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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3.04 Revisiting TLR ERA [14] 조연 모듬 - Part I 26

Ankiel 편에서 분위기가 너무 무거워졌던 것 같아 이번에는 TLR 시대의 쩌리 모듬을 준비해보았다. 아니, 쩌리라는 표현보다는 아무래도 TLR 시대의 "영광스런 조연들"이 조금 더 어울리려나? 이 모듬에 이름을 올릴만한 많은 선수들이 있지만 스크롤 압박 상 이번 포스팅에서는 필자 재량껏 4명만 추려보았다.


Craig Paquette 

Corner Infielder, Outfielder

DOB: 1969년 3월 28일 

Birth: Long Beach, CA

Time with Cardinals:  1999-2001


Craig Paquette은 대단할 게 없는 공격력과 평균 이하의 수비력을 지녔던 유틸리티 플레이어로, TLR 초 여러 포지션에 땜질을 하러 뛰어다니며 수고했다는 점을 높이 사서 이 리스트에 포함시켰다. 1989년 드래프트에서 A's에 8라운드에 지목되며 프로 생활을 시작했고, 본 포지션인 3루수만 맡아서는 경쟁력이 없었기에 유격수, 2루수, 코너 외야 등 많은 곳에서 수비 경험을 쌓았다. 1995년까지는 AAA와 ML레벨을 오가며 굉장히 애매했으나, 1996년 Royals에서 22홈런을 때리면서 처음으로 이름을 알렸다. 1998년 Mets 유니폼을 입었으나 부상과 부진으로 전혀 자리를 못잡고 방황하다가 1999년 7월 31일 데드라인 직전에 Cardinals 로 트레이드되었는데, 이 인연으로 이후 3시즌간 Fernando Tatis, Mark McGwire 등의 부상 때마다 이곳 저곳을 메우며 기대 이상의 활약을 해주었다.


재미있는 것은 당시 Paquette이 훨씬 더 Cardinals 유니폼을 일찍 입을 수 있었으나, 에이전트 Scott Boras의 무관심으로 이적이 진작에 성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A's 감독 시절 팜에서 자라던 Paquette을 눈여겨보았던 TLR은 St. Louis에 부임한 후 Paquette의 이적을 꾸준히 추진해왔으나, 그때마다 Boras를 비롯한 Paquette의 에이전트들이 제대로 그의 입장을 대변해주지 못해서 결국 인연이 닿지 않았다는 것이다. Paquette이 St. Louis에 처음 온 날, 코치 Dave McKay가 와서 나눈 첫 마디가 "우린 자네를 굉장히 찾았는데, 왜 이렇게 연락이 안되나?" 라고 했다고 한다.


Paquette은 기량에 비해 Cardinals 팬들로부터 상당히 호평을 받았는데, 이는 그가 Cardinals 유니폼을 입은 그 첫 한 달간  임팩트 있는 활약으로 뭔가 묘하게 "클러치 사나이" 같은 느낌을 줬기 때문이다. 그는 99년 8월 3일에 열린 데뷔전에서 8회말 Padres 릴리버 Dan Miceli를 상대로 투런홈런을 치면서 제대로 신고식을 했고, 며칠 후에는 Phillies 전에서 9회 대타로 나가 솔로 홈런을 쳤다. 8월 15일에는 Terry Adams를 상대로 9회 끝내기 안타를 뽑아냈으며, 그 다음 날인 16일에는 Randy Wolf를 상대로 역전 쓰리런을 쳤고, 17일에는 만루에서 끝내기 2타점 2루타를 후렸다. TLR도 당시 "확실히 아드레날린이란 것은 무서운 것 같다" 며 유난히 클러치 히트를 많이 쳐냈던 Paquette을 신뢰했는데, 이렇게 쌓인 TLR의 호감은 결국 돌글러브 Paquette의 잦은 2루 기용으로 표출되었다. 8월 한 달간 타율 3할에 5홈런 20타점을 기록하며 피어나기 시작한 Paquette은 이어서 9월달에는 4경기 연속 홈런을 기록하기도 하며 .229의 ISO와 .516의 장타율을 기록하며 로스터에 자리를 잡았다. (Paquette의 클러치 본능에 관한 잘못된 편견은 2001시즌에 그가 무려 득점권에서 무려 .372/.435/.521의 말도 안되는 성적을 기록하면서 더더욱 굳건해졌다.)


