1997-2009

Childhood

훗날 한 스카우트로부터 "여태 내가 본 최고의 좌완 투수들 중 하나" ("one of the best left-handers I've ever seen") 라는 극찬을 받은 Rick Ankiel이지만, Ankiel이 투수로 두각을 나타낸 것은 11학년이 (고2)  되고 난 후였다. 그 전까지 Ankiel은 남들보다 늘 작은 키에 그다지 대단할 게 없는 재능이었고, 리틀리그 시절에도 이는 마찬가지였다. 다만 Ankiel의 정신적 성숙함과 마운드 위에서의 차분함, 소위 "멘탈" 만큼은 유난히 훌륭했다. 지금 2000년 포스트시즌에서 역대 최악의 "멘붕" (Melt-down) 을 보였던 선수의 멘탈을 얘기하는게 맞냐고 물으신다면, 그렇다.

Florida의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자란 Ankiel은 고등학교 이전까지 "실수에 대한 두려움" 으로 꽁꽁 싸매진, 소심하고 겁이 많은 소년으로 자랐다. Ankiel 은 야구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야구는 나의 길" 이라고 생각할만큼의 열정은 없었다. Ankiel보다 야구를 잘하는 아이들은 많았다. 팀에서 키도 덩치도 가장 작았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 Rick Ankiel Sr. 는 아들에게 반강제로 야구를 시켰다.

그의 아버지 Rick Ankiel Sr. 는 화려한 전과를 자랑한다.1975년 대마 소지 혐의로 체포된 것이 시작으로 이후 25년간 그는 14차례 체포 당했으며, 6차례 구속당했고, 전과의 종류도 마약 밀수, 총기 은폐, 강도, 특수강도, 음주 운전 이후 경찰로부터 도주 등 정말 다양했다. 범죄자 테크를 타기 전까지 아버지의 직업은 낚시 가이드였으나, 이 업계에서 일하던 중 마약 밀매단과 엮이게 되면서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고 말았다. Ankiel이 자란 작은 마을에서 아버지의 과거와 전과, 그리고 심심찮게 일어나던 범법 행위들과 불안한 가정 분위기는 지역 사회와 이웃들의 지나친 관심과 손가락질을 불러왔고, Ankiel이 성장하면서 이로 인한 스트레스는 어린 소년이 감당하기 힘들 수준으로 부풀어올랐다. 








아버지는 어린 Ankiel에게 가혹하게 훈련시켰다. 리틀야구 선수였던 어린 아들에게 기합과 엄포는 물론이고 미국 아버지들에게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따뜻한 부정은 전혀 없었다. 강압적이었던 아버지는 본인이 결코 아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어린 Ankiel을 더더욱 강하게 몰아붙였다. 실수를 용납하지 않던 아버지 밑에서 Ankiel은 아버지의 폭언을 피하기 위해서 야구를 했고, 늘 실수하면 안된다는 공포에 떨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 때문에 늘 소위 "군기"가 바짝 들어있었던 Ankiel은 훗날 고교야구에서 보기 드문 성숙함과 인성, 그리고 근면함으로 칭찬을 받는다.

"My dad was hard on me all the time. If I swung at a bad pitch in Little League, he'd make me run wind sprints when I got home. It was always, I could've done better. But maybe if he wasn't hard on me, I would've gone down the wrong path. He always said, 'Do what I say, not what I do."                                                                                                                                          

   -Rick Ankiel, on his father


14세가 되던 해, 어린 Ankiel은 야구를 그만두고 그냥 친구들처럼 서핑이나 낚시를 하면서 놀고 싶다고 얘기했으나, 이런 푸념을 들어줄 아버지가 아니었다. 아들이 "나는 어차피 메이저리그에 갈 재능은 안되요" 라고 하자 "If you love the game, good things will happen." 이라며 정말 무식하게 아들을 몰아붙였다. 10학년 때, 될성부른 떡잎이라면 지금쯤 고교 야구를 씹어먹고 있어야 할 그 시기에 Ankiel의 패스트볼 구속은 84마일이었다. 야구팀 코치 Messina는 "필드 밖에서 정말 훌륭한 아이지만 그다지 Exceptional 한 선수인지는 모르겠다" 라고 Ankiel을 표현했다. 

Ankiel 이 11학년 때, 갑자기 키가 급성장하면서 몸집이 커졌다. 꼬마였던 Ankiel이 6피트가 넘는 키에서 특유의 다이내믹한 투구폼으로 패스트볼을 꽂자 92마일이 넘게 찍혔다. 무브먼트도 장난이 아니었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모인 한 경기에서 Ankiel은 첫 15타자 중 14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이제야 뭔가 희망이 보였다. 그 경기 이후 Ankiel이 던지는 경기마다 스카우트들이 몰려서 구속을 측정했다. 아버지가 말한 "Good things will happen" 이 실현되는 순간이다. 

아버지의 강압에 못이겨 어쩔 수 없이 야구를 지속했지만 자신의 재능에 대해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Ankiel은 순식간에 그 지역의 자랑으로 떠올랐다. 에이전트 Scott Boras와 계약한 것도 이맘때였다. 한때 Ankiel의 재능을 알아보지 못했던 코치들은 스위치히터였던 Ankiel이 혹시라도 왼팔에 HBP를 당할까봐 이제부터 우타석에 서지 말라고 했다. 가장 좋아했던 것은 아버지였다. 아들이 던지는 경기마다 그의 아버지는 관중석이 아닌 포수 뒤에 자리를 잡고 앉아 "커브를 던져라" "직구를 던져라" Game-Calling을 했다. 한번은 6회까지 노히트를 하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갑자기 "Throw him the funk!" 라고 냅다 소리를 질렀다. Ankiel은 그 말을 듣고 너클볼 (Funk가 Knuckleball 이라고 한다) 을 던졌으나 홈런을 맞았다. 

코치들은 동네 깡패 / 건달 같은 Rick의 아버지가 와서 시끄럽게 구는 것도 모자라 팀 에이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이 못마땅했으나, 또 한편으로는 Ankiel의 아버지였기에 쉽게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 아들 Ankiel은 이런 와중에서도 삼자범퇴로 이닝을 끝낼 때는 혹시라도 칭찬을 들을까 해서 어머니가 앉아있는 관중석보다는 백스톱 뒤의 아버지를 흘깃흘깃 쳐다보며 마운드를 내려왔다.  

1997년, 고등학교 마지막 야구시즌이 끝나고 Rick Ankiel은 USA Today 선정 올 해의 고교 선수 (High School Player of the Year) 로 선정되었다. 그의 마지막 고교 시즌 성적은 11승 1패 평균자책 0.47, 74이닝 162탈삼진이었다. 


배우 Zach Efron을 닮았다는 의견도 있다.

1997년 드래프트에서 Ankiel을 2라운드 20픽, 전체 72번으로 뽑은 Cardinals가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접근해왔다. 2년 전만 해도 Ankiel은 University of Miami 진학이 최종 목표였으나, 패스트볼 구속과 함께 그의 기대치도 높아진 상황이었다. Scott Boras는 Ankiel이 마치 당장이라도 Miami 대학에 진학할 것처럼 Letter of Intent를 작성해 Cardinals의 애를 태웠고, 결국 $2.5M의 계약금을 받으며 계약한다. 프로 데뷔 전에 받는 계약금으로는 당시 역대 5위에 랭크되는 정도의 큰 규모였다. 

Ankiel과 계약이 성사된 후, Cardinals는 아직 고등학생에 불과한 Ankiel을 홈 구장으로 불러 클럽 하우스를 구경시켜주고, 그의 이름이 적힌 유니폼을 선사했다. 그리고 그가 곧 서게 될 Busch Stadium 마운드에 서서 공을 던지게 했다. Tony La Russa, Dave Duncan은 물론 프론트 직원들부터 구장 잔디 관리인들까지 다들 나와서 이 열 여덟살 짜리 투수가 시범 피칭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포수의 미트에 공이 Pop! 하고 꽂히며 모두들 그의 구위에 경악했다. 95마일의 구속도 구속이었지만, 부드러운 투구폼과 플레이트 근처에서의 매서운 무브먼트, 그리고 우타자 바깥쪽 낮게 떨어지는 싱커는 이미 아마추어 수준이 아니었다. 그 날부터 Ankiel은 Cardinals의 금송아지였다.

"They got excited because a lefty like that comes up once in a millenium. He was the real deal, and the world, the entire world, was Rick Ankiel's, blowing away the game with that arm born and bred in the Florida sun, able to do whatever he wanted to do whevnever he wanted to do it and nothing more Wild West in all of sports, a pitcher on a mound simply blessed with it."

 -Excerpt from 3 Nights in August, page 77

Rick Ankiel's Minor League Track Record

YearAgeTmLgLevWLERAGSCGSHOIPHERHRBBSOHBPWPWHIPHR/9BB/9SO/9SO/BB
1998182 Teams2 LgsA+-A1262.632810161.01064785022214110.9690.42.812.44.44
199818PeoriaMIDWA302.0670035.015801241210.7710.03.110.53.42
199818Prince WilliamCARLA+962.792110126.0913983818112101.0240.62.712.94.76
1999192 Teams2 LgsAAA-AA1332.352411137.29836962194961.1620.64.112.73.13
199919ArkansasTLAA600.9181149.125521675200.8310.42.913.74.69
199919MemphisPCLAAA733.16160088.17331746119761.3470.74.712.12.59

Ankiel의 마이너리그 시절은 그다지 언급할 부분이 없다. 너무 짧았고, 너무 일방적이었다. 흔히 말하는 "마이너리그에서 스스로를 다듬는 시간들" "교정" "세련" 이런 단어들은 Ankiel의 사전에 없었다. 그냥 Ankiel은 있는 그대로 압도적이었다. 첫 프로팀이었던 Peoria를 단 7경기만에 졸업. 이후 나머지 시즌은 A+ 레벨에서 126이닝 181탈삼진을 기록한다. 1999시즌은 AA레벨의 Arkansas에서 출발했는데, 8경기 49.1이닝 5실점이었다. AAA로 안보내기도 힘든 성적이다. 넘어져봐야 일어날 줄도 아는데, Ankiel은 차마 넘어질까 하는 우려를 표시하기가 민망할 정도로 빠르게 달려나가고 있었다. 

