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Doovy


유망주 리스트 시리즈도 끝이 났고, 크리스마스에 신정까지 다 끝났다. 뻥카의 황제 Strauss까지 땡깡을 부릴 정도로 지루한 오프시즌이다. 스프링 캠프때까지의 답답함을 덜어보는 의미로 잠깐씩 TLR 시절 (1996-2011) 의 추억의 선수들을 돌아보는 시리즈를 준비해보았다. 첫 포스팅의 주인공은 과소평가된 추억의 외야수, Ray Lankford이다.



Ray Lankford

Outfielder

DOB: 1967년 6월 5일 

Birth: Los Angeles, CA 

Time with Cardinals: 1987 - 2001, 2004


Draft & Minors

Lankford는 1986년 1월 3라운드에서 Cubs에게 지명당했으나 계약하지 않고 1987년 6월 드래프트에서 다시 3라운드에 뽑혔다. 대학 시절부터 소문난 'Tool-guy' 였으며, 굉장히 탄력있는 스윙과 대학 풋볼팀에서 러닝백 (한 시즌에 1000야드를 돌파했다고 한다) 을 볼만큼 뛰어난 운동능력을 자랑했다. 

87년 Johnson City로 들어와서 프로 생활을 시작헀는데, 아래 트랙 레코드를 보시면 알다시피 정석적으로 한 단계 한 단계 씹어먹으면서 올라왔다. 무엇보다 마이너리그 3년간 거의 부상이 없었으며, 주목하셔서 볼 부분은 매년 엄청나게 터뜨린 3루타 숫자와 도루 숫자이다. Lankford의 주력은 이미 마이너 시절부터 유명했으며, Cardinals는 1989년 AA에서 성공적인 시즌을 보낸 Lankford가 Willie McGee를 조만간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Ray Lankford's Minor League Track Record

Year Age Tm Lg Lev G PA AB R H 2B 3B HR RBI SB CS BB SO BA OBP SLG OPS TB
1987 20 Johnson City APPY Rk 66 278 253 45 78 17 4 3 32 14 11 19 43 .308 .367 .443 .810 112
1988 21 Springfield MIDW A 135 605 532 90 151 26 16 11 66 33 17 60 92 .284 .366 .455 .821 242
1989 22 Arkansas TL AA 134 574 498 98 158 28 12 11 98 38 10 65 57 .317 .395 .488 .883 243
1990 23 Louisville AA AAA 132 552 473 61 123 25 8 10 72 30 7 72 81 .260 .362 .410 .772 194
6 Seasons 480 2065 1802 302 521 97 40 38 277 116 46 223 288 .289 .373 .451 .823 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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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rated 1/2/2013.

1990년 Louisville에서의 성적 하락을 주목해서 볼 필요가 있다. 당시 Louisville 팀이 쓰던 홈 구장은 University of Louisville 풋볼팀과 함께 쓰던 구장으로, 무려 33,500석의 규모를 자랑하지만 인조 잔디에다가 우측 펜스가 312피트에 불과했다. 좌타자였던 Lankford는 홈런을 의식한 스윙을 했고, 이는 출루율의 하락으로 이어졌다. 또한 Cardinals는 당시 Lankford에게 홈런타자보다는 빠른 발로 많은 도루를 할 수 있는 리드오프 형 선수를 기대했으며 (Michael Bourn이나 Carl Crawford와 같은), 이에 주루 코칭에 상당히 신경을 많이 썼었다. 비록 AAA 레벨에서 약간의 성적 하락이 있긴 했으나 그가 기록한 30개의 도루와 72개의 타점, 그리고 .772의 OPS는 팀내 최고 수준이었다. Lankford가 마이너 3년 반동안 보여준 모습은 충분히 인상적이었으며, BA는 Lankford를 전미 19위의 유망주로 평가했다 (1990년).  

1990년 8월 21일, Lankford는 선발 중견수로 데뷔전을 치렀다. 당시 Cards 라인업은 1번 Vince Coleman, 2번 Ozzie Smith, 3번 Willie McGee, 4번 Todd Zeile, 5번 Terry Pendleton 등 이름만 들어도 빡센 베테랑들이 가득했는데, 이 경기에서 Lankford는 꼬꼬마 6번으로 나와서 2루타 포함 4타수 2안타 1득점 1타점으로 성공적인 데뷔전을 마쳤다 (상대 투수 John Smoltz). 그리고 며칠 후인 9월 6일, Expos전에서 Mark Gardner를 상대로 데뷔 첫 홈런을 때려냈다. 

