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jdzinn

 

 

'I will own that. That's on me'??

 

왕도 아닌 주제에 '군왕은 무치'임을 실천하는 천외천의 존재가 이런 발언을? 병갑이가 이렇게 온전히, 깔끔하게 책임을 인정하는 모습은 처음 본 것 같다. 모든 트레이드의 평가엔 시간이 걸린다. 유망주간의 트레이드라면 더더욱. 하지만 Arozarena-Liberatore 딜은 하늘 밖의 존재가 몸소 땅으로 내려올 만큼 처참하다. Arozarena가 정말 터진 것인지, Liberatore가 어떤 선수가 될지 아무도 모른다. 트레이드의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어떤 나비효과가 발생할지 또한 아무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 딜은 이미 망했다. 에둘러 표현했지만 병갑이는 이미 패배를 선언했고, 여기엔 Liberatore가 Mark Mulder가 아니길 바랄 뿐이란 희망이 내포돼 있다. 그냥 살다보면 있다. 패를 까보기도 전에 이미 망한 레이스가 말이다.

 

  Rays get Randy Arozarena, Jose Martinez, Compensation A(37, Alika Williams)

  Cardinals get Matthew Liberatore, Edgardo Rodriguez, Compensation B(63, Tink Hence)

 

'카즈 타선의 멸망은 institutional failure, 즉, 조직 전체의 실패'란 취지의 글을 쓴 적이 있다(링크). 그게 2015년 여름이었으니 병갑이 주댕이를 통해-'We will revisit how we rank our own players'-확인하기까지 4년 반이 걸린 셈이다. 영감과 병갑이가 짬짜미 먹고 어용이 피의 쉴드를 쳤던 그 4년 반 동안 Grichuk이 망했고, Piscotty가 망했고, Fowler가 망했고, Ozuna 딜이 망했으며, Goldy도 망할 예정이다. 반면, Pham은 여전히 잘 치고, Voit은 여실히 잘 치며, 투타 할 것 없이 보낸 놈들은 웬만하면 '믿고 쓰는 카즈산'이 돼버렸다. 아주 수출 역군 나셨다.

 

Arozarena 딜은 그 모든 실패의 연장 선상에서 화룡점정이 될 예정이다. 리그 최악의 타선을 모면키 위해 '코어 찾아 삼만리'를 펼쳤건만 정작 코어는 우리 손에 있었고, 지금은 다 남의 손에 넘어갔다. 매부리코가 선녀로 보이는 현실에서 너드 타코는 연임됐고 'Lane Thomas는 짱입니다', 'Bader는 프랜차이즈의 새로운 얼굴'이란 소리만 휴지통 소리처럼 메아리친다. 현실은 그렇다 치고 미래는 누구에게 의탁할 것인가? Carlson은 준수한, 혹은 훌륭한 조각이 될 테지만 플로어와 실링이 붙어 있다. Gorman? 업사이드는 확실하나 아직 해먼스 탁구장 문턱도 못 가본 데다 여름에도, 겨울에도 선풍기 다이얼이 '강풍'에 고정된 녀석이다.

 

기회비용은 또 어떠한가? 플레잉타임은 엉뚱한 선수에게 갔고 최저연봉은 고액 먹튀로 대체됐다. 연쇄작용으로 오랜 인내 끝에 이제야 사람구실 하게 된 Wong이 방출됐고, 필드 안팎에서 여전히 팀의 Heart & Soul인 야디/웨이노는 다른 팀 유니폼을 입고 은퇴할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남은 것이라곤 '골드글러버 O'Neill의 갑바가 단단합니다!', '출루왕 Goldy의 에이징커브가 우아합니다!', 'Carp에게 CPR을!' 같은 기도메타 뿐이다. 이 팀은 Pham, Voit이 중심을 잡고 DeJong, Edman이 보좌하며 Carlson이 조각을 맞추고 Arozarena가 쐐기를 박을 수도 있었다. 복권은 복권대로 긁고 FA 시장에서 뒷짐 지지 않으면서. 결과론에 기댄 가정일 뿐일까? 물론이다. 공정하지 못한 가정이다.

