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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년도는 NLCS에서 탈락했지만, 이제는 더 멀리 가겠다는 높은 기대치를 안고 2013 시즌을 시작했다.


Opening Day Roster


Starters - Jaime Garcia, Lance Lynn, Shelby Miller, Adam Wainwright, Jake Westbrook

Relievers - Mitchell Boggs, Randy Choate, Joe Kelly, Edward Mujica, Trevor Rosenthal, Marc Rzepczynski, Fernando Salas

Catchers - Yadier Molina, Tony Cruz

Infielders - Matt Adams, Matt Carpenter, Allen Craig, Daniel Descalso, Ryan Jackson, Pete Kozma, Ty Wigginton

Outfielders - Carlos Beltran, Matt Holliday, Jon Jay, Shane Robinson


DL - Chris Carpenter, Jason Motte, David Freese, Rafael Furcal


DL이 네 명이지만 실제로는 Freese 한 명 뿐이었다. 나머지 셋은 시즌 아웃이었고, 특히 Carpenter는 이미 은퇴 확정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Carp의 로테이션 이탈이 안타까웠지만, 투수 유망주 F4 중 Miller가 로테이션에, Rosie가 불펜에 가세했고 Wacha, CMart도 시즌 중 콜업될 것 같았기에, 투수진의 미래도 밝아 보였다.


Freese 대신 Ryan Jackson이 개막 로스터에 들어갔다.


Opening Day Lineup (4/1, at Diamondbacks)


Jon Jay CF

Matt Carpenter 3B

Matt Holliday LF

Allen Craig 1B

Carlos Beltran RF

Yadier Molina C

Daniel Descalso 2B

Pete Kozma SS

Adam Wainwright P


상대 선발은 Ian Kennedy였다.


경기는 2-6으로 졌다. Waino가 11안타를 허용하는 등 무려 15개의 안타를 내주는 동안, 타선은 5안타 2득점으로 부진했다.



시즌 중 무브


로스터가 잘 짜여진 만큼 시즌 중 무브는 별로 없었다.


2013/05/21 Eduardo Sanchez DFA, 웨이버 클레임으로 Cubs행

2013/05/28 J.R. Towles 방출

2013/06/23 Maikel Cleto DFA, 웨이버 클레임으로 Royals행


2013/07/09 Mitchell Boggs를 현금 트레이드(international signing bonus)로 Rockies에 보냄 (A)

몇 년 동안 불펜의 한 축으로 활약해 왔던 Boggs는 이 시즌 아주 심각한 제구 난조에 시달렸다.

두 차례 마이너로 강등된 끝에 결국 트레이드 되었고, 이 시즌이 그의 마지막 메이저리그 시즌이 되었다. Boggs는 여러 구단을 옮겨다니며 2년을 더 AAA에서 뛰고 2015년에 은퇴했다.


2013/07/30 Marc Rzepczynski를 Indians에 내주고 Juan Herrera를 받는 트레이드 단행 (C-)

Rzep은 7.84 ERA로 부진한 모습을 보이다 트레이드되었다. 그러나 Boggs와는 달리 트레이드 후 반등에 성공했고, 올해 초에도 Blue Jays와 마이너 계약을 맺는 등 아직까지도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다. 반면 괜찮은 유망주인 줄 알았던 Herrera는 무려 4년 동안이나 Palm Beach를 지키다 17년에 결국 방출되었다.


2013/08/30 John Axford를 Brewers에서 트레이드로 영입. 트레이드 대가는 추후 지명(PTBNL) - Michael Blazek (A)

Axford는 영입 후 13경기에서 1.74 ERA, 2.08 FIP, 9.58 K/9의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며 시즌 막판 불펜 운용에 상당한 도움을 주었다.

Brewers는 Blazek을 선발로 다시 개조하려고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결국 불펜으로 다시 돌렸다. 2014년 한 시즌 활약한 후 강등과 방출을 거듭한 끝에 올해는 독립리그 ATLL의 Southern Maryland Blue Crabs와 계약한 상태이다.


2013/10/03 웨이버 클레임으로 Rangers에서 Joey Butler를 데려옴



이 팀은 97승 65패로 NL 중부지구 1위를 차지하여 NLDS에 올라갔다.

이 시즌은 와일드카드 두 장을 모두 중부지구에서 가져갔을만큼 지구 내 경쟁이 아주 빡셌던 한 해였다. 마치 2000년대 초중반 Cards - Cubs - Astros의 경쟁을 보는 느낌이었다. 94승의 Pirates와 90승의 Reds가 맞붙은 NL 와카전은 각각 Liriano와 Cueto가 선발로 나왔고, Liriano가 7이닝 1실점으로 Reds 타선을 틀어막으며 승리를 따냈다.


해적떼의 타선은 맥선장 이외에는 그닥이었으나, Liriano - Cole - Burnett - Morton의 선발진과 Grilli - Watson - Melancon이 버틴 불펜은 매우 막강했다. 이 시리즈는 5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Waino의 1실점 완투와 후리세, 맷돼지의 홈런에 힘입어 승리를 거두고 NLCS에 올라갔다.


NLCS의 상대는 LA Dodgers였다. 역시 Greinke - Kershaw - 류뚱의 막강한 선발진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Wacha가 Kershaw와 두 번 맞붙어 두 번 모두 이기는 활약(시리즈 MVP로 선정)을 하며 4-2로 승리하고 월드시리즈에 올라갔다. 이 시리즈는 다른 것보다도 국뽕 팬들과 해설 때문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던 기억이 남아 있다...


드디어 또다시 우승을 하는가 싶었지만, 거기까지였다. 주루방해로 끝내기 승리를 했다가 견제사로 패배하기도 하고, 타선이 식물원으로 전락하여 상대 투수진에 농락당하는 사이에 MM의 이해할 수 없는 불펜기용은 경기 중후반을 내주고 추격 동력을 잃게 만들었다. 아.. MM으로 우승은 힘들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 시리즈였다. 아직도 Maness가 4차전에서 홈런 맞던 기억이 난다. ㅠㅠ




Posted by FreeRedbird
:


by Doovy

이번 편에서는 블로그 출범 후 가장 욕을 많이 먹은 인물, Mike Matheny 를 돌아보도록 한다. 사실 현 감독 위치에 앉아있는 인물을 옛 사람처럼 돌아보는게 좀 꺼려지긴 했으나, TLR 시대 (더 정확히는 Pre-Yadi 시대의) 포수 Matheny는 2000년대 초 Cardinals 역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인물이었기에 도저히 뺄 수가 없었다. Teammate로써, 인간으로써, 리더로써의 Matheny는 TLR 시대가 추구했던 가치관을 가장 잘 반영하는 선수였기에 비난(?)을 무릅쓰고 Matheny의 커리어를 돌아본다. 



Michael "The Toughest Man Alive" Matheny

Catcher

DOB: 1970년 9월 22일

Birth: Reynoldsburg, Ohio

Time with Cardinals: 2000-2004


Pre-Draft

Matheny가 자란 Ohio 주 Reynoldsburg는 주도 Columbus 근처의 황량하고 특징없는 Mid-west Suburb 동네로, 가족 모두가 OSU (Ohio State Univ) 풋볼 팬이었다. 이에 당연히 Matheny도 OSU 진학을 꿈꾸며 자랐고, 8년간의 리틀리그 경험을 쌓으면서 점차 동네를 대표하는 선수가 되어갔다. 집에서 4년제 대학을 나온 사람이 없었던 Matheny 가문에서는 늘 "운동도 운동이지만 일단 교육"을 중시했고, 이에 Matheny 는 학창시절 내내 운동선수치고 상당히 학점관리를 훌륭히 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고교시절 Matheny는 풋볼 팀과 야구 팀에서 모두 캡틴을 지냈으며, 철저한 Christian 가정에서 자라서 사생활도 깨끗했다. 무엇보다 리더로써의 자질은 Mike를 만난 사람 모두 칭찬하는 바였다. 여기까지만 보면 MidWest Elite Athlete의 교과서라고 볼 수 있는 Scott Rolen의 유년기가 생각난다. 


그러나 2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첫번째는 일단 타격이 너무 안됐으며 (본인도 인정), 두번째는 키가 작았다 (고교 마지막 학년 당시 177cm). 이 명백한 약점 때문에 OSU, University of Ohio 등 지역 연고학교에서는 Matheny에게 크게 신경쓰지 않았고, Matheny 본인도 고교 졸업반이었던1988년 드래프트에 본인의 이름을 넣기는 했으나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 무렵, Michigan 야구팀의 전설적인 감독인 Bud Middaugh[각주:1]가 Matheny에게 선뜻 장학금을 제시하면서 Matheny는 (학벌과 운동을 모두 잡을 수 있는) Michigan으로 진학하기로 결정한다. 프로 선수를 목표로 하고 있던 Matheny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드래프트 3일 내내 전화기 옆에서 기다렸으나, 한 통의 전화도 오지 않았다.

드래프트가 다 끝나고 나서 이틀 후, 뒤늦게 Blue Jays 측에서 Matheny를 뽑았다고 연락이 오긴 왔으나, Matheny는 이미 Michigan 진학으로 마음을 굳힌 상태였다. 1988년 여름 끝자락, Ohio 집을 떠나 Ann Arbor (Michigan 대학 소재지) 로 떠나기 이틀 전, Matheny의 집으로 당시 Blue Jays 단장 Pat Gillick이 직접 찾아왔다. 능수능란한 Gillick은 "우리가 너를 드래프트에서 지명했고, 학교 수업이 시작하기 전까지 우리가 너와 계약할 독점권이 있다. 프로에 들어오고 싶지 않느냐" 면서 만 17세의 Matheny[각주:2]와 계약 조건을 논의하기 시작했고, "수업 시작하기 전에 꼭 연락을 달라" 고 당부하고 떠났다. Gillick은 "우리가 너를 31라운드에 지명했지만, 2라운드급 계약금을 주겠다" 는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했다.


“I’m driving up (to Ann Arbor) and I’m trying not to act distracted, but a lot of us have had dreams of playing professional baseball and mine was sitting right in front of me. I’m sitting up in my dorm room in West Quad and my phone keeps ringing and they keep upping the ante and I’m thinking, ‘I’m really not that good.’ ”

- Mike Matheny, on his decision to attend Michigan 

(Michigan Daily, 06/05/2011)


혼란 속에 Michigan에 도착한 Matheny는 개강 첫 날 아침, 수업에 들어가기 직전 Gillick에게 전화를 걸어 Michigan 잔류를 알렸고, 이리하여 어렵게 Blue Jays의 구애를 뿌리쳤다. 그리고 이 결정은 훗날 선수 Matheny뿐 아니라 감독 Matheny를 있게 하는 계기가 된다.

스탠스만 보면 굉장히 잘 칠 것 같다.

[각주:3]

Bud Middaugh 감독의 판단은 정확했다[각주:4]. Big-10 Athelete 치고 덩치가 작은 편이던 Matheny는 대학 진학 후 6'2 (188cm) 를 훌쩍 넘는 키로 성장했으며, 흔치않은 Matheny의 Defensive 탤런트와 Make-up은 대학 레벨에서도 빛났다. 여전히 방망이는 부족했지만 노력으로 어느 정도 극복할만 했고, 1학년 때 이미 Connie Mack National Championship에서 전국구 우승을 맛보는 운도 따랐다. Freshman 시즌 후 Matheny를 스카우트해온 Middaugh 감독이 "풋볼 쪽에서 나는 수익을 야구 선수들 스카우트 비용으로 돌린다" 는 일종의 "공금횡령" 스캔들 속에 사임하면서 분위기가 뒤숭숭해졌는데, 결과적으로 보면 이것도 Matheny에게는 상당히 운이 따른 일이었다. 


Middaugh의 후임으로 온 새 Michigan 감독이 바로 60~70년대 Detroit Tigers의 대표 포수이자 통산 11회 올스타에 빛나던 Bill Freehan[각주:5]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현역 시절 골드글러브 5차례 수상에 빛나던 Freehan은 Matheny가 대학 레벨에서 만날 수 있는 최고의 캐칭 인스터럭터였고, Freehan 또한 Matheny로부터 "빅 리그 포수뿐 아니라 훗날 Manager가 될만한 자질이 보인다"며 특별히 아꼈다. 이 때 Freehan은 Matheny를 불러 "이 바닥(MLB)에 오래 있고 싶으면 (현역 은퇴 후에도) 무조건 스페인어를 해야한다. 지금 당장 너의 모든 교양과목을 (Electives) Spanish로 바꿔라[각주:6]" 고 조언했으며, Matheny는 이를 철저히 따랐다.[각주:7] 3학년 Matheny에게 주장 완장을 직접 채워준 것도 Bill Freehan이었고, Matheny가 Michigan에서의 마지막 시즌에 MVP를 수상했을 때 가장 기뻐했던 것도 Bill Freehan이었다.  

Draft and Minors

1991년 드래프트에서 Matheny는 Brewers의 지명 (8라운드 전체 208번[각주:8])을 받고 프로에 들어온다. 프로에 와서도 Matheny의 프로필은 한결같이 "All glove, No bat" 의 전형적인 수비형 포수였고, 다만 Defensive Talent가 워낙 출중해서 빅 리그로 올라가면 백업으로 분명히 쓸모가 있을 것이라는 게 전반적인 평이었다. 일단 아래는 Ko-모 유격수를 떠올리게 하는 안타까운 Matheny의 Brewers 산하 Minor 시절 타격 성적이다

Mike Matheny's Minor League Track Record

Year Lev G PA AB R H 2B 3B HR RBI BB SO 1991 Rk 64 284 253 35 72 14 0 2 34 19 52 .285 .348 .364 .711
1992 A+ 106 379 333 42 73 13 2 6 46 35 81 .219 .297 .324 .621
1993 AA 107 372 339 39 86 21 2 2 28 17 73 .254 .292 .345 .638
1994 AAA 57 203 177 20 39 10 1 4 21 16 39 .220 .299 .356 .655
7 Seasons 362 1336 1193 143 293 65 5 18 141 90 270 .246 .307 .354 .661


Matheny의 마이너 시절은 사실 스탯으로 보는게 큰 의미는 없다. 다만 Matheny는 훗날 감독이 된 후 Brewers 마이너리그 스태프들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으며, 포수로써 갖춰야 할 수많은 Intangible 들 (특히 수치화시킬 수 없는 Game-Calling, Framing, Game-Reading 등) 을 갈고 닦을 수 있는 기회였다고 회고한다. 특히 10년간 (1984-94) Brewers 에서 Player Development Coordinator 자리를 지키던 Bob Humphreys의 지도와, Catching Instructor였던 Del Crandall (현역시절 골드글러브 4회 수상[각주:9])의 개인레슨은 Matheny의 커리어 황금장갑 수집에 기초를 닦아주었다.

"When I came up through the organization, I think it was very much like how the Cardinals have their philosophy. I was very fortunate to have a very disciplined Minor League development that really focused on the fundamentals and playing the game hard, playing the game right. I was fortunate in that regard."             

- Mike Matheny, on Brewers farm system (4/6/2012, MLB.com)



1994년 4월, 프로 입문 3년만에 빅 리그에 데뷔한 Matheny는 백업포수로 빅 리그와 AAA를 전전하다가 1996년 개막전에서는 Brewers의 주전 포수 마스크를 썼다. 물론 타격이 워낙 안됐던 탓에 주전이라기엔 조금 부족한 연평균 340~350PA 정도를 받는데 그쳤으나, Matheny의 Brewers 시절 OPS가 평균 .600대를 간신히 웃도는 수준이었음을 감안하면 (Tony Cruz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다) 오히려 Brewers가 꽤나 참을성이 많았구나 싶다. 1998년까지 4시즌간 Brewers의 백스톱을 책임지던 Matheny는 1999시즌을 앞두고 자신을 드래프트해주었던 Blue Jays로 옮겨갔는데, 당시 Darrin Fletcher의 백업으로 뛰면서 57경기 출장에 그쳤기에 더 이상 주전 포수가 되는 것은 힘들어 보였다.