아래는 1991년 시즌을 앞두고 Baseball Digest가 Lankford에게 내린 평가로, Willie McGee의 Clone(복제품) 으로 표현한 부분이 눈에 유독 띈다. 

Ray Lankford: "Willie McGee's replacement in center field at Busch Stadium will be Lankford, who appears to be a McGee clone. The 23-year-old sparkles on defense; he was the run-away leader in total chances in the Texas League in 1989 and in the American Association last season. He also has a lefthanded bat with explosive potential and can steal a base. Lankford, a third-round draft pick in June 1987, has a career minor league .290 average with 96 doubles, 40 triples, 35 homers and 115 stolen bases in 1756 minor league at-bats."


왼쪽부터 Ray Lankford, Ozzie Smith, Bernard Gilkey, 위쪽은 Geronimo Pena


1991-1992년: Leadoff에서 3번타자로

주전 중견수 자리를 꿰찬 1991년 시즌, Lankford는 무서운 스피드로 리그 3루타 1위(15개)에 44도루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하면서 NL ROY 투표 3위에 올랐으나 (1위 Jeff Bagwell) .301의 OBP와 114개의 삼진은 문제가 있었다 (사실 Lankford의 Plate Discipline은 마이너리그에서 칭찬을 받았던 부분이었기에 조금은 의외인 부분이었다). NL 신인이 리그 3루타 1위에 오른 것은 1984년 Juan Samuel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으며, Lankford는 Cardinals Rookie가 세울 수 있는 기록들은 웬만하면 갈아치우면서 (1950년 이후 신인 첫 멀티홈런, 신인 첫 60타점+40도루 시즌 등) 성공적인 루키 시즌을 보냈다. 

"Lankford doesn't scare. You may get him out, but he doesn't give."

-Joe Torre, after Lankford has hit for cycle

이듬해인 1992년 Lankford는 무려 20개의 홈런을 때려내고 Leadoff에서 3번타자로 전업을 하게 되는데 (3번타자로 84경기 출장), 이는 빠른 배트스피드와 몸의 탄력을 이용한 그의 스윙 메카니즘이 완성 단계로 올라서게 된 탓이 크다. Lankford의 배트스피드는 전성기 시절 Soriano를 연상시킬 수준으로, 그의 5피트 11인치의 작은 frame을 충분히 메꿀만큼 뛰어난 운동능력과 힘을 자랑했으나, 다만 스윙이 길다는 단점 때문에 삼진이 너무 많았다. 만 1992년 그는 147개의 삼진으로 리그 1위에 올랐고, 그 이후에도 2001년까지 11년연속 매년 110개 이상의 삼진을 적립했다. 

※ Cardinals 삼진 역사에서 Lankford가 차지하는 위엄

RankPlayerStrikeoutsYear
1.Jim Edmonds1672000
2.Ron Gant1621997
3.Mark McGwire1551998
4.Ray Lankford1511998
5.Jim Edmonds1502004
6.Ray Lankford1482000
 Colby Rasmus1482010
8.Ray Lankford1471992
9.Ryan Ludwick1462008
10.Mark McGwire1411999


1993-1995년: Under-appreciated Outfielder

1993년 Lankford는 시즌 초 어깨 부상, 6월과 7월에는 Wrist 부상으로 DL을 갔다오면서 굉장히 고생을 했고 (두번 모두 수비 중에 당한 부상이었다), 전년도에 .851을 찍었던 OPS가 .713으로 크게 떨어졌다. 그러나 1994년 다시 생산력을 OPS .847까지 끌어올렸고, 이 수치는 2001년 Cardinals를 떠날 때까지 8년간 떨어지지 않았으며, 부상으로 고생을 한 적도 거의 없었다. Lankford는 그만큼이나 꾸준했으며, 특히 TLR 이전 시대에 Cardinals를 맡았던 Joe Torre는 Lankford의 뛰어난 수비와 파워풀한 스윙을 칭찬했다. 이 기간동안 Lankford는 공/수/주를 겸비한 리그 최고 수준의 중견수로 발돋움했으며, 개인적으로는 먹튀가 되기 전의 Vernon Wells나 왕년의 Raul Mondesi에 비해 전혀 꿀리지 않는 기량 및 Tool을 과시했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Tool-guy들이 빅 리그에서 그 툴을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스러지는 것에 반해, Lankford는 굉장히 탄탄한 커리어를 밟았다.  


