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t Jocketty Years(3)

Transactions of 1996-97 Offseason, 1997 Season

1997 Season: 73승 89패, NL Central 4위

(Baseball Reference 1997 시즌 페이지)


(TLR & Big Mac, 1997년)


Jocketty는 95년에 1위에 22.5게임 뒤진 채로 시즌을 마무리했던 팀을 단 1년만에 지구 1위로 만들어 플레이오프에 진출시켰고, 팀은 플레이오프에서도 선전하여 NLCS에서 초호화 로스터를 보유한 Braves를 거의 이길 뻔했다. 4차전까지 3승 1패로 앞서 있다가 뒷심부족으로 5, 6, 7차전을 내리 패하여 탈락하였는데, 최근에도 이런 비슷한 NLCS 결과를 본 것 같다. -_-;;;


어쨌거나... 2012 팀과 1996 팀이 다른 점은, 자체생산 20대 선수가 많았던 2012 팀과 달리 1996 팀은 30대-40대 노장들을 대거 영입하여 급조한 컨텐더였다는 것이다. 96년 성적이 좋았기에 Jocketty는 추가영입을 거의 하지 않고 전력을 보존하여 시즌을 맞이하는데, 결국 Gaetti, Gant 등 베테랑들의 실력이 저하되고 Brian Jordan이 부상으로 최악의 시즌을 보내면서, Cardinals는 1997년에 다시 5할 승률 아래로 떨어지게 된다.


이번에도 맘대로 무브 등급을 매겨 보았다. Scale은 Atrocious - Terrible - Bad - Average - Good - Excellent - Outstanding 순이다.



1996/11/20  FA Delino DeShields(2B) 계약 (2yr/4.6M)   Excellent

Luis Alicea 대신 2루수로 영입한 DeShields는 2년간 6.5 WAR을 기록하여 준수한 활약을 해 주었다. 비록 Pedro Martinez와 트레이드 되어 악명이 높아진 DeShields지만, 그거야 단장이 멍청한 탓이지 선수의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Delino DeShields)


1996/12/04  Willie McGee 재계약 (1yr/1.3M)   Good

4th OF로 훌륭하게 활약해 준 McGee와 1년 재계약을 맺었는데, McGee는 97 시즌에서도 38세의 나이로 323 PA에서 101 wRC+를 기록하여 아직 녹슬지 않은 기량을 보여 주었다. "아직"이다.


1996/12/06  Tom Pagnozzi(C) 재계약 (2yr/3.75M)   Terrible

당시 34세였던 Pagnozzi는 이 계약 후 2시즌 동안 229 PA에 나와 고작 .574 OPS를 기록한 후 98년 8월에 방출되었다. 주전 포수 자리는 유망주 Mike DiFelice와 바로 아래에 나오는 Tom Lampkin이 나눠 가지게 되었다.


1996/12/19  Giants에 PTBNL(Rene Arocha(RHP))을 보내고 Tom Lampkin(C)을 받음   Excellent

Lampkin은 DiFelice와 거의 1:1로 포수마스크를 나눠 썼는데, 좌타로서 2년간 86 wRC+를 기록하여 포수로서는 괜찮은 타격 실력을 보였다. 때마침 Pagnozzi가 맛이 갔음을 생각하면 아주 시기적절한 영입이었다. PTBNL로 보낸 Arocha는 Giants에서 10.2이닝 11.32 ERA를 기록한 후 방출되었다. Yeah...!!!


1997/06/13  Padres에 Rich Batchelor(RHP), Danny Jackson(LHP), Mark Sweeney(1B/OF)를 보내고 Scott Livingstone(3B), Phil Plantier(OF), Fernando Valenzuela를 받음    Average

팀이 타격 부진으로 5할 언저리에서 놀고 있던 6월, Jocketty는 먹튀 Danny Jackson에 Sweeney, Batchelor 두 쩌리를 붙여서 Fernando "El Toro" Valenzuela 및 쩌리들을 받아왔다. 3:3의 대형 트레이드였지만 그다지 임팩트는 없었는데, El Toro가 Jackson과 비슷하게 못던졌기 때문이다. 그나마 Plantier가 백업 코너 외야수로 Jordan의 부상 공백을 메꾸는 데 조금 도움을 주었다. 다음은 당시 상대 단장이었던 Kevin Towers의 회상이다.