보통 프로에 첫 입문해 고달픈 마이너리그 생활을 시작하는 어린 선수들, 특히 대학을 맛보지 않고 프로로 직행한 고졸 선수들은 고향과 가족, 친구들을 그리워하며 정신적으로 힘들어하게 마련이다. 강압적이었던 아버지와 결코 행복하지 못한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일까. Ankiel은 집을 떠나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마냥 즐거웠다. 매 경기 사람들은 그의 놀라운 구위에 감탄과 칭찬을 연발했고, 함께 마이너리그에 입문한 1라운더 Adam Kennedy 등 동료 선수들도 그저 Ankiel에게 좋은 말밖에 해주질 않았다. 

Cardinals는 Ankiel의 어마어마한 성장 속도에 불안함을 느꼈고, 이에 경기당 투구수 100개의 제한을 두었다. 마이너리그 투수코치들은 Ankiel에게 팔꿈치에 무리가 가는 슬라이더를 가르쳐주면 안된다는 지령을 받았고, 이런 정도의 관심을 받는 투수를 함부로 조련하려고 하는 코치들은 아무도 없었다. Ankiel이 혹시라도 어이없는 폭투 (마이너리그 성적에서도 유난히 폭투가 많은 것을 보실 수 있다)를 던진 뒤 자문을 구하면, 코치들은 "그냥 하던대로 해라 잘하고 있으니" 라며 넘겼다. Ankiel이 답답해서 재차 물어보면 그들은 "우린 널 건드리면 안돼" ('I'm not allowed to mess with you") 라고 대답했고, Ankiel은 그제서야 자신을 향한 구단의 특별대우의 이면에 그림자가 있음을 알게 되지만, 19살의 Ankiel이 그렇다고 질주를 멈출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 해 그는 마이너리그 탈삼진 1위 타이틀과 함께 Player of the Year 상을 수상했고, 올스타전에 선발로 등판했다. 1999시즌을 앞두고 Baseball America 는 Ankiel을 전미 유망주 랭킹 2위에 올랐다.

마이너리그에서 어떤 조련도 받지 않은 Ankiel은 키가 조금 더 컸을 뿐이지 사실상 Port St. Lucie 고등학교 시절과 투수로써의 기량이 거의 다를 바가 없는 상태에서 메이저리그 콜업을 받는다.

"If you've got a race car that's leading the Daytona 500, you don't bring it in for a tune-up. All we did was fine-tune a couple of things with his motion, but nothing major. We have a pitch count for all pitchers in the minor leagues."

-Mike Jorgensen, the Cardinals' director of player development (1999)


Pitching Mechanic

유일하게 아버지 Ankiel이 아들 Ankiel에게 전수한 것들 중 좋은 것이 있다면 바로 그의 투구폼인데, 사실 이 부분도 따져보면 악영향이 더 크다. Ankiel이 성공 가도를 달리던 시절에도 그의 제구는 결코 좋은 편이 아니었는데 (2000시즌 BB/9 = 4.63, 1999시즌 BB/9= 4.1), 이는 그의 딜리버리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간지가 나는 딜리버리 치고 문제없는 경우를 거의 못보지 않았는가. Ankiel 역시 마찬가지이다. 위 Ankiel의 투구폼 사진을 참조하시면, Ankiel은 투구시 앞발 (Front-foot, 즉 오른발) 보다 머리가 먼저 타자쪽으로 나가는 (Out), 소위 Out-in-front 증상을 보이고 있으며, 이 증상은 Tim Lincecum에게도 종종 볼 수 있다. 몸은 아직 준비가 안되어 있는데 머리가 먼저 예전 Okajima 마냥 3루 쪽으로 가고 있으니, 당연히 Pitching Arm이 앞으로 차근차근 나오지 못하고 급작스럽게 나오게 되고 릴리즈 포인트가 굉장히 높아진다. 무게 중심의 이동이 부드럽지 못하니 팔꿈치, 어깨에 무리가 가는 것은 당연하거니와, 릴리즈 포인트가 너무 앞에서 형성되거나 높이 형성되면서 포수 머리 위, 혹은 바닥에 패대기 치는 듯한 공이 나올 수밖에 없다. 실제로 마이너리그에서나 빅 리그 데뷔 이후에나 Ankiel은 릴리즈포인트가 흔들릴 경우 포수 머리 위로 던지는 폭투의 비율이 다른 투수들에 비해 월등히 높았는데, (Ankiel 본인도 인정한 부분이다) 이는 부드러운 듯 보이지만 사실은 팔 스윙이 너무 급작스럽게 이뤄지는 그의 투구폼 탓이 컸다. 

설령 포스트시즌에서의 Melt-down이 없었더라도 이런 투구폼으로 그가 롱런을 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으며, 필자도 동의하는 부분이다. 피칭 메카닉에 대한 심도있는 이해가 바탕이 된 코치들이 용기있게 쓴 소리를 해주었다면 Ankiel의 데뷔가 좀 늦어질 지 언정 조금 더 투수로 오래 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Call-Up

"최대한 그에게 압박을 주지 않으며 천천히 콜업할 것" 이라는 한 구단 관계자의 말이 무색하게 Ankiel은 1999년 8월 23일, 만 20세의 나이로 ML 마운드를 밟았고, Adrian Beltre를 제치고 리그 최연소 선수로 등재된다 (2위는 벨트레). 데뷔전 상대는 묘하게 외인구단 느낌을 주던 추억의 팀 Expos 였는데, 선발로 등판한 그는 괴수(V. Guerrero) 에게 솔로홈런을 허용하긴 했으나 5이닝 5피안타 3실점으로 무난히 데뷔전을 마쳤고, 이후 4차례 정도 더 선발 등판을 한 뒤 불펜에서 시즌을 마감했다. 평균자책 3.27에 33이닝 39탈삼진. 약간의 제구불안이 있긴 했지만 선발 로테이션에 들어가기에 충분히 합격점인 투구였다. 

아들 Ankiel이 찬란하게 데뷔하던 이 시기, 아버지 Ankiel은 다시 한 번 체포당했다. Florida에서 멀지 않은 섬나라 Bahamas의 마약 밀매단과 연계되어 있던 Ankiel의 아버지는 마리화나와 코카인을 (미국 시장에 유포할 목적으로) 소지한 혐의로 1999년 시즌 도중에 검찰에 기소되었다. 이 때 최대 80년형의 징역과 $4M의 벌금형을 선고받게 되면서 Ankiel의 어머니는 남편과 이혼하게 된다. 이제 막 피어나려는 20살짜리 어린 투수에게, 그것도 전미 최고의 유망주 투수의 아버지가 State도 아니고 연방 검찰에 구속되었으니 언론이 가만 있지를 많았다. 

슬프게도 Ankiel은 이런 관심들이 익숙했다. 마운드에서 본인이 흔들리지 않으면 이런 일들은 결국 지나갈 것이라는게 Ankiel의 비정상적으로 강인한 정신력이었다. 자라는 내내 "너의 아버지는 뭐하는 분이시니?" "왜 너네 집 앞에는 경찰차가 와있니?" 같은 질문들에 익숙해져있던 Ankiel은 아버지의 옥살이와 부모님의 이혼, 가족의 분열 (형과 누나도 뿔뿔히 흩어졌다) 을 그저 삼켜버렸다. 가슴 복받치는 자신의 풀타임 첫 정규시즌 개막전을 한 달 여 앞둔 2000년 3월, Ankiel은 아버지 Ankiel의 재판을 위해 Florida 연방 법원에 출두해서 그의 아버지가 징역 6년형을 받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한 달 후, 4만여 관중 앞에서 당당히 Cardinals 로테이션의 일원으로 선발 등판을 했다. 아버지와 가족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어린 투수답지 않게, 마운드 위에서 Ankiel은 흔들리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재능있는 투수들 특유의 보기좋은 건방진 아우라까지 풍겼다.

씁쓸하게도 "마운드 위에서 감정을 컨트롤하라" 는 그의 아버지가 Ankiel을 코치하면서 가장 강조하던 부분이었다. 


2000년 NL Central 우승을 확정 짓고.

2000시즌

드디어 정식 발매된 Ankiel의 황금팔은 확실히 강력했다. Ankiel은 시즌 첫 선발 등판 Brewers전에서 6이닝 10K 2실점 승리를 따내면서 쾌조의 출발을 했고, Coors Field에서 3피홈런을 맞으며 주춤했으나 이후 Padres전 5이닝 무실점, Brewers 전 7이닝 무실점을 잇따라 승리투수가 되었다. 5월 13일에는 한국 야구팬들에게 잘 알려진 박찬호와의 맞대결을 펼쳤는데, 당시 박찬호가 워낙 잘 던져서 (8이닝 1실점 12K) 묻히긴 했지만 7이닝동안 무려 118구를 던지면서 4피안타 9K 무실점을 기록한 Ankiel 역시 칭찬받을만 했다. (언론은 앞날이 창창한 두 젊은 투수들의 Pitcher's Duel로 관심을 모았으나, 사실 정말 관심가는 부분은 나란히 고질적 제구 불안병을 앓고 있는 두 투수가 도대체 몇 구나 던질 것인지였다.)