2000시즌: Cardinals로 이적

1999년 시즌이 끝나고 Cardinals는 당시 팜에서 가장 기대를 모으던 "운동형 포수" Eli Marrero를 주전 포수로 낙점한뒤, Marrero의 뒤를 받쳐줄 베테랑 백업 포수를 구하고 있었고, Matheny에게 눈길을 돌렸다. 이 당시 Matheny 영입을 가장 강력하게 지지하던 이는 베테랑 투수 Pat Hentgen이었다. Blue Jays에서의 마지막 시즌 (1999)에 Matheny와 한솥밥을 먹었던 Hentgen은 Matheny의 게임콜링, 도루저지 능력과 리더십을 몹시 높이 평가했으며, 이에 Jocketty와 TLR에게 직접 Matheny를 천거했다. 사실 Hentgen 본인도 Cardinals와 계약한지 갓 1달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는데 (99년 11월에 계약), 불과 3년 전에 CYA를 수상했던 빅 리그 10년차 투수의 추천서는 다른 어떤 낙하산보다도 강력했다. 그리고 Hentgen이 이어준 인연은 무려 5시즌이나 이어진다.

“He was pretty vocal about it. He was on my side. That’s just the ultimate compliment - for a pitcher with as much experience and success as Pat has had thinks that highly of me to put his name on the line.”

-Mike Matheny, on Hentgen's Recommendation (May 2000, AP)

스프링캠프에서 이미 Matheny 효과를 톡톡히 느낀 TLR은개막전 선발투수에 DK57을, 포수에 Matheny를 선정했다. 이 둘에게 2000시즌 개막전은 Cardinals 유니폼을 입고 처음 치르는 공식 경기이자 처음으로 호흡을 맞춰보는 경기였는데, 이 경기에서 두 선수는 나란히 크게 활약하며 Cubs를 박살했다.[각주:10] 모범적인 팀메이트였던 동시에 TLR이 원하는 스타일의 리더였던 이 배터리는 Cardinals 유니폼을 입음과 동시에 클럽하우스 리더로 부상했으며, 이후 DK57의 급사 전까지 둘은 뗄 수 없을만큼 친한 사이로 지냈다. 이후 2년 반동안 Darryl Kile과 Mike Matheny는 76경기 500이닝을 함께 했으며, Kile은 Matheny만큼 지능적이고 재능있는 포수를 백스톱에 앉혀놓고 던지는 것을 더할 나위 없는 행운으로 여겼다. Kile은 Matheny가 공을 받아줄 경우 K/BB 비율이 2.74에 이르렀는데, 이는 커리어 수치 (1.82) 보다 현격히 높은 수치이다. 포수의 Game-calling과 프레이밍은 f/x 데이터 없이 수치화하기 쉽지 않지만, 이 정도면 무시할 수 없는 차이이다.


Matheny는 Cards에 Yadi를 선사했고, Chris Carpenter를 갖다주었다.


There are few catchers in the game more solid defensively than Matheny. He frames pitches very well, and blocks pitches in the dirt as well as anyone. He has textbook mechanics, with his quick release that makes runners go reluctant to attempt a steal against him. Mike also has grown as a handler of pitchers under Cardinals pitching coach Dave Duncan.

-Scouting Report 2004, on Matheny's defense

계약 당시만 해도 Matheny는 Depth Chart에서 Eli Marrero의 백업플랜 수준이었으나, 정규시즌에서 Matheny의 타격 성적이 커리어 하이를 찍으면서 두 선수의 입지는 크게 달라졌다. Matheny는 빠른 속도로 Cardinals 투수진의 신임을 얻었으며, 꾸준한 플레잉타임을 얻으면서 .261/.317/.362의 슬래시라인을 기록했다. 비록 BABIP신의 가호를 받긴 했으나 (.323) 좌투수 상대로는 생각보다 쓸만한 타격을 보였고, 득점권에서는 유난히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어서 그럭저럭 사람 구실을 하는 모습이었다[각주:11]. 수비에서 Matheny는 자신의 개인 첫 골드글러브를 수상했으며, 시즌 내내 단 1개의 3루도루도 허용하지 않았고 (2루도루 44저지 43실패), Defensive WAR로 무려 2.4를 적립했다 (Andruw Jones에 이어서 ML 2위). 

이 시즌 Mike Matheny의 유일한 오점은 딱 하나. 시즌 막판 Matheny는 San Diego 원정에서 생일 선물(9/22) 로 받은 사냥용 칼을 뜯어보다가 오른손을 크게 베이는 사고를 쳤고, 이로 인해 포스트시즌을 모조리 결장하는 삽질을 했다. 별 거 아닌 듯 보였던 이 사건은 Rick Ankiel 의 포스트시즌 Melt-down으로 다시 재조명을 받는데, 자세한 이야기는 TLR 시리즈 Ankiel 편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Matheny가 Semi 사람다운 공격력 + 골드글러브 수비를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 고무된 Cardinals는 2001년 4월, Matheny에게 3년 연장계약의 선물을 안겨준다. 그러나 Matheny의 커리어 하이 시즌은 BABIP 빨 플루크였다는 게 증명이 되었고, 좌투수 상대 타율이 0.184까지 내려가는 고생 끝에 Matheny는 wRC+ 50, .218/.276/.304 라는 처참한 성적으로 2001 시즌을 마감한다. 



2002시즌: Mike Matheny and DK57

Matheny가 Cardinals 유니폼을 입고 남긴 업적 중 가장 큰 일을 꼽으라면 3차례의 GG 수상도, 2004년 NLDS에서의 깜짝 활약도 아닌, 2002시즌 Darryl Kile의 시즌 중 급사를 수습한 일을 꼽겠다.

거의 같은 시기에 Cardinals 유니폼을 입게 된 이 둘 (Darryl Kile and Mike Matheny)은 2000시즌 개막전을 시점으로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었다. Coors Field에서 고생을 하다 내려온 Kile은 본인의 구질을 본인보다 더 잘 이해하고 있는 Matheny 에게 던지는 것을 몹시 즐겼고, Matheny 역시 자신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이는 Kile의 공을 받기 원했다. 2000시즌 마지막 등판에서 Kile은 Matheny를 앉혀놓고 정규시즌 20승째 승리를 따냈고, 경기 후 샤워를 마친 Matheny가 라커룸에 돌아왔을 때 의자에는 Kile이 갖다준 Rolex 시계가 놓여있었다. 뉴욕을 원정 방문할 때마다 짝퉁 15불짜리 Rolex를 사 모으던 Matheny에게 Kile이 진품을 선물한 것이었다. 

2002시즌 전반기는 Matheny에게나 Kile에게나 결코 즐거운 시간들이 아니었다. Matheny는 타율 2할대 유지를 버거워하는 타격 슬럼프를 겪고 있었으며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Kile은 5월 말 Astros 전에서 2경기 연속 잘 던지고도 승리를 얻지못해 (6IP 2ER, 6IP 1ER) 약이 올라있는 상태였다. 평소같았으면 늘 경기 시간 3시간 전부터 클럽하우스에 나와서 Kerry Robinson과 체스를 두고, Matty Mo와 박물관에 가고, Matheny와 비디오 분석에 몰두하며 클럽하우스 분위기를 주도했던 Kile은 이 당시 그답지 않게 우울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TLR이 넌지시 Kile에게 다른 포수들과 호흡을 맞춰볼 것을 제안하자 Kile은 "Matheny가 아니면 던지지 않겠다" 는 강경한 모습을 보였다. 며칠 후인 6월 18일, Kile은 Matheny를 앉혀놓고 그 해 최고의 퍼포먼스인 7.2IP 1ER 의 호투로 Angels 타선을 잠재웠다.

2002년 6월 22일, Chicago의 Westin Hotel에서 Darryl Kile이 사체로 발견되었던 그 날은 Kile이 선발등판하기로 되어있었던 날이었다. 모두가 DK를 잃은 슬픔으로 침묵해있던 그 날 오후, TLR은 Matheny에게 경기를 뛸 것을 요구했다. Matheny는 "Kile이 던지지 않는다면 저도 안 뛰겠습니다." 라고 말하며 출전을 거부했고, TLR은 하는 수 없이 Simontacchi-Difelice 조합으로 나서서 1시간 47분 (1981년 이후 최단시간 경기) 만에 경기를 끝낸 뒤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선수단을 거둬서 숙소로 돌아갔다. 

라커룸에서 Rolex 시계를 만지작거리며 침묵으로 일관하던 Matheny는 슬픔은 미뤄두고 그 다음 날 경기부터 다시 출장을 강행했으며, 한 순간에 리더이자 친구, 동료이자 롤 모델을 동시에 잃어버린 투수진을 다독이는데 집중했으며, 후반기에는 .280에 가까운 타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DK와 유난히 각별했던 Matheny는 시즌이 끝날 때까지 단 한 차례의 DK 관련 공식 인터뷰도 하지 않았다. 시즌이 끝나고 Matheny는 교회 Grief Session에서 Kile에 대해 입을 처음 열었다. 그리고 5개월간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We went out and played the game. We had an edge to us. Nobody had to say anything. We wanted to represent what he believed in, which is just going out and doing your job."                                                                       

 - Mike Matheny, on 2002 season after Kile's death


2002 NLDS에서 Cardinals의 기세는 무서웠다. 이 팀은 6월 말에 에이스를 잃은 후 57승을 거두었고, 그 중심에는 Mike Matheny가 있었다.


2005시즌: Giants로 이적

2004 WS가 허무하게 막을 내리고 Matheny는 다시 FA로 풀렸다. Cards 입장에서는 리그 최고의 수비형 포수이자 필드 위에서는 코치, 클럽하우스 안에서는 리더로 추앙받는 Matheny를 재계약할 의도가 있었으나,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던 젊은 포수 Yadi의 존재와 Matheny의 어쩔 수 없는 공격력 부재 때문에 도저히 장기 계약을 줄 수는 없었다. 게다가 Cardinals 유니폼을 입고 숱한 기록을 세우고 Gold Glove를 3개나 수상한 탓에 Matheny는 시장에서 꽤나 인기가 있었으며, 수비 하나만으로 3년 계약을 받고 Giants로 이적한다. 10년 전만해도 지금처럼 수비력이 시장에서 쉽게 인정받지 않던 시절이었으며, 이렇게 All-Glove, No Bat 프로필의 만 34세 포수가 3년 계약을 따낸 것은 Matheny 의 시장 내 Reputation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케이스이다.

"Mike is one of the toughest competitors that we have ever witnessed and a true leader. As a player, he will be missed not only on the field, but in the clubhouse, the scouting meetings and on the road with his teammates. On behalf of the Giants, I wish Mike and his family all the best. He'll always be a Giant."


-Brian Sabean, on Matheny's retirement (02/01/2007, MLB.com)


Giants 이적은 Matheny에게 상당히 성공적이었다. 2005시즌, Matheny는 862차례의 기회에서 단 1개의 실책만을 범하며 Giants의 길고 풍성한 역사에 길이 남을 가장 완벽한 Defensive Performance를 선보였으며, 뿐만아니라 홈런 (13), 2루타 (36) 타점 (59) 에서 모두 커리어 하이를 찍었고, 득점권에서는 무려 .311이라는 해괴한 타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물론 이 사이 Matheny의 wRC+는 76에 그쳤으나 (비교를 원하신다면 올해 Descalso의 wRC+가 88이었다), 이마저도 Matheny 커리어에서 찾아보기 힘들 수준의 Best Offensive 시즌이었다. 

Matheny as a Catcher

우리는 근 10년째 Yadier Molina라는 걸출한 포수의 플레이를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어서 웬만한 포수들에게 쉽게 감동하지 않지만, 포수 Mike Matheny의 수비는 동시대 최고 수준이었다. 잠깐 Matheny 의 업적들을 돌아보자면...

  • Gold Glove 4회 수상 (2000, 2003, 2004, 2005) 
  • 통산 수비율 Career Fielding Percentage .994 (1,285 games, 43 errors in 7,774 total chances)
  • 252 연속경기 무실책 (8/1/02 - 8/4/04) (ML 최장기록)
  • 1565 연속 수비기회 (Chances) 무실책 (2004) (ML 최장기록)
  • 단일시즌 100+ 경기 무실책 (2003, 역대 단 3명)[각주:12]
  • 단일시즌 138경기 연속 무실책 (2003, 823 total chances)
  • Giants 프랜차이즈 사상 단일시즌 최고 수비율 (2005) (0.9988, 1112이닝 1실책)
  • 리그 최다 도루저지 1위 (2000, 2005)
  • 포수로 10,000이닝 소화 (1994-2006, 같은 기간 10,000이닝 소화한 포수는 13년간 8명[각주:13])

Matheny는 투수들에게 가장 인정받는 포수였다. 게임콜링와 블로킹, 피치 프레이밍, 타자에 대한 분석에 있어서 Matheny는 늘 두텁게 준비가 되어있었다. Matheny는 백스톱 자리에서 가장 필요한 "Understanding of the Game,"  경기 자체에 대한 이해도에 있어서 타의추종을 불허하던 포수였다. Blocking은 Charles Johnson이 나았을 지 모르고, Throwing Arm은 Ivan Rodriquez가 더 나았을 수도 있겠으나, 이 모든 것을 포함한 Overall 퍼포먼스에서 Matheny를 뛰어넘는 포수는 동시대에 없었다고 봐도 좋다. 지금의 Yadi가 Liliquist를 대신해서 투수코치를 하고 있다면, Matheny는 Duncan의 Proxy로 뛰었다고 봐도 좋다.

“I can sum up what happened in two words: Mike Matheny. He got hurt, and I started to lose confidence. I’m not the only guy who struggled there after he got hurt.”                             

- Jamey Wright, on Matheny's impact on him (2007, Dallas Morning News)



Matheny as a Hitter

칭찬을 많이 했으니 좀 까도록 해보자.

어떤 과정을 거치든 ML 레벨까지 올라오는 선수들은 다들 고교/대학/마이너시절 최소 Contact/Power 둘 중 하나는 보여주게 마련이다. 심지어 Defense-oriented 선수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Matheny는 고교시절부터 타율 .280을 버거워했으며, 대학에서도 딱히 Offensive Prowess로 알려진 일은 없었다. 마이너리그 시절, Matheny는 루키레벨 이후 OPS .700을 기록한 적이 없으며, Brewers 마이너에서의 4년을 Hard-stuff와 바닥에 패대기쳐지는 Breaking-stuff에 모두 약점을 드러냈다. 직구도 못치고 변화구도 못치는 타자였는데다가, 탄탄한 체격이 아까울만큼 파워도 없었고 쓸데없이 스윙 스트로크가 길어 배트 컨트롤도 엉망이었다 (Minor 4시즌간 루키레벨 위에서 OBP .300을 넘긴 적이 없다.) Matheny 본인도 고교시절 자신의 모습에 대해, "나는 타격은 영 젬병인데 그래도 잡고 던지는 건 좀 했었다" ("I couldn’t hit my way out of a wet bag, but I could catch and throw a little bit") 고 회고했다. 

(wRC+ 기준) 역대 최고 물방망이 포수들 (1871-2014, 최소 4000PA 이상)

  1. Malachi Kittridge (59)

  2. Mike Matheny (62)

  3. Joe Girardi (71)

  4. Luke Sewell

  5. Red Dooin

  6. Rollie Hemsley

  7. Jim Hegan

  8. Cy Perkins

  9. Brent Mayne (74)

  10. Brad Ausmus (76)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All Glove, No Bat 포수였기에, Matheny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Video-Junkie 라는 별명이 붙을만큼 미친듯이 비디오 룸에서 상대 투수 분석에 시간을 투자했다. 또한 Cardinals 이적 후에는 특히나 방망이를 더 짧게 잡아 브레이킹볼 대처능력을 키웠고, 배트 스피드를 증가할 수 없었기 때문에 스윙을 컴팩트하게 만드는 것에 주력했다. 이렇게 열심히 타격 메카니즘을 교정했음에도 불구하고 Matheny의 공격 생산력은 "거의 매 시즌" Replacement Level 수준 그 이하였다. 긴 설명이 필요없이, 역대급 물방망이를 보여주었던 Matheny의 위엄은 위 랭킹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기억하는 그 모든 물방망이 포수들보다 Matheny가 머리 하나는 앞서있다)

Matheny as a "Toughest Man Alive"

이미 잘 알려진 에피소드이긴 하지만 간단하게 복기해보자. 