“Some of the worst trades I’ve ever made were with Walt,” Towers said. “He’s the one guy, every time we made a trade I’d end up saying: ‘You know what? This is not going to be good.’ I always tell him, ‘The only one I ever won on you was Fernando Valenzuela for Danny Jackson, and the only reason I won that deal was because Jackson retired and Fernando didn’t.’ ”


1997/07/31  Athletics에 Eric Ludwick, TJ Mathews, Blake Stein(RHPs)를 보내고 Mark McGwire(1B)를 받음   Outstanding

이 딜은 설명이 불필요할 듯... ㅎㅎ 다만 아쉬운 것은, 공격력을 보강하는 승부수를 던진 Jocketty의 기대와 달리 이 트레이드 이후 팀 성적은 더욱 하락해서 결국 5할을 밑도는 성적으로 마무리했다는 것이다.


1997/09/16  Mark McGwire와 연장 계약 체결 (3yr/28.5M+11M 옵션, 2M 디퍼, 매년 관중수 275만명 초과시 1명당 $1 지급 옵션 포함)   Outstanding


원래는 FA가 될 예정이었던 Big Mac은 심지어 삼진을 먹어도 standing ovation을 주는 Busch Stadium의 팬들에게 푹 빠졌고, 결국 적극적으로 구단과 협상하여 시즌이 끝나기 전에 일찌감치 연장 계약을 체결했다. 당시 Big Mac이 FA가 되었다면 훨씬 큰 규모의 계약이 가능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었으므로, AAV 9.5M에 디퍼가 포함된 이 계약은 상당히 team-friendly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게다가 이 계약과 동시에 Big Mac은 아동학대 방지와 케어를 위한 Mark McGwire Foundation for Children을 설랍하면서 3M의 돈을 내놓기도 했다.) 이 계약은 필드에서의 퍼포먼스 뿐 아니라 관중 동원 면에서도 대박을 터뜨렸으니... Big Mac은 98년부터 3년간 20 WAR을 기록했으며, 또한 96-97시즌에 260만명 수준이던 연간 유료 입장객 수는 98-99년에 Big Mac이 홈런 쇼를 벌이면서 320만명으로 크게 증가했던 것이다.


(당시에는 거의 맨날 이런 분위기였던 것 같다. 사진: Getty Images)


지금 돌아보면, 이 시즌에도 선수 영입과 관련된 Jocketty의 무브들은 대부분 훌륭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 성적이 좋지 않았던 것은 주로 기존 멤버들 및 유망주들(Young, DiFelice)의 부진에서 비롯되었는데, .996 OPS를 기록한 Ray Lankford와 트레이드 후 51게임에서 24개의 홈런을 몰아친 Big Mac, 그리고 기대이상으로 선전해 준 DeShields를 제외하면, 나머지 타자들은 타석에서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특히 전통적으로 타선의 생산력을 책임지는 포지션인 내/외야의 코너에 기용된 선수들이 죄다 수준 이하의 시즌을 보낸 것이 결정적이었는데, 이들의 wRC+를 보면 다음과 같다.

Gary Gaetti 83

John Mabry 89

Brian Jordan 58

Dmitri Young 84

Ron Gant 82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오프시즌에 돌입한 Jocketty는 오프시즌 첫 무브로 엄청난 뻘짓을 하게 되는데...


TO BE CONTINUED...

Posted by FreeRedbird
:

by Doovy



TLR ERA 시리즈 세번째 포스팅의 주인공은 Matt Morris 이다. 1997년 TLR ERA 초창기부터 10여년간 로테이션을 지켜온 Matt Morris는 비록 말년에 배팅볼러로 전락하기는 했으나 20대 시절에는 "묵직한 포심 + 장신에서 내리꽂는 커브" 조합의 전형적인 Cardinals 스타일 에이스로 군림했었다. 한창 타고투저 시절이던 90년대말~2000년대 초, Cardinals에서 한동안 볼수 없었던 리그 상위권