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siting TLR ERA [3] Matt Morris
Cardinals/Revisiting TLR ERA 2013. 1. 17. 16:45 |by Doovy
TLR ERA 시리즈 세번째 포스팅의 주인공은 Matt Morris 이다. 1997년 TLR ERA 초창기부터 10여년간 로테이션을 지켜온 Matt Morris는 비록 말년에 배팅볼러로 전락하기는 했으나 20대 시절에는 "묵직한 포심 + 장신에서 내리꽂는 커브" 조합의 전형적인 Cardinals 스타일 에이스로 군림했었다. 한창 타고투저 시절이던 90년대말~2000년대 초, Cardinals에서 한동안 볼수 없었던 리그 상위권의 Front-of-rotation starter로 제몫을 다했으며, 이후 이 계보는 Chris Carpenter-Adam Wainwright 등으로 이어져왔지만 이 중 드래프트를 통해 팀에 들어와 Cardinals 팜시스템에서만 성장한 선수는 Morris가 유일하다.
여러분들의 폭발적인 댓글 요청으로 인해서 분신술을 실시할 예정이다....는 농담이고 최대한 반영해보도록 할 것을 약속하며, 특히 Craig Paquette이나So Taguchi, Kerry Robinson 등을 묶어서 다뤄보는 이른바 "쩌리특집"과 "릴리버 모듬" 역시 생각중이다. 일단은 "포스팅 로테이션을 거르지 않고 스프링 트레이닝까지 버텨보는" 것을 목표로 삼고있으며, 옛 생각을 하시며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필자는 더 바랄 게 없다. (매 포스팅마다 스크롤 압박을 드려서 죄송하나 시리즈 특징 상 불가피할 듯 싶다)
자체 생산 에이스
Matt Morris
RHP (Starter)
DOB: 1974년 8월 9일
Birth: Middletown, NY
Time with Cardinals: 1995-2005
Draft & Minors
Morris는 1974년 Middletown, NY 출신인데, 공교롭게도 이 도시는 필자가 잠시 거주했었던 동네이며, (Upstate 뉴욕이 다 그렇긴 하지만, 좋게 말하면 Blue-collar 동네, 나쁘게 말하면 상당히 못사는 동네이며, Morris의 아버지는 철광부였다), Morris가 나온 Central Valley High School 역시 그다지 야구로 알려진 학교는 아니다. Morris는 고등학교 때 그냥 조금 잘하는 수준의 유격수였다. 어느 날 친척 결혼식에 가야 했던 Morris는 트라이아웃에 참가할 시간이 없음을 깨닫고 팀 코치에게 부탁, 공식 트라이아웃 전에 공 10개를 던지고 결혼식을 간다. 그러나 코치는 Morris에 공에 깊은 인상을 받아 그를 투수로 발탁하고,, 이게 인연이 되서 Morris는 투수로써의 삶은 시작한다. 고교 졸업 당시 6'5의 큰 키와 91마일에 이르는 빠른 공 덕분에 92년 드래프트에서 Brewers에게 26라운드 지명을 받지만, 낮은 사이닝 보너스를 쌩까고 Seton Hall University로 진학한다.
대학에 가기로 한 결정은 결과적으로 상당히 잘한 일이었다. Morris는 대학에서 선발투수로 수업을 받으며 투구폼을 가다듬었고, "기복이 있지만 구위는 좋다"는 평가속에 BA 선정 Top College Pitchers로 분류되었으며 1994년 미국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95년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전체 12픽, 대졸 투수 중에서는 3번째로 St. Louis Cardinals에 드래프트된다 (계약금 850K). 참고로 Cardinals는 1992~1996년까지 5년 연속으로 아마추어 드래프트 첫 픽을 대학 투수로 뽑았는데, 이는 90년대 초중반 투수난으로 힘겨워했던 구단 사정을 잘 보여주는 예이다. (1992년 Sean Lowe, 1993년 Alan Benes, 1994년 Bret Wagner, 1995년 Matt Morris, 1996년 Braden Looper, 이 중 Wagner는 Stottlemyre 트레이드 때 사용되었고 Looper로는 Renteria를 데려왔으니 이 정도면 성공인 듯 싶다)
추억이 돋는 1995년 드래프트 1라운드 (필자는 정말 Ben Davis가 엄청나게 클 줄 알았다 ㅎㅎㅎ;;)
1995년 Florida State League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한 Morris는, A볼에서 말그대로 날라다니며 타자들을 씹어먹었는데, 20살에 처음 프로야구를 경험하는 선수치고 상당히 "Polished" 되었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대학 시절 보여준 모습보다 더욱 완성도가 높은 투수라는 평을 받았다. (Michael Wacha도 올 해 비슷한 평가를 받지 않았는가!) 1996년 ML 스프링 트레이닝에 초대를 받은 Morris는, Grapefruit League 초반 타자들을 압도하는 구위를 선보였고, 당시 Cards 로테이션의 주축 투수들이 부상을 당하면서 파격적인 "AA도 스킵하고 바로 빅리그 진출"을 이룩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시범경기 막판에 부진하면서 "아직은 때가 아니다"라는 Duncan의 조언에 따라 결국 1996시즌을 AA볼에서 시작하게 되는데, 이 역시 Morris에게는 상당히 결과적으로 좋은 결정이었다. 은사이자 당시 Arkansas의 투수코치, Marty Mason을 만나게 된 것이다.
