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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ovy


이번 주 주인공은 TLR 시대의 대표적 클로저이자 프랜차이즈 세이브 리더인 "Izzy" Jason Isringhausen 이다. 



Jason Isringhausen (Izzy)

Closer

DOB: 1972년 9월 7일 

Birth: Brighton, Illinois 

Time with Cardinals:  2002-2008


Draft and Minors


1991년 드래프트, Mets는 2라운드 전체 66번으로 Virginia 출신의 고졸좌완 Bill Pulsipher를 지명했다. 강력한 패스트볼과 슬라이더 조합을 가지고 있던 6'3인치의 이 어린 좌완투수는 이 드래프트에서 가장 Ceiling이 높은 고졸 투수로 손에 꼽혔다. 그리고 1000명이 넘는 선수들이 지나간 후, Mets는 44라운드, 전체 1156번으로 Illinois의 한 커뮤니티 칼리지에 다니는 19세 선수를 지목했다. 6'3인치의 프레임을 가진 평범한 외야수였다. 고등학교에서 포수를 보았던 이 선수는 팀 주전 포수 경쟁에서 패배해 외야로 밀려나 있었다. 


야구를 커리어로 삼을 생각이 크게 없던 이 어린 선수는 드래프트 지명을 일종의 "여름알바 (Summer Job)" 수준으로 생각했다. 그도 그럴것이, 44라운드 지명 선수가 무슨 포지션에서 뭘 어떻게하든 무슨 상관인가. 현실적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가서 재밌게 놀다오고 끝나면 와서 일할 준비를 해라" 라고 말했고, Isringhausen은 7천달러의 계약금을 받아들고 신이 나서 GCL이 열리는 플로리다로 내려갔다. 이게 우리가 아는 Izzy의 시작이다.

 “My dad said, ‘Go have a fun summer and get ready to go to work when it’s over.’ We both figured it would be a little summer fling thing. For a summer job, it worked out all right.”

-Jason Isringhausen, reminiscing his draft day

GCL Mets의 코치들은 Izzy를 보자마자 "외야수로 뛰기에는 스피드가 형편없는데 어깨는 쓸만하니 투수를 시켜보자" 는 주먹구구식 포지션 변경을 제안했다. Izzy는 싫다고 할 이유가 없었다. 결과는 웬걸, 12경기 65이닝에서 고작 2피홈런. 이 44라운더 외야수의 어깨는 "쓸만한" 정도가 아니고 96마일을 상회하는 강력한 패스트볼을 뿌릴 수 있었다. 하위 마이너에서 29BB/49SO의 비율을 기록한 것은 문제가 있으나, 본격적인 피칭을 사실상 처음 시도해보는 선수가 이 정도의 성적이라는 것은 놀랄만한 일이었다. 피칭 메카닉을 다듬고 패스트볼 커맨드를 잡는데 주력한 Izzy는 이듬해인 1993시즌에는 로우A 레벨에서 90.1이닝 104탈삼진을 잡는다. 같은 해 하이A 레벨에서 뛰던 2라운더 Bill Pulsipher가 96.1이닝 102탈삼진을 잡았으니, Mets 는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93년, 무려 59승 103패의 성적으로 당당히 전체 1번 드래프트 픽을 확보한 Mets는 1994년 드래프트에서 모두가 기다리던 FSU 출신의 우완 Paul Wilson을 지명했다. 당시 이미 6'5인치의 큰 체구, 대학 마지막 시즌에 ERA 2.08과 134이닝 154K을 기록했던 그의 압도적인 패스트볼-슬라이더 콤보는 이미 어느 정도 완성형으로 뽑혔었다. ML 레벨에서 즉시전력감이 될 것으로 평가받던 Wilson은 몇 년 전의 David Price나 십수년 전 Mark Prior가 받던 수준의 각광을 받으면서 Nomar Garciaparra, Jason Veritek 등 당대 최고의 유망주들을 제치고 전체 1번의 영광을 안았다. Wilson은 Tom Seaver, Dwight Gooden의 뒤를 잇고 싶다는 당찬 포부를 밝히며 Mets 산하 A+ 팀인 St. Lucie로 들어간 뒤 이듬해 AA볼을 마음껏 씹어먹는다. (16경기 120.이닝 127삼진 평균자책 2.17) 



왼쪽부터 BA Top 100 Prospect 37위 Izzy, 16위 Wilson, 12위 Pulsipher (1995)



Jason Isringhausen, Paul Wilson, 그리고 Bill Pulsipher. 이것이 소리만 요란했던 빈 수레이자 일종의 신기루와도 같았던 Mets의 Generation K의 탄생이었다. 당시 신조어처럼 번지고 있던 Generation X (X세대?) 라는 단어를 빗대 만든 말인데, Dwight Gooden의 빠른 쇠퇴와 David Cone의 이적 이후 순식간에 투수진이 붕괴되어 골머리를 썩던 Mets 입장에서는 이 Generation K에서 한 명만이라도 살아남기를 간절히 바랬을 것이다. 결과론이지만 세 투수 중 선발 투수로 성공한 투수는 한 명도 없으며, Izzy를 제외하곤 누구도 올스타에 선정된 적이 없다.