2001시즌이 끝나고 FA 자격을 획득한 Paquette은 전년도의 미친듯한 득점권 성적과 2년간 30홈런을 친 쓸만한 파워, 그리고 5개 포지션을 (모두 평균 이하 수준의 수비로) 소화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워 Tigers와 2년간 5.7M짜리, 본인의 기량에 비해 상당히 큰 규모의 계약을 따냈다. Paquette이 만약 좌투수를 씹어먹는 완벽한 플래툰용 우타자였다면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었겠지만, Paquette은 커리어 내내 좌우 스플릿이 상당히 균등한 편이었으며, 좌투수를 상대로 OPS가 8할이 넘었던 것은 2001년 딱 한 차례에 불과했다. 게다가 그의 3루 수비는 David Freese를 골드 글러버처럼 보이게 할 수준이었으며, 어깨는 약했고, Plate Discipline은 정말 최악이었다 (3년간 K%는 20% 이상, BB%는 5% 미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Paquette은 2년간의 풀타임 시즌 (2000~2001년) 동안 800타석 가까이를 보장받았다. 


Paquette은 2003년 Tigers에서 방출당한 이후 Cardinals와 다시 마이너리그 계약을 체결했는데, "2주만 마이너리그에서 뛰어보고 콜업되지 않으면 그만두겠다" 는 조항이 포함된 계약이었다. Paquette은 2주를 뛰었고, 메이저리그 로스터에는 자리가 나지 않았다. Paquette의 계약이 딱 끝난 그 다음 날 (15일째), 2루수 Fernando Vina가 부상으로 DL에 올랐다. 그러나 아쉽게도 Paquette은 더 이상 Cardinals 소속 선수가 아니었다. Paquette은 이후 메이저리그에서 자취를 감추었고, 2007년 독립리그에서 한 시즌을 보낸 기록이 남아있으나 지금은 은퇴한 것으로 보인다.


통산 Cardinals 시절 성적 - 305경기 951타석 40홈런 162타점, .267/.309/.461




Eli Marrero 

Catcher, Outfielder, and First Baseman

DOB: 1973년 11월 17일 

Birth: La Habana, Cuba 

Time with Cardinals:  1997-2003


비록 조연 특집에 이름을 올리긴 했지만 Eli Marrero는 다들 주연이 될 것으로 예상한 선수였다. 1993년 드래프트 3라운드에서 지명되었던 Marrero의 운동능력은 모두에게 인정받았으나, 이 운동능력을 기량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Marrero에게 늘 고질적인 문제였다. Marrero는 늘 타격에서 허술함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Cardinals 팜 시스템을 매년 한 레벨씩 차근차근 모범적으로 밟고 올라왔다. 강한 어깨와 점점 나아지는 타격, 쓸만한 Pop과 포수치고 상당히 빠른 발까지. 마이너에서 단 한 차례도 .273 이상의 타율을 기록한 적은 없을만큼 컨택트에 문제가 있었으나, 점차 발전하는 수비와 강한 어깨로 포수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수 있다면 포수 수비에 더 중점을 두는 Cardinals 와 잘 맞는 포수가 되지 않을까 기대되었다. 1997년 Marrero는 BA 선정 전미 유망주 37위에 랭크될 정도로 촉망되는 젊은 포수였으며, AAA 포수들 중 가장 높은 타율 (.273)을 기록함과 동시에 같은 리그 감독들로부터 "Best Defensive Catcher of the League"로 뽑혔다. Cardinals는 1997년 9월 로스터 확장 때 Marrero를 콜업해 베테랑 포수 Tom Lampkin에게 사사를 받게 했다.


1998년 스프링 트레이닝 초반, Marrero는 갑상선에 암이 생겼다는 충격적인 진단을 받고 즉시 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성공적이었지만, 시즌 개막을 한 달 남기고 받은 수술인데다 항암치료로 인해 신진대사율이 급격히 떨어진 탓에 Marrero가 정상적으로 복귀할 수 있을 지는 큰 의문이었다. Marrero는 그러나 정규시즌 개막 일주일 후 포수 Pagnozzi가 DL에 오르자 바로 로스터에 합류했고, 첫 경기에서 홈런과 3루타를 치며 모두를 놀라게했으나, 지나치게 이른 복귀는 결국 독이 되었다. 이 시즌 그는 ML에서도 그의 수준급 도루 저지 능력과 뛰어난 운동신경, 강견이 통한다는 것을 어느정도 증명했으나, 마이너리그 시절 보였던 약점이 더욱 증폭되었는데, 일단 스윙이 너무 커서 변화구 대처 능력이 몹시 떨어졌으며, 시즌 중 약물 치료 때문에 조울증 및 의지 박약 증세를 보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arrero의 Upside를 높이 평가한 TLR은 그를 "Best Athlete on the team" 이라고 서슴없이 칭하며 그에게 이듬해 개막전 마스크를 씌웠다. ("Eli is one of the best athletes in baseball with his quickness, his live bat, his arm and his defensive capabilities.")