1994년 미국 국가대표팀 시절
Matt Morris' Minor League Track Record
Year | Age | Tm | Lg | Lev | Aff | W | L | GS | CG | SHO | IP | H | R | ER | HR | BB | SO | BF | |||||||
---|---|---|---|---|---|---|---|---|---|---|---|---|---|---|---|---|---|---|---|---|---|---|---|---|---|
1995 | 20 | New Jersey | NYPL | A- | STL | 2 | 0 | 1.64 | 2 | 0 | 0 | 11.0 | 12 | 3 | 2 | 1 | 3 | 13 | 45 | 1.364 | 9.8 | 0.8 | 2.5 | 10.6 | 4.33 |
1995 | 20 | St. Petersburg | FLOR | A+ | STL | 3 | 2 | 2.38 | 6 | 1 | 1 | 34.0 | 22 | 16 | 9 | 1 | 11 | 31 | 134 | 0.971 | 5.8 | 0.3 | 2.9 | 8.2 | 2.82 |
1996 | 21 | Arkansas | TL | AA | STL | 12 | 12 | 3.88 | 27 | 4 | 4 | 167.0 | 178 | 79 | 72 | 14 | 48 | 120 | 711 | 1.353 | 9.6 | 0.8 | 2.6 | 6.5 | 2.50 |
1996 | 21 | Louisville | AA | AAA | STL | 0 | 1 | 3.38 | 1 | 0 | 0 | 8.0 | 8 | 3 | 3 | 0 | 1 | 9 | 32 | 1.125 | 9.0 | 0.0 | 1.1 | 10.1 | 9.00 |
AA (3 seasons) | AA | 12 | 12 | 3.89 | 29 | 4 | 4 | 178.0 | 190 | 84 | 77 | 14 | 52 | 129 | 759 | 1.360 | 9.6 | 0.7 | 2.6 | 6.5 | 2.48 | ||||
A+ (2 seasons) | A+ | 3 | 3 | 3.30 | 8 | 1 | 1 | 43.2 | 34 | 23 | 16 | 1 | 13 | 46 | 177 | 1.076 | 7.0 | 0.2 | 2.7 | 9.5 | 3.54 | ||||
A- (1 season) | A- | 2 | 0 | 1.64 | 2 | 0 | 0 | 11.0 | 12 | 3 | 2 | 1 | 3 | 13 | 45 | 1.364 | 9.8 | 0.8 | 2.5 | 10.6 | 4.33 |
1996년 Arkansas에서 Morris의 성적은 (Texas League에서 던졌다는 사실을 감안해도) 사실 그다지 Impressive할 게 없었다. 그러나 이 시즌 그는 Mason 코치로부터 많은 가르침을 얻으며 본격적인 "Hurler --> Pitcher" 로의 진화를 감행했고,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투수로써 많은 발전을 이룩했다. 1997년 Morris를 다시 만난 Duncan는 작년과 비교해 "It's like day and night" 이라며 Morris의 성장을 높이 평가했다.
"When I got sent down, I thought I would dominate [in the Texas League]. What happened was, though, is that I learned more last year than in ten years of pitching...learning how to face adversity...Marty Mason (Arkansas' pitching coach) was a big help...and after a while I starting learning how to pitch."
-Matt Morris, on his Double-A experience
1996년 BA Prospect 랭킹 56위였던 Morris는 AA에서의 풀 시즌을 마치고 BA 랭킹 25위에 랭크되었으며, 명실상부 Cardinals 팜 시스템 최고 기대주로 떠올랐다. 스카우팅 리포트에서는 "a consistent 92-95 MPH fastball, along with an above-average curve and rapidly improving changeup"으로 Morris를 묘사했으며, John Sickels는 Morris를 전미 7번째 투수 유망주로 꼽았다. 특히나 훌륭한 패스트볼, 느린 Overhand delivery, 큰 키와 Arm swing을 들면서 무려 Jim Palmer Projection까지 나왔다 (Jim Palmer는 70년대를 씹어드신 Orioles 레전드로, 사이영 3회 수상에 통산 268승 HOF 멤버이다). 추억이 돋는 이 랭킹을 잠깐 살펴보도록 하면...
1997년 Baseball America's Top Prospects
23. Roy Halladay, rhp, Blue Jays
24. Jose Guillen, of, Pirates
25. Matt Morris, rhp, Cardinals
26. Aramis Ramirez, 3b, Pirates
27. Carlos Guillen, ss, Astros
28. Chris Carpenter, rhp, Blue Jays
29. Dmitri Young, 1b, Cardinals
30. Adrian Beltre, 3b, Dodgers
31. Mike Cameron, of, White Sox
32. Braden Looper, rhp, Cardinals
33. Neifi Perez, ss, Rockies
34. Jay Payton, of, Mets
35. Mike Drumright, rhp, Tigers
36. Juan Melo, ss, Padres
37. Eli Marrero, c, Cardinals
1997년-1998년: 성공적인 데뷔
1997년 시즌 개막을 앞두고 Morris는 스프링 트레이닝에 다시 한 번 초청되었고, 이번에는 한 단계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며 당당히 로테이션 한 자리 (4선발)를 꿰찼다. "마이너를 씹어잡수신 1라운더 출신 대졸 투수"에 HOF 투수 컴패리즌까지 나오면서 Morris에 대한 구단의 기대는 더 이상 올라갈 데가 없었다. Morris는 4월 4일 Astros 원정에서 빅 리그 데뷔를 앞두고 구단의 배려로 하루 먼저 Houston에 가서 대기했으며, 잠을 설쳐가며 기다린 끝에 Astrodome 마운드에 올랐다.