Lankford는 우완을 씹어먹고 Gant는 좌완을 씹어먹었다



1996년: TLR 등장

사실 1996년은 TLR의 부임도 부임이지만, TLR식 인사 이동이 생김으로써 가장 활발하고 공격적인 전력 보강이 있었던 해이기도 하다. 1995년 시즌이 끝난 시점부터 프론트 오피스의 행적을 돌아보면...

  • FA로 풀린 Jose Oquendo 재계약

  • Willie McGee 재영입

  • 베테랑 3루수 Gary Gaetti FA 영입

  • Yankees로부터 Rick Honeycutt 계약 매입

  • 유망주 내주고 Todd Stottlemyre 영입

  • (Lankford와 마이너리그에서 함께 성장한) 주전 외야수 Bernard Gilkey를 트레이드로 Mets에 넘김 

  • A's에 Steve Montgomery를 보내고 Dennis Eckersley 데려옴

  • FA로 Andy Benes, Ron Gant, Pat Borders 영입

  • Red Sox에서 웨이버로 공시된 Luis Alicea 데려와서 주전으로 써먹음

  • 전 1라운더 유격수 Royce Clayton 트레이드로 영입

젊은 선수들을 보내고 베테랑들을 영입하는 방식은 팀의 평균 연령을 30.8세로 올려놓은 상태로 1996년 개막전을 맞게 했다. 그러나 이 영입들은 대체로 좋은 결과를 낳았으며, Ron Gant-Ray Lankford-Brian Jordan의 강력한 외야진이 가동되며 공격력이 이전에 비해 훨씬 나아졌다.5할에서 10승이 부족하던 팀은 5할에서 7승을 더한 88승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고, Lankford 역시 커리어 처음으로 Playoff 타석에 서는 영광을 안았으나 DS와 CS를 합쳐 15타수 1안타의 극심한 부진을 보였는데, 원인은 시즌 막판 경기 중 다이빙 캐치를 하다 다친 왼쪽 Rotator Cuff (회전근) 부상에 있었다. 어깨 수술이 확정된 NLCS 3차전 이후 Lankford는 벤치에 앉아서 경기를 지켜볼 수 밖에 없었고 (4차전부터 중견수 자리에는 Willie McGee가 들어갔다) 결국 Cardinals는 Braves에게 3승 4패로 패배한다. 플레이오프 출장 기록이 미미한 수준인 그의 커리어로 보나, 월드시리즈 우승을 눈앞에 뒀던 Cardinals 팬 입장에서 보나 안타까운 순간이다.

1997년: All-Star Game, 그리고 전형적 용두사미 시즌

Lankford는 드래프트된 이후 2001년 트레이드 되기 전까지 내내 Cardinals의 핵심 선수 중 하나였으며, Joe Torre에서 TLR로 집권이 넘어가는 과도기에서도 팀에서 기둥으로 여긴 선수였다. 20-20을 자주 찍을 수 있는 운동능력은 누구나 인정했으나, 누구도 Lankford에게 MVP급 활약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허나 1997년 Lankford는 MVP에 대한 Serious push를 하면서 자신의 기량을 알아봐준 Joe Torre를 흡족하게 했고, 전반기에 17홈런 61타점 15도루 .333/.427/.646/1.073의 폭발적인 성적을 내면서 올스타에 선정되며 몬스터 시즌을 기대하게 했다. 그러나 7월 31일 Mark McGwire가 트레이드되어 팀에 합류했고, 그 이후로 이상하게 Lankford의 타율은 계속 떨어졌다 (반면 후반기 홈런수는 14개로 페이스가 별로 떨어지지 않았는데, 이로 인해 Lankford가 McGwire의 영향으로 한 방만 노리게 되었다는 루머도 있었으나 이는 동의하지 않는 바이다)

Lankford는 커리어 내내 정말 상복이 없는 선수였는데, 특히 이 정도로 exciting한 플레이를 할 능력이 있으면서 올스타에 달랑 한 번 선정된 부분은 참 아쉽다. 1997년 NL 올스타 팀 감독이었던 Bobby Cox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He's a great center fielder. I know he's hurt (shoulder surgery) but he's having a great year with the bat, he can steal bases, and he can go get the ball. When Joe Torre was managing St. Louis, he said Ray Lankford could be an MVP and he's getting close to that now."  

