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Doovy
4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딱 4건의 Major Transaction이 있었던 작년 오프시즌에 이어 올 오프 시즌도 다들 잘 아시다시피 Peralta 계약과 Freese-Bourjos 트레이드, Mark Ellis 영입 이후로 사실상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올 시즌은 아주 확고하고도 공공연한 팀의 최대 겨울방학과제인 "유격수 보강" 이 있었기에 필자는 솔직히 약간 설레는 마음으로 오프시즌을 맞이했는데, 너무 일찍 모든 일들이 정리가 되버린 탓에 조금 김이 샌다. 이에...올 해도 블로그의 간판 이벤트인 유망주 리스트에 이어서, 오프시즌의 지루함을 같이 견뎌보자는 마음에...추억팔이용 TLR ERA 시리즈를 다시 꺼내들어 작년에 미처 다루지 못한 선수들을 돌아보고자 한다.
첫 주인공은 MV3의 일원이자, 여태 필자가 본 최고의 3루수, Scott Rolen이다. 제2의 Mike Schmidt 라는 부담스러운 평을 듣고서 데뷔한 Rolen은 이후 공수에서 리그 최고의 3루수로 거듭났으며, 길고 풍성한 Cardinals 역사에서 1960년대 Ken Boyer 이후 역대 최고 3루수로 꼽히는 데 아무도 이견을 달지 못할 것이다.
Scott Rolen
3rd Baseman
DOB: 1975년 4월 4일
Birth: Evansville, Indiana
Time with Cardinals: 2002-2007
Draft and Minors
고등학교 농구팀 코치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Rolen은 농구와 야구를 병행했으며, 두 스포츠 모두에서 대단한 두각을 나타냈다. 특히 Rolen의 농구 선수로써의 자질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는데, 9학년때 고등학교를 입학하자마자 주전 포인트가드로 뛰게 되었음은 물론, 키가 더 큰 이후에는 (6'4, 193cm) 포워드/스윙맨 역할까지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는 선수였다. 졸업학년 당시 Rolen은 Indiana 주에서 뽑는 Mr. Basketball 투표에서 3위에 올랐는데, Rolen이 나온 고등학교가 인구수 1만명을 넘지 못하는 "깡촌'의 작은 시골 공립학교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는 대단한 업적이다.
1992년 겨울, Rolen의 Senior 농구시즌이 끝나고 나서 Kentucky, Oklahoma State, Georgia 등 BIG 10 디비전 내의 "농구 좀 한다는" 대학교들이 앞다퉈 Rolen에게 장학금 패키지를 던지기 시작했다. 6피트 4인치의 건장한 프레임과 탁월한 운동신경, 그리고 작전에 대한 출중한 이해도와 우직한 Work Ethic으로 뭉친 Rolen은 NBA 레벨까지는 아니더라도 NCAA에서는 충분히 군침을 흘릴만한 포인트가드였다.
마지막 야구시즌을 앞둔 1993년 초, University of Alabama 와 University of Georgia에서 제시한 농구 장학금을 앞두고 저울질하던 (Rolen의 회고에 따르면 아마 Alabama로 갔을 것이라고 한다) Rolen을 말리는 이가 두 명 있었다. 그 중 하나는 학교의 야구팀 코치였던 Terry Gobert였다. Gobert 코치는 수년간 팀의 에이스 투수이자 유격수였던 Rolen을 12학년 때 갑자기 3루수로 옮겼는데, 그 이유는 상대적으로 공을 더 많이 처리해야하는 유격수에 비해 3루가 어깨/팔꿈치 피로와 부담이 덜하다는 것이었다. 이 작은 시골 고등학교의 야구팀 코치의 현안은 이후 Rolen의 커리어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다른 하나는 Rolen의 재능을 알아본 Phillies의 스카우트 Scott Trcka*였다. Trcka는 Rolen을 1라운더 감으로 구단에 천거했으나, Phillies 측에서는 이미 농구 장학금을 받아놓고 저울질하고 있던 Rolen이 궁극적으로 야구를 선택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게다가 Rolen의 부모님이 둘 다 (교육을 우선시하는) 학교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었다는 점 때문에 Phillies 측에서는 Rolen이 어련히 농구 장학금을 선택하고 대학교로 진학할 것이라 믿었었다. 그러나 Trcka는 Rolen의 부모님과 Phillies 프론트 양측을 진득하게 설득해 Rolen의 마음을 돌렸다.
Rolen이 궁극적으로 농구 대신 야구를 택한 것에는 25만달러라는 큰 액수의 사이닝 보너스가 큰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결정적인 이유 두 가지가 있었다. 한 가지는 Rolen의 야구에 대한 열정, 그리고 다른 하나는 냉정하게 봤을 때 Rolen같은 6피트 4인치 정도의 언더사이즈 백인 포워드/가드가 웬만한 재능이 아니고서는 NBA의 벽을 두드리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농구를 택할 경우 Rolen의 농구 커리어는 NCAA 레벨 이상은 보장할 수 없으나, 야구를 택하면 확실히 프로에 갈 수 있는 재능이다 - 라는 것이 Trcka의 셀링 포인트였다.
Rolen이 참가했던 1993년 드래프트***는 유난히 대어가 많았다. Alex Rodriguez, Torii Hunter, Trot Nixon으로 시작해서 여기에 골든 스파이크 수상자이자 이후 당대 최고 수준의 먹튀로 거듭나는 Darren Dreifort 까지...이 정도의 Draft Pool에서 깡촌 Indiana 출신의 고졸 3루수**가 "고졸"이라는 딱지를 넘어서서 1라운더가 된다는 것은 어지간해서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 당시 고졸 출신들 중 Rolen은 10번째로 드래프트 되었는데, Rolen보다 먼저 뽑힌 고졸 선수들 중 ML에 제대로 정착한 선수들은 Torii Hunter, A-Rod, 그리고 훗날 동료가 되는 Chris Carpenter 뿐이었다. Trcka의 꾸준한 설득에 힘입어 결국 Rolen은 1993년 드래프트 2라운드 전체 46번으로 Phillies에게 지명되었는데, 이 대어들이 넘쳐나는 드래프트에서 전체 46번으로 지명되었다는 것은 당시 Rolen의 재능이 확실히 인정받았음을 의미한다.
입단 이후 Rolen은 마이너리그를 한 단계 한 단계 차근차근 씹어먹고 올라왔다. 1994시즌, 프로에서 맞이한 첫 풀시즌에서 그는 .294/.363/.462의 뛰어난 타격 성적은 물론이고, 코치들의 조언을 놀랄만큼 빨리 흡수하며 순식간에 Top Prospect로 도약했다. 1995년 A+ 레벨의 Clearwater에서 전반기를 맞이한 그는 조금도 주눅들지 않고 OPS .880을 찍더니 후반기에 AA로 승격되었다. 로우레벨 마이너를 Raw Talent 하나로 빠르게 씹어먹고 올라오는 이 고졸 야수 유망주에 필리스는 흥분했다.
당시 91년 드래프트 출신이자 Phillies의 차기 3루수로 Rolen보다 먼저 치고 올라오고 있었던 Rob Grable이란 3루수는 AAA로 승격된 뒤 갑자기 좌익수로 포지션을 변경해야 했다. Rolen의 빠른 성장세를 본 Phillies가 3루를 비워놓고 싶었던 것이다. 1994시즌 직후 BA 선정 유망주 랭킹 Top 100 중 91위였던 Rolen의 순위는 1995시즌이 끝난 이후에는 27위로 올라가 있었다. 고졸 3루수가 루키리그부터 시작해 AAA까지 올라오는데 3년도 걸리지 않았으니, 당시 Phillies 팜의 실정과 Rolen의 확실한 툴을 동시에 보여주는 예라고 하겠다.
Scott Rolen's Minor League Track Record
* Trcka 이 양반은 Phillies 구단에서 오랫동안 일한 베테랑 스카우트로, Scott Rolen에 이어 Brett Myers 등을 발굴한 바 있다. 작년부터 Phillies 스카우팅 부서에서 Mid-West Supervisor로 재고용되어 일하고 있다.
**고졸 3루수가 빅 리그에서 3루수로 살아남는다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은 일이다. 3루는 대체로 Retention Rate (어설픈 번역으로 포지션 유지률? 정도로 해두자) 이 낮은 포지션인데, 1989-2008년까지 20년간의 드래프트에서 Top 100 안에 뽑혔던 고졸 3루수들 중 47%만이 3루수로 빅 리그에 안착했으며, 대졸 3루수의 경우에도 Retention Rate은 60%가 채 되지를 않는다. 많은 경우에 그들은 1루수나 좌익수 등으로 포지션을 바꿔야했다 (Alex Gordon, Ryan Braun, Jason Giambi, Mark Teixeira 등.) Scott Rolen처럼 고졸 3루수로 드래프트되어 3루수로 데뷔하고 은퇴할 때까지 3루수로 뛰는 경우는, Rolen 정도의 클래스가 아니더라고 해도 대단히 드물다고 할 수 있다.
