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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3.02 Revisiting TLR ERA [9] David Eckstein 14

by Doovy

이번 주 주인공은 Gritty Player 계열의 수장(?) 격인 X-Man, David Eckstein이다. 아무 툴도 없는 단신 유격수로 World Series MVP까지 따낸 그 앞에서는 Grit이라면 어디가서 꿀리지 않는 Schumaker 역시 머리를 조아린다. Scrappy한 그의 플레이스타일과 팀을 위한 헌신을 마다하지 않는 그의 노력, 허슬, 그리고 인간미 넘치는 그의 성격은 Eckstein의 좁은 수비 레인지와 낮은 장타율을 비난하는데 정신없는 세이버리스트들의 입가에도 웃음을 띄우게 했다. Cardinals에서 3년을 뛰었는데도 마치 13년을 뛴 선수처럼 팬들의 뇌리에 강한 인상을 남긴 선수. TLR 시대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 "Grit," 그리고 그 Gritty Player의 대명사격이었던  David "Pesky" Eckstein의 커리어를 돌아보자.

 

X-Man


David Eckstein

Shortstop

DOB: 1975년 1월 20일 

Birth: Sanford, Florida 

Time with Cardinals:  2005-2007


Draft and Minors

1994년, University of Florida (이하 Gators) 야구팀 트라이아웃에 5'7인 짜리 꼬맹이가 참가했다. 운동 장학금을 받지 않고 공부로 학교에 입학한 David Eckstein이었다. 부모님이 모두 교사셨던 그는 학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던 가풍 속에서 컸고, 고등학교 시절 야구로 State All-star에 뽑히기도 했지만 대학은 성적으로 들어갔다. 꼬맹이는 Walk-on으로 (Walk-on이란 딱히 정해진 포지션 없이 팀에 들어가는 것으로, 일종의 '깍두기/꼽사리'로 봐도 될 듯 싶다) 팀에 합류했고, Walk-on들은 팀 훈련에 참가하기 전까지 3주를 기다려야했다. David은 마냥 기다리는 대신 매일매일 혼자 배팅케이지로 가서 공을 때렸고, 이를 기특히 여긴 한 Assistant 코치가 Eckstein에게 2주차때부터는 그냥 팀 훈련에 나오라고 말했다.

당시 UF Gators 야구팀 코치였던 Joe Arnold는 Eckstein의 뛰어난 배트 컨트롤과 성실함을 믿고 그를 유격수로 키우기 시작했고, 2학년 때 Eckstein은 SEC All-Conference Team에 선정되며 이에 부응했다. 포지션도 없이 팀에 들어왔던 Eckstein은 1996시즌에는 All-American Team에 선정되었고, Gators가 College World Series에서 3위에 오르게 하는 큰 성과를 냈으며, 대학 야구를 하는 3년 내내 우수한 성적을 유지한 운동선수들을 뽑은 SEC Academic Honor-Roll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All-American 팀과 Honor Roll을 2년 연속 동시에 해낸 것은 David Eckstein이 학교 역사상 처음으로 해낸 일이다. 받지 않았던 장학금 (Athletic Scholarship)도 그가 SEC Conference 팀에 선정된 2학년 때부터는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장학금을 받지 않고 들어온 학생이 재학 도중 장학금을 받는 경우는 굉장히 드문 경우이다.


University of Florida 졸업을 얼마 남겨놓지 않고 Eckstein은 1997년 드래프트에서 19라운드 전체 581번으로 Red Sox에 지명되었다. 굉장한 Undersized 유격수에 소녀 어깨, 툴이라고는 그럭저럭 평균 이상인 스피드....그게 끝이었다. "인상적인 배트 컨트롤과 컨택 능력이 있으나 결국은 Size 때문에 안될 것" 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고, "Grit과 투지는 인상적이지만 야구 재능 자체는 상위 마이너리그 레벨에서는 결국 먹히지 않을 것" 으로 생각했다. Red Sox의 한 스카우트는 David의 아버지인 Whitey Eckstein에게 "아드님은 훌륭한 코치가 될 겁니다 (Your son will make a great coach some day)" 라고 얘기했다.

