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2일은 Cardinals의 레전드 Red Schoendienst의 91번째 생일이다. 그의 생일을 기념하여 UCB 차원에서 다같이 특집 포스팅을 하게 되었다. 세대차이가 너무 나다보니 비록 그가 플레이하는 모습을 본 적은 없으나, 요즘도 매년 스프링캠프에 어김없이 나타나 까마득한 후배들에게 배팅볼을 던져주며 일일이 조언을 해주곤 하는 이 위대한 인물에 대해 이 기회를 빌어 간단히 소개하는 글을 써 보고자 한다.



Red Schoendienst(발음은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쉐인딘스트" 라고 한다)는 1923년 2월 2일에 일리노이 주 Germantown이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Red는 물론 닉네임이고, 본명은 Albert Fred Schoendienst이다. 1942년, 그는 트라이아웃을 거쳐 Cardinals와 계약하였고, 이후 2년간 마이너리그에서 뛰다가 1943년 말에 군대에 징집되었다. 그러나, 군에 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왼쪽 눈과 어깨 부상으로 의사 제대를 하기에 이르렀다.


원래 우타자였던 그는 왼쪽 눈 부상 때문에 우완투수의 공을 제대로 볼 수 없게 되었는데, 이에 굴하지 않고 반대쪽 타석에서 타격 연습을 하여 아예 스위치히터로 변신하였다. Red는 1944 시즌 당시의 AA팀이었던 Rochester Red Wings에서 .373/.443/.500 이라는 뛰어난 성적을 기록하였고, 결국 1945년에는 풀타임 메이저리거가 되었다. 메이저 데뷔 시즌에 그가 기록한 26개의 도루는 NL 1위의 기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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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시절의 Red, 사진: George Dorrill)


데뷔 시즌에 좌익수, 유격수, 3루수 등 여러 포지션을 전전한 뒤 이듬해인 1946년 2루에 정착한 그는 안정적인 수비력으로 팀의 월드시리즈 우승에 기여하였다. 커리어 내내 메이저리그 최고의 2루 수비로 명성을 떨쳤으며, 올스타전의 단골 손님(올스타 10회 선정)이기도 했다. 초기에는 주로 수비력으로 인정 받았지만, 타격 능력도 점점 더 발전하여 1940년대에 6할대 OPS에 70-80 wRC+를 기록하다가 1951년에는 95 wRC+, 1952년에는 111 wRC+, 1953년에는 134 wRC+까지 올라가기에 이른다. 1953 시즌 그의 slash line은 .342/.405/.502 였는데, 홈런도 커리어 하이인 15개를 기록했다. 타석에서 그의 최대 장점은 엄청난 컨택 능력이었는데, 커리어 삼진/타석 비율이 고작 3.8%에 불과하며, 1957년에는 2.2%(694 타석에서 15 삼진)라는 경이적인 수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커리어 통산 볼넷/타석 비율은 6.6%로, 볼넷이 삼진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많다.


1956년, 그는 시즌 도중 New York Giants로 트레이드 되었고, 이듬해인 1957년에는 Milwaukee Braves로 다시 트레이드되었다. 이 시즌 그는 예의 뛰어난 수비와 함께 타석에서도 118 wRC+의 준수한 성적을 올리며 Braves를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는 Braves의 첫 번째 월드시리즈 우승이었다.) 그러나, 1958 시즌 후 그는 폐결핵 진단을 받았고, 폐 절제 수술로 인해 1959년을 날리게 된다. 1960 시즌에 필드에 돌아오긴 했으나 이제 더 이상 과거와 같은 모습은 아니었고, 결국 시즌 종료 후 Braves에서 방출되었다. Red는 커리어를 시작했던 Cardinals에 복귀하여 주로 대타 요원으로 활약하였는데, 대타로서의 통산 타율이 .304에 이를만큼 전문 대타 요원으로 우수한 모습을 보였다.