Ankiel의 구위는 베테랑 포수 Mike Matheny와의 호흡이 부드러워지면서 더더욱 강화되었다. 어린 투수들의 응석을 받아주지 않던 Matheny는 구위를 제외하고는 모든 면에서 부족했던 Ankiel에게 딱 맞는 포수였다. 그는 리그 내에서 가장 뛰어난 블로킹 능력을 지녔기에 Ankiel의 제구 불안 데미지를 최소화 할 수 있었고, Ankiel의 구위와 구질에 대해서 투수 본인보다 훨씬 뛰어난 이해도를 지니고 있었다. 5월 7일 Reds전에서 Ankiel이 5이닝만에 볼넷 4개 폭투 4개를 기록하며 유난히 "Wild' 했던 날, Matheny는 플레이프 앞에서 흙을 튀기는Ankiel의 원바운드 공들을 전부 막아내고 마운드에 올라가 "내가 다 막을 테니 넌 똑바로 던지기만 해라" 라고 말했다. 다음 경기에서 Ankiel은 Matheny의 리드를 그대로 따르며 7이닝 무실점을 기록한다 (박찬호 경기.) 이어서 6월 20일, Ankiel은 당시 Jeff Kent와 Barry Bonds를 위시한 Giants 강타선을 상대로 6이닝 8K 2실점의 압도적인 피칭을 하고 승리투수가 된다. 당시 Giants 감독이었던 Dusty Baker는 "저런 20살 짜리는 흔하지 않다. 20살에 저 정도라면 앞으론 대체 뭘 이루려고 하는가" 며 상대팀 신인을 칭찬했다.

Ankiel의 피칭 레퍼토리는 93-95마일의 패스트볼, 그리고 88~90마일에서 형성되었던 싱커, 그리고 마이너리그에서 수많은 탈삼진을 솎아내게 해준 그의 플러스 커브였다. 특히 우타자들은 5마일의 구속 차이와 함께 탁월한 무브먼트를 동반한 그의 싱커에 타이밍을 맞추지 못했으며, 어느 카운트에서나 낙차 큰 커브가 아웃피치로 들어올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Ankiel 공략을 굉장히 힘겨워했다. (2000시즌 우타자 상대 피안타율 .213) TLR은 Ankiel이 장기적으로 체인지업만 장착한다면 리그를 오랜 기간 지배할 선수라고 표현했고, 이는 결코 과찬이 아니었다.

정규시즌 후반기, Ankiel을 제외하면 대부분 노땅들로 채워진 Cardinals 로테이션은 슬슬 힘에 부쳐하기 시작했다. 팀내 최고령 투수이자 6'6피트의 장신이었던 Andy Benes는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후반기 컨디션이 이미 정상이 아니었고, 노장 Pat Hentgen는 8월이 되자 체력적인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Garret Stephenson 는 8월달에 혼자 4승 평균자책 2.63을 기록했으나 9월달이 되자 피로 누적으로 차차 구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정규시즌 마지막 한 달간, 사실상 Cardinals 로테이션은 Darryl Kile-Rick Ankiel 두 투수가 이끌기 시작했다.  그리고 Ankiel 은 신인답지 않게 시즌이 진행될수록 더 구위와 제구가 나아지며 구단의 기대에 부응했다. 그는 최종 7경기에서 4승 무패 평균자책 1.97. 45.2이닝 54탈삼진을 기록했고 이 기간동안 팀은 6경기를 이겼다. (평균 103구, 경기당 6.2이닝). 

정규시즌 종료 후 Ankiel의 성적은 11승 7패 평균자책 3.50, 175이닝 194K. 신인왕 투표에서 그는 Braves의 Rafael Furcal에 이어서 2위에 올랐다. 만 20세 시즌에 규정이닝을 소화하면서 K/9이 9.0을 넘었던 투수는 (그 때까지) 역사상 단 2명에 불과했다. (1984년 Dwight Gooden, 2000년 Rick Ankiel)

Ankiel's Last 5 Games (2000)

DateOppIPHRERBBSOERAPitStrStLStSGBFB
SeptemberOppIPHRERBBSOERAPitStrStLStSGBFB
Sep 3NYM7.0211583.8011166221249
Sep 8@MIL6.0411253.7110664171179
Sep 13@PIT6.27420113.6710671161488
Sep 20HOU7.0432283.6210159121488
Sep 27@SDP6.0500283.5096601715410
175.01378068901943.50


순식간에 조롱거리로 전락하기에 그의 재능은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그 날 (2000년 10월 3일) - NLDS Game 1

Atlanta Braves와의 NLDS를 앞둔 상황, TLR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5인 로테이션에서 건강한 투수는 20승을 올린 에이스 Kile와 약관의 신인 Ankiel 달랑 2명 뿐이었고, 이들에게 많은 경기를 맡기고 싶어하는 것은 5전3승제 단기전을 앞두고 감독으로써 당연한 어프로치였다. 게다가 Ankiel은 4일 휴식을 줘야했지만 Darryl Kile은 3일 휴식으로 등판할 수 있었다. 즉 (정상적인 로테이션 순서대로) Kile이 1차전, Ankiel이 2차전을 던질 경우 Ankiel은 시리즈에 한 번 밖에 나올 수 없지만, Kile이 2차전을 던지고 Ankiel이 1차전을 던지게 된다면 이 시리즈에서 두 투수를 2번 쓸 수 있다는 소리였다. 정규시즌 마지막 한 달간 Ankiel 이 보여준 모습까지 감안했을 때, TLR의 결정은 "도박" 이라고 불리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TLR은 전국에 중계되는 첫 포스트시즌 선발이 이 젊은 투수에게 어떤 중압감으로 다가올 지에 대해 충분히 경계하고 있었다. 게다가 상대 투수는 지난 10년간 리그를 지배했던 베테랑 Greg Maddux. 호들갑을 떨만한 이유가 충분했다. 시리즈가 시작하기 전날, TLR은 불펜 피칭을 하고 나오는 Ankiel을 재빨리 언론 접촉없이 클럽하우스에서 내보냈다.  그리고 베테랑 투수 Kile에게 인터뷰실로 들어가서 마치 그가 당연히 1차전을 던지는 양 언론을 상대하도록 했다. Kile은 당시 기자들의 질문에 충실히 대답하면서도 단 한 차례도 자신이 1차전에 던질 것이라는 언급을 하지 않았다. 언론에서도 이미 Kile이 1차전을 던질 것이라는 게 너무 당연했기에 물어보지 않은 것이다. 인터뷰가 다 끝나고 미디어팀이 철수하자 그제서야 TLR은 1차전 선발이 Ankiel임을 발표했다. 수많은 리포터들이 그 날 TLR에게 얼마나 욕을 퍼부었을지 자명하다.

TLR의 머릿속이 복잡한 이유는 하나 더 있었다. NLDS가 열리기 며칠 전인 9월 28일, Darryl Kile의 정규시즌 20승 경기가 있었던 바로 그 날, 주전 포수 Mike Matheny가 생일 선물로 받은 사냥용 칼 (Hunting Knife) 을 잘못 놀려 자기 손을 크게 베어버리고 만 것이다. (MM의 생일은 9월 22일이다.) 이 부상으로 인해 정규시즌 잔여 경기는 물론 Matheny의 플레이오프 출장 기회도 날아가버렸다. 투수 리드와 호흡에 있어서 Ankiel에게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짝꿍이던 Matheny가 결장한 것도 문제였지만, 제구가 불안한 Ankiel과 등 부상으로 인해 활동폭이 좁던 포수 Carlos Hernandez의 조합은 결코 이상적이지 않았다. 


Hernandez가 아닌 Matheny였다면, 뭔가 달랐을까?


Braves와의 1차전이 시작했고, 마운드에 Ankiel이 올랐다. 1회 2사 후 Chipper Jones와 Andres Galarraga에게 연속 볼넷을 허용했지만 Brian Jordan을 파울 플라이로 잡아내면서 무실점. 주자를 3명이나 허용하긴 했으나 뭐 경기 초반 Ankiel의 제구 난조가 그다지 특별할 일은 없었다. 오히려 1회말 Cards 타선이 Maddux를 상대로 타자일순하며 6득점한게 더 신기할 일이었다. TLR은 훗날 이 날 Maddux를 상대로 뽑아낸 6득점은 "말도 안되는 숫자 ("Crooked Number") 라고 회상했다.

2회에도 Reggie Sanders를 삼진으로 잡으면서 시작한 Ankiel은 무실점으로 무사히 이닝을 마쳤다. 그리고 마의 3회... 