1회 선두타자 Biggio가 안타를 치고 나가고 2루를 훔쳤으며, Bagwell의 적시타로 1실점. 그러나 이후 Morris는 추가 실점 없이 5이닝 7피안타 1실점 (투구수 79개)의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렀으며, TLR은 경기 후 Morris의 데뷔전을 어떻게 지켜봤냐는 질문에 "Outstanding. He did a good job under tough circumstances. He'll do a better job each time out." 이라며 이 신인 투수의 기를 북돋아주었다. 이 시즌 Morris는 12승 9패 ERA 3.17 (FIP 3.51)을 기록하며 리그 신인왕 투표에서 Scott Rolen에 이은 공동 2위를 차지했으며, 149개의 탈삼진을 잡는 동안 69개의 볼넷을 허용하고 Whip 1.28을 찍었다. 가장 고무적이면서도 우려되었던 부분은 무려 217이닝을 소화하며 데뷔 첫 시즌에 팀내에서 가장 많은 이닝을 소화했다는 점이다.
1997년 루키 시절의 Matt Morris.
1997년 ROY 투표 결과: 공동 2위는 억울하다
Voting Results | Batting Stats | ||||||||||||||||
---|---|---|---|---|---|---|---|---|---|---|---|---|---|---|---|---|---|
Rank | Tm | Vote Pts | 1st Place | Share | WAR | ||||||||||||
1 | Scott Rolen | PHI | 140.0 | 28.0 | 100% | 4.3 | |||||||||||
2 | Livan Hernandez | FLA | 25.0 | 0.0 | 18% | 1.7 | |||||||||||
2 | Matt Morris | STL | 25.0 | 0.0 | 18% | 3.9 |
1998시즌 4월, Morris는 시즌 첫 등판 후 어깨 부상으로 3개월을 쉬었다. 후반기에 돌아온 그는 이후 3개월동안 무려 108이닝을 던지며 ERA 2.53으로 시즌을 마감했는데, 언뜻보면 이 시즌에 엄청난 성장을 이룩한 것같지만 FIP는 전년도보다 크게 높아진 3.85였다. 잔루율 (LOB%)가 무려 80.9%에 달할만큼 유난히 적은 실점을 헀을 뿐, 세부스탯 (K%, K/BB, HR/9 등) 측면에서는 1997년과 비슷한 시즌을 보냈다 (물론 빅리그 2년차 투수에게 이 정도면 충분히 성공적인 시즌이다). 9월 22일 Astros전에서는 5피안타 무사사구 10K 완봉승으로 본인의 커리어 첫 shutout을 기록했다. 커리어 첫 2년간의 Morris는 아직 스트라이크 존 내에서의 커맨드가 완전히 잡히지 않아있었으며, 위에서 아래로 냅다 꽂는 그의 패스트볼을 믿고 힘으로 압도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1999년-2000년: TJS, 그리고 배움의 시간
1999년 4월 8일, 전년도 신인왕 수상과 20K에 빛나는 Cubs의 Kerry Wood는 James Andrews 박사로부터 Tommy John Surgery를 받는다. 그리고 5일 후인 4월 13일, 1995년 드래프트 동기이자 (위에 1라운더 명단 참조) 라이벌 Cardinals의 기대주 Matt Morris 역시 이 분야의 권위자 Frank Jobe 박사로부터 팔꿈지 인대 접합 수술을 받는다. 거의 같은 시기에 대수술을 받았으나, 이 둘의 이후 향방은 사뭇 달랐다.
수술에서 복귀한지 정확히 12개월이 되는 2000년 스프링 트레이닝부터 Wood는 로테이션에 복귀하기 위해 준비하기 시작했고, 무리해서 페이스를 끌어올린 끝에 5월 1일 시즌 첫 선발 등판, 그리고 그 경기에서 6이닝 1실점의 호투로 깔끔하게 복귀했다. 그러나 여름을 못 넘기고 다시 탈이 났고, 시즌 중 57일을 DL에서 보내면서 8승 7패 ERA 4.80의 그답지 않은 성적을 냈으며, K/9은 극히 평범한(?) 수치로 떨어졌다 (12.7 --> 8.6). Wood가 이 시기를 인내하며 보냈다면 그의 커리어가 조금은 다르지 않았을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해본다.
"We felt it wasn't in anyone's best interest. Matt was still testing himself. He needed to answer the question, Am I O.K.? He didn't need the additional test of having to worry about starting."
