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Doovy

결국 이번 오프시즌도 우리의 바램과는 달리 (?) Jason Heyward 트레이드로 초반에 결론이 나버렸고, 엘리트 Front-liner 를 물어온다는 루머가 떠돌고 있지만 일단 당장 심심한게 사실이다. 예전에 주인장님이 한 번 말씀하셨듯, "팔 추억이라도 많은게 어딘가."  그래서 TLR 시리즈 "외전" 을 준비해보았다. 이 시리즈도 3년째쯤 되니 이제 슬슬 팔 추억이 줄어들고 있어서 올해는 평년처럼 9편씩 물량이 나오지는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새로운 시리즈 기획 전까지 Stopgap으로 쓸 만큼은 남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번 편에서는 Hittability의 아이콘이자 Mediocrity의 상징, 그리고 무엇보다 2006 NLCS의 히어로, "Soup" Jeff Suppan 을 돌아보도록 한다.

 


Jeffrey 'Soup' Suppan

RHP (Starter)

DOB: 1975년 1월 2일

Birth: Oklahoma City, Oklahoma

Time with Cardinals: 2004-2006, 2010


Draft and Minors

Oklahoma에서 태어났지만 LA 근교에서 자랐던 Jeff Suppan은 "캘리포니아에서 자란 독실한 백인 카톨릭 가족"이라는 색깔있는 배경을 가졌다. 아버지가 관제탑에서 비행기 이착륙을 관리하는 Air Controller였었으며, 나중에는 프랑스 식당에서 부주방장 (Sous-chef) 을 했었는데, 이 때문에 고교시절부터 Suppan은 식당에 가서 설겆이와 각종 부엌 잡일을 돕는 것을 "즐겼다" 고 한다. Suppan의 All-boys 카톨릭 학교에서 고교 시절을 보냈고, 지역 신문사에서 새벽에 알바를 뛰었으며, 신앙의 힘을 늘 야구에 접목시키며 던졌다. 건전해도 이렇게 건전할 수 없다. 그의 종교, 그리고 요식업에 대한 부분은 포스팅 막판에 다시 다루도록 하겠다.

커리어 내내 Meatball을 던지는 것으로 알려져있긴 하지만, Suppan은 커리어 초기 상당히 유망한 투수였다. 그는 엄청난 양의 탤런트 (i.e. A-Rod, Torii Hunter, Scott Rolen 등) 가 무더기로 쏟아져나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1993년 드래프트에서 Red Sox에게 무려 2라운드 전체 49번으로 뽑혔다. 당시 고졸 야수들 중 최고 엘리트로 꼽혔던 Scott Rolen이 전체 46번, Matt Clement가 3라운더 였던 걸 생각하면 Suppan이 생각보다 Highly-touted 유망주였던 것은 분명하다. 일단 어린 고졸 유망주들을 보면 환장을 하던 당시 Sox 프론트오피스의 성향도 한몫했겠지만, 그래도 Suppan에게서 어느정도 포텐셜을 보았기 때문에 2라운드에서 채간 것이다. 

Soup's Minor League Track Record (1993-1997) 

YearAgeTmLgLevWLERAGSIPHRERHRBBSOBFWHIPBB9SO9SO/W
199318Red SoxGULFRk432.18957.2522014016642391.1792.510.04.00
199419SarasotaFLORA+1373.2627174.0153746310501737121.1672.68.93.46
199520TrentonELAA622.361599.0863526526884091.1312.48.03.38
199520PawtucketILAAA235.32745.250292799321911.2921.86.33.56
199621PawtucketILAAA1063.2222145.1130665216251425931.0671.58.85.68
199722PawtucketILAAA513.71960.2512625715402391.0882.25.92.67

AA볼 (1995년 Trenton) 까지의 Suppan의 성적을 보시면 정말 어디갖다놔도 부럽지 않은 성적이다. 전혀 어려움없이 마이너리그 레벨을 하나 둘 제패하고 올라오다보니 95시즌 말미에는 고졸 투수가 2년만에 AAA에 올라와 있었다. 당시 Suppan의 나이는 만 20세로, IL 리그 평균보다 무려 6.6세가 어렸다. 그러고보니 우리도 만 20살짜리 투수가 몇 년 전 AA볼에서 탁월한 성적을 낸 적이 있었다. 누구더라?


Shelby Miller : ERA 2.70, 16G 86.2IP 33BB 89SO, Whip 1.21, 9.0 K/9, SO/BB 2.70 (2011년 AA Springfield)

 Jeff Suppan  : ERA 2.38, 15G    99IP 26BB 88SO, Whip 1.13, 8.0 K/9, SO/BB 3.38 (1995년 AA Trenton)

물론 Suppan이 당시 소속이던 Trenton Thunder의 홈구장 Arm & Hammer Park는 극단적인 투수 구장[각주:1]이었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그래도 Hittability의 아이콘 Suppan이 마이너에서 이 정도였다니, 꽤 신선하지 않은가. 이 활약을 바탕으로 Suppan은 BA 선정 전미 유망주 35위로 발돋움했다. 그리고 Red Sox는 이례적으로 고작 20.5세에 불과한 Suppan을 7월 중순에 빅 리그에 데뷔시켰는데, 나름 일찍 승격된 편인 Carlos Martinez가 21.2세에 데뷔를 했으니 이 정도면 상당히 파격적인 승격이다.



AAA Pawtucket에서는 상당히 안정적이었으나 빅 리그에 올라가기만 하면 두들겨 맞았던 Suppan은 Red Sox에서의 첫 3년간 157.2이닝 평균자책 5.99의 볼품없는 성적을 냈다. 기회를 안줬다고도 할 수가 없었다. 빅 리그 3년차이던 1997시즌에는 팀 5선발로 22경기에나 출장을 했었는데, 9이닝당 피안타수가 11개가 넘었으며, 투구수 관리가 전혀 돼지가 않아 고작 110이닝 정도를 먹는데 그쳤다. 지극히 평범하게 생긴 인상의 우완 투수가 마치 "나도 던질 수 있을 것 같은" 수준의 패스트볼을 던지고 두들겨맞으니까 금세 조롱의 타겟이 되었다. 당연히 Red Sox는 1998년 Expansion Draft를 앞두고 보호선수 명단에 Suppan을 올리지 않았다.

물론 Upside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1997시즌 Suppan의 FIP는 4.37로 ERA에 비해 훨씬 낮았고, 극악의 타고투저 현상 속에서 Suppan의 성적은 조정방어율로 82였다. Ceiling은 "유망주"로 불리기엔 턱없이 낮았지만, 그래도 아직 젊었고, 딜리버리가 안정적이었다. 세부스탯을 들여다보면 고작 2.9 BB/9, 5.4 K/9, Whip 1.57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부상경력이 없어서 건강했으며 늘 등판할 준비가 (Available) 되어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하위팀의 25인 로스터 자리는 아깝지 않았다. 