1995-1998: 용두사미


아래 Izzy의 마이너리그 트랙 레코드를 보시면 포수-->외야수를 거쳐 프로에 와서야 비로소 처음으로 마운드를 밟아본 선수치고 거의 시행착오가 없이 굉장히 빠른 속도로 발전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강력한 Mid-90s Fastball-Knuckle Curve 조합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1995 시즌에는 12경기에서 완봉 3차례를 포함 9승 1패 ERA 1.55의 압도적인 성적으로 투수로써는 드물게 International League MVP를 수상했으니, 사실상 Generation K 멤버들 중 가장 덜 주목받으면서 프로에 입문한 선수가 결국 가장 화려한 성적으로 팜을 졸업하고 콜업되는 인생역전인 셈이었다. 이 해 Mets 산하 AAA팀의 Norfolk에는 Mets의 미래를 짊어진 Generation K 투수 3명이 모두 뛰었는데, 이들 중 Izzy의 성적이 가장 압도적으로 좋았음은 말할 것도 없다. (Paul Byrd 3승 5패 ERA 2.79, Pulsipher 6승 4패 ERA 3.14) 


그리고 그 해 올스타 브레이크가 끝난 직후 콜업된 Izzy는 7월 17일, Izzy는 Wrigley Field에서 Cubs를 상대로 가진 데뷔전에서 7이닝 2피안타 2실점 6K의 뛰어난 피칭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다. 당시 Mark Grace-Sammy Sosa-Todd Zeile-Luis Gonzalez 등을 위시한 Cubs 라인업을 상대로 데뷔전에서 2피안타만을 허용했을 뿐이니 Mets 입장에서는 로테이션에 안착시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후 Izzy는 남은 2달 반의 정규시즌동안 14차례 선발등판, 9승 2패 평균자책 2.81의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으며, 경기당 평균 6.2이닝을 소화하는 철완을 과시하는 한편 8월 20일부터 9월 25일까지는 7경기 연속 선발승을 기록하기도 했다. 비록 신인왕 투표에서는 Hideo Nomo, Chipper Jones 등 걸출한 다른 루키들에게 밀리긴 했지만, 후반기만 뛰고 3.0의 WAR를 적립했으니 효율면에서는 그 해 어떤 신인들에게도 뒤지지 않는 활약이었다. 


슬픈 일은 선발투수로써 Izzy의 커리어는 이것이 정점이었다는 것이다. 


망나니(?) Isringhausen 의 화려한 마이너리그 트랙 레코드 


YearAgeTmLgLevWLERAGGSCGSHOIPHRERHRBBSOHBPWPWHIPH/9HR/9BB/9SO/9SO/BB
1992192 Teams2 LgsRk653.7413121165.058412722949441.3388.00.34.06.81.69
199219MetsGULFRk244.34660029.026191401725321.4838.10.05.37.81.47
199219KingsportAPPYRk413.25761136.032221321224121.2228.00.53.06.02.00
199320PittsfieldNYPLA-743.2915152090.1684533728104381.0636.80.72.810.43.71
1994212 Teams2 LgsA+-AA1182.61282883193.11546656850128491.0557.20.42.36.02.56
199421St. LucieFLORA+642.23141463101.076312522759241.0206.80.22.45.32.19
199421BinghamtonELAA543.0214142092.178353162369251.0947.60.62.26.73.00
1995222 Teams2 LgsAAA-AA1121.97181843128.09032283361345100.9846.30.22.59.43.72
199522BinghamtonELAA212.85661041.026151311259360.9275.70.22.613.04.92
199522NorfolkILAAA911.5512123387.064171522475241.0116.60.22.57.83.13


우리가 본 2000년대 초 Cardinals 클로저 Izzy는 이미 프로 7년차의 어엿한 베테랑이었지만, Mets 시절, 아니 보다 정확히 Generation K 시절의 Izzy는 상당히 문제아였다. 1995년 자신의 첫 메이저리그 스프링 트레이닝 캠프에 도착한 Izzy는 캠프 도중 술에 취한 채로 여자친구의 집 발코니를 기어올라가다가 건물 3층에서 떨어져 발가락과 정강이가 부러지고 머리를 60바늘을 꿰매는 큰 부상을 당했는데,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당시 의사의 소견이 더 기가 막힌데, "환자가 술에 취해서 근육들이 이완되어 있어서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즉사했을 것" 이라는 것이다. -_-)


메이저리그에 콜업된 이후인 1997년 스프링 캠프에서는 팔꿈치 부상으로 피칭을 쉬던 중에 동네 소프트볼 게임에 나가서 우익수를 보며 코치진들에게 야단을 맞았으며, AAA Rehab 게임에서는 자신의 투구 내용에 화가 나서 분을 못 이겨 쓰레기통을 주먹으로 쳤는데, 이 과정에서 오른쪽 Wrist가 골절되었다. 1997년 정규시즌 막판에는 소포 패키지를 열어보다가 테이프를 뜯던 칼로 자기 허벅지를 크게 베어버리는 등 Zumaya의 기타 히어로 사건을 우습게 만들 수준의 에피소드가 많았다. 클럽하우스에서 시끄러운 음악을 듣고 고함을 지르는 등의 일은 예사였다. 당시 Mets 클럽하우스에는 딱히 제대로 기강을 잡고 있던 베테랑들이 별로 없었고, 팀이 전반적으로 젊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선발투수 Izzy의 루키시즌은 상당히 대단한 것이었다.


1996시즌 9월말에 팔꿈치와 어깨 수술을 받은 Izzy는 1997시즌 스프링캠프에서 당시 TJS를 받고 막 돌아온 Bill Pulsipher**와 함께 Rehab과 시뮬레이션 피칭을 하며 시즌을 준비했으나, 연이은 Set-back으로 결국 시즌을 DL에서 시작한다. 4월 11일,  AAA 리햅 등판에 나섰던 Izzy는 스스로에게 치밀어오르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클럽하우스 쓰레기통을 주먹으로 때려 부쉈는데, 이 과정에서 오른쪽 팔뚝의 작은 뼈들이 부서져버리면서 최소 3개월은 결장할 것이라는 진단을 받는다. 자신의 멍청한 행동에 화가 난 Izzy는 "필드로 돌아가고 싶어 미치겠다. 내 자신이 너무 멍청하다" 면서 자책했고, 클럽하우스에 들어온 Izzy에게 베테랑 좌완 릴리버 John Franco는 자신의 오른쪽 Knuckle에 난 흉터를 보여주면서 "빡치는 건 이해하지만, 정 필요하다면 왼손을 써라" 라며 상당히 실용적인 조언을 해주었다. 


