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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2.13 Revisiting TLR ERA [7] Brian Jordan (26)

by Doovy

이번 주 TLR ERA 시리즈는 90년대말 Cardinals의 핵심멤버이자 근대 Cardinals를 거쳐간 선수들 중 순수 운동능력에 관한 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던 외야수, Brian Jordan이다. TLR 시절에 Tony의 리더십과 그의 스타일에 불화 및 갈등을 겪었던 선수들은 한 두명이 아니었으나, Brian Jordan는 Ozzie Smith, Ron Gant 등과 함께 초창기 반 TLR '살생부' 명단의 일원이었으며, 잘 알려져있지는 않지만 풋볼과 야구를 병행했던 몇 안되는 Dual-Atheletes 중 하나이다. 사실은 다른 선수 포스팅을 준비하고 있었으나, 요새 연속으로 이어지던 2000년대 초반 Cardinals 포스팅 난무 및 중복을 피하기 위해 이번 주는 특별히 90년대 후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Brian "투잡" Jordan



Brian O'Neal Jordan 

Outfielder

DOB: 1967년 3월 29일 

Birth: Baltimore, Maryland

Time with Cardinals: 1988-1998


Draft and Minors

Brian Jordan는 Baltimore 태생으로, 이미 고등학교 (Millford Mill Academy) 때부터 가을엔 풋볼, 겨울엔 농구, 봄에는 야구를 하는 만능 선수였다. 키는 6'0 으로 (183cm) 그다지 특출나게 큰 것은 아니었으나, 순간 스피드와 점프력이 뛰어났으며 모든 스포츠에 있어서 뛰어난 경기 감각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Jordan은 고등학교 시절 농구를 가장 좋아했으나, 어차피 자신이 NBA에서 뛰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풋볼과 야구에서 커리어를 탐색했다. (그도 그럴 것이, 6'0으로 NBA를 꿈꾸는 것은 엄청난 테크니션이 아닌 이상 모든 코치들이 만류할 일이다). 

고등학교 Senior 때 야구에서는 .479의 타율과 40개의 도루, 풋볼에서는 21개의 터치다운과 1,014 러닝야드를 기록하며 지역 내에서 가장 촉망받는 운동선수였던 그는 1985년 드래프트에서 20라운드에 Indians에 지명이 되었다. 그러나 이를 거부하고 University of Richmond에 진학한 그는 대학에서도 풋볼과 야구에서 모두 두각을 나타냈으며, 야구에서는 학교 단일 시즌 최다 도루 기록을 세움과 동시에 풋볼에서는 역대 최다 Punt Return 기록을 세운 뒤 1988년 Sociology (사회학과) 학사를 받고 졸업했다. 

1988년 Draft에서 아직 야구로 갈지 풋볼로 갈지 정하지 않은 Brian Jordan을 Cardinals는 1라운드 Supplement 픽으로 뽑았다. 훗날 Jordan는 "사실 당시 (연고팀이었던) Orioles 쪽에서 나를 2라운드에 뽑으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Cardinals가 먼저 채갔다" 고 회고했다. (소스: Baltimore Sun) Cardinals는 드래프트 당시 이미 운동능력과 순수 스피드, 강한 어깨가 검증된 Jordan이 타격에서의 성급함을 가다듬고 특유의 탄력을 살릴 수만 있다면 올스타 외야수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는데, 어찌하면 비슷한 시기에 Cardinals에 들어왔던 Ray Lankford와 비슷한 스타일이었다. 한편 1988년 드래프트에는 훗날 Cardinals 유니폼을 입게 되는 선수들이 심심찮게 눈에 띄는데, 다음과 같다. (참고로 Orioles는 Jordan을 놓치자 2라운드에서 Arthur Rhodes를 뽑았다 ㅎㅎ)

Cardinals를 거쳐간 1988년 드래프트 1라운더들

Year RdPck

Tm

Pos WAR
1988 1 Padres Andy Benes (minors) RHP 28.5
1988 14 Mariners Tino Martinez (minors) 1B 25.1
1988 15 Giants via Reds *Royce Clayton (minors) SS 16.4
1988 22 Cardinals via Yankees *John Ericks (minors) RHP -0.2
1988 23 Cardinals Brad Duvall (minors) RHP
1988 30 Cardinals *Brian Jordan (minors) OF 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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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rdan는 결국 야구와 풋볼 중 어느 것도 포기하지 않기로 하고, 고되고 빡센 (그만큼 돈을 많이 벌수 있는) Dual-Athelete 이 되기로 하여 같은 해 NFL 드래프트에도 참가한다. 7라운드에서 Buffalo Bills에게 지명당한 Jordan은 그 해 트레이닝 캠프에서 엔트리에 들지 못하고 짤렸으나, 방출되자 마자 그를 눈여겨 보고있던 Atlanta Falcons에서 데려가 Defensive Back, 더 구체적으로는 Strong Safety라는 포지션에 그를 기용한다.

※풋볼에서 Safety란 포지션은 Defensive Team의 일원으로, 보통 Defensive Line이 상대 Offensive Line에 맞서 대인마크가 되는 반면 Safety들은 라인 뒤에서 서있다가 그때 그때의 약속된 플레이나 상황에 맞춰서 태클을 걸어야 하며, 상대 와이드 리시버의 움직임 및 러닝백을 마크하는데 있어서 큰 책임을 지고 있는 포지션이다. 뛰어난 운동신경과 순간 판단력은 물론이고, 상대 러닝백이 공을 놓칠만큼  강하고 저돌적인 태클을 걸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Jordan은 1988~1989년에 Cardinals 싱글 A에서 충분히 자신의 재능을 검증받았으며, NFL 시즌이 시작할 무렵에는 Falcons에 합류해 풀 시즌을 치른 뒤 다시 야구에 복귀하는 식의 '투잡'을 뛰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Jordan의 운동능력은 대단한 것이어서, 1989년 그는 BA 선정 Top 100에 이름을 올렸고, 1991년 AAA에서 비교적 성공적인 마이너리그 시즌을 보낸 이후에는 BA 랭킹 67위까지 진입했는데, 이 당시 Cards 팜은 선수층이 얇은 편이어서 (특히 가장 유망하던 Ray Lankford와 Gilkey가 팜을 졸업한 지 얼마 안되던 시점이다) 31위의 Dmitri Young, 35위의 Donovan Osborne, 64위의 Allen Watson을 제외하면 별다른 유망주도 없었다.