그러나 학창시절부터 내내 여태껏 이런 기대 속에 살아온 Eckstein에게는 상황이 크게 다를 게 없었다. 그는 특유의 근성, 성실함, 기민함으로 이러한 기대들을 이겨내고 매 시즌 선수로써 큰 발전을 이룩했다.  프로 첫 해였던 97년에는 들어오자마자 3할을 치면서 모두를 놀래켰고, 이듬해는 하이 싱글A에서 87:51이라는 굉장히 훌륭한 BB/K 비율과 45개의 도루를 기록했다. 1999년 AA볼에 올라가서는 오히려 더 나은 슬래시 라인을 기록했고,  1라운더 출신이자 Red Sox가 아끼던 유격수 유망주 Adam Everett (얘도 기대가 참 큰 유망주였다) 과 완벽한 키스톤을 이뤄 소속팀 Trenton Thunder의 92승 시즌에 앞장섰다. 마이너리그에서 Eckstein은 4년간 철저히 2루수로 육성되었으며, 2루수로 438경기를 뛰는 동안 단 29개의 에러만을 기록했다. 

Eckstein's Minor League Track Record

Year Age Tm Lev G PA AB R H 2B 3B HR RBI SB CS BB SO BA OBP SLG OPS GDP HBP SH SF
1997 22 Lowell A- 68 303 249 43 75 11 4 4 39 21 5 33 29 .301 .407 .426 .832 2 12 8 1
1998 23 Sarasota A+ 135 615 503 99 154 29 4 3 58 45 16 87 51 .306 .428 .398 .826 8 22 1 2
1999 24 Trenton AA 131 615 483 109 151 22 5 6 52 32 13 89 48 .313 .440 .416 .856 6 25 13 5
2000 25 Pawtucket AAA 119 515 422 77 104 20 0 1 31 11 8 60 45 .246 .364 .301 .665 8 20 9 4
Provided by Baseball-Reference.com: View Original Table
Generated 2/28/2013.

2000년, AAA볼 Pawtucket까지 올라온 Eckstein은 AAA 투수들의 강한 구위에 말리면서 초반 슬럼프에 빠졌다. Pawtucket의 코치들은 이런 Eckstein이 타격 메카니즘을 바꾸길 조언했고, Eckstein을 이를 시도하다가 오히려 더 성적이 떨어지고 말았다. Eckstein은 이에 다시 자기가 원래 하던 방식으로 바꿔 시즌 마지막 두 달간 자신의 타율을 0.085나 올렸으나, 이미 Red Sox는 Eckstein이 AAA 이상 레벨에서는 먹히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린 후였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Eckstein을 웨이버에 올린 뒤 7월 말, 5'10인치의 Lou Merloni를 영입해 사실상 Eckstein과의 결별을 선언했다. 8월 16일, Angels는 Waiver-wire에 올라와 있는 Eckstein을 데려왔고, Eckstein은 Angels로 오자마자 AAA 15경기에서 0.346에 홈런 3개를 쳤다.

 

Eckstein은 늘 1루로 전력 질주했다. 그리고 때때로 평범한 3루 땅볼로 1루에서 살았다.


2001-2004: Angels 시절

2001년, Eckstein은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맹타를 쳤고, 기적적으로 25인 로스터 자리를 확보했다. 그리고 주전 2루수 Adam Kennedy가 시즌을 DL에서 맞음에 따라 Eckstein은 선발 2루수에 9번타자로 개막전에 드는 영광을 누렸다. Adam Kennedy가 복귀하는 시점부터 Eckstein은 벤치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팀의 첫 9경기에서 Eckstein은 무려 406/.457/.469를 쳤고, 팀의 첫 홈 3연전인 Rangers 와의 개막 시리즈에서는 10타수 5안타에 무려 7득점을 올렸다. HBP든 BB든 그는 타석에 서면 어떻게든 1루로 나가려고 안간힘을 썼고, 2루 수비도 봐줄만했다. 4월 13일, Adam Kennedy가 부상에서 복귀했고, 기존 유격수였던 Benji Gil과 호흡을 맞춰 2루수로 선발 출장했다. 이 때 Alfredo Griffin 1루 베이스코치는 Mike Soscia에게 Eckstein을 유격수로 돌려서 라인업에 계속 넣는게 어떻겠냐고 제안했으며, Eckstein 역시 Scoscia에게 가서 대학시절 자신이 유격수였으며 당장이라도 유격수로 뛸 수 있다고 얘기했다 (Griffin 본인도 유격수 출신이다).

이에 Scioscia는 Eckstein을 마이너리그로 보내 유격수 수업을 받게 하자고 했고, Griffin은 자신이 메이저리그에서 뛰면서 가르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Scioscia에게서 허락을 받은 그 날부터 Eckstein은 유격수로 선발 출장했고, 경기 전과 후에 특수 훈련을 실시하면서 2루수 Adam Kennedy와 호흡을 맞췄다. 역시 가장 문제가 있던 부분은 Eckstein의 소녀 어깨를 보완하기 위한 부분이었는데, 조금 더 강한 송구를 위해 타구 처리시 한 발 더 앞으로 디디며 Momentum을 증량시켜 공을 뿌리는 법을 익혔다.