팀 복귀가 가까워진 시점인 7월, 그는 부상 정도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흉부 X-Ray를 찍었는데, 여기서 종양 비슷한 물체가 발견되었다. 의사들은 이를 암으로 진단했고, 나이 스무 살에 암선고를 받아버린 Izzy는 호텔방에서 며칠간 두문불출하며 하염없이 정밀진단 결과를 기다렸는데, 다행히 일주일 후 정밀 진단 결과로 Tuberculosis, 즉 폐결핵 진단이 나왔다. 스프링캠프 때만 해도 "예정보다 빠르게 재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다" 며 자신에 찼던 그의 선발 3년차 시즌은 잇따른 예기치못한 부상에 어느덧 반환점을 지나고 있었다.

"I try to keep it in more. But I still snap once in a while. I've just got to use my left." 


- Jason Isringhausen, on his temper

8월 27일이 되어서야 자신의 시즌 첫 데뷔전을 치른 Izzy의 몸 컨디션은 정상이 아니었다. 시즌 첫 등판에서 그는 Giants를 상대로 5이닝동안 무려 17명의 주자를 허용하며 (11피안타 6볼넷) 6실점하는 최악의 투구내용을 보였다 (그런데 승리투수가 되었다-_-). 그 다음 경기에서는 6이닝 6볼넷 무실점으로 버텼으나 이미 패스트볼 커맨드는 제어 불가능 상태였다. Mets는 9월 23일까지 더 기회를 주었으나, Izzy는 끝까지 잃어버린 제구와 구위를 찾지 못한채 시즌을 마무리했고, 정규시즌 후 팔꿈치 부상 진단을 받는다. Izzy가 받을 3차례의 TJS 중 그 첫번째가 온 것이다.


** 처참하게 무너지긴 했지만 그래도 ML 마운드를 밟아본 Izzy는 그래도 양반이다. 함께 재활등판을 준비하던 또다른 Generation K의 멤버 Pulsipher는 1997시즌 단 한 차례도 마운드를 밟아보지 못했다. 재활 때문에 내려갔던 A+볼에서 36.2이닝 동인 35볼넷, 폭투 14개, 보크 5개를 기록하면서 소위 "맛이 가버린" 것이다. 전미 12위 유망주였던 Pulsipher의 커리어는 이 시점을 끝으로 사실상 끝나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1998년: 첫 TJS


TJS 로 1년간 힘든 재활과 무료함을 견뎌야했던 Izzy는 그의 아내 Lorrie를 만나는데, 당시 이미 어느 정도 성공한 뉴욕의 커리어우먼이었던 Lorrie를 만나면서 Izzy의 망나니스러움은 많이 벗겨졌다. 1998시즌을 그렇게 날리고 1999시즌 그가 Mets 클럽하우스에 다시 들어서서 조용히 자기 라커룸 앞에서 책을 읽자 (훗날 그의 멘토가 되는) John Franco, Al Leiter 등이 다가와 먼저 손을 내밀었다. 당시 Mets 클럽하우스의 기강을 잡던 Al Leiter, Robin Ventura, Mike Piazza 등 베테랑들은 강속구밖에 모르던 천방지축 망나니에게 의외로 의젓한 면이 생긴 모습을 기특하게 생각했다. 

He respected the hierarchy of the older players. As much as he was outgoing and goofy, he also knew his place.


-Al Leiter, on Izzy's character

1999시즌 5월 24일, Izzy는 Pirates 원정에서 오랫동안 기다린 복귀전을 치르지만, 홈런을 2개 맞으면서 심상찮은 조짐을 보인다. 몇 차례 더 기회가 있었으나 패스트볼 커맨드가 계속 들쭉날쭉했고, 투구수 60개를 넘은 뒤에는 통증 때문에 공의 위력이 현저히 떨어졌다. 본인의 5번째 선발 등판이 있던 6월 19일, Cardinals 전에서 마운드에 선 Izzy는 1회에 Mark McGwire에게 쓰리런을 맞으면서 경기를 시작하더니, 3회에는 영점을 완전히 잃어버리며 볼질을 시작했다. 투구수 50개를 넘기면서 팔꿈치가 다시 말썽을 부린 것이었다. 통증이 극심해지는 사이 Cards 타선은 타자 일순하며 순식간에 6점째를 뽑아냈고, 이내 Izzy는 3회를 채 채우지 못하고 2.2이닝 6피안타 4볼넷 6실점의 기록을 남긴 채 내려왔다. 선발 유망주 Izzy의 마지막 선발 등판이었다. 

Bobby Valentine 감독은 Jason Isringhausen을 불펜으로 돌리는 것에 대해 "그것은 마치 *Indy 500 (레이싱 대회)용 레이스카를 택시로 쓰는 것과 같다" 며 Izzy의 선발 기용에 대해 미련을 표시했었는데, 이렇게 되니 어쩔 수가 없이 불펜으로의 전환이 유일한 해결책이었다(왠지 "차고에 넣어놓은 페라리"로 불리고 있는 한 선수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그리고 이는 서서히 망가져가던 Izzy의 커리어를 부활시키는 신의 한 수가 된다. 

 Izzy는 "망쳐도 내일 또 나와서 다시 잘 할 기회가 있으니 좋다" ("You know coming in the next day, no matter how it went, you'd have a chance to do it again") 며 릴리버로의 전환에 만족해했다. 7월 31일, 불펜 고령화로 인해 젊은 피가 필요했던 A's가 Izzy의 클로저로써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데려간 뒤에는 더더욱 잘 하기 시작했다. 이적 후 첫 한 달간 11경기에서 15이닝 2실점 2세이브. 1이닝 전력 투구 모드로 바뀌자 패스트볼 커맨드도 잡히기 시작했고, 구위도 살아나기 시작했다. 이미 9월달에 실질적 A's의 마무리는 Izzy가 되어 있었다. A's의 Art Howe 감독이 Izzy를 처음 클로저로 내정했을 때 영 못미덥다는 눈초리를 보내던 여론도 Izzy가 단 한 차례의 블론세이브도 기록하지 않고 시즌을 끝내자 잠잠해졌다.