-Bobby Cox on Ray Lankford



1998년: 홈런 레이스의 조연, 그리고 연장계약

Mark McGwire는 이 해 Sammy Sosa와 홈런 레이스를 벌이며 야구 시청률을 높이는 데 큰 공헌을 했고, Ray Lankford는 McGwire의 바로 뒤에서 그가 홈런왕을 차지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 McGwire는 한 인터뷰에서 Lankford를 일컬어 "the best hitting protection I had ever had in my career" 로 불렀다. Lankford는 2번도 가끔 쳤지만 주로 4번 (82경기) 자리에서 McGwire를 받치며 본인도 31홈런 105타점 .293/.391/.540 26도루의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다. 특히 후반기에만 20홈런을 몰아치며 .321/.397/.624의 "바티스타 모드"를 선보였는데, 이런 부분들은 McGwire가 후반기 홈런 레이스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데에 적지않은 도움이 되었다.

McGwire가 말한 "Protection"의 한 예를 들자면, 99년 5월 16일, 9회말 무사 1루에서 4:3으로 앞선 Dodgers의 마무리 Jeff Shaw (아 정말 추억 돋는다!) 가 McGwire를 "고의아닌 고의사구"로 걸렀다. 이어서 나온 타자는 Lankford가 투런을 치면서 5:4 역전 끝내기. 이런 Lankford가 뒤에서 받쳐주니 McGwire가 꽤나 든든했나보다.

1998년 4월 16일, Lankford는 5년간 34M의 (2003년은 팁 옵션) 굉장히 구단친화적인 계약을 맺었다. 성공적인 어깨 수술과 Lankford의 인기, 또 구단과 St. Louis에 대한 Lankford의 배려와 애정이 없이는 나오기 힘든 계약이었다. 당시 Lankford는 계약 조항에 매년 $75,000을 구단 자선단체인 Cardinal Care에 기부하기로 하는 조항을 넣기도 했으며, 인터뷰에서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A lot of guys go other places, But I don't think I could play for a better organization, for a better crowd. Why leave?

-Ray Lankford, on his contract extension

St. Louis Cardinals All-time Home Run Ranking

RankPlayerHome RunsPA
1.Stan Musial47512717
2.Albert Pujols4457433
3.Ken Boyer2557050
4.Jim Edmonds2414356
5.Ray Lankford2286290
6.Mark McGwire2202251
7.Rogers Hornsby1936716
8.Jim Bottomley1816007
9.Ted Simmons1726450
10.Johnny Mize1583581


1999년: 바톤 터치, 무릎 부상, 그리고 퇴보

(나중에 이 시리즈에서도 한 번 다뤄줘야 하는) 화이트 그리피 J.D Drew가 드디어 빅 리그에 입성하면서 Lankford는 좌익수로 이동한다. 이는 9년 전 팜 시스템에서 성장한 Lankford가 Willie McGee를 밀어내고 신인 중견수로 데뷔했던 것과 거의 같은 패턴으로, 묘한 세월의 무게를 느낄 수 있는 순간이다. Lankford의 운동 신경은 여전히 훌륭한 편이었으나 젊은 시절에 비해 불어난 체중 (180-->200파운드), 32세라는 나이,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1999년 시즌 시작 전에 받은 무릎 수술이 결정적이었다. TLR이 그를 좌익수로 돌린 것에 대해 Lankford는 "If I had my choice, I'd stay here (left field)" 라며 웃으면서 수용했고, 스프링 트레이닝까지도 통증이 남아있었기에 Lankford는 시즌 첫 한 달을 거의 결장하다시피 했다.