기존 유격수 Benji Gil 이 결코 인상적인 공격력을 가진 선수가 아니었던 점, Eckstein이 개막 하자마자 Hot Streak에 오른 점, Hit-and-run을 선호하는 Scioscia 감독이 Eckstein 같은 훌륭한 Bunter를 라인업에 넣고 싶은 욕심이 있었던 부분까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결과였다. Eckstein이 7월 월간 타율 0.239로 슬럼프에 빠지자 Angels 코치진은 투수들이 Eckstein의 짜증나는 타격 스타일을 상대하는 법을 알아챘다고 생각해 주전에서 빼려고 했으나, Eckstein은 바로 다음달인 8월에 .360을 치면서 완벽하게 자신의 위치를 방어했다.

If you want flashy, don't watch Eckstein play shortstop. If you want classic, don't watch Eckstein play shortstop. His range is limited--although improving--and his throws to first base are almost painful to watch. But he gets the job done, displaying an uncanny knack for smart positioning. 

-Scouting Report 2002, on David Eckstein's defense

 

2002년 Angels 우승에 Eckstein은 혁혁한 공을 세웠다.


2001-2002년 2년 연속 Eckstein은 AL 희생번트. HBP, 최저 헛스윙률 각종 변태적인 공격 카테고리에서 AL 1위에 올랐다. 리드오프로 나서서 107득점을 기록한 Eckstein은 2002시즌 Angels 우승의 주역이었으며, 그가 득점한 경기에서 Angels의 성적은 58승 17패였다 (승률.773). Eckstein이 출루에 실패하는 경기에서 팀은 9승 19패였는데, 그가 출루에 실패한 경기가 28경기 뿐이라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02년 4월 27일, Eckstein은 Blue Jays전에서 커리어 첫 만루홈런을 치는 기쁨을 맛보았다. 그리고 그 다음날인 28일, 연장 14회에 Pedro Bourbon을 상대로 Walk-off Grand Slam을 치면서 팀의 시리즈 스윕을 주도했다. 이전까지 7승 14패의 최악의 스타트를 끊었던 Angels는 이 시리즈를 기점으로 이후 23경기에서 20승을 챙겼다. 그리고 Eckstein은 6월 9일 Reds와의 인터리그 경기에서 Joey Hamilton (이 이름을 또 마주치다니!) 을 상대로 시즌 3번째 만루홈런을 때렸고, 결국 만루홈런 리그 1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2004년 12월 19일, FA 최대 유격수이자 지난 6년간 NL 최고 유격수로 군림하던 Renteria가 Cardinals와 재계약 하는 대신 Red Sox를 선택했다. 그래도 재계약을 할 수 있을거라는 희망에 끝까지 협상 테이블에 앉아있던 Cardinals는 Renteria가 물건너가자 바로 Eckstein에 집중했고, 12월 21일에 FA 자격을 받은 David Eckstein을 12월 23일에 3년간 10.25M이라는 저렴한 조건으로 계약했다. 이 사이 Red Sox 유격수였던 Orlando Cabrera가 Angels와 계약하면서 3팀이 유격수를 서로 바꾸는 그 유명한 Shortstop Merry-go-around가 완성되었다. 

David was the player we focused on right away after Cabrera signed. Given the current free-agent market at shortstop, it pushed salaries higher, but we still felt this was a value signing for us.

-John Mozeliak, on signing David Eckstein 

2005년: Fan Favorite from the first day

Eckstein은 "The Cardinal Way"에 너무도 잘 어울리는 선수였다. 볼넷을 골라도 1루로 뛰어갔고, 공수 교대시 덕아웃으로 들어올 때도 늘 빠르게 뛰어들어오며 "Hustle in, Hustle out"을 외쳤다. 잔부상 정도는 가볍게 무시하고 뛰었으며, HBP를 맞고 1루에 걸어나가서는 씩 웃었다. 안그래도 Grit에 일종의 페티쉬가 있던 TLR은 Eckstein의 이런 Grit을 예뻐했으며, Eckstein을 "Toughest guy I've seen" 이라 불렀다.

당당한 체구와 부드러운 몸놀림을 자랑했던 Renteria의 수비와 그의 파워풀한 라인드라이브 히팅에 익숙해져 있던 Cardinals 팬들이 새로운 꼬마 유격수의 보기 안타까운 투포환 송구와 삼진을 안당하려고 파울을 만들어내는데 안간힘을 쓰는 Eckstein식 타격에 익숙해지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의 저지 판매량은 순식간에 Pujols와 Edmonds가 수성하던 상위권으로 올라갔으며, 사소한 플레이 하나 하나에도 최선을 다하고 절대 싸인 요청을 거절하지 않는 Eckstein의 "Giving 110%"식 태도는 팀메이트들과 코치진, 누구에게나 인기가 있었다. 