1998년 5월 26일, Pirates와의 홈 경기에서 Matheny가 2:1로 9회말 1사 1,2루에서 타석에 들어섰다. Ball-in-the-dirt에 극히 약점이 있었던 Matheny는 (대체 무슨 구질에 약점이 없는지는 모르겠으나) 골프광이었던 당시 Brewers 감독 Phil Garner와 "변화구에 삼진 당할 때마다 골프공 한 박스씩을 조공으로 바칠 것"을 약속하고 변화구 대처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기에, 어떻게든 삼진을 당하지 않아야겠다는 심정으로 타석에 들어섰다. 상대 투수는 빠른 공 + 엉망인 제구로 이미 잘 알려져있던 Rich Loiselle[각주:14] 이었는데, 이 허접한 투수가 2구째 패스트볼을 Matheny의 얼굴 (정확히는 왼쪽 입가)를 맞춰버린 것이다. 이 공의 구속이 95마일이었다는 보도도 있고, 90마일이었다는 기사도 있으나, 뭐 몇 마일이었든 간에 "작정하고 던진 우투수의 Up-and-in 패스트볼" 이었음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동영상 링크)

"He was a catcher, so it's kind of weird for an outfielder to say this, but I emulated him. I looked up to him. He was a guy who taught us the right way to play the game. You keep your mouth shut and do your job. 

And, man, Mikey was tough."

- Geoff Jenkins, on Matheny's toughness (10/20/2012, MLB.com)

경기 후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찢어진 입가를 꼬맨 Matheny는 그 길로 곧장 Phil Garner를 찾아가 "If you can do me a favor, I want to play tomorrow" 라고 말했고, 결국 다음 날도 경기에 출장해 Matheny 다운 방법으로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4타수 무안타, 8회 상대 득점권에서 도루저지 성공). Matheny는 이 에피소드에 대해 "내가 공을 맞고 쓰러지지 않은 걸 기억하기보단 내가 HBP로 살아나가서 우리가 끝내기 안타로 이겼음을 기억해야 한다[각주:15]" 고 말했다.  당시 Brewers 의 백업포수였던 Bobby Hughes는 "저 인간이 얼굴에 공을 맞았는데도 나는 선발 출장을 못하나" 고 한탄했는데, 이 친구는 Tony Cruz와 만나면 말이 잘 통할 것 같다.



Matheny and Concussion

Matheny가 뇌진탕 후유증으로 조기 은퇴를 했고, 야구계에서 손꼽히는 Anti-Homeplate Collision 캠프의 주동 인물이라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있다. 대체 어느 정도로 뇌진탕의 아픔을 겪은 것일까?

마스크에 튕기는 파울팁, 주자와의 홈 플레이트 충돌 등으로 마이너 시절부터 뇌진탕은 Matheny에게 익숙한 친구같은 존재였다. Brewers 산하 AA팀의 경기를 라디오중계하던 Vaspersian은 마이너리그 시절부터 홈 플레이트에서의 충돌 후 Matheny 뇌진탕 증세를 겪었던 날에는 밤새도록 팀 닥터와 트레이너들이 Matheny의 숙소에 들어가 이 질문 저 질문을 하며 Matheny의 뇌가 정상인지 확인했다고 회고했다.

2006년 5월 29일, Matheny는 Marlins와의 홈 경기에 선발 포수로 출장했다. 이미 며칠간 유난히 많은 파울 볼들을 마스크에 맞아서 정신이 혼미하던 Matheny는 특유의 Grit으로 선발 출장을 강행했다. Giants 마운드에 오른 투수는 Cards 시절부터 Matheny 의 미트 안으로 수천개의 공을 던졌던 오랜 친구 Matt Morris였다. 도저히 Miguel Cabrera에게 정면승부를 할 수 없었던 이 Ex-Cards 배터리는 6회 2사 2루에서 Cabrera를 고의사구로 걸렀고, Matheny는 2루 주자 (Dan Uggla)가 혹시나 사인을 훔칠까봐 마운드로 직접 올라가 다음 타자인 Josh Willingham에게 패스트볼로 승부할 것을 이야기했다. 

"As my catcher and as a person he just meant so much to me. On the field he taught me how to be a professional. Off the field he taught me to be a man and a respectful person. He's going to be sorely missed by everybody. Unfortunately through his head trauma and concussions, it's just ending a little abruptly to him. He was a guy so hard-nosed and he wanted to play every day, so for it to end this way is unfortunate. After the blows to the head, he wasn't the same. We want the old Mike Matheny back, baseball player or not."

-Matt Morris, when Matheny retired (2007)

마운드에서 다시 내려와 플레이트 앞에 쪼그려앉은 Matheny는 불과 몇 초 전 Morris와 나눴던  대화를 완전히 잊어버렸다. 자신의 뇌가 뭔가 정상이 아니란 것을 깨달은 Matheny는 (자신이 요구했던) 다음 구질이 무엇일지 Guess해서 잡아야했고, Matheny는 커브를 예상하며 블로킹 자세를 취했다. Morris는 당연히 아까 상의한대로 패스트볼을 던졌고, 이에 당황한 Matheny는 스트라이크존으로 들어오는 패스트볼을 어이없이 놓쳐버렸다. Passed Ball. 평정심을 잃은 Morris는 이닝 종료 후 Matheny에게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거냐 화를 냈고, Matheny도 Matheny대로 shin-guards(종아리보호대)를 벗어서 Morris에게 던지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그리고 이틀 후인 5월 31일, Matheny는 자신의 커리어 마지막 경기를 치르게 된다.

쇠파이프도 씹어먹을 것 같은 강인한 이미지의 Matheny였지만,  10년간 25~30건의 뇌진탕은 견디기 힘든 수준의 고통이었다. Matheny의 열렬한 지지자이던 Giants 단장 Brian Sabean은 Matheny의 상태 호전을 위해 Pittsburgh 대학의 뇌진탕센터에 Matheny를 보내 프로그램을 따르게 했으나, 의사들의 의견은 "한 번만 더 뇌에 충격을 받으면 영구적으로 뇌에 손상을 입을 수 있다" 며 Matheny에게 선수생명 종료를 선고했다. 

뇌진탕의 여파는 생각보다 컸다. Matheny는 꾸준한 단기 기억 상실증 때문에 운전 중에도 몇 차례씩 부인 Kristen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지금 어디를 가고 있고, 왜 가고 있는지" 를 물어봤으며, 심박수가 120을 넘어가게 되면 지독한 현기증에 시달렸기에 늘 Heart Monitor를 달고 다녔다. 심지어 계단을 오를 때도 한 계단을 올라갈 때마다 끔찍한 두통과 현기증으로 구토증세에 시달렸으며, 이에 Matheny이 5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계단을 오를 때에는 최소 45분이 걸렸다고 한다. 주유소에서 자동차 주유구에 호스를 꽂아놓은 것을 까먹고 그냥 운전해서 나오다가 주유기를 망가트리는 일이 한 달에 3번 이상 있었다고 하니, 일상 생활에 큰 어려움이 있었음이 자명하다. 

더 이상 야구를 할 수 없다는 결정을 내린 Matheny는 이후 Giants의 미래에 누를 끼치지 싫다며 2007년 2월 1일을 앞두고 은퇴를 선언했으며, 자신과 같은 케이스가 더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에 홈 플레이트 충돌 반대 운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로부터 몇 년 후 Giants 백스톱이 된 Buster Posey가 "Posey Rule"을 만들어주면서 Matheny의 바람은 어느 정도 실현이 되었다.



총평 - Natural-born Leader

(하키, 농구, 풋볼에 비해) 직접적 육체 충돌 (No Contact Sports) 이 적다는 종목 특성을 감안한다면, 야구선수에게 "Toughest Man Alive" 라는 별칭은 약간 사치스러워 보이긴 한다. 90마일을 상회하는 공을 얼굴로 이겨내고 미동도 하지 않은 채 핏덩이를 "풰" 하고 뱉어내는 장면은 여전히 ESPN 혹은 MLB Network에서 All-time "Ouch" Top 50 쯤에 선정될만큼 분명 자극적이며, 스포츠 저널리스트들이 그냥 묻어버리기 아까울 소재이긴 하다. 그러나 Matheny가 단순히 이 에피소드 하나로 "무식하게 강한 맷집과 물방망이를 자랑하던 수비형 포수" 로 기억된다면, 그것 또한 억울한 일일 것이다.  

감독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선수시절의 Mike Matheny 역시 리더였다. Matheny는 개인으로써는 절대 빛나지 않는 선수였고, 타석에서의 그는 당당한 체구와 다르게 한없이 작아보였다. 그러나 8명의 팀메이트들을 눈앞에 두고 플레이트 뒤에 자리를 잡으면 Matheny의 진가가 발휘되었고, 그는 투수들 뿐 아니라 야수들까지 본인들의 능력을 발휘하도록 있는 힘껏 도왔다. 필드 안에서나 밖에서나 Matheny의 가치는 그가 주변에 미치는 영향으로써 증명되었고, 결국 마지막까지 많은 투수들을 "내 사람" 으로 만들고 은퇴했다. 수차례의 충돌과 마스크를 울리는 파울팁에 두들겨 맞으면서도 그는 무려 10,000이닝을 포수로 소화했고, 수백명의 투수들을 안심시켰으며, 그 기간동안 훌륭한 팀메이트, 훌륭한 포수, 모범적인 가장이자 인간으로 인정을 받았다. Toughest Man Alive 라는 별명은 어쩌면 95마일짜리 공을 맞고 안아픈척 쿨한척 해서 어울리는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2015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Old-School 멘탈리티로 무장한 Mike Matheny는 "시대에 맞는 스타일의 리더"로 보이지는 않을 수 있다.  이미 자주 드러낸 바 있지만, 필자는 "Playing the game the right way" 를 무식할 정도로 외치는 선수들에게 어쩔 수 없는 호감을 갖게 된다. 물론 Matheny의 불펜 운용에 육두문자를 내뱉은 적도 있지만 이 양반의 리더십에 감탄한 적도 생각보다 많다. 개인의 취향에 맞는지 여부를 떠나서, Matheny가 Natural-born 리더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지 않나 싶다.

“The job of a catcher is often undervalued as to the success he brings to the team as a whole; it’s constant managing. People talk about why so many catchers are managers. That’s because they’re managing people. Catchers are managing not just the pitchers, but they’re also managing other position players as well. They’re trying to get everyone on the same page. The best catchers typically do that sort of thing.”                                                                                                      
    - Mike Matheny (9/10/2010, Interview with Anna McDonald, Hardball Times)

Did you know...?

  • 2월 3일, Mike Matheny의 자서전 Matheny Manifesto가 출시된다. 요새 출판 행사 때문에 정신이 없는 것 같다.
  • Brewers는 1993년부터 "Mitch Harris Award"라는 상을 제정, 구단 내에서 가장 사회 봉사에 이바지한 선수를 특별히 표창했다. Brewers 팀내에서 주는 일종의 소규모 Roberto Clemente 상이라고 봐도 무난할만큼 비슷한 상이다. 1996년 Brewers는 26세의 백업포수 Matheny를 수상자로 정했다. 
  • 2003년, 존경받던 베테랑 투수 Darryl Kile의 안타까운 요절을 기리고자 Cardinals/Astros에서 Darryl Kile Award를 제정했다. 이 상은 그 해의 "a good teammate, a great friend, a fine father and a humble man" 에게 주어지는데, 이 상의 첫번째 수상자는 Mike Matheny였다. 
  • 2005년 말, Giants에서는 구단 내에서 가장 모범적이고 타 선수들에게 귀감이 되는 (Inspirational) 사람에게 주는 Willie McGee Award 수상자로 Mike Matheny를 정했다. Giants 유니폼을 입은 첫 해에 이 상을 수상한 인물은 Matheny가 처음이고, 당분간 이런 케이스는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 3개의 다른 구단에서 각각 Performance 가 아닌 Character로 표창을 받는 선수는 Matheny가 처음이 아닐까 싶다.


by Doovy



Sources: SI, ESPN, MLB.com, Baseball-reference, Fangraphs, STL Post dispatch, LA Times, Baseball-almanac, Viva El Birdos, The Michigan Daily, The Hardball Times, Dallas Morning News



  1. Bud Maddaugh는 Michigan 감독직을 10년간 지켰는데, 이 기간동안 올린 성적이 무려 465승 146패, 승률이 .761에 달한다. Big-10 Conference에서 이렇게 장기간 집권하는 것은 종목을 가리지 않고 어려운 일이다. [본문으로]
  2. 고등학생 Matheny는 당시 General Manager가 "단장" 이 아닌 "팀 장비 관리자" 쯤 되는 줄 알았다고 한다. [본문으로]
  3. 또한 남편 Matheny를 있게 하는 계기도 되는데, Gillick과의 통화 때문에 수업을 늦게 들어가게 되면서 현재 부인인 Kristen을 만나게 되었다는 얘기가 있다. [본문으로]
  4. Middaugh 감독은 Matheny 아버지의 우람한 체구를 보고 "저걸 보면 아들녀석도 확실히 더 클 수 있다" 는 생각에 장학금을 제시했다고 한다. [본문으로]
  5. Freehan 본인도 Michigan을 나왔으며, 대학 시절 All-American Catcher 로 선정되기도 했었던 엘리트 포수이다. [본문으로]
  6. "If you’re going to be in this game for a long time, even after your playing days, you need to change all your electives to learning Spanish." [본문으로]
  7. 결국 Spanish 부전공으로 졸업. [본문으로]
  8. 이 라운드에서는 Jason Schmidt, Derek Lowe, Steve Trachsel 등 훗날 꽤 성공적인 커리어를 밟게되는 투수들이 많았다. [본문으로]
  9. 골드 글러브를 4회 이상 받은 포수는 Mike Matheny를 포함해 역대 9명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 중 Matheny를 가르친 포수가 2명 (Bill Freehan, Del Crandall), Matheny가 가르친 포수가 1명 (Yaider Molina) 이다. [본문으로]
  10. 7:1 승리, Kile 6IP 2H 1ER, Matheny 2-for-4 [본문으로]
  11. Matheny의 통산 득점권 타율은 .270,OPS는 .752으로 비득점권 타율 .232에 비해 훨씬 높은 수치이다. [본문으로]
  12. Matheny 말고 다른 2명은 Phillies의 포수 Buddy Rosar (1946) 와 Marlins 역사상 최고의 포수였던 Charles Johnson (1997) 뿐이다. [본문으로]
  13. 다른 7명은 각각 Mike Piazza, Jason Kendall, Pudge Rodriguez, Brad Ausmus, Dan Wilson, 그리고 Jorge Posada 뿐이다. [본문으로]
  14. 잘 모르는 선수라서 찾아봤는데, 통산 200경기에 넘게 등판해서 BB/9이 5.0에 달한다. 2002년에는 Cardinals 마이너에서 잠시 뛰었었다. [본문으로]
  15. 다음 타자 Jose Valentin이 Walk-off 2-run single을 치면서 Matheny의 희생이 승리를 불러왔다. [본문으로]
Posted by Doovy+
:

2013 Season 총정리 시리즈(11) - Organizational Recap


대망의 시리즈 마지막 글, 총정리편이다.