 

하지만 리그 최악의 타선을 갱생시킬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이 Arozarena였음은 분명한 팩트. 2018년까지만 해도 인마에 대한 블로그의 평가는 병갑이와 마찬가지로 썩 우호적이지 않았다. 대부분의 평가자 리스트 탑10에서 이탈했으며, 그나마 툴/업사이드 성애자인 필자가 딱 10위에 랭크했으나 '얜 정말 모르겠다'가 만장일치 컨센서스. 하나 2019년엔? 모든 평가자의 리스트에서 탑10에 복귀했으며 심지어 yuhars님은 2위, '왜 기회를 안 줬는지 모르겠다'가 컨센서스였다. 물론 그 기회가 타선 갱생의 '마지막 기회'일 줄은 아무도 몰랐다. 대가가 Liberatore라는 데 불만을 가진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과거는 참혹했고, 현재는 고통스럽고, 미래는 심봉사 시력과 일치하는 타선에서 잃어버린 이 '마지막 기회'란 너무 아프지 않은가. Voit과 달리 아예 긁어보지도 못해 한층 쓰라리지 않은가 말이다. Liberatore가 터지든 말든 어차피 투수진은 돌아간다. 그리하여 Arozarena 딜은 그 대가와 관계없는 독립변수로서 이미 오답이었던 것이다. 공정은 동북에서나 찾아라 병갑이 개객기야.

 

Scouting Liberatore

 

[리버ㄹ토어]가 맞다. [리베라토레]의 간지력이 높지만 이태리에서 공 찰 것도 아니고 [그란데우르], [현다이]와 다를 바 없으니 자제하도록 하자.  

 

2018년 1라운드 16번픽. 꺽다리 해머커브 성애자인 필자의 최애 드래프티 중 하나. 고딩 좌완 최대어로 BA 2위였는데 왜때문인지 16번까지 미끄러짐. 우리보다 딱 세 칸 앞에서 Rays가 스틸. '하필 Arozarena에 A픽까지 주냐' 했지만 왠지 도둑 맞은 듯했던 최애 드래프티라 영입 자체엔 쾌재.

 

 

2019

2020

BA

58

42

BP

N/A

50

Fangraphs

71

94

Pipeline

71

52

 

당연히 순위가 떨어졌을 줄 알았는데 좀 놀랐다. 드랩에서 미끄러진 영향이 2019년에, A볼에서 풀시즌 치른 영향이 2020년에 반영된 것 같다. 전체적으로 Top 70에서 Top 50 유망주로 상승했다는 게 컨센서스. 유독 팬그래프만 Top 100급으로 하향 조정했는데 필자의 의견도 이와 같다.

 

트레이드 이후 각종 비디오와 밀브티비 아카이브를 통해 확인한 Liberatore의 퍼포먼스는 한 마디로 실망스러웠다. 91-94에서 형성되는 싱킹 패스트볼은 드랩 때 영상에 비해 확연히 퀄리티가 떨어졌다. 구속도 구속이지만 무브먼트도 특출나지 않고 고레벨에서 많은 헛스윙을 유도하기에 무리가 있다. 키만 컸지 짧은 스트라이드에 꼿꼿한 상체로 던지니 그럴 수밖에. 쓰리쿼터 암슬롯에서 나오는 릴리스 포인트는 뒷쪽에 형성돼 있으며 그마저 들쭉날쭉하다. 당연히 존에 적당히 욱여넣는 컨트롤도 불안정해 '성숙한 고딩'이란 평가가 무색하다. 일반적 평가는 FV 60이지만 필자가 보기에 이 공은 50을 넘지 못한다.

 

12-6 해머커브는 광고된 것과 같이 훌륭한 브레이크와 뎁스를 자랑한다. 말 그대로 엉클 찰리. 스캠 레벨의 타자들조차 이 공을 처음 접하면 엉덩이가 빠지고 둠칫 프리징에 걸리기 다반사. 문제는 어디까지나 '처음 접했을 때'에 한정된다는 것이다. 구종 자체 퀄리티는 65지만 평범한 패스트볼과 불안정한 컨트롤로 인해 두 번째 볼 때부턴 오히려 집중 공략 대상. 타자들은 타이밍을 한 템포 늦춘 뒤 대놓고 이 공을 노린다. 패스트볼은 그때그때 대응하면 그만이고 나머지 보조구질은 구리기 때문. '체인지업에 대한 감이 좋다', '슬라이더 발전 가능성이 보인다'는 결국 '구리다'는 뜻이다. 그런 말은 Gomber 정도 됐을 때나 유의미하지 이 경우엔 착한 말 쓰기 캠페인이나 다름없다.