1999년 개막전에서 Marrero는 5타수 3안타 2루타 2개 2타점으로 맹활약 했고, 4월 23일 Dodgers 전에서는 박찬호를 상대로 자신의 시즌 첫 홈런을 쏘아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 이후 Marrero는 점차 페이스가 떨어지더니 끝내 6월 13일 이후로는 단 한 개의 홈런도 치지 못했으며, 결국 시즌을 114경기에서 .192/.236/.297, wRC+ 27이라는 형편없는 성적으로 마감한다. 이는 OPS+ 역순으로 매겼을 적에 1973년 이후 역대 포수 최악의 타격 6위에 드는 역사적인 시즌이었다. (이 랭킹 Top 30에 무려 두 차례나 이름을 올리신 분이 바로 MM이다).


자신감이 완전히 바닥을 친 Marrero는 이후 타격폼을 대폭 수정, 오픈 스탠스와 짧고 간결한 스윙을 장착한 뒤 2002년 모처럼 밥값을 했다. 131게임에서 18홈런 66타점, .262/.327/.451에 wRC+ 106를 기록하며 Break-out 시즌을 가진 것이었다. 이 시즌 Marrero는 좌익수, 우익수, 중견수, 포수로 모두 36경기 이상 출장했으며, 특히 중견수와 포수로 이렇게까지 많은 경기를 동시에 출장한 것은 Craig Biggio 이후 처음있는 일이었다. (7월7일 Dodgers 전에서는 CF-->RF-->C-->RF로 한 경기에 3차례 포지션을 바꾸는 일이 있기도 했다). 다만 골드글러버 포수 Mike Matheny의 존재 때문에 이미 Marrero는 팀에서 포수로써의 가치가 점점 하락하고 있었고, 결국 2002시즌이 끝났을 때 팀은 Marrero를 포수보다는 외야수로 보고 있었다. 재능은 있었지만 Inconsistency 때문에 그 재능을 맘껏 펼치지 못했던 Marrero는 미친듯한 몰아치기 이후 몇 주간의 슬럼프로 TLR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고, 결국 J.D. Drew와 함께 패키지로 묶여 Braves로 트레이드되었다.


3루타를 기대할 수 있던 몇 안되는 포수.



Marrero의 운동능력은 한창 때의 Russell Martin을 연상시켰으며, Tool 하나 만큼은 90년대 Cardinals 팜에서 손꼽히는 수준이었으나, 이를 Performance로 연결시키지 못한 아쉬운 케이스에 속한다. 그는 3경기 연속 홈런을 때리거나 컨디션이 좋을 때는 늘 사이클링 히트에 쉽게 도전하는 선수였으나, 컨디션이 나쁠 때는 3~4주씩 안타를 치지 못했다. 그의 Tool에 매료되었던 TLR은 상당히 Marrero에게 인내심있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이 젊은 포수가 그의 능력을 맘껏 펼쳐보기를 누구보다 바랬었다. 그러나 Marrero가 다양한 잔부상에 시달리며 (어깨, 손가락, 복근, 갈비뼈 등) 커리어에 시동을 걸지 못한데다가 막판에는 포수를 더 이상 보지 않겠다고 하자 결국 2003년 그와의 이별을 선택했다. Paquette과 마찬가지로 Marrero 역시 저니맨으로 이곳 저곳 옮겨다니면서 자리를 잡지 못하다가 2006년 오프시즌에 Cardinals로의 복귀를 추진,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으나, 멤피스에서 1경기만 뛰고 2007년 5월 다시 방출되었다.


Marrero는 2011년 7월부터 Montana에 연고한 Billings Mustangs (Reds 산하 루키리그 팀) 에서 타격 코치로 일했으며, 2013년에는 Arizona League Reds (GCL 산하 Reds 마이너팀)의 감독으로 취임해 지도자로써의 커리어를 이어나가고 있다. Jocketty와의 친분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통산 Cardinals 시절 성적 - 7시즌 525경기 1577타석 43홈런 187타점, .238/.295/.390