(이전 글 보기)

DSL Cardinals

GCL Cardinals

Johnson City Cardinals

State College Spikes

Peoria Chiefs

Palm Beach Cardinals

Springfield Cardinals

Memphis Redbirds

St. Louis Cardinals, 타자편



Front Office


지난 겨울, Mo는 별다른 외부영입 없이 보수적인 태도로 매우 지루한 오프시즌을 보냈는데, 당시 이 팀에는 그다지 빈 자리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라인업에서 가장 큰 구멍이었던 2루에는 MCarp를 2루수로 변신시키는 도박을 감행하였는데, 결과적으로 이게 대박이 되었다. FA 계약은 Ronny Cedeno와 두 명의 영감을 영입한 것이 다였는데, Cedeno는 시즌 개막도 하기 전에 방출되었고, 영감 두 명 중 Wigginton도 지독한 삽질 끝에 시즌 도중에 방출되었다. Choate는 좌완 스페셜리스트로서 나름 자기몫을 잘 해 주었는데, 역시 LOOGY인 Boone Logan이 이번 오프시즌에 3yr/16.5M의 메가딜을 따낸 것을 보면 Choate의 잔여 계약(2yr/5M)은 무척 합리적으로 보인다. 한편, 이들 외에 기존 선수들 중 Allen Craig 및 Adam Wainwright과 각각 5yr/31M, 5yr/97.5M의 연장 계약을 체결하였는데, 2011년 월드시리즈 우승팀의 주역으로 연봉 조정을 앞두고 있던 선수들 중 Freese나 Jay를 내버려두고 Craig하고만 연장 계약을 한 것은 아주 좋은 선택이었고, Waino의 연장계약은 뭐 이정도 퍼 주는 것 이외에 다른 선택지는 없었던 것 같다. 그나마도 올해 내내 지속되고 있는 엽기적인 인플레이션 덕이 이 딜 조차도 오버페이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Yadi 연장계약 때도 그렇고, Mo는 그냥 정직하게 시장 시세를 주고 있는데, 주변에서 계속해서 하이퍼 인플레이션이 일어나서, 소 뒷걸음질치다 쥐잡은 격으로 계속 시세 대비 저렴한 딜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다만 아쉬운 것이 있다면, 시즌 중에도 너무 보수적인 태도를 취한 것이 아닌가 싶다. 코사마를 시즌 내내 주전 유격수로 기용하도록 내버려 둔 것이라든지, 주루요정 영감 방출 후 이렇다할 보강 없이 식물 벤치를 유지하여 포스트시즌에서 변화를 줄 수 있는 여지 자체가 없었던 것은 그다지 좋은 로스터 구성이라고 하기 어렵다.


이번 오프시즌에는 잔뜩 쌓인 젊은 선발투수들을 트레이드 베잇으로 활용하여 뭔가 블록버스터 트레이드를 하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결국은 약랄타의 FA 영입과 후리세를 팔아 Bourjos를 얻어오는 것으로 일찌감치 오프시즌을 거의 마무리해 버렸다. Doug Fister가 헐값으로 팔려나가고, Price나 Samardzija, Dempster 등의 트레이드도 별다른 움직임이 없는 것을 보면, 이번 오프시즌은 선발투수를 트레이드하기에 적절하지 않은 시장인 것 같다. 팀들은 선발투수를 얻기 위해 출혈을 많이 하고 트레이드를 감행하기 보다는, 차라리 그저그런 4-5선발급 FA 투수들(Jason Vargas 4yr/32M????? Scott Feldman 3yr/30M??? Phil Hughes 3yr/24M???? Tim Lincecum 2yr/35M 오 마이 갓....)에 오버페이를 하는 쪽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이왕이면 선발투수 적체도 좀 해결하면서 나이어린 유격수를 얻는 트레이드를 하는 것이 이상적이겠지만, 제 값을 못 받는다면 굳이 억지로 덤핑을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지난 여름의 Matt Garza 딜 등을 생각하면, 차라리 여름 트레이드 시장을 노리는 것이 더 나을 듯하다.



Major League Team & Coaching Staff


이전에도 언급했다시피, 정규시즌 리그 최다승을 기록하고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여 월드시리즈까지 올라갔다면 분명 성공적인 시즌이라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주전들의 잇단 부상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성과를 이루어낸 선수들과 코칭스탭에게 박수를 보낸다.


MM은 정규시즌에 여전히 작년에 비해 늘지 않은 답답한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는데, 불필요하게 창의력을 많이 발휘하여 overmanaging을 일삼던 TLR과는 정반대로 너무 변화가 없는 뻔한 선택을 많이 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포스트시즌에 올라가니 오히려 정규시즌보다는 한결 상식적인 경기 운영을 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는 것이다. 특히 Don Mattingly와 맞붙은 NLCS에서는 MM이 명장같이 느껴질 정도였다. -_-;;;; 선수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선수들에게 존경을 받고, 선수들에게 동기부여를 하는 등의 측면에서는 이미 꽤 우수한 면모를 보였기 때문에, 전술적인 면에서 정규시즌에도 이번 포스트시즌처럼만 평범하게 할 수 있다면 큰 불만은 없을 것 같다. 특히 쓸데없이 선수와 싸우거나 언론에 뻘소리를 하지 않는 점이 아주 좋다.


Derek Lilliquist는 역할이 뭔지 잘 모르겠다. Yadi가 메인 투수코치이고 Lilliquist는 보조 코치인 것 같다. 뭐 알아서들 잘 하고 있으니 괜히 뻘짓만 안하면 이것도 만족한다. 타격 쪽은 Big Mac이 떠난 후 Mabry - Bengie 체제가 되면서 타자들의 인내심이 확 없어진 느낌이었는데, 사실 공을 많이 본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좋은 공은 치고 나쁜 공은 건드리지 않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선구안인데, Cards의 O-Swing%(존을 벗어난 공에 스윙하는 비율)는 30.1%로 MLB 30개 팀 중 8번째로 낮은 수치여서, 큰 문제는 아닌 것 같다. Bengie 대신 영입된 David Bell이 어떤 변화를 가져올 지는 지켜봐야 할 듯.



Farm System


상위 마이너에 좋은 유망주들을 잔뜩 쌓아놓은 결과, 메이저리그 팀에 꼭 필요한 뎁스를 제공하여 메이저리그 팀이 좋은 성과를 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Rosie, Wacha, 맷돼지, Maness 등 우수한 유망주들이 팜을 졸업하여 팜이 약해진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나마도 Oscar Taveras와 Kolten Wong, CMart 등도 내년 시즌엔 팜을 졸업할 것으로 보이므로, 내년 이맘때가 되면 더욱 부실한 상태가 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대부분의 유망주들이 발전을 했던 작년과 달리, 올해에는 유망주들 사이에 희비가 엇갈렸다. Piscotty나 Ramsey, Cooney와 같이 주가를 올린 경우가 있는가 하면, Jenkins나 Anthony Garcia, Carson Kelly, Wisdom 등은 실망스런 시즌을 보냈다. Swagerty는 TJ 수술 후 아직 제 컨디션을 찾지 못하고 있다.


내년 시즌 Marco Gonzales나 Rob Kaminsky의 성장을 지켜봐야겠지만, 올해 드래프트는 참 심심하고 재미없었다. 이제 대규모 메이저리그 콜업으로 팜이 허전해지고 있으니, 내년에는 좀 더 과감한 드래프트로 팜을 빠르게 재충전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툴가이는 역시 뽑지 말아야 할 것 같기도 하고... -_-;;




이것으로 올 시즌 총정리 시리즈를 모두 마감하고자 한다.


내일쯤에는 우리 블로그의 오프시즌 최대 이벤트인 유망주 리스트 공지를 띄울 예정이니, 참가하고자 하시는 분들은 자주 들러 주시기 바란다.

Posted by FreeRedbird
:

by 주인장.


I-70 Series Recap

(미국시간)


5/27 Cardinals 6, Royals 3

5/28 Cardinals 4, Royals 1

5/29 Cardinals 5, Royals 3

5/30 Royals 4, Cardinals 2


3차전에서 짜릿한 역전승을 거둘 때만 해도 분위기가 참 좋았는데... 아니, Wacha가 7이닝 1실점의 좋은 투구를 하고 내려갈 때만 해도 스윕이 눈앞에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여기서 MM이 뜬금없는 핵실험을 강행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4연투를 한 Mujica에게 휴식을 주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으나, 1점 리드 상황에서 9회에 왜 하필 Boggs를 올려서 동점홈런을 맞고, 다시 동점 상황에서 하필 Marte를 올려서 간단하게 역전을 허용했는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얘네들이 나오면 경기를 지는 것은 뻔히 예상되는 결과인데도 말이다. 대안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Rosie를 올리면 되는 상황이었고, Rosie조차 아끼고 싶었다면 Maness를 그냥 내버려 둘 수도 있었다. 어쨌거나, 무려 4시간이 넘는 Rain Delay가 지나고 나서 무사 만루 상황에 등판한 페라리가 상대의 퇴근 의지에 힘입어 추가실점 없이 이닝을 마무리했으나, 이미 승부는 기운 뒤였다. 다 잡은 스윕을 마지막 순간에 날려 버렸으니 정말 아깝기만 하다.


이 9회의 투수 기용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잘 모르겠는데, 이런 녀석들을 MM이 기용하지 않도록 로스터에서 아예 빼버리는 수밖에는 답이 없는 듯하다. Boggs는 당장 내리고 Siegrist를 콜업하는 것이 나을 것 같고, 10일이 경과한 후에는 Marte도 그냥 Blazek과 바꾸는 게 나을 것이다. 얘네들의 투구를 보고 있는 것은 과거 Yan과 Borbon 등이 매일 불을 지르던 2003년 불펜을 떠올리게 할 정도이다.



Series Preview: Cardinals vs Giants

팀 성적
Cardinals 35승 18패 (NL Central 1위) Run Diff. +72
Giants 29승 25패 (NL West 2위, 1.5 게임차) Run Diff. -2


이번 시리즈는 Giants와의 주말 홈 3연전이다. Giants는 언제나 묘하게 강한 것 같은 팀이다. 지난 3년간 월드시리즈 우승을 두 번이나 하기도 했고, 실제로 붙어 보면 항상 뭔가 까다롭고 껄끄러운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Cardinals는 비록 MM의 뜬금없는 핵실험으로 인해 직전 경기를 패하긴 했으나, 여전히 .660의 승률로 메이저리그 전체 1위를 달리고 있다. 다음은 메이저리그 30개 팀 중 승률 상위 5개 팀을 나타낸 것이다.


Cardinals 35승 18패 승률 .660 (최근 10경기 7승 3패)

Pirates 34승 20패 승률 .630 (최근 10경기 8승 2패)

Rangers 33승 20패 승률 .623 (최근 10경기 5승 5패)

Reds 33승 21패 승률 .611 (최근 10경기 7승 3패)

Braves 32승 21패 승률 .604 (최근 10경기 7승 3패)


우리가 얼마나 빡센 지구에 속해 있는지 새삼 느낄 수 있다. 이대로 가면 NL 중부에서 3팀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겠다.



Probable Starters


Game 1: Shelby Miller vs Matt Cain                     5/31 20:15 ET (6/1 9:15 KST)

Game 2: Adam Wainwright vs Madison Bumgarner   6/1  19:15 ET (6/2 8:15 KST)

Game 3: Tyler Lyons vs Chad Gaudin                   6/2  14:15 ET (6/3 3:15 KST)


1차전에서는 Miller가 Cain을 상대하게 된다. Miller는 최근 3차례의 등판에서 모두 6이닝을 넘기지 못하는 등 초반의 무서운 기세가 한풀 꺾인 모습인데, 루키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일 지는 모르겠으나, stuff만 앞세울 것이 아니라 좀 더 효율적으로 투구하는 요령이 필요한 것 같다. 특히 삼진을 잘 당하지 않고 컨택 능력이 우수한 Giants의 타선은 Miller의 투구수를 더욱 늘어나게 만들 것으로 보여 쉽지 않은 경기가 예상된다. 상대 투수 Cain은 올 시즌 들어 피홈런이 갑자기 크게 증가하면서(1.71 HR/9) 5.00 ERA, 4.91 FIP로 상당히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Rockies전에서는 5이닝을 피홈런 없이 2실점으로 막긴 했으나 대신 볼넷을 5개나 내주었다. 여전히 정상 컨디션이 아닌 것 같으니 초반부터 괴롭혀서 최대한 빨리 끌어 내리도록 하자. 양 팀이 불펜을 소모하는 경기가 될 것 같다. 핵실험 덕에 어제 쉰 Rosie와 Mujica의 활약이 필수적일 듯.


2차전은 Waino와 Bumgarner의 대결이 되겠다. 단 두 달 만에 3 WAR을 적립, NL 투수 WAR 1위를 달리고 있는 Waino에 대해서는 특별히 할 말이 없다. Bumgarner는 Cain, Lincecum, Vogelsong 등의 동반 부진 속에서도 여전히 제 몫을 하고 있는, 올 시즌 Giants의 진정한 에이스이다. 쉽지 않은 상대지만, 그래도 왠지 이 경기는 이길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작년 NLCS에서 털었던 기억 때문일까, 아니면 Waino에 대한 믿음 때문일까...?


3차전은 처음에 눈을 의심했다. Chad Gaudin이 선발 등판을 하다니? 아마도 Vogelsong이 DL에 가서 땜빵으로 선발 등판을 하는 모양이다. Gaudin이 메이저리그에서 마지막으로 선발 등판을 했던 것은 2009년의 일이다. 올 시즌 불펜에서 나름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기는 한데, 역시 체력 문제도 있고 5이닝 이후까지 버티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앞의 1, 2차전에서 상대 불펜을 많이 소모시킨다면, 이 경기는 좀 더 쉽게 풀어갈 수 있을 것이다. Lyons는 지난 번 등판처럼 투심과 제구력을 무기로 적극적인 피칭을 한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Statistics


스탯은 Fangraphs를 참고하였으며, 순위는 NL 15팀 중에서의 순위이다.


개인적으로 Giants 하면 떠오르는 팀컬러는 출루보다는 컨택에 기반한 공격, 플라이볼 성향의 투수진과 우수한 외야 수비(+넓은 홈구장)의 결합으로 나타나는 우수한 실점 방어 능력, 뛰어난 수비와 주루, 잘 다져진 기본기 등인데, 이중 "우수한 실점 방어 능력"을 빼고는 딱 그대로이다. 특히 타선이 삼진 안당하기에서 압도적으로 1위를 달리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참 까다로운 타선이다.


상대 투수진이 부진한 성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은 리그 14위에 불과한 볼넷 비율이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점을 십분 활용하여, 타자들은 붕붕거리지 말고 상대 투수들을 충분히 물고 늘어져야 할 것이다.


우리는 결국 UZR/150에서도 이제 리그 꼴찌로 주저앉았다. 최고승률 팀이 수비와 주루는 리그 꼴찌라니 참...



Player to Watch


Pete Kozma: 얼마전 LAD와의 경기에서 4타수 4안타로 폭발했을 때 코사마에 대해 한번쯤 다뤄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현재 코사마는 81 wRC+, 3.2 UZR(10.8 UZR/150)로 0.8 WAR을 기록 중이다. 올 시즌 메이저리그 유격수의 평균 공격력은 84 wRC+로, 코사마는 놀랍게도 리그 평균에 살짝 못미치는(기대치를 훨씬 상회하는) 공격력을 보이고 있으며, 수비에서는 오히려 리그 평균보다도 우수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있는 것이다. 메이저리그 유격수 WAR 순위에서도, 현재 30개 구단 주전 유격수 중 16위에 올라 있다. 1년 전에는 AAA 백업 내야수였던 코사마가 어느새 메이저리그 평균 수준의 유격수로 활약을 해 주고 있는 것이다...!!! Cards가 메이저리그 최고 승률을 구가하고 있는 것은 물론 선발진의 힘이 가장 크겠지만, Furcal의 부상 공백을 최저연봉을 받으며 소리없이 메꿔주고 있는 코사마의 공로도 인정해줘야 할 것 같다. 내가 이렇게 코사마를 칭찬하는 날이 올 줄이야......