많이 두들겨맞긴 했지만 Suppan은 Red Sox AAA레벨에서 3년간 250이닝을 소화했으며, ML에서 159이닝으로 도합 3년간 400이닝을 넘게 던졌다. 투구수 관리만 돼면 이 정도 이닝 이터의 자질은 보여준 셈이었기에 신생팀 D-Backs가 Expansion Draft 에서 선뜻 Suppan을 3순위로 지명했다. Bobby Abreu를 뽑을 수 있었는데도 Suppan을 지명한 것이다.  


1998-2002년: Royals의 소년가장

1998년 9월초, D-Backs는 끔찍한 시즌을 보내고 있던 Suppan을 마치 거추장스러운 짐을 치우듯 Mets로 보냈다[각주:2]. Mets에서는 Suppan에게 유니폼조차 맞춰주지 않는 무성의함을 보이다가 며칠 후 바로 Royals로 보내버렸다. 워낙 선발투수가 급했던 Royals는 시즌이 끝나기전에 Suppan에게 선발 등판 기회를 주었고, Suppan은 White Sox를 6이닝 4피안타 무실점으로 틀어막으면서 시즌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이듬해 Suppan은 Kevin Appier-Jose Rosado에 이은 3선발로 시즌을 시작했다[각주:3]

Royals의 궁색한 선발진은 Suppan에게 무궁무진한 기회를 주었다. 굉장히 얄팍한 전력을 자랑하던 Royals는 그나마도 제대로 발휘를 못하고 5월 이후 5할 승률에서 멀어졌으며, 이렇게 팀이 삽질을 할수록 "무슨 일이 있어도 등판을 거르지 않는" Suppan의 입지는 탄탄해졌다. 그는 1999년부터 2002년까지 4년간 Royals 로테이션을 꾸준히 지키며 매년 200이닝, 33경기 이상 선발 등판을 소화하고 bWAR 10.0, fWAR 10.6 을 적립했다. 이 기간동안 무려 852이닝을 소화했는데, 이는 같은 기간 리그 전체에서 7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물론 그 기간동안 평균자책은 4.75에 달했는데, 이럼에도 불구하고 4시즌 중 3시즌에서 조정방어율 100 이상을 기록했다. 스테로이드 시대였던 당시, 심한 타고투저로 경기당 득점이 높아졌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2000시즌 리그 평균 ERA 4.91)


폐허가 된 Kansas City 마운드에서 Suppan은 "가장 꾸준하고, 그랬기에 가장 많이 이기는" 투수였다. 4선발짜리 투수한테 스태프 에이스를 맡긴 상황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허약한 레퍼토리와 전반적으로 허접한 stuff는 어떻게 보완할 수가 없었다. Suppan의 메인 레퍼토리는 90~91마일대의 극히 평범한 패스트볼과 비교적 각이 괜찮은 커브, 써드 피치로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을 장착하고 있었는데 사실 큰 의미는 없었다. 제구가 잘되냐면 그것도 아니었다. 

이닝을 많이 먹기는 했지만 그건 등판을 거르지 않아서 그런거였고, Suppan은 결코 스태미너가 좋은 투수는 아니었다. 75구를 넘어가고 나서 커브의 각이 크게 떨어진다는 평이 마이너 시절부터 그를 따라다녔으며, 5회쯤 되면 그의 밋밋한 패스트볼은 타자들에게 좋은 먹잇감이었다, 써드 피치가 제대로 된게 없으니 로케이션에 엄청 신경을 쓰지 않으면 장타를 맞기 일쑤였다. 아니, 로케이션에 신경을 아무리 써도 장타를 맞기 일쑤였다. 이쯤에서 2001시즌이 끝나고 나온 Scouting Report의 평을 들어보자.

One of baseball's most consistent pitchers, Suppan is good for six innings before leaving while his team still has a chance to win. He almost never gets blown out of any game. Still, as long as he pitches in the No.1 Spot, Suppan won't be a big winner. He would suit a better team well as a fourth starter.

-Scouting Report 2002, on Jeff Suppan


2003년: Epstein의 퍼즐

2003년 초, Royals와의 계약이 종료되고 Suppan은 Pirates와 1년짜리 계약을 맺고 NL로 옮겨갔는데, 이건 좋은 선택이었다. 투수에게 유리한 홈 구장으로 쓰면서 지명타자가 없는 라인업을 상대하게 되자, 어차피 적당히 맞아가면서 버티는 스타일이었던 Suppan은 그의 장기인 "버티기" 를 시전할 수 있었다. 당대 최고의 타선 중 하나이던 Rockies를 상대로 무려 129구를 던지며 6안타 완봉을 했고 (6/29), 그 다다음 등판에서는 Brewers 원정에서 무려 133구를 던지고 3피홈런을 맞으면서도 9이닝 4실점 완투승을 따냈다. 이어서 7월 28일에는 St. Louis 원정에서는 9이닝 7피안타 완봉승. 무려 3차례의 완투를 통해 Suppan의 가치는 극에 달했고, 트레이드 데드라인을 앞두고 5할에서 8게임을 뒤지고 있던 (47-55) Pirates는 나름 "Sell-high" 를 노리고 Suppan을 매물로 올렸다.

당시 새파랗게 어린 나이로 단장 자리에 올라 첫 시즌을 보내고 있던 Theo Epstein은 트레이드 데드라인을 앞두고 1게임차로 치고받던 Yankees와 디비전 레이스를 버텨내줄 투수가 더 필요했다. 데드라인을 앞두고 Theo는 Anastacio Martinez, Brandon Lyon을 내주고 Pirates로부터 당시 리그 정상급 좌완 셋업맨으로 평가받던 Scott Sauerback, Mike Gonzalez를 영입하는 딜을 완료했다.


Sox 측에서 내준 Anastacio Martinez는 그다지 특별할게 없는 25세 도미니카 출신 우완 투수라는 프로필의 투수로, 당시 AAA레벨에서 ERA 1.93, K/9 9.6으로 상당히 좋은 시즌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이전 하위 마이너에서의 트랙 레코드가 구린 편이어서 갑작스런 AAA에서의 약진은 (그것도 14이닝의 적은 샘플 사이즈) 큰 의미가 없었고, 잘 커봤자 low-leverage Reliever 정도 프로젝션이었기 때문에 Sox 입장에서는 전혀 아쉬운 선수가 아니었다. Brandon Lyon 역시 그래봤자 전형적인 스윙맨 프로필이었다. 