-Dave Duncan, on spot-starting Matt Morris during 2000 season
반면 Morris는 TLR와 Duncan의 보호 아래 천천히 빅리그 연착륙을 시도했다. 1999시즌을 힘겨운 재활속에 보낸 그는 2000시즌 DK-Hentgen-Benes-Ankiel-Stephenson으로 이어지던 로테이션에 합류하는 대신, 불펜에서 릴리버로 뛰게 된다. 5월 30일 D-Backs 전에서 선발 Ankiel이 6이닝을 던지고 물러나자 Morris는 무려 20개월만에 빅 리그 마운드에 다시 섰고, 초구로 96마일짜리 싱커를 뿌렸다. 3이닝 무실점 세이브. Morris는 이후 투구수 관리를 받으며 주로 7~8회에 2이닝 미만을 던졌으며, 31경기 중 4경기를 제외하고는 40개 미만의 투구수를 기록했다. 중간 중간 선발투수들의 잔부상으로 Spot-starter가 필요했을 때 Morris의 이름이 가장 먼저 올라왔으나, Duncan과 TLR은 Morris를 철저히 보호하며 단 한 번도 선발 등판시키지 않았다. (땜빵 임무는 주로 Britt Reames에게 돌아갔다)
매일같이 구장에 출근하면서도 지루한 재활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던 1999시즌, Morris는 타팀의 에이스 투수들을 연구하고 배우는 노력을 부단히 했다고 한다. 특히 Greg Maddux, Randy Johnson, Tom Glavine, Kevin Brown, Mike Hampton 등 당대 최고의 투수들은 거의 다 NL 소속이었고, 이들이 던지는 모습은 선발투수로써 부활을 꿈꾸던 Morris에게 진부한 표현을 빌리자면 "살아있는 교과서" 였다.
"I remember seeing Kevin Brown pitch against us, and his attitude and aggressiveness screamed, I'm coming at you! It was a prime example of how presence can dominate. He psyched us out..... I started paying attention to pitchers. I learned how to compete. Kevin Brown came out one game, you could hear him grunting, we couldn't touch him. Five days later, he was less intense. We hit him. It taught me a lot about presence on the mound. You see guys out there hanging their head after giving up a homer. You can't do that.
-Matt Morris, on how he studied his contemporaries in 1999 (SI interview)
2001년-2002년: 전성기 그리고 The Duel
인고의 세월 끝에 선발투수로 돌아온 Matt Morris의 2001시즌은 역대 Cardinals 선발 투수들이 보낸 시즌 중에 손에 꼽을만큼 훌륭한 것이었다. 만 26세 시즌의 Morris는 패스트볼+커브+체인지업을 적절히 섞어쓰며 무려 22승을 따냈으며 (물론 Albert Pujols의 등장과 함께 물오른 Cards 타선 덕도 많이 보았지만), 이 기록은 1950년대 이후로 구단 역사상 공동 2위의 기록이다 (1위 1970년 Bob Gibson 23승). 세부스탯에서도 20.4%의 K%, FIP 3.05, 그리고 무엇보다 5.9%로 확 끌어내린 BB% (이전까지 7.7~9.0% 사이) 등 모든 면에서 커리어 최고 기록을 찍었다. (3.16 ERA, 185K/54BB, 조정 ERA+ 137 , WAR 6.0) TJS로부터의 적절한 회복, 절정의 구위 (Morris는 당시 95마일의 포심과 리그 최고 수준의 커브, 체인지업을 구사했다) 당대 최고의 수비형 포수였던 Matheny와의 조합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커리어 최고 시즌이었다.
2001시즌 캠페인을 통해 순식간에 TJS 홍보대사가 되어버린 Matty Mo
아무래도 Morris의 2001시즌을 얘기하면서 빼먹을 수 없는 부분이 NLDS에서 Curt Schilling과 펼친 두 차례의 투수전이다.
2001년 10월 9일, D-Backs 대 Cardinals의 NLDS 1차전이 Bank One Ballpark에서 열렸다. 사실 정규시즌 22승 투수 두 명이 맞붙는 매치업에서 한 쪽을 "underdog"으로 표현하는 것이 어색하긴 하다. 그러나 (Morris가 커리어 최고 시즌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 Schilling은 거의 모든 면에서 Morris보다 나은 시즌을 보냈으며, 이미 포스트시즌의 강자로 명성을 떨친 바 있는 승부사였다 (반면 Morris는 포스트시즌 첫 선발등판). 게다가 원정에서의 시리즈 1차전 (이 시즌 Morris의 원정 평균자책은 5.15였다). 다음 경기 상대 선발은 Randy Johnson. 더 이상 부담스럽기도 힘든 경기였다.
1차전 1회말, Morris는 무사 2,3루의 위기에 몰렸으나 상대 클린업 Luis Gonzalez를 삼진, Sanders를 파울플라이, Grace를 1루땅볼로 유도하며 실점하지 않고 이닝을 넘어갔다. 4회에도 1사 1,3루의 위기를 무실점으로 넘어가면서 5회까지 0:0. 그러나 5회말 선두타자 Damian Miller가 종아리에 공을 맞고 나갔고, Schilling이 2스트라이크 이후에 절묘하게 1루측으로 번트를 성공시키며 1사 2루를 만들었다. Morris는 무사히 Womack을 잡아냈으나 결국 Steve Finley에게 중전안타를 허용했고, 이 점수가 결승점이 되었다. 계속된 2사 1루에서 Luis Gonzalez가 Morris의 커브 실투를 제대로 후려쳐 워닝트랙쪽으로 타구를 띄웠으나 중견수 Edmonds가 Leaping catch로 홈런 타구를 걷어내면서 추가실점 없이 이닝 종료. 중계를 보면서 감탄과 동시에 "아, 이 수비를 기점으로 분위기가 바뀌겠구나" 하고 헛꿈을 꾸었던 것이 기억난다. 그러나 Schilling은 이닝이 거듭될수록 힘을 내는 듯 했으며, 101개의 공으로 3피안타 완봉승을 거둔다.