Giants 타선은 리그 2위의 wRC+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어려운 타자들이 많이 포진하고 있다. 메이저리그 최고의 젊은 스타 플레이어 중 하나인 Buster Posey(144 wRC+)를 필두로 Hunter Pence(134 wRC+), Marco Scutaro(132), Brandon Crawford(120), Pablo Sandoval(113), Brandon Belt(111) 등이 모두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부분 뱃 컨트롤이 좋고 삼진을 잘 안당하는 타자들이어서 인플레이 타구가 많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므로, 수비력이 썩 좋지 않은 Cards와는 상성이 좋지 않을 것 같아 우려된다.



Go Cardinals...!!!

Posted by FreeRedbird
:

by Doovy

일곱번째 TLR 시리즈 주인공은 Cardinals에 와서 빛을 보기 시작한 Late-bloomer 투수 계보의 초대격이던 Texas 출신 우완투수, Woody Williams이다. 이 Late-Bloomer (aka Dave Duncan 컬렉션) 계보는 이후 Jeff Suppan-Jason Marquis-Joel Pineiro-Kyle Lohse 등이 이어왔는데, Woody Williams는 이들 중 가장 드라마틱하고도 불꽃같은 변신으로 짧고 굵게 Cardinals의 2000년대 초반을 장식했으며, Dave Duncan의 인생 최대 역작 중 하나로 손꼽힌다. 커터가 지금처럼 대중화되지 않았던 시절 효과적인 커터로 Pitch-to-contact 철학의 정점을 찍었던 Woody Williams를 잠시 곱씹어보자.

 

Jocketty의 역대 최고의 Trade Deadline Move 중 하나, Woody Williams

 

 

Gregory Scott 'Woody' Williams

RHP (Starter)

DOB: 1966년 8월 19

Birth: Houston, Texas

Time with Cardinals: 2001-2004


Draft and Minors

Williams 는 University of Houston 출신으로, 1988년 드래프트에서 무려 28라운드 (전체 732번)에서 지명된 끝에 Blue Jays 유니폼을 입고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전체 732번에서 지명된 것으로부터 유추할 수 있듯이 그에 대한 기대는 처음부터 크지 않았다. 패스트볼 구속이 빨랐던 것도 아니며 (드래프트 당시 90마일 근처) 압도적인 breaking stuff 가 있던 것도 아니었다. 나이가 어리거나 (대졸 후 드래프트 참여, 계약 당시 거의 만 22세) 탁월한 하드웨어가 있던 것도 아니었다 (키 6'0). 과연 빅 리그에 데뷔할 수나 있을까 싶은 수준의 지극히 평범한 선수로, 대학에서도 유격수를 보다가 뒤늦게 투수로 전향한 케이스였다. 그나마 "괜찮은 커맨드"와 "가능성이 있는 커브+체인지업" 그리고 Intangible "근성" 하나를 믿고 한번 키워봄직한 투수였다.

Williams는 마이너리그에서 생각보다 빠른 성장을 했고, 1990년에는 AAA볼까지 경험을 했다 (28라운드 출신 치고는 빠른 성장이지만, 나이도 워낙 많았다) Blue Jays에서는 어차피 Ceiling이 높지 않은 Williams를 릴리버로 쓸 생각을 하고 1991년 그를 릴리버로 돌리는 실험을 했으나, AAA볼에 올라간 Williams의 K/9이 하락하면서 이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 그래도 Williams는 공격적인 피칭과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는 습관으로 적은 피홈런율을 기록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이를 무기로 1992년 AAA볼에서 괜찮은 성적을 내고 (120.2이닝 평균자책 3.13) 1993년 스윙맨으로 Blue Jays 로스터에 들었다. 물론 포스트시즌 엔트리에는 들지 못했다.

Woody Williams' Minor League Track Record

Year Age Tm Lg Lev W L ERA G GS GF CG SV IP H R ER HR BB SO WHIP H/9 HR/9 BB/9 SO/9 SO/BB
1988 21 2 Teams 2 Lgs A--AA 10 4 2.16 18 16 0 2 0 104.1 75 35 25 2 33 83 1.035 6.5 0.2 2.8 7.2 2.52
1988 21 St. Catharines NYPL A- 8 2 1.54 12 12 0 2 0 76.0 48 22 13 1 21 58 0.908 5.7 0.1 2.5 6.9 2.76
1988 21 Knoxville SOUL AA 2 2 3.81 6 4 0 0 0 28.1 27 13 12 1 12 25 1.376 8.6 0.3 3.8 7.9 2.08
1989 22 2 Teams 2 Lgs A-AA 6 10 2.89 34 21 9 2 4 152.1 124 58 49 9 60 111 1.208 7.3 0.5 3.5 6.6 1.85
1989 22 Dunedin FLOR A 3 5 2.32 20 9 8 0 3 81.1 63 26 21 3 27 60 1.107 7.0 0.3 3.0 6.6 2.22
1989 22 Knoxville SOUL AA 3 5 3.55 14 12 1 2 1 71.0 61 32 28 6 33 51 1.324 7.7 0.8 4.2 6.5 1.55
1990 23 2 Teams 2 Lgs AA-AAA 7 10 3.60 45 12 19 0 5 135.0 126 65 54 8 43 82 1.252 8.4 0.5 2.9 5.5 1.91
1990 23 Knoxville SOUL AA 7 9 3.14 42 12 19 0 5 126.0 111 55 44 7 39 74 1.190 7.9 0.5 2.8 5.3 1.90
1990 23 Syracuse IL AAA 0 1 10.00 3 0 0 0 0 9.0 15 10 10 1 4 8 2.111 15.0 1.0 4.0 8.0 2.00
1991 24 2 Teams 2 Lgs AAA-AA 6 6 3.88 49 1 24 0 9 97.1 94 45 42 3 41 74 1.387 8.7 0.3 3.8 6.8 1.80
1991 24 Knoxville SOUL AA 3 2 3.59 18 1 8 0 3 42.2 42 18 17 1 14 37 1.312 8.9 0.2 3.0 7.8 2.64
1991 24 Syracuse IL AAA 3 4 4.12 31 0 16 0 6 54.2 52 27 25 2 27 37 1.445 8.6 0.3 4.4 6.1 1.37
1992 25 Syracuse IL AAA 6 8 3.13 25 16 3 1 1 120.2 115 46 42 4 41 81 1.293 8.6 0.3 3.1 6.0 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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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rated 2/19/2013.

1993-2000년: LAIM 

Williams는 데뷔 시즌 이후 4년차였던 1996년까지 ML에서 풀타임을 치른 적이 없었다. AAA행은 늘 그에게 고려해야 할 옵션이었고, Williams 정도의 재능은 얼마든지 Replacable 했다. 일각에서는 90년대 초 Blue Jays 투수진이 워낙 강했기 때문에 Williams가 마이너리그에서 오래 뛰었어야 했다고 얘기하는데, 이는 절반의 사실이다. 1992-3년 WS 우승 당시 Jays 투수진에는 Jimmy Key, Dave Stewart, Dave Stieb 외에도 David Cone, David Wells, Al Leiter 등 이후 90년대를 주름잡는 (Williams보다 훨씬 높은 ceiling을 보유한) 투수들이 많았다. 허나 1995년 이후의 Jays 투수진을 보면 마치 2007년 Cardinals 투수진을 보는 마냥 착잡하다. 마이너리그에서 Williams의 기록은 (특히 AAA 승격 이후는) 그다지 압도적이지 못했으며, 빅 리그 승격 이후에도 인상적인 모습을 보이지는 못했다. (Williams는 1이닝을 압도할만큼의 구위를 지니지 못했으며, 탈삼진 능력이 후진 것에 비하면 컨트롤이 대단한 편은 아니었다. 따라서 데뷔 첫 3년간 그에게 선발등판 기회는 거의 돌아오지 않았다.)

All-around-average 투수였던 Williams가 유일하게 평균 이상으로 해낼 수 있던 것은 그나마 이닝을 꾸역꾸역 먹는 것이었다. 1997년 Williams는 Hentgen과 새로 들어온 Clemens 둘의 원투펀치 뒤에서 31경기 194.2이닝을 던졌고, 이듬해에인 1998년에도 32경기에 선발로 나가 208.2이닝을 소화하며 자신의 장점을 십분 발휘했으나, 2년간 무려 64개의 홈런을 허용했다. Woody는 스트라이크 존 안으로 어떻게든 공을 집어넣는 공격적인 피칭에 익숙해져 있었으나, AAA볼과는 달리 ML 타자들은 이를 쉽게 홈런으로 연결시켰다. FIP는 두 시즌 모두 5점대가 넘었고, 피안타율만큼은 리그 상위권이었다.

참 어색한 Woody의 Jays 시절 모습

 

1998년 오프시즌, Jays는 Woody Williams에 릴리버 Carlos Almanzar, 유망주 Pete Tucci까지 얹어서 Padres의 1라운더 출신 선발투수 Joey Hamilton과 바꾸는 3:1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당시 Pete Tucci는 ML에 데뷔하지 못했기에 생소한 이름이지만, 나름 1996년 드래프트에서 Jay가 1라운드에서 뽑은 외야수이며, 파워와 스피드를 모두 지닌 나름 (폭망한) Tool-guy였다. 특히 1998시즌에서 A+와 AA를 합쳐 30홈런 112타점 .318/.376/.602를 때리며 한창 주가를 올린터라, Jays가 Joey Hamilton에 대한 기대가 꽤 컸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이 이야기는 당시 Williams와 Hamilton의 선수 가치가 어느 정도 차이가 났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기도 하다. 

Williams가 이후 NL로 건너가 완전히 '용'이 된 반면, Joey Hamilton (추억이 돋는다 이 이름!) 은 1998년이 사실상 마지막 전성기였다 (그래봤자 WAR 1.6에 그쳤지만...) Hamilton은 당시 1라운더 특유의 Hype에다가 6'4 220Ib의 당당한 하드웨어, 그리고 데뷔 첫 2시즌간 보여준 좋은 모습 (2년간 15승, 300이닝, 3완봉, 평균자책 3.02) 때문에 계속 Padres에서 참을성을 가지고 기다려 보았던 투수였는데, 하체를 거의 쓰지 않고 상체의 힘만으로 던지던 투구폼과 멘붕 경향 (그로 인한 고질적 제구 불안) 때문에 결국 망하고야 만 케이스다. 그래도 나름 Padres에서는 5년동안 934이닝을 소화해주고 55승 WAR 14.8에 평균자책 3.83을 해줬으니 (기대만큼은 아니어도) 어느 정도 밥값은 했다고 봐야 하겠지만, Blue Jays로 옮기고 나서는 무려 6.52의 평균자책을 기록하며 불펜으로 쫓겨났으며, 3년간 도합 WAR 0을 기록하고 방출되었다. 

이 트레이드는 사실 Woody Williams와 Ray Lankford 의 트레이드만큼 관심을 받지는 않았으나, 돌이켜보면 Jays 입장에서  Home-run-prone인 32세의 오른손 선발투수에다가 불펜투수 + 유망주까지 더해서 뭔가 선발진 강화를 꾀했으나, 당시 28세였던 Hamilton이 완전히 무너지면서 강화는 커녕 선발진 붕괴를 초래한 굉장히 끔찍한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Tucci가 ML에 데뷔조차 못하고, Carlos Almanzar도 2년간 107이닝 WAR -0.2를 찍으면서 전혀 San Padres에 도움이 되지 못했긴 했으나, Williams는 그래도 Padres로 건너간 이후 2년 반동안 500이닝과 30승, WAR 3 이상을 적립해주면서 자신에 대한 Padres의 기대치는 그대로 맞춰주었다. 이 정도면 됐지, 뭘 더 바랬는가. 

재미있는 것은 트레이드 상대였던 Joey Hamilton이 Williams와 마찬가지로 1988년 드래프트 28라운드에서 지명당했었다는 점이다 (물론 Hamilton는 고졸이었고, 계약하는 대신 대학에 진학, 3년후 1991년 드래프트 1라운드 8번으로 지명되었다.) 

Woody Williams: Another name for mediocrity (1997-2001년 전반기) 

Year Age Tm Lg W L ERA GS IP H R ER HR BB SO ERA+ WHIP H/9 HR/9 BB/9 SO/9 SO/BB
1997 30 TOR AL 9 14 4.35 31 194.2 201 98 94 31 66 124 104 1.372 9.3 1.4 3.1 5.7 1.88
1998 31 TOR AL 10 9 4.46 32 209.2 196 112 104 36 81 151 103 1.321 8.4 1.5 3.5 6.5 1.86
1999 32 SDP NL 12 12 4.41 33 208.1 213 106 102 33 73 137 96 1.373 9.2 1.4 3.2 5.9 1.88
2000 33 SDP NL 10 8 3.75 23 168.0 152 74 70 23 54 111 114 1.226 8.1 1.2 2.9 5.9 2.06
2001 34 SDP NL 8 8 4.97 23 145.0 170 88 80 28 37 102 80 1.428 10.6 1.7 2.3 6.3 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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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rated 2/20/2013.

얼마 전 2013년 HOF 후보들을 다루는 기사에서 Sports Illustrated의 한 기자는 LAIM (League-Average-Inning-Muncher) 라는 표현으로 Woody Williams의 커리어를 설명했다. 사실이다.  Williams는 이닝을 먹어주는 것 말고는 딱히 큰 이거다 싶은 장기가 없었고, 뒤늦은 성장을 꿈꾸기에는 나이도 너무 많았다. 이미 그의 나이는 만 서른 넷, 한국 나이로는 서른 여섯이었다. 

Williams가 Cardinals 이적 후 첫 2년간 보인 성적은 Dizzy Dean에 비교된다.

 


2001년: 운명적인 트레이드

이미 자주 언급되긴 했지만 다시 한 번 돌아보자면, 2001년 7월 29일 Cardinals는 포화 상태인 외야진 정리를 위해 Ray Lankford 트레이드에 나섰다. 그리고 웬만하면 그 댓가로 선발 투수를 물어오길 바랬는데, 그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단연 Andy Benes였다. DK57-Matty Mo의 훌륭한 원투펀치와 역대 최고의 루키시즌을 만들어내고 있던 Pujols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Cards의 성적은 트레이드 당시 5할에서 2게임 앞선 53승 51패에 불과했는데, 여기에는 역대 선발투수 최악의 시즌을 향해 (Sponsored by TLR) 달려가고 있던 Andy Benes의 "저는 배팅볼을 던진답니다" 캠페인이 큰 역할을 했다.

Andy Benes는 시즌 첫 등판 Coors Field에서 2.2이닝 10자책점의 참사를 떠안은 것으로 시작, 매 경기 엄청나게 두들겨 맞았다. 패스트볼 구속은 88마일대에서 형성되었으며, 슬라이더는 릴리스 포인트를 완전히 잃어서 자기 공처럼 던질 수가 없었다. 그나마 6월 초에 3경기 연속 QS를 기록한 것 덕분에 전반기를 무려 6.95의 평균자책으로 마무리했으며, 후반기에도 전혀 나아진 모습 없이 평균자책 7점대 벽을 가뿐히 뛰어넘으며 TLR을 당황케했다. Williams 영입이 확정된 다음 날인 8월 3일, TLR은 Marlins와의 홈 4연전 더블헤더 2차전에서 (1차전은 Matt Morris) Benes를 투입해 마지막 기회를 주었고, Benes는 혼신의 힘을 다해 117구를 던지는 역투 속에 6.1이닝 5피안타 3볼넷 4실점으로 패전을 안았다.