반면 Scott Sauerbeck은 굉장히 기대해볼만한 선수였다. 1999년 갑자기 어디선가 툭 튀어나온 Sauerbeck은 까다롭고 Deceptive한 딜리버리와 굉장히 각이 큰 커브를 구사했으며, 당시 Pittsburgh 불펜에서 몇 안돼는 소위 "Lights-out" 릴리버였다. 클로저도 아니었으면서 데뷔 후 첫 4시즌 중 2.0WAR (bWAR 기준) 이상을 2시즌이나 기록했으니 기대를 걸어봄직한 젊은 Future Closer 재목이었던 것이다. Red Sox의 포스트시즌을 염두에 두고 Win-now 모드로 진행한 이 트레이드만 놓고 보면 Epstein의 무브는 (결과론은 배제하고) 합리적이었다.

그러나 Pirates측에서 메디컬 테스트 이후 Brandon Lyon의 오른쪽 팔꿈치 인대 손상 (frayed elbow ligament) 을 발견하고 Red Sox 측에게 트레이드를 물러줄 것을 요청했다. 이후 Pirates는 Lyon과 Martinez를 둘 다 Boston 으로 돌려보냈는데, Red Sox 프론트는 새로 영입된 선수들을 돌려보내지 않았다. 당시 언론에서 "걍 이렇게 남의 투수들을 데리고 있어도 되는거냐?" 고 묻자 Epstein은 "안될 껀 또 뭐 있나. 필요하면 그때 피츠버그랑 얘기해보겠다" 면서 배짱을 피웠다 (``I have no reason to think otherwise. If the need arises I'm sure we'll work with Pittsburgh to work this out.)  그리고 이후 말이 많자 1차 트레이드의 가장 핵심인물이었던 Sauerbeck은 쏙 빼놓고 곁가지였던 Mike Gonzalez만 돌려보냈다. 


선수 한 명을 잃어버린 꼴이 되자 당연히 Pirates GM Dave Littlefield는 반발했고, Epstein이 끝까지 Sauerbeck을 물고 놓치지 않으면서 데드라인을 3일 앞둔 28일 새벽 1시 반까지 협상에 진전이 없었다. 결국 다음 날 아침, Epstein은 당시 Sox 팜에서 촉망받던 유망주이던 Freddy Sanchez (당시 Sanchez는 25세였으며, AAA Pawtucket에서 무려 .341/.430/.493을 치고 있었다)를 내주기로 하는 대신, Jeff Suppan을 받아오면서 트레이드가 완성되었다. 중간 과정을 생략하고 결과물만 보면 이 트레이드는 "Scott Sauerbeck + Jeff Suppan <==> Freddy Sanchez + 극소량의 현금" 이었던 것이다. 트레이드 당사자였던 Sauerbeck은 "사실상 선수 하나를 그냥 훔쳐온 셈이다. 나는 한 100원에 정도에 팔린 듯 하다" (`Basically, you just stole a player for nothing. I think they got me for 10 cents'') 고 말했다.[각주:4] 


``Brandon was always a healthy pitcher for us and available to pitch every single day we had him and, according to our medical staff, was healthy the whole time. There's not a legal obligation, but depending on what's shown, if we feel there's something that needs to be done to treat Pittsburgh fairly, we'll do it. There may be an ethical obligation depending on what the facts show. But Brandon Lyon was a healthy pitcher with us, otherwise we wouldn't have traded him.''

-Theo Epstein, on Brandon Lyon's elbow 

(Hartford Courant 발췌, 07/26/2003)


Suppan의 Red Sox 복귀는 사실 Suppan 본인에게나, Boston 팬들에게나 그다지 반가운 소식이 아니었다. AL East에서 Suppan처럼 특징없는 투수는 말리게 마련이었으며, Suppan도 극성스럽고 졸렬한 Sox 팬들 앞에서 홈런을 맞는 것을 즐기지 않았고, 홈구장 Fenway는 더더욱 싫어했다. Suppan은 Red Sox로 복귀한 첫 경기에서 Angels타선에 홈런 3방을 허용하며 5이닝 7피안타 7실점으로 파운딩을 당했고, 그 다음 경기에서도 5점을 내줬다. 

Pirates 유니폼을 입은 마지막 8경기 (팀 7승1패) 에서 61.2이닝을 소화하며 (3완투 포함) 평균자책 2.63을 기록하며 한창 가치가 높던 Suppan의 Sox 이적 후 성적은 ERA 5.57, 63이닝 12피홈런, .281/.335/.538. 당초 Suppan이 영입 되었을 때 Royals 시절 동료였던 Johnny Damon 을 비롯해 여러 선수들이 Suppan의 가세를 반겼으나, 포스트시즌이 시작되었을 무렵 Suppan은 공식적으로나 Sox 클럽하우스에서나 이미 전력 외로 분류되어 있었다. 


욕먹어가면서 힘들게 영입한 Sauerback과 Suppan이 나란히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Sox가 내준 Freddy Sanchez가 곧이어 NL 타격왕에 오르면서 이 트레이드는 Epstein의 커리어 초기 최악의 무브로 손꼽힌다. 그러나 Dave Littlefield를 딱히 승자라고 보기도 힘든게, 멍청하게 자기 선수를 보호하지도 못하면서 완전히 사기당할뻔 하다가 운좋게 얻어걸린 Sanchez가 터진 덕에 조금 덜 욕을 먹게된 것이다. Dave Littlefield 의 흑역사에서 이 정도의 삽질은 귀여운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2004년: Cardinals 입단

2003시즌 후 Suppan은 다시 FA 시장으로 나왔지만, Red Sox에서 끔찍한 후반기를 보낸 덕에 그다지 인기가 있지 않았다. 어차피 Suppan은 "잘해야 4선발" 로 분류되었고, 냉정하게 말해서 "Upside가 거의 없는 투수" 였기 때문에 "투수가 급한 팀"이 아니면 굳이 애써 데려올 필요가 없었다. 당시 정규시즌 내내 Kiko Calero, Jeff Fassero 등을 로테이션에 끼워넣어 쓰며 투수진이 난장판이 되어버린 Cardinals는 당시 정확하게 "투수가 급한 팀"이었고, 등판을 거르지 않고 꾸준히 경기를 나서줄 인력이 필요했다. 

2003년 12월 18일, Jocketty는 Suppan에게 2년간 5M (+3년째 팀옵션 4M) 짜리 계약을 안겨주었다. Jocketty가 원했던 스탯은 Suppan의 훈장과도 같은 "5년 연속 200이닝," 딱 그거 하나 뿐이었고, 그의 허접한 Whip이나 안쓰러운 피안타율은 큰 의미가 없었다. 그리고 이후 3년간, Suppan은 Quantity 뿐 아니라 (누구도 그에게 기대하지 않던) Quality까지 제공하면서 이 계약을 Steal로 만들어버렸다. 

