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팅까지 하기엔 영 허접스럽지만, 이래저래 소식 잡혔던 놈들만 간단히 정리해 봅니다. 사실 윈터미팅때 접했던 소식이지만 이때 풀려고 안고 있던 것들도 몇 있네요.


Stephen Piscotty: Winter Warm Up 정리글에서 학위 마치고 살짝 스윙 교정을 했다고 전해드렸습니다. 긴 팔을 이용해서 extension을 좀 더 뽑아낼 수 있는 작업이었다던데 스캠서 면밀히 확인해볼 수 있겠지요. AAA 코치와 시즌 막판 교정 작업을 진행한 걸 이어받아 이를 마무리한 스탠퍼드대 코치 Brock Ungricht씨는 이번 수정으로 당사자가 다음 시즌 보다 나은 power number를 기록할 수 있을거라 확신한다 밝혔습니다.

Rob Kaminsky: 올해도 혹독한 체력훈련 등을 소화했고, Marco Gonzales에게 달라붙어 changeup 연습 삼매경에 빠져있었다고 합니다.

Marco Gonzales: 마침 PD에 기사가 실렸네요. 요가 등을 통해 유연성을 기르는데 중점을 뒀다는데요. 투구 관련된 부분으로는 지난 시즌 막바지 웨이노의 도움으로 가다듬기 시작한 two-seam과 cutter를 손보는데 주력했다고 합니다. 무슨 말만 나오면 다 waino 아니면 yadi인데 투수코치 양반은 참 날로 먹어도 이리 날로 먹을수가 없습니다.


Tim Cooney: VEB에 인터뷰가 실렸고, lector님이 나오자마자 댓글로 소개시켜 주셨죠.

Luke Weaver: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2-3년 뉴스를 뒤지다보니 1라운더 정도면 보통 겨울에 기사 하나는 뜨던데 이렇게 쥐죽은듯 조용한 놈은 또 처음이네요.

Jacob Wilson: 오프시즌 좀 더(조금O, 많이X) 파워를 뽑아내기 위해 노력중이라던데 뭔가 하고 있는거 같습니다. 꼭 메커닉 수정을 의미하진 않겠죠. 벌크업일수도 있고. 상세한 뉴스나 경기 동영상을 기다려봐야겠네요.

Sam Tuivailala: AFL 연장선상에서 curve와 changeup을 가다듬고, 빅리그 로스터 불펜 한자리를 목표로 땀흘리고 있다는군요.


Aledmys Diaz: 여전히 100%가 아닙니다. 마이너 개막전 맞춰 100% 복귀 목표로 훈련 중입니다. Goold는 건강할 경우 강력한 미드시즌 승격 후보로 꼽고 있습니다.

Carson Kelly: 수비야 처음부터 기대 이상에 구르는 만큼 느는거고, instructional league서 타격 메커닉에 역시 몇가지 수정을 가했다는데 실전에서 보여줄 수 있길(응용하기를) 기대한다네요.

Rowan Wick: 가장 오프시즌 인터뷰가 기대됬던 선수인데 아쉽게도 이름값의 한계인지 구글링의 한계인지 찾을수가 없네요.

Mason Katz: 알려진대로 캐칭 훈련을 계속하고 있다 합니다. STEP 프로그램서도 포수로 기용될 예정이고, Carson Kelly가 빅리그 선수들(Yadi)과 쭉 연락을 주고 받고 있는데 Kelly를 통해 그들의 노하우를 간접적으로 계속 흡수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군요. 타석에선 잦은 오버스윙 자제를 통해 좀 더 높은 타율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구요.


Chris Perry: 8월 말부터 어깨가 좀 안좋았고, AFL 중반쯤 셧다운 됬죠. 때문에 쭉 쉬다 1월 말부터 던지기 시작했고, 오래 안던져서 어깨에 약간 통증이 느껴지지만 별 문제 없이 컨디션 슬슬 끌어올리는 중이라 합니다. 오프시즌 트레이닝은 무엇보다 arm strength 되찾는데 초점을 맞췄다네요.

Mitch Harris: 팀이 전화로 스캠 결과에 따라 빅리그 로스터에 들어갈 수 있는 찬스가 열려 있으니 준비하고 오라 했다더군요. 자기 생각에도 대학시절 구속이 확실히 돌아왔다 보고, 많은 나이 생각 안하고 꿈을 위해 정진하고 있고, 또 앞으로도 쭉 하겠다고.

Nick Petree: 역시 첫 풀타임 선발 소화 후 육체적, 정신적으로 긴 시즌을 소화하는데 철저한 준비가 필요함을 깨달아 이쪽에 포커스를 두고 훈련했다네요.

Zach Petrick: 겨울 소식은 아닙니다만, 지난 시즌 막판 불펜투수로 뛰기 시작했는데, 아예 불편으로 전향하는 건지 어떤건지 주목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Jimmy Reed: 집이 가까운(텍사스) Lackey가 뜬금 연락해와서 몇번 같이 훈련했다는군요. 올 한해 보다 꾸준하고 공격적인 투수로 발돋움하고 싶댑니다.


John Gast: PD 기사에 따르면 확실히 몸이 돌아왔다고 합니다. 선발등판시 최고 92-3mph 깔짝 찍어대던 Gast의 구속은 최고 88mph 수준까지 3-4mph 뚝 떨어졌었죠. 재작년 빅리그 데뷔 시점에 이미 어깨 맛이 가 있던 상태였구요. 정상적이라면 Lyons와 비슷한 레벨이고, changeup과 pickoff(?)라는 확실한 무기가 있는지라 한번 지켜볼만 합니다.

Seth Blair: 불펜 투수로 잠깐 뛰어봤는데, 확실히 적응하기 위해 특히 마인드 부분에 신경써서 훈련했다고. 선발서 불펜 전향한 투수들의 뻔한 말 그대로 복붙했습니다. 올해가 아마도 마지막 기회일텐데요.
Jordan Swagerty: 살아 있습니다. 마운드 위에서 공도 던지고 있습니다. 올해는 정상적으로 던지긴 하려나 봅니다, 얼마나 회복이 가능할진 몰라도.

Nick Greenwood: 간혹 좌타자 상대 직구 구사할 때 팔각도가 내려가는 걸 캐치하고, 이참에 아예 변화구 구사 시에도 더 낮은 각도로 던지게 딜리버리를 변경했다고 합니다. 올해 결혼한 많은 선수들 중 하나기도 하죠.

Dean Anna: 2013년 AAA 타격왕 먹고, 지난시즌 최악의 한해를 보낸 극과 극 속에서 많이 배웠으며, 그에 따라 오프시즌 육체적, 정신적으로 단단히 준비하고 있다 밝혔습니다.