Eckstein의 키는 많은 자료에 5'7 또는 5'8 (170cm) 로 명시되어 있으나, 실제 키는 이보다도 조금 더 작은 167cm라고 한다.


Eckstein은 이 시즌 커리어 최다인 158경기에 출장했으며, 올스타전에 선발 유격수 겸 9번타자로 출장하는 영광도 누렸다. 또한 후반기에는 .304의 타율을 기록하며 팀의 지구 우승에 일조했다. 2005년 8월 7일 Braves전, 3:1로 뒤지던 9회말 1사 만루에서 상대 마무리 Chris Reitsma를 상대로 Eckstein이 역전 끝내기 만루홈런을 쳤을 때 팬들의 그를 향한 사랑은 절정에 이르렀다. NLDS 3차전에서는 무려 PETCO에서 투런 홈런을 치는 광분을 했으며 (상대 투수 Woody 옹), 이 시리즈에서 13타수 5안타로 맹활약했다 (물론 이 세 경기에서 Reggie Sanders가 10타점을 치는 진정한 광분을 했기에 활약이 묻혔다) 

개인적으로 이 시즌 Eckstein의 모습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2005년 NLCS 5차전이다. 4:2로 지고 있던 9회초 Astros의 마무리 Brad Lidge가 마운드에 올라왔고, 순식간에 2아웃이 잡힌 뒤 Eckstein이 타석에 섰다. 어떻게든 출루를 해줬으면 하는 상황이었지만 사실 기대할 것이라곤 단타밖에 없는 Eckstein이었고, Lidge의 슬라이더는 악명높았기에 필자는 사실상 포기를 한 채 경기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Eckstein은 볼넷을 고르는 대신 3-유간으로 깔끔한 안타를 치고 나가는 것이 아닌가! (사실 이 타구는 당시 기억으로 내야수가 처리할 수 있음직한 타구였다) 

 이후 Jim Edmonds가 볼넷을 골랐고, Pujols가 타석에 들어왔다. 결과는 그 유명한 "침묵의 쓰리런"이다. Astros 팬들과 선수들이 미리 축포를 터뜨리던 것에 화가 난 Pujols는 역전 쓰리런으로 Lidge 커리어에 씻을 수 없는 흉터를 남겼고, Cardinals는 NLCS를 St. Louis로 몰고 갔다. 물론 이 시리즈는 Oswalt와 Clemens를 동시에 출격시킨 Astros가 승리했으나, 그 덕분에 월드시리즈에서 투수진 운용에 어려움을 겪은 Astros는 White Sox에게 싱겁게 패배했다. NLCS 5차전의 후폭풍이 Biggio와 Bagwell의 우승반지를 앗아간 셈이다. 

(여담이지만 이후 MVP 베이스볼이었나? 2K 시리즈였나 잘 기억은 안나는데, 일종의 '업적' 시스템처럼 어떤 특정한 이벤트 조건을 만족시키면 선수 카드를 주는 게 있었다 (가령 Crawford로 1경기 3루타 2개를 치면 Carl Crawford 카드를 준다든가...) Lidge 카드를 받는 조건은 Pujols를 삼진처리하는 것이었다)

"He's a good athlete. He studies how to hit. He has two World Series rings and a World Series MVP. He was the leadoff hitter and shortstop. Those are two very important parts of a winning team. I wonder if anyone else has ever done that for two (franchises, including the Angels) that won the World Series."

-  Adam Kennedy, on David Eckstein

Bonds는 Eckstein의 어머니를 만난 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You've got a great son."

 

2006년: WS MVP

많은 이들이 Eckstein을 Angel보다는 Cardinal로 기억하게 만든 바로 그 시즌이다 (필자도 자료를 찾다가 가장 놀랜 부분이 Eckstein이 Angels에서 4년을 뛰고 Cardinals에서는 3년밖에 안뛰었다는 점이다. 더 오래 뛴것 같았는데...)