Jeff Suppan in St. Louis (2004-2006)

YearAgeWLERAGSIPHRERHRBBSOERA+FIPWHIPH9HR9BB9SO9
2004291694.1631188.0192988725651101024.771.3679.21.23.15.3
20053016103.5732194.1206937724631141194.531.3849.51.12.95.3
2006311274.1232190.02071008721691041084.701.4539.81.03.34.9

Woody Williams에게서 커터를 장착시키고 크게 재미를 봤던 Dunc와 TLR은 Suppan이 팀에 들어오자 망설임 없이 커터로 이 특징없는 투수를 튜닝했다. 이후 3년간 Suppan의 성적은 본인의 커리어에서 최고 수준이었으며, 3년간 무려 44승을 올렸다. 그런데 이 기간동안 Suppan이 적립한 WAR는 3년간 4.6, 연평균 1.5 수준에 불과하다. 이는 Royals에서 소년가장 역할을 하던 시절에 비하면 훨씬 적은 수치이다. 이쯤되면 궁금해지는게, Suppan의 전성기는 Cardinals에서가 아니던가? 일단 표면적인 성적만 봐도 훨씬 나아보이지 않는가?

Jeff Suppan: pre-Dunc vs. post-Dunc

 

 1995 - 2003

 2004 - 2006 

 H/9

 9.9

 9.5

 HR/9

 1.2

 1.1

 BB/SO

 1.73

 1.67

 GB% 

 44.7%

  47%

 HR/FB

 11.9%

  11.7%

 ERA (FIP)

 4.90 (4.80)

 3.95 (4.67)

특징없는 투수들의 성적이 "팀/환경과의 궁합"에 훨씬 쉽게 좌지우지 된다는 것은 Suppan을 보면 가장 쉽게 설명이 된다. 

Suppan이 커터를 장착하고 조금 더 효율적인 투수가 된 것은 맞다. GB%가 약간 늘어났고, 피홈런이 약간 줄었으며, 전반적인 세부 스탯의 향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Woody의 케이스처럼 갑자기 "커터 마스터" 로 환골탈태를 한 게 아니라, 고만고만한 레퍼토리에 고만고만한 무기를 하나 더 장착했을 뿐인 것이다[각주:5]. 피안타율과 BB/SO 비율이 아주 살짝 나아지긴 했지만 저것도 AL에서 NL로 옮겨온 투수라는 걸 생각하면 전혀 인상적이지 않다.

Suppan은 이제 점차 리그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Flyball-Finesse 스타일의 투수이다. 땅볼 유도 구질이 딱히 없어서 철저히 완급 조절에 의지해야하기 때문에 야수의 도움이 절대적이다. Suppan이 뛸 당시 1999~2002년 Royals 수비진은 팀의 전반적으로  허접했던 전력을 생각하면 (4년간 연평균 67승을 한 팀이다) 사실 나쁜 수비진은 아니었다. 유격수 Rey Sanchez는 dWAR로만 3년간 8WAR 가까이 적립한 수비형 유격수였고, 3루수 Joe Randa와 Jermaine Dye도 수비로 크게 욕을 먹지는 않았으며, 무릎이 건강했던 당시 중견수 Carlos Beltran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2004~2005 Cardinals의 황금 내야진 + 센터 Jim Edmonds 는 Royals와 클래스가 다른 수비를 제공했다. "유격수같은 3루수" Rolen과 Renteria가 뒤에 받치고 있자 Suppan의 실점률은 급히 떨어졌고, 결국 위 표에서 보시듯 "FIP와 ERA의 괴리"만 엄청나게 확장이 되었다. 이렇게 보면 Suppan이 능력 이상의 성적을 낸 데에는 흔히 알려진 것처럼 "Dunc의 조련" 혹은 "신구질 개발" 의 역할은 거의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어떤 스탯으로 보나 Cardinals에 와서도 Suppan은 예전과 거의 비슷한 투수였으며, 화려한 야수들의 도움과 강력한 팀 전력의 힘을 입어 능력 이상의 성적이 나왔을 뿐이다. 키스톤이 당초 Renteria - Womack에서 Eckstein-Miles로 바뀐 후 Suppan의 H/9이 9.2 --> 9.8 까지 올랐다는 점, 그리고 Suppan의 Cardinals에서 보낸 시즌이 투수의 전성기인 29~31세 시즌이었음을 기억하자. 


Suppan in October - 2004 Postseason

Suppan을 St. Louis 시절이 유난히 성공적으로 기억되는 이유는 "이렇게 Hittable한 투수가" 포스트시즌에서 능력 이상의 활약을 했기 때문이다. 2004년 가을 당시 Suppan은 16승으로 팀내 최다승을 거두긴 했지만 후반기 평균자책점이 무려 5.23에 이르렀고 (전반기 3.33), 특히 9월 한 달간 피슬래시가 .296/.373/.496 에 달했다. 등판을 거르지는 않았으나 Suppan이 투구수가 늘어날 수록 배팅볼 머신이 된다는 점은 모두들 알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Suppan의 흑마술은 가을용이었다. DS 4차전에서 Dodgers 타선을 7IP 2H 2ER 3K로 누르며 본인의 첫 포스트시즌 등판에서 승리투수가 되었는데, 경기 초반 피홈런으로 빠른 실점 후 플라이볼과 야수정면 라인드라이브 아웃 위주로 (12개)를 잡아내는 모습은 보는 사람을 굉장히 불안하게 했다.

2004 NLCS 3차전, ESPN에서 "Apparent Mismatch" 로 표현한 이 매치업에서 Suppan은 300승 투수 Roger Clemens와 통산 4번째 맞대결을 펼쳤다. 1회 첫 5타자를 상대로 안타-볼넷-병살-안타-홈런으로 완전 말릴뻔한 상황을 모면한 Suppan은 마지막 고비였던 Morgan Ensberg를 중견수 플라이로 잡아냈다. 3회에도 안타를 3개나 맞으면서 2사 만루 위기에 몰렸지만 또 Morgan Ensberg를 중견수 플라이로 잡아냈다. 이 경기에서 Suppan은 중견수 쪽으로 뜬공과 라인드라이브를 무려 6개나 허용했는데, 이 중 5개를 고비마다 Edmonds가 잡아내면서 어찌어찌 QS를 해냈다.