Lankford는 이 해 5월부터 좌익수이자 4번타자로 복귀했으나, TLR은 Lankford에게 꾸준히 휴식을 주면서 무릎을 배려했고, 수비 부담이 줄은 덕분에 Lankford의 공격 슬래시 라인은 1999년에도 여전히 수준급이었다 (476PA 15홈런 63타점 .306/.380/.493/.873, 49BB 110SO).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Lankford의 하락세는 사실상 이 때부터 시작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306의 고타율은 .381의 지나치게 높은 BAbip에 기인한 것이었으며, 본격적으로 '좌상바'로써의 면모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 이때였다. 그는 (무릎에 부담이 많이 가는) 강력한 배트스피드와 탄력을 통해 커리어 내내 좌타자 치고 좌투수 상대로 크게 약한 모습은 아니었는데, 1999년은 그가 우투수 상대로 .968, 좌투수 상대로 .614의 OPS를 찍으면서 스플릿이 상당히 벌어진 해이다. (1995년 시즌: 우투수 상대 .905, 좌투수 상대 .797) 그리고 예상대로 Lankford는 시즌 막판에 무릎 통증을 호소했다.



2000년: 마지막 플레이오프

Jim Edmonds가 들어오면서 이 팀은 이제 Lankford-Edmonds-Drew로 이어지는 정말 간지나는 외야진을 보유하게 되었고, 이 3명은 1996년 Ron Gant-Lankford-Brian Jordan 이후로 가장 생산력 있으며 공수에서 어느 쪽도 뒤쳐지지 않는 뛰어난 외야진을 구성했다 (90년대에서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이 두 차례 외야진에 모두 Lankford가 포함되있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29세의 Matheny, 그리운 Renteria, 아직도 아린 그 이름 Ankiel 등 정말 추억돋은 이름들이 많은 이 2000년도 Cards는 95승으로 당당히 지구 우승을 차지하고 Playoff에 진출. 그러나 Lankford의 입지는 많이 좁아져있었다; 좌상바 경향은 더욱 심해져서 (좌투수 상대 .135/.286/.284) 사실상 플래툰 외야수에 가까운 처지가 되었다. 무릎 부상 때문에 도루는 더 이상 노리기 힘들었으며, 수비 범위 역시 많이 줄어 있었다. 

그래도 Lankford의 인기는 식지 않았는데, 이는 Busch Stadium에서 유난히 강했던 그의 타격 성적의 특징과도 관련이 있다. 기량이 퇴보하고 있는 모습이 역력한 2000시즌에도 26홈런 중 18홈런을 홈에서 넘겼고 타율도 홈에서는 3할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는 St. Louis 홈 관중들 앞에서 그 에너지를 흡수해 더욱 열심히 하는 선수로 팬들에게 사랑을 받지 않았는가.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2000년 NLDS 2차전, Tom Glavine과의 맞대결이었는데, Lankford의 극히 심해진 '좌상바' 경향과 TLR의 좌우놀이 경향을 생각하면 좌익수로 Lankford가 출장한 것 자체가 의외인 부분이었다. 이미 Will Clark에게 쓰리런을 맞고 제정신이 아니었던 Glavine은 3회 5:2로 뒤진 1사 1,3루에서 상황에서 이미 '한물 간듯한' Lankford를 상대로 위기를 모면하기를 노리고 있었다. 그러나 정규시즌 좌완 상대 OPS .570에 빛나는 Lankford가 여기서 우중간을 깊숙히 가르는 2타점 2루타를 후리면서 점수는 7:2가 되었고, 이 공을 마지막으로 Glavine은 Andy Ashby (아 이 이름도 추억이 돋는다) 에게 공을 넘겼고, Cards는 Maddux-Glavine-Millwood를 상대로 스윕까지 달성하고 NLCS로 진출한다. 


※ 사족이지만 나중에 알고보니 Lankford가 커리어 내내 가장 많이 상대해본 좌완투수는 Glavine 이었으며 (72PA), 통산 Glavine 상대 타율이 .308에 이른다. 당시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TLR은 이것까지 고려해서 Lankford를 굳이 라인업에 넣었던 것 같다.