***참고로 이 드래프트에서도 Cardinals는 Low Ceiling/High Floor 대학 출신 우완 Alan Benes를 뽑아갔다. 강산이 정말 두 번 변했을까?
1997-2001: Phillies 의 꿈과 희망
1996년 7월 31일, AAA레벨의 Scranton에서 뛰던 Rolen은 당장 Philadelphia로 내려오라는 "The Call"을 받는다. Cardinals와의 경기가 우천으로 취소되고 다음 날 더블헤더가 잡힌 것이었다. Rolen은 기쁨에 겨워 급히 부모님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하필 이 때 Rolen의 부모님은 여름방학을 맞아 멀리 Florida의 아들네 (Rolen의 형) 집에 가 있었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Rolen의 어머니 Linda Rolen은 비행기 공포증이 있어서 못 타신다고 한다. 콜업 소식을 들은 Rolen의 부모님은 아들의 데뷔전을 보기 위해 Sarasota 부터 Philadelphia까지 1100마일의 거리를 운전을 해서 올라갔다. Rolen의 부모님은 밤새도록 달렸으나 결국 당신 아들 Scottie가 주전 3루수이자 6번타자로 데뷔전을 가지는 모습을 보지는 못했으며, 4회말 Cardinals의 투수 Donovan Osborne을 상대로 2루타를 때려내며 첫 안타를 신고하는 모습도 달리는 차 안에서 라디오 중계로 들으며 눈물을 훔쳤다고 한다. (다행히 이 날 경기가 더블헤더라서 이들이 도착한 이후 2차전은 직접 관람했다고 한다.)
이후 Rolen은 꾸준히 기회를 받으면서 더 이상 AAA로 내려가지 않았다. 데뷔 한 지 1달이 가 넘은 1996년 9월 7일, Rolen은 Cubs 투수 Steve Trachsel 의 공에 맞아 팔을 부러지는 바람에 시즌이 끝나버렸는데, 공교롭게도 Rolen이 다친 타석은 "신인 자격 유지"의 마지노선인 130번째 At Bat 이었다. 즉, 다치지 않았더라면 Rolen은 131번째 타석을 갖게 되면서 신인 자격을 상실, 이듬해 Rookie of the Year 투표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게 되었을 것이다. (만약 그랬더라면 아마도 Matt Morris가 신인상을 타지 않았을까 하는 게 필자의 사족이다.)
이후 Rolen의 Phillies 생활은 탄탄대로였다. 1997시즌 새로 부임한 젊은 감독 Terry Francona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스프링 트레이닝부터 Rolen을 주전 3루수로 낙점했다 (사실 기존 3루수 Zeile이 Orioles로 트레이드 됬을 때부터 이 자리는 Rolen의 것이었다). 개막전에서는 6번타자였으나 한 달 후 이미 Rolen은 클린업에 들어가 있었다. 1997시즌 그는 21홈런 92타점 wRC+ 121, OPS .857의 화려한 성적을 거둔 뒤 1위표 14장을 모두 획득하며 만장일치 신인상을 거머쥐었다. 이제 갓 루키시즌을 마친 이 젊은 3루수에게 Phillies는 4년간 10M짜리 계약을 안겨주며 미래를 약속했고, Rolen 역시 그에 상응하는 디스카운트로 훈훈한 계약을 성사시켰다.
그저 장밋빛으로만 보이는 Rolen의 Phillies 시절 성적
Year | Age | Tm | G | PA | AB | R | H | 2B | 3B | HR | RBI | SB | CS | BB | SO | BA | OBP | SLG | OPS | OPS+ |
---|
1996 | 21 | PHI | 37 | 146 | 130 | 10 | 33 | 7 | 0 | 4 | 18 | 0 | 2 | 13 | 27 | .254 | .322 | .400 | .722 | 90 |
1997 | 22 | PHI | 156 | 657 | 561 | 93 | 159 | 35 | 3 | 21 | 92 | 16 | 6 | 76 | 138 | .283 | .377 | .469 | .846 | 121 |
1998 | 23 | PHI | 160 | 711 | 601 | 120 | 174 | 45 | 4 | 31 | 110 | 14 | 7 | 93 | 141 | .290 | .391 | .532 | .923 | 139 |
1999 | 24 | PHI | 112 | 497 | 421 | 74 | 113 | 28 | 1 | 26 | 77 | 12 | 2 | 67 | 114 | .268 | .368 | .525 | .893 | 120 |
2000 | 25 | PHI | 128 | 541 | 483 | 88 | 144 | 32 | 6 | 26 | 89 | 8 | 1 | 51 | 99 | .298 | .370 | .551 | .920 | 129 |
2001 | 26 | PHI | 151 | 653 | 554 | 96 | 160 | 39 | 1 | 25 | 107 | 16 | 5 | 74 | 127 | .289 | .378 | .498 | .876 | 127 |
2002 | 27 | PHI | 100 | 438 | 375 | 52 | 97 | 21 | 4 | 17 | 66 | 5 | 2 | 52 | 68 | .259 | .358 | .472 | .830 | 123 |
PHI (7 yrs) | 844 | 3643 | 3125 | 533 | 880 | 207 | 19 | 150 | 559 | 71 | 25 | 426 | 714 | .282 | .373 | .504 | .877 | 126 |
Rolen의 Phillies 시절은 언뜻보면 그저 장밋빛이었다. 2년차이던 1998시즌에는 31홈런 110타점으로 팀의 간판 타자가 되었음은 물론이고, 커리어 첫 골드 글러브 수상 및 MVP 득표에 성공했다. 1999시즌에는 등 부상으로 50경기를 결장하는 Down Year를 보내는 와중에도 26개의 홈런과 .893의 OPS를 유지했다. 이듬해인 2000시즌에는 다시 골드 글러브를 수상했으며, 2001년에는 다시 100타점 고지를 밟으며 MVP 투표에도 처음으로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이미 2001시즌 무렵, 훈훈하기만 해보였던 Rolen과 Phillies의 사이의 갈등은 이미 상당히 곪아있었는데, 이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2001시즌: Phillies/Bowa 와의 갈등
Phillies에서의 Scott Rolen은 팀의 현재이자 미래, 그 자체였다. 그는 타석에서 뛰어난 클러치 능력을 발휘했으며, 굉장히 빠른 배트스피드로 많은 라인드라이브 타구들을 양산해냈다. 수비에서는 역대 3루수들 중 가히 최고라고 할만한 Range와 어깨, 그리고 수년간의 농구를 통해 몸에 배어버린 뛰어난 Pivot 능력과 위치선정 센스가 있었다. 특히 그는 오른쪽 방향 움직임이 워낙 빠르고 기민해서 유격수쪽으로 남들보다 더 치우쳐서 수비해도 다른 3루수들보다 더 많은 그라운드를 커버했고, 타구에 대한 빠른 리액션과 정확한 First Step에 관해서 Rolen은 타의추종을 불허했다. 클럽하우스에서 리더 역할이 익숙했던 Rolen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Phillies의 리더로 부상했다. 90년대 후반 Phillies에게 Scott Rolen이란 Braves에게 Chipper Jones가 가지는 의미, 혹은 Mets에게 David Wright가 가지는 의미와 비슷했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Phillies 와 Rolen에게 Bobby Cox와 같은 감독이 없었다는 점이다.
"Defensively, he is a shortstop playing third base. He compares favorably to Mike Schmidt at a similar stage in development, and gets to balls that Brooks Robinson never dreamed of reaching. "
-Scouting Report 2002, on Rolen's Defense
Rolen에게 첫 감독이었던 Terry Francona는 젊고 유능했지만 감독 경험이 일천했고, Phillies처럼 문제가 많은 팀을 맡아서 단기간에 성적을 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1999시즌에 허접한 투수진에도 불구하고 (팀 FIP 5.05) 타선에 새 얼굴들이 등장하며 무려 77승이나 해냈던 Francona는 결국 2000시즌 Fluke였던 선수들이 제 기량을 찾고 주축 멤버들이 부상에 신음한 끝에 97패를 안고 해고되었다. 오프시즌에 제대로 된 마운드 보강은 하지도 않고 쓸데없이 기대치만 높아져있는 구단 수뇌부는 시즌 중반에 Curt Schilling, Rico Brogna 등을 트레이드 해버리면서 시즌을 포기했다. Rolen은 97패라고 적힌 팀 성적표보다 시즌을 이렇게 포기해버리고 키 플레이어들을 팔아버리는 Phillies 의 운영방침이 실망스러웠다.