끝으로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모든 분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기원합니다.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Posted by skip55
:

여러분들이 생각보다 너무 많은 아이디어를 주신 덕에 (?) 조연 모듬 리스트를 확정을 하지 못했다. 대신 불판도 갈을 겸 해서 조연 모듬에 넣으려던 다른 선수 하나를 준비했다. 사실 시리즈를 20편에서 종결할 생각이었으나, 필자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선수들을 많이 깨우쳐주신 덕에 몇 편은 더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어차피 추억팔이를 할 수 있는 시간도 이제 얼마 안남았다!


Ryan Franklin


Starter / Reliever

DOB: 1973년 3월 5일

Birth: Fort Smith, Arkansas

Time with Cardinals: 2007-2011

Draft and Minors

1992년 드래프트 23라운더인 Franklin은 "유망주" 와는 거리가 멀었다. 별볼일없는 구위를 다양한 레퍼토리와 그나마 쓸만한 커맨드로 메우는 (매우 낮은 Upside의 ) 허접한 투수였는데, 주니어 칼리지 (Seminole Junior College) 시절 2년간 20승 무패의 기록을 세운 점과 상당히 간결하고 안전한 투구폼을 지녔다는 점을 높이 평가받아 그래도 23라운드 전체 642번으로 지명을 받았다.[각주:1] 프로 입문 5년만에 AAA볼 Tacoma까지 진입하긴 했는데, 90-92마일대의 평범한 패스트볼 + 다양하지만 자신없는 브레이킹볼 + 전무한 플러스피치로 ML레벨에 들어가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Franklin은 97~99시즌 3년간 AAA볼에서 꾸준히 선발수업을 받으며  350이닝을 넘게 던졌고 평균자책 4.55를 기록했다. 이 당시 PCL의 경기당 평균 득점이 5.7을 넘었으며, 리그 평균 타율이 3할에 육박하고 리그 평균 OPS가 8할이 훌쩍 넘었음을 생각하면 Franklin 이 꽤나 선방했다고 봐야 하겠으나, "잘해봐야 스윙맨" 프로젝션을 받을만큼 Stuff가 너무 실망스러웠다. 심지어 Franklin 본인도 훗날 "마이너 시절 내가 ML에서 승격될 수 있을 거라고 낙관하지 않았다" 고 회고했다.

"I never considered myself to have the best talent in the world, but I was always a fierce competitor and I worked really hard. If you told me in the minor leagues that I would have 10 years in the big leagues and be an All-Star, I would have said, 'Whatever,' because I never really had high expectations for myself. It's crazy what hard work and competing can do for you."

-Ryan Franklin, ESPN interview with Jerry Crasnick (03/28/2010)


Ryan Franklin's Minor League Track Record

YearTmLevWLERAGSIPHERHRBBSOWHIPBB9SO9SO/W
1993BellinghamA-532.921474.07224227551.3383.36.72.04
19943 TeamsA-A+-AAA1383.2527185.11756713321391.1171.66.84.34
1995Port CityAA6104.3220146.01537013431021.3422.76.32.37
1996Port CityAA6124.0127182.01868123371271.2251.86.33.43
19972 TeamsAAA-AA973.7322149.21426215381081.2032.36.52.84
1998TacomaAAA564.5116127.2148641832901.4102.36.32.81
1999TacomaAAA694.7119135.2142711733941.2902.26.22.85
2000TacomaAAA1153.9022164.01477128351421.1101.97.84.06
10 Seasons61603.921681170.211695101292778611.2352.16.63.11

AAA볼에서 4년째 정체중이던 Franklin은 2000 시즌 전환점을 마련했다. 소속팀 Tacoma에서 11승 ERA 3.90으로 커리어 최고 성적을 찍었고, 무엇보다 수년째 2점대에 머물던 BB/SO 비율이 갑자기 4.0을 넘기면서 ML 승격을 부르짖었다. Franklin은 커리어 내내 그럭저럭 괜찮은 제구력과 커맨드를 자랑했는데 (거의 유일한 장점이라고 본다), 이 시즌에 딜리버리에 디셉션을 가미하면서 갑자기 K/9이 무려 7.8까지 올라갔고 (물론 이 해를 마지막으로 Franklin은 다시 이 수준으로 탈삼진을 잡아내지 못했다), 이 활약을 크게 인정받아 시즌 막판에 국가대표로 선발되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Ryan Franklin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미국 대표팀 출신이다. 당시 미국 대표팀 로스터를 파헤쳐보면 대략 1) AAAA레벨 쩌리들, 2) BA Top 100에 수준의 고급 마이너 유망주들 (Sean Burroughs, Kurt Ainsworth, Adam Everett), 3) ML급 엘리트 탤런트 (Roy Oswalt, Ben Sheets) 들로 대략 구성되어 있었는데, 27세의 나이로 Mariners 산하 AAA 소속이던 Franklin은 당연히 1번 유형에 속하는 케이스였다. 이 대회는 Ben Sheets의 속칭 "하드캐리"[각주:2] 로 잘 알려져 있기에 Franklin을 기억하시는 분은 아마 없겠지만, 나름 3경기에서 8이닝 무실점으로 대표팀 밥값은 충분히 했다.

시애틀 시절의 Franklin

Mariners 시절 (2000-2005)

올림픽에서의 선전 덕분일까. 28세의 늦은 나이에 ML에 자리를 잡은 Franklin은 2001시즌 불펜에서 Mop-up 으로 아주 좋은 활약을 했고 (78.1이닝 ERA 3.56), 2002시즌에는 스윙맨 (선발 12경기, 구원 29경기) 으로 뛰었으며, 2003년 Mariners 선발진에 진입해 기회를 제대로 살렸다. 커리어 최다인 212이닝을 던지면서 평균자책 3.57로 실점을 억제했는데, 이는 타고투저 시대였던 당시 리그 ERA 탑 10에 드는 수치였다.[각주:3]  지역 언론에서는 이 해 "Jamie Moyer 를 제외하면 Mariners 로테이션에서 가장 믿을만한 투수"로 Franklin을 뽑았고, 특히 그가 득점지원을 충분히 받지 못했다는 사실에 주목하며 (Run Support 4.66, 리그 하위권) Franklin이 15승은 넉넉히 했어야한다는 지원사격을 보냈다. 덕분에 Franklin은 Mariners로부터 2년간 4.3M의 꽤나 짭짤한 계약을 받았는데, 예상대로 이는 양측에게 좋은 일이 아니었다.