Miguel Cairo 

Utility Infielder

DOB: 1974년 5월 4일 

Birth: Anaco, Venezuela 

Time with Cardinals:  2001-2003, 2007


1980년대 Fernando Valenzuela 대박 이후 Ramon Martinez, Ismael Valdez 등을 건져오면서 중남미 시장 공략에 재미를 들인 Dodgers는 1990년 16세의 어린 Venezuela 출신 내야수를 스카우트 해오는데, 이게 "가늘고 길게" 메이저리그에서 17년동안 커리어를 이어온 Miguel Cairo의 시작이었다. Cairo는 이후 Dodgers -> Mariners -> Blue Jays -> Cubs 등 많은 팀을 거친 끝에 1997년 메이저리그 확장 드래프트 때 신생팀 Tampa Bay에게 지명되고, Devil Rays의 창단 멤버로 데뷔했다. 1998년 풀 타임 첫 시즌에 Cairo는 150경기에 출장해 558타석을 소화하고 WAR 2.4를 기록하는데, 이것은 Cairo의 단일 시즌 최고 기록이며, 이 이후 Cairo는 15년이 넘는 기간동안 400타석 이상을 받아본 것은 달랑 한 번, WAR 1.0 이상을 기록해본 것도 달랑 한 번 뿐이다. Cairo의 커리어는 전형적인 유틸리티 플레이어의 그것인데, 이렇게 처음부터 "유틸리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선수가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다는 Versatility 하나로 무려 17년간 커리어를 이어나갔다는 사실은 Cairo라는 선수에 대해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비슷한 선수로는 Craig Counsell이나 Mark DeRosa가 있지만, Cairo가 더 upside가 낮은 선수였다). 2001년 여름 Cairo가 Cubs에서 방출되자 내야 유틸리티 플레이어가 필요했던 TLR이 Cairo를 8월 중순에 웨이버 와이어에서 건지면서 Cardinals 유니폼을 입게 되었는데, 이는 양측에게 적절한 만남이었다.


Cairo의 Cardinals 커리어의 하이라이트는 2002년이다. 이 해 Cairo는 정규시즌에서 대타로 .322라는 대단히 높은 타율 (59타수 19안타) 을 기록하며 TLR의 예쁨을 한껏 받았으며, 포수와 투수, 중견수의 센터라인을 제외한 필드의 전 포지션을 모조리 소화하며 TLR의 변태적인 욕구도 충족시켜 주었다. 게다가 Cairo는 포스트시즌에서 아무도 기대치 않은 광적인 활약까지 선보였다. NLDS 2차전에서 (자세한 내용은 TLR 시리즈 Scott Rolen 편 참조) Scott Rolen이 부상당하자 Cairo가 라인업에 들어왔고, 그는 3차전에서 2회 적시타, 4회 HBP, 6회 안타, 8회 BK를 상대로 1타점 2루타를 날리는 등 3타수 3안타 2타점 2득점의 맹활약으로 Scott Rolen의 공백을 완전히 메워버렸다. Cairo의 미친 타격감은 NLCS 1차전에서도 이어졌는데, 이 날도 Cairo는 첫 타석에서 모두 안타로 출루한데 이어 3번째 타석에서는 Giants의 좌완 똥볼러 Kirk Rueter를 상대로 투런홈런을 쏘아올리며 무려 7타석 연속 안타를 기록했고, 5차전에서도 5타수 2안타를 기록하는 등 13타수 5안타로 시리즈를 마감했다. 


Miguel Cairo는 대표적인 No-Tool Player라고 할 수 있지만, TLR 시대의 키워드이자 "제 6의 툴" 이라고 할 수 있는 "Grit + Hustle"을 갖춘 베테랑이었고, 그랬기에 2000년대초 Cardinals에서 그의 존재는 결코 작지 않았다. 한 가지 지나치기 쉬운 사실: Cairo는 장기계약을 하기 힘든 Utility Player 답게 커리어 내내 1년 계약밖에 할 수가 없었고, 2003년 첫 FA때부터 무려 9차례나 FA 시장에 나왔으며, 9차례 전부 메이저리그 계약을 손에 넣었다. 이 사실 하나로도 Miguel Cairo는 존중받을만한 선수이다.


Cairo는 Reds에서 3년, Cardinals에서 4년 총 7년간 Jocketty와 함께 했으며, 그 기간동안 모범적인 생활과 리더십으로 Jocketty에게 큰 신뢰를 받았다. 2013년을 마지막으로 은퇴한 Miguel Cairo가 구단 운영에 관심을 보이자 Jocketty는 그를 특별 어시스턴트 (Special Assistant to GM) 로 고용했으며, 스프링 캠프에서는 인스트럭터로 일하고 있다.