Score Out RoB Pit(cnt) R/O @Bat Batter Pitcher wWPA wWE Play Description
0-6 0 --- 4,(3-0)  ATL G. Maddux R. Ankiel -2% 91% Walk
0-6 0 1-- 4,(1-2)  O ATL R. Furcal R. Ankiel 2% 93% Foul Flyball: 1B
0-6 1 1-- 2,(0-1)  ATL A. Jones R. Ankiel -0% 92% Wild Pitch; Maddux to 2B
0-6 1 -2- 4,(2-1)  ATL A. Jones R. Ankiel -1% 92% Wild Pitch; Maddux to 3B
0-6 1 --3 5,(3-1)  ATL A. Jones R. Ankiel -2% 90% Walk
0-6 1 1-3 5,(2-2)  ATL C. Jones R. Ankiel -1% 89% Wild Pitch; Jones to 2B
0-6 1 -23 7,(3-2)  O ATL C. Jones R. Ankiel 3% 93% Strikeout Looking
0-6 2 -23 7,(3-2)  R ATL A. Galarraga R. Ankiel -3% 90% Walk; Maddux Scores/Wild Pitch; Jones to 3B
1-6 2 1-3 1,(0-0)  R ATL B. Jordan R. Ankiel -4% 85% Single to LF; Jones Scores; Galarraga to 2B
2-6 2 12- 3,(1-1)  ATL R. Sanders R. Ankiel -1% 84% Wild Pitch; Galarraga to 3B; Jordan to 2B
2-6 2 -23 5,(3-1)  ATL R. Sanders R. Ankiel -1% 82% Walk
2-6 2 123 2,(0-1)  RR ATL W. Weiss R. Ankiel -12% 71% Single to LF; Galarraga Scores; Jordan Scores; Sanders to 2B
Provided by Baseball-Reference.com: View Original Table
Generated 2/6/2014.

강판된 후 덕아웃으로 돌아온 Ankiel에게 아무도 위로의 말을 쉽게 건내지 못했다. Ankiel은 Andy Benes에게 다가가 "A joke. You've got to laugh." 라며 자신이 저질러놓고도 도대체 믿을 수가 없는 이 상황에 허탈해했다. 이 때만해도 Ankiel의 투수로써의 커리어가 이 경기를 기점으로 사실상 재생 불가능 상황이 될 것이라고 상상한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Mets와의 NLCS를 앞두고 Ankiel은 자신의 문제가 투구폼 관련된 Mechanical한 문제라며 이제 해결책을 찾았다고 이야기했다. NLCS 2차전에 Ankiel이 등판했고, 초구 91마일 패스트볼이 상대 타자 Timo Perez의 머리를 향했다 (Perez는 가까스로 피했다). 삼진-볼넷-폭투-볼넷-희생플라이-볼넷-2루타. 20구 중 5개가 포수 뒤로 날아갔다. Duncan 은 볼만큼 봤다고 생각했는지 Ankiel을 내렸는데, 질책성이라기보다는 보호 차원의 강판이었다. Duncan은 경기 후 지금 Ankiel에게 필요한 것은 쉽게 한 이닝을 던지고 감을 회복하는 것 ( "have a nice easy inning and probably get back on track") 이라고 얘기했고, Low-leverage 상황에서 Ankiel을 등판시켜 감각을 회복하도록 도와주기로 한다. 시리즈 최종전인 NLCS 5차전 7회, 0:6으로 크게 뒤져 있던 상황에서 Ankiel이 올라왔다. 볼넷-번트-삼진-폭투-폭투-볼넷. 

시리즈가 끝난 후 Rick Ankiel은 감옥에 있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경기를 본 아버지는 아들에게 다쳤냐고 물어봤고, 아들은 괜찮다고 대답하자 이에 "아니 그럼 대체 뭐하는 짓이야!" 라고 말했다. 이 경기를 TV로 지겨보던 Ankiel의 고등학교 팀 투수코치 Charlie Frazier는 "Ankiel에게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Mechanical한 문제들이 많았으며, 딜리버리 막판의 Follow-Through 단계에서 몸을 꼿꼿이 세우고 있었다" 며 어이없어했다. 동영상을 보시면 릴리즈 포인트에 신경을 쓰고 있던 Ankiel 의 상체가 부자연스럽게 거의 직선으로 서있는 모습을 보실 수 있다. 동영상 링크 


그 날이 있던 후 Ankiel이 웃고 있는 사진을 찾는 것은 굉장히 힘들어졌다.


"I never saw him lose his motion like that before. I saw mechanical flaws. He was throwing across his body; he was standing up in his follow-through. I asked him what his pitching coaches told him. He said, "They don't tell me anything!"

-Charlie Frazier, Ankiel's high-school pitching coach

NLCS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 Ankiel에게 Boras가 연락이 왔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Florida를 떠난 적이 없는 Ankiel에게 그는 "지금 당장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캘리포니아로 떠나라"고 설득했다. 다른 곳에 가서 머리를 식히라는 것 빼고는 딱히 어떤 이유가 있지는 않았다. Boras는 Ankiel에게 "모든 것을 그대로 놔두고 그냥 떠나라. 내가 도와주겠다" 고 했다. Ankiel은 잠시 Florida 집에 들려 짐을 싼 뒤 그 길로 Boras의 사무실이 있던 캘리포니아 Newport Beach로 떠났다. 마이너리그 때부터 같이 올라온 드래프트 동기 Adam Kennedy (당시 Angels로 이미 옮겨가있던) 가 기꺼이 숙소를 제공했다. 둘은 야구 관련된 일은 일체 하지 않았으며, 바닷가에서 조용히 휴식을 취했다. Ankiel은 이 기간 동안 자신의 멘토이기도 했던 Darryl Kile과만 꾸준히 연락했을 뿐 은둔한 상태로 5주를 보냈다. 

5주간의 휴식이 지나고 12월 중순 Ankiel이 Florida로 다시 돌아왔을 때, 그의 연락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 스포츠 심리학계의 거장인 Harvey Dorfman 박사였다. Dorfman은 3일간 심도있게 Ankiel의 어린 시절과 그를 둘러싼 공포들, 무의식을 분석하기 위해 상담했다. Dorfman 박사와 Ankiel의 두터운 관계는 이 때부터 시작되었다.

"...there's a lot of things in his life that could have triggered what happened in the playoffs. You're raised in that kind of environment, anything can happen. He's a very sensitive guy, and he had to be mature awfully quick. These things can have a very calamitous potential . I've seen it happen to other players where it became career threatening. So the best thing we can do is listen, understand and cover all of the possibilities."        

-Scott Boras, on Rick Ankiel's recovery (2001)

2001년 4월 8일, Ankiel은 Chase Field 원정에서 Randy Johnson과 D-Backs 라인업을 상대로 시즌 첫 등판을 치루었다. 1회 Matt Williams에게 투런 홈런을 맞았으며, 제구불안 문제도 여전했다. 그러나 전반적인 구위에 있어서 만큼은 Ankiel은 예전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5회에는 세 타자를 모두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기세등등했고, 6회에 투구수 100개를 채우고 강판되었다. 5이닝 3피안타 3볼넷 2실점 8탈삼진. Cardinals는 Big Unit을 상대로 홈런 3개 포함 11안타를 쳤다. 9:4 승리. Ankiel의 커리어 마지막 선발승이었다. 

그러나 이 경기 이후 Ankiel 이 보여준 모습은 2000년 플레이오프와 비슷했다. 도저히 봐주기가 힘들 정도로 아무데로나 가는 공들. 잦은 폭투. 24이닝에서 볼넷 25개, 폭투 5개, 사사구 3개. 2001년 5월 홈에서 Pirates 상대로 등판한 Ankiel은 Pat Meares를 상대로 다시 포수 뒤 스크린에다가 공을 던졌다. Duncan이 올라오자 Ankiel은 고개를 떨구었다.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Cardinals 구단 측에서는 Ankiel의 커리어를 "리셋" 하겠다는 의도로 그를 루키리그로 보냈고, 세간의 관심이 없는 이 곳에서 Ankiel은 신기할만큼 빠르게 영점을 잡았다. 그리고 제구가 되는 이상 ML에서 이닝당 한 개 이상의 삼진을 잡아내던 Ankiel의 구위는 루키리그 타자들이 건드릴만한 것이 아니었다. 14경기에서 87.2이닝동안 탈삼진 158개 (K/9 = 16.2) 평균자책 1.33. 이 정도면 괜찮다 싶어서 Memphis로 승격시키자 다시 병이 도졌다. 4.1이닝동안 3피안타, 17볼넷, 10실점, 폭투 12개. 공이 미친듯이 백스톱 뒤로 날아가자 상대적으로 작은 마이너리그 구장에서 관중들의 웃음소리가 Ankiel의 귀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것이다.



2004년, TJS를 받고 돌아온 Ankiel에게 아직도 Cardinals는 희망을 놓지 않고 않았다. A+ 볼에서 시즌을 시작한 Ankiel은 3차례의 선발 등판에서 8.2이닝 0볼넷 11탈삼진을 기록했고, AA볼로 승격된 이후에는 2경기에 걸쳐 9이닝 3피안타 1실점 2볼넷을 기록했다. 이어서 Memphis로 올라와서 선발 등판한 경기에서는 6이닝 1피안타 1실점. 역시 볼넷은 없었다. "그 날" 이 있기 전에도 Ankiel이 마이너리그에서 이렇게까지 좋은 제구력을 보여준 적은 없었다. 드라마틱한 부활이 가시권에 있었다.

2004년 9월 7일, Ankiel이 무려 3년 6개월만에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섰다. 1이닝 무실점. 15구 중 12구가 스트라이크였다. 4일 후 Dodgers 전에 다시 구원등판한 그는 19구 중 14구를 스트라이크 존에 꽂았다. 9월 19일에는 재앙이 시작되었던 Busch Stadium 마운드에 참으로 오랜만에 섰고, 관중들은 돌아온 Ankiel을 기립박수로 환영했다. 2이닝 4K 무실점. 5차례의 등판에서 10이닝을 던지는동안 Ankiel은 삼진 9개를 잡고 볼넷은 Chad Tracy에게 내준 한 개가 유일했다. 구속은 3년 전 그의 모습에 비해 확실히 떨어진 90마일 선에 그쳤으나, 커브는 여전히 리그 정상급 낙차를 보였고, 싱커도 여전했다. 