괜찮아보였던 2003시즌도 뚜껑을 열어보면 불안요소가 한두개가 아니었다. 일단 삼진을 잘 잡지 못하니 FIP와 ERA와의 괴리는 끔찍한 수준이었고[각주:4] (FIP 5.17, ERA 3.57),  공이 느린 플라이볼 피처이다보니 (FB 44%, GB/FB 0.77) 피홈런 리그 1위 (34개)의 영광도 차지했다. 체인지업이 구리다보니 좌타자들에게만 홈런을 23개나 두들겨맞았고 K/9은 고작 4.2에 그쳤으니, 이 정도면 차세대 흑마술사의 등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당시 스카우팅 리포트를 보면 Franklin의 레퍼토리는 "패스트볼 + 슬라이더 + 커브 + 체인지업 + 스플리터 + 싱커 + 에다가 2003시즌에 커터를 도입했다" 고 써있는데, 구위가 부족하니 레퍼토리를 확장해서 그 갭을 메워야했던 Franklin의 부단한 노력이 안쓰럽다.  결국 2004년, Franklin은 우악스럽게 패스트볼을 존에 찔러넣다가 우타자들에게 호되게 당했고, 7~8월에는 무려 선발 11연패를 당하기도 했다. 거기에 Mariners 특유의 리그 최하위 득점지원이 계속되면서 (Run Support 3.1, 리그 최하위) 4승 16패라는 끔찍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다.

"He has so many weapons. We'll be in the bullpen saying, 'He's going to throw this now,' and then he throws something else for a strike. Last year it seemed like he was 0-1 or 0-2 against everybody. It's tough to hit down 0-2 no matter who you are." 

-Jason Motte, on Franklin's repertoire (03/28/2010)

7개의 구질을 가지고 있었다고는 하나 Franklin은 결국 운이 많이 필요한 홈런 프론, Finesse-Flyball pitcher 였다. 이런 투수들은 Sustained Success를 이어가기가 힘들고, Franklin의 선발투수로써의 가치는 2003시즌에 정점을 치고 아주 급격히 거품이 빠졌다. Franklin이 Cardinals로 이적해온 것은 2007년인데, 그 때 Franklin의 나이는 이미 34세로, 대체 뭘 기대할 수 있을지 모르던 상황이었다. 두들겨 맞는 걸로는 자신있었으며 (투수구장 홈으로 쓰면서 4년간 피홈런 100+개), Mariners에서 뛴 6년간 K/9이 4.7에 불과했던 투수를 영입했던 것이었기에 영입 당시만해도 이 투수가 향후 Izzy의 뒤를 잇는다는 것은 상상도 하기 힘들었다. 그런데 이후 Franklin은 Cardinals에서 무려 5시즌을 뛰었고, TLR 시대에서 가장 많은 경기에 등판한 선수로 남게 된다.  

TLR ERA (1995-2011) 최다 경기 등판 순위

  1. Jason Isringhausen (401)
  2. Ryan Franklin (285)
  3. Kyle McClellan (245)
  4. Matt Morris (237)
  5. Chris Carpenter (195)

"It’s good to know (about closing), because I want to be prepared. It’s not going to be any different than the job I’ve been doing, really — I have to get three outs, under pressure. It just changes when I start getting ready."

-Ryan Franklin, upon getting the closer gig (2007, STL Post Dispatch, Derrick Goold)


2007-2008년: (35세에) 클로저 전환

Cardinals 유니폼을 입고 나서 Franklin은 "피홈런을 줄여라" 는 특명 아래 TLR+Dunc 의 조련을 받으며 커터와 싱커를 가다듬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다지 좌/우 스플릿이 없었던 Franklin이 땅볼 유도용 구질을 제대로 장착하면서 TLR이 가장 좋아하는 노예가 되었고, 2007년에 무려 69게임에 등판해 80이닝을 소화한다. 특히 2007년 전반기 Franklin은 보는 사람들을 의아하게 할만큼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는데, 38경기에서 3승 무패 ERA 1.23, .204/.230/.280으로 상대 타자들을 완벽하게 봉쇄했다.

2007 전반기 Ryan Franklin : 38경기, 3-0, ERA 1.23, .204/.230/.280, 44IP 17K 4BB

2011 전반기 Edward Mujica : 41경기, 26 S, ERA 2.21, .188/.197/.315, 41IP 34K 2BB

불펜투수로써는 희귀한 5+-pitch 레퍼토리를 자랑하는 Franklin은 플러스 피치의 부재를 1) 무식하게 달려드는 승부욕, 2) 스트라이크를 던지는 공격적 성향, 3) 타고난 연투능력으로 메웠고, 이런 메카니즘 덕분에 굉장히 빠른 속도로 릴리버로의 전환에 성공했다. 평균 패스트볼 구속은 91-92마일 수준이었지만, 필요할 때는 최고 94.5마일까지 구속을 늘릴 수 있었으며, 원할 때는 86마일짜리 패스트볼도 던질 수 있었다. 무엇보다 싱커/커터의 비중을 늘리면서 선발 시절 35% 근처였던 GB%가 구원 전환 후 45%대로 크게 올라간 것이 피홈런 문제를 완화시키는 데에 큰 도움을 주었다.


다시 보기 힘든 5+ pitch Closer


2008년 5월, Isringhausen이 DL에 올라가자 TLR은 별 망설임 없이 Franklin을 차기 클로저로 내세웠다. Franklin은 당시 시즌 첫 한 달간 무려 5차례의 연투를 했을만큼 팀에서 가장 꾸준한 노예였으며, 이미 불펜에서 Franklin의 위상은 Izzy 다음이었다. 물론 당시 Cardinals의 차기 클로저 재목으로 지목되던 Chris Perez에게 빨리 경험치를 몰아줘야한다는 의견도 있었으나, 베테랑 투수들의 경험을 존중하는 TLR의 취향과 고집은 Franklin을 우선시했다.  Franklin은 담담하게 보직을 받아들였고, 그럭저럭 역할을 소화하는 듯 보였으나 7월 말에 3경기 연속 피홈런 + 블론을 자행하며 TLR을 머쓱하게 했다. (상대 타자들은 Bill Hall, Ryan Braun, Fernando Tatis) 

2009년: 마법같은 시즌

엄청난 운이 작용하긴 했지만, 그래도 Franklin의 2009시즌은 Cardinals 클로저 역사상 가장 효과적인 시즌 중 하나였다. 개막 이후 13경기 연속 무실점 (9세이브)을 기록하던 Franklin은 5월 10일 Reds전에서 Hairston과 Micah Owings에게 2피홈런을 허용하며 리드를 날렸다. 그러나 이 경기에서의 블론 이후 다시 정신을 차리고 전반기 내내 단 1실점만을 더 허용했다 (이후 20경기 19.1이닝 1실점, 팀 17승 3패). 그리고 후반기에도 이 페이스를 꾸준히 이어가며 2009년 8월에는 11경기 11이닝 무실점 11세이브로 Reliever of the Month 상을 수상했다. 