다음 날인 8월 4일, 만 35번째 생일을 2주 앞둔 Woody Williams가 생소한 Birds on the bat 유니폼을 입고 Busch Stadium에 섰다. 당시 아무도 Williams가 이후 후반기 리그 최고 선발투수로 군림할 것이라고 생각치 않았었으며, 과연 Cardinals가 6인 로테이션을 어떻게 꾸려나갈 것인지도 불분명한 상황이었다. 상대는 전날 Benes에게 패전을 안긴 Marlins, 투수는 Williams와 정반대인 A.J. Burnett이었다. Williams는 6이닝 7피안타 무실점 0BB 5K의 깔끔한 피칭을 한 뒤 Standing-O를 받으며 마운드를 내려왔고 팀이 3:0으로 승리하며 승리투수가 되었다. TLR은 "중요한 경기에서 좋은 인상을 남겼다"며 Williams를 칭찬했고, 이후 Andy Benes는 시즌 내내 불펜에서 뛰었다 (Andy Benes는 Williams가 전체 732번으로 뽑혔던 바로 그 88년도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1번이었다. 역시 인생은 오래 살고 봐야하는 것인가..)

Woody's Incredible 2nd Half Stretch

Date Tm Opp Rslt Dec IP H R ER BB SO HR ERA BF Pit
Player went from San Diego Padres to St. Louis Cardinals
Aug 4 STL FLA W,3-0 W(9-8) 6.0 7 0 0 0 5 0 4.77 23 98
Aug 10 STL @ NYM W,7-6 4.0 7 5 5 2 2 1 4.94 20 76
Aug 15 STL CIN W,8-4 W(10-8) 5.0 6 3 3 3 2 2 4.95 23 94
Aug 20 STL @ CIN L,4-5 6.0 7 1 1 1 6 0 4.83 27 97
Aug 25 STL @ CHC L,4-6 L(10-9) 6.0 7 6 5 2 2 1 4.92 26 97
Aug 31 STL @ LAD W,5-1 W(11-9) 9.0 4 1 1 1 3 1 4.72 31 108
Sep 5 STL @ SDP W,2-0 W(12-9) 9.0 2 0 0 0 6 0 4.50 27 101
Sep 20 STL @ PIT W,9-1 W(13-9) 7.0 3 1 1 3 3 1 4.39 26 105
Sep 25 STL @ HOU W,3-2 W(14-9) 9.0 3 2 1 3 9 0 4.24 33 138
Sep 30 STL PIT W,7-3 W(15-9) 7.0 2 3 2 0 8 1 4.18 24 97
Oct 5 STL HOU L,1-2 7.0 6 0 0 4 6 0 4.05 30 125
TOT 220.0 224 110 99 56 154 35 4.05 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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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iams는 후반기 11경기에 등판했고, 팀은 그가 등판한 경기에서 8승 3패 (+5)를 만들어냈는데, 이 시즌 90승 72패를 거두었던 San Francisco Giants가 Playoff에 진출하지 못했음을 생각한다면 이 +5가 있고 없고는 굉장한 차이이다. 특히 8월말~9월초에 1실점 완투승에 이어 2피안타 완봉을 거둔 점, 1위 싸움이 치열하던 9월 말 지구 선두팀인 Astros의 Wade Miller와의 맞대결에서 138구 1자책 완투승을 거둔 부분은 도저히 칭찬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전 경기에서 믿었던 Matty Mo가 Astros 타선에게 무지하게 얻어터졌기에 더더욱 필요한 승리였다).

만 35세의 Woody Williams는 빅 리그 데뷔 8년만에 처음으로 Playoff 마운드에 섰는데, 그것도 자타공인 최고 투수였던 Randy Johnson을 상대로 Division Series 2차전을 책임져야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Woody 는 그 경기를 통해 자신이 한 단계 성장했음을 과시했는데, 무려 7이닝 4피안타 1실점 9K (시즌 최다) 라는 엄청난 피칭으로 Randy Johnson에게 포스트시즌 7연패를 안겼다. Woody는 7회까지 한점도 주지 않은채 8회에 마운드에 올랐으나, 첫 타자 Greg Colbrunn에게 안타를 맞자 TLR이 바로 Steve Kline으로 교체했고, 이후 Colbrunn이 땅볼로 홈에 들어오면서 실점을 안았다. 교체될 당시 Woody의 투구수는 무려 133개였다. 

또한 Williams는 이 경기에서 3회초 선두타자로 나서 무려 8구까지 가는 승부끝에 Randy Johnson의 패스트볼을 후려서 센터쪽으로 거의 홈런이 될뻔할만큼 깊은 2루타를 작렬, Polanco의 희생플라이 때 홈에 들어오면서 시리즈 동점을 만드는게 커다란 수훈을 세웠다. (Williams는 커리어 내내 타격으로는 알아주는 투수였다)

Matheny는 Williams의 장점들이 한껏 부각되도록 도와준 은인 중 하나다.

 


 

2002년

Williams가 부상으로 절반을 날려먹은 시즌. Left-Oblique 부상으로 시즌 첫 등판부터 삐걱거렸던 Williams는 복귀 후 7월 초까지 평균자책 2.35를 기록하며 작년의 기세를 그대로 이어갔으나, 올스타 브레이크를 앞두고 다시 왼쪽 Rib-cage 부상으로 DL에 올라 8월말이 되서야 돌아왔다. Williams의 딜리버리는 왼쪽으로 Cross-body Motion이 있었는데, 이로 인해 왼쪽 복사근 및 갈비쪽에 무리가 간다는 지적이 있었고, 이게 한창 좋을 시즌인 2002년에 터지면서 아쉽게도 100이닝정도를 놓쳤다.

건강할 때 Williams는 정말 좋았다. 17경기에서 103.1이닝을 소화했고, 팀은 그가 등판한 경기에서 12승 5패였다. 세부스탯에서도 2001년 후반기의 포스를 그대로 이어가면서 완전히 피어났다. 또한 자신감을 얻은 탓인지 전보다 더욱 공격적인 피칭을 이어나갔고, 다양한 구질을 평균 이상의 커맨드로 다룰 수 있었기에 컨디션이 안좋은 날도 데미지를 최소화하는 능력이 있었다. 2002시즌 17경기에서 Williams가 3실점 이상 허용한 경기는 단 한 경기 뿐이었다.

Williams의 성공 요인 중 가장 보편적으로 알려진 것은 Dave Duncan이 그에게 하사한 Cutter이다. 이미 Padres 시절부터 Williams는 커터를 던질 수 있었으나, Dave Duncan을 만난 이후로 이 커터의 구속을 증강시켜 2001년부터는 커터 구속이 90-92마일까지 이르렀다. 또한 Duncan은 Williams의 피홈런에 크게 이바지하던 커브의 빈도수를 줄이는 대신 Change-up을 크게 발전시켰는데, 이는 Williams의 성공에 있어서 굉장히 큰 공헌을 했다. 커터-체인지업 콤보가 완성 단계에 들어서자 Williams는 리그 내에서 가장 좌타자를 상대로 효과적인 우투수로 거듭났다 (한창 잘 던질 시절의 K-Mac 선발투수 형으로 봐도 괜찮을 것 같다.) 2002년 Woody는 리그 내에서 좌타자 상대 피안타율 3위에 올랐는데 (0.182), 이는 Blue Jays 시절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Williams의 진화에 고무된 Cardinals는 오프시즌이 시작하자마자 바로 2년간 14.9M + 3년차 8M 팀 옵션의 계약으로 Williams를 붙잡았는데, 이제 갓 피기 시작한 노장 투수의 37-38세 시즌을 위해서 쓴 금액 치고는 꽤 훌륭한 계약이었다. DK의 갑작스런 비보 이후 Woody가 제공하던 Veteran Leadership 또한 인정받은 덕이기도 했다.


2003년

Woody의 37세 시즌을 앞두고 스프링 트레이닝 당시 팀 포수였던 Mike Matheny는 "우리 팀에서 가장 Consistent한 투수인 Woody가 건강하지 못하다면 올 시즌은 힘들 것" 이라고 말했다. Matheny의 걱정은 기우였는데, 이 시즌 Woody는 무려 18승을 올리며 팔자에 없던 올스타전까지 출장했으며, 무려 220.2이닝을 소화하며 투구이닝 부문 리그 4위에 랭크되었다. 

필자에게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던 경기는 이 시즌 Williams가 친정팀 Toronto 상대로 노히터에 도전하던 장면이었는데, 찾아보니까 2003년 6월 5일 경기이다.(Boxscore) 이 경기에서 Williams는 첫 타석 무사 만루에서 땅볼로 타점을 올리더니, 2번째 타석에서 TLR의 더블 스틸 지시로 2사 2,3루가 되고 상대 투수가 8번 Matheny를 고의사구로 거르면서 자존심을 건드리자 무려 3타점 3루타를 폭발시켰다. 또한 투수로써도 8회 1사까지 노히터를 이어가다가 (Vernon Wells에게 볼넷), Orlando Hudson에게 안타를 허용하고 바로 다음 타자인 Dave Berg를 GIDP 처리하면서 8이닝 25타자 상대 1안타 무실점 (98구) 정말 압도적인 피칭으로 시즌 8승 째를 거두었다. 이 경기 승리로 Woody는 1.99의 평균자책과 8승으로 2개 부문 모두 리그 선두를 달렸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이 이후 Woody는 올스타 브레이크를 전후하여 Dead-arm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고, 후반기에는 6승 6패 평균자책 5.23의 굉장히 평범한 투수로 돌아왔다. Woody의 Cutter는 투구수가 많아질 수록 서서히 구속이 줄어드는 모습을 보였으며 (근 2000이닝을 소화한 만 37세의 투수였으니 그럴만도 하다), 커터의 위력이 줄어들 경우 순식간에 난타당하는 모습을 보였다. 전반기에만 무려 134.2이닝을 소화한 그는 후반기에는 고작 86이닝을 소화하는데 그쳤고, 이는 다른 것 보다 경기 중후반을 갈수록 커터의 무브먼트와 구속이 줄면서 피안타가 늘어나는 증상이 계속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닝별 평균자책: 3회: 2.18, 4회 2.76, 5회 4.02, 6회 4.97)

아쉽게도 이적 후 Woody가 보여준 압도적인 모습은 이 시즌 전반기를 이후로 다시 볼 수가 없었다. 그가 무려 18승을 거두면서 모든 면에서 커리어 최고 시즌을 찍은데에는 1) Rolen-Renteria-Vina-Tino Martinez로 이어진 리그 최고의 내야수비진과 2) 투수친화적, 우타자에게 적대적인 홈구장 (홈에서 3.00, 원정에선 5.04), 3) 리그 최고 수준의 득점 지원 (9이닝당 7.0점, NL 1위) 등 여러가지 부수적인 이유가 함께했으며,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에는 서서히 LAIM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2004년 WS 1차전, 강판되는 Woody.

 2004년

 사실상 혼자 팀 투수진을 이끌어야했던 2003년에 비해 2004년은 훨씬 나았는데, Dave Duncan이 신작 Jason Marquis와 리메이크작 Chris Carpenter, 그리고 Woody의 후속작인 Jeff Suppan까지 모두 발매하면서 로테이션이 굉장히 탄탄해졌다. Woody는 11승 8패 4.18이라는 평범한 성적을 냈고, 189이닝을 소화했다.

NLCS 1차전에 선발로 나서 고향팀 Astros를 상대로 6이닝 4실점 승리를 거둔 Williams는 NLCS 5차전에서 Brandon Backe와 함께 0:0의 팽팽한 투수전을 이어갔다. Woody가 7회까지 1피안타 무실점, Backe가 8회까지 1피안타 무실점으로 버텨내면서 도대체 향방을 알수 없는 투수전이 계속되었다. 당시 Brandon Backe가 누군지 잘 몰랐던 탓에 "쟤는 누군데 저렇게 잘던지나" 하면서 의아해했던 생각이 나는데, 이 경기는 결국 9회 Jeff Kent가 Izzy상대로 쓰리런을  치면서 Astros의 승리로 끝이 났다. 이 시리즈에서 Williams는 양팀 통틀어 최다인 13이닝을 던지면서 St. Louis 에서의 마지막 시즌에서 투혼을 불살랐다. 아쉽게도 그가 Cards 유니폼을 입고 던진 마지막 경기는 WS 1차전으로, 2.1이닝 8피안타 7실점으로 먼지나게 두들겨 맞았다. 전형적인 Dead-arm 증상이었다.

사족을 달자면 2004년 WS 1차전은 필자가 Cards 팬이 된 이후로 가장 Do-over를 하고싶은 경기 중 하나인데, 이 경기를 이겼다면 이 시리즈의 향방은 완전히 달랐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Woody가 무너지면서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한 경기를 (3회 끝나고 점수가 7:2) Larry Walker의 홈런이 터지면서 추격하기 시작했고, 결국 7:7, 9:9까지 만들어서 쫓아가지 않았는가. Mark Bellhorn은 이후 필자가 가장 싫어하는 선수가 되었고, 아직도 그 홈런은 파울이었다고 믿고 싶다. 

Woody and the Cardinals: 아름답고 효율적이었던 우리의 만남 (2001-2004): 

Year Age Tm W L ERA GS CG IP H R ER HR BB SO BF ERA+ WHIP H/9 HR/9 BB/9 SO/9 SO/BB
2001 34 STL 7 1 2.28 11 3 75.0 54 22 19 7 19 52 290 190 0.973 6.5 0.8 2.3 6.2 2.74
2002 35 STL 9 4 2.53 17 1 103.1 84 30 29 10 25 76 412 159 1.055 7.3 0.9 2.2 6.6 3.04
2003 36 STL 18 9 3.87 33 0 220.2 220 101 95 20 55 153 944 106 1.246 9.0 0.8 2.2 6.2 2.78
2004 37 STL 11 8 4.18 31 0 189.2 193 93 88 20 58 131 817 101 1.323 9.2 0.9 2.8 6.2 2.26
STL (4 yrs) 45 22 3.53 92 4 588.2 551 246 231 57 157 412 2463 118 1.203 8.4 0.9 2.4 6.3 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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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은퇴

Woody에게 걸린 8M짜리 팀 옵션은 (당연하지만) 행사되지 않았고, 오프 시즌에 Woody는 친정팀 Padres과 3.5M짜리 1년 + 인센티브 및 옵션 계약을 맺고 San Diego로 돌아갔다. 이후 2년간 Woody는 젊은 투수들에게 자신의 지혜와 생존법을 전수하며 성공적으로 2년 계약을 마쳤는데, 특히 두번째 해에는 운빨+PETCO 빨을 곁들여 12승 5패 3.65라는 언뜻 보면 상당히 그럴싸한 성적을 냈다. 이 시즌이 마지막이었어야 하는데, 고향팀 Astros는 Woody에게 40세를 바라보는 Woody에게 2년 12.5M 이라는 도저히 이해가 안가는 계약을 안겨주었고, Woody는 만 39세 시즌이었던 2007년, 피홈런 35개로 Livan Hernandez, Jamie Moyer 등 피홈런의 달인들을 무찌르고 당당히 NL 1위를 차지했다.

2008시즌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Woody는 무지하게 난타를 당했다. 그러나 기다렸다는 듯 Astros는 Woody를 방출했고, 그는 미련없이 은퇴를 선택했다 (이에 대해 동료였던 Lance Berkman은 "Woody같은 베테랑에게 시범 경기에서 못한다고 이런 결정을 내리는 것은 조급하다" 고 지적했으나, Astros 입장에서는 처음부터 2년 계약을 하지 말았어야 하는 것을 이런 식으로 몰고 간 셈이었다)

은퇴 후 그는 고향 Houston에서 살고 있으며,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한편 지역 커뮤니티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University of Houston 동문 야구경기에 참관한 모습이 기록되었다.