NLCS 7차전, 통산 Clemens와의 매치업 0승 4패에 빛나는 Suppan이 또 마운드에 올랐다. 리드오프 Biggio에게 4구만에 통렬한 홈런을 맞으면서 찝찝하게 시작했으나 사실 Suppan은 이런 경기가 너무 익숙했다. 2회초, 아직 정신을 못차린 Suppan은 1사 1,2루에서 Brad Ausmus에게 좌중간을 완전히 가르는 타구를 얻어맞는다. 그리고 역대 NLCS 최고의 캐치로 남아있는 바로 그 장면이 이어진다. (Edmond 2004 NLCS Game 7 Catch 링크) 이 캐치 이후 NLCS 7차전의 분위기는 홈팀 St. Louis쪽으로 넘어왔다.  

Edmonds의 말도 안돼는 캐치 이후 Suppan은 점차 안정을 찾더니 3회 1사 3루 기회에서 깔끔한 스퀴즈번트로 경기를 팀에게 2:1 리드를 선사했다. 그리고 늘 하던대로 GB 3개, FB 12개의 극단적인 비율로 아웃카운트를 잡아냈으며, 결국 Clemens와의 5번째 듀얼에서 승리투수가 되었다. 그 어떤 면으로도 Clemens와 비교할 수 없는 투수가 Suppan이지만, 그의 장기인 "버티기"를 시전하다보니 1승이 나올 때가 된 것이었다. 7차전에서 Suppan이 보여준 퍼포먼스 덕에 TLR은 커리어 최초로 NLCS 시리즈 승리를 거두었으며 (이전까지 0승 3패), 이후 Suppan에 대한 신뢰가 더욱 두터워졌다.

Suppan in October - 2006 Postseason

선수생활 내내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일이 없던 Suppan에게도 볕들날이 있었으니, 2006년 NLCS에서 갑자기 흑마술이 절정에 달한 것이었다. 원정에서 스플릿을 거두고 홈으로 돌아온 첫 경기, 시리즈 3차전에서 Steve Trachsel을 상대한 Suppan은 2회 선두타자로 나서 솔로 홈런을 치며 Trachsel에게 단단히 망신을 줬고, 이후 8IP 3H 0R 1BB 4K라는 어마어마한 피칭을 했다. Suppan이 이 경기에서 기록한 게임스코어 79점은 그가 Cardinals 유니폼을 입고 던진 모든 경기를 통틀어서 2번째로 높은 점수인데[각주:6], 하필 그 경기가 Underdog으로 치르고 있던 NLCS 3차전에서 나온 것이다. 이 정도면 뭐 거의 개기월식 수준이다.

     "That was one of the real key turning points of the game because Supp kept his composure, made great pitches and got out of it. The game could have gotten away right there. You have a combination of Chavez's catch, they capitalize on the Rolen error, and with their bullpen ... but it didn't happen."                                                                                                                                                    

 - Tony La Russa, on Suppan's 6th Inning in Game 7

NLCS 7차전, 이번에는 원정에서 Oliver Perez를 상대하게 된 Suppan은 1회 David Wright에게 적시타를 허용한 이후 쭉 순항하며 1:1 스코어로 Perez와 Pitcher's duel을 펼쳤다. 보통 이런 경기는 홈팀이 어느정도 엣지를 가지게 마련인데, 6회말 1사 1루에서 David Wright 의 3루 땅볼을 잡은 Scott Rolen이 1루 관중석에다 송구를 뿌리면서 경기가 순식간에 홈팀쪽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타석에는 Shawn Green-Jose Valentin-Endy Chavez 등 3명의 좌타자가 (Valentin은 스위치) 잇따라 들어섰고, 정규시즌에서 좌타자들 상대로 피안타율이 3할이 넘었던 Suppan은 Green을 거르고 만루를 만들었다. 이쯤에서 Randy Flores가 나오지 않을까 싶었는데, TLR은 그 때까지 잘 던지고 있던 Soup에게 그냥 경기를 맡겼다.

당시 Jose Valentin 은 Suppan을 상대로 통산 4홈런 9타점으로 굉장히 강했으며, 봉사 수준의 선구안을 가졌고 브레이킹볼에 명백한 약점이 있던 내야수였다. Soup은 2스트라이크를 잡아놓고 5구째를 본인의 가장 자신있는 변화구인 Curve in the dirt 를 던졌는데, 팔팔한 천재포수 Yadi의 블로킹 능력일 믿지 못했다면 절대 만루에서 나올 수 없는 구질 선택이었다. Valentin이 이 공에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나면서 갑자기 Mets 측에는 불안감이 엄습했고, Endy Chavez의 타구가 센터 쪽으로 뜨는 순간 양쪽의 희비가 엇갈렸다. 평범함의 상징 Jeff Suppan이 자신의 커리어를 통틀어 가장 X줄타는 High-Leverage 상황을 무실점으로 모면하며 전국구 Spotlight 아래서 마음껏 Flair를 발산하는 순간하는 아름다운 순간이다. 

"“When you’ve got a guy like Soup, a smart pitcher, it’s easy to get through something like that. I remember that inning. That inning stays with you forever. He did his part. Now it was our turn to help.”                                                                                                          - Yadier Molina, on Suppan's 6th Inning in NLCS Game 7                                                                                                             (Interview with Derrick Goold on St. Louis Post Dispatch)



2007-2010: Brewers와의 안좋은 인연

2006시즌이 끝나고 Suppan이 다시 FA가 되었을 때, Cardinals는 포스트시즌에서의 활약으로 가치에 크게 거품이 껴있던 Suppan을 굳이 붙잡지 않았다. 투수들 가격이 마구 올라가기 시작하던 이 무렵, 결국 Suppan은 Brewers로부터 Back-loaded된 4년간 40M짜리 계약을 받는 대박을 쳤다. 계약 첫 해인 2007년에는 오랜만에 200이닝을 넘기면서 bWAR 1.9 짜리 괜찮은 시즌을 보냈으나, 2008년초 모친상을 당하고 부상이 겹치면서 FIP 5.51로 난타를 당했고, 그 이후에도 전혀 반등하지 못하면서 2.5년간 bWAR -.2.7을 적립했다. 포스트시즌에서 흑마술을 보여준 것에 반해서 데려왔는데, 정작 2008년 NLDS 마지막 경기에 Suppan은 Phillies 타선을 상대로 3이닝을 채 넘기지 못하고 홈런 3방을 맞으면서 붕괴했다. Suppan의 능력과 한계점을 모두 알고 있는 입장에서, 당시 시리즈를 보면서 "왜 쟤네는 시즌 마지막 게임이 될 수 있는 경기에 Gallardo를 넣지않고 Suppan을 등판시켰나" 하면서 의아해했던 생각이 난다. 