통산 Cardinals 시절 성적 - 4시즌 255경기 605타석 8홈런 67타점, .253/.301/.376



Brad Thompson

Right-handed Pitcher

DOB: 1982년 1월 31일 

Birth: Las Vegas, Nevada

Time with Cardinals:  2005-2009


2002년 드래프트에서 16라운드에 지명되었던 Brad Thompson은 TLR 시리즈에 올리기에는 아직도 창창한 나이이지만, 그래도 5년간 이곳 저곳 땜질을 해주면서 "유틸리티 투수" 같은 활약을 해주었기에 리스트에 추가했다. 사실 Thompson은 전력에 도움이 되었다기보다는 Replacement Level 수준의 이닝 소화를 해주는 데 그치긴 했으나, Thompson처럼 TLR 시대에 5년동안 ML 로스터에서 뛴 투수들의 숫자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2003년 프로 입문 첫 해에 65.2이닝동안 홈런 2개만을 허용하며 좋은 인상을 남긴 Thompson은, AA에서는 본격적인 선발투수로써의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Thompson은 위력적인 싱커를 앞세워 AA팀 Tennesee Smokies 에서 날아다니기 시작했는데, 무려 57이닝 연속 무실점 기록을 세우며 한 세기 묵은 이 리그의 연속이닝 무실점 기록을 갈아치운 것이었다. AA에서 13경기 8승 2패 평균자책 2.36에 세컨더리 피치였던 슬라이더까지 큰 발전을 이룩하면서 탈삼진도 잘 잡아내기 시작했고, 프로 입문 2년만에 AAA의 Memphis까지 올라갔다. Low Upside의 대졸 우완이라는 프로필은 어쩔 수 없었지만, 이렇게까지 잘하니  빅 리그에서 어떻게 던지나 궁금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2005년부터 2009년까지 Brad Thompson은 St. Louis와 Memphis 사이를 가장 많이 왔다갔다한 선수일 것이다. Mop-up 롤이 익숙했던 그는 추가 영입이 있을 때마다 25인 로스터에서 가장 제외하기 쉬운 선수였고, 또한 투수진에 일손이 딸릴 때 가장 쉽게 콜업할 수 있던 선수였다. 1이닝 릴리프, 혹은 Low-Leverage 상황에서의 멀티이닝 릴리버 역할을 맡을 떄의 Brad Thompson은 로스터 자리가 아까운 선수가 결코 아니었다. 2005년 루키 시즌에 57.2%의 엄청난 GB%를 앞세워 상당히 효과적인 피칭을 선보였고, 2006년 WS 우승 시즌에도 43경기를 소화하면서 그럭저럭 제 역할을 했다. 그러나 2007년에 17차례의 Spot-start를 소화하면서 총 126이닝을 소화했는데, 이 때 Thompson은 87~90마일 수준의 Hittable한 싱커 + 플러스 피치라고 볼 수 없는 수준의 슬라이더라는 단조로운 피칭 조합 때문에 타자들을 많이 상대할 수록 엄청나게 두들게 맞기 시작했다. 특히 좌타자들은 Thompson의 싱커를 몹시 좋아했으며 (슬래시라인 .343/.403/.567), 타순이 한 번 돈 이후에는 피안타율이 3할이 훌쩍 넘어가기 시작했다. 릴리버일 때는 효과적으로 제압하던 피홈런 갯수도 무려 23개로 급증했다. (HR/FB =14.7%)


Thompson은 늘 좀 부담스러울 만큼 동안이었다.



Brad Thompson은 지금의 Seth Maness와 비슷한 유형의 투수였으며, High-Leverage 상황에서는 절대 올라와서는 안될 투수였다. 그러나 25인 로스터를 꾸려가며 6개월의 시즌을 치르는 중에는 Thompson같은 Replacement Level의 투수들도 종종 필요하게 마련이며, 특이한 점은 Thompson이 희한하게도 무려 5년을 이런 역할로 버텨낸 것이다. 2009년 Cardinals를 떠난 Thompson은 2010년 Royals로 이적했으나 여전히 예전의 Effectiveness는 잃어버린 지 오래였고, Astros 마이너리그에서 잠시 뛴 이후 독립리그로 이적해갔다. Brad Thompson은 2013년 3월 뉴저지 연고의 독립리그 팀인 Somerset Patriots와 계약했고, 아직도 현역으로 활동 중이다. 이제 만 32세의 Thompson이기에 아직도 현역으로 10년은 족히 뛸 수 있다고 생각되지만, 갑자기 너클볼을 배우거나 Oswalt처럼 감전 사고를 당하고 구속이 오르는 일이 없지 않는 이상 빅 리그에 복귀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통산 Cardinals 시절 성적 - 5시즌 21승 17패 평균자책 4.36, 185경기 (32선발) 405.1이닝 190탈삼진, GB = 52.3%



by Doov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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