새로 부임한 Larry Bowa는 Scott Rolen와 "물과 기름" 처럼 다른 성격의 사람이었기에 처음부터 팀의 리더인 Rolen과의 관계가 껄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Bowa는 야구가 없으면 못사는 천생 야구인인데다가 야구 역사, 야구 기본기에 대해 상당히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고, 야구 말고도 다른 스포츠에서 월등했던 Rolen에게 야구는 생계 수단의 일환일 뿐, 야구를 하지 않을 때는 농구나 골프로 소일했다. 대도시 Philadelphia에서 선수생활을 오래한 Bowa는 다혈질에다가 거침없는 성격이었고, Mid-West 출신의 Rolen은 화려함을 자제하는 행동들이 몸에 배어있었다.
실수나 패배에 대해 굉장히 야박하게 질책했던 Bowa는 선수단을 전혀 장악하지 못했는데, 전반적인 선수들 사이에서의 여론은 "Bowa는 경기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기본기에 빠삭하나, 내가 감독이라면 저렇게 선수들을 대하지 않았을 것" 이라는 비판적인 의견이 대다수였다. 한 Phillies 선수는 인터뷰에서 Bowa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He can manage. He knows baseball. But if we win, it will be just to spite him. Everybody hates him that much." 이는 선수들의 큰 형같은 스타일로 인기가 많았으나 정작 성적을 못내던 전관 Terry Francona와 정반대의 모습이다.
2001시즌, Bowa는 시즌 초반 중심타선의 Abreu와 Rolen이 부진하자 "These guys are killing us" 라며 비난했고, 이에 Rolen도 지지 않고 대들었다. 둘은 6월 Tampa 원정에서 말다툼을 벌였고, 이후 Phillies가 홈스탠드를 위해 필라델피아로 돌아왔을 때 관중들은 Rolen에게 야유를 퍼부었다. Phillies 팬들은 팀이 잘 나갈때나 못 나갈때나 야유에 있어서는 어디 가서 꿀리지 않는 관중들 아니던가. 이후 시즌 내내 Rolen의 타율이 떨어질 때마다 Phillies 팬들은 서슴없이 야유를 던졌다.
2001년 8월, Larry Bowa와의 갈등이 있는 와중에 프론트 오피스의 임원급이자 단장 Ed Wade의 Senior 보좌관이었단 Dallas Green이 지역 라디오에 나가서 "Rolen은 그저 그런(So-so) 선수이며, 특히 그의 성격 (Personality) 때문에 스타가 되기 힘들 것" 이라며 친Bowa 발언을 서슴없이 던졌다. 이후 필라델피아 지역 언론의 Beat writer들이 Dallas Green에게 발언을 확인해달라고 하자, Green은 "내가 말한 그대로" 라며 시큰둥하게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Rolen을 이를 듣고 분개했으며, 곧장 Dodgers와의 시리즈에서 11타수 8안타 1홈런으로 맹타를 친 뒤 인터뷰에서 Green의 발언을 빗대 ""I thought I had a so-so series" 라고 받아쳤다.
재미있는 것은 선수시절 Bowa 본인도 Rolen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Phillies에서 데뷔 후 12년간 주전 유격수로 뛰었던 Bowa는 1980년 자기 팀 경기가 시작하기 전에 본인의 라디오 쇼를 직접 방송하며 대놓고 청취자들에게 감독과 동료 선수들은 물론 팬들까지도 Worst Fans in Baseball이라며 질책했었던 바 있다. 이 당시 Bowa가 그렇게도 까대던 Phillies 감독은 다름아닌 Dallas Green이었으며, Bowa를 필두로 한 Phillies 팀은 Green에 대한 불만와 반발심으로 똘똘 뭉쳐 결국 1980년 WS에서 Royals를 꺾고 우승한 바 있다. 이 당시 Dallas Green은 선수단에게 Bowa와 흡사한 이유로 민심을 잃고 있었는데, 21년 후 각자 다른 위치에서 같은 역사를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 내에서 탑 5에 드는 빅 마켓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Montreal Expos와 크게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팀을 운영하는 모습에 Rolen은 "이 팀이 과연 우승할 생각이 있는 것인가" 하는 류의 발언을 공석에서 하기 시작했다. 2001시즌이 끝난 후, Phillies는 Rolen과의 장기계약을 1순위 과제로 삼고 오프시즌에 들어갔으나 Rolen이 11월에 Phillies의 재계약 협상을 일방적으로 중단하면서 양측의 인연은 슬슬 막바지로 치달았다. Rolen은 2002년 1월에 Phillies와 8.6M짜리 1년 계약을 맺었으며, 2002시즌이 끝나고 나면 FA가 될 것을 선언했다. 그는 또한 "Phillies와 재계약 할 가능성도 있긴 하지만, 그들이 정말 우승에 관심이 있는지 행동으로 보여줘야할 것" 이라고 말했다. 자린고비 구단으로 보여서 대외 이미지가 나빠질까 우려한 Phillies측에서는 급히 "Rolen에게 우리가 10년간 140M짜리 계약을 오퍼했으나 Rolen이 싫다고 한 것임" 이라며 보도 자료를 내고 그들이 간판 스타를 잡기 위해 얼마를 투자할 "뻔" 했는지를 과시했다. Rolen은 이에 "오퍼는 감사하지만 This is about winning, not money" 라면서 틀어진 마음을 굽히지 않았다.
Phillies 리빌딩의 타이밍도 Rolen에게는 큰 걸림돌이었다. Rolen이 팀 중심에 서게된 1998시즌부터 필리스에는 젊은 야수들이 하나 둘 등장하기 시작했다. Cubs에서 데려온 Doug Glanville은 마치 보급형 Kenny Lofton 처럼 쏠쏠한 리드오프로 활약해주었고, Astros에서 데려온 Bobby Abreu는 1998년을 기점으로 주전으로 발탁, 그의 길고 긴 커리어를 시작했다. Rolen과 팜에서 같이 올라온 포수 Mike Lieberthal과 Rico Brogna는 모두 리그에서 어느 정도 인정을 받은 선수들이었으며, 대학야구에서 받을 상은 다 받고 올라온 "Pat the Bat" Burrell 까지 승격되 상당히 괜찮은 타선을 구축했었다. 반면 Curt Schilling을 제외하고는 도저히 믿을 구석이 없던 마운드는 답이 없었다. 1997년 Phillies의 팀 ERA는 4.87 에 달했고 (타고투저 시대였다는 점을 감안해도), 이후 2000시즌까지 이 수치는 4.64 --> 4.93 --> 4.79 로 전혀 개선이 되질 않았다. (1997-2001년까지 5년간 Phillies 평균 팀 ERA는 4.68로, 같은 기간 더 안 좋았던 NL 팀은 Pre-Humider 시대의 Rockies와 Cubs 뿐이었다)
즉시전력감 투수라고는 팜을 갓 졸업하고 올라온 Randy Wolf가 고작인 상황에서, Phillies는 투수 보강에 돈을 썼어야 했다. 그러나 당시 Phillies는 2004시즌 Citizens Bank Park 개장을 앞두고 모든 전력 보강을 2004년에 포커스를 맞춘 상황에서 하고 있었다. 아직 어린 Bobby Abreu와 장기 계약을 맺고, 팜에서 자란 자체생산 포수 Mike Lieberthal과 연장계약을 맺은 것, 1998년 드래프트 전체 1번 Pat Burrell과 1996년 2라운더였던 Jimmy Rollins, 1995년 2라운더였던 Marlon Anderson을 차세대 코어 플레이어로 낙점하고 키운 것 모두 2004년을 염두에 두고 진행한 움직임이었다. 자체 생산한 Burrell, Rollins, Marlon Anderson 등이 ML레벨에 무사히 안착한다면 Scott Rolen과 함께 리그에서 가장 경쟁력있고 젊은 내야진을 꾸릴 수 있었을 것이며, 이들은 Abreu-Glanville-Lieberthal 등과 함께 상당히 짜임새있는 타선을 구축한다...적어도 이것이 Phillies 단장 Ed Wade가 그린 "2004년 새 구장 개장에 맞춘 Phillies 리빌딩 프로젝트" 의 청사진이었다. 1996년에 루키 시즌을 치른 Rolen으로써는 데뷔 9년차가 되는 2004년에 비로소 팀이 포스트시즌에 도전할 것이라는 명제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Rolen이 저렇게 대놓고 FA가 될 것을 선언하고, 팀의 장기 계약 오퍼를 거절하자 Phillies는 갑자기 급해졌고, Boston에서 열린 윈터미팅에서 Rolen 세일에 들어갔다. 그러나 FA 전 마지막 시즌을 보내고 있던 선수에게 유망주를 마구 퍼줄 팀들은 없었다.