늘 Wrist와 Hamstring 등에 잔부상을 참고 뛰던 Eckstein은 8월 중순에 Oblique Strain으로 무려 3년만에 DL에 올랐고, 약 한 달 정도를 결장한 후 9월 15일이 되서야 돌아왔다. 123경기 .292/.350/.344를 쳤으나 MVP 투표에 이름을 올렸던 2005년에 비하면 확실히 퇴보된 성적이었다. 포스트시즌에서도 그는 NLDS와 NLCS를 합쳐서 11경기에서 49타수 8안타에 그치며 부진했으며, WS 첫 2경기에서도 무안타에 그쳤다. 그러나 3차전 Carpenter의 역투가 있던 날, Eckstein은 4타수 2안타를 치며 타격감을 끌어올렸고, 4차전에서 5타수 4안타 2루타 3개를 폭발시키며 5:4 역전승을 이끌었다. 

Eckstein의 월드시리즈 안타들은 정말 그만의 스타일이 그대로 묻어나는 타구들이었다. 4차전 첫 타석, Eckstein은 3루에 Brandon Inge 쪽으로 바운드가 큰 타구를 쳐놓고 냅다 뛰며 내야 안타를 만들어냈다. 7회말 선두타자로 나서 2루타를 치고 나갔다가 (이 타구는 Granderson이 엎어지지 않았으면 잡을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Eckstein이 워낙 장타력이 없었기에 중견수가 내야 쪽으로 들어와 있었던 것이 화근이 되었다) 득점에 성공하며 3:3 동점을 만들고, 8회말에는 2사 2루에서 Zumaya를 상대로 다시 좌익수 키를 절묘하게 넘어가는 (이 타구도 Monroe가 정상적인 위치였다면 평범한 좌익수 뜬공이었을 뻔 했다) 2루타를 쳐서 역전을 만들어내며 영웅이 되었다. 5차전에서는 2회 2사 3루에서 3루쪽 파울라인으로 땅볼을 굴려놓고 냅다 달려서 상대 실책을 유도해 선취점을 냈고, 동점이던 4회말 1사 2,3루에서는 유격수 쪽으로 적당한 빠르기의 땅볼을 굴려서 결승점을 냈다. 

아주 소박하고, 기본기에 충실한 플레이들. 약간의 운이 없었다면 도저히 힘들었을 그런 타구들로 Eckstein은 역대 월드시리즈 유격수 최초로 한 경기 4안타를 친 선수가 되었다. WS MVP 트로피를 받아든 Eckstein은 부상으로 딸려온 노란색 스포츠카 (Corvette)을 보며 "저 차가 나의 첫 차" 라고 했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Eckstein은 당시 Oblique Strain 뿐 아니라 Shoulder, Hamstring, Concussion, Wrist 등 안 아픈 곳이 없던 상황이었으며, 팀 Work-out도 제대로 소화하기 힘들 수준이라 진통제를 맞아가며 경기에 임했다고 한다.

"To me, he's our shortstop. And believe me, he's more than just guts, he's a very good player. He's the toughest guy I've seen in uniform."

-Tony La Russa, on David Eckstein

나도 홈런 치고 싶어 웨인아

 

2007년

Eckstein은 잔부상으로 고생하며 커리어 최저힌 117경기 출장에 그쳤고, 6월 중순부터 7월 중순까지 한 달간 Lower Back Strain으로 DL에 올랐던 것 외에도 DTD에 자주 왔다갔다 했다. 물론 플레이할 때는 .309/.356/.382의 평소와 다름없는 수준의 생산성을 보였고, Pesky함도 그대로였으나, 충분한 경기에 출장하지 못한 것과 올라간 그의 몸값 (2007년 연봉 4.5M) 때문에 Eckstein의 연장계약은 아쉽게도 무산되었다.

St. Louis에서의 3년간 Eckstein은 3.0 --> 1.8 --> 1.0의 감소하는 WAR를 보였고, 반대로 그의 몸값은 2.3M --> 3.3M --> 4.6M으로 매해 조금씩 인상되었다. 가격 대비 성능으로 봤을 때 2005년 Eckstein은 훌륭했고, 2006년에는 그저 그랬으며 (WS 부스트를 감안하고), 2007년에는 평균 이하였다고 봐도 좋을 듯 하다. 시즌 후 Eckstein은 유격수를 찾던 Blue Jays와 1년 계약을 맺고 토론토로 건너 갔으며, 2009년에는 Padres와 2년 계약을 맺고 2루수로 전향 (진작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2년간 252경기에 출장한 뒤 2010년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공식 경기에는 뛰지 않았다.