Curt Schilling vs. Matt Morris. 둘 중 한 판만 이겼어도...
Morris는 이 경기에서 무려 122개의 투구수를 기록하면서 혼신의 힘을 다했고, 위기때마다 집중력을 잃지않고 최소한의 실점으로 막아내며 제몫을 다했다. 경기 후 TLR, McGwire, Bob Brenly 등은 양측 투수를 모두 칭찬했으며, 특히 McGwire는 "Probably the best pitcher's duel I've seen" 이라고 했는데, 이 양반은 아무때나 "best"를 갖다붙이니 뭐...
Division Series는 2차전에서 Woody Williams가 Randy Johnson을 상대로 승리투수가 되면서 전혀 의외의 방향으로 흘러갔다. DK57이 등판한 3차전은 졌으나 Bud Smith (참으로 오랜만이다 이 이름!) 가 등판한 4차전은 승리하면서 결국 5차전에서 다시 똑같은 매치업으로 경기가 열렸다. Morris는 4회말 선두타자 Reggie Sanders를 상대로 엄한 커브를 스트라익존에 걸치다가 솔로홈런을 허용했으나, 이를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1차전보다 더 나은 투구내용을 보여주며 7회까지 0:1 경기를 유지했다. 그리고 8회초 2사 주자 없이 J.D.Drew가 근 17이닝만에 Schilling으로부터 처음 점수를 뽑아내는 솔로 홈런을 치며 마침내 경기를 동점으로 만들었다 (Schilling은 4년 전 Drew가 Phillies와 계약하지 않았을 때 Drew를 대놓고 Punk라고 부르면서 도발한 바 있다)
He's an elite pitcher. I'm honored to sit back and watch how he executed in a situation like this. That's not easy for a guy that's been here 100 times, and he's still a young pitcher.
-Woody Williams, on Matt Morris' performance in NLDS
8회말, Morris는 투구수 103개에서 다시 마운드에 올랐고, 2사 후 안타-볼넷으로 1,2루 위기에 몰린 상태로 좌타자 Mark Grace와 맞섰다. TLR은 Morris를 믿고 교체하지 않았고, Morris는 7구만에 Grace를 삼진처리하면서 투구수 130개를 채우고 내려왔다.
에이스의 투혼으로 위기를 벗어난 상황에서 맞는 9회초, 이제 점수도 동점이고 분위기는 오히려 Cards쪽이 좋았다. 선두타자 Edmonds가 안타를 치고 나가면서 벤치도 슬슬 에너지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이 때 다음타자인 McGwire 대신 TLR은 Kerry Robinson을 대타로 투입하고 번트를 대게하며, 번트 성공으로 1사 2루가 된 상황에서 후속 Renteria와 Matheny는 Schilling의 98마일 패스트볼에 방망이가 잇따라 허공을 가르며 삼진으로 물러난다. (TLR의 Kerry Robinson 드립은 이후 one of the most controversial moves of his career 로 남게된다. 당시 McGwire의 타격 슬럼프는 공공연히 알려진 바였고, Renteria가 Schilling을 상대로 1차전에 안타 2개를 친 바 있긴 했으나, 이게 과연 맞는 콜이었는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이후 시리즈의 결말은 여러분이 다 아시다시피 Tony Womack의 walk-off-bloop-single로 허무하게 막을 내린다.
“To be sitting on the bench and watching Curt Schilling and Matt Morris, that isn’t major league, it’s a league above this one. I’m not a betting man, but 15 innings, two runs (for Morris), you would have thought he would have won both.”
-Tony La Russa, after NLDS was over
결과적으로 Morris는 두 차례 등판에서 모두 Schilling에게 패배했으나 (5차전은 비긴 셈 쳐도 되지 않을까 싶다) 전국구 에이스로 크게 발돋움하는 퍼포먼스를 무려 두 차례나 선보였으며, Curt Schilling의 아성에 전혀 꿀리지 않는 모습과 2경기에서 무려 252구를 던지는 투지로 크게 어필을 했다. 팀은 아쉽게 DS에서 탈락했으나, 2001년 포스트시즌은 Morris 커리어의 최정점으로 생각해도 무방하다. Morris는 플레이오프 이후 3년간 27M의 계약을 체결, St. Louis에 그의 20대를 바치기로 한다.
2002년에도 Morris는 17승 9패 ERA 3.42 (FIP 3.32) 210.1이닝 171삼진 64볼넷으로 2001년과 비슷한 레벨의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정규시즌에 Curt Schilling과 다시 대결한 Morris는 이번에는 7이닝 4실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Schiling이 엄청나게 두들겨맞으며 (6이닝 9피안타 6실점) 승리투수가 되었다. 또한 이 해 NLDS에서 다시 D-Backs를 만났고, 다시 1차전 투수로 낙점되어, 이번엔 Randy Johnson을 상대로 7이닝 2실점 승리투수가 되며 작은 복수를 한다.