*사족이지만 Izzy 를 보내고 Mets는 Billy Taylor라는 릴리버를 받아왔는데, 18경기에서 ERA 8.10을 찍고 방출당했다. Beane-Ricciardi 콤비의 혜안이 적중한 것도 칭찬할만 하지만, 반면에 Valentine이 대체 월드시리즈를 어떻게 올라갔던 것인지 알 수가 없다.

''When I scouted him, I had gone to see other guys. I saw Izzy and I called Billy Beane and said, 'His stuff is just unbelievable.' He had an above-average fastball, a plus curve. But around four innings in he would start to lose focus. I mentioned to Billy that I'd really like to get this guy. His stuff for one inning was just incredible.

- J.P. Ricciardi, A's Director of Player's Personnel (2000)

2000-2001 : 클로저로써의 도약 


"깡"과 "배짱", 그리고 강력한 패스트볼과 커브 조합의 Hard stuff로 무장한 Izzy는 흔히 말하는 "클로저 체질" 이었다. 마운드에서 Izzy는 당당했으며, 살얼음판 리드에서도 적어도 표정만큼은 냉담했다. 가끔가다 좌타자 상대로 고전하는 모습, 패스트볼 커맨드가 흔들려서 투구수가 늘어나는 모습을 노출하던 그는 결코 완벽한 마무리 투수는 아니었다. 그러나 기본적인 의무인 "매일 리드를 지키러 나온다"는 측면에서 Izzy는 그다지 흠잡을 곳이 없었다. Oakland에서 그가 뛰는 동안 홈 팬들은 9회 세이브 상황이 되면 Coliseum 불펜을 바라보며 Boom-boom, Boom-boom-boom, Is-Ring-Hau-Sen! 이라는 구호로 그들의 클로저를 소환했다.



2000년 8월 8일 Yankees전, Barry Zito와 Roger Clemens가 팽팽한 투수전을 펼치며 9회까지 3:2 오클랜드의 리드가 이어졌다. 9회 클로저 Izzy가 껌을 짝짝 씹으며 Yankee Stadium 마운드에 올랐다. 첫 타자 Bernie Williams가 작정하고 Izzy의 초구 몸쪽 패스트볼을 후려서 우측 담장을 넘기는 동점 홈런을 쳤고 (3:3), 두번째 타자 David Justice는 관중들의 환호성이 끝나기도 전에 Izzy의 바깥쪽 낮게 빠지는 초구 패스트볼을 걷어올려서 우중간으로 넘겨버렸다. 공 2개로 동점홈런-끝내기홈런. 4:3 Walk-Off.  

Yankee Stadium이 광란의 도가니로 변하는 사이에 클로저 Izzy는 아무렇지도 않게 마운드를 내려왔다. 클로저로써 어쩌면 굴욕적일 수도 있는 그런 경기를 끝내고도 Izzy는 기자들의 질문에 "솔직히 좀 웃겼다. (힘을 안썼으니) 암튼 내일을 위해 충분한 휴식을 취했다." (That was actually comical. Well, I'm well-rested for tomorrow.") 라고 대답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 경기 이후 Izzy는 17경기에서 1승 8세이브를 거두는 동안 단 한차례의 블론도 없이 시즌을 끝냈다. 

그가 오클랜드 유니폼을 입고 뛰던 2년간 A's는 ALDS에서 매번 Yankees를 만났고, (다들 잘 아시다시피) 두 번 모두 2승 3패로 패배했는데, Izzy는 팀의 4승 중 3경기에서 깔끔한 1이닝 무실점 세이브를 따냈다. 특히 Yankee Stadium에서 펼쳐진 2001년 ALDS 2차전은 백미였다. 선두타자 Bernie Williams에게 2루타, Tino Martinez에게 볼넷을 허용한 후 3타자를 삼진-파울 플라이-파울 플라이로 잡아내고 포효하던 모습은 Izzy 의 짧지만 굵었던 오클랜드 시절에서 잊을 수 없는 하이라이트이다. (이후 Izzy의 회고에서는, Posasa 타석을 앞두고 Jason Giambi가 마운드로 다가와 "Calm Down" 하라고 하자 Izzy는 "I can't feel my legs" 라며 글러브로 입을 가린채 엄청나게 웃었다고 한다. 물론 Posada는 삼진을 당했다.)

2002: 바라고 바라던 Elite Closer

무려 4명의 선수가 돌려가면서 9회를 맡았던 2001시즌의 집단 마무리 체제를 벗어나고 싶었던 Jocketty, 그리고 TLR은 Top Closer를 FA로 영입하는 것이 목표라고 오프시즌을 앞두고 공공연하게 밝혔다. John Smoltz, Jeff Shaw 등 다른 옵션들도 있었으나, TLR의 눈에는Oakland에서의 2년간 75세이브를 거두며 리그 정상급 클로저로 순식간에 발돋움한 28세의 투수 Izzy가 가장 매력적인 타겟이었다.

2001년 12월 11일, 양측은 4년간 27M이라는 조건에 합의를 본다. 당시 Texas Rangers가 4년간 30M으로 더 큰 규모의 계약을 제시했으나, Izzy는 소년 시절부터 응원해왔던 팀이자 현재 가장 포스트시즌에 가까운 전력을 구축해놓은 팀인 St. Louis Cardinals 에 입단하기로 결정한다. Izzy의 고향인 일리노이 주의 Brighton은 St. Louis에서 45분이면 갈 수 있는 곳으로, 가족과 가까운 곳에서 뛸 수 있다는 사실에 Izzy는 매우 흡족해했다.