스프링 트레이닝 첫 날, 무성한 트레이드 소문과 구단과의 공개적인 관계 악화 때문에 Rolen은 지역 언론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인터뷰 대상이었다. Phillies 측의 10년간 140M 계약 오퍼를 거절했다는 소문을 확인해주길 바라자, Rolen은 "I am an idiot (for not accepting the offer)" 라면서, Phillies 구단 운영 방침을 무려 45분동안 비난했다. Rolen의 의도는 (1) 사실 140M이라는 거액을 거절하는 바보가 어디 있겠는가, (2) 그러나 나에게는 돈보다 승리가 중요하다 (3) 나에게 돈을 퍼주느라 다른 선수들을 영입하지 못한다면 이 팀은 절대 이길 수가 없다 는 식의, 상당히 설득력있고 공감가는 말이었다. 비슷한 예로, Oakland의 Jason Giambi 역시 A's에 잔류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되면 팀의 넉넉치 못한 주머니 사정상 Competitive 한 로스터를 유지할 수가 없게 되고, 그래서 Giambi는 Yankees를 선택한 바 있지 않던가.
이 일이 있고 며칠 후, Larry Bowa는 Rolen에게 다가가 쓴 소리를 했는데, 하필 이 대화가 언론에게 노출된 상황에서 벌어졌다. Bowa는 말다툼 이후 Ed Wade 당시 필라델피아 단장에게 찾아가 Rolen을 트레이드 해버리라고 말했는데, 이는 요즘같애선 참으로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이 이후 Rolen의 트레이드는 사실상 시간문제였는데, 그에 개의치않고 Rolen은 잔부상 없이 거의 모든 경기를 출장하고 전반기에만 17홈런을 쏘아올리며 첫 올스타에 선정, 자기 할 일을 했다.
"I don't think I can put a time frame on falling in love with St. Louis. I fell in love with St. Louis probably when I was 7 years old and Mom and Dad brought us here to a ballgame and I got to watch Tommy Herr and Ozzie Smith and Willie McGee and everybody like that.''
-Scott Rolen, on his trade to St. Louis-
2002년: Play Like a Cardinal
2002시즌 Cardinals는 에이스 Darryl Kile의 갑작스런 죽음에 흔들리지 않고 탄탄한 전력을 앞세워 순항하고 있었다. 트레이드 데드라인을 앞둔 7월 28일까지만 해도 Cardinals는 58승 44패 승률 .569로 NL Central 1위를 달리고 있었으며, 2위 Reds와는 5게임, 3위 Astros와는 6게임 차이였다. 트레이드를 통해 전력 보강을 꾀한다면 오히려 투수 쪽 보강이 절실했다. 당시 Woody Williams가 7월 초 부상을 당하면서 결장이 불가피했고, Kile의 비보 이후 Jason Simontacchi라는 그다지 검증안된 신인에게 지나치게 많은 이닝이 돌아가고 있던 참이었다. Jocketty가 7월 19일에 Chuck Finley를 수혈해오면서 (왠지 이 Move는 2009년 Jake Westbrook 영입과 굉장히 흡사하다) Cardinals의 트레이드 데드라인은 그렇게 넘어갈 듯 보였다.
그러나 Jocketty는 많은 이들의 예상을 뒤엎고 기존 3루수 Polanco에 뜬금 노히터로 주가에 거품이 껴있던 좌완투수 Bud Smith, 그리고 베테랑 릴리버 Mike Timlin을 사용한 패키지로 Phillies와의 인연이 다한 Scott Rolen을 데려오는 강수를 둔다. Jocketty 특유의 뚝심과 배짱, 그리고 적절한 공격성이 돋보이는 이 트레이드 소식에 Marlins 원정을 가고 있던 Cardinals 선수단은 비행기 안에서 환호성을 질렀다고 한다. 이쯤에서 주인장님의 Walt Jocketty 시리즈에 나온 코멘트를 잠깐 돌이켜보도록 하자.
"이 시즌 Jocketty는 정말 올인의 끝을 보여 주는 것 같다. Kile에게 월드시리즈 우승을 헌정하고 싶었던 것일까? Jocketty는 트레이드 마감시한을 앞두고 Scott Rolen을 영입하는 승부수를 던졌는데, 이게 또 훌륭한 트레이드가 되었다. Rolen은 공수에서 눈부신 활약을 하여 남은 두 달 동안 무려 3.3 WAR을 쌓았다. 한편, Phillies의 입장에서는 Bud Smith가 폭망해 버렸으나, Polanco가 상당히 우수한 3루수로 성장하여 그럭저럭 선방한 트레이드가 되었다. (이후 5년간 Rolen은 25 WAR, Polanco는 19 WAR을 기록하였다. 여기에 둘의 연봉 차이까지 감안하면 Phillies도 밑진 것이 별로 없을 정도이다.)
-FreeRedbird, on Scott Rolen trade
Rolen이 Cardinals 유니폼을 입은 후 첫 40타수에서 고작 6안타에 그치고 Cardinals가 7연패에 빠지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으나, 이는 그저 "동트기 전 고요함" 에 불과했다. Rolen은 이후 후반기 남은 48경기에서 홈런 14개에 40타점을 쏘아올리며 31홈런 110타점으로 시즌을 마무리했고, 개인 통산 4번째 골드 글러브 수상과 첫 실버 슬러거 수상에 성공했다. 조금 터질만 하면 DL에 오르면서 감질만 나게 하는 J.D. Drew 에게 조금 지쳐가던 이 팀은 Rolen의 합류로 파괴력이 어마어마한 중심타선을 갖게 되었다. Rolen 영입이 확정된 7월말 이후 Cardinals가 올린 성적은 39승 21패에 승률 .658로, 이 기간 동안 Cardinals보다 좋은 성적을 올린 팀은 없었다.
공격에서 Rolen은 Phillies에서의 마지막 2년간 잦은 등 부상으로 배트 스피드가 나이에 비해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고, 이 때문에 몸쪽 패스트볼 승부에 약한 모습을 노출한 바 있었다. 그러나 St. Louis 로 이적한 후 플레이트에서 살짝 떨어져서 스윙 각도를 바꾸었는데, 교정 후 다시 배트 스피드를 회복하면서 좌우 가리지않고 강한 타구들을 양산해내기 시작했다. 또한 인조잔디를 깔아놓은 Veterans Stadium에서 천연잔디 구장인 Busch로 넘어온 것은 3루에서 High-intensity 플레이들을 많이 만들어내는 Rolen의 커리어에 대단히 긍정적인 변화였다.
기존 3루수 Polanco도 당시 수비가 나쁜 선수가 아니었으나, Rolen의 3루 수비는 차원이 달랐다. 당시 유격수 Renteria는 Rolen의 수비에 대해 "The guy can cover third AND shortstop" 이라며 혀를 내둘렀는데, Rolen의 Range는 Renteria가 2루 쪽으로 조금 더 붙어서 수비할 수 있도록 만들었고, Up-the-middle 식의 2-유간 빠지는 타구들을 Renteria가 더 쉽게 걷어내도록 해주었다. Renteria 덕에 2루수 Vina 역시 1루 쪽으로 조금 더 붙어서 수비할 수 있었다. Rolen 한 명의 가세로 내야 전체가 혜택을 받는 이러한 모습은 Terry Gopert 코치가 가르치던 Jasper High School 때와 다를 바가 없었다.
2002시즌, Rolen은 그토록 기다리던 포스트시즌에 올라갔고, 디비전 시리즈 1차전에서 곧 HOF에 올라가실 D-Backs의 장신 좌완투수를 상대로 투런 홈런을 치며 기세등등했다. 그리고 2차전, 1:0로 앞선 7회말 2사 1,2루에서 D-Backs의 Junior Spivey가 3루 쪽으로 땅볼을 굴렸다. 하필 풀 카운트에서 나온 인플레이 타구였기에 2루 주자 Alex Cintron은 진작에 스타트를 끊은 상태였다. 타구 처리중이었던 Rolen에게 Cintron이 충돌했고, 이 과정에서 Rolen은 왼쪽 어깨가 나가버리고 만다. Rolen 왼쪽 어깨의 수난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순간이다.