2000시즌 이후 제대로 된 정규시즌을 치루어 본 적이 없는 이 투수는 수년 간의 방황에도 불구하고 아직 24세였다. 오프시즌에 그는 Puerto Rico 에서 열린 윈터리그에서 한층 발전된 모습을 보였고, 구단 수뇌부에서는 Matt Morris 의 자리를 Ankiel이 대신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까지 품기 시작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간신히 ML에서 통할 수 있는 수준의 상태로 기어올라온 Ankiel은 시뮬레이션 피칭에서 Edmonds, Rolen 등 Cardinals 중심타자들을 배팅 케이지에 세워놓고 다시 한 번 "나는 누구고 여긴 또 어딘가" 식의 붕괴를 겪는다. 23구를 던졌으나 스트라이크는 3개. 원바운드성 폭투는 물론이고 배팅 케이지 밖으로 아예 나가는 공도 여러개였다. 2005년 3월, Ankiel은 "더 이상 던지지 않겠다"며 투수 포기를 선언한다. 

Sandy Koufax의 재림은 신기루였다.

"I just lost it right there on the mound. I don't know what I was thinking. I'd go blank before I'd throw the ball, and then after I'd say to myself, 'How the hell did that happen?' It was definitely weird. I mean, I'd been doing it so many times in my life, and suddenly I can't throw a ball?"

-Rick Ankiel, on his melt-down (2001)


2003년 스프링캠프를 앞두고 Walt Jocketty는 Ankiel의 진로를 결정할 순간을 맞이한다.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에 참여시킨 뒤 이후 마이너리그로 보내서 다시 재활하게 하는 것이 잠재적 방안이었는데, 과연 어느 레벨의 마이너리그로 그를 보내느냐는 정해지지 않았다. TLR의 사무실에 Duncan이 찾아와 Jocketty의 결정을 알리자 TLR이 물었다. "무슨 레벨로 가는지에 대해 우리가 어느 정도의 영향력이 있지?" Duncan 이 대답했다. "뭐 어느 정도 input은 있겠지." TLR은 버스 이동거리가 많은 AA 레벨보다 조금 더 이동이 수월한 Memphis로 Ankiel을 보내는 게 어떠냐고 물었다. 그러자 Duncan은 Ankiel을 Double-A 레벨의 Tennessee로 보내는 게 좋겠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덧붙였다. 

"He's 23-years old. He should be in Double-A."

(Excerpt from 3 Nights in August, page 82)


(Part II에서 계속)

자료 출처: Hardball Times, New York Times Magazine, USA Today, Palm Beach Post, STL Post-Dispatch, 3 Nights in August, Baseball-Reference, ESPN, Fangraphs






Posted by Doovy+
:

Walt Jocketty Years(13)

Transactions of 2006-07 Offseason, 2007 Season

2007 Season: 78승 84패, NL Central 3위

(Baseball-Reference 2007 시즌 페이지)


그렇게 마법 같았던 WS 우승이 지나가고, 다시 오프시즌이 되었다. 늘 그렇듯이, 많은 선수들이 FA가 되었고, Jocketty는 또다시 바쁜 나날을 보내게 된다. 문제가 있다면, WS 우승 기념 파티를 너무 오래, 찐하게 했다는 것이다.


2006/11/01  Jim Edmonds(CF) 재계약 (2yr/19M)   Terrible

우승 기념 파티 1호. Edmonds는 그때나 지금이나 주인장이 가장 좋아하는 선수이기에, 이런 평가를 내리는 것이 참 씁쓸하다. 하지만, 그만큼 이 재계약 이후 Edmonds는 좋지 않았다. 2007년 0.8 WAR로 최악의 시즌을 보낸 Edmonds는 결국 다음 오프시즌에 Mozeliak에 의해 David Freese와 트레이드 되고 만다.


2006/11/16  Scott Spiezio(UT) 재계약 (2yr/4.5M)   Terrible

우승 기념 파티 2호. Spiezio가 2006 시즌에 많은 공헌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사실 그 이전의 2004, 2005 2년간 Spiezio는 replacement player였다. 계약 후, Spiezio는 다시 replacement level로 돌아갔고, 여기에 덧붙여 약물 남용으로 한 달간 치료를 받기도 했다. 다음 오프시즌에는 음주 뺑소니 및 폭행 등으로 체포되었고, 결국 Mozeliak은 그를 방출하였다.


2006/11/28  FA Kip Wells(RHP) 계약 (1yr/4M)    Bad

Jocketty는 FA가 된 Jeff Weaver 대신 Kip Wells와 계약했는데, Wells는 2007 시즌 5.70 ERA로 팬들에게 두통을 선사하였다. 이 ERA는 낮은 LOB%에 의해 다소 부풀려진 부분이 있긴 했으나, 4.86 FIP, 4.68 xFIP도 그다지 칭찬해줄 만한 성적은 아니었다.

(Kip Wells. 원래 그냥 그런 투수이긴 했지만 이렇게 못할 줄은 몰랐다.)


2006/11/28  FA Adam Kennedy(2B) 계약 (3yr/10M)    Terrible

이 계약은 조금은 운이 없었다고 생각되는데... 2006 시즌에 Kennedy가 맛이 가긴 했지만 2002-2005 4년간 평균 3.3 WAR를 해줬던 전례가 있었기에, 리바운드 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었다고 본다. 가격도 저렴한 편이었고, 당시에는 드디어 2루가 안정되는구나 하고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계약 첫 해 Kennedy는 타석에서 완전히 무너지며 -0.8 WAR을 기록했고, 우리는 또다시 Aaron Miles를 2루에서 잔뜩 봐야만 했다. 둘째 해인 2008년에는 조금 반등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때는 이미 TLR과 사이가 멀어진 뒤였다. 티격태격하던 둘 사이는 결국 2008 시즌 후 Mozeliak이 Kennedy를 방출하여 정리되었다.


2006/11/28  Gary Bennett(C) 재계약 (1yr/900K)    Bad

파티 3호. Bennett은 그냥 똑같이 허접했다. 이제 이 말 하는 것도 지겹다. 이게 최선입니까?


2006/12/01  FA Ryan Ludwick(OF) 계약 (마이너)    Outstanding

Ludwick은 AAA에서 10할이 넘는 OPS를 찍다가 콜업되었고, 콜업 이후에는 Encarnacion과 Duncan을 대신하여 LF, RF에 종종 모습을 비치다가 Encarnacion의 눈 부상 이후에는 아예 주전 RF로 자리를 잡았다. 이후 2009년까지 3시즌이 좀 안되는 기간 동안 10.1 WAR을 기록했으며, 특히 2008년에는 올스타로 선정되기도 했다. 실력이나 인성도 괜찮았지만 위트있는 인터뷰도 참 좋았던 선수.

(Ryan Ludwick)


2006/12/08  FA Russ Springer(RHP) 계약 (1yr/1.75M)   Excellent

Springer는 2003년에 삽질한 기억이 있어서 별로 인상이 좋지 않았으나, 이번 시즌에는 미들 릴리버로는 매우 뛰어난 1.2 WAR을 기록할 만큼 좋은 모습을 보였고, 불펜에서 베테랑으로서 리더쉽도 발휘해 주었다.


2007/01/01  Randy Flores(LHP) 재계약 (2yr/1.8M)   Good

Flores는 2007 시즌까지도 괜찮았으나, 2008 시즌이 되자 갑자기 K/BB 비율이 1 아래로 추락하면서 확 맛이 갔다. 연봉이 워낙 저렴했기에, 한 시즌을 망치긴 했어도 가성비는 괜찮았다.


2007/01/10  Mark Mulder(LHP) 재계약 (2yr/13M+11.5M 옵션)    Atrocious

Mulder는 2006년 9월에 Rotator Cuff 수술을 받고 시즌아웃 되었는데, 이런 투수에게 무려 13M이나 되는 돈을 보장해 준 것이 놀랍다. Jocketty로서는 아쉬움도 컸을 것이고, 어깨 수술을 한 Carpenter를 잡아서 대박을 터뜨린 경험도 있었으니, Mulder에게 한 번 더 걸어 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 심리는 이해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1년 3-4M 정도에서 참았어야지... 어떻게 이런 거액의 계약을 안겨 줄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Mulder는 이후 2년간 총 12.2이닝을 던지는 데 그쳤고, 그 12.2이닝에서 무려 19실점을 했다.

(이거 이 재계약 발표할 당시의 모습으로 기억하는데....아아...)


2007/01/22  FA Ryan Franklin(RHP) 계약 (1yr/1M)    Good

Franklin은 1.24 BB/9의 훌륭한 제구력으로 80이닝에서 3.04 ERA, 3.96 FIP의 준수한 활약을 해 주었다.


2007/02/01  Preston Wilson(OF) 재계약 (1yr/1M)    Bad

Wilson은 68 PA에서 51 wRC+의 허접한 성적을 남기고 사라졌다.


2007/05/15  웨이버 클레임: Royals에서 웨이버 공시된 Todd Wellemeyer(RHP)를 데려옴    Good

Wellemeyer는 Royals에서 배팅볼을 던지다가 방출되었는데, 거의 밑져야 본전 식의 영입이었으나 결과적으로는 나쁘지 않았다. 이적 후 Wellemeyer는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3.11 ERA, 4.53 FIP를 기록했다. 2008년에는 아예 선발 로테이션에 자리를 잡고 리그 평균에 가까운 활약을 해 주기도 했다. 비록 2009년에는 완전히 맛이 갔지만...