2001-2002년: 트레이드, 그 후

Lankford는 2001년 6월 한달간 .179/.340/.403의 기대 이하의 성적을 남겼고, 구단에서의 입지는 점점 좁아져왔다. 8월 1일에는 Lack of respect를 이유로 불만을 표시, Leave of absence를 신청했고 트레이드 거부권을 풀 의향을 밝혔으나 좀처럼 트레이드 상대는 찾아지지 않았다. 사실상 결별 수순을 밟게 되자 어수선함을 피하기 위해 구단 측은 최대한 빨리 Lankford를 옮기려 노력했고, 결국 8월 3일에 Padres에게 연봉 보조를 해주면서 Woody Williams와 Ray Lankford를 맞트레이드했다. 그리고 Woody는 TLR 시대에서 빼먹지 못할 이름으로 기억에 남게 된다.  당시 Lankford와 TLR 사이의 관계가 부드럽지 못하다는 언론 보도가 많았고 실제로도 그랬다고 생각되지만, 돌이켜보면 96년에 부임한 TLR 같은 감독 아래 1990년부터 팀의 주축으로 이 팀에서만 11년간 뛰어온 베테랑 외야수 사이의 긴장감과 불편한 기류는 불가피했던 것이라고 사료된다.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겠으나 마치 제갈량과 관우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게다가 Lankford의 기량은 이미 이 시점에서 현격히 떨어진 상태였으니...

물론 한 가지 아쉬운 점은 Lankford가 2001년 전반기에 사실 그렇게 못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타율이 크게 떨어진 것은 맞았으나 5할에 가까운 장타율과 3할5푼대의 출루율을 기록하고 있었고, Craig Paquette이나 Kerry Robinson에게 출장시간을 나눠야 한다는 점이 11년차 올스타 베테랑에게는 자존심상하는 일일 수가 있었다. TLR과의 Power Game에서 밀린 Lankford는 Padres로 가서 Tony Gwynn에게 타격에 대한 지도 및 조언을 받고 8월 한달간 다시 맹타를 몰아치며 살아나지만, 이 역시 일시적 현상이었다. 2002년 당시 Padres 라인업은 Lankford 정도의 Pop이 있는 선수라도 감사히 썼어야 했기에 플레잉 타임에는 문제가 없었으나, 전반기 막판 Hamstring 부상을 당하면서 사실상 시즌을 접어야했다. Lankford의 연장계약은 이 시즌을 마지막으로 끝났다.


2004년: 복귀, 그리고 마지막 타석에서 홈런

37세의 나이로 $650K의 염가에 Cardinals와 재계약을 맺은 Lankford는 처음부터 시즌 후 Cardinal 유니폼을 입고 은퇴할 생각이었다. 사실 당초 John Mabry, Roger Cedeno, So Taguchi 등이 있는 마당에 4th Outfielder 역할도 버거워보이긴 했지만, 의외로 전반기에는 벤치에서 나쁘지 않은 활약을 해주었다. 그러나 2004년 Cards는 Lankford가 은퇴무대로 삼기에는 너무도 화려한 팀이었고, 시즌 중 Larry Walker가 합류하면서 Lankford는 후반기에 달랑 22타석에 들어서는데에 그쳤다.

2004년 10월 3일, 지구 우승을 확정 짓고 Randy Flores를 선발로 내며 (-_-) 선수들에게 휴식을 주던 시즌 최종전, Brewers와의 홈 3연전 마지막 경기에서 TLR은 Lankford에게 Busch Stadium을 마지막으로 느낄 기회를 주었다. 9월 중순 이후 출장 기회 자체가 거의 없던 Lankford는 6회말 투수 Dan Haren을 대신해 타석에 들어섰고, 상대 투수 Josh Bennett을 상대로 시원한 투런홈런을 날렸다. 이것은 Lankford의 커리어 마지막 경기이자 마지막 타석이었으며, Busch Stadium에서의 123번째 홈런이자 Cardinals 유니폼을 입고 날린 228개 째의 홈런이었고, 이 경기의 9:4 승리는 Cardinals의 정규시즌 105번째 승리였다.

It might be my last regular-season game, period. I thought about all of that. It was great just to go up there and hear the fans cheering for me.

-Ray Lankford, after his last game


이 사진에 나온 Marlins 좌완 투수는 누구일까?


All-time Home Run Leader at Busch Stadium (Old)