더욱 밀워키의 염장을 질렀던 것은 계약 이후이다. Brewers에서 팀에 득보단 해가 되었던 투수가, 만신창이가 되서 Cardinals와 계약을 하더니 밥값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2010년 6월, 잔여연봉 10M이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인내심이 다한 Brewers가 Suppan을 내치자, TLR은 얼씨구나 하면서 곧장 Suppan에게 전화를 걸어 불펜세션을 던져볼 것을 요청했다. Dave Duncan은 불펜세션을 지켜보고 "딜리버리 과정에서 약간 투구 메카닉적인 문제가 있는데, 저걸 고치면 쓸만할 것 같다" 며 OK를 주었고, 중고차를 사들이듯 Suppan을 다시 데려와 부상에 신음하고 있던 선발 로테이션에 투입했다. 

"I think it's very correctable. Sometimes some things happen as a pitcher subtly over time but what they said absolutely made sense. I was very happy with talking with them, then getting out there and throwing."           
                                         

  - Jeff Suppan, after a bullpen session with Dave Duncan (ESPN, 06/12/2010)

Brewers에서는 불펜과 선발을 오가며 ERA 7.84를 기록했던 Suppan은 이적 후 첫 등판에서 4IP 4H 1ER 4K라는 사람같은 피칭을 했고, 7월 18일 Dodgers전에서는 6IP 5H 1ER 으로 퀄리티스타트까지 따냈다. 결국 Suppan은 Cardinals 유니폼을 입고 반 시즌만에 0.3WAR를 적립하고 70이닝을 소화하며 ERA 3.84로 막아냈다. Suppan과의 장기계약에 3년간 고통스러워 했던 Brewers 팬들은 Suppan의 후반기 활약을 보고 분개했으며, "16 most despised Brewers of all time" (역대 제일 싫은 Brewers 선수) 토너먼트에 Suppan을 올려서 Rickie Weeks와 맞붙였다. 

"Soup" as a Catholic

위에서 잠시 언급했지만 Soup은 굉장히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는데, 그냥 단순히 일요일에 성당을 가는 수준이 아니었다. 

2005년 NLCS가 끝나고 11월 초, Suppan은 메이저리그 선수 역대 최초로 교황을 만나러 카톨릭의 성지 Vatican City로 직접 날아갔다. 당시 Suppan은 "Cardinal = 추기경" 이라는 점에 착안, 재치있게 Cardinals 저지에 교황 이름을 새겨서 [각주:7] 선물로 주려고 가져갔다. 공교롭게도 Suppan이 이태리에 도착했을 때 항공사에서 그의 짐을 잃어먹는 바람에 결국 선물을 전달해주지는 못하고, 그냥 Vatican에서 열린 첫 스포츠 컨퍼런스에 참가한 뒤 교황의 반지에 키스를 하는 영광을 누렸다고 한다. 포스트시즌 마운드에서도 그다지 떨지 않았던 Soup은 미국에 돌아온 이후 "이렇게 떨렸던 적은 없었다" 면서 황송해했다.  

"It was emotional for me. I was nervous in a different way. I've never been nervous before. I don't really know how to describe it. It was truly a once-in-a-lifetime experience."                                                                                                                                                                       - Jeff Suppan, after meeting the Pope (11/22/2005, Chicago Tribune)

이뿐 아니고 Catholic Exchange 라는 단체에서 "Champions of Faith"라는 타이틀로 영화를 제작했는데, 당시 빅 리그에서 잘 나가는 선수들 중 독실한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을 골라서 그들의 신앙생활을 들춰보자는 취지의 일종의 다큐멘터리/영상물이었다. 이 영화에 Craig Biggio, Mike Piazza 등 진짜 Superstar 들도 출연했는데, Suppan은 팀 동료 David Eckstein과 함께 Baseball Superstar라는 어색한 타이틀을 달고 출연했다. 관심있는 분들을 위해 Youtube 링크를 여기 걸어드린다.



Soup의 종교 관련 에피소드 하나 더. 월드시리즈가 한창 진행중이면 2006년 10월, Suppan은 당시 Missouri 주의 헌법 수정안 (State Constitution Amendment) 에 반대하는 광고에 선뜻 출연했다. 수정안은 줄기세포 (Stem-cell) 연구와 인간 복제를 합헌하는 내용이었는데, 워낙 예민한 문제라서 찬반 논란이 과열된 상황이었다. "인간 복제에 반대하는 미주리인들" (Missourians against Human Clonings) 이라는 단체에서는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지역 스포츠 팀들의 인기 스타들 중 독실한 카톨릭인 선수들을 모아서 (가령 St. Louis Rams 출신의 쿼터백 Kurt Warner, Royals의 Mike Sweeney) 광고 영상을 찍고 완성본이 이미 나온 상태였는데, 딱 이 무렵에 Soup의 커리어를 통틀어 가장 하이라이트였던 2006년 NLCS가 일어났던 것이다. 

83승짜리 팀을 WS로 이끌어준 투수였으니 지역팬들의 지지도는 하늘을 찔렀고, 광고 영상을 TV에 올리려던 제작진은 급히 방향을 선회해 Suppan의 집에 찾아가 촬영 협조를 구했다. 독실한 카톨릭이었던 Soup 은 이 수정안이 부결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내용의 메세지를 영상으로 남겼고, 이 광고영상은 이후 월드시리즈 내내 지역방송인 Fox Midwest에서 방영이 되었다. (Suppan의 광고 링크

이를 두고 언론에서 TLR에게 "월드시리즈 도중에 이런 정치적인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고 묻자 TLR은 "선수들이 야구를 초월해 다른 방식으로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모습은 보기좋다" 면서 지지했는데, 사실 TLR 본인의 동물 보호 문제에 관한 열정을 생각하면 당연한 반응이다. Suppan의 힘이었을까? 2006년 WS가 끝나고 Poll을 매겨보자 헌법 수정안에 찬성하는 이들의 비율은 전년도 68%에서 51%까지 떨어졌다.[각주:8]


총평 - Control What You Can

총평을 읽기 전에 일단 Suppan 형의 얼굴을 다시 한 번 보시라. 작년 TLR 시리즈 9편의 주인공 Jason Isringhausen 편에서 Generation K가 얼마나 야구를 못하게 생겼는지에 대해서 재미있는 의견교환이 있었는데, Suppan 이 양반도 야구 참 못하게 생겼다. Jeff Suppan이란 이름을 보고 탈삼진을 잡고 포효하는 장면보다는 피홈런을 허용하고 고개를 젓는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면, 자연스러운 것이다.