2007/06/08  FA Troy Percival(RHP) 계약 (마이너)    Good

Percival은 엉덩이와 오른팔의 부상으로 인해 2005년에 고작 25이닝밖에 던지지 못했고, 2006년에는 아예 마운드를 떠나 Tigers의 스카우트로 일했다. 2007년에는 Angels와 pitching coordinator로 계약했으나, 현역 복귀를 결심하고는 시즌 중에 코치직을 그만두고 Cards와 마이너 계약을 맺었다. 그는 6월 29일에 메이저리그에 올라왔고, 이후 메이저 불펜에 머무르며 40이닝에서 1.80 ERA, 3.16 FIP로 아직 녹슬지 않은 기량을 보였다.

(Troy Percival)


2007/06/22  트레이드: Tigers에 PTBNL(Chris Lambert, RHP)을 보내고 Mike Maroth(LHP)를 받음   Terrible

로테이션이 엉망진창이다보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Maroth를 영입했지만, Maroth는 7번의 선발 등판을 포함하여 14번의 등판에서 10점대의 ERA를 찍으며 투수진의 상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2007/07/05  Ryan Franklin 연장계약 (2yr/5M)   Good

Franklin은 2008년 부상으로 맛이 간 Izzy를 대신하여 클로저가 되었고, 이후 2010년까지 무난하게 그 역할을 수행하였다. 구위가 썩 좋지 않다 보니 그렇게 믿음이 가는 클로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좋은 제구력을 바탕으로 자기 몫은 했다.


2007/07/31  트레이드: Red Sox에 Sean Danielson(OF)을 보내고 Joel Pineiro(RHP)를 받음    Good

망해버린 Maroth와 달리 Pineiro는 장기인 그라운드볼 유도를 통해 제 몫을 해 주었다.


2007/08/31  트레이드: Phillies에 PTBNL?을 보내고 Russell Branyan(3B)을 받음     Bad

이 딜은 PTBNL을 보내 주기로 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누가 갔는지 확인이 되지 않았다. 그냥 현금을 줬을 수도 있을 듯. 어쨌거나, DL을 들락거리던 Rolen 대신 3루에 기용하기 위해 영입한 Branyan이었지만, 39 PA에 나와 .614 OPS, 74 wRC+로 부진하여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총평. 


이 시즌은 소위 "World Series Hangover"가 잘 나타난 시즌이었다. 2006 시즌에 그다지 좋은 전력이 아니었으나 우승을 했고, Jocketty는 그 우승팀 멤버들과 대부분 재계약했다. 그 결과, 더욱 나이를 먹은 선수들은 부상과 부진으로 제 몫을 하지 못했고, 팀은 5할 승률 아래로 떨어졌다. 특히 이 시즌의 로테이션은 경기를 보는 것 자체를 고역으로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예를 들어 다음 3연전의 선발투수가 Kip Wells, Braden Looper, Anthony Reyes라고 하면, 도대체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로테이션은 Carp가 1경기 던지고 시즌아웃 된 것도 문제였지만, Kip Wells나 Anthony Reyes는 그냥 배팅볼 투수였고, 선발로 전환한 Braden Looper도 그저 간신히 이닝을 소화해 주는 정도였다. Mulder는 말할 것도 없고... 중간에 땜빵선발로 뛰었던 Brad Thompson이 Wells, Reyes, Looper, Mulder보다 믿음직할 정도였으니 말 다 했다. 타선에서도 Rolen과 Edmonds가 똑같이 91 wRC+로 부진했고, Kennedy는 5할대의 OPS를 기록했다. 500 PA를 넘긴 타자가 Pujols 단 한 명에 불과했을 만큼, 모든 주전들이 부상과 부진으로 점철된 시즌을 보냈다. 그나마 위안거리라면 Waino가 선발 전환을 성공적으로 마쳤다는 것, 그리고 타자로 전향한 Ankiel이 메이저리에 올라와 장타력을 뽐내며 팬들을 기쁘게 했던 정도인 것 같다.



시즌이 끝난 뒤, 구단주 Bill DeWitt Jr.는 Jocketty를 해고했고, 이렇게 해서 Jocketty의 단장 재임도 만 13년 만에 막을 내렸다. 그동안 정말 귀신같은 트레이드 실력을 뽐내며 팀을 NL의 강팀으로 군림할 수 있도록 했던 그였지만, 2006, 2007 두 시즌의 무브를 보면 슬럼프에 빠진 모습이기도 했다. 이 두 시즌에 체결된 가성비 나쁜 계약들은 이후 후계자인 Mozeliak의 초기 로스터 구성에 적잖은 부담을 지워 주었다.


지나고 나서 보면, 2007 시즌을 마치고 Jocketty가 Cards와 결별한 것은 양쪽 모두에게 윈-윈이었던 것 같다. Cards는 이후 Mozeliak이 단장이 되어, 초기에는 다소 삽질이 있었으나 이후 구단 내 갈등을 성공적으로 봉합하고, 2011년에는 월드시리즈를 우승하는 등 다시 NL의 강팀으로 우뚝 섰다. 이제는 ESPN이 Future Ranking에서 30개구단 중 1위를 줄 만큼 외부에서도 인정받는 상태가 되었다. 한편, Jocketty 역시 Reds의 단장으로 새출발을 하여 2010 시즌에는 15년 만에 Reds를 플레이오프에 진출시켰고, 작년에도 지구 우승을 차지하는 등 성공적으로 팀을 이끌고 있다. 현재 NL 중부지구의 최대 라이벌이 된 두 팀이 앞으로 어떻게 경쟁을 해 나갈지, 두 단장이 어떻게 팀을 구성하고 유지해 나가는지 지켜보는 것도 무척 흥미로울 것이다.




이로서 Walt Jocketty Years 시리즈를 마치고자 한다. 시즌 개막 전에 어떻게든 마무리하는 데 성공했다. Jocketty는 재임기간도 길었지만, 매번 트레이드와 FA에 많이 의존하는 스타일이다보니 무브가 워낙 많아서 정리하기가 만만치 않았다. 다음 오프시즌엔 좀 덜 빡센 시리즈를 구상해 볼까 한다. ㅎㅎㅎ

Posted by FreeRedbird
:
현재 모든 Cards 팬들의 관심은 Oswalt 계약의 성사 여부에 쏠려 있을 것 같은데, KMac을 팔아서 돈을 마련하려고 하고 있으니 오늘 내일 사이에 당장 결론이 날 것 같지 않다. 기다리는 동안 심심함을 덜기 위해서, 이 시리즈를 진행시키도록 하겠다.

지난 글 보기
2007-2008 오프시즌
2008 시즌


07-08 오프시즌과 08 시즌 중 무브는 대체로 좋은 쪽이 많았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분위기가 사뭇 다를 것 같다. 이 오프시즌은 시작부터 완전히 꼬이게 되는데, 정규시즌이 종료된 직후, 오프시즌 시작 첫날에 아래의 계약이 발표되었기 때문이다.

2008/09/29  Kyle Lohse과 연장 계약 체결, 4년/41M  (D-)
Mo가 왜 Lohse와 재계약을 했는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당시 로테이션은 지난번 포스팅에서 보았듯이 Looper, Wellemeyer등 허접한 투수들로 채워져 있었고, 그나마도 Looper는 FA가 되었다. 팜 내에는 아직 당장 메이저리그 로테이션에 투입할 만한 선발 유망주가 없었다. 마침 Lohse는 2008년 팀의 에이스 역할을 하며 3.1 WAR의 좋은 성적을 기록했고, 게다가 무척 팀에 남고 싶어 했다. 사실 Scott Boras의 클라이언트가 이렇게 일찍 계약을 체결한 것도 거의 유례가 없는 일이긴 했다.
재계약 추진 까지는 이해가 되지만, 여전히 계약 기간과 금액은 납득하기가 참 어렵다. 이 오프시즌은 리먼 파산으로 인한 경제위기의 영향이 본격적으로 나타났던 때였고, Texeira, Sabathia, Burnett 등을 마구 지르며 돈을 펑펑 쓴 Yankees를 제외하면 거의 아무도 감히 선뜻 거액의 계약을 체결하지 못하던 때였다. 이 오프시즌에서 Lohse보다 더 큰 규모의 계약은 위의 세 명 외에 Derek Lowe(ATL, 4년 60M)와 Ryan Dempster(CHC, 4년 52M) 정도가 거의 전부였던 것이다. 만약 1월까지 기다렸다고 해도, Lohse에게 이렇게 큰 계약을 안겨 줄 팀은 당시에 어디에도 없었을 것이다.
이 딜은 당시에도 이미 딜 자체로 오버페이였고(2008년의 커리어 하이 레벨을 계속 유지해야 정당화될 수 있는 딜이었으니 시작부터 오버페이였다), 침체된 FA 시장 분위기를 제대로 읽지 못했기에 더욱 더 오버페이였다. 물론 결과도 꽝이었는데, Lohse는 이후 2년간 부상으로 골골대면서 2년 합계 209.2이닝에 머물렀고, 2011년까지 3년간 4 WAR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게다가, NTC조항 때문에 지금 Oswalt의 영입 등을 통한 업그레이드에도 장애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말할 것도 없이, Mo의 가장 나쁜 무브 중 하나이다. 그나마 2011 시즌에 조금 부활해 주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F를 주었을 것이다.

2008/10/15  Waiver Wire에서 Charlie Manning을 픽업 (from Nationals)

2008/10/31  FA Jason LaRue와 재계약, 1년/0.95M  (C)
1년 전에 이어 다시 한 번, 백업 포수와 백업 포수 시세에 계약.