짧지만 강렬했던 Eckstein과의 3년 (2005-2007)


총평: Eckstein에 대한 두 가지 시선

David Eckstein을 바라보는 시선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그를 "늘 110%의 노력을 기울이던 작은 거인"으로 바라보는, 연민과 애정이 섞인 드라마틱한 시선이었다. 평균 신장 188cm의 건장한 빅 리거들 사이에서 단신의 몸으로 데뷔했던 Eckstein의 성공 스토리는 스포츠 저널리스트들이 정말 좋아하는 소재였다. 단 한번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아본 적이 없이 그저 야구에 대한 열정과 사랑으로 모든 확률을 뒤엎고(Against all odds) 메이저리그에 데뷔해 WS MVP까지 따낸 그의 커리어 스토리, 그리고 그 유명한 Grit과 투지는 스포츠에서 '감동'을 갈구하는 팬들에게 묘한 가슴뭉클함을 안겨주었다. 

두번째는 이 전자에게 조소를 날리는 듯한 "그래봤자 단타 이상은 생산해낼 수 없던, 좁은 Range와 약한 어깨를 가졌으나 몹쓸 투지 때문에 과대평가된 웃기는 유격수" 였다. 이들은 wRC+, UZR, SLG 등 Eckstein의 후진 세이버 스탯 카테고리들을 들며 Eckstein이 얼마나 과대평가되었는지 까대기 시작했다. 거품을 걷어내려는 노력은 Eckstein이라는 선수의 가치에 대한 비하로 쉽게 전이되었고, Eckstein이 남긴 업적들 역시 "사람들이 제대로 스탯 분석을 할 줄 몰라서 그렇지, 알만한 사람들은 Eckstein이 얼마나 허접한지 다 알아" 식으로 매도되었다. Fire Joe Morgan 같은 사이트들은 (FJM: 미 스포츠 저널리즘의 폐해를 풍자 및 고발하던 사이트로, ESPN 해설가 Joe Morgan의 어록을 까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은 Eckstein을 비아냥거리는 데 앞장섰으며 (정확히 말하면 Eckstein에 대한 스포츠 저널리스트들 및 미디어에 대한 비아냥거림이었으나), 몇몇 세이버리스트들은 Eckstein이 대체 언제부터 가슴으로 (Heart) 야구하는 것을 그만두고 남들처럼 팔과 다리를 써서 야구를 할 것인지를 물었다.

I might not be the best president, but I will always hold up the integrity of this office. That's why I like your son so much. He plays the game with such integrity".                           

                                                   -George W. Bush, to David Eckstein's mother, in November 2002

참 젊던 TLR. 그리고 동안계의 거장 Eckstein.

Eckstein에 대한 조금 더 중립적이고 공정한 평가는 이 두 시선을 모두 받아들여야 가능하다. 

Eckstein이 비록 기민한 풋워크와 탁월한 위치선정으로 신체적 약점을 보완하려고 노력했으나, Eckstein의 수비는 가장 나았을 때도 평균 수준이었다. 작은 몸 때문에 다이빙을 해도 그가 커버할 수 있는 범위는 좁았으며, 확실히 약한 어깨 때문에 1루 송구는 늘 버거워보였다. Angels 시절 그는 3년간 매년 최소 +3.3의 UZR을 기록했으나, Cardinals에서 그는 -8.3 --> +1.5 --> -9.8의 조금은 안타까운 UZR을 기록했다. 좁은 레인지와 약한 어깨를 보완하기 위해 그는 평범한 타구에 대한 에러를 줄이고 더블 플레이를 부드럽게 연결시키는 데에 집중했으며 (연습으로 극복이 가능한 부분이 아닌가) 결과적으로 2003,2004, 2006년 3시즌에 수비율 상위 3위에 들었고, 2005년에는 리그 내에서 가장 많은 더블플레이를 성공시킨 유격수였다. (물론 수비율이라는 스탯은 정말 허접한 스탯이지만, 적어도 Eckstein이 노력으로 많은 것을 극복했다는 부분은 알 수 있다). 2004년까지 그는 리그 평균 수준의 유격수 수비를 보였다고 해도 괜찮으며, Cardinals로 이적 후 그의 수비는 한계를 조금 더 명확히 노출했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체구를 생각했을 적에 이 정도 수비를 해낸 것도 사실은 기특하지만, 프로에서 "가진 것에 비하면" 이라는 상대적인 명제는 의미가 없다.  