이렇게 2년간 Morris는 ML 전체 투수들 중 9위에 해당하는 WAR 10.6을 기록했으며 (Greg Maddux와 Rocket이 10.5, 1위 Randy Johnson 19.4 -_-), 그가 거둔 39승은 전체 투수들 중 5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쉴링, 존슨, 페드로, 로켓 등 괴물 및 거물들이 너무 많던 시대여서 그렇지 Morris가 이 당시 기록한 성적도 상당히 뛰어난 것이었다. 2002년 시즌 중반, 멘토이자 절친한 동료였던 Darryl Kile의 죽음은 유난히 Morris에게 큰 영향을 끼쳤는데, Morris는 원정을 가면 Kile과 함께 주변의 학교, 동물원이나 공원 (San Diego 동물원, Denver의 Estes Park, UCLA 캠퍼스 등) 으로 쏘다니며 함께 많은 추억을 쌓았다고 한다.
Morris는 승부사 기질이 강했고, 클럽하우스에서도 인기 있는 선수였다.
2003년-2005년: 잃어버린 패스트볼, 그리고 내리막
Morris의 커리어는 2001~2002년을 정점으로 서서히 decline을 시작하는데, 2003시즌에 Morris의 나이가 고작 28세였음을 생각하면 상당히 내리막이 빨리 시작한 편이다. 2003년, 커리어 내내 0.5~0.6 수준이었던 Morris의 HR/9은 드디어 1을 넘어갔고, 이 수치는 결국 내려오지 않았다 (1.04-->1.56-->1.03). 구속 저하 트렌드도 벌써 시작해서 2002년 91.6마일이었던 패스트볼 구속은 2003년 90.6 --> 2004년 89.4 --> 2005년 89.2로 서서히 떨어졌다.
2003년 Morris는 6월들어 어깨에 불편함을 느끼며 자꾸 투구 메카닉이 흔들렸고, Dave Duncan과 함께 이를 고치려 노력했으나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6~7월 두 달간 거의 매 경기 무너지던 그는 결국 7월 21일에는 라인드라이브 타구를 맞고 오른손이 부러졌었고, 부러진 와중에 팀 동료들과 호텔에서 말뚝박기 비슷한 놀이를 하다가 발목이 부러졌다. 그나마 9월에 복귀한 후 한 달간 5경기에서 35이닝을 던지고 3승 2패 ERA 2.83을 찍으며 아직 죽지 않았음을 과시했는데, 이게 사실상 Morris가 Morris답게 던진 마지막 한 달이었다.
"Whether it was due to shoulder weakness or mechanical troubles, Morris was no longer the power pitcher who could blow any opponents with his hard stuff. A tell-tale sign that he often could not get his shoulder loose was that three times in second half, he was knocked out within the first two innings. Except on rare occasions, his fastball rarely topped 90-92 mph level. As a result, Morris had to rely more on his breaking stuff and sinker.
- Scouting Notebook 2005, on Matt Morris
2004년 그의 패스트볼은 구속과 구위를 동시에 잃으며 -13.4의 Pitch Value (구종가치)를 찍었는데, 이 시즌을 기점으로 Morris는 사실상 커브와 체인지업, 그리고 싱커와 커터에 의존하는 투수로 변신해야했다. Morris가 개인적으로는 최악의 시즌 (ERA 4.72, 피홈런 리그 2위 35개) 을 치르면서 "세월의 무게"와 '내 공의 한계"를 깨닫는 사이, Cardinals는 Murder's Row의 위엄을 앞세워 WS까지 진출한다.
Morris는 WS 2차전에서 3년 전 만났던 Schilling과 운명처럼 다시 한 번 대결하는데, Morris는 3년 전 그 투수가 아니었다. (그리고 이미 DS와 CS에서 더 이상 그 정도 구위로는 플레이오프에서 버틸 수가 없음을 보여주었다). 그는 매 이닝 고전한 끝에 Varitek에게 2타점 3루타 (Varitek에게 3루타라니 참 -_-) Bellhorn에게 2타점 2루타를 맞았고, 5회말 1사 1루에서 Cal Eldred에게 공을 넘기며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WS 등판을 마감했다. 그리고 필자는 눈물을 머금고 TV를 껐던 기억이 난다. (당시 Morris는 3일 휴식만에 등판한 것 치고는 나쁘지 않은 구위를 보여주었으나, 커리어 첫 3일 휴식 등판을 하필 Fenway에서 Red Sox를 상대로 했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인정은 하지만 좋아하긴 힘든 양반
이 해 11월 어깨 Labrum 수술을 받은 Morris는, 이로 인해 조금 시즌을 늦게 시작했으나, 커리어 로우인 4.5%의 BB%를 기록하면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쳤다. 떨어지는 구속을 커버하려면 공격적이면서 보다 정교한 제구력이 필요했고, 이를 위해서 Morris는 커브, 체인지업, 싱커 위주의 레퍼토리로 완전히 돌아섰다.