 Ray Lankford    123

 Mark McGwire    119

  Jim Edmonds    111

   Albert Pujols      94

  Ted Simmons     81



총평

사실 TLR 시대를 대표한다기에는 Lankford의 전성기가 너무 일찍 시작해버렸다. 그가 정점을 찍던 시점에 TLR이 부임했고, TLR이 본인의 스타일대로 팀을 구성해서 2000년대를 열어갈 즈음에 Lankford의 기량 저하는 생각보다 너무도 빨리 찾아왔다. Lankford의 커리어는 생각보다 훌륭한 부분이 많으며, 야구 선수로써의 재능은 정말 탁월했다고 생각한다. 이 선수는 상복도 유달리 없었고, 중견수로써의 수비도 Edmonds급은 아니지만 충분히 훌륭했던 선수이다. 무엇보다 막판에 조금 안좋아지긴 했으나 자기가 드래프트된 팀에서 은퇴하기 위해 돌아오는 뭉클한 모습과 구단에 대한 애정, 팬들과의 유대감 등은 Lankford를 좋게 기억하고 싶게 하는 이유들이다. 아쉽게도 Lankford가 이 팀에서 뛰는 동안 포스트시즌에 달랑 2번 나간 점 (2004년은 엔트리 제외)과 본인이 한창 젊을 시절 팀 타선이 약했던 점 (Lankford가 완연한 하향세에 접어들고 나서 Edmonds와 Pujols 등이 등장했으니)은 Lankford가 시대를 잘 만났다면 300-300도 달성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미없는 의문을 갖게 만든다.

은퇴 후 Lankford는 본인의 공식 웹사이트 raylankford16.com을 유지하고 있는데, 이 사이트에 따르면 Lankford는 딱히 야구 관련 직종에 종사하고 있지는 않는 것으로 보이며, 그냥 celebrity golf tournament 같은데에 celebrity 혹은 전직 프로야구선수로 출연하는 정도만 하고 있는 것 같다. 2005년 옛 Busch Stadium 을 기리는 행사에 참석한 이후로는 딱히 중요한 공식석상에 모습을 비치지는 않았으나, 야구계로 돌아오고 싶어한다는 뜻은 밝힌 바 있다.


All-time Cardinals Power-Speed # Leader

RankPlayerPower-Speed #PA
1.Ray Lankford238.56290
2.Lou Brock225.39932
3.Rogers Hornsby146.56716
4.Albert Pujols141.37433
5.Ken Boyer140.57050
6.Stan Musial134.012717
7.Willie McGee104.26100
8.Julian Javier97.06097
9.Edgar Renteria96.03759
10.Enos Slaughter89.07713

한 가지 사족을 더 달아보자면, Lankford는 필자가 Cards 팬이 된 이후로는 거의 마지막으로 보는 주전 "African American Cardinal"이었다. 이것은 비단 Cardinals에만 있는 트렌드가 아니라 ML 전체적으로 흑인 비율이 점차 줄어가는 추세이지만 (8.5%), St. Louis에는 언젠가부터 정말 흑인 선수가 없어지고 있다 (Latino 선수들 제외). 그런 면에서 Ron Gant-Ray Lankford-Brian Jordan이 합쳤던 96년 외야진은 정말 다시 보기는 힘든 컴비네이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Did you know...?

  • Lankford는 1994년 4월 3일 개막전이자 그 날 열린 유일한 경기에서 1회초 첫 타석이자 1994시즌의 첫 경기 첫 타석 홈런을 쳤다.
  • Lankford는 신시내티의 옛 홈구장인 Riverfront Stadium에서 유일하게 Upper Deck 홈런을 2개 날린 선수이다. 
  • 현역시절 Lankford는 오랜 기간 16번을 달고 뛰었으며, SB Nation에서는 Willie McGee보다 Lankford의 번호가 더 먼저 영구결번 되야한다고 할 정도였다. 그런데 Bryan Andersen이 16번을 달고 뛰었다.
  • Ray Lankford는 현역 시절 박찬호에게 홈런을 3개를 뽑아냈다. 생각해보니 Cards 경기 보기가 힘들던 이 시절 이 홈런들은 다 중계로 봤었던 것 같다.
  • Lankford가 현역 시절 가장 많이 상대한 투수는 순서대로 Greg Maddux-Tom Glavine-John Smoltz이다 (재밌지 않은가?). Maddux를 상대로 통산 109타수를 상대해 29안타 4홈런 20타점 2루타 7개 볼넷 4개 삼진 33개를 기록했으며, (.266/.302/.477), Smoltz를 상대로도 .283의 타율을 기록했다.  
  • Lankford는 Cardinals 역사상 유일하게 200-200 클럽에 가입하고 있으며, 유일하게 20-20을 3번 이상 달성했다 (총 5회, 92, 95-98)



by Doovy




참조: ESPN, Baseball-Reference, Fangraphs, Wikipedia, Retrosheet, Baseball Almanac, SB N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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