"Down at the end it was between the Cardinals and the Rangers. But my final choice was being with the Cardinals. My main goal is to win, and I think they have the right group of guys here to win for a very long time."


- Jason Isringhausen, after signing a 4-year contract with the Cardinals

새 클로저 Isringhausen은 강력했다. 그는 5월달에 무려 12세이브를 기록하면서 구단 월간 최다 세이브 기록과 타이를 이루는 등 전반기에만 42이닝을 소화하며 19세이브 평균자책 2.57을 기록했다. 94-97마일에서 형성되는 그의 패스트볼은 구속과 무브먼트를 모두 동반해 스트라이크 존을 찔렀으며, Duncan으로부터 조련받은 커터도 충분히 효과적이었다. Izzy는 우타자들을 상대로는 저승사자였으나 (피안타율 .164) 딱히 좌타자들을 상대로 던질만한 구질이 마땅치 않아 좌타자 상대 피안타율 .247을 기록했으며, 가끔가다 패스트볼 커맨드를 전혀 잡지 못하는 모습을 노출하며 몇몇 경기에서 자멸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37번의 기회에서 32세이브를 거둔 Izzy의 첫 시즌은 전반적으로 성공적이었다. 특히나 단 한 차례도 홈런을 허용하지 않은 점은 Izzy의 Hard-stuff를 여실히 보여주는 기록이다.




그러나 이 시즌 Izzy의 최대 문제점은 바로 내구성이었는데, 이미 TJS를 많이 받았던 Izzy는 구단 측에 본인의 팔 상태에 대해서 명백하게 의사표현을 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후반기에 두 차례나 DL에 올랐으며 정규시즌 마지막 몇 경기도 뛰지 못했다. Izzy의 내구성을 우려한 구단에서는 Izzy에게 10월에 어깨 수술을 받은 뒤 오프시즌 내 Conditioning을 확실히 하라고 당부했다.


2003시즌, Izzy는 다른 투수들보다 약간 늦게 스프링 캠프에 도착할 예정이긴 했으나 회복 속도가 더뎠다. 당초 4월 중순쯤이면 복귀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재활에서 몇 차례 Setback 이 생기면서 결국 6월이 되서야 복귀했다. Izzy가 늦게 오는 사이 Cardinals 불펜은 망가질대로 망가져있었는데, 2003시즌의 너덜너덜한 불펜 상황을 보시면...(LINK)


2004시즌 스프링캠프에 Izzy는 어느 때보다도 건강하고 준비된 모습으로 나타났고, 결과는 환상적이었다. Izzy 개인적으로나 여태 Cardinals 클로저 역사상 가장 위력적인 시즌 중 하나였다. 그는 74게임에 등판해서 그 중 57경기를 무실점으로 막았고, 프랜차이즈 단일시즌 최다 세이브 타이 기록을 세움은 물론 NL 세이브 리더 타이틀을 획득한다. 특히 Cards에 와서 던지기 시작한 그의 파워커브는 이 무렵 어느 카운트에서나 던질 수 있는 구질이 되었으며, 이 시즌 Izzy는 좌우 스플릿이 .205 (L) .195 (R)로 거의 균등해졌다.


2004 NLCS는 Izzy 라는 투수의 매력이 제대로 드러난 시리즈였다. NLCS 5차전에서 (그렇다, Brandon Backe와 Woody Wiliams가 나란히 인생투를 던진 그 경기이다) 0:0이던 8회 TLR은 너무도 당연하게 Izzy를 출동시켰다. Izzy는 상대 8-9-1번 타순을 가볍게 삼진-내야플라이 2개로 돌려세웠는데, 9회 Beltran이 안타를 치고 2루를 훔치자 Berkman을 고의사구로 거르고 1사 1,2루에서 Jeff Kent를 상대했다. 


Jeff Kent가 누군가. 초구 좋아하고 직구 좋아하기로 리그 내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운 그런 타자이다 (통산 홈런 377개 중 18.3%에 달하는 69개가 초구 홈런, 초구 타율 .322). 그리고 Izzy는 그런 타자들에게 초구 패스트볼을 안던지고는 못배기는 그런 투수였다. 이 타석에서 나온 초구 끝내기 쓰리런은 어찌 보면 그다지 놀랍지도 않은 결과였다. 5차전을 본인이 직접 날려먹은 Izzy는 NLCS 6차전에 똑같은


등판했다. 그리고 무려 3이닝 (2피안타 1실점) 을 소화해주며 팀 승리에 크게 일조했으며, 초구 공략에 맛들린 Jeff Kent를 초구 내야 플라이로 잡아냈다. 7차전에서 9회 선두타자로 나온 Kent를 또다시 초구 내야 플라이로 잡아냈다. 결국 시리즈 승리를 확정지으며 NLCS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아낸 것은, 5차전에서 충격적인 쓰리런을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툭툭 털고 던지던 Izzy였다. 7차전까지 간 이 명승부에서 Izzy는 무려 6경기에 등판했고, 그 중 5경기를 본인 손으로 마무리했다 (다른 한 경기는 연장 12회에 Edmonds의 홈런으로 이긴 경기). TLR의 두터운 신뢰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이 포스트시즌이 끝나자, 4년 계약의 마지막 해인 2005시즌을 앞두고 Cardinals는 Izzy에게 2년 연장 계약 (+1년 팀 옵션)을 안겼고, Izzy는 흔쾌히 계약서에 싸인했다. 