Falcons 시절 Brian Jordan


Brian Jordan's Minor League Track Record

YearAgeTmLgLevAffGPAABRH2B3BHRRBISBCSBBSOBAOBPSLGOPS
198821HamiltonNYPLA-STL19817112223141233615.310.388.549.937
198922St. PetersburgFLORASTL114543715412110208.349.378.6281.006
1990232 Teams2 LgsAA-A+STL258380713110102222.163.193.200.393
199124LouisvilleAAAAASTL6123821235561144241031741.264.342.410.752
199225LouisvilleAAAAASTL43169155234531416132821.290.337.400.737
199326LouisvilleAAAAASTL381651442454132535941617.375.442.597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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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결정

1991시즌 Brian Jordan은 AAA에서 비교적 성공적인 시즌을 보냄과 동시에 NFL 올스타전이라고 할 수 있는 Pro Bowl에 NFC (NFL은 NFC와 AFC, 양대 컨퍼런스로 나뉜다) 대표로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Jordan이 야구에만 전념하기를 바랬던 Cardinals는 Brian Jordan에게 3년간 2.4M의 비교적 큰 계약을 안겨줬고, 특히 사이닝 보너스로  1.7M을 쏘면서 풋볼을 그만두기를 요청했다. Jordan은 이를 수용했고, 이를 들은 Dual-Athelete 계의 대표 주자이자 Brian Jordan의 팀 (Falcons) 동료였던 Deion Sanders는 "아니 그 정도 돈에 풋볼을 관둔다고?" 하는 반응을 보였다.

"I can't believe he gave up football. Doesn't he realize there are baseball and football players who make $6 million a year?"

-Deion Sanders, on Brian Jordan quitting football

90년대초 당시 NFL 최고 연봉자는 Dolphins QB였던 Dan Marino 였는데, 심지어 Marino 의 연봉도 4M 근처에 불과했다. Sanders의 6M 드립을 들은 Falcons 관계자는 "만약 Sanders가 Jordan을 위해 6M을 받아준다면 우리 구단 대표 협상자로 삼겠다" 며 껄껄 웃었다.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당시 Deion Sanders에게 6M은 그렇게 꿈같은 수치만은 아니었다. 이미 당시에도 수비수로써는 드물게 1M 이상의 연봉을 받던 Sanders는 이후 무려 8년연속 올스타에 2차례 Defensive Player of the Year 상을 받는 등 NFL에서 역대급 커리어를 쌓고 이후 NFL HOF에 들어간다. 당시 Sanders와 Jordan은 하위팀 Falcons Defense의 핵심으로 굉장히 강력한 듀오를 형성했으며, Sanders가 엄청난 순수 스피드를 지녔으며 스타성과 언론의 관심을 즐기는 스타일이었다면, Jordan은 (상대적으로) Sanders보다는 덜 까불거리는 성격이었으나 더 저돌적이고 강한 태클러였다. 이 둘은 1991년 Falcons를 하위권팀 Falcons를 플레이오프에 진출시켰고 둘 다 Pro Bowl에 출전했는데, 이 시즌을 마지막으로 Jordan이 NFL을 떠난다고 했으니 Sanders도 섭섭할만 하다. Sanders는 Jordan이 풋볼에 집중한다면 훌륭한 커리어를 쌓을만한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 당시 Sanders는 그의 ML 커리어에서도 정점을 찍고 있었는데, 1992년 Braves에서 97경기만에 WAR 3.1을 기록했으며 무려 14개의 3루타로 .304/.346/.495의 아름다운 슬래시라인을 찍는다 (좌타자였던 Sanders는 Turner Field의 깊은 우측 외야의 덕을 제대로 이용했다). Deion "Prime Time" Sanders에게 있어서 당시 MLB와 NFL을 겸업하며 6M을 받는 것은 충분히 실현 가능한 일이었다.

(Source: LA Times)

앳된 Brian Jordan



1992-1994년: 4th Outfielder

힘든 결정을 하고 야구에 전념한 첫 시즌. 1992년 4월 8일, 개막전 로스터에 이름을 올린 Jordan는 4월 8일 선발 우익수로 데뷔에 성공했으며, 데뷔전에서 5타수 2안타 4타점에 도루까지 기록하는 만점 데뷔전을 치렀다. 그러나 5월 중순 Hamstring 부상으로 DL에 올라가면서 일이 꼬였다. 복귀 후에도 Jordan은 타석에서 너무 뻔하게 수를 읽히는 모습을 노출하며 스트라이크 존 바깥쪽으로 유인구를 매번 쫓아가는 (chase) 모습을 보여 Torre 감독의 신임을 얻지 못해 결국 4th Outfielder로 AAA와 ML를 왕복하며 한 시즌을 보냈다.

이 시기 Cardinals 감독이었던 Joe Torre는 Bernard Gilkey-Ray Lankford-Brian Jordan의 자체생산 외야수 3명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이 중 Jordan의 출장기회에 있어서 상당히 인색한 면을 보였다. 풋볼과 야구를 병행하던 Jordan은 타자로써 ML에서 롱런하기 위한 Plate Discipline이 준비가 안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는 훌륭한 배트 스피드로 Fastball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쳐냈으며, 웬만한 빠른 공에는 눌리지 않는 큰 장점이 있었다. 1993년~1994년 그는 각각 1.0과 1.1의 WAR를 기록하며 벤치에서 충분히 제 역할을 해냈으나, 대학을 졸업하고 프로에 온지라 1994시즌이 끝났을 때 이미 그의 나이는 27세였다. 

훗날 Jordan은 "이 시절 경기 출장 기회가 적다보니까 매 경기 깊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정말 몸을 사리지 않고 뛰었다" 고 말했다. 뼛속까지 밴 그의 Football Mentality는 그가 웬만한 잔부상은 그냥 참고 뛰도록 만들었고, Jordan은 타구가 날아오면 마치 그 공이 상대 러닝백이나 리시버인 마냥 냅다 달려가 몸을 던졌다. 그리고 그러한 자세로 외야 전 포지션을 모두 소화해냈다.


제스처를 보아하니 그랜드슬램이 터진 것 같은데...이 경기의 날짜를 맞춰보실분?



1995년: 주전 발탁

1995년 4월26일, 느즈막히 열린 개막전에서 Brian Jordan은 주전 우익수로 선발 출장, 첫 타석부터 Curt Schilling을 (이 양반 정말 자주 나온다!) 상대로 적시타를 치며 첫 시즌을 상큼하게 시작했고, 이 경기에서 투런홈런 포함 2안타 3타점으로 팀의 승리를 이끌며 주전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시즌 중 Torre가 경질되고 새로 Mike Jorgensen이 부임하면서 Jordan의 입지는 더욱 굳어져갔다. Jorgensen은 "BJ는 그가 이미 최고 수준의 리그에서 플레이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면서 그를 Lankford와 Gilkey 앞에 3번타자로 투입하는 신뢰를 보였고, Jordan는 자신의 첫 풀시즌에서 525PA에서 22홈런 81타점 24도루, .296/.339/.488에 WAR 4.5를 기록하는 굉장히 훌륭한 시즌을 보냈다.

Jordan의 공/수/주 모든 면에서 경기의 흐름을 바꿀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Lankford가 먼저 자리를 잡았기에 우익수를 맡았을 뿐, 다른 팀이었다면 충분히 CF로 통했을 Range를 갖추고 있었다. 또한 탁월한 센스와 순발력으로 도루 성공률도 높았다. 7월 25일 Mets전, 1회에 솔로 홈런, 3회에 투런을 친 Jordan은 연장 11회말 1사 1,2루에서 끝내기 안타를 치며 사실상 혼자 힘으로 팀의 8:7 승리를 이끌었는데 (이 경기 WPA+ .609), 이는 2012시즌 초 (결과가 달라서 그렇지) Braves 전에서 혼자 북치고 장구친 현 Cardinals 우익수 (공교롭게도 둘 다 백넘버 3번이다) 가 생각나는 기록이다. 