이렇게 Rolen의 첫 포스트시즌은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끝나버렸다. Rolen이 없이 NLCS로 올라간 Cardinals는 할 수 없이 유틸리티맨 Miguel Cairo를 3루에 투입하거나 때론 Pujols를 3루에 넣으면서 버텼고, 특히 Cairo는 NLCS 1차전에서 투런 홈런 포함 3타점을 치는 대활약을 포함해 이 시리즈에서 13타수 5안타를 기록했다. 그러나 결국 2002시즌 Cardinals는 결국 NLCS에서 Giants에게 무릎을 꿇는데, 이 시리즈의 허망함에 대해서는 예전에도 자주 이야기한 바가 있으니 참도록 하겠다.
""I told him once, my happiest day would be if there's a game where 27 groundballs get to third base. The way he plays that position, the way he runs the bases, the way he takes his at-bats, he is a complete player.''
- Tony La Russa, on Rolen's defensive prowess
오프시즌에 Jocketty는 Rolen에게 8년간 90M의 대형 계약을 안겨주었는데, 이는 여전히 Reasonable Spending으로 기억되는 무브이다. Rolen는 계약 첫 해가 28세 시즌이었고, 이미 리그 최고 3루수로 등극한 선수의 28~35세 시즌을 AAV 12M도 안되는 가격에 쓸 수 있다면 요즘 시세에서는 염가봉사였겠지만, 12년 전 당시 총 페이롤 75M선을 지키고 있던 Cardinals 입장에서 이는 크게 지갑을 연 것이었다. Rolen이 유년기부터 Cardinals/Reds 팬으로 자랐다는 사실은 익히 잘 알려져있는데, 때문에 Rolen은 어느 정도 검증된 전력을 구축한 컨텐더 팀이었던 Cardinals 잔류에 이미 마음이 기운 상태였고, NTC와 5M짜리 사이닝 보너스까지 포함된 이 계약을 따낸 뒤 흡족해했다. 트레이드로 데려온 뒤 장기 계약으로 묶어놓는 전형적인 Jocketty 식 영입으로, McGwire-Edmonds-Rolen의 뒤를 훗날 Holliday가 잇게 된다.
"We are very excited that we were able to work out a new contract with Scott. In the short time he has been in St. Louis, our fans have really come to appreciate the talent that he brings to our club. Scott is a proven run producer and one of the best defensive players in the game. He will be a great cornerstone for our organization for years to come."
-Walt Jocketty, on signing long term contract with Rolen
2004년: MV3
등 부상에서 회복되어 건강하게 시즌을 시작한 Rolen은 정규시즌 초반부터 정규시즌 막판 부상자 명단에 오를 때까지 거의 계속 리그 타점 선두를 유지했으며, 전반기를 무려 .330 18홈런 80타점이라는 말도 안되는 기록으로 마치며 올스타전 최다 득표의 영예를 누렸다. Rolen은 9월초에 왼쪽 종아리에 타박상을 입어서 전력질주를 못하게 되는 부상을 입었는데, 워낙 2위팀과 경기차이가 많이 났기에 La Russa는 Rolen을 주저없이 쉬게 해주었다. 이미 트레이드 데드라인을 앞두고 Jocketty가 Larry Walker를 데려오는 또 한번의 강수를 두었었기에 팀 공격은 Rolen 없이도 활화산처럼 돌아갔다.
다만 전반기에 미친듯이 쌓던 타점 페이스가 부상으로 인해 뚝 떨어진 점이 아쉬운데, 이 시즌 Rolen은 만루에서 .583의 타율을 포함해 득점권 타율 리그 3위를 기록했으며, 넉넉히 140타점을 바라볼 수 있는 페이스였다. 건강하게 시즌을 마치고 타점 1위 타이틀을 놓치지 않았다면 이미 리그 내에서 소문난 Rolen의 수비를 고려했을 때 Beltre보다는 더 득표하지 않았을까?
2004년 MVP 투표 - MV3의 위용인가 Bonds의 위용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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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nk | | Tm | Vote Pts | 1st Place | Share | WAR | G | AB | R | H | HR | RBI | SB | BB | BA | OBP | SLG | OP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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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Barry Bonds | SFG | 407.0 | 24.0 | 91% | 10.6 | 147 | 373 | 129 | 135 | 45 | 101 | 6 | 232 | .362 | .609 | .812 | 1.422 |
2 | Adrian Beltre | LAD | 311.0 | 6.0 | 69% | 9.6 | 156 | 598 | 104 | 200 | 48 | 121 | 7 | 53 | .334 | .388 | .629 | 1.017 |
3 | Albert Pujols | STL | 247.0 | 1.0 | 55% | 8.4 | 154 | 592 | 133 | 196 | 46 | 123 | 5 | 84 | .331 | .415 | .657 | 1.072 |
4 | Scott Rolen | STL | 226.0 | 1.0 | 50% | 9.1 | 142 | 500 | 109 | 157 | 34 | 124 | 4 | 72 | .314 | .409 | .598 | 1.007 |
5 | Jim Edmonds | STL | 160.0 | 0.0 | 36% | 7.1 | 153 | 498 | 102 | 150 | 42 | 111 | 8 | 101 | .301 | .418 | .643 | 1.061 |
2004년 Dodgers와의 NLDS에서 Rolen이 12타수 무안타로 부진하자 언론은 정규시즌 막판 입은 종아리 부상과 타격 슬럼프를 연결시켰는데, 그 때마다 Rolen은 "부상과 상관없다. 그냥 내가 못 친 것" 이라며 자책했다. Sox와의 World Series에서 Rolen이 15타수 무안타로 부진했을 때도 같은 반응이었다. Rolen은 핑계를 대는 선수가 아니었다.
2004년 NLCS는 디비전 라이벌 Astros와 7차전까지 가는 혈투를 벌였던 명승부로, Astros의 몰락으로 어느 순간 사라져버린 2000년대초 Cards-Astros 라이벌리의 최고점이라고 감히 부를 수 있는 시리즈였다. 비록 Cards 팬이었지만 이 시리즈의 포인트는 MV3를 필두로 쉬어갈 틈이 없는 정규시즌 105승짜리 타선의 위엄을 가을 본즈 Beltran 과 당시 Berkman 두명이 상대하는 듯 한 모습이었다. 특히 Beltran은 유비 관우 장비를 동시에 상대하며 창 쓰는 법이 가지런했다는 여포를 연상시키는 모습이었고, Berkman 역시 변방의 마초 쯤 되는 느낌이었다.
Rolen은 이 포스트시즌에서 팬들에게 극단적으로 다른 인상을 남겼다. Dodgers와의 포스트4경기 18타석에서 한 개의 안타도 치지 못하면서 부상 의혹을 받았었다가, Astros와의 NLCS에서 비로소 명예회복을 했다. 그는 2차전에서 혼자 홈런 2개를 치면서 승리를 이끌었고, 7차전에서 6회 Pujols가 동점 2루타를 치면서 분위기를 끌어올리자 곧바로 좌측 라인드라이브성 홈런을 꽂으면서 Clemens를 넉다운시켰다. (링크) 그러나 월드시리즈가 시작되자 Red Sox 투수들에게 4경기 15타수 무안타로 꽁꽁 묶이면서 결국 무기력한 모습으로 시즌을 마무리했는데, 정규시즌 내내 MVP 페이스로 시즌을 보낸 선수의 커리어 하이 시즌으로는 조금 억울한 면도 없지않다.
2005-2006: 우승과 바꾼 부상
커리어 하이 시즌을 뒤로 하고 시즌을 시작한 Rolen은 5월 10일 Dodgers전에서 훗날 커리어의 반환점이 되고 마는 부상을 당한다. 투수 땅볼을 치고 1루로 냅다 뛰기 시작했는데, 투수 Scott Erickson의 악송구를 잡기 위해 1루 선상으로 나와있던 Dodgers 1루수 최희섭과 부딪친 것이다. 이것으로 어깨가 탈골되어 DL에 등재된 Rolen은 어깨 수술을 받은지 한 달후인 6월 18일에 복귀했으나 공격과 수비에서 모두 정상이 아니었다. 26경기에서 홈런없이 8타점에 .207/.293/.264에 그치며, Full Range of Motion을 회복하지 못했다고 하소연했다.
부상 기간 도중 MRI 촬영 결과 Torn Labrum을 발견했는데, Rolen은 재활을 하면서 시즌 막판 복귀를 노리느니 차라리 수술을 받고 내년 시즌을 기약하기로 한다. 2010년까지 계약이 되어 있던 Rolen의 장기적 건강을 Cardinals에게도 굉장히 중요한 문제였으며, Rolen의 시즌은 7월 21일자로 마감되었다.