2000년대 단일시즌 Sub 2.00 ERA, 35+ Saves (2000-2009)

  1. John Smoltz (2003, ERA 1.12)

  2. Eric Gagne (2003)

  3. Armando Benitez (2004)

  4. Takashi Saito (2007)

  5. Robb Nen (2000)

  6. Billy Wagner (2005)

  7. Derrick Turnbow (2005)

  8. Billy Wagner (2003)

  9. Chad Cordero (2005)

  10. Ryan Franklin (2009, ERA 1.92)

8월 30일까지 Franklin의 성적은 35세이브 ERA 1.05에 리그 구원 1위. 이렇게 능력 이상의 페이스로 스탯을 쌓아가는 선수들이 시즌을 무난히 마무리하는 경우가 거의 없듯이, 월간 마무리 상을 수상하자마자 Franklin은 급격히 추락하기 시작했다. 특히 시즌 내내 그를 버티게 해준 패스트볼 제구가 엉망이 되면서 9.1이닝동안 상대타자들에게 .405/.521/486로 두들겨맞았고, 볼넷 10개를 내주며 3블론세이브를 기록했다. 자기 공은 멀쩡한데 등판간격이 들쭉날쭉해서 결과가 안좋았다고 말을 돌렸지만, 이도 없고 잇몸도 사실상 없는 Franklin 입장에서는 제구가 되지 않으면 임무를 절대 수행할 수 없었다. 우려는 현실이 되서 2009 NLDS 2차전에서 Franklin의 제구 난조는 결국 결정적인 블론세이브와 시리즈 패배로 이어졌다.

넌 나 아니었으면 진작 은퇴했어


총평: TLR이 살린 5-pitch Closer

불펜 분업화 패러다임을 갈고 닦은 TLR에게 클로저 역할의 중요성이야 두말하면 잔소리. 그런데 클로저를 뽑는데 있어서 TLR의 취향은 몹시 분명했다; 첫째는 제구였고, 둘째는 (클로저 역할을 소화할 수 있는) Make-up 이었다. 커리어 내내 제구는 그럭저럭 쓸만했으며, 상대 타자를 물어뜯고 싶어하던 Franklin은 이 두 가지 조건에 잘 부합했으며, 그랬기에 허접한 공으로도 Izzy의 후계자로 낙점되어 TLR의 클로저로 활약할 수 있었다. 다른 감독, 다른 구단이었다면 Franklin은 Mop-up guy 혹은 잘해봐야 비컨텐더 팀의 4~5선발로 뛰다가 은퇴하는 것이 너무도 자연스러운 수순인 투수였다. 허나 어린 시절부터 팬이었던 (Franklin이 자란 Oklahoma도 Cardinal Nation이다) 고향팀과 계약 후 TLR을 만나 성공적으로 릴리버로 전환했으며, 이후 생각지도 못했던 영광까지[각주:5] 누리게 되었으니 선수 본인에게는 정말 소중한 인연이다. 어쩌면 그걸 너무 잘 알고 있기에 Franklin도 은퇴 이후 Cardinals 프론트 오피스에서 일을 도우기로 한 게 아닐까?

은퇴 이후 Mozeliak의 Special Assistant 라는 직명으로 구단 운영일을 시작한 Franklin은, 일단 본인의 고향 Oklahoma 지역에서 스카우팅 일을 돕고 Mozeliak의 선수 평가 (Player Evaluation)을 보조하는 것으로 직무를 시작했다. 사실 허울뿐일 수도 있는 이런 비공식적인 포지션을 소화하면서 Franklin의 현장감있는 시야와 근면함으로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며 순식간에 Mozeliak의 측근으로 자리를 잡았다.  Cardinals 측에서도 Franklin을 애리조나 지역에 있는 Scout School에 보내 본격적인 스카우트로써의 교육을 받게 했으며, 드래프트에서 Cardinals를 대표해 드래프티들을 발표하기도 했다. 올 해 드래프트에서도 큰 이변이 없다면 Cardinals 수뇌부를 대표해서 선수 이름을 호명하는 Franklin을 보게 될 것이다. 

"You keep an open mind and look for two things. Can he control his emotions, and can he locate? And when he locates, is it good enough to avoid hard contact? You have to have enough stuff where the ball is tough to center, and makeup is critical. If you get too emotional and throw balls [out of the strike zone] or balls down the middle, that doesn't work."

-Tony La Russa, on what he wants from his closers (ESPN, 2010)

통산 Contact Rate이 84%를 넘는 Franklin은 결코 컨텐더 팀의 "최종 보스" 에 어울리는 인물은 아니었다. 헛스윙을 유도할 수 있는 능력이 턱없이 부족했고 (커리어 7.2%), 당연히 클로저의 기본인 탈삼진도 기대할 수 없었다 (릴리버 전환 후 5.7 K/9). 맞춰잡는 마무리의 최대 단점은 "페이스가 한창 좋을 때도 운이 필요하다"는 점일텐데[각주:6], 2009년 NLDS에서 이 우려가 현실이 되어버렸다. 절대 잊을 수 없는 몇 차례의 재앙같은 경기들을 제외하고 나면, Franklin은 준수하게 자기에게 주어진 보직을 능력 이상으로 소화해냈다고 본다. 좀 취향이 변태스럽지만, 리그에서 가장 Underwhelming 한 구질들을 보유했으며 Strikeout Pitch가 전혀 없는 만 36세 투수가 절묘하게 9회의 긴장감을 소화해내며 어찌어찌 리드를 지켜내는 모습은 꽤나 볼만했다.



흔한 일 같지만 사실 커리어 중간에 Starter --> Closer 전환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John Smoltz와 Dennis Eckersley 같은 "뭘 시켜도 잘할 역대급 탤런트"를 갖춘 투수들을 제외하고 나면, 커리어에서 선발투수와 클로저로 따로 따로 밥값을 한 케이스는 사실상 전무하다. 그것도 투수로써 모든 능력치가 전반적으로 떨어질 시기인 35세의 나이에, 아주 허접한 패스트볼을 지닌 투수가, 갑작스럽게 클로저로 전환해서 성공한 케이스는 정말 드물다. 

35세 이후 Saves 랭킹 (Source: Elias Sports Bureau)

PitcherSaves after 35
Ryan Franklin

81

Tim Worrell

64

Woodie Fryman53
Al Reyes29
Mark Leiter29

그래서 Ryan Franklin의 케이스는 상당히 특이한 것이다. 혹시나 해서 Baseball-Reference의 도움으로 찾아보니 60승 / 80세이브 / 100 GS / 200 GF 를 모두 기록한 선수는 1961년 이후 고작 6명 뿐이며, 여기서 Franklin이 당당하게 이름을 올렸다. 

Career 60W, 80S, 100GS, 200GF, 1000 IP 클럽 (...)

  1. John Smoltz
  2. Dennis Eckersley
  3. Tom "Flash" Gordon
  4. Ron Reed
  5. Dave Giusti
  6. Ryan Franklin (!!!) 

Ryan Franklin's 3대 블론

워낙 많이 등판했으니 Franklin 의 이름을 들으면 생각나는 경기들이 있긴 하다. 그런데 좋은 기억들보단 안좋은 기억들이 훨씬 많다. Franklin의 3대 블론을 필자 재량껏 추려보았다.