"I feel like this is really my rookie season. They're finally letting me play all the time. I know they expected Lankford to do it, but they didn't really know what to expect from me."

-Brian Jordan, on becoming a full-time player


1995시즌이 끝남은 곧 Jordan이 1991년에 맺은 3년간 2.4M의 Baseball-Exclusive 계약이 만료됨을 의미했다. 28세의 Jordan은  충분히 이 때도 NFL로 돌아갈 수 있었고, 실제로 그를 다시 NFL로 부르는 구단들도 있었다. 그러나 1995년 말, Cardinals는 Jordan에게 3년간 9M 과 500K의 사이닝 보너스가 추가된 계약을 안겨주면서 다시 그를 야구에 붙들어놓았다.

1996년: Mr. Clutch

TLR 부임 첫 해, Gilkey가 Mets로 트레이드되고 베테랑 Gant가 합류하면서 Ron Gant-Ray Lankford-Brian Jordan의 제1대 '간지외야' 가 탄생했다. 이 해 팀 멤버가 많이 바뀌면서 타순을 어떻게 짤까 고민하던, TLR은 뛰어난 운동능력과 빠른 발을 갖고 있는 Brian Jordan을 Leadoff로 쓸 생각을 했다. 이에 5월말, 6월초에 이르러 Jordan로  Leadoff로 투입하는 실험을 11경기에 걸쳐 진행했는데, Jordan은 1번타자로 나서서는 45타수 10안타 .222/.260/.311의 굉장히 저조한 성적을 냈다. 이에 Jordan은 TLR에게 자신은 Leadoff 타입이 아니라며 이 실험을 그만하자고 말렸고 (그도 그럴 것이, Jordan의 통산 BB%은 6.3에 불과하며, 첫 풀타임이였던 1995년에는 고작 4.2%에 그칠만큼 볼넷을 고르는데 흥미가 없었다), 자신은 무조건 타점을 올릴 수 있는 타순에서 뛰고 싶다고 얘기했다.

결국 Jordan은 시즌 내내 중심타선에서 활약하게 되었는데, 이 시즌을 기점으로 Jordan은 "Mr. Clutch"로 불리며 TLR에게 보란듯이 타점을 쓸어담기 시작했다. 이 시즌 Brian Jordan의 득점권 성적은 다음과 같은데, 우리가 그토록 칭찬했던 2012시즌 Allen Craig의 득점권 성적도 Jordan에 비하면 남루해보일 지경이다. (특히 맨 밑에 만루 성적에 주목하시길;)

Brian Jordan in RISP (1996)

Split G PA AB H 2B 3B HR RBI SB CS BB SO BA OBP SLG OPS TB
RISP 104 173 147 62 11 0 10 93 11 1 13 19 .422 .453 .701 1.154 103
--- 128 303 287 76 22 1 6 6 0 0 12 45 .265 .304 .411 .715 118
Men On 120 257 226 83 14 0 11 98 22 5 17 39 .367 .404 .575 .979 130
123 25 24 19 13 5 0 1 31 0 0 1 1 .684 .625 1.105 1.73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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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rdan은 시즌 초 Wrist Soreness로 첫 2주를 결장한 이후에는 거의 전경기를 소화하며 140경기에서 17홈런 104타점 .310/.349/.483의 성적을 기록하며 팀의 Playoff 진출에 큰 공헌을 했고, 이를 인정받아 MVP 투표에서도 8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이는 Jeff Bagwell보다 높은 순위, WAR은 5.2였다) 당시 Jordan은 득점권에서는 "내 뒤엔 아무도 없다" 는 식으로 파워업, 굉장한 집중력으로 어떻게든 주자를 불러들이는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으며, 볼넷을 골라나가나는 데는 전혀 흥미가 없었다. RISP에서 그가 가진 173PA 중 볼넷은 단 13번이었는데, 그 중 고의사구가 4개였다. Jordan은 "넌 피해라 난 칠테다" 식의 진정한 타점 오타쿠였다.

플레이오프에서도 Jordan의 활약은 훌륭했다. 하이라이트는 1996년 NLDS 3차전. 9회초 5:5 로 맞선 상황에서 상대 클로저 Trevor Hoffman이 던진 슬라이더가 밋밋하게 몰리자 Jordan은 이를 그대로 좌측 담장으로 넘겨버리는 투런홈런으로 7:5 승리를 가져온다. (이 홈런은 Hoffman의 Cardinals 상대 흑역사의 일부분일 뿐이다ㅎㅎ). 

``I wasn't comfortable and happy and I let that affect my game. Whether it's hitting third, fourth or fifth makes no difference to me. As long as I'm going to have an opportunity to drive in runs, I'm going to be comfortable.''

-Brian Jordan, on his return to 4th spot



1997년: 부상

96시즌의 활약으로 Jordan은 Fan-Favorite 위치에 올라섰다. 미친듯한 타점본능과 굉장한 도루능력도 그랬지만, 몸을 전혀 사리지 않으며 이 펜스 저 펜스에 온몸을 던지는 그의 허슬은 어떤 야구팬들도 미워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Jordan의 바로 옆 자리에서 뛰던 중견수 Ray Lankford가 "그렇게 하다간 몸이 남아나지 않는다"며 "You can't keep running into those walls"라고 경고하기도 했었으나, 풋볼 멘탈리티로 무장된 Jordan에게는 동물적인 반사신경이 우선이었다.

1997년 5월 첫째주, Jordan은 스프링 트레이닝부터 자신을 괴롭혀왔던 Low-back 문제로 결국 DL에 오르고, Herniated Disc (추간판 탈출증으로 일종의 허리디스크가 아닐까 싶다), 6월 중순까지 약 6주를 결장한다. 복귀 후에도 2주만에 다시 통증을 호소, 또 DL로 올라가며 1997시즌을 사실상 망쳐버렸다. 허리가 받쳐주질 못하니 그의 장타율은 0.269로 급락했고, 스윙은 무너질대로 무너져서 161PA에서 .234/.311/.269에 그쳤다. Jordan의 공백은 John Mabry와 Willie McGee가 돌려가며 막았다.

맥과이어와 그의 조연들




1998년: 커리어 하이

St. Louis에서의 마지막 시즌. 허리 부상에서 돌아온 Jordan은 5월 한달간 무려 .424의 타율을 기록하면서 커리어 하이 및 FA 대박을 향해 힘찬 스타트를 끊었으나, 언론의 관심사는 오로지 McGwire의 홈런 레이스 뿐이었다.  그의 타율이 6월 중순 한때 .343에 이르며 NL 리딩히터 타이틀의 강력한 후보로 부상했을 때에도 경기 후 Jordan에게 오는 기자는 한 두명에 불과했으며, 그마저도 팀 동료의 신기록 페이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관한 것이었다. 이에 McGwire는 Jordan의 재능과 그의 1998시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He is a great, great player. He's better than Bo Jackson. He's a two-sport player. He was an All-Pro. He's leading the league in hitting. He's in his free-agent year. There are so many things to talk about with him, and I've seen maybe one thing written about him this year.........................He's just learning how to play the game. He's been playing on raw talent. It's scary to think what he can do when he really understands the game.