 

경험이 일천한 Liberatore는 잘 들어간 주 무기가 맞아 나가니 영문도 모른 채 당황한다. 그리하여 주자가 나가면 밸런스가 수시로 무너지고, 릴리스 포인트가 더욱 불안정해지며, 자연스럽게 주자가 쌓이면 어쩔 수 없이 또 커브에 의존한다. 타자가 기다리고 있는 바로 그 공. 이 꼴을 보고 있노라면 'pitchability, maturity가 강점이라고??' 소리가 절로 나온다. 작년 여름의 멜트다운은 단순 체력 방전이 아니라 공략집 유출에 기인한 바 클 것이다. 그리고 이는 카즈 팬에겐 너무나도 익숙한 퍼포먼스. 주인공은 바로 우리의 리빙 레전드 Adam Wainwright이다.

 

Liberatore = Wainwright

 

정확히는 아킬레스 부상에 에이징커브가 겹친 갱생 전의 Wainwright 되겠다. 히마리 없는 88마일 싱패, 무뎌진 커터, 무뎌진 컨트롤의 당시 웨이노는 커브에 강하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공략집 들고 있는 타자에게 통할 리 만무하니 결과는 '국물이 끝내줘요' 육수 피칭. 싱패 구속만 91~94로 바꾸면 pre-2020 Liberatore(코로나 때문에 지금 상태를 알 수 없으니)와 정확히 일치한다. 시즌 막판 Arozarena가 활약하기 시작하니 '여름 캠프 Liberatore'가 스텝업했다는 언플(?)이 횡행하던데 참트루는 내년에 까보면 될 일이다.

 

재밌는 건 갱생 전 Wainwright이 Memphis 시절 Wainwright과도 일치한다는 것이다. Braves와의 대형 트레이드 이후 Memphis에서 2년을 풀로 보낸 웨이노는 어깨 건염에 시달렸고, '저 떡대면 오르겠지' 했던 구속은 계속 low 90에 머물렀으며, 써드피치가 마땅치 않아 커브로 연명했다. 즉, pre-2020 Liberatore=갱생 전 Wainwright=Memphis Wainwright이란 공식이 성립한다. 둘의 프로필은 놀랍도록 유사하다. 꺽다리, 해머커브, 해롱해롱 써드피치, '어쨌든 pitchability/maturity가 좋다'는 평가, 1라운드에 뽑았으나 기대 이하&하향세라 원소속팀에서 빠르게 손절했다는 것까지 오른손/왼손만 바꾸면 정말 똑같다.

 

Arozarena 딜이 이미 망했으므로 이 공식은 우리의 정신승리에 매우 유익하다. 심청이와 바꿔 먹은 공양미 삼백 석이 고작 '업사이드 있는 미드로테이션 유망주'여선 곤란하다. 인체는 자동으로 고통을 회피하도록 설계돼 있다. 조롱과 자조의 의미로 널리 쓰이는 '정신승리'는 사실 건강한 그린뉴딜 에코시스템인 것이다. '안 들려 안 보여 어쨌든 웨이노'라 하면 한결 들뜨고 가슴이 웅장해지지 않나  이ㅅㅂ 병갑이 개객기야...  

 

Liberatore ain't Wainwright

 

프런트라이너 포텐이었던 Wainwright은 미드로테이션/하위선발 유망주로 강등됐다가 기사회생, 원래 포텐이었던 프런트라이너를 넘어 리그 에이스 레벨에 도달했다. 쌍둥이 프로필의 웨이노보다 빠른 구속과 구속 상승 가능성, 그리고 왼손을 가진 Liberatore라면 조건은 오히려 낫다. 그렇다면 무엇을 바꾸고 보완해야 할까?

 

먼저 패스트볼. 최전성기에도 웨이노의 패스트볼 스터프는 특출나지 않았다. 대신 칼날 같은 커맨드가 있었고, 커터를 최상급으로 발전시켜 커브보다도 구사율을 높였다. Liberatore에겐 두 가지 길이 있다. 웨이노를 복제하거나 구속을 올리거나. 드라이브가 부족한 딜리버리, 103마일짜리 Hicks의 싱패조차 구속 만큼의 위력은 아니라는 것, 무엇보다 웨이노라는 성공 사례를 종합했을 때 전자가 옳은 방향으로 보인다. 하지만 커맨드, 써드피치를 플러스~투플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는 점에서 허들 높이는 후자가 훨씬 낮다(필연적으로 업사이드도 줄어들 것). 실제로 최근 불펜 피칭 영상을 보면 후자로 방향을 잡은 것 같다. 익스텐션은 대동소이하나 힙턴이 가미돼 공에 힘이 붙어 보인다(카메라빨일 수도).