8월 중순에 수술을 받은 Rolen은 6개월간의 회복 및 재활을 거치고 스프링 트레이닝에 모습을 드러냈고, 건강을 되찾자 그의 생산성도 돌아왔다. 그는 시즌 내내 허접한 마운드와 주축 선수들의 부상으로 고생하던 와중에 142게임에서 22홈런 95타점 wRC+ 126을 기록했고, Cardinals 유니폼을 입고 마지막으로 골드 글러브와 올스타 선정의 영예를 누린다. 이 해에 Rolen은 7월 초까지만해도 OPS 10할에 육박하는 성적을 기록하는 페이스를 기록하며 전반기를 14홈런 49타점 .331로 마쳤으나, 후반기 들어서 페이스가 급격히 떨어지며 타율 .253에 그쳤다. 특히 이 시즌 나온 홈런 22개 중 19개가 당겨친 것이었을만큼 밀어치는 타구의 비거리가 현저히 감소하기 시작했는데, 이 현상은 자연스러운 Decline이라기보단 2005년 어깨 부상으로 배팅 스피드가 떨어진 탓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며, Matt Kemp도 올 시즌 비슷한 증상을 보인 바 있다.
"There have been times where he’ll make one of those great plays and I’ll just be standing there staring. Then I’ll see the other guys running off the field because there are three outs.”
-Jim Edmonds, on Rolen's defense
Cardinals/TLR과의 갈등
2007시즌이 끝나고 Cardinals가 TLR과의 2년 연장 계약을 체결하자, Rolen은 당시 단장 대행직을 맡고 있던 Mozeliak에게 트레이드를 해줄 것을 요청한다. 지난 시즌부터 어긋났던 TLR과의 불화가 수면에 올라온 것이다. Mozeliak은 "조건이 맞지 않으면 트레이드 하지 않을 것" 이라고 말했으나 Rolen과의 이별은 TLR과의 연장 계약으로 이미 기정사실화 된 것이었다. 팀이 잘 나가고 Rolen이 건강하던 2005년까지는 별 무리없이 두 사람의 불편한 동거가 유지가 되었으나, 팀 전력이 약해지고 Rolen이 부상으로 기량이 쇠퇴해지자 양측은 자주 충돌하기 시작했다.
중부지구 1위 경쟁이 치열하던 2006년 9월 23일, La Russa는 Oswalt를 상대할 Astros전을 을 앞두고 9월 내내 현저하게 떨어진 페이스를 보이던 Rolen에게 휴식일을 제공했다. TLR은 경기 전 Rolen을 불러 그의 Oswalt 상대전적이 안좋다는 점과 어깨에 누적된 피로를 쉬게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들어 Rolen에게 Day-off를 주겠다는 그의 결정을 설명했다 (Oswalt는 이 시리즈에서 3차전에 등판했는데, 이미 1-2차전에서 Rolen은 7타수 무안타로 부진한 바 있었으며, 그게 아니더라도 9월달 내내 .225/.303/.393 으로 급격히 페이스가 떨어진 모습을 보였다). 막판 페넌트레이스 경기에서 제외당한 것이 불만스러웠던 4번타자 Rolen은 "Benched" 당했다며 곧장 언론에 불편한 심기를 전했고, 이 소식이 TLR의 귀에 들어가면서 양측 관계는 걷잡을 수 없이 불편해진다.
이후 어찌어찌 디비전 타이틀을 차지한 Cardinals와 Padres와의 NLDS가 시작했고, Rolen은 첫 3경기에서 11타수 1안타로 부진한다. TLR은 Rolen에게 한 마디 언질 없이 4차전 라인업에서 Rolen을 빼고 3루수로 Scott Spiezio를 선발 출장시켰는데, 이에 Rolen은 크게 자존심 상해했다. 이후 언론에서 왜 Rolen에게 미리 말해주지 않았냐고 묻자 "어차피 말해줬든 안말해줬든 그에게 만족스러운 설명을 해줄 순 없었을 텐데 무슨 차이가 있으냐" 라며 한 치도 양보하지 않겠다는 모습을 보였다. 이후 NLCS 2차전에서도 TLR은 Rolen 대신 Spiezio를 기용했는데, 하필 Spiezio가 2안타 3타점으로 펄펄 날고 Rolen은 대타로 나왔다가 무안타에 그치면서 TLR의 밉상은 (Rolen의 눈에) 극에 달했다.
"The last time in Houston I sat him down for 10 minutes and explained it to him. My explanation was worthless, so what am I going to say? The last time I talked to him it was a worthless exercise. He didn't want to hear it. He didn't believe it. He didn't understand it. I 'benched' him, which is so opposite what that conversation was about."
-Tony La Russa, on his decision not to notify Rolen
2006 WS 1차전, Rolen은 Justin Verlander의 패스트볼을 당겨서 넘기며 WS 팀 첫 득점을 자신의 홈런으로 만들어낸다. 이후 Rolen은 월드시리즈 내내 .421의 맹타를 치며 Eckstein과 함께 우승을 이끌었고, 포스트시즌에서의 침묵에 대한 어느 정도의 자존심 회복도 했다. 그러나 TLR과의 관계는 회복하기에는 너무 급격히 곪아가고 있었다.
2007시즌, Rolen은 시즌 내내 어깨 부상으로 고생하면서 커리어 로우 시즌을 보냈다. 고질적으로 아팠던 목과 등 부상은 물론 약해진 어깨까지 공수에서 Rolen은 올스타 레벨의 기량을 보여줄 수 없었다. 자연스럽게 결장이 잦아졌고, TLR과의 충돌도 많아졌다. Rolen과의 계약은 3년이 남아있던 상황이었으나 TLR은 계약 마지막 해였다. Rolen은 Cardinals 프론트의 결정을 기다렸고, 구단 측에서 TLR과 예상대로 재계약을 맺자 도저히 안되겠다는 듯 곧장 트레이드를 요청했다. 당초 St. Louis에 뼈를 묻겠다는 심정으로 NTC가 포함된 8년 계약을 했던 선수가 감독과의 불화 때문에 NTC를 풀고 트레이드를 공개적으로 요청했으니 이례적인 경우이다.
12월 7일, TLR은 인터뷰에서 "대체 무엇때문에 Unhappy하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라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고, Rolen은 TLR의 언론 인터뷰 내용들에 대해 무반응으로 일관했다. 당시 Bernie Mikslaz는 STLPD의 다른 야구 기자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TLR과 함께 Rolen 사태에 대해서 얘기했었는데, 당시 TLR의 상태에 대해 "Tony feels burned.And when he feels burned, that person usually goes." 라고 표현했다. TLR은 이후 Rolen에게 자신이 다가오는 2008시즌에 Rolen으로 부터 기대하는 모습들에 대해 편지를 써보냈고, Rolen은 이후 이적에 대한 결심을 더욱 굳혔다. 이 편지의 내용은 아직까지도 공개되지 않고 있다.
비록 2007시즌의 급격한 성적 하락이 있긴 했으나, Rolen은 아직 충분히 많은 바이어들을 유혹할만한 선수였다. 특히 Ryan Braun을 아예 좌익수로 전향시켜 3루가 시원찮은 (Bill Hall) Brewers에서도 그를 탐내했고, Dodgers에서도 그를 원했다. 2008년 1월 12일, Cards는 그나마 즉시전력 출혈이 가장 적은 조건을 제시한 Blue Jays로부터 Troy Glaus 를 받고 Rolen을 넘겨주는 맞트레이드를 단행했다. Mid-West에서 태어나고 자란 Rolen은 훗날 인터뷰에서 캐나다 팀인 Blue Jays로 이적하는 결정이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했다고 했는데, 이는 충분히 이 트레이드를 거부할 수 있었던 Rolen이 얼마나 TLR로부터 탈출하고 싶어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렇게 Rolen의 Cardinals 커리어는 대략 5년 반만에 끝이 나고 만다.