-Mark McGwire, on Brian Jordan and his superstardom (1998)



이 신기록 드라마에 Ray Lankford와 함께 조연으로 출연하기로 한 Jordan은 Lankford와 함께 이 역할을 사이좋게 나누었다. Lankford가 4번을 칠 때는 Jordan은 보통 2번 타순에서 McGwire 앞에 주자를 안내보내려던 투수들을 심히 응징했고, 그가 4번을 칠 때는 마음놓고 타점 찬스를 즐겼다. Lankford가 전반기보단 후반기에 McGwire의 크게 도왔던 반면, Jordan은 전반기에 무려 .339/.385/.576의 공포스런 성적과 함께 15홈런 56타점을 기록하며 McGwire의 전반기 홈런 쌓기에 크게 일조했다. 비록 7~8월에 월간 타율이 2할대에 머물며 결국 타격왕과는 거리가 먼 성적에 그쳤으나, FA 계약을 따내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성적이었다. (WAR 6.8, 25홈런 91타점 17도루, .316/.368/.534)


Braves로 이적

FA를 앞두고 Jordan은 풋볼로 복귀할 의사가 있음을 언론에서 밝혔는데, 이에 Cardinals 측에서는 "이건 그냥 협상용 뻥카"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Jordan은 1991년 야구에 집중하기로 한 후에도 꾸준히 풋볼에 대한 사랑을 밝혀왔고, St. Louis에 있는 동안에는 St. Louis Rams 풋볼팀을 찾아가 트레이닝을 지켜보기도 하고, 팀이 원정을 떠났을 때는 시간이 날때마다 그 도시에 있는 풋볼팀에 찾아가 구경을 하고 옛 동료들과 조우하곤 했다.  또한 자신의 풋볼 백그라운드를 자랑스럽게 여겼으며, 시즌이 끝난 후 "NFL팀을 물색해볼 생각이 있다" 고 공언했다.

전 정말 풋볼이 좋은걸요?


어차피 드래프트에서 J.D. Drew라는 완성형 대졸 외야수를 뽑아놓은 Cardinals 입장에서는 부상 위험을 안고 있으며 Club-friendly 계약을 맺을 생각이 전혀 없는 Brian Jordan을 굳이 애써가며 붙잡을 이유가 없었다. Jordan은 St. Louis에서의 생활을 즐겼으며, Cardinals 팬들 사이에서 인기도 많았으나, 프로 운동선수로써 큰 계약을 따내고 싶은 의지가 더더욱 강했다. 오프시즌, Jordan은 Orioles와 Braves 두 팀을 놓고 저울질을 했다. Orioles는 자신의 고향 Baltimore 연고팀이었고, 외야수를 보강할 생각이 있는 팀이었으나, 더 강한 어필은 Atlanta Braves로부터 왔다. Atlanta는 대학에서 만난 아내 Pam Jordan (All-conference Team 에 선정된 농구선수이다) 의 고향이었으며, 현재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는 도시였다. 게다가 Jordan은 자신의 커리어 초창기를 Atlanta Falcons에서 보냈기에 각별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Braves 단장이던 John Schuerholz는 처음부터 Jordan을 타겟으로 생각하고 자리를 만들기 위해 Denny Neagle과 Michael Tucker를 묶어서 Bret Boone과 바꾸는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그리고 11월 23일, Jordan은 마치 처음부터 원했던 것처럼 Braves과 5년간 40M의 계약을 체결하고 Braves 유니폼을 입는다. 드래프트 때 Jordan을 놓쳤던 Orioles는 Jordan에 관심이 있었으나 Braves가 선수를 치자 곧장 대어 Albert Belle을 질러버리고 만다. 이 당시 Braves 못잖게 Jordan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Mets였는데, 그들은 5년 35M 수준의 선에서 더 이상의 오퍼는 하지 못하고 물러났다. Mets는 이후 Jordan에게 크게 데이게 된다.


1999-2001년: Braves 시절

Braves로 옮긴 첫 시즌 Jordan은 전반기에만 무려 17홈런 71타점을 올리며 팀 공격을 거의 혼자 이끌다시피 했으나, 후반기에 타오르던 방망이가 급격히 식어버렸다. 여전히 그는 득점권에서 무서운 타자였고 (득점권 .316) 붙박이 4번을 치기에 적격이었으나, 나이로 인해 그의 좌투수 상대 장타력과 우투수 상대 장타력은 조금씩 차이가 나고 있었다 (커리어 초기 Jordan의 좌우 스플릿은 상당히 균등한 편이었다). 

비록 후반기에 6홈런을 추가하는 데 그치긴 했으나 Jordan의 방망이는 다시 플레이오프에서 타올랐다. 1999년 Astros와의 NLDS 2차전에서는 결승 희생플라이를 치며 Millwood의 완투승을 도와줬고, 3차전에서 Jordan은 6회초 당시 리그 최고의 좌완투수 반열에 올라있던 Mike Hampton을 상대로 역전 쓰리런을 후리며 4경기에서 1홈런 7타점을 기록해 Braves 팬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다. Mets와의 NLCS에서도 Kenny Rogers 상대로 결승 투런을 치며 2차전 승리에 크게 일조했으며, 4차전에서는 7회까지 흑마술같은 피칭으로 1:0 완봉을 할 기세이던 Mets 선발 Rick Reed를 상대로 동점홈런을 때렸다 (이어서 Klesko의 Back-to-back으로 역전, 그러나 John Rocker가 불지르면서 패배. 이 NLCS도 정말 재미있었다.)

2000시즌 Jordan은 시즌 내내 허리통증을 안고 싸웠으며, 통증을 줄이기 위해 타격 메카닉과 스탠스에 손을 댔다가 오히려 결과를 악화시키며 실망스러운 성적을 냈다. 17홈런 71타점을 뽑아내긴 했으나 우투수 상대 타율이 0.223에 그치는 등 전체적으로 Braves가 기대했던 모습은 아니었고, 슬래시라인도 .264/.320/.421로 풀타임 외야수가 된 이후 가장 안좋았다. 

2001년 Jordan은 다시 St.Louis 시절로 수정했고 제대로 반등했다 (25홈런 97타점 .295/.334/.496). A. Jones와 C. Jones 사이에서 그는 절대 꿀리지 않는 성적을 냈고, 오히려 Andruw Jones보다 많은 어시스트를 기록하는 작은 위업을 이뤄냈다. 또한 그는 약해진 무릎 때문에 도루를 많이 시도하지는 않았으나, 후속타시 Extra Base를 따낼 확률에서는 71.2%로 NL 1위를 기록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넘어서, Jordan은 96시즌부터 이어져 온 그의 "클러치" 모드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Rise up to the occasion, Mr. Jordan


9월 23일, 2경기차로 추격중이던 Mets와의 경기. 한때 13경기까지 벌어졌던 차이를 엄청나게 줄인 Mets는 홈에서 벌어진 시즌 막판 Braves와의 3연전을 스윕하기 위해 에이스 Al Leiter를 냈다. Leiter는 8회까지 Braves 타선을 3안타 8K 1실점으로 막았다 (Braves 선발 Glavine) 그리고 4:1로 뒤지던 9회초 Mets 마무리 Benitez가 올라왔는데, 2사 1루에서 Brian Jordan이 보란듯이 투런을 작렬하면서 분위기가 묘하게 흘러갔고, 이어서 B.J. Surhoff의 극적인 동점 적시타로 경기가 연장에 접어들었다. 연장 11회 선두타자로 들어선 Jordan이 또 솔로홈런을 치면서 Braves의 5:4 승리. Mets는 이 경기에서의 패배로부터 회복하지 못했다.