총평

SI의 Jay Jaffe 가 LAIM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낸 이유는 Woody가 얼마나 평범한 투수였는지를 부각시키기 위해서이며, Cardinals에서의 2년 반을 제외하면 Woody는 평범한 투수로 불리우는게 맞다. 특히나 이 단어가 출몰한 기사가 2013년 HOF 후보들을 다룬 것이었음을 생각하면, Woody는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기에는 지나치게 서민적이고 평범한 투수였다 (함께 언급된 투수들은 Aaron Sele, Jose Mesa 등이었다)

그러나 글을 쓰면서, 자료를 모으고 스탯을 되짚어보면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Woody가 결국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88년 드래프트 대졸 28라운더. 마이너에서 인고의 세월만 5년. 이후로 풀타임 투수가 된 것은 프로 10년차인 1997년 (그때 나이 만 31세). 빠른 공도 없고, breaking-stuff도 없고, pin-point control도 없고, 그렇다고 왼손잡이도 아니었다. 키가 컸던 것도 아니고 탄력있는 몸도 아니었다. 있는 것이라고는 타자와 싸워서 이기겠다는 아주 기본적인 투쟁심과 근성. 오랫동안 던져온 경험과 생존과정에서 익힌 다양한 구질... 그 정도? Williams는 정말 가진 게 없는 투수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가 풀타임 선발이 된 1997년부터 2006년까지, 그는 그의 30대를 우직하게 불태웠다. 그냥 그가 제일 잘하는 "Pitching"만 꾸준히 했을 뿐이다. 그냥 5일에 한번씩 나가서 던졌고, 던질 때는 최대한 오래 버텼다. 주자가 나가면 자기가 할 수 있는만큼 최대한 못 들어오게 했다 (통산 LOB% 74.3%, 같은 기간 ML 11위). 이 10년간 프로야구에서 그보다 더 많이 던진 선발 투수는 16명에 불과하다 (1817.1이닝). Kevin Brown (1555이닝), 박찬호 (1618이닝), Mike Hampton (1704.2이닝) 등 훨씬 화려한 투수들이 그의 이름 밑에 있다. (비슷한 순위에 Javier Vazquez, David Wells)

중간에 Cardinals라는 팀으로 이적한 것, 운명적으로 Dave Duncan을 만나서 어떻게 하면 자신이 가진 얼마 안되는 이 무기로 싸울 수 있는 지에 대해 배운 후 잠시나마 가치를 인정받았던 것. 나름 올스타에도 선정되었고, 은퇴 후에는 무려 명예의 전당 투표에 오르기까지 했다 (물론 Woody는 표를 받지 못할 것이다.) 월드시리즈에 올라가보기도 했고, Postseason에서 Randy Johnson을 꺾기도 했다. 이보다 인상적인 커리어는 많고, 우리는 늘 그런 커리어들에 익숙하지만, 누구나 그런 화려한 커리어를 밟는 것은 아니다.

League Average. 맞다. Inning Muncher. 역시 맞다. 그러나 LAIM (Lame) 이라고 발음하지는 않고 싶다. 그러기에 Woody는 정말 오랫동안 던졌고, 버텼다. 그리고 그 하나만으로도 존중받을만 하다.


Did you know...?

  • Woody는 훌륭한 타자였다. 빅 리그 통산 4홈런 43타점에 투수로써는 상당히 높은 .194의 통산 타율을 기록하고 있으며, 25개의 2루타를 기록했다. Woody의 스카우팅 리포트에는 그의 타격 재능에 관한 이야기가 끊이질 않는다. 유격수 출신인 Woody는 타격을 상당히 즐겼는데, 특히 자신이 등판할 예정이던 2004년 WS 1차전을 앞두고 TLR에게 DH를 쓰지 말자고 제안한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 Kevin Towers (트레이드 당시 Padres GM)은 Williams-Lankford 트레이드를 자신의 커리어 최악의 무브로 꼽았다. 그래서인지 Woody가 FA가 되자 주저없이 달려들었다 (2005년) 반면 Jocketty는 Williams 트레이드르 "One of my better moves"로 꼽았다.
  • Padres 시절 시즌 중에 자꾸 오른손이 창백해지고 혈액이 통하지 않는 것을 느낀 그는 팀 의료진에게 몇 차례 치료를 부탁했고, 검사 결과 오른쪽 겨드랑이 밑에 혈관이 무너져서 부어오르는 Aneurysm (동맥류) 이 생긴 것으로 판정받았다. 이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느라 2000시즌 그는 아쉽게도 23경기 등판에 그쳤는데, 이 부상에서 회복하는동안 휴식하고 재활했던 것이 궁극적으로 그에게 좋은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이는 과거 Yankees의 David Cone이 받았던 수술이며, 90년대를 풍미했던 1루수 John Olerud는 뇌에 동맥류가 있었다.)
  • 본명인 Gregory Scott 대신 왜 별명이 Woody 로 알려졌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혹자는 Woody가 발군의 타격 실력 때문에 방망이를 뜻하는 Wood가 별칭처럼 된 게 아닌가, 하는데...이것 역시 확실치는 않다. Texas 출신이라서 이런 카우보이스러운 별칭이 어울리긴 하는데, 혹시 아시는 분 있으면 제보를...

by Doovy





출처: SI, ESPN, Baseball-reference, Fangraphs, STL Post dispatch, Riverfront times, Houston Chronicle, LA Times, Baseball-almanac




Posted by Doovy+
:
최근 좀 바빠서 업데이트를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간략히 적어 보려고 한다.
중요한 사건들은 사실 이미 댓글로 다른 분들께서 달아 주셨기에 딱히 업데이트라고 할 것도 없지만.. 어쨌든, 포스팅을 통해 정리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1. Spring Training Cut
1차 컷(3/5): Jordan Swagerty, Robert Stock
이 둘은 어깨 부상과 투수 전향이라는 명백한 이유에 의해 마이너리그 캠프로 내려갔다.

2차 컷(3/8): John Gast, Nick Greenwood, Adam Reifer, Tyrell Jenkins, Cody Stanley, Luis De La Cruz, Kolten Wong
Stanley와 De La Cruz는 투수들이 내려가면서 자연스럽게 같이 내려간 것으로 보이고, 투수들과 Wong은 마이너 캠프에서 좀 더 많은 출장기회를 얻는 쪽이 바람직할 것이다.
여기까지는 25인 로스터에 들어갈 가망이 없는 유망주들이었다.

3차 컷(3/14): Maikel Cleto, Brandon Dickson, Pete Kozma, Zack Cox, Shelby Miller, Joe Kelly, Kevin Siegrist
이제부터는 40인 로스터에 있는 선수들이 마이너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위의 7명중 앞의 4명은 40인 로스터에 포함되어 있으므로, 마이너리그로 "옵션" 되었다. 물론, 이들 넷 중 누군가가 25인 로스터에 들 것 같지는 않았으므로, 특별히 이변이라고 할 것은 없었다. 뒤의 세 유망주도 마찬가지이긴 한데... 다만 Rosenthal보다 Miller가 먼저 내려간 것이 약간 의외였다. 거의 마지막까지 메이저 캠프에 두지 않을까 싶었는데..

아직 메이저 캠프에 남아있는 NRI들은 다음과 같다.
Pitchers: Rosenthal, Swindle, Marte, Linebrink
Catchers: K Hill, S Hill
INFs: Jackson, Cora, Adams, Velez

Rosenthal과 Jackson, Adams가 아직 남아 있는 것이 재미있다.

2. Spring Training Stat
전체 성적은 여기 공식 페이지를 참고하시고...
좀 정리해서 써볼까 했는데 스탯의 모수가 너무 적어서 아직 뭐라고 말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

3. 2루 주전 경쟁
세 명의 타격 스탯을 보면...
Greene 24 PA, .158/.333/.263  3 SB/1 CS
Descalso  21 PA, .438/.609/.625
Skip  21 PA, .211/.238/.211, 2 GDP

Descalso의 성적이 좋긴 하지만... 21 PA밖에 안되어서 역시 의미를 부여하기가 어렵다.

4. Chris Carpenter
이미 댓글로 언급이 된 것처럼 목디스크로 인해 현재 경기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오늘은 캐치볼을 했다고 하니 조만간 마운드에 다시 세워 보지 않을까 싶은데, 나이도 많은 편이고 작년에 플레이오프까지 무려 273이닝을 던진 것을 감안할 때, 구단은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서는 개막전 로스터 합류가 불투명하다.

구단은 Carpenter의 보험용으로 Lance Lynn에게 선발 전환 준비를 시키고 있는데... Lynn은 Astros를 상대로 한 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3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 일단 좋은 인상을 남겼다. Sanchez가 있으니 이런 선발 전환도 가능한 것이지만.. 역시 Oswalt 생각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Lynn은 현재까지 6이닝 6K 0BB 1ER을 기록 중이다.

5. Adam Wainwright
Wainwright은 두 게임에 나와 5이닝 1안타 무실점으로 일단 외형상 그럴듯한 스탯을 가지고 있는데, 구속이 아직 회복되지 않았고, 3K/2BB에서 보듯 내용은 썩 좋지 않다. 본인 스스로도 아직 제 컨디션이 아니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수술 후 첫 실전 등판임을 감안하면 갑자기 잘 던지는 쪽이 오히려 더 이상할 것이다. 일단은 부상을 피하고 건강한 몸으로 개막전 로스터에 합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많은 TJS 경험자들이 그래 왔듯이, 올 시즌의 키는 결국 제구력 회복 여부가 될 것이다.

6. Francisco Samuel 방출
역시 lecter님의 댓글로 이미 언급되었지만... Samuel이 방출되었다. 작년에 뽀록으로 Cleto의 제구력이 잡히긴 했지만, 이렇게 electric arm과 electric control을 겸비한 투수들은 Cardinals 구단에서 잘 키우지 못하는 유형의 투수들이다. 이렇게 못써먹을 바에야 가치가 피크를 쳤을때 (Samuel의 경우는 2009년) 트레이드를 하는 게 어떨까 싶다. 90마일대 후반의 패스트볼을 뿌리는 파워 암은 항상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남들이 못 고치는 것을 본인들은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항상 있으므로... Samuel뿐 아니라 과거 Gary Daley나 Blake King 등을 교훈 삼아서, Seth Blair의 제구력이 잡히지 않는다면 빨리 트레이드 상대를 찾아보는 게 어떨까 싶다.


그밖에...

Mike Matheny는 어제 Mets전에서 1루주자 Descalso와 3루주자 Greene에게 더블스틸을 지시하여 성공시켰다. (Greene은 득점) 아무리 베이스러닝에 주안점을 둔 스프링캠프라고는 하나, 스프링 트레이닝의 연습경기에서 더블스틸로 홈을 파고들게 하는 일은 좀처럼 보기 힘든 일인 것 같다. Matheny의 스프링캠프는 정말 재미있다. ㅎㅎ


2009년부터 2011년까지 Maple Street Press Cardinals Annual 이라는 이름으로 발간되었던 책이 올해는 e-book으로 나왔다. 에디터로는 기존의 Larry Borowsky 외에 현재 VEB의 대장인 Dan Moore가 공동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VIVA EL BIRDOS 2012 BASEBALL ANNUAL(클릭)

무엇보다도, 가격이 착하다. 이 e-book의 가격은 $2.99에 불과하다. 과거 Maple Street Press의 책이 책값만 $13 정도에 국제 배송비가 책값보다도 더 많이 붙었던 것을 감안하면(배송비는 매년 달랐었는데 2010년인가에는 배송비만 $18이었던 적도 있다. 책값을 합치면 $30이 넘었던 것이다.), 같은 책을 4천원도 안되는 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은 아주 매력적이다. 물론 종이 책이 주는 뿌듯한 느낌을 받을 수 없고, MSP 시절에는 사진이 많았는데 e-book으로 넘어오면서 사진이 다 빠지고 글만 있다는 것도 좀 아쉽긴 하지만, 착한 가격이 주는 만족감이 더 큰 것 같다. 글의 퀄리티는 이전에 비해 떨어지지 않으니 한번씩 사 보셔도 괜찮을 듯.

참고로, Maple Street Press는 망했다고 한다. -_-;;


Today's Music: Rage - Enough Is Enough / Invisible Horizons (live 1993)



오랜만에 걸어보는 오늘의 음악이다.

사실 이 곡은 완전히 까먹고 있었는데... 유튜브에서 다른 영상을 찾다가 우연히 발견했다. Rage의 Trapped!! 앨범은 후속작 Missing Link와 함께 고등학교때 끼고 살던 앨범 중 하나였는데... 이런 때 추억이 돋는다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것 같다. 이게 도대체 몇년만에 듣는 Enough Is Enough인가...!!!

후렴구 시작 부분에서 Peavy가 좌우로 발차기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밴드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참 80년대스럽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지금 보면 유치함에 손발이 오글거리긴 하지만...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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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만에 감독이 바뀌고 난 뒤의 첫 스프링캠프여서 그런지, 유난히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느낌이다. 팀 내부 연습이 끝나고 이제 팀간 실전에 돌입하는 이 시점에서, 새 감독 Mike Matheny가 스프링캠프에서 지금까지 보여 준 언행을 살펴보자.

1. 연습 시 베테랑과 유망주를 섞어서 조 편성
과거 베테랑은 베테랑끼리, 애들은 애들끼리 모여서 놀던 관행을 깨고, Matheny는 베테랑과 유망주를 같은 조에 편성하여 연습을 시켰다. 예를 들면 19세의 Tyrell Jenkins가 Chris Carpenter나 Adam Wainwright와 같이 공을 던지도록 한 것이다. 이 조치는 베테랑들로부터 즉각적인 환영을 받았을 뿐 아니라, 유망주들이 메이저리거들과 같이 연습을 하면서 상당히 감격스러워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며칠 같이 연습하는 것 만으로 유망주들이 엄청나게 발전하는 일은 없겠지만, 다들 즐거워하고 만족하는 모습을 보면 성공적인 변화인 듯.

2. 투수들이 모든 포수들에게 골고루 공을 던지도록 함
Matheny는 소위 personal catcher의 개념을 없애고, 누가 공을 받더라도 당황하지 않도록 투수와 포수의 조합을 계속 바꾸었는데, 역시 작지만 분명한 변화이다. 특히 Chris Carpenter와 같이 (입도 거칠면서) 포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고 까다로운 투수가 큰 목소리를 내는 팀에서, 이러한 조치는 의미가 있다고 본다.

3. 선수들에게 휴식일을 부여
Matheny는 지난 주 월요일, 선수들에게 "앞으로 4일간 열심히 연습에 매진하면 금요일에는 연습을 크게 단축하겠다"고 약속하였고, 실제로 금요일에 연습 스케줄을 2시간 이하로만 부여한 뒤 선수들에게 자유시간을 주었다. 상당히 많은 선수들이 일정보다 훨씬 일찍 캠프에 도착하여 연습을 시작하였고, 매일 정규일과가 끝난 뒤에도 많은 선수들이 남아서 늦게까지 훈련을 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는 Matheny는 실전 시작 전에 선수들에게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싶었다고 한다. 365일 x빠지게 죽을때까지 열심히 뛰고 또 뛰는 것만을 강조하던 TLR 시절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이다.

4. 훈련에 직접 참여하여 적극적으로 개입
과거 TLR도 단지 팔짱만 끼고 구경하는 감독은 절대 아니었지만, Matheny는 젊은 감독이어서 그런지 직접 몸으로 참여하여 선수들과 많은 interaction을 주고받고 있다. 직접 배팅볼을 던지는 것에서 시작하여 포수 마스크를 쓰고 투수들의 공을 받으면서 투수들과 대화하고, 수비 연습시에도 직접 필드에 나가서 훈련을 지휘하며 선수들과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이렇게 자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만큼 관계 형성에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5. Ozzie Smith의 캠프 방문!
기존에도 매년 캠프에 왔었던 Red Scheondienst 외에도, 올해에는 TLR이 감독으로 재임하는 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전설의 유격수 Ozzie Smith가 Mike Matheny의 초청을 받고 캠프에 1주일간 머물렀다. 마이너리거들의 주루 훈련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Willie McGee와 달리 Ozzie는 코치 활동을 별로 하지 않았으나, 아래 Wong의 트윗에서 보듯 이런 레전드는 그냥 존재만으로도 상당한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도 많은 은퇴 선수들이 special instructor로 캠프를 다녀갔는데, 까칠한 TLR에 비해 Matheny가 확실히 두루두루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듯하다.