 

2005시즌 스프링 캠프를 앞두고 Izzy는 좌완 릴리버를 찾고 있던 Jocketty 에게 옛 동료이자 Generation K의 일원으로 한때 촉망받는 유망주였던 Bill Pulsipher를 추천한다. 당시 팀에는 이미 Ray King 이라는 걸출한 왼손 릴리버가 있었으나, 매치업을 선호하는 TLR은 이미 좌완 릴리버 2명으로 톡톡히 재미를 봤던 터라 Secondary LOOGY를 25인 로스터에 포함시키길 원했다. Pulsipher는 스프링 캠프 초대를 수락했는데, 이미 당시 25인 로스터의 마지막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선수로 반평생을 LOOGY 역할로 살아온 Mike Myers와 2000년 드래프트에서 Cardinals 가 뽑았던 Undersized 대졸 좌완 Carmen Cali 등이 눈에 불을 켜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Pulsipher은 의외로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무려 탁월한 기록을 내며 선전했고, Cardinals는 Mike Myers를 트레이드한 뒤 Pulsipher를 LOOGY로 낙점했다. Generation K 시절 이후 떨어져있던 두 선수가 처음으로 다시 같은 유니폼을 입고 뛰는 순간이었다.


아쉽게도 이 훈훈한 Feel-good story는 Pulsipher가 잠깐의 기회를 살리지 못한 채 개막 후 한 달을 못 버티고 방출당하면서 씁쓸한 엔딩으로 끝나게된다. Pulsipher는 잇따른 부상과 마이너리그, 독립리그 생활로 인한 우울증과 싸우고 있으며, 2005년을 마지막으로 메이저리그에서 자취를 감췄다. Izzy와는 종종 연락을 하고 지낸다고 한다.


TLR 시대를 상징하는 클로저, Izzy 


YearAgeTmWLERAGGFSVIPHRERHRBBIBBSOHBPWPBFERA+WHIPH/9HR/9BB/9SO/9SO/BBAwards
200229STL322.4860513265.1462218018168102571620.9806.30.02.59.43.78
200330STL012.3640312242.0311411218141061741761.1676.60.43.98.82.28
200431STL422.8774664775.1552724523471213081481.0356.60.62.78.53.09
200532STL122.1463523959.0431414427551122451991.1866.60.64.17.81.89AS
200633STL483.5559513358.14725231038352332571261.4577.31.55.98.01.37
200734STL402.4863543265.1422118428354232671781.0715.80.63.97.41.93
200835STL155.7042271242.248282752203651200751.64110.11.14.67.61.64
STL (7 yrs)17202.98401332217408.03121511353017417373141617081431.1916.90.73.88.22.14


 Izzy는 2003년과 2006년 플레이오프를 제외하고 상당히 Durable했으며, 2004년의 커리어하이 시즌 이후에도 3년 연속 최소 32세이브 이상, 59게임 이상을 출장했다. 2006년 성적이 커리어 라인보다 유난히 안좋은 이유는, 이 해 8월부터 그가 부상을 숨기고 정상이 아닌 구위로 던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시즌을 9월 초에 접고 마무리 자리를 루키 Adam Wainwright에게 넘겼는데, 마지막 한 달간 Izzy의 성적은 1승 4패 4세이브 3블론, 9.2이닝 14피안타 8실점 (3피홈런)으로 뭔가 구위가 정상이 아님을 짐작케했다. 아쉽게도 2006년 포스트시즌을 뛰지 못하기는 했지만, 이 시즌에 Izzy가 반지를 가져가는 것에 불공평함을 느꼈을 팬들은 아무도 없다. 2005년 NLCS 이후 Izzy는 포스트시즌에서 뛴 기록이 없으며, 포스트시즌 통산 23경기 11세이브 26.2이닝 23K 평균자책 2.36으로 커리어를 마무리했다.


2007시즌이 끝나고, 지난 수년간 든든하게 뒷문을 지켜준 Isringhausen의 팀 옵션은 당연히 실행되었는데, 이는 양측 모두에게 재앙이었다. 2008시즌은 Elite Closer로써 쌓아온 Izzy의 명성에 먹칠을 하는 시즌이었다. 한때 95마일을 쉽게 찍던 포심 구속은 평균 91마일대로 떨어진 지 오래였고, 들쭉날쭉한 제구는 2008시즌 급격히 안좋아졌다. 4월 25일 Astros전에서 2:0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Carlos Lee에게 역전 쓰리런을 허용한 것을 제외하면 시즌 초반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5월 전까지 13경기 1승 2패 9세이브, 12이닝 3볼넷). 그러나 우타자들 상대로 한때 몸쪽 패스트볼 승부를 즐기던 Izzy는 패스트볼이 맞아나가면서 우타자 상대 피안타율이 무려 .327에 이르게 되었고, 이로 인해 몸쪽 패스트볼을 사실상 못던지게 되자 볼넷이 급격하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8월 16일 Reds전을 끝으로 Izzy는 시즌을 접었고, 이것이 결국 Cardinals 유니폼을 입고 그의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Photo Credit to Spokeo



Cardinals와의 마지막 시즌 에 보여준 기량 저하가 너무 급격했기에, 나이 37세 시즌을 맞이하는 한 물 간 우완투수에게 어떤 팀도 새로운 둥지를 제공하지 않았다. 은퇴를 고려하던 Izzy에게 Rays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750K짜리 마이너리그 딜을 제안했다. Izzy는 한 달 만에 Rays 불펜의 일원으로 데뷔했는데, 잘 던지다가 6월 중순에 오른쪽 팔꿈치의 통증을 호소하며 DL에 올랐다. 세번째 TJS 선고였다. 