6일 후, 이기면 Braves가 10년 연속 지구 우승을 결정짓는 경기가 또 Mets 상대로 벌어졌다. 또 이 경기에서 Mets는 Leiter의 호투에 힘입어 5:1의 리드를 안았고, 9회에 Benitez를 또 투입했다. Benitez는 결국 Marcus Giles에게 2타점 2루타를 허용하면서 멀쩡하던 경기를 드라마로 만들었고, 2사 2,3루에서 마운드를 John Franco에게 넘겼다. Franco는 Wes Helms를 거르고 이 날 4타수 무안타이던 Jordan을 상대했다. 결과는 끝내기 만루홈런, Braves 8:5 승리, 10년 연속 지구 우승 확정. 이 다음 날 Jordan은 또 쓰리런 홈런을 쳤다. 


1999-2001년 3년간 Brian Jordan은 Braves의 중심타선에서 10.3의 WAR를 기록했는데, 같은 기간동안 그의 후계자인 Drew가 Cardinals에서 12.5의 WAR를 찍은 걸 생각하면 (Cards 입장에서는) 수지타산이 맞는 성공적인 세대교체였다. 데뷔가 늦었던 Jordan은 1998년 St. Louis에서의 임기(?) 가 끝났을 때 이미 만 서른 하나의 나이였고, 그가 96년과 98년에 보여준 공격력은 이제부터 조금씩 내리막을 걷는다고 봐야했었다. Jordan은 지역 사회에서의 왕성한 자선활동과 특유의 클러치능력, 그리고 플레이오프에서의 좋은 활약으로 지역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는 성공적인 시간을 보냈으며, Braves 입장에서도 3년을 잘 써먹고 Dodgers로 보냈으니 결코 나쁜 FA 계약은 아니었다.


Talent-wise, he's a Gold Glove outfielder and a great player. But he plays so hard he abuses himself. To get to that echelon of the top guys in baseball, you have to play 140 games a year. He beats himself up. When he's out there, he puts on a show, but for him to take his place among the elites, he will have to generate enough games."

-Tony La Russa, on Brian Jordan





총평

비록 Bill James가 한때 "Most Inconsistent Player of all-time"으로 뽑긴 했으나, Jordan은 풀타임 주전으로 발탁된 95년부터 2002년까지 단 한 시즌 (폭망했던 1997시즌)을 제외하고는 소속팀을 위해 매해 최소 128경기 515PA 이상을 뛰었으며, 4차례의 90타점 이상 시즌과 6차례의 타율 .280 이상 시즌을 제공했다. 95~2002년까지 Jordan은 8시즌에 걸쳐 30.8의 WAR를 적립했는데, 이는 같은 기간동안 NL에서 15위에 해당하는 수치이며, Barry Larkin과 거의 같은 수준이다. Jordan은 대학 졸업 후 풋볼과 야구를 병행한 기간이 길었기에 드래프트 후 7년만인 1995년 (만 28세)이 되서야 주전으로 자리를 잡았으며, 만약 조금 더 일찍 자리를 잡았다면 더욱 화려한 커리어를 보낼 수 있는 재능이 있던 선수였다. Greg Maddux와 Tony Gwynn이 야구를 예술처럼 하는 법을 보여주었다면, Brian Jordan 같은 선수들은 야구의 가장 야성적인 면을 드러냈던 선수들로 기억이 된다. 

Jordan의 최대 약점인 동시에 최대 매력은 공수에서 모두 볼 수 있었던 풋볼 선수 특유의 Aggressiveness 였다. 수비에서 그는 Edmonds 못지않게 멋진 장면들을 많이 연출해냈으며, 엄청나게 뛰어다니면서 몸을 던져 벽에 충돌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또한 그는 "풋볼에서 그렇듯, 내가 몸을 사리기 시작하면 더욱 다칠 것" 이라고 얘기했다 (Jordan은 풋볼 대신 야구를 선택한 결정은 후회하지 않지만, 매 경기 사이의 회복시간이 짧은 야구가 풋볼보다 부상 당하기 더욱 쉬운 종목인 것 같다고 회고했다.)  또한 타석에서도 그는 1995~1999년까지 2000타석 이상 출장한 선수들 중 5번째로 안좋은 BB% (6.3)을 기록할만큼 (1위 Mark Grudzielanek) 극악의 참을성을 보였는데, 본인 또한 이 문제를 알고 있었다.

"There is so much to learn and I am trying to pick up on things. The one thing I haven't learned is patience. I have almost 200 at-bats and I have only five walks. If I took some walks, I could be hitting .400 right now, but I swing at a lot of bad pitches."

-Brian Jordan, on his plate discipline


그러나 Jordan은 자신의 타격 어프로치를 수정하고 보완하는 것보다 자신의 강점을 최대한 살리는 데 주력했으며, 이 전략은 그대로 먹혔다. 이에 Jordan은 2001년까지 리그에서 가장 Fastball을 잘 치는 타자 중 하나로 꼽혔으며, 초구 공략도 몹시 즐겼다. 또한 몸쪽으로 들어오는 빠른 공들을 빠른 배트스피드로 응징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으며, 나이를 먹어서도 수비와 주루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였고 클럽하우스에서 리더 역할도 발벗고 나섰다 (물론 Cardinals 시절에는 McGwire와 Lankford 앞에서 대장 노릇을 할 순 없었다. 그의 Veteran Leadership은 Braves와 Dodgers에서 크게 가치를 인정받았다.) 

Jordan은 2004년 Rangers와의 계약이 끝난 뒤 2005년과 2006년 Braves로 돌아와서 두 시즌을 더 백업멤버로 뛰고 은퇴했으며, 개인적인 소망이라고 누누히 밝혔던 200홈런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184홈런). NFL와 MLB 에서 모두 올스타에 선정된, 생각해보면 굉장히 대단한 기록을 가지고 있는 그는, 이 두 차례 올스타를 모두 Atlanta 팀 소속으로 했으며 현재 Atlanta에서 Brian Jordan Foundation 이라는 자선기금(주로 아동 교육과 소아복지를 위한) 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Braves 경기 Pre-game Analyst로 활약하고 있으며, Braves AAA팀 중계까지 하고 있다고 하는데, 커리어의 절반인 7시즌을 Cardinals에서 보내고 5시즌만을 Braves로 (게다가 중간에 트레이드까지 한) 보냈음을 생각하면 조금 서운하기도 하다. 