2008/12/03  FA Trever Miller와 계약, 1년/0.5M 옵션, 인센티브 포함시 최대 2M  (A)
0.5M의 베이스 연봉은 최저연봉을 조금 넘기는 수준이었으므로, 부담이 거의 없는 계약이었다. Miller는 09년 시즌에 9.48 K/9, 2.27 BB/9를 기록하며 LOOGY로는 훌륭한 수준인 0.5 fWAR을 기록하였다. Brian Fuentes와 계약을 못하고 Miller를 훨씬 싸게 잡았지만, 오히려 09시즌에서 Fuentes보다 Miller가 더 좋은 활약을 하였던 것이다.

2008/12/04  Mark Worrell과 Luke Gregerson을 Padres에 보내고 Khalil Greene을 받는 트레이드 단행  (C-)
이 딜은 좀 안타까운 딜인데... 당시에도 우완 릴리프 유망주는 비교적 여유가 있는 편이었고, 팀은 유격수가 필요했다. Khalil Greene은 많은 이들이 09시즌 리바운드 감으로 꼽고 있었고, 이 딜은 실제로 당시 Fangraphs의 Dave Cameron을 비롯하여 여러 분석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Greene이 Anxiety disorder에 시달리며 이렇게 공수에서 모두 폭망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한편, Worrell은 원래 투구폼 이외에 별 게 없는 투수였지만, Gregerson을 내준 것은 좀 아쉬웠다. 곧바로 메이저리그 불펜에 합류한 Gregerson은 리그 최고의 우완 불펜 요원으로 성장했던 것이다. 재목을 제대로 알아본 Padres 프런트의 승리였다.
난 지금도 이 딜의 시도는 좋았다고 생각한다. Mo는 이런 트레이드를 감행할 만한 이유가 있었고, 불펜투수 2명을 주고 괜찮은 주전 유격수를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은 분명히 나쁘지 않은 딜이다. 그러나, Greene의 상태가 생각보다 심각했다는 게 문제였고, 그리고 내준 유망주들의 재능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던 것 같다.
Greene은 다음 오프시즌에 Rangers와 계약하여 컴백을 시도했으나, 결국 Anxiety disorder를 극복하지 못하여 스프링캠프에도 합류하지 못하고 계약이 취소되었다. 이후 그의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2008/12/17  FA Joe Thurston과 마이너 계약  (D-)
이 계약은 분명히 depth move 였는데... Cards의 허접한 인필드 depth 덕분에 Thurston은 메이저리그 로스터에서 1년 내내 머무르며 무려 307 PA를 기록하기에 이른다. 기본적으로 타격, 수비, 주루가 모두 안 되는 데다가, 나는 여지껏 야구를 보면서 Thurston처럼 본헤드 플레이를 많이 하는 선수를 본 적이 없다. 안구에 너무 많은 쓰나미가 몰려오게 하였기에 F를 주고 싶지만, 마이너 계약이었음을 감안하여 D-를 주었다. 아무리 마이너 계약이라고 해도, 언젠가는 메이저리그에 올라올 수도 있는 것이니만큼, 최소한의 능력은 갖춘 플레이어를 영입해야 할 것이다.

2009/02/09  Adam Kennedy 방출(unconditional release)  (D)
Kennedy는 당시 3년 계약 중 마지막 1년을 남겨두고 있었으며, 2009년의 연봉은 4M이었다. 계약 당시 Kennedy는 친정팀에 돌아오게 된 것에 대해 큰 만족감을 나타냈으나, 부상과 삽질로 07, 08 시즌에 큰 활약을 하지 못하면서 분위기가 안좋아졌다. 2008년 시즌 도중 영입된 Felipe Lopez에게 2루 주전 자리도 내주게 되고, 벤치에서는 TLR과 계속 충돌하자, 결국 Kennedy는 시즌 종료 후 Mozeliak에게 트레이드를 요청하였다. Mozeliak은 윈터미팅에서 Kennedy의 트레이드를 시도하였으나 여의치 않았고, 어쩔 수 없이 Kennedy를 2009년 주전 2루수로 쓸 것임을 언급하게 된다. 그렇게 끝난 줄 알았는데... 뜬금없이 2월이 되어서 Kennedy를 방출해 버렸다.
이것은 구단에게나 선수에게나 황당한 일이었는데, 이미 대부분의 구단들이 2009 시즌에 대비한 전력 구성을 마무리하였고, FA도 별로 남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Kennedy는 이럴 거라면 진작 방출하지 왜 이제 와서 방출하냐고 격분하였는데, 그도 그럴만한 것이 2월에는 이미 그가 갈 만한 팀이 없었던 것이다. 이것은 구단도 마찬가지여서, Kennedy를 대체할 뾰족한 수단이 없어 보였다. 물론, 여기에는 Skip의 2루수 전환이라는 기상천외한 아이디어가 숨어 있었는데... 이 글 뒷부분에서 다루게 될 것이다.
어쨌거나... 갑자기 FA가 된 Kennedy는 결국 Rays와 마이너 계약을 맺었고, AAA에서 뛰다가 5월에 Athletics로 트레이드 된 뒤 메이저리그에 돌아올 수 있었다. 물론 Athletics는 최저연봉만 지불하면 되었고, 나머지 약 3.6M의 연봉은 모두 Cardinals가 부담하였다. Oakland에서 Kennedy는 05년 이후 최고의 성적을 올리며 1.8 WAR을 기록하기에 이른다.
이 무브는 여러 가지 문제를 보여주는데... 결과적으로 보더라도 Skip과 Kennedy의 2009년 기여 수준은 거의 같았기 때문에, 이 무브로 얻은 것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손실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3.6M의 sunk cost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TLR과의 충돌로 선수가 팀을 나가게 되었다는 것이 좋지 않았다. 이전 오프시즌에 Rolen이 같은 이유로 트레이드 되더니, 이번에는 Kennedy가 나가게 되었다. TLR 때문에 떠난 선수들이 도대체 몇 명이나 될까? 선수들과 싸워서 선수들을 몰아내는 감독을 좋은 감독이라고 할 수 있을까?

2009/03/05  FA Dennys Reyes와 계약, 2년/3M  (B)
Reyes는 Miller만큼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2009 시즌에는 어쨌든 LOOGY로서 자기 몫을 했다. 이 오프시즌에는 그다지 칭찬할 만한 무브가 없지만, Mo가 불펜, 특히 LOOGY에 오버페이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인정해 주어야 할 것 같다. 07-08 오프시즌의 Izzy 옵션 픽업 이후로, Mo는 불펜에 고액 연봉자를 두지 않고 있다.

기타 임팩트 없는 마이너 계약
Justin Knoedler
Ian Ostlund
Royce Ring

다음은 이 오프시즌에 FA가 되었지만 재계약을 하지 않고 그대로 내보낸 선수들이다.
Russ Springer(type A), Jason Isringhausen(B), Braden Looper(B), Juan Encarnacion, Felipe Lopez, Cezar Izturis, Ron Villone

구단은 Springer와 Izzy, Looper에게 모두 연봉 조정 신청을 하지 않았다. 했더라면 아마도 100% 받아들였을 것이므로, 좋은 선택이었다고 본다. (Looper가 type B라니 Elias 랭킹이 얼마나 엉망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머지도 별 불만은 없는데.. 유일한 아쉬움은 Felipe Lopez를 그냥 내보낸 것이다. 이렇게 Kennedy와 결별할 것이었다면, 차라리 Lopez와 재계약을 해서 2루수로 기용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다음은 연봉 조정 신청 대상자들이다.
조정 신청 후 재계약: Rick Ankiel, Chris Duncan, Ryan Ludwick, Brad Thompson, Todd Wellemeyer
Non-tender: Randy Flores, Tyler Johnson, Aaron Miles

별로 할 말은 없다. Aaron Miles는 이후 Cubs와 2년 4.9M의 계약을 맺어 우리를 놀라게 했다. Jim Hendry에 대해 이런 시리즈를 쓰게 된다면 얼마나 많은 D와 F를 주게 될지 궁금할 따름이다.


다음은 옵션이 있던 선수이다.
Option declined: Mark Mulder(11M option or 1.5M buyout)

이건 너무 당연해서 할 말이 없다.


그밖에... 이 오프시즌에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사건들이 있었다.

Brian Fuentes 계약 실패
08년 시즌 동안 별다른 전력 보강을 하지 않은 탓에 Mo는 많은 비판을 받았는데, 특히 Izzy의 삽질 이후 불펜의 공백이 도마 위에 올랐다. Mozeliak은 FA시장에 나온 Brian Fuentes 영입 경쟁에 뛰어들었는데, 2년 14M 수준의 계약을 제시했지만 Fuentes는 결국 2년 17.5M의 계약을 맺고 Angels에 합류하였다. 개인적으로는 실패해서 오히려 잘 되었다고 보았는데, 실제로 Fuentes는 이 계약 이후 그다지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Fuentes는 type A FA였으므로, 드래프트 1라운드 픽을 잃게 되어 실제로는 더욱 비싼 투수였던 것이다. Mariano Rivera 급이 아닌 이상, 1라운드 픽을 포기하고 잡아야 할 만큼 엄청나게 가치있는 구원투수는 거의 없다. 게다가... 09년 드래프트 1라운드 픽으로 우리가 누구를 건질 수 있었는지를 생각하면.. 이것은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는 것 같다.