1963년, 그는 은퇴와 동시에 Cards의 코치가 되었고, 1964년 월드시리즈 우승 후 당시 감독이었던 Johnny Keane이 사임한 뒤에는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그는 1976년까지 12년 동안 감독으로 재임하였으며, 이 기간 동안 Cards는 1967, 1968 두 차례 NL 1위를 차지하였고, 이중 1967년에는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하였다. 그는 1980년과 1990년에도 잠시동안 임시 감독을 맡기도 했는데, 감독으로서의 총 재임 기간은 Cardinals의 긴 역사를 통틀어 Tony La Russa에 이어 2위에 해당한다. 감독으로서의 그는 철저한 기본기와 경기에 임하는 마음가짐을 강조하는 원칙주의자이기도 했지만, 작전지시를 많이 하지 않고 선수들을 믿어주는 player's manager로 선수들의 존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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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시절의 Red, 사진: UPI Telephoto)


1976년 시즌을 72승 90패로 마친 뒤 해고된 그는 이후 2년간을 Athletics의 코치로 지낸 뒤, 1979년 다시 Cardinals로 돌아와 "Special Assistant Coach" 및 "Special Assistant to the General Manager"가 되었다. 이 직함은 현재까지도 유지되고 있는데, 레전드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주어지는 단순한 명예직이 절대 아니다. 그는 여전히 스프링캠프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선수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보며 일일이 지적을 해 주는 현역 코치이며, 시즌 내내 단장과 감독에게 직언을 하고 있다. 90 평생을 야구장에서 보내 온 그의 통찰력과 지식,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겸손한 태도는 선수부터 코칭스탭, 프런트에 이르기까지 모두를 귀 기울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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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 & Mo, 사진: USA TODAY)


다음은 Yahoo의 Scott Wuerz가 전해주는 일화이다.


Tony La Russa가 Cards 감독을 처음 맡았을 무렵, 하루는 스프링 트레이닝의 연습게임에서 허접한 경기를 한 끝에 패했다. 그날, Bob Gibson과 Lou Brock이 TLR의 사무실에 쳐들어와 "Cardinals는 스프링캠프의 연습경기나 월드시리즈 7차전이나 똑같이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열과 성을 다해 플레이해야만 하는 팀"이라고 일장연설을 늘어놓았다. 당시 이미 월드시리즈 우승 경험도 있고 감독으로 연륜이 꽤 있었던 TLR에게 있어서 이것은 무척 황당한 사건이었던지라, 그는 좀 더 고참인 Red Schoendienst를 찾아가 "이 사람들 좀 오지랖 떨지 못하게 막아 주세요" 라고 부탁을 했다. 그러자 Red가 윙크하며 대답하길, "그 친구들을 당신에게 보낸게 누구일 것 같소?"


(Red & TLR, 사진: The Cardinal Nation)


Red는 안정적인 2루 수비로 인정받긴 했지만, Stan Musial이나 Bob Gibson처럼 압도적으로 훌륭한 퍼포먼스를 보인 선수는 아니었다. 19년의 메이저리그 커리어 동안 그의 통산 slash line은 .289/.337/.387로 그렇게 뛰어난 수준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커리어 fWAR은 37.4, bWAR은 42.2로 역시 아주 인상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그에게는 남들과는 정말 차원이 다른 꾸준함이 있다. 1945년에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이래, 그는 68년 동안 선수, 감독, 코치로서 계속 메이저리그 유니폼을 입어 왔다. 그것도 Giants와 Braves에서 선수생활을 한 1956년 중반-1960년과 A's에서 코치로 지낸 1977-78년을 제외하면, 무려 62년 동안이나 Cardinals 유니폼을 입고 필드에 나간 것이다. 이 기록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으로, 그는 올해의 스프링 캠프에도 어김없이 나타나 아침 일찍 출근하여 선수들에게 배팅볼을 던져줄 것이다. 이런 분이야말로 "살아있는 전설"이 아닐까...?


(사진: STLTODAY)


Happy Birthday, Red...!!



<스탯 링크>

선수 커리어 스탯: Baseball-Reference, Fangraphs

감독 커리어 스탯: Baseball-Reference

Posted by FreeRedbi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