다시 보기 힘든 클래스의 3루수, Scott Rolen
Year | Age | G | PA | AB | R | H | 2B | 3B | HR | RBI | SB | CS | BB | SO | BA | OBP | SLG | OPS | OPS+ | Award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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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 27 | 55 | 229 | 205 | 37 | 57 | 8 | 4 | 14 | 44 | 3 | 2 | 20 | 34 | .278 | .354 | .561 | .915 | 139 | |
2003 | 28 | 154 | 657 | 559 | 98 | 160 | 49 | 1 | 28 | 104 | 13 | 3 | 82 | 104 | .286 | .382 | .528 | .910 | 138 | AS,GG |
2004 | 29 | 142 | 593 | 500 | 109 | 157 | 32 | 4 | 34 | 124 | 4 | 3 | 72 | 92 | .314 | .409 | .598 | 1.007 | 158 | AS,MVP-4,GG |
2005 | 30 | 56 | 223 | 196 | 28 | 46 | 12 | 1 | 5 | 28 | 1 | 2 | 25 | 28 | .235 | .323 | .383 | .706 | 84 | AS |
2006 | 31 | 142 | 594 | 521 | 94 | 154 | 48 | 1 | 22 | 95 | 7 | 4 | 56 | 69 | .296 | .369 | .518 | .887 | 126 | AS,GG |
2007 | 32 | 112 | 441 | 392 | 55 | 104 | 24 | 2 | 8 | 58 | 5 | 3 | 37 | 56 | .265 | .331 | .398 | .729 | 89 | |
STL (6 yrs) | 661 | 2737 | 2373 | 421 | 678 | 173 | 13 | 111 | 453 | 33 | 17 | 292 | 383 | .286 | .370 | .510 | .879 | 127 | |
2008-2012: Decline
트레이드 이후 Rolen은 중심타선의 Run-Producer 역할에서 벗어나 "모범적인 베테랑" 역할이자 2선으로 물러나게 되었는데, 하필이면 인조잔디 구장을 홈으로 쓰는 Blue Jays 뛰게 되면서 등, 목, 어깨 등 잔부상이 다시 그의 스윙을 방해하기 시작했다. 부상에 시달리며 115경기 출장에 그친 그는. 2009 시즌을 앞두고 홈런과 장타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철저히 라인 드라이브 생산에 집중하기 시작했는데. 2009시즌 전반기를 .320의 타율로 마감했다. 이를 기특하게 본 Reds 단장 Jocketty는 트레이드 데드라인을 앞두고 클럽하우스에서 젊은 선수들을 다독여줄 베테랑 역할을 기대하며 Rolen을 영입했고, 이는 신의 한 수가 되었다.
2010년, 믿어주는 단장 Jocketty와 베테랑을 선호하는 Baker 감독 밑에서 Rolen은 마지막 불꽃을 불태웠다. Reds의 홈 개막전에서 친정팀 Cardinals를 상대한 그는 4회 옛 동료 Chris Carpenter로부터 홈런을 때려냈고, 5월 16일에는 또 Cardinals의 Brad Penny로부터 투런홈런을 쳤다. 6월 28일에는 또다른 친정팀 Phillies의 Kyle Kendrick으로부터 통산 300홈런째를 빼앗았다.
전반기에만 무려 17홈런을 때리고 올스타전에도 나갔으며, 그의 리더십을 높이 평가한 몇몇 기자들은 MVP 투표에서 그에게 표를 행사했다. 타자에게 유리한 GABP에서 장타율 .534를 기록하며 20홈런을 채웠고, 골드 글러브도 집에 한 개 더 가져갔으니, 한 물 간 것으로 평가받던 "제2의 Mike Schmidt" 에게 어울리는 화려한 컴백 시즌이었다. 비록 이 시즌 라이벌 팀의 4번타자로 활약하긴 했으나, 마지막 불꽃을 제대로 태운 그의 2010시즌은 많은 이들의 입에 미소를 띄웠다.
왜 저를 빼셨습니까. 왜.
총평: Scott Rolen - Keeping your head down
고등학교에서 농구 인스터럭터였던 Scott의 아버지 Ed Rolen은 자식들에게 종종 "뭔가를 잘했을 때 다른 이들에게 이를 알리지 않아도 된다. 사람들은 다 안다." 라고 누차 가르쳤는데, 이는 Rolen의 행동과 모습에 고스란히 드러나있다. ("If you do something well, you don't have to tell anyone. They will know."). 그의 집안은 경제적으로 결코 어려움이 없었으나, 부모님이 모두 교육자였던 Rolen 의 집안에서는 겸손함 최선의 미덕이었다. 특유의 우직한 Work Ethic이 몸에 배어있는 Rolen은 프로에 가서도 자신의 재능에 안주하지 않고 모든 플레이에 열과 성을 다했으며, 결코 우쭐해하는 법이 없었다. Braves 에서 코치를 지낸 바 있으며 Rolen의 마이너리그 시절 감독이었던 Roy Majtyka는 이런 Rolen의 Work Ethic을 Chipper Jones와 Dale Murphy에 비교한 바 있으며, 그뿐 아니라 Rolen과 같이 뛰었던 거의 모든 선수들 및 감독들 (심지어 그와 사이가 안좋았던 사람들도) 역시 타의모범이 되는 Rolen의 성실함과 진지함을 굉장히 높이 평가했다.
Rolen이 필드에서 보여주는 모습들을 복기해보자. Rolen은 타구를 처리할 때 타구를 "Surround" 즉 몸으로 둘러싸면서 처리한다는 야구의 기본기에 누구보다도 충실했던 3루수였다. 그는 다른 3루수들은 시도도 못할 플레이를 쉽게 해낸 뒤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양 고개를 숙였다. 홈런을 친 뒤에도 Rolen은 고개를 숙인 채 거의 전력질주 하는 듯한 속도로 다이아몬드를 도는 걸로 유명했으며, 홈을 밟은 후에도 큰 세레모니 없이 바로 덕 아웃으로 직행했다. TLR이 누누히 칭찬했던 Rolen의 주루 플레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누상에서 가장 공격적이고 지능적인 주자들 중 하나였으며, 어떤 상황에서든 Extra-base를 가는 것에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멋진 슬라이딩으로 득점한 후에도 별다른 반응없이 훌훌 털어내며 다시 고개를 숙이고 덕아웃으로 들어갔다. 남들은 감히 시도하지고 못할 High-intensity 플레이들을 창조해낼 수 있는 재능이 있었으나, 그 플레이를 하는 과정에서 차오르는 아드레날린과 열정을 내적으로 삭혀버리니, 어찌보면 정말 Cardinal Way에 어울리는 선수였다. Dodgers의 한 신인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커리어 내내 두 차례나 감독과 불화가 있었다는 사실과 Phillies 시절 "Clubhouse에서 암적인 존재"로 꼽힌 바 있어서 Rolen을 마치 "클럽하우스 부적응자" 처럼 몰아가는 여론도 있었는데, 이에 대해 돌이켜보자. 정말 Rolen은 불화를 몰고 다니는 선수였을까?
위에서 언급한대로 Rolen과 Phillies 사이의 갈등에는 감독인 Larry Bowa와의 불화 외에도 Dallas Green, Phillies의 리빌딩 타이밍 등 여러가지 부수적인 요인들이 많았다. 그러나 Rolen이 Cardinals에서 트레이드 된 것은 사실 TLR과의 대립을 제외하면 딱히 이유가 없다. 비록 어느 정도 Rolen의 타격 Decline 및 부상으로 인한 쇠퇴에 대한 우려가 있긴 했으나, 여전히 Rolen은 지역 팬들 사이에서 굉장히 인기있던 선수였다. 계약의 규모와 세부 조항들에서 알 수 있다시피 Rolen은 트레이드 되는 순간부터 Cardinals에서 자신의 남은 커리어를 보낼 의지가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Mid-West 특유의 사실상 "닥치고 일단 열심히" 하자는 "Believing in Hard Work" 철학을 신봉하던 Rolen의 Work Ethic과 Hustle은 Cardinal Way 에 정말 잘 어울렸던 선수였다. 많은 동료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배팅 케이지에서의 연습 스윙 하나도 대충 하지 않았으며, 골드 글러브를 수 차례 수상한 뒤에도 땅볼 타구 처리 연습을 누구보다 많이 했다. 필드 안에서나 밖에서나 최선을 다하는 성실함, 그리고 누구에게도 꿀리지않던 재능은 그를 St. Louis에서 특히 빛날 수 있는 선수로 만들었다.
그러나 Rolen의 최대 약점은 이 성실함, 그리고 그 이면의 고집이었다. Jasper High School 시절부터 Phillies 시절까지 어느 팀에서든 기둥 역할을 하던 Rolen은 Elite Athlete 특유의 자존심에 상처를 받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으며, 경기에서 자신이 빠지는 것을 상상하기 힘들어했다. TLR은 훗날 Rolen이 2004년 월드시리즈에서의 부진을 어느 정도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으며, 포스트시즌에서 유난히 명예회복을 하고싶어 했는데, 그런 부분들이 그에게 부담으로 작용했다고 밝혔다. TLR은 Rolen이 부상으로 쇠퇴하기 이전까지는 "Rolen이 부상을 입고 뛸 때도 리그의 대부분의 다른 3루수들보다 낫다" 고 말했고, 이런 방식의 기용은 Rolen와 잘 맞았었다. 그러나 부상 이후에 TLR은 Rolen의 타석숫자를 조절하기 시작했고, 점차 마찰은 커져만갔다.