그를 아무도 클로저 취급하지 않던 2011년, Izzy는 Mets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고 익숙한 Mets의 플로리다 스프링 캠프에 입소한다. 아무도 나이 38세에 갓 TJS를 받고 돌아온 투수에게 뭘 기대할 지 몰라했으나, 친정팀 불펜에 돌아온 Izzy는 구속이 줄었을 뿐 여전히 효과적인 피칭을 해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해 7월, Mets 클로저는 "불펜에 두기 아까운 레이싱카" 라던 Izzy였다. 자신의 첫 세이브를 거두었던 팀에서 (Mets에서 1세이브 기록 후 트레이드) 자신의 마지막 세이브를 거두게 된 것이다. Izzy를 위해 Jason Bay는 자신의 등번호 44번을 기꺼이 내주었다.

"I've seen a lot more than I expected at any time. The ball is coming out of his hand great. He still has the Izzy curveball, and he's added a nice little cutter and changeup. I couldn't be more pleased. If Izzy can come in and continue to do exactly what he's doing right now, he is a major part of this.

-Dan Warthen on Izzy, Mets Pitching Coach (2011)


TLR이 A's 시절 Dennis Eckersley를 시작으로 "1이닝 클로저" 라는 개념을 본격적으로 정착시켰다는 사실은 야구팬들 사이에서 보편적으로 알려진 사실인데, 조금 더 깊이 들어가보면 TLR은 "클로저" 라는 개념의 창시보다 "불펜"의 역할을 재조명/재정립한 감독이었다. Dave Duncan과 TLR은 전반적으로 투수의 평가 기준과 야구 이념이 일치했기에 오랜 시간 붙어다니면서 어느 정도 동화되었는데, 그 사이에 끝까지 서로 의견을 좁힐 수 없었던 부분은 Duncan이 선발 투수들을 더 중시하고 TLR이 불펜을 더 중시했다는 점이다. 


서로의 의견차를 존중했던 이들은 암묵적 분업으로 충돌을 줄였다. 선발투수들에 관련된 일이면 TLR이 Duncan의 의견에 많이 의지했으며, 불펜 투수들의 운용에 대해서는 TLR 본인이 조금 더 목소리를 크게 냈었다. TLR에게 Closer 란 25인 로스터에서 유일하게 "제 몫을 할 경우 팀이 100% 이기게 해주는 선수"였고, 그랬기에 그는 유능한 클로저에 욕심을 냈었다. TLR은 Izzy를 "배짱과 Attitude와 Stuff를 모두 갖춘 Real-Deal Closer" 로 평가했으며, 이는 클로저 자리에 큰 의미를 두는 TLR의 입에서 나온 대단한 칭찬이다.



장난스러운 Izzy는 불펜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유지하는 선수였다. Izzy, Tavarez, Ray King.



총평 - 긴장감을 즐겼던 Real-deal Closer

마무리라는 보직은 그 자리에 올라가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훨씬 힘든 자리이며, 개인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팀의 Development Stage 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팀 사정이 열악하면 Kevin Gregg 같은 투수도 마무리를 할 수 있으며, 기존 클로저가 견고하다면 Rafael Soriano 같은 투수도 셋업맨일 뿐인 것이다. 올 시즌 Edward Mujica, 혹은 커리어 후반기의 Brad Lidge 등의 예에서 볼 수 있듯 짧은 이닝을 소화하는 마무리 자리는 확실히 믿을만한 구질 하나만 있어도 One-pitch pitcher로 살아남는 게 가능한 자리이다. (비록 롱런은 못할지라도), 


강속구를 뿌리는 싱싱한 젊은 어깨들이 무지하게 많아지고 있는 추세에 힘입어, 현대 야구에서의 25인 로스터 관리에서 점차 마무리 투수는 "자체보강"하기 쉬운 보직이 되어가고 있다. 구단 컨트롤 하에 있는 젊은 투수들에게 1~2년 불펜 경험을 쌓게 한 후 마무리로 돌려버리는 패턴이 점차 증가함에 따라 Trevor Hoffman이나 Mariano Rivera 처럼 한 팀에서 5년, 10년씩 마무리로 뛰는 선수들은 요새 점차 보기 힘들어졌고, Cardinals 역시 이러한 트렌드에 뒤쳐지지 않고 있다.  


1996시즌 (TLR 부임) 이후 역대 Cardinal 클로저


1996~1997 - Dennis Eckersley

1998 - Jeff Brantley / Jose Acevedo

1999 - Ricky Bottalico

2000 - Dave Veres

2001 - Dave Veres / Steve Kline 

2002~2007 - Jason Isringhausen

2008 - Jason Isringhausen / Chris Perez

2009~2010 - Ryan Franklin

2011 - Fernando Salas

2012 - Jason Motte

2013 - Edward Mujica



Izzy의 등번호가 44번인 이유는?



점차 늘어나고 있는 클로저 자리의 유동성을 생각해봤을 때, 거의 7년간 Cardinals 마무리 자리를 맡아준 Izzy 같은 케이스는 한동안 보기 힘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2013 시즌만 봐도 풀타임 마무리 2년을 채 못채운 Motte이 부상으로 시즌을 날린 사이 생전 클로저 역할을 해본 적도 없던 Mujica가 리그 내에서 가장 안정적인 마무리로 잠깐의 명성을 누렸고, 이후에는 Rosie가 클로저 자리를 맡아주었다. 2014시즌 마무리 역시 Rosie로 낙점되있지만, 2015년에는 다른 얼굴이 클로저 역할을 맡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 않으면 주인장님을 비롯해 이 블로그의 많은 "Rosie를 Rotation으로!"를 외치시던 분들이 거품을 무실지도...)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인 2008시즌을 제외하고 Izzy는 안정적인 편이었으며 (필자는 Ryan Franklin에게 이런 안정감을 느껴본 적이 없다) 전통적인 "마무리" 라는 개념에 정말 잘 어울리는 투수였다. 그는 타석에서 패스트볼을 기다리는 타자에게 그냥 패스트볼을 냅다 꽂아버리는 배짱이 있었으며, 주자가 나간다고 해서 흔들리지 않았다 (특히 Izzy는 많은 클로저들이 그렇듯이 주자 견제라던가 수비 측면에서 약점을 노출했는데, 그가 Cards 유니폼을 입고 뛴 기간 동안은 내-외야에 골드 글러버들을 숱하게 깔아놓고 공을 던졌던 터라 큰 문제는 없었다). 전날 경기를 본인 손으로 직접 망치고도 다음 날 아무렇지도 않았다는 듯 껌을 짝짝 씹으면서 마운드로 올라가는 그의 "뻔뻔함"(?) 은 그를 효과적인 클로저로 롱런하도록 만들어주었다.