2014년 1월 2일 오후 2시 (Pacific Time) , Suppan은 17년간의 커리어를 접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When you retire, there’s a loss, not just as a player, but from everyone in your family, everyone who watched and rooted for me. I just wanted to give that official ‘it’s over’ for them and for myself. I just wanted to make sure that when my career was over it was over, and I had squeezed everything I could out of it..." 

Sports on Earth의 기자 Will Leitch는 Suppan의 은퇴를 기리면서 쓴 칼럼에서 이 "Squeeze"라는 단어에 주목했다.[각주:9] 

지금까지 스크롤 압박을 이겨내고 이걸 읽어주셨다면 이제쯤은 다 아실 것이다. Suppan은 짜낼 수 (Squeeze) 밖에 없는 투수였다. 그냥 Stuff가 부족한 수준에 그친게 아니고, Upside가 정말 없었다. 확실한 아웃피치가 있던 것도 아니고, 싱커를 구사한 것도 아니다. 제구도 좋은 편은 아니었고, 제구가 안좋으니 이닝을 많이 먹냐면 그것도 아니었다.[각주:10] Deception이 있는 딜리버리가 있던 것도 아니고, 주자 견제도 시원찮았다. 많은 League-Average 투수들이 TLR 시대에 Cardinals를 거침으로써 (혹은 Dunc를 거침으로써) 커리어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켰는데, 그 투수들과 비교해서도 Suppan은 가장 가진 탤런트가 없는 선수였다.[각주:11]

"....I just wanted to be a hard worker, a good teammate, and take the ball every time. I remember it like it was yesterday when a coach was sitting on the bench with me. We were talking about All-Stars, big-time players, utility players, situational players. He said, ‘Soup, the best ability is availability.’ That always stuck in my head. Make every start.                                                                                                                                                                                                                                       

- Jeff Suppan, Interview with Thomas Hoffarth (L.A Daily News, 01/11/2014)

Suppan은 "Best ability is availability" 라는 마이너 시절 코치의 조언을 그대로 받아들였고, 17년간 실천에 옮겼다. 힘이 닿는 한 잘 던지든, 못 던지든, 던졌다. 그래서 쌓아온 숫자가 417경기 선발 등판. 이는 통산 109위에 해당하는 수치이다.  그리고 그는 이 Availability 라는 탤런트 하나 만으로 감히 상상하기 힘든 규모의 커리어를 쌓았다. 

아래는 Suppan이 커리어 내내 플레이오프에서 상대한 투수들이다. "Apparent Mismatch" 라는 ESPN의 표현이 정말 Clemens 상대로만 어울릴까? 필자가 보기엔 거의 모든 매치업에서 Suppan은 미스매치였다.

Suppan의 역대 플레이오프 매치업

 

 상대 선발

 Suppan 성적

 시리즈 전적

 QS 여부

 2004 NLDS Game 4

 Odalis Perez

 W

 3-1 승리

 O

 2004 NLCS Game 3

 Roger Clemens

 L 

 4-3 승리

 O

 2004 NLCS Game 7

 Roger Clemens

 W

 

 O

 2004 W.S.  Game 1

 Pedro Martinez

L

 0-4 패배

 X

 2005 NLCS Game 4

 Brandon Backe

ND

 2-4 패배

 X

 2006 NLDS Game 3

 Chris Young

 L

 3-0 승리

 X

 2006 NLCS Game 3

 Steve Trachsel

 W

 4-3 승리

 O

 2006 NLCS Game 7

 Oliver Perez

 ND

 

 O

 2006 W.S.  Game 4

 Jeremy Bonderman

 ND

 4-1 승리

 O

 2008 NLDS Game 4

 Joe Blanton

 L

 1-3 패배

 X

 

 

 3-4, 3ND

 5-3

 6QS (10GS)

Jim Edmonds가 없었더라면, Carlos Beltran이 없었더라면, 그리고 Scott Rolen이 없었더라면, Dunc나 TLR이 없었더라면 Suppan이 커리어를 이만큼 이어나갈 수 있었을까? 많은 것이 부족했던 투수 Suppan는 늘 주변의 도움이 필요했고, 그게 받쳐줄 때야만 비로소 효과적일 수 있었다. 

젊은 시절 관제탑에서 비행기 승객들의 안전을 책임졌던 Suppan의 아버지는 "Control what you can, leave the rest up to others"를 Suppan에게 늘 강조했다. 사실 Stuff가 허접한 투수 입장에서는 필드 위에서 Control 할 수 있는 부분이 굉장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데, Suppan은 마운드 위에서 뭘 제어하려는 것에 대한 미련을 일찌감찌 버리고 "Take the ball every 5th day," 5일에 한번씩 등판하기에만 집중했다. 어쩌면 Professional Athlete의 모토라기에는 약간 실망스러울 정도로 소박한 이런 태도는 Suppan에게 꾸준한 자기관리 + 상대 타자에 대한 연구를 하도록 만들었으며, 던지고 던지고 던지다 보니 때때로 Suppan과 비교도 안될만큼 화려한 커리어를 지녔던 선수들이 Suppan에게 기대야 할 순간들이 생겼다. 또 이런 순간들이 쌓이고 쌓이자 2006년 NLCS와도 같은 기적같은 퍼포먼스도 나왔고, Roger Clemens도 Suppan의 Availability 앞에 한 번은 무릎을 꿇었다 (4번을 이겼을지언정). 

"I love this guy. I love him. ... That was not a very good inning, emotionally, for me.”  

-Scott Rolen, on Jeff Suppan after 2006 NLCS Game 7

2010시즌 Cardinals와의 계약이 끝나고 Suppan에게 ML 레벨 계약을 제시하는 팀은 없었다. 시즌이 개막하고 나서야 (4/4/2011) 옛 소속팀 Kansas City가 일종의 보험용으로 Suppan에게 마이너리그 계약을 제시했고, Suppan은 나이 36세 시즌에 생소한 트리플 A 팀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서 햄버거로 식사를 하게 되었다. Royals 팜에는 Suppan보다 훨씬 재능있는 젊은 투수들이 너무도 많았고, 언제 빅 리그로 콜업이 될 지 전혀 기한이 없었다. 결국 그 시즌, Royals 로스터에는 Suppan을 위한 자리는 나지 않았다. 

이번 2014 포스트시즌, Royals가 오랜만에 가을야구에 나가게 되서 광란의 질주를 하고 있을 무렵 Fox Sports 에서 Suppan에게 옛 친정팀 Royals의 선전에 대해 의견을 물었다. Suppan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

        "I'm pulling for the Royals. I played there in 2011 when I couldn't find a job anywhere. I played the whole year in Triple-A. We won the PCL (Pacific Coast League) Championship there. All those guys in the big leagues now, I played with them in 2011. Hopefully, I had a positive influence on them being a veteran. That's what veterans are supposed to do, pass things down. I wish the best for them."                                                                                                                                                                                    

  - Jeff Suppan, on Royals' postseason run                 

Suppan은 삭막하고 고생스러워보이는 2011 시즌을 다르게 기억하고 있었다.  