시즌 첫 8번의 decision을 모두 승리로 따내며 8연승을 구가한 Morris는 전반기를 10승 2패 3.10으로 마무리하며 Carpenter-Mulder 원투펀치의 뒤를 잘 받쳐주었는데, 후반기에는 크게 고전하며 4.11의 (나쁘지는 않은) 평균자책으로 시즌을 마무리한다. 2004년 장기계약이 끝나고 Morris는 Cardinals과 인센티브가 많이 포함된 1년 2.5M의 계약을 했는데, 2005년의 활약은 그 수준의 연봉을 합리화하기에는 충분한 수치였다 (운빨이 있든 없든간에). 그의 K/9와 패스트볼 구속은 2001년을 기점으로 꾸준히 떨어지고 있었고, 2005년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7.70 --> 7.32 --> 6.27 --> 5.84 --> 5.47)
2005년 NLDS에서 Morris는 한 수 아래 전력으로 평가된 Padres를 상대로 PETCO Park에서 자신의 커리어 마지막 플레이오프 승리를 거두며 (6이닝 2실점) 시리즈 클린처에서 승리투수가 된다. 그리고 이 등판이 Morris의 커리어에 있어서 가장 마지막으로 빛난 순간이었으며, Morris는 NLCS에서 Astros를 상대로 한 차례 더 등판한 후 그의 Cardinals 시절을 마감한다.
2006년-은퇴:
2005시즌을 성공적으로 보내면서 Morris의 시장 가치는 "한 물 갔지만 그래도 아직은 쓸만한 3선발 내지는 Back-of-the-rotation guy" 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Morris의 현저한 구위 저하로 인해 어떤 팀도 Morris에게 장기 계약을 안겨주지는 않을 것으로 보였다.
Morris는 2006년 (대체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를) Giants와 3년 26M에 계약했고, 5.5M의 연봉을 받았던 첫 해 10승 15패 ERA 4.98로 리그 패전 부문 2위를 기록했으며, K/9는 이제 5.02로 더욱 떨어졌다. 2007년 시즌 Morris의 연봉은 10M이 넘어갔고, Sabean은 Morris를 처분하기 위해 수많은 팀들에게 오퍼를 했으나 (많은 연봉 부담을 하기로 약속하고) 어떤 팀도 이제 Morris를 데려가려고 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그러던 중 Pirates가 Morris를 데려가는데, 필자가 굳이 사족을 다는 것보다 "최악의 트레이드" 포스팅에서 FreeRedbird님이 쓰신 코멘트를 한번 돌이켜보도록 하자.
20. The Pittsburgh Pirates traded Rajai Davis(CF) and Steve MacFarland(RHP) to the San Francisco Giants for Matt Morris(RHP). (2007년 7월, Pirates GM: Dave Littlefield, Giants GM: Brian Sabean)
이 리스트의 모든 트레이드가 어처구니없는 일방적인 딜이긴 하지만, 사실 대부분 시간이 지나고 나서 결과를 보고 이야기하는 것이며, 딜 당시만을 생각하면 한쪽을 일방적으로 비난하기는 약간 어려운 경우도 많다. 심지어 Pedro Matinez-Delino DeShields와 같은 트레이드도 딜 당시에는 어느정도 이해가 가는 구석이 있었다. 하지만, 이 트레이드만큼은 어떻게 생각해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것 같다. 이 트레이드는 데드라인 직전인 7월 31일에 일어났는데, 당시 Pirates는 42승 62패로 1위에 14.5게임 뒤져 있었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가능성은 제로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도 Littlefield는 무슨 생각인지 Rajai Davis같은 유망주를 내주고 노쇠한 Matt Morris를 영입한 것이다...!! 당시 Morris는 2008년까지 무려 13M이 넘는 연봉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그는 Pirates에서 16게임에 선발 등판하여 7.04 ERA를 기록하고는 2008년 4월 말에 방출되었으니, Pirates는 그의 선발등판 1회 당 1M에 가까운 돈을 지불한 셈이다. Morris는 Pirates에서 방출된 후 은퇴하였다.-FreeRedbird, in "최악의 트레이드 25선"
2008년 스프링캠프에서 Morris는 18.2이닝동안 39피안타 20자책점을 기록하면서 먼지나게 두들겨 맞았다. 그리고 정규시즌이 시작하자 4월 한 달간 다음과 같은 처참한 등판일지를 기록하고 4월 28일 방출되었으며, 며칠 후 은퇴했다. 선수생활 막판의 Morris의 모습은 자신감과 의욕을 모두 잃은듯한 모습이었고, 마지막 불꽃을 태우려는 의지도 없어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구위는 이미 떨어질 대로 떨어져 있었다.
※Morris가 방출이 된 직후 바로 은퇴를 해버리면서, Pirates는 잔여 연봉 10M을 Morris에게 지불해야 했다. 이를 두고 한 측에서는 "어차피 은퇴할 거였으면 그냥 은퇴를 했었어야지 치사하게 연봉 받을려고 방출되기를 기다렸냐" 는 비난이 나왔고, 이로 인해 커리어 내내 신사같은 이미지로 사랑받았던 Morris의 가는 길이 조금 지저분해졌다.