블론 #1 (10/8/2009)

NLDS 2차전, Dodgers 원정에서 Kershaw와 Wainwright의 맞대결. 27세의 Wainwright은 지금처럼 "신선같은" 모습은 없었으나 싱싱한 어깨로 강한 패스트볼과 커브를 구사했으며, 8이닝 3피안타 1실점으로 Dodgers 타선을 봉쇄했다 (그리고 이후 5년간 포스트시즌에서 Waino가 이런 모습을 보여준 적은 거의 없다).  2:1 리드에서 9회, Trevor Miller가 좌상바 Ethier를 무난히 내야 팝업으로 잡아내고 나서 시리즈 초반부터 Cardinals의 구멍 취급을 받던 Franklin이 마운드에 올랐다. Franklin이 선두타자 Manny 를 중견수쪽 큼지막한 플라이볼로 잡아내는 순간 Cardinals의 산술적 승률은 무려 96%까지 올라갔다. 그런데 다음과 같은 사단이 났다.

Inn Score RoB Pit(cnt) Batter Pitcher wWE Play Description
b9 1-2 --- 5,(2-2)  J. Loney R. Franklin 14% Reached on E7 (Line Drive); Loney to 2B
b9 1-2 -2- 9,(3-2)  C. Blake R. Franklin 17% Walk
b9 1-2 12- 1,(0-0)  R. Belliard R. Franklin 61% Single to CF (Fly Ball); Pierre Scores/unER; Blake to 2B
b9 2-2 12- 3,(2-0)  R. Martin R. Franklin 63% Passed Ball; Blake to 3B; Belliard to 2B
b9 2-2 -23 4,(3-0)  R. Martin R. Franklin 66% Walk
b9 2-2 123 2,(0-1)  M. Loretta R. Franklin 100% Single to CF (Line Drive); Blake Scores/unER; Belliard to 3B; Martin to 2B

James Loney의 타구를 놓친 Holliday의 유명한 "낭심캐치" 를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으나, 이 플레이 이후 Franklin이 Casey Blake 정도의 타자에게 볼넷을 내준 것은 극히 실망스럽다. Franklin은 우투수임에도 불구하고 우타자에게 전혀 강점을 보이지 못했으며 (통산 .266/.310/.447), 가장 큰 이유는 Franklin의 패스트볼이 너무 Hittable 했기 때문이다. 결과론이지만 여기서 Mitchell Boggs, Jason Motte 등 우타자들에게 패스트볼만 작정하고 던질 줄 아는 투수를 투입했더라면...그랬더라면...

블론 #2 (07/06/2010)

쿠어스필드에서 9:3으로 Cardinals가 Rockies를 상대로 승리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8회말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은 Dennys Reyes가 경기를 마무리 지으러 올라왔는데, 안타 2개와 패스트볼로 실점을 하더니  1사  1,2루를 만들어놓고 5점차 리드에서 Franklin에게 경기를 넘겼다. 그리고 나서 생긴 일들이 아주 가관이다.

2013시즌 초 Mitchell Boggs의 핵실험들을 겪으신 분이라면 어느 정도 클로저 Melt-down에 있어서 면역력 향상 주사를 맞은 느낌이 들 것이다. 그러나 Franklin의 Melt-down은 차원이 달랐다. 비교적 안정적인 커맨드를 자랑하는 Franklin이었으나 완벽과는 거리가 멀었고, 제구가 안잡히는 날에는 7가지 구질 중 어느 공을 던져도 미트볼이었다. 2010년 7월 6일은 필자가 본 Melt-down 중 가장 끔찍한 케이스 중 하나였다. Franklin이 등판하자마자 첫 타자에서 쓰리런을 허용하더니 이후 4안타 허용 후 다시 끝내기 쓰리런으로 5점차 리드를 날리는 모습은 (4:9 -> 12:9) 아마겟돈 수준의 대서사시였다. 당시 U. Colorado 에 있던 필자의 친구는 (이 분도 Cards팬) 쿠어스필드에서 이 경기를 직관한 뒤 필자에게 전화를 걸어 방금 있을 수 없는 일을 목격했다고 진술했으며, 그 해 가을부터 필자가 누차 설득했던대로 Anti-Franklin 캠프로 돌아섰다. 

잘잘못을 따질 순 없지만, 또 동시에 잘잘못을 안 따질 수도 없다. 2009년 NLDS는 두고두고 아쉽다.


블론 #3 (04/17/2011)

이미 이 경기 전에 Franklin의 클로저 수명은 사실상 다했다고 봐야한다. 그는 4월 8일 Giants전에서 4:3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Sandoval에게 적시타를 맞아 경기를 연장으로 몰고갔고, 다음 날인 9일에는 2:1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Tejada에게 끝내기 2타점 2루타를 허용했다.[각주:7] 14일 Dodgers 전에서는 5점차 상황 (9:4) 에서 등판해 Kemp에게 솔로 홈런을 맞았었다. 이미 4차례 세이브 기회 중 3번을 날리고 받은 5번째 기회에서 Franklin은 선두타자 Kemp에게 2-2에서 패스트볼을 한 가운데로 떠먹여주었고, 이게 경기를 끝내는 역전 투런이 되어버렸다. 경기 전 수염까지 깎고 나와서 분위기 전환을 노렸던 Franklin 입장에서는 끔찍한 결과였다.

Franklin은 경기 후 "1) 내 공은 별 문제 없다, 2) 구위가 문제가 아니라 구질 선택이 문제였다, 3) 이런 건 별일 아니다" 를 외쳤는데, 하도 여러 경기를 짧은 시간에 말아먹었던 터라 이런 대응은 오히려 화를 불러왔다. 특히 며칠 전에 홈런을 허용했던 Kemp에게 2타석 연속 홈런을 허용한 터라 팬들의 인내심은 한계점에 이르렀던 상태였고, Franklin이 Kemp에게 던졌던 공이 워낙 한 가운데로 들어온 탓에 "my stuff's fine" 이라는 변명은 오히려 역설적으로 들렸다. 

"My stuff's fine, everything in the arsenal's still there. I haven't lost anything. Sure, if you're human it's going to affect you, but you can't let it affect you on the mound. What it boils down to is I've got blood going through my veins, so sure it affects you. I'm not going to lie."