Rolen은 또한 본인에게 미디어의 관심이 쏟아지는 것을 굉장히 부담스러워 했는데, Boston에 결코 뒤지지않은 Philadelphia의 극성스런 스포츠 언론들과 팬들은 그런 의미에서 Rolen의 성격과 아주 상극이었다. 그가 St. Louis로 이적한 후 첫 면담에서 TLR은 Rolen에게 "여기는 Phillies와 다르다. 우리 라인업은 이미 강력하며, 그냥 자네는 하던대로만 쳐주면 된다. 제 스윙만 해준다면 홈런 하나도 못쳐도 상관없다." 면서 "결과"에 대한 부담감으로부터 Rolen을 자유롭게 해주었다. Phillies 시절 커리어 초반부터 팀 타선을 홀로 이끌어야했던 Rolen으로써는 반가운 변화였고, 이때만 해도 양측의 관계는 원만함을 넘어서 상당히 우호적이었다.
필자는 TLR의 매니징 스타일의 오랜 팬이지만 Scott Rolen과의 불화는 TLR의 꼰대 근성이 가장 제대로 투영된 에피소드가 아닌가 싶다. Rolen이 비록 라인업에서 빠진 것에 대해 언론에다가 불만을 표시한 것도 그다지 칭찬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자신의 권한에 불만을 가졌다는 것에 일종의 괘씸함을 느껴서 포스트시즌 라인업에서 사전에 논의 없이 혹은 일언반구의 경고도 없이 Rolen 정도의 베테랑을 제외한 것은 "포용력 부족"이다. 자신의 결정과 판단이 Question 받는 것을 극도로 못 견디는 TLR이었기에 어찌 보면 아무 일도 아닐 수 있는 사건이 (베테랑 선수가 부상/부진 때문에 라인업에서 빠져서 불만을 갖는 것이 어디 그리 드문 경우인가) 일종의 Powertrip으로 이어져버린 것이다. 훗날 Colby Rasmus의 아버지 Tony Rasmus는 Rolen을 들먹이며 TLR을 비난했는데, TLR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There was a question about if you don't get along with the manager you don't last in St. Louis. That's the most senseless thing I've ever heard. I have never in my memory seen a front office or ownership pick a manager over a productive pitcher or player. That's ridiculous."
-Tony La Russa, after Rasmus trade
오히려 Rolen 특유의 조용히 "내 할일만 하자" 성격은 그의 커리어 막판에 빛을 발했다. 트레이드 이후 Blue Jays 에서나 Reds에서나, Rolen은 팀에서 모범적인 베테랑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며 젊은 선수들에게 본보기가 되었다. 그는 클럽하우스에서 시끄럽지 않았으며, 라커룸 앞에서 주로 Steinbeck의 소설을 자주 읽었고, 땅볼을 치고도 1루로 열심히 뛰었으며, Joey Votto, Todd Frazier 를 포함한 많은 젊은 선수들은 20대선수들에게 뒤지지않은 연습량을 철저하게 소화하는 Rolen에 대한 존경을 아끼지 않았다.
"What drives me in life is to be a good person. You help each other, you help yourself, you try to be the best person you can be. That's drive enough for me. I just want to be happy. I think that's what life's about. Happiness is what drives me, not fame or fortune. With all TV interviews and some of the fame and some of the celebrity status, I guess, that goes with this game, sometimes. ... The way I look at it, if I wanted to be on TV, I'd have been an actor. But I don't want to be on TV. I want to play baseball."
-Scott Rolen-
비록 예기치못한 불협화음 때문에 모두의 바램대로 St. Louis 유니폼을 입고 은퇴하지는 않았으나, 그가 가슴에 Birds on the Bat을 달고 뛰는 동안 우리에게 좋은 기억을 많이 심어준 것은 부인할 수 없다. 6'4인치의 풋볼 Linebacker 같은 건장한 사이즈와 긴 팔, Soft Hand, 유연함으로 3루 수비의 교과서를 보여주었으며, 계약 기간 중 3년 반동안은 리그에서 가장 생산적인 타자 중 하나였다. 비록 2004 월드시리즈에서의 부진과 전반적인 포스트시즌에서의 약세, 그리고 몇 차례의 부상 때문에 명성에 흠집이 간 건 사실이나, Cardinals 유니폼을 입고 5년 반의 기간동안 OPS .879에 홈런 111개를 쳤고, 3개의 골드 글러브와 4번의 올스타를 포함해 WAR 27.4 를 적립했으며, 성실한 선수 생활을 지속하면서 반지도 하나 가져왔다. 누가 감히 Rolen에게 돌을 던질 것인가.
Rolen 트레이드 이후 Cardinals의 3루 자리에는 다음과 같은 선수들이 왔다가 또 갔다.
2008 - Troy Glaus (4.9 WAR, wRC+ 123)
2009 - Mark DeRosa / Brian Barden (0.6 WAR, wRC+ 76)
2010 - Felipe Lopez / David Freese (1.3 WAR, wRC+ 96)
2011 - David Freese / Daniel Descalso (2.8 WAR, wRC+ 106)
2012 - David Freese (4.0 WAR, wRC+ 133)
2013 - David Freese (0.3 WAR, wRC+ 106)
Did you know...
2013시즌이 끝나고 Rolen은 현재 공식 은퇴선언을 하지는 않았으나 사실상 은퇴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2013시즌을 앞두고 Rolen은 Red Sox, Yankees 등과 접촉이 있었으나, Rolen은 Reds 복귀를 원했다. 그러나 "베테랑 리더십" 을 위해 5M을 쓰기 싫었던 Reds는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였고, 결국 Jocketty가 Rolen이 스프링 트레이닝에 오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후 Rolen은 "Right now I’m simply not ready to make a commitment. I would like to leave my options open, without closing any doors..." 라는 모호한 발언을 했으나, 이후 그의 행보를 보았을 때 사실상 은퇴 쪽으로 마음이 많이 기운 듯 싶다.
Rolen은 고향 Indiana와 Florida에 집을 두고 왔다갔다 하면서 살고 있으며, IU Hoosiers의 열렬한 팬인 부모님을 위해 자기 모교도 아닌 Indiana University 야구 프로그램과 새 구장 건설을 위해 크게 한 턱 쐈다고 한다 (Major donation). 이러다가 인디애나에서 지역구 국회의원이라도 나갈 기세.
Rolen의 고향 집 앞에는 Indiana Baseball Hall of Fame 이 위치해있으며, 당연히 Indiana가 낳은 최고 야구스타 중 하나이자 1993년 Indiana Mr. Baseball 출신 Rolen도 헌액되어있다. 아직도 이 동네 고등학교 야구팀 코치는 Rolen을 가르쳤던 Terry Gopert이다.
2011년 7월 4일, Rolen은 친구 Chris Carpenter로부터 통산 2000안타째를 뽑아냈다.
2009년 8월 10일, Reds 유니폼을 입고 Busch에 들린 Rolen은 TLR 방에 먼저 찾아 들어가 인사를 건네고, 대화를 나눴다. TLR은 당시 DL에 올라있던 Rolen에 부상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며 "빨리 회복하길 바란다"며 덕담을 건넸는데, 이에 대해 많은 이들이 "TLR이 또 괜히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다" 는 식의 조소를 보낸 바 있다. 글쎄, 필자는 TLR이 정말 Rolen에게 개인적인 감정이 있었다고 생각하지는 않기에 이들의 만남을 그렇게 꼬아서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시대를 풍미한 3루수 Scott Rolen은 그렇다면 HOF에 들어갈 수 있을까? 이 부분에 대해서 다룬 많은 좋은 글들이 Fangraph나 Hardball Times에 게시되어 있는데, 수박 겉핥기 식으로 종합해보면 Rolen은 (1) 이른 은퇴, 부상 전적으로 인해 누적 스탯 (316홈런, 1211타점, 2077안타)에서는 부족하지만 (2) 통산 비율 스탯 (.281/.364/.490) 에서는 합격점을 받고 있는 이른바 "Edgar Martinez" 스타일로, 약간 부족한 명예의 전당 프로필을 압도적인 수비와 집에 남아도는 골드글러브들로 메꿔야 하는 상황이다. Rolen의 라이벌로는 Adrian Beltre가 꼽히고 있는데, 그는 비율 스탯은 딸리지만 Rolen보다 건강하고 오래 커리어를 유지한 덕에 더 나은 누적 스탯과 WAR를 찍고 은퇴할 것으로 보인다. Rolen이 명예의 전당에 가느냐 마느냐에 대한 이슈는 나중에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겠지만, 그보다는 올라간다면 과연 어떤 유니폼을 입고 올라갈 지가 더 궁금하다.
by Doov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