6. 세이버메트릭스의 활용
Matheny는 세이버메트릭스와 advanced statistics의 활용에 대해 여러 차례 긍정적인 발언을 했는데, 최근 올라온 Derrick Goold의 글에서도 이를 다시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So I’ll take every resource we have. We have some smart people upstairs and (I’ll) take all the info in. This game moves fast, and you have to have instincts and you have to trust them. (But) I don’t believe you run out there unprepared."
(중략)
Matheny met with the Cardinals’ analytics department this winter to discuss the info they had available and the info he wanted to know more about. Matheny said offering all those numbers to the clubhouse would be “like asking the players to drink water from a fire hose and I’m not going to do that.” But he did want to familiarize his coaches with the data that is out there. He has talked about how they could incorporate it into their advance scouting. You know, like Duncan’s binders.

“We got together this morning about the info we’re giving our scouts (for) advanced scouting,” Matheny said earlier this spring. “I think we’ve got a good feel for what it is we need and (how to) use the resources from the people who are a whole lot smarter than us.”

벤치에 앉아서 한가하게 The Book을 손에 들고 찾아가면서 작전을 지시할 수는 없다. 자신의 직감을 믿고 현장에서 재빨리 대응하면서 동시에 세이버메트릭스가 제공하는 배경지식을 활용하겠다는 Matheny의 생각은, 상당히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TLR 은퇴 발표 뒤 Francona와 같이 검증된 감독을 제치고 경험이 없는 Matheny가 후임으로 결정되었을 때는 솔직히 "헐!?" 이라는 심정이었으나, 지금까지의 모습을 보면 Matheny가 기대 이상으로 준비를 매우 충실히 한 것으로 보이며, 그의 여러 조치들이 긍정적인 효과를 일으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며칠 전 "Yadier Molian가 메이저리그 최고의 포수라고 생각하는가?" 라는 한 리포터의 질문에 대해 "그가 내 job을 빼앗아갈 때부터 그렇게 말해왔다"라고 쿨하게 받아치는 모습까지, 개인적으로 Matheny가 점점 맘에 들고 있다. 이제 내일부터는 스프링캠프에서 실전을 지휘하게 되는데... 실전에서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 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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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ke Matheny가 Cardinals의 감독으로 결정되었다.



70년생인 Mike Matheny는 선수시절 4차례의 GG를 수상하며 최고의 수비형 포수로 명성을 날렸고, 동료 선수들에게 클럽하우스의 리더로 널리 인정받을 만큼 인성면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는 Cardinals에서 5년간(2000-04) 선수 생활을 하여 현재의 코칭스탭 및 선수들과도 가까운 사이이다. Dave Duncan이나 Jose Oquendo, Dave McKay는 모두 그가 선수로 있던 시절에도 코치로 동일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고, Mark McGwire는 2002년까지 함께 뛴 동료 선수였다. 이제는 팀 내 고참 선수로 자리잡은 Pujols, Carpenter도 역시 Matheny와 함께 뛰었었다.

게다가 은퇴한 이후에는 매년 스프링캠프에서 인스트럭터로 활동하였고, 시즌중에는 마이너리그 순회 코치로서 모든 마이너리그 팀을 돌아다녔으므로, 구단 내 인맥에 관한 Matheny와 맞설 만한 후보자는 없을 것이다.

DeWitt 구단주와 Mozeliak 단장은 감독 인터뷰를 진행하며 "구단 철학에 대한 공감과 이해, 구단 내 다른 사람들과의 유연한 협업 관계" 등을 중요한 덕목으로 꼽은 바 있고, 이에 따라 Matheny의 감독 선임 가능성이 안팎에서 계속 제기되어 왔다. 이런 기준으로 감독을 뽑는 이상, 사실상 외부인인 Tito나 Sandberg는 거의 처음부터 가능성이 별로 없었다고 보아야 하며, 결국 Matheny와 Oquendo의 2파전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결국 소문대로 Matheny로 최종 결정되었다.


30년 넘게 현역 생활을 하며 메이저리그 통산 감독 다승 랭킹 3위에 오를 정도로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었던 TLR의 후임으로 마이너리그 감독 경험조차 없는 Matheny가 선택되었다는 것은 다소 아이러니하게 느껴지는데... 선수들과의 소통, 프런트 및 마이너리그 스탭들과의 소통 등을 감안하면 괜찮은 선택이라고 본다. 또한, DeWitt과 Mo가 강조한 것 중 하나가 언론, 팬 등과의 원만한 public relationship이었는데, Matheny는 선수시절에도 기자들이나 팬들과 별 잡음이 없었고 항상 인기가 좋았으므로, 이런 부분에서도 별 탈 없이 잘 해줄 것이다. 감독 인선 과정에서 계속해서 강조한 내용과 Matheny라는 최종 선택을 놓고 볼 때, DeWitt과 Mozeliak은 경기에서 승리를 이끌어내는 TLR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구단 내부의 소통이나 Public relationship과 같은 분야에서 TLR이 끊임없이 트러블을 일으키는 것에 꽤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다.

나도 TLR이 자꾸 선수들과 싸워서 맘에 안드는 선수들을 구단 밖으로 몰아내는 것과, 언론과의 인터뷰를 이용해서 프런트에 압력을 행사하는 그의 대화 방식을 싫어했던 만큼, 주변 사람들과 원만하게 잘 어울리고 조화를 추구하는 Matheny의 캐릭터는 환영한다. 다만 걸리는 것이라면, 다들 지적하는 대로 그가 감독 경험이 전무하다는 것인데... 코칭스탭 물갈이는 없을 것으로 예상되므로, 노련한 코치진의 도움을 받으면 큰 어려움은 없을 듯하다.


요즘 이웃 Cubs에서도 Epstein과 Hoyer가 새로운 감독을 물색 중인데... 그들이 감독을 뽑는 방식은 조금 다른 것 같다. 여기 Chicago Tribune 기사를 보면, Epstein은 감독 후보에게 Cubs 경기 장면을 녹화한 비디오를 보여주다가 정지시키고는 이 상황에서 감독이 어떻게 할 지를 묻고, 빠른 답변을 요구한다고 한다. Epstein에 의하면 새 감독의 "생각하는 방식'을 보기 위함이라고 하는데... Cubs가 최종적으로 어떤 감독을 선택할지, 그리고 양 팀의 두 감독이 시즌 동안 어떤 모습을 보일지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Mozeliak이 가끔 다소의 불협화음을 감수하면서도 절충주의적인 방향을 지향하는 데 비해, Epstein과 Hoyer는 확실히 좀 더 혁신적이다.


가장 중요한 감독의 덕목은 무엇일까? 나는 세이버메트릭스적인 지식 같은 것보다는 선수들을 잘 다루고 그들이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모티베이션을 잘 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그 다음은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는 열린 마음과 자세라고 생각한다. 감독이 아무리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거나 능력이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선수들의 존경을 얻지 못하고 선수들에게 말빨이 먹히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이번 월드시리즈 7차전을 앞두고, Albert Pujols가 인터뷰에서 "한가지 좋은 점이 있다면, 우리에게 최고의 감독이 있다는 것이다."라는 말을 했었다. 감독이라면, 선수들에게 이런 존경과 신뢰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전술적인 능력 같은 것은 그 다음이다. 감독의 전술적인 차이가 과연 승패를 몇 게임이나 좌우할 지는 다소 의문이다. 결국 승패를 결정짓는 것은 선수들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국지적인 전술 보다는 감독이 유연하고 열린 사고를 하는 것이 훨씬 중요한데, 이를테면 월드시리즈에서 보여준 Ron Washington의 똥고집 같은 것은 절대로 보고 싶지 않은 것이다. 7차전에 Harrison 대신 Derek Holland를 선발로 세웠다면? Hamilton과 Young 대신 Napoli와 Cruz를 중심타선에 기용하여 이들에게 좀 더 많은 타석을 제공했다면? 나는 Ron Washington 같은 인물이 절대로 Cardinals 감독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밖에 감독에게 중요한 능력은 어떤 것이 있을까, 여러분의 생각은?

더 읽을 거리 : The Book Blog의 토론 - 세이버메트릭스 지식 vs 선수 장악/모티베이션 (나는 후자가 더 중요하다는 Mike Fast의 의견에 대체로 동의한다)
Posted by FreeRedb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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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어딘가에서 구단 내부 소식을 빼내오는 Joe Strauss가 이번엔 Cardinals 감독 후보 명단을 공개했다.
(정보를 주신 skip님께 감사드리며... ^^ )
대부분 익숙한 이름들이겠지만, 이들의 경력을 간략히 정리해 보았다.

Jose "Secret Weapon" Oquendo (63년생)
1979 Mets와 아마추어 FA 계약
1983 메이저리그 데뷔
1983-84 Mets
1985-95 Cardinals
1996 은퇴
2루수 및 유틸리티맨. 1,190 게임에 나와 .256/.346/.317 기록.
Secret Weapon이라는 별명은 당시 감독이었던 Herzog에 의한 것임.

1998 New Jersey Cardinals 감독 (SS A 레벨, Cardinals org.)
1999 St. Louis Cardinals 벤치 코치
2000-현재 St. Louis Cardinals 3루 코치
Padres, Mariners, Mets 등에서 감독 후보로 인터뷰를 한 바 있음.
2009년 WBC에서 푸에르토리코 감독을 역임.

Chris Maloney (61년생)
1983 Mets와 계약
1루수/외야수. 4시즌을 마이너리그에서 보낸 후 은퇴

1991 Johnson City Cardinals 감독 (Rookie레벨, Cardinals org.)
1992 Hamilton Redbirds 감독 (SS A, Cards org.)
1993 Savanah Cardinals 감독 (A, Cards org.)
1994 Arkansas Travelers 감독 (AA, Cards org.)
1995-96 St. Petersburg Cardinals 감독 (A+, Cards org.)
1998-2000 Arkansas Travelers 감독 (AA, Cards org.)
2001 Johnson City Cardinals 감독 (Rookie, Cards org.)
2002-04 New Orleans Zephyrs 감독 (AAA, Astros org.)
2005-06 Springfield Cardinals 감독 (AA, Cards org.)
2007-11 Memphis Redbirds 감독 (AAA, Cards org.)
마이너리그에서만 감독 생활을 20년 하였음.

Mike Matheny (70년생)
1988 Blue Jays에 의해 드래프트 31라운드 지명 : 계약하지 않음.
1991 Brewers에 의해 드래프트 8라운드 지명 : 계약
1994 메이저리그 데뷔
1994-98 Brewers
1999 Blue Jays
2000-04 Cardinals
2005-06 Giants
2007 은퇴
포수. 13시즌에서 .239/.293/.344 기록. 최고의 수비형 포수로 명성을 날림. GG 4회 수상.

2010-현재 Cardinals 마이너리그 순회 코치 및 Special Assistant for Player Development

Joe "Super Joe" McEwing (72년생)
1992 Cardinals에 의해 드래프트 18라운드 지명 : 계약
1998 메이저리그 데뷔
1998-99 Cardinals
2000-04 Mets
2005 Royals
2006 Astros
2008 은퇴
유틸리티맨. 754게임에서 .251/.302/.355 기록. 실력은 없으나 열심히 뛰는 허슬플레이어의 전형이었음.

2008 Charlotte Knights 타격 코치 (AAA, White Sox organization)
2009-10 Winston-Salem Dash 감독 (A, White Sox org.)
2011 Charlotte Knights 감독 (AAA, White Sox org.)
2009년 올해의 마이너리그 감독상을 수상하고, BA에 의해 "top managerial prospect"로 선정됨.

Terry "Tito" Francona (59년생)
주요 경력
1980 Expos에 의해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 : 계약 (전체 22순위)
1981 메이저리그 데뷔
1981-85 Expos
1986 Cubs
1987 Reds
1988 Indians
1989-90 Brewers
1990 은퇴
1루수/외야수. 708게임에서 .274/.300/.351 기록.

1991 Sarasota White Sox 감독 (Rookie, White Sox org.)
1992 South Bend White Sox 감독 (A, White Sox org.)
1993-1995 Birmingham Barons 감독 (AA, White Sox org.)
1996 Detroit Tigers 3루 코치
1997-2000 Philadelphia Philies 감독
2001 Cleveland Indians Special Assistant to GM
2002 Texas Rangers 벤치코치
2003 Oakland Athletics 벤치코치
2004-11 Boston Red Sox 감독
1993년 올해의 마이너리그 감독상 수상. 1994년 BA의 "top managerial prospect"로 선정.
2004, 2007년 월드시리즈 우승

Ryne "Ryno" Sandberg (59년생)
1978 Phillies에 의해 드래프트 20라운드 지명 : 계약
1981 메이저리그 데뷔
1981 Phillies
1982-97 Cubs
1997 은퇴
2005 Hall of Fame 입성
2루수. 2,164게임에서 .285/.344/.452, 기록. 2루수로써 기록한 277홈런은 2004년 Jeff Kent에 의해 깨질 때까지 메이저리그 2루수 최고 기록이었음. 9년 연속 GG 수상. 10년 연속 올스타 선정.
Cubs는 그의 등번호 25번을 영구 결번시킴.

2007-08 Peoria Chiefs 감독 (A, Cubs org.)
2009 Tennessee Smokies 감독 (AA, Cubs org.)
2010 Iowa Cubs 감독 (AAA, Cubs org.)
2011 LeHigh Valley IronPigs 감독 (AAA, Philles org.)
2010년 "올해의 PCL 감독"으로 선정됨.


여러가지로 특이한 리스트이다. Tito 이외에는 메이저리그 감독 출신이 없고, Matheny의 경우는 마이너리그 감독 경험조차 없다. Matheny와 McEwing은 매우 젊은 후보들이다. Sandberg가 끼어 있는 것도 특이한데, Sandberg는 Cubs 유니폼을 입고 HOF에 입성할 정도로 라이벌 Cubs의 수퍼스타였기 때문이다. 반면 종종 거론되던 Pop Warner는 빠져 있는데... 마이너리거들의 육성에서 AA가 매우 중요한 레벨인 만큼 거기서 계속 유망주들을 키워 주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Matheny는 아직 좀 이른 느낌이다. 마이너리그에서 몇 년 감독생활을 한 뒤에 불러올리면 어떨까 싶다. McEwing도 마찬가지. Maloney는 2009년 Memphis를 PCL 정상에 올려놓는 등 최근 몇 년간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는데... Rapoport 같은 애들에게 출장기회를 많이 주는 걸 보니 그다지 기대가 되지 않는다.

굳이 이 리스트에서 고르라면, Tito를 데려오거나 Oquendo에게 기회를 줘 보면 어떨까 싶다. Oquendo의 경우 Pujols 재계약에 도움이 되는 장점도 있고... 워낙 오래 3루코치 생활을 해서 이미 선수들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Sandberg는 HOF에 입성하면서 요즘 어린 것들은 정신자세가 글러먹었다느니, 희생번트와 같은 중요한 플레이가 요즘 무시되고 있다느니 등등의 일장연설을 늘어놓은 바 있다. 이런 태도도 맘에 안들고, 게다가 Cubs의 수퍼스타 출신이기도 하고... 웬만하면 다른 후보를 선택하길 바란다.


이 6명은 단지 "알려진 리스트"일 뿐이고, 실제로 후보가 더 있을 수 있다고 하지만... 조만간 결론을 내겠다는 Mo의 태도를 볼 때 후보가 그렇게 많이 있을 것 같지 않다. 누가 되든 간에 가장 중요한 덕목이 "Mozeliak 및 선수 육성 파트(Jeff Luhnow)와의 긴밀한 협력"이라고 하니, TLR시절과는 사뭇 다른 구단 분위기가 될 것 같다.

Dave Duncan은 Duncan대로 자신과 원만하게 일할 수 있는 감독을 원한다는데... 저 리스트에서 누가 거기에 해당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만약 Duncan이 떠난다면, 후임으로는 마이너리그 순환 코치로 있는 Brent Strom을 강추하고 싶다. Strom은 Luhnow와 가까운 사이이기도 하다.
Posted by FreeRedb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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