-Ryan Franklin, after 4th BS in 5 SVO (ESPN, 04/20/2011)

이 경기를 기점으로 Franklin은 St. Louis 에서 상당히 드문 일인 "홈팬들의 야유"를 받기 시작했으며, 4월 20일에는 TLR이 직접 Franklin을 클로저 자리에서 내린다고 발표했다. 이후 열흘이 지난 4월 30일, Franklin은 공식적으로 롱 릴리프 역할로 강등되었다. 어쩌면 Franklin에게 가장 어울리는 자리일지도 모르는 그 위치에서 Low-leverage 상황만 골라 등판했으나 전혀 투구 내용이 나아지지 않았고, 2달 후인 6월 28일에 Cardinals로부터 방출 통보를 받게 된다. 방출 통보를 받고도 Franklin은 선수생활 연장에 강한 의지를 표출했으나, 그의 선수 생명은 사실상 끝난 것과 다름 없었다.


by Doovy













  1. 나름 1992년 드래프트 동기들인 Rich Aurilia, Geoff Jenkins 같은 선수들보다 높은 순위이다. [본문으로]
  2. Ben Sheets는 올림픽에서 22이닝 1자책점을 기록했다. [본문으로]
  3. AL ERA 10위는 3.60으로 시즌을 마감한 Indians의 C.C. Sabathia였고, Franklin은 3.57로 9위에 랭크되었다. 극히 허접한 stuff의 소유자인 Franklin이 200이닝을 소화하면서 CC만큼 실점을 억제했다는 점은 존중해줄만 하다. (한편 ERA라는 스탯의 허점이 격하게 느껴진다) [본문으로]
  4. Franklin이 기록한 단일시즌 ERA-FIP 괴리 수치는 -1.61로, 2000년대에 이보다 더 FIP에 ERA를 잘 받은 투수는 없었다 (2위 1.58 Elmer Dessens, 2002) [본문으로]
  5. 2009년 올스타, 2009 Sporting News 선정 Reliever of the Year [본문으로]
  6. 심지어 2009년 8월에 월간 마무리상을 수상했을 때도 11이닝을 던지혀 삼진 4개, 볼넷 6개에 그쳤다. 세이버매트리션들이 극히 혐오할 투수이다. [본문으로]
  7. 물론 이 경기에서 Tejada의 2루타는 사실 Colby Rasmus가 놓치지 않을 수 있던 타구였다. [본문으로]
Posted by Doov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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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t Jocketty's Farm System & Draft(8): 2002 Season

(B-Ref 2002 시즌 페이지)


Jocketty는 오프시즌에 은퇴한 Big Mac을 대신하여 FA였던 Tino Martinez를 영입하였고, 클로저 Isringhausen과 계약하여 뒷문을 보강하였다. Win-Now 모드의 팀으로서 필요한 보강을 한 셈이었으나, 그 결과 2002년의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까지의 지명권을 잃어버리는 문제가 발생했다. 이 부작용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다시 살펴볼 것이다.


프런트에서는 90년대부터 계속 Director of Player Development로 재직했던 Mike Jorgensen이 "Special Assistant to GM"이 되어 2선으로 물러났고, 후임으로 Brewers 프런트에서 20년 가까이 근무했던 Bruce Manno가 영입되었다. 그는 2006년까지 이 자리를 지키며 유망주들의 육성을 총괄하게 되는데, 이 시기 내내 팜 시스템이 최악의 상태였으니 그에게도 상당한 책임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드래프트에서 계속 삽질을 하고, 어쩌다 괜찮은 유망주가 생기면 Jocketty가 낼름 팔아먹은 것도 팜 악화에 기여했지만 말이다.


Marty Maier(Director of Amateur Scouting), John Mozeliak(Director of Baseball Operations), Scott Smulczenski(Director of Minor League Operations) 등은 그대로 자리를 지켰으나, "Director of Player Procurement"로 함께 드래프트에 관여했던 Jeff Scott의 이름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2002년 드래프트는 Marty Maier가 혼자 주관한 것으로 보인다.


산하 마이너리그 팀은 전년도와 완전히 동일하게 유지되었다.


AAA : Memphis Redbirds (Pacific Coast League)

AA : New Haven Ravens (Eastern League)

A+ : Potomac Cannons (Carolina League)

A : Peoria Chiefs (Midwest League)

A- : New Jersey Cardinals (NY-Penn League)

R+ : Johnson City Cardinals (Appy League)

R- : DSL Cardinals(DSL)



2001-2002 오프시즌의 BA Cardinals TOP 10 리스트는 아래와 같았다.

(괄호 안은 전미 TOP 100 리스트 순위)


1. Jimmy Journell, rhp (44)

2. Chris Narveson, lhp (86)

3. Josh Pearce, rhp

4. Justin Pope, rhp

5. Yadier Molina, c

6. Scott Layfield, rhp

7. Dan Haren, rhp

8. Chris Duncan, 1b

9. Bill Ortega, of

10. Chad Hutchinson, rhp


BA Organization Talent Ranking: 30


지난 번 글에서는 팜이 의외로 괜찮아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Bud Smith와 Albert Pujols라는 갑툭튀한 거물급 유망주들이 있었기에, 그나마 망해가는 팜을 받쳐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팜을 모두 졸업하자...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결국 BA 랭킹에서 영광의 꼴등을 차지하고 만 것이다.



Jimmy Journell은 99년 드랩 당시 Illinois 대학의 클로저로 꽤 명성을 날리던 유망주였는데, 하필 드랩 직전에 TJ 수술을 받고 주가가 하락했다. Cards는 그를 4라운드에 지명하여 $250K라는 비교적 저렴한 금액에 계약했고, 2000년에 불펜에서 투구수를 관리한 후 2001년에는 A Adv.팀인 Potomac에서 선발로 기용했다. 결과는 대성공. Jornell은 90마일대 중반의 패스트볼을 앞세워 151이닝에서 2.50 ERA, 9.3 K/9, 2.5 BB/9를 기록하며 Carolina League Pitcher of the Year로 선정되었으며, 구단 내부에서도 Minor League Pitcher of the Year로 뽑혔다. 그러나 시즌이 끝난 뒤 팔꿈치의 뼛조각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고, 그렇게 다시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다. 수술과 이후의 잔부상으로 인해 2002 시즌의 이닝수는 103.1 이닝에 불과했으며, 2003년에는 결국 불펜으로 전향했다. 2004년에는 어깨(labrum) 수술을 받고 시즌을 통째로 날렸고, 이후 2005년에 복귀하였으나 극도로 부진한 모습을 보인 끝에 결국 방출되었다.


(여담이지만, 2002 시즌의 Rolen 트레이드 당시, Phillies가 원했던 카드는 Polanco + Bud Smith + Journell 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Cards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국 Mike Timlin이 대신 건너갔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냥 Journell을 내주고 대신 다른 선수를 대가로 받았다면 더 성공적인 딜이 되었겠지만... 일단은 누구라도 유망주를 지키려고 했을 것이다.)


Chris Narveson은 Peoria와 Potomac에서 Journell보다도 더 페이스가 좋았으나, 8월에 팔꿈치를 부여잡고 쓰러졌고 결국 TJ 수술을 받으며 시즌 아웃되었다. 이 시기는 유난히 많은 유망주들이 TJ 수술대에 오르던 시절이었는데, Narveson 외에도 전년도에 TOP 10에 있다가 랭킹에서 사라진 Blake Williams와 Chance Caple이 모두 TJ 수술을 받고 드러누웠다. 여기에 Justin Pope와 Josh Pearce도 부상에 시달리고 있었다. 미국 프로야구 전체의 TJ 수술 비율은 이 당시에 비해 크게 증가했는데, Cardinals 팜의 투수 유망주들은 오히려 이 때가 수술 비율이 더 높았다. (그러니 잘 되었을 리가 없는 것이다...)