Suppan은 Omaha Storm Chaser 소속으로 28경기에 등판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의 팀이 PCL 정규시즌과 플레이오프를 모두 우승한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빅 리그 17년차 베테랑으로써 이 젊은 Royals의 미래 주역들에게[각주:12]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기를 바라며 열심히 한 시즌을 소화해 낸 것을 기억한다. 땀흘리고 이겼던 것을 기억하고, 동료에게 좋은 팀메이트였던 것을 기억한다. Suppan에게 2011년은 "시즌 내내 마이너에서 썩어야 했던 시즌"이 아닌, "미래의 Royals 주역들과 같이 뛰며 우승했던 시즌"이었던 것이다. 그는 PCL에서 만났던 Royals 코치진들과 팀 동료들과의 인연을 지극히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입에 발린 가식처럼 들릴 수도 겠으나, 마음속에서 우러난 겸손함이 없다면 말하기 힘든 내용이다.

 2000년대 투구수 순위 (2000-2009) 

1. Barry Zito

2. Livan Hernandez

3. Javier Vazquez

4. Mark Buerhle

5. C.C. Sabathia

6. Jon Garland

7. Jamie Moyer

8. Carlos Zambrano

9. Derek Lowe

10. Roy Oswalt

11. Jeff Suppan (24,689)


"Soup" as a Restauranteur

늘 요식업계 진출을 꿈꾸던 Suppan은 은퇴 후  LA 근교 San Fernando Valley에다가 소원대로 식당을 차렸다. Soup's Sports Grill 이라는 이 식당에는 Suppan의 커리어를 처음부터 끝까지 돌아볼 수 있는 사진 컬렉션들이 벽에 쫙 걸려있으며, Randy Wolf, Jim Edmonds, David Eckstein 등 Suppan의 옛 동료들이 싸인을 해서 걸어놓은 싸인들이 수두룩하다.  특히 Edmonds의 2004년 캐치 장면 사진에는 Edmonds가 직접 "Jeff, 이건 내 Best Catch니까 잘 보이는데다가 걸어놓게" 라고 적어놓았는데 Suppan이 보란듯이 한쪽 구석에다가 걸어놨다.

Did you know...?

  • Jeff Suppan은 Detroit Tigers 의 옛 홈구장인 Tiger Stadium의 마지막 공식 경기의 선발 투수였다 (1999). 또한, 새로 개장한 Comerica Park에서 Verlander가 첫 노히트를 했을 때도 상대 투수가 Suppan이었다 (06/12/2007).
  • Suppan은 메이저리그에서 통산 2개의 홈런을 (플레이오프 1개, 정규시즌 1개) 기록했는데, 둘 다 Mets의 Steve Trachsel을 상대로 친 것이다. 
  • Suppan의 생일이 1월 2일이며, Suppan의 어머니가 2008년 1월 2일에 돌아가셨다. 이에 Suppan은 2014년 1월 2일 (정확히는 오후 2시, 어머니의 사망 시간) 을 본인의 은퇴 날짜로 정했다.


by Doovy



Sources: SI, ESPN, MLB.com, Baseball-reference, Fangraphs, STL Post dispatch, LA Times, Baseball-almanac, Viva El Birdos, Los Angeles Daily News, Sports on Earth (Will Leitch), 


  1. (Suppan이 홈으로 쓰던 Arm & Hammer Park는 리그 평균을 1로 잡았을 때 득점이 0.902, 홈런이 0.742에 그칠만큼 리그에서 손꼽히는 투수 친화구장이다) [본문으로]
  2. 당시 D-Backs는 Mets에서 베테랑 외야수 Bernard Gilkey를 영입했었는데, 이에 대한 보상으로 Supp을 넘겨준 것이다. [본문으로]
  3. 90년대 말 폐허와도 같았던 Royals 마운드에 혜성처럼 등장했었던 젊은 좌완투수 Jose Rosado를 기억하시는 분이 계시는 지 모르겠다. 아주 잠깐 반짝 했었는데, 다른 건 크게 기억이 안나고 커브가 상당히 좋았었다. 필자는 Jaime Garcia가 부상으로 빌빌거릴 때마다 Rosado를 자주 떠올렸었다. [본문으로]
  4. Sauerbeck은 스스로를 "Curveball-flipping freak"으로 불렀으며, 소속팀 Pirates를 대놓고 까는 등 굉장히 당찬 캐릭터였으나, 트레이드 이후 부상-마이너를 전전하다가 2008년 초라하게 은퇴했다. [본문으로]
  5. Suppan의 커터 Pitch Value로만 봐도 3년간 -0.4 --> +0.3 --> - 0.8 로 득보다는 실이 더 많았다. [본문으로]
  6. 2004년 정규시즌에 한 차례 80점짜리 경기를 한 적이 있을 뿐이다. [본문으로]
  7. 05년 당시 교황이 Benedict 16세였는데, 아마 유니폼에 Benedict 번호 16번 뭐 이렇지 않았을까 하는게 필자의 추측이다. [본문으로]
  8. 결과가 궁금하시다면, 2006년 11월 7일 개표 결과 이 수정안은 통과되었다. [본문으로]
  9. Appreciating Enduring Mediocrity 라는 멋진 제목의 이 칼럼은 꼭 한 번 읽어보시길 바란다. 링크: http://www.sportsonearth.com/article/66286268 [본문으로]
  10. 의외로 Suppan은 Cardinals에서 단 한 번도 200이닝을 넘겨본 적이 없다. Suppan은 Average 투수였으나, Inning-Muncher는 절대 아니었다. [본문으로]
  11. 혹자는 Suppan와 Woody Williams를 비교할 수도 있는데, 택도 없는 소리다. Woody는 커터와의 궁합이 굉장히 잘 맞아서 Cards 유니폼을 입고 2년간은 리그 낸에서 가장 효과적인 투수로 빛을 봤었다. Suppan은 위에서 분석했다시피 Cardinals 유니폼을 입고 더 나은 투수가 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2006년 10월 제외) [본문으로]
  12. 2011 PCL 우승의 주역 멤버들은 대부분이 2014년 Royals 돌풍의 주역으로 그대로 전이가 되었다 (Mike Moustakas, Lorenzo Cain, Greg Holland, Danny Duffy 등). [본문으로]
Posted by Doov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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