Eckstein이 타석에 들어설 때 장타를 기대하는 팬은 없었으며, Eckstein 본인도 늘 입버릇처럼 "나는 1루 베이스에 나가는 것이 사명" 이라고 말했다. TLR과 Mike Scioscia, 그와 함께했던 두 감독은 Eckstein을"상대 투수를 괴롭혀서 많은 공을 던지게 하고, 뛰어난 배트 컨트롤로 파울볼을 만들어내는 데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Classic Leadoff" 로 정의했으며, 특히 La Russa는 Eckstein을 "Pesky" (성가시고 귀찮다는 뜻, Annoying과 흡사) 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그도 그럴 것이, Eckstein의 남다른 근성과 Grit은 타격 어프로치에서부터 이미 눈에 띄었고, 공에 배트를 맞추고 삼진을 피하는 데에는(Putting Balls in play) 훌륭한 재능이 있었다. 작은 체구 덕에 좁은 스트라이크 존을 가지고 들어가는 것도 이득이 되었으나, 공에 맞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Eckstein의 자세는 투수들의 신경을 많이 거슬렀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지배하던 자, David Eckstein

2001년: 희생번트 1위 (16개) ,HBP 1위 (23개), 최저 헛스윙률 1위 (8.1%), 0-2 카운트 타율 1위 (.351)

2003년: 희생번트 1위 (14개) ,HBP 1위 (27개), 최저 헛스윙률 1위 (7.7%), Pct of Putting Balls in play 3위 (53.9%) 

2003년: 희생번트 4위 (10개), 최저 헛스윙률 2위 (7.7%), 

2004년: 희생번트 4위 (14개), 최저 헛스윙률 1위 (7.5%), 초구 스윙률 리그 최저 (11.2%), Pct of Putting Balls in play 4위                             (52.9%), AB per SO 1위 (11.6)

2005년: AB per SO 2위 (14.3), 득점권 타율 리그 2위 (.351)

2000년대 (2000-2009) 최소 800경기 이상 출장한 선수들 중 K% 4위 (7.3%, 1위 Juan Pierre)


Eckstein의 10년 커리어를 통틀어 통산 장타율은 .355에 불과하며, 7개의 3루타와 8개의 홈런을 터뜨린 2005년 .395가 커리어 최고 수치이다. wRC+, OPS와 같은 통상적인 지표에서 Eckstein은 불리할 수 밖에 없으며, "최대한 많은 득점을 생산해내는 것" 에 바탕을 둔 세이버 지표 상에서 단타 이상을 생산해낼 확률이 미미했던 Eckstein의 무능력함과 잉여력은 특히나 돋보였다.

Eckstein은 남들과 같은 조건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한 뼘, 아니 두 뼘이 작은 키에, 팔과 다리도 모두 6'2인치 짜리 평균 선수들에 비하면 짧았다. 운동신경은 좋았고 순발력과 민첩함은 뒤지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Billy Hamilton이나 Dee Gordon처럼 엄청난 순수 운동능력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보통 선수들 처럼 Contact + Power + Line Drive hitting + Throwing Arm + Pure speed와 같은 Tool로 승부를 걸었다면 그의 야구 커리어는 존재할 수가 없었다.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그만의 스타일로 야구를 해왔다. 그리고 그가 잘하는 것들, 즉 삼진을 당하지 않는 능력, 파울로 공을 커트해내는 능력, 어떻게든 내야 밖으로 타구를 보내는 능력 등은 최고 수준의 무대인 빅 리그에서도 통함을 증명해냈다. 물론 그의 성공에는 그가 커리어 대부분을 Hit-and-run과 번트를 선호하던 Mike Scioscia, Grit 과 Hustle 페티쉬의 소유자이자 작전수행 능력을 중시하는 Tony La Russa, 이 두 감독 밑에서 보내는 운도 작용했다고 사료된다.

"I can remember talking to Don Zimmer a couple of years ago about him. He said, 'You look at him, you can't figure it out.' And then during the course of the game he's in the middle of every single thing."

-Jim Leyland on David Eckstein before WS Game 5 (2006)

 

David Eckstein의 고등학교 교지에 Eckstein은 "Most Helpful" 한 학생으로 명시되어 있다고 한다. 그게 위선이었는지 가식이었는지는 모르지만 프로에서 그가 보여준 모습을 돌이켜 봤을 때 Eckstein은 남을 돕고, 팀을 돕는 것에서 의미를 찾던 사람이고, 선수였다. 그리고 Eckstein은 타고난 신체적 조건 때문에 남들과 똑같은 방법으로 팀을 도울 수는 없었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살아남아야 했다. 눈물샘을 자극하고 감동을 이끌어내려고 디자인 된 진부한 신데렐라 스토리들은 Eckstein의 "인간 승리" 에 지나치게 포커스를 맞추었고, 이는 역효과를 불러왔다. 이러한 부분들을 빼고 냉정하게 Eckstein이라는 선수가 어떤 식으로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왔는지에만 집중한다고 해도, 그의 커리어는 충분히 존중받을만 하다. Eckstein은 철저한 노력과 뛰어난 야구 센스로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했고, 10년간 리그 평균선에 크게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수준의 공헌을 하며 10년간 19.6M의 연봉을 받고 18.9의 WAR를 쌓았는데, 이는 상당히 괜찮은 효율성이다. 그리고 Average 수준의 Shortstop은 예전에 주인장님이 한 번 언급하셨듯 생각보다 상당히 가치있는 재산이다. 