Yadi는 이때까지만 해도 루키리그에서 뛰던 18세의 풋내기였는데, 마침 멘탈 케어 차원에서 Johnson City에 내려와 있던 Rick Ankiel이 엄청난 수비력을 갖춘 포수라고 치켜세우면서 ESPN Magazine에 소개되고 전국적인 지명도를 얻게 되었다. 이때부터 이미 "수비만으로도 메이저리그에 입성할 것"이라는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Scott Layfield는 2001 시즌에 24세의 나이로 Potomac의 클로저로 뛰었는데, 24세의 싱글A 릴리버가 랭킹 6위에 오르는 것만 보아도 이 팜의 암울한 상태가 그대로 드러난다. 그는 이어서 2002년에 AA에서 그럭저럭 괜찮은 성적을 냈으나, 거기까지였다.


Dan Haren은 전년도에 드래프트되어 Short Season A 레벨의 New Jersey에서 52.1이닝을 던졌다. 당시 대학 때부터의 피로가 누적된 Haren은 몸무게가 20파운드나 감소하고 구속도 저하되었으나, 여전히 1.4 BB/9, 9.8 K/9의 위력적인 모습을 보이며 기대감을 높였다. 아직은 그렇게 기대감만 조금 주고 있던 때이다.


Chris Duncan은 Peoria에서 306/386/529의 성적을 내며 파워 포텐셜을 자랑했으나, 한편으로는 2000-2001 2시즌 동안 1루에서 무려 65개의 에러를 범하며 일찌감치 "수비가 젬병인 파워히터"의 이미지를 굳히고 있었다.


나머지 선수들은 이전 글에서 언급했으므로 생략.



2002 Cardinals 드래프트 정리 - The Baseball Cube, Baseball-Reference


첫 5픽. <라운드(전체 픽 순위). 이름, 포지션>


3(102). Calvin Hayes, ss

4(132). Kyle Boyer, ss

5(162). Josh Bell, c (계약 실패)

6(192). Cody Haerther, 3b

7(222). Willie Williamson, lhp


이 드래프트는 Michael Lewis의 "Moneyball"에서 묘사되어 소위 "머니볼 드래프트"라는 별명 얻게 된 바로 그 드래프트이다. 책이나 영화를 보신 분들 중에는 Oakland가 서플라운드까지 무려 7장의 지명권을 행사하는 동안 왜 Cards가 등장하지 않는가 궁금해하신 분들도 있을 듯하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Cards는 전체 102순위가 되어서야 첫 픽을 행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Izzy(type A FA)Tino(type B FA)와의 FA 계약으로 인해 1, 2라운드 지명권을 잃어버린 결과, 위와 같은 참담한 드래프트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무조건 지명권 탓만을 할 수도 없는 것이, 3라운드 102픽 당시에도 Josh Johnson을 비롯하여 Scott Olsen, Nick Hundley, Pat Neshek, Adam Lind 등 수많은 미래의 메이저리거들이 아직 보드에 남아 있는 상태였다. 무슨 생각으로 이런 허접한 선수들을 뽑았는지 지금 생각해도 알 길이 없다.


Cards가 지명한 첫 5명 중 5라운더 Josh Bell(작년에 크보에서 뛴 내야수 조쉬벨과는 다른 선수로, 이 Bell은 이듬해 Blue Jays에 지명되어 프로에 데뷔한 포수이다) 과는 계약에 실패했으며, Haerther(AAA에서 방출)를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은 모두 싱글A를 벗어나지 못하고 커리어를 마감했다. 그야말로 드래프트 흑역사의 핵심으로서 손색이 없는 망드랩이라고 하겠다.



이후의 주요 픽.


9(282). Travis Hanson, ss

13(402). Reid Gorecki, of

16(492). Brad Thompson, rhp

25(762). Kyle McClellan, rhp

34(1032). Mike McCoy, 2b


Hanson과 Gorecki는 위의 Haerther와 함께 2000년대 초중반의 똥팜을 대표하던 친숙한 이름들이다. Thompson과 McClellan은 이 드래프트가 배출한 최고의 스타들이었다. McCoy는 그저그런 마이너리그 유틸리티맨이었는데, 2006년에 현금 트레이드로 Orioles로 건너간 뒤 Rockies를 거쳐 Blue Jays에서 운때를 잘 만나 메이저리그 3시즌 동안 .536 OPS의 성적으로 무려 380 PA를 얻는 데 성공했다. 역시 인생은 운칠기삼이다!




이렇게 랭킹 30위의 똥팜과 최악의 망드랩이 만났으니, 앞으로의 암울한 미래가 더욱 기대되는 모습이다. -_-;;;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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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t Jocketty's Farm System & Draft(7): 2001 Season

(B-Ref 2001 시즌 페이지)


Cardinals는 2000 시즌의 성공을 거치면서 Win Now 모드의 구단 운영 방침을 확고히 하였는데, Edmonds, Drew, Renteria, Vina, Morris, Kyle 등 뛰어난 코어 플레이어를 다수 확보하였음을 생각하면 합리적인 의사 결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당시에는 요즘과 같은 "지속 가능한 컨텐딩" 류의 개념은 존재하지도 않던 시절이다.


2001 시즌에는 한때 Dodgers 프런트로 자리를 옮겼던 Marty Maier(1997년까지 스카우팅 디렉터로 재직)가 다시 돌아와 Scouting Director를 맡아서, Director of Player Procurement인 Jeff Scott과 함께 드래프트를 이끌었다. 지난 시즌에 잠시 Scouting Director를 맡았던 John Mozeliak은 Director of Baseball Operations로 자리를 옮겼다(우리 프로야구 식으로 말하면 "운영팀장"에 해당하는 자리이다). 그밖의 주요 인사들은 모두 유임되었다.


산하 마이너리그 팀은 AA 팀에서 변화가 있었는데, Cardinals는 무려 35년간 유지했던 Arkansas Travelers와의 관계를 청산하고, Eastern League의 New Haven Ravens와 계약을 맺었다. 구단 역사에서 유일하게 Eastern League에 산하 마이너 구단을 두었던 시기인데, 곧 보게 되겠지만 얼마 못 가서 다시 리그를 옮기게 된다.


AAA : Memphis Redbirds (Pacific Coast League)

AA : New Haven Ravens (Eastern League)

A+ : Potomac Cannons (Carolina League)

A : Peoria Chiefs (Midwest League)

A- : New Jersey Cardinals (NY-Penn League)

R+ : Johnson City Cardinals (Appy League)

R- : DSL Cardinals(DSL)



2000-2001 오프시즌의 BA Cardinals TOP 10 리스트는 아래와 같았다.