 

써드피치는 글쎄. 인마의 체인지업/슬라이더가 발전하면 뭐 얼마나 발전할까 싶다. 있던 구종이 드라마틱하게 발전하는 케이스는 흔치 않다. 현실적으로 Gomber, Helsley 정도만 해도 보조구질을 잘 키운 편인데 아시다시피 그냥저냥이다. 뭔가 딱 브레이크아웃하는 케이스를 보면 대부분 답은 커터에 있다. 리그 에이스로 올라설 때 웨이노가 그랬고, 올해 Corbin Burnes가 그렇고, 집 나간 Gallen도 그렇다. 좌완으로 한정해도 2015년 반짝 갱생했던 Jaime가 그랬고, 포심에 의문 부호가 붙어 있던 광현이는 왜때문인지 그게 '커터성'이라 하고, 최상급 체인지업을 보유한 류현진도 커터를 넣고 안 넣는 게임플랜이 확연히 다르며, 2010년대 독보적 투수인 Kershaw마저 커터 비중을 지속적으로 늘렸다. 필자는 '사우스포라면 슬라이더를 던져야 한다'고 거의 강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인데 결국 슬라이더나 커터나 한 끗 차이. 긍께 함 바꿔봐. 비록 Liberatore가 슬라이더 장착한 지 얼마 안 됐다고 하나 그닥 각 잡히는 상황이 아니다.

 

다 떠나서 둘이 서로의 복제인간이라 해도 Wainwright에겐 있고 Liberatore에겐 없는 게 있다. 아부지와 마누라. 웨이노는 Chris Carpenter Jr.라 불러도 좋을 만큼 그의 모든 걸 흡수했다. 경기를 준비하고 운영하는 방법부터 구종과 그 구종들의 mix % match, 마운드 위에서의 올드스쿨 불독 마인드까지. 필드 바깥에서의 성격은 판이했지만 야구 내적으론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 할 정도로 빼다 박았다. 게다가 웨이노에겐 커리어 전부를 함께한 금실 좋은 마누라도 있다. 80 메이크업, 80 수비력, 80 스태미너로 명전 첫 턴 입성이 유력한 철의 마누라. 반면, Liberatore에겐 누가 있는가? 야디/웨이노를 만날 수도 있겠지만 아주 운이 좋아야 잠시 스쳐 가는 정도일 것. 사우스포 베테랑이라면 광현이가 있는데 얘랑은 스치기도 어려울뿐더러 대화라고 해봤자 '두 유 노우 BTS?'가 고작이다. 불펜이지만 Miller? 슬라이더 그립이라도 배우면 좋겠지만 현실은 노조 등에 업고 연봉 먹튀하는 방법이나 전수할 듯. 결국 Flaherty가 투수진의 리더가 될 텐데 그 가짜놈에겐 아가리 파이팅이나 안 배우면 다행이다. 없다. 멘토 따위. 그럼 처복이라도? 뭐 누구 Knizner? Herrera? 아니면 같이 넘어온 Edgardo? 됐다. 접자. 인마는 아주 높은 확률로 홀아비가 될 것이다.

 

얼마 전 VEB의 Red Baron이 'Matthew Liberatore: John Mozeliak’s Adam Wainwright'이란 글을 썼는데 프로필의 유사함을 언급한 부분은 이 글과 거의 일치한다. 드랩 당시 Libby의 광팬이었다는 것도 똑같다. 하지만 필자는 Red Baron처럼 밑도 끝도 없이 그린뉴딜 에코시스템을 가동하진 못하겠다. 현시점 Liberatore의 정확한 위치는 '미드로테이션 유망주'이며 드랩 당시의 포텐을 회복해 Wainwright의 길을 가리라는 어떠한 맥점도 포착된 바 없다. 고아에 홀아비 신세일 가능성이 높아 외부 환경도 결코 우호적이지 않다. 비슷한 내용에 다른 결론이므로 이 글의 부제는 'Matthew Liberatore: John Mozeliak's Dan Haren'쯤 되겠다. 사실 웨이노 같은 팀 레전드를 컴패리즌으로 설정했다는 자체가 유망주에겐 너무 가혹한 처사다. 그러나 Arozarena의 발광이 도를 넘은(?) 지금, 우리는 Liberatore에게 성공의 허들을 높이라고 강요할 수밖에 없다.

 

그래 병갑아. 니 말대로 다 니 탓이다. 근데 넌 책임을 주댕이로 지냐 이 방새야??

 

Burn Mozeliak, Burn!

Posted by jdzi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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