When I hit one, the first thing I feel is relief. Then, I circle the bases, I feel on the top of the world, I've conquered that pitching, I am the king.

-Brian Jordan, on hitting home runs



by Doov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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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FreeRedbird 2013.02.14 13:51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Brian Jordan은 제가 메이저리그에 재미를 붙이고 한참 열심히 보던 시기에는 이미 Braves 유니폼을 입고 있었죠. 특유의 근성과 공격적인 어프로치는 요즘 Kevin Towers와 Kirk Gibson이 좋아할 만한 모습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저는 TLR의 말이 맞다고 생각하는데요. 부상 안 당하고 건강을 유지하는 것도 skill입니다. 많은 경기를 출장하는 것은 정말 가치있는 일이죠.

  2. Q1 2013.02.14 15:17 Address Modify/Delete Reply

    이 분, 노장이 되어서도 루키 같이 야구 했던 기억이...
    그래도 클러치 상황에서 괜찮았다고 기억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요.

  3. BlogIcon FreeRedbird 2013.02.14 18:37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Brian Jordan 덕에 풋볼 이야기가 본문에 많이 나왔으니 풋볼 관련 잡담을 조금만 해 볼께요.

    얼마전에 사람들하고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1984년 오렌지볼 이야기가 나왔었거든요. 당시 터치다운 성공으로 31-30 1점차까지 따라붙은 상황에서, 그때까지 시즌 내내 전승을 기록중이던 Nebraska Cornhuskers의 감독 Tom Osborne은 킥 한방으로 동점을 만들면 무패 기록으로 우승(당시엔 연장전이 없었다네요)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동점을 포기하고 대신 확률이 낮은 2점짜리 conversion을 시도했고요. 결국 이 마지막 공격이 실패하여 Miami에게 승리를 내줬습니다. 비록 경기를 지고 무패 기록도 깨졌지만 Osborne의 이 대담한 결정과 "경기는 이기려고 하는 것이다. 비기는 것 따위 생각하지 않는다"는 그의 경기후 인터뷰는 전설로 남았습니다.

    우리의 이야기는, 만약 한국에서 결정적인 순간에(예를들면 한국시리즈 7차전 같은) 스포츠 지도자가 이런 류의 결정을 내렸다가 경기를 패한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거였습니다. 팬들은, 또 언론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Osborne은 이후에도 계속 UNL의 감독으로 남아 90년대에 전미 챔피언쉽을 세번이나 제패하며 결국 역대 최고 명장 중 한 명으로 손꼽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과연 그렇게 계속 기회를 줄 수 있었을까요... 뭐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ㅎㅎ 스포츠에서 이런 모습을 좀 더 많이 봤으면 좋겠다는 바램은, 조금 무리일까요? 저는 물론 saberist 이고, gut보다는 확률을 지지하는 사람입니다만, 역시 스포츠는 이런 맛에 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 BlogIcon jdzinn 2013.02.14 20:43 신고 Address Modify/Delete

      모든 스포츠팬이 갈구하는 두 가지가 승리와 감동일텐데요. 특정 팀이나 선수를 응원하는 매치에선 결국 승리가 전부이거나 감동은 그저 승리에 딸려오는 부산물이 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경기는 간지가 철철 흘러 넘칩니다만 만약 그게 단두대 매치였다면 해당 팀의 팬으로서 지지할 수 있었을지 자신 없군요.

      저의 경우 이게 다 첼시 탓인 듯한데 역시 연아가 짱입니다♥ㅋㅋ

    • yuhars 2013.02.14 22:34 Address Modify/Delete

      개인적으로 Tom Osborne은 이미 팀 성적이 바탕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저런 선택과 발언이 전설로 남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팀은 저 경기에서 패배했지만 Tom Osborne은 한시즌 동안 단 1패 밖에 하지 않은 감독이죠. 사실 "경기는 이기려고 하는 것이다. 비기는 것 따위 생각하지 않는다"라는 발언도 Tom Osborne처럼 많이 이긴 감독이 해야 간지나는 발언이지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어느나라에서건 루징팀 감독이 저러한 말은 한다면 '이기지도 못하면서 말만 많네' 라면서 비난이 엄청 폭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사실 전승우승을 못했다고 감독을 경질시킬만한 깡다구가 있는 구단도 없을것이구요. 물론 우승해도 재미가 없다는 이유로 카펠로를 경질한 레알 마드리드라는 변태같은 구단이 있긴 합니다만-_-; 이건 예외적인 경우이기도 하고 챔스 성적 부진과 낮은 승점 우승이라는 핑계가 있긴 했었죠.(여담이지만 레알의 감독 갈아치우기라는 변태짓을 첼시가 따라하고 있으니... 첼시를 응원하시는 jdzinn님은 로만의 조급증이 정말 답답하실것 같습니다.)

      아무튼 제 생각은 한국이건 어느 나라건 Tom Osborne처럼 좋은 성적으로 능력을 보여준 감독이라면 결정적인 경기에서 낮은 확률을 선택해서 패배하더라도 팬들이나 구단은 다 이해 해줄거라고 봅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결정적인 순간에 패배를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요. 결국 어느나라에서건 프로스포츠에서 활동하는 프로팀인 이상 스포츠의 감동과 로망은 좋은 팀 성적이 바탕이 되어야 따라오게 된다는건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물론 그 사이사이에 선수나 감독 개개인의 스토리에 대한 감동과 로망도 존재하고 있다고 보지만요.

      결론은 역시 연아가 짱입니다.(2)ㅎㅎ

    • BlogIcon skip 2013.02.15 00:06 Address Modify/Delete

      저도 위의 두분과 같아요. osborne은 처음 들어보는데, 살짝 보니 73년 감독 임명 첫 해에 orange bowl 먹고, 이후 84년까지 한번의 우승과 2번의 준우승을 더 먹었더군요. 이런 누적된 명성과 실적이 든든히 자리잡았기에 논란없이 기회가 주어지고, 또 그 기회를 바탕으로 전설로 자리메김하게 되지 않았나 싶어요. 그리고 yuhars님이 말씀하신 것 처럼, 누가 봐도 '자격' 되어뵈는 양반이 말하니 '간지'가 되는 것이지, '실적'없는 애송이가 말하면 되도 않는 '허세' 취급받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감동과 로망은 좋은 팀 성적, 또는 트로피가 옆에 있어줘야만 따라오게 된다는 건 어쩔 수 없다란 말씀 역시 공감하구요.

      결국 성적이겠죠. 2년 전인가 3년 전인가 제가 살던 곳 근처의 saint mary가 근방 사람들에게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건 결코 경기가 재미있어서도, 뭔가 시스템이 선진적이어서도 아닌 별 거 없는 개미만한 사립대가 sweet 16에 올라가서 였겠고, butler가 한참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 것 역시 2년 연속 final 4진출 때문일테니. 특별한 몇몇 케이스를 제외하면 '감동'이란 부분도 사실 '성적'과 굉장히 밀접하지 않나 생각이 드네요.