(괄호 안은 전미 TOP 100 리스트 순위)


1. Bud Smith, lhp (39)

2. Albert Pujols, 3b (42)

3. Chad Hutchinson, rhp

4. Chance Caple, rhp

5. Nick Stocks, rhp

6. Blake Williams, rhp

7. Bill Ortega, of

8. Gene Stechschulte, rhp

9. Luis Saturria, of

10. Josh Pearce, rhp


BA Organization Talent Ranking: 23위


이전 몇 년간의 드래프트 삽질과 지속적인 유망주들의 팜 졸업으로 인해 팜 시스템 랭킹은 꼴등으로 추락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었으나, Bud Smith와 Albert Pujols가 새롭게 전국구 유망주로 자리매김하고 나름 기대치가 있던 투수 유망주들이 팜의 허리를 받쳐주면서(결국 죄다 망하긴 했지만), 전년도보다 오히려 랭킹이 올라갔다.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은 구속으로 인해 좌완 똥볼러의 이미지가 있는 Bud Smith이지만, 사실 고교시절에는 외야수로도 빼어난 활약을 했던 뛰어난 운동신경의 소유자였다. 여담이지만 타자 Smith는 St. John Bosco 고교 선배인 Nomar Garciaparra가 세운 여러 기록들을 갈아치웠는데, 그가 남긴 시즌 타율(0.587), 홈런(9), 타점(42), 토털 베이스(87) 등의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그는 2000시즌에 20세의 나이로 Texas League에서 108.2 이닝을 던지며 12-1, 2.32 ERA, 8.4 K/9, 2.2 BB/9로 리그를 씹어먹고 AAA로 승격되었는데, Memphis에서도 54.1 이닝에서 2.15 ERA로 에이스 역할을 하며 팀을 PCL 정상으로 이끌었다. 그는 시즌 종료 후 Texas League Pitcher of the Year로 선정되었는데, TL에서 두 번이나 노히터를 기록하기도 했다. 비록 둘 다 더블헤더로 인한 7이닝짜리 게임이었지만, 엄연히 공식기록으로 남아 있는 노히트노런이다. 이후 메이저리그에서도 노히터를 던졌으니, 노히터 전문가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99년 13라운드 픽이었던 Albert Pujols가 주목받는 유망주가 되는 데에는 그다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입단 직후의 instruction league에서부터 스카우트들의 호평을 이끌어냈고, 2000년에는 Peoria에서 324/389/565, .953 OPS의 맹타를 휘둘러(이 시즌 MWL의 리그 평균 OPS는 .699에 불과했다) 리그 MVP로 선정되었다. 시즌 말미에는 AAA로 승격되어 바로 위의 Bud Smith와 함께 Memphis의 PCL 우승을 견인했는데, 특히 PCL 챔피언쉽 4차전에서 연장 13회에 워크오프 홈런을 날려 리그 우승을 확정짓고 시리즈 MVP에 선정되기도 했다. 당시 리포트를 보면 BA는 Pujols가 2001 시즌을 AA에서 시작할 것이고, 2002년쯤 메이저리그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그런 시나리오는 스프링캠프에서 Bobby Bonilla의 시기적절한 부상과 함께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


Bill Ortega는 2년 연속 두 자릿 수 홈런을 기록하며 유망주 랭킹에 입성했으나, 이후 AAA 적응에 실패하여 사라졌다. 2001 시즌에 잠깐 메이저리그에 올라와 5타석에 출장하기는 했다.


Gene Stechschulte는 마이너리그에서는 계속 클로저로 뛰었기에 역시 랭킹에 들 수 있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2000-2002년 3년 동안 불펜에서 활약했는데, 특히 2001년에 70이닝을 소화하며 TLR의 불펜 노예 중 한 명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2002년부터 급격하게 기량이 쇠퇴하여 2003년에 방출되었고, 이듬해 독립리그를 거쳐 결국 은퇴하였다.


Josh Pearce는 메이저리그 불펜에서 24.1이닝을 던지는 데 그쳤다.


나머지는 시리즈의 이전 글들에서 언급했으므로 생략.



2001 Cardinals 드래프트 정리 - The Baseball Cube, Baseball-Reference


첫 5픽. <라운드(전체 픽 순위). 이름, 포지션>


1(28), Justin Pope, rhp

2(72). Dan Haren, rhp

3(104). Joe Mather, ss

4(134). Josh Brey, lhp

5(164). Skip Schumaker, of


98년 Drew, 99년 Pujols, 2000년 Yadi에 이어 이번에도 Dan Haren이라는 초특급 선수를 드래프트하는 데 성공했다. 다만 다른 팀에 가서 스타가 되었다는 것이 문제였을 뿐이다.


Justin Pope는 2년 뒤 Sterling Hitchcock 트레이드 때 Yankees로 보내졌고, 결국 메이저 구경을 못 해보고 은퇴했다. 지금은 Yankees 산하의 Short Season A 팀인 Staten Island Yankees(NY-Penn League)의 감독으로 재직 중이다. Joe "Joey Bomb" Mather는 작년엔 독립리그에서 뛰었고, 올해는 DBacks 산하의 Rookie-Advance 팀인 Missoula Osprey(Pioneer League)의 감독으로서 감독 데뷔를 할 예정이다. Josh Brey는 AA를 못 가보고 방출되었고, Skip은... 설명이 필요없을 듯.



이후의 주요 픽.


7(224) Tyler Adamczyk, rhp

23(704). Kevin Correia, rhp (계약 실패)

28(854). Blake Hawksworth, rhp

47(1409). Terry Evans, 3b


Cards는 위의 첫 5픽 누구에게도 1M의 계약금을 주지 않았는데, 이 드래프트에서 1M 이상의 계약금을 받은 선수는 7라운드의 Adamczyk(1M)과 28라운드의 Hawksworth(1.5M) 둘 뿐이었다. Adamczyk은 FSL을 끝으로 구단을 떠난 후 독립리그를 거쳐 현재 Tyler Adamczyk Baseball Academy를 운영 중이다. Hawksworth는 2010년 Dodgers로 트레이드 된 후(무려 Ryan Theriot와 맞바꿨다) 구속이 오르며 불펜투수로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였으나, 결국 팔꿈치와 어깨에 잇달아 수술을 받으며 은퇴하고 말았다. 그는 작년부터 고등학교 농구 코치(!)로 일하고 있다.


Terry Evans는 완전 듣보잡 유망주였으나 2006년에 적절하게 갑툭튀하여 Jocketty가 Jeff Weaver와 맞바꿀 수 있었고, 그렇게 월드시리즈 우승에 공헌했다.



팜 랭킹 1, 2위이자 전국구 유망주였던 Bud Smith와 Albert Pujols는 2001년에 모두 팜을 졸업하게 된다. 과연 2002년의 팜 상태는 어떤 모습일까? 이들을 이을 팜의 대들보를 발굴했을까?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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