Matt Morris' Final Month of his career
Rk | Date | Opp | Rslt | Dec | IP | H | R | ER | BB | SO | HR | Pit | GB | FB | GSc | |
---|---|---|---|---|---|---|---|---|---|---|---|---|---|---|---|---|
1 | Apr 4 | FLA | L,4-5 | 5.0 | 8 | 4 | 3 | 2 | 2 | 1 | 5.40 | 98 | 7 | 15 | 37 | |
2 | Apr 10 | CHC | L,3-7 | L(0-1) | 7.0 | 11 | 7 | 4 | 2 | 3 | 2 | 5.25 | 113 | 12 | 18 | 34 |
3 | Apr 15 | LAD | L,2-11 | L(0-2) | 4.2 | 7 | 6 | 6 | 1 | 1 | 0 | 7.02 | 79 | 8 | 10 | 26 |
4 | Apr 21 | FLA | L,4-10 | L(0-3) | 4.0 | 9 | 8 | 8 | 1 | 2 | 2 | 9.15 | 99 | 9 | 9 | 13 |
5 | Apr 26 | PHI | L,4-8 | L(0-4) | 1.2 | 6 | 6 | 3 | 1 | 1 | 1 | 9.67 | 71 | 3 | 9 | 25 |
22.1 | 41 | 31 | 24 | 7 | 9 | 6 | 9.67 |
La Russa 영구결번식에 참석한 Matt Morris. 아직 살이 찌지 않아서 보기 좋다.
총평
Morris는 TLR ERA와 거의 동시에 커리어를 시작했으며, TLR 시절의 Cardinals를 대표하는 투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꽤 오랜 기간동안 Morris가 없는 Cards 로테이션은 상상하기 힘들었으며, 전성기 시절 12-6 커브는 많은 감독들과 선수들로부터 극찬을 받았고, 2004년의 갑작스런 쇠퇴 전까지는 매년 "Cy Young stuff" 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비록 28세 시즌부터 급격히 쇠퇴하게 된 것은 정말 아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일찍 데뷔했기에) 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을 표방했던 투수들 중 하나로 볼 수 있으며, 특히 Cardinals 역사에 있어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훗날 Chris Carpenter나 Adam Wainwright과 같은 역사적 상징성을 가질 투수이다. 포스팅을 하면서 다시 곱씹어보았을 때 아쉬운 부분이 한 두개가 아니었는데, 1) 28세 시즌부터 그렇게 급격한 구위하락을 겪게 된 것과 2) TLR ERA에서 일궈낸 2차례 우승 중 한번도 끼지 못했다는 점이다.
At his peak, Morris was one of the best pitchers in baseball, but his body couldn't sustain dominance past the age of 28, and by the end he was surviving with mirrors and moxy. Although the Jim Palmer comps he got in college didn't pan out, he was a very good pitcher.
-John Sickels, on Matt Morris' Career
All-time Cardinals Strikeouts Leaders
Rank | Player | Strikeouts | IP |
---|---|---|---|
1. | Bob Gibson | 3117 | 3884.1 |
2. | Dizzy Dean | 1095 | 1737.1 |
3. | Chris Carpenter | 1085 | 1348.2 |
4. | Bob Forsch | 1079 | 2658.2 |
5. | Matt Morris | 986 | 1377.1 |
6. | Jesse Haines | 979 | 3203.2 |
7. | Steve Carlton | 951 | 1265.1 |
8. | Bill Doak | 938 | 2387.0 |
9. | Adam Wainwright | 908 | 1073.0 |
10. | Larry Jackson | 899 | 1672.1 |
Did you know...?
-
Morris는 2004년 6월 20일 Busch Stadium에서 Ken Griffey Jr.에게 그의 개인통산 500호 홈런을 허용했다.
-
2002년 Morris는 NL 올스타에 선발되었는데, 당시 Darryl Kile의 사망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Morris는 올스타전에서 던지지 않을 것을 요청했으며, Braves의 릴리버 Mike Remlinger가 그를 대신해 들어갔다. 그리고 2002년 올스타전은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전무후무한 "무승부" 올스타전으로, 연장 11회에 양팀을 통틀어 뛰지 않은 선수는 Matt Morris 단 한 명이었다.
-
2001시즌 Busch Stadium에서 Morris는 가히 Unbeatable이었다. 그는 홈에서 15승 2패 1.62의 평균자책을, 원정에서 7승 6패 5.15의 평균자책을 기록했다. Jaime Garcia는 이거에 비하면 양반이다.
-
2004시즌 Morris는 원정에서 무려 6.02의 평균자책을 기록했다. 홈 보이인줄은 알고 있었는데 이 정도일 줄이야.
-
Morris는 현재 부인인 Heather Reader를 2000년 불펜에서 (TJS 수술 때문에 릴리버로 뛸 당시) 만났다고 한다. 2000년 9월 당시 Cubs 원정에 가있던 그는 원정팀 불펜 옆에 앉아있던 MLB.com의 Cubs 담당 리포터 Reader에게 말을 걸게 된다(Morris는 당시 곁에 있던 Alan Benes에게 "저 여자 정도면 결혼해도 되겠다" 는 진부한 드립을 쳤다). 결국 둘은 2002년에 결혼했다.
by Doovy
'Cardinals > Revisiting TLR ERA' 카테고리의 다른 글
Revisiting TLR ERA [6] J.D. Drew - Part II (33) | 2013.02.07 |
---|---|
Revisiting TLR ERA [5] J.D. Drew - Part I (8) | 2013.01.31 |
Revisiting TLR ERA [4] Steve Kline (26) | 2013.01.25 |
Revisiting TLR ERA [2] Edgar Renteria (12) | 2013.01.10 |
Revisiting TLR ERA [1] Ray Lankford (11) | 2013.01.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