    • BlogIcon jdzinn 2013.02.15 02:42 신고 Address Modify/Delete

      사실 저는 로만의 감독 경질에 큰 이견이 없습니다. 스콜라리, 보아스야 팀을 지옥 끝까지 끌고 갔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고, 디명수는 슈퍼컵 때 붙어봐서 아시겠지만 전술적 역량이 제로에 수렴하는 분이었지요. 베법사는 뭐 말도 하기 싫고 결국 논란의 여지가 있는 건 안첼로티 뿐이었는데요. 저는 이 양반이 싸놓은 똥 치우다가 망한 보아스에게 동정을 느낄 정도라서 그닥...

      하여튼 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던 무리뉴 경질이 로만의 원죄인 셈인데 지금은 본인도 반성하는 것 같으니까요. 오히려 토레기, 셰바 같은 개뻘짓 선수 영입에 관여 좀 안 하길 바랄 뿐입니다. 페예그리니 데려와서 길게 눌러 앉혔으면 좋겠어요.

    • Q1 2013.02.15 10:06 Address Modify/Delete

      제 기억이 맞다면 라소다도 88월시 1차전에서 그랬죠 9회 2사주자 없을때 대타 안 쓰고 참았다가 주자하나 나가니 깁슨 대타 써서 역전 투런 나왔었죠 경기후 인터뷰에서 비슷한 발언 했을겁니다 야구 이기려고 한다고 ㅋ 그때패장이 글고보니 TLR이네요

    • lecter 2013.02.15 14:15 Address Modify/Delete

      전 감독이 그동안 성적 잘 내던 감독이어도 무지하게 욕 먹을거라고 봅니다. 이후에 어떻게 기억되는지는 나중 문제고...

    • yuhars 2013.02.15 16:01 Address Modify/Delete

      폐예그리니는 정말 좋은 선택이죠. 그런데 이양반도 레알에서 팽당한 경험이 있는지라 과연 첼시로 가려고 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_-; 그러고 보면 확실히 감독 갈아치우는것 보다 로만의 선수영입 관여가 더 크긴 크네요. ㅎㅎ

    • doovy 2013.02.15 16:28 Address Modify/Delete

      저는 1984년 오렌지볼 이야기를 이번에 처음 접했는데요, 이 상황의 특수성이 흥미로워서 요 며칠 계속 생각을 해봤습니다.

      일단 마지막에 동점을 포기하고 conversion을 시도한 부분에서 Osborne의 결정은 동감하기가 힘든데요, 저는 감독이 팀을 단순히 이끄는 책임 뿐 아니라 '승리로' 이끄는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승리로 이끄는 것은 "능력" 과 "조건" (가령 강력하고 두터운 로스터 ㅎㅎ) 이 받쳐줘야겠지만, 이 둘이 있는 상황이라면 개인적인 가치관의 반영 (비기는 것 따윈 승리가 아니야 하는 마인드) 보다는 팀과 팀을 지지하는 사람들에 대한 고려가 반드시 있어야한다고 생각하는데요.

      만약 우리가 익숙한 룰에서 경기가 치러져서 동점으로 경기가 끝날시 OT를 가는 상황이었다고 해도, 무조건 킥을 해서 일단 동점을 만들고 봐야했다고 봅니다. 하물며 31:31이면 National Title을 갖고오는건데 말이죠.

      잘 모르긴 해도 Osbonre의 커리어와 인터뷰를 보니 대단한 승부사였을 것 같은데, 승부사라는 이 애매한 칭호는 "얼마나 많은 명승부를 연출했냐" 라는 굉장히 낭만적이고 모호한 기준에 많이 좌우되는 반면, "그래서 결과적으로 몇 번 이겼고 얼마나 우승했냐" 는 기준과는 많이 별개인 것 같다고 봅니다 (미디어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겠죠.

    • doovy 2013.02.15 16:38 Address Modify/Delete

      사족을 달자면 Osborne의 결정을 비난하는 이들 중엥선 이런 의견도 있었습니다.

      31:17로 Nebraska가 뒤지고 있을 때 (Two-touchdown-deficit이죠) 7분이 남고 터치다운이 성공했습니다. 만약 Osborne이 정녕 "Play for the win, not for a tie" 멘탈리티였다면, 일관성있게 첫번째 터치다운부터 2-point-conversion 플레이를 시도했었어야 했다는 겁니다. 당연히 conversion 플레이를 한번 시도하는 것보단 두 번 시도하는 것이 더 확률이 높고, 그렇기에 최대한 시도 횟수 (conversion attempt)를 늘렸어야 한다는 거죠. 그렇게되면 경우의 수가

      1) 첫 conversion이 만약 먹혔다면 31:25가 되서 두번째 터치다운이 나왔을 적에 엑스트라 킥을 당연히 선택해서 32:31로 승리했을거고

      2) 첫 conversion이 실패했어도 31: 23이 되서 두번째 터치다운이 나왔을 때 생각할 것도 없이 다시 conversion을 시도했을 것이고 (현실과 같은 상황이죠) 만약 성공한다면 공동 우승

      3) 2번 상황과 똑같이 가다가 마지막에 실패하면 패배이니, 경우의 수 3개 중 2개가 우승으로 끝난다, 뭐 이런 논지였습니다.

      이 논리를 처음에 보고는 그럴듯 했는데, 이것도 편협한 결과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서 간과하면 안되는 것이 여러가지가 있겠죠. 특히 7분이라는 시간이 남았다면 정말 변수가 많고, Miami가 두번째 터치다운을 허용한다는 정말 대담한 가정을 하고 생각해야 하는 것이니까요 (물론 당시 Nebraska의 전력은 전미 최고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7명의 퓨처 NFL 올스타들이 있었다고 하네요)

      하지만 "결정의 일관성"과 Osborne의 간지나는 "Playing for the win" 멘탈리티 측면에서는 이런 시각에서 나오는 의견도 흥미롭습니다. 주인장님이 제시하신 질문과는 전혀 엉뚱한 소리를 했는데 ㅎㅎ 결과물에 편중된 한국의 언론과 풍토를 생각했을 때 (그리고 그런 환경에서 일해온 야구인들임을 감안해올때) 저런 장면은 거의 나오지 않을 것 같고, 나온다고 해도 절대 좋은 소리를 못들을 것 같네요.

  4. BlogIcon jdzinn 2013.02.14 20:22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헐.. NFL에서도 올스타였군요. 요즘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인데요.

    제가 빅맥빠였던 시절 조던은 '어? 쟤도 꽤 하나보네' 정도의 이미지였습니다. x빠지게 뛰니까 오히려 어수룩해 보였던, 상당히 쏠쏠하지만 뭔가 B+ 느낌의 선수였달까요? doovy님 글 읽어보니 제 생각보단 좋은 선수였던 것 같고 그 햄튼 줘패던 장면이 오버랩 되는군요ㅎ

  5. yuhars 2013.02.14 22:05 Address Modify/Delete Reply

    클러치 성적이 ㄷㄷ이네요. 맷 잉여가 조던의 클러치 능력의 3분의 2만 해줘도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ㅎㅎㅎ

  6. BlogIcon skip 2013.02.15 00:07 Address Modify/Delete Reply

    저는 brian jordan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는데, 두 영역에서 모두 all-star를 경험했다는 건 굉장히 놀랍네요. 풋볼을 했었다는(그것도 아주 잘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7. BlogIcon skip 2013.02.15 00:22 Address Modify/Delete Reply

    오 방금 프레스 컨퍼런스 열렸는데, Mo가 2016년까지 3년 계약 연장, MM의 14년 옵션이 픽업되었네요.