Skip Schumaker 2루수 개조
이것은 정말 황당한 결정이었는데, Kennedy를 방출하고는 Skip을 약 6주의 spring training 동안에 2루수로 개조하여 주전으로 쓰겠다고 발표를 했던 것이다. Defensive spectrum을 거슬러 올라가는 대담한 시도였는데, 결과적으로는 리그 평균 코너 외야수였던 Skip이 -10 UZR/150 수준의 2루수가 됨으로써, Tom Tango에 의해 설정되고 Fangraphs가 적용 중인 positional adjustment(2루수 +2.5, 코너 외야수 -7.5)를 직접 증명한 셈이 되었다.
어쨌거나, 09년에는 Skip이 .364 OBP와 .336 wOBA를 기록하여 그나마 타석에서 밥값을 해 주었는데, 10년과 11년에는 타석에서 폭망하면서 허슬 외에는 아무 장점이 없는 선수가 되고 말았다. 게다가 그라운드볼 위주의 투수들 뒤에 Skip과 같은 안좋은 미들 인필더를 세운 것은 UZR 스탯으로 나타나는 것 이상으로 팀 성적에 악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생각된다. (직접적으로 수비에 불만을 표출한 것이 다른 투수도 아니고 Wellemeyer였다는 것은 좀 웃기는 일이긴 하다만...) Skip 개인에게는 커리어가 연장되는 효과를 가져왔겠지만, 구단의 입장에서는 역시 좀 더 안정적인 2루수를 쓸 수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추가) 2008/12/11  Rule 5 Draft에서 Luis Perdomo를 잃다  (F)
Mozeliak은 미드시즌에 Anthony Reyes를 트레이드하여 데려온 Perdomo를 40인 로스터에 포함시키지 않고 Rule 5 드래프트에 노출시키는 이상한 깡을 보여 주었는데, 결국 Giants가 지명하여 Perdomo를 잃고 말았다. 이후 Giants는 2009년 Perdomo를 마이너에 보내려고 DFA 했으나, 이때 다시 Padres가 클레임 하여 결국 Perdomo는 Padres 유니폼을 입게 된다. 물론 Perdomo가 이후 Gregerson처럼 훌륭한 투수로 성장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한때 구단 내 최고의 유망주였던 Reyes를 결국 AA 릴리버와 바꾸고, 그 AA 릴리버는 Rule 5 드래프트에서 잃어버리는 꼴이 너무나도 한심했을 뿐이다. 게다가, 당시 40인 로스터에 좀 더 허접한 Matt Scherer가 포함되었음을 생각하면 더욱 어어없는 결과이다.


이 오프시즌은 1년 전에 비해 여러 가지로 아쉬움을 많이 남겼다. Trever Miller 계약이 가장 높은 점수를 받고 있으니 뭐 말이 필요 없을 것이다. 애초부터 뻘짓인 무브들도 여럿 있었고, 게다가 그나마 당시에 괜찮은 평을 받았던 Khalil Greene 무브조차 결국 망해 버렸다. Greene 딜이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Lohse 장기계약이나 Thurston 영입 같은 일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상위 마이너리그의 depth 확보가 필수적임을 알 수 있다. 팜 시스템은 수퍼스타를 배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팀 전력에 아쉬운 부분이 있을 때 그것을 적절히 메꿔 주는 것도 무척 중요하다. 아직까지도 미들 인필드의 depth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는데... 그나마 올해는 Descalso, Tyler Greene 등 내부 경쟁이 주가 될 것 같으므로, 제 2의 Thurston을 볼 일은 없을 듯하다.
Posted by FreeRedbird
:
(주: 이 글은 Viva El Birdos에 올라온 Chuckb의 글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은 것임을 밝혀 둔다.)


지난 오프시즌에 Cardinals는 1년 계약이 남아 있던 Adam Kennedy를 방출 조치했다. 물론 남아있던 연봉 4.5M은 방출되더라도 계약대로 전액 지불해야 했다. (영어로는 "the team decided to eat his salary" 라고 표현한다. 연봉을 먹어 버리기로 결정했다니... 재미있는 표현이지 않은가?)


Adam Kennedy(오른쪽) : 올 시즌 오클랜드에서 .323/.397/.508로 펄펄 날고 있다. 물론 BABIP가 .346으로 운이 따르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이것 참... -_-;;

Kennedy는 이후 아무도 메이저 계약을 제안하지 않아 결국 Tampa Bay Rays와 마이너 계약을 맺었고, 그리고도 다시 Oakland A's로 팀을 옮겨야만 했다. 즉 오프시즌에 Cardinals가 그를 트레이드하고 싶었더라도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의미가 된다. 어쨌거나, 타석에서는 별 도움이 안되는 Kennedy였지만 수비는 꽤 안정적이었기에, 그가 떠난 빈 자리는 제법 커 보였다. 팀 내에 2루수라고는 2008년에 타석에서 완전히 삽을 푼 Brendan Ryan이나 아마도 AAAA 플레이어로밖에 생각되지 않는 Jarrett Hoffpauir, 저니맨 듀오 Brian Barden/Joe Thurston 정도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팬들 사이에서는 FA였던 Orlando "O-Dog" Hudson과 계약을 하거나 트레이드로 Kelly Johnson, Ben Zobrist 등을 데려오는 아이디어들이 많이 나왔으나... 구단 프런트는 2루수를 외부에서 영입하는 대신 아주 참신한 해결 방법을 고안해 냈다. 외야수 Skip Schumaker를 6~7주간의 Spring Training 동안 지옥훈련을 시켜서 2루수로 개조하는 것이었다...!!!


"2루수" Skip Schumaker의 수비 장면

이 방법은, 1. 안그래도 남아도는 외야수의 숫자를 줄이고, 2. 2루수 빈 자리를 메꾸며, 3. 마땅한 다른 리드오프 후보가 없는 상황에서 Skip Schumaker를 계속 라인업에 포함시켜 리드오프로 활용할 수 있다.. 는 1석 3조의 방안이었다. 문제는 과연 2001년 프로 데뷔 후 8년 동안 한 번도 내야 수비를 해 본 적이 없는 외야수 Skip Schumaker가 겨우 6주만에 쓸만한 메이저리그 2루수로 전업하는 일이 가능한가였다.

Schumaker는 다행히 그럭저럭 괜찮은 운동신경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었고, 그라운드에서는 항상 몸을 던져서 최선을 다하는 허슬 플레이어이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팀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하겠다는 적극적인 자세가 이러한 모험을 감행하게 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여기에는 아마도, 성공적으로 2루수가 되면 훨씬 더 긴 메이저리그 커리어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본인 나름의 계산도 있었을 것이다. 그의 타격 능력은 코너 외야수로는 좀 부족하기 때문에...

이제 시즌이 개막한 지도 2개월이 지났다. 팀을 위해 2루를 맡아서 열심히 뛰는 모습은 아름답긴 하지만... 과연 이 실험은 잘 되고 있는 것일까?

그의 수비 실력을 보면...
UZR/150 : -24.5 (NL 최하위)
RZR : .777 (NL 뒤에서 3등)


공신력을 고려할 때 Fielding Bible의 +/- 도 참고하면 좋겠지만 이쪽은 유료 컨텐츠여서... 공짜로 볼 수 있는 숫자는 이정도이다. 하나는 꼴등, 하나는 뒤에서 3등이라니 설명이 필요없는 한심한 수준이지만, 올해 처음 2루수를 맡게 되었음을 감안하면 이 정도는 처음부터 각오했어야 한다.

그렇다면 그의 공격력은? 수비에서 까먹는 점수를 공격에서 벌어야 얘기가 되는데...

현재까지 올 시즌 타격 성적을 보면... .280/.327/.386 으로 OPS는 .713이다. 규정타석을 채운 NL 2루수 13명 중 9위에 해당하는 실망스러운 성적이다. 세이버 스탯을 보아도 wOBA는 .314에 불과하고, wRAA는 -2.9로 음수이다. 즉 타석에서도 점수를 까먹고 있는 것이다...!!

Fangraphs는 참 편리하게도 선수마다 공격과 수비를 모두 반영한 Win Value 값을 자동 계산해서 보여주고 있다. (이런 숫자들이 공짜로 인터넷에 공개되어 있다는 것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시즌이 두 달 지난 시점에서 Schumaker의 Win Value를 보면... RAR이 -6.4, WAR이 -0.6이다. 1년 내내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대략 WAR -2 정도가 될 것이다. 이것은 AAA나 웨이버를 통해 듣보잡 선수를 2루에 기용하는 것과 비교해서 오히려 1년에 2승을 까먹고 있다는 뜻이 된다...!!!  OTL....

굳이 세이버 스탯을 보지 않더라도, 현재 Cardinals 팀 타선에서 Schumaker의 역할은 리드오프인데.. 1번타자의 OBP가 .327에 불과하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안그래도 Duncan, Ankiel, Ludwick 등의 집단 삽질로 팀 전체가 빈곤한 공격력을 보여주고 있는데... 1번타자가 출루마저 못하고 있으니 점수를 낼 수가 없다. Pujols 혼자 타격을 다 맡아서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참신한 시도였고, 의미있는 실험이었지만...
이제 그만 할 때가 된 것 같다.

올 시즌 컨텐더로 남아 있고 싶다면, 외부에서 좋은 2루수를 영입해서 전력을 보강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적절한 트레이드 상대를 찾지 못한다면, 단순히 Brendan Ryan을 2루에 주전으로 기용하고 Schumaker를 외야 유틸리티로 돌리는 것만으로도 수비에서 많은 업그레이드가 있을 것이다. 이정도만 해도 연말까지 적어도 1~2승은 더 거두게 될 듯 한데, 컨텐더에게는 1~2승의 차이도 치명적일 수 있는 것이다.
Posted by FreeRedbir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