Intangible의 힘을 믿든, 믿지 않든, Eckstein은 주변 사람들에게 영감과 동기를 주고, 에너지를 불어넣었으며, 그 존재 자체로 팀에게 긍정적인 힘을 가져다 주었던 선수였으며, 무엇보다 우리에게 좋은 기억을 남겨주었다. 수많은 확률과 "너는 안돼" 를 이겨내고 가장 큰 무대에서 두 번이나 빛난 그는 늘상 "You see? Things work out" 을 입에 달고 다니던 낙천주의자였으며, 그의 이러한 성격을 높이 산 Cardinals 구단 측에서는 Eckstein이 팀 마이너리거들을 상대로 자신의 경험과 야구 인생에 대해 강연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했다.

우리 블로그의 한 댓글에서 "스포츠를 보는 가장 큰 이유는 감동과 승리가 아니겠는가" 하는 구절을 본 적이 있는데, Eckstein은 감동도 주었고 승리도 주었으니,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행운의 상징?


Did you know...

  • 집안에 흐르는 유전병 때문에 형제들이 어렸을 때부터 신장병을 앓는 모습을 보고 자란 David Eckstein은 프로에 데뷔한 이후 줄곧 신장병 환자들을 위한 구금 활동에 활발히 참여했으며, 지역사회에 대한 환원과 봉사를 꾸준히 실천해왔다. Cardinals 시절은 말할 것도 없고, 데뷔 초기 Angels 시절에도 Eckstein은 팬들에게 늘 "옆집 청년"같은 이미지로 다가갔으며, 암투병 어린이나 신장병 어린이들을 위해 꾸준한 후원을 지속했다. (Angels의 한 리포터는 Eckstein이 Angels에서 논텐더로 풀렸을 때, Eckstein의 소식을 어린 딸에게 전하자 도저히 위로할 수 없을 만큼 딸이 울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 Eckstein은 5남매의 막내인데, 태어났을 때 병원에서 아이가 건강하다는 진단을 받았음에도 노파심에 다시 재검을 요청했다. 이 때 한 한국계 의사가 Eckstein의 내장을 근육이 막고 있는 것을 발견, 급히 수술을 진행해 제거했는데, 미리 발견하지 않았으면 생명이 위태로웠을 것이라고 한다. Eckstein 가족은 가족 대부분이 University of Florida 출신이며, David은 Padres에서의 선수생활이 끝난 후 온라인 클래스를 들으며 2012년 Political Science 학위를 따고 졸업했다.

  • David은 2006년 WS MVP 부상으로 받은 그 Corvette을 형 Rick Eckstein에게 선물로 주었다. 이유는 스틱을 몰 줄 몰라서....

  • 역사에 길이 남을 2011년 WS 6차전 시구자가 David Eckstein이었다. 이러니 St. Louis에서 사랑을 안 받을 수가 없다.

  • Eckstein은 2005년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Ahsoka의 목소리로 출연했으며 예전에 유명했던 "The Brady Bunch" 라는 시트콤에 나왔던 배우 Ashley Drane과 결혼했으며 (Disney World에서 프로포즈하고 결혼했다고 한다) 현재 부인의 사업을 도우는 한편 (여성 Sci-fi 팬들을 위한 각종 물건들을 만드는 회사로, 관심있으신 분들은 들려보시길 (www.heruniverse.com) 형인 Rick Eckstein (현 Nationals 타격코치) 와 함께 오프시즌에는 학생들에게 야구를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Rick Eckstein은 동생을 위해 자신의 신장을 기증했다. 

by Doovy

맺는말: Revisiting TLR ERA 시리즈는 오늘 Eckstein편을 마지막으로 휴식에 들어갑니다. 그간 9편에 걸쳐 8명의 선수들을 돌아보았는데, 아직도 쓸 선수들이 많이 남아있지만 다음 오프시즌을 기약하겠습니다. 이번 오프시즌이 워낙 지루해서 시작한 시리즈였는데, 개인적으로 여러 선수들을 돌아볼 수 있어서 의미있고 빡센(?) 시간들이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저는 4월 프리뷰 때 다시 포스팅하도록 하겠습니다.  :))




Posted by Doov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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