    그밖에... Kelly가 올해는 slider와 curve를 다 레퍼토리에 넣을 것이란 말이나, Rosenthal이 빠다질에 상당히 애착이 있어서 불펜보다 선발을 선호하는 이유 중 하나가 빠따질이란 말과, Freeman이 슬라이더 버리고 knuckle curve를 breaking pitch로 새로 삼았다는 말, CMART가 비자 문제로 스캠 합류가 늦어질 거란 뉴스, Beltran이 NLCS 막판 자신의 몸상태가 거의 죽기 직전이었다 뒤늦게 털어놓은 것 정도 있군요. I was almost dead라니 뭐 이런 -_-;;;

  8. gicaesar 2013.02.15 23:40 Address Modify/Delete Reply

    전 예전에 게임 하면서 그냥 성이 마음에 들어서 가끔씩 쓰고는 했던 선수인데, NFL 올스타까지 했던 선수인줄은 몰랐네요. 대단했군요. 역시 Doovy님 덕에 또 하나 알아갑니다 ㅎㅎ

    여담인데, 새로운 모바일 브라우저를 접한 뒤에 즐겨찾기 하려다가, 일일이 주소 넣기 귀찮아서 뇌입원에 'birdsnest'를 치니 사이트 항목에 뜨는군요. 대단합니다!! 혹 저만 몰랐던 것일까요 ㅎㅎ

    • BlogIcon FreeRedbird 2013.02.18 11:20 신고 Address Modify/Delete

      지금 해보니 사이트 이름이 Birdsnest 라고 나오네요. 이왕이면 제대로 이름이 뜨면 좋겠는데... 포털에 메일 보내면 사이트 이름도 고쳐 주나요?

    • grady frew 2013.02.18 16:54 Address Modify/Delete

      네이버에 네이버 검색등록 입력해서 등록하시면 될거에요. 2010년 2월 23일에 이미 등록된 걸로 나오는걸 보니 주인장님 아이디로 예전에 했었나보네요 ㅋㅋ

    • BlogIcon FreeRedbird 2013.02.19 11:15 신고 Address Modify/Delete

      그러고보니 옛날에 제가 등록신청을 하다가 사이트 이름 넣는 칸이 모자라서 이름이 짤렸던 것 같은 기억이 납니다. 가물가물하네요.. -_-

  9. BlogIcon skip55 2013.02.18 00:30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http://www.stltoday.com/sports/baseball/professional/jim-edmonds-future-cardinals-owner/article_b57b26f3-264a-55f2-84cb-8780f1d416f5.html

    올해도 스캠에 외야수비 가르치러 나타난 jim edmonds가 on field job 보다는 front office 쪽에, 정확히 ownership 쪽에 관심이 있나 봅니다. 언젠가 이 팀의 소액주주가 되거나, 다른 팀 팔릴때 그쪽 컨소시엄에 합류할지도 모르겠군요.

    그리고 MM이 올해 투수들 번트 훈련 강조할꺼라 초겨울부터 언급하더니만, 어제 투수들 번트 대회 했다네요. 뜬금없이 blazek이 우승했습니다. 투수치고 빠따질 썩 괜찮다는 rosenthal이 강력한 우승후보 였다는데, blazek이 먹었네요.

    Already right fielder Carlos Beltran has approached Matheny about becoming a big brother to top prospect Oscar Taveras, whose winter has included several missteps of protocol.

    그리고 이거 Strauss 칼럼에 있던 말인데, Taveras에게 무슨 일 있었나요? 트위터에서도 taveras maturity 타령하던데 말입니다. 무슨 연유인지 비행기 놓쳐서 winter warm-up 늦었던 것(아예 안왔죠 결국) 말곤 별다른 뉴스 없었지 않았나 싶습니다만, 우리가 모르는 일(?)이 있었나 봅니다. 뭐 lohse나 freese도 20대 초반엔 사고뭉치였고, 92년생 핏덩이니 드러내놓고 큰 사고치고 하지 않는다면 점차 성숙해 지겠죠, beltran이 안그래도 특별히 옆에서 끼고 가르치겠다 했구요.

    • BlogIcon jdzinn 2013.02.18 01:00 신고 Address Modify/Delete

      킬러비 출신들이 커리어 말년에 잠깐씩 머물면서 큰 도움 주시네요. 역시 팀엔 이런 베테랑들이 있어야 되는데 카프 나가고 벨트란 나가면 좀 휑하겠어요.

    • lecter 2013.02.18 08:56 Address Modify/Delete

      WBC 참가랑 관련해서 좀 이슈가 있었던 거 외에 또 있나요? 뜬금없이 캐나다 대표로(시민권 있다네요) 출전하겠다고 에이전트와 얘기해보겠다고 했는데..

  10. yuhars 2013.02.18 10:54 Address Modify/Delete Reply

    BA핸드북이 도착해서 보고 있는데 정말 탑30에 가르시아랑 발레라가 없군요. 코즈마가 13위 입니다. -_-;; 코즈마에게 13위를 줄 정도면 가르시아도 그정도 순위에 들어가도 될텐데 BA가 가르시아를 엄청 저평가 하는것 같네요. 그리고 필진별 개인 랭킹에서 칼리스는 갑자기 밀러에게 꽂혔는지 무려 5위를 줬습니다. ㄷㄷㄷ 다른 필진들도 9 - 7 - 11 이런 순이군요. 아마 종합 랭킹에서는 7~10위 사이일것 같습니다. 타베라스는 모두가 3위를 줬고 마르티네즈는 34 - 37 - 27 - 34 로젠탈은 NR - 46 - 35 - NR 이네요. 아마 탑 50에는 이 4명이 들어갈것 같습니다. 암튼 몇년만에 BA핸드북 샀는데 팜 랭킹이 1위라서 그런지 볼만은 하네요. ㅎㅎ

  11. BlogIcon FreeRedbird 2013.02.18 11:08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어느새 판타지 시즌이 돌아왔네요. 올해도 판타지 리그를 해볼까 합니다. 이번주에서 다음주초 사이에 공지가 있을 예정이오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하루에 한 번 정도 블로그를 체크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실은 작년 참가자분들께 먼저 초대메일을 보내고 나서 모자라는 팀만 새로 신청 받을까 했는데... 야후코리아 폐업하고 나서 1월까지 메일을 미국 야후 계정으로 안 옮겼더니 계정이 아예 날아갔더군요. -_-;; 할 수 없이 미국 야후에다가 새로 계정을 팠는데요. 그랬더니 작년 리그 페이지에 접속을 할 수가 없네요...

    • gicaesar 2013.02.18 11:59 Address Modify/Delete

      저도 계정이 날아가서 새로 만들었습니다ㅜㅠ 여러모로 귀찮더군요. 계정 이월기간을 사이트 폐쇄 후 한달밖에 안주다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