음료수를 담아놓은 아이스박스에 바퀴를 달아서 막내 투수에게 배달을 시키자는 것도 Izzy의 아이디어였다. (사진은 당시 "막내"였으나 이후 선수협 대표로 성장하는 Kyle McClellan)


비록 Mets 시절에는 혈기를 참지 못하고 망나니짓을 하고 다닌 적도 있으나 Cardinals 시절의 그는 Bullpen에서 무궁무진한 소재의 "소싯적 얘기"를 하는 것으로 투수들 사이에서 "재밌는 형"으로 인기가 많았다. 특히 마운드 위에서의 두둑한 배짱은 동료들에게 신뢰를 주었으며, 불펜 투수로써의 마음가짐에 있어서 다른 선수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아 코치들도 좋아했다. 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Izzy가 세이브 상황에서 오는 긴장감을 즐길 줄 아는, 타고난 클로저 멘탈리티를 보유한 투수였다는 점이다.


"You do have to be a little bit of an adrenaline junkie. It's what makes it fun. I get nervous a little bit, but you put that to good use. Even that little bit of fear you channel to your advantage. It makes you focus a little better."


-Jason Isringhausen, on closing 9th inning


Izzy는 Generation K의 체면을 살린 유일한 투수이다. 그는 44라운더로 지명되었다가 순식간에 Generation K의 일원이 되었고, 이들 중 가장 혹사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오래 버틴 잡초같은 투수였다. 3차례의 TJS와 정말 다양한 종류의 부상들이 (결핵, 흉부골절, 자해) 그의 커리어를 위협했으나, 자신의 커리어를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재생시켰고, 이후 성공적인 FA 계약을 통해 고향 연고인 컨텐더 팀에 안착, 이후 오랜 기간 Elite Closer로 뛰면서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경험했다. 커리어 막판에는 베테랑 투수 답게 Angels에서 Jordan Walden, Mets에서 Bobby Parnell 등 어린 클로저들에게 마인드셋에 관해서 조언을 아끼지 않았으며, Mets로 돌아와서 통산 300세이브를 딱 채운 뒤 클로저 자리에서 미련을 내려놓았다. 이듬해인 2012년 Angels에서 그는 커리어 마지막 시즌을 보냈는데, 7월말까지 3승 4홀드에 평균자책 2점대를 유지했으며 (마지막 두 달간 많이 맞았으나), 총 50경기 42이닝을 던지며 삼진 31개를 잡았다. 만 39세 투수의 3번째 TJS 이후 2번째 시즌 치고 훌륭했다고 하면, 팬심일까?


그의 커리어에는 돌아보면 꽤나 많은 시련과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그 순간 순간의 위기들을 꾸역꾸역 잘 넘기고 결국은 리그 내에서 가장 풍성한 역사를 자랑하는 팀에서 프랜차이즈 세이브 리더로 남아 은퇴했으니, 성공한 야구인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부록: Cardinals 역사에서 Izzy 의 위엄


Career Saves (우측은 이닝)

1.Jason Isringhausen217408.0
2.Lee Smith160266.2
3.Todd Worrell129425.2
4.Bruce Sutter127396.2
5.Ryan Franklin84312.1

Single Season Saves

RankPlayerSavesYear
1.Jason Isringhausen472004
 Lee Smith471991
3.Bruce Sutter451984
4.Lee Smith431992
 Lee Smith431993
6.Jason Motte422012
7.Jason Isringhausen392005

Games Finished

1.Jason Isringhausen332408.0
2.Todd Worrell232425.2
3.Lee Smith209266.2
4.Bruce Sutter203396.2
5.Lindy McDaniel188884.2





Did you know...

  • Izzy는 2013년 2월, 고향인 Brighton 근처의 Southern Illinois University (SIU) 피칭코치직을 수락했다. 이 팀의 감독 Tony Stoecklin은 Izzy가 노하우를 전수하는 교수법이 좋다면서 코치로써 커리어를 쌓을 수 있을 것이라 낙관했는데, 한번 두고 보도록 하자.
  • Izzy는 어머니가 자기를 임신했을 때 임신 7개월까지 동네 소프트볼 팀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면서, 그것 때문에 자기가 이렇게 망나니 기질이 생긴 것 같다는 진담 반 농담 반의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 Izzy의 등번호가 44번은 그가 드래프트에서 44라운드에 뽑혔던 것을 상징한다. 
  • 2009년 Rays에서 뛸 당시, Izzy는 5월 25일 Indians 전에서 대기록 수립에 동참한다. Rays가 8회까지 10:2로 앞서던 이 경기는 9회 Ryan Garko가 만루홈런을 치면서 10:8까지 점수가 좁혀졌다. 당시 High-leverage 상황에서 나오는 릴리버가 아니던 Izzy는 Grant Balfour가 무너져버리자 급히 불을 끄기 위해 등판했는데, 무사 1루에서 3연속 볼넷으로 1점을 더 내주더니 Victor Martinez에게 2타점 적시타를 맞고 경기를 자기 손으로 끝내버렸다. 10점차 리드를 7회까지 유지한 후 뒤집힌 몇 안되는 경기를 직접 뒤집은 것이다. Izzy는 그 경기를 제외하면 단 한 번도 Rays 유니폼을 입고 실점한 적이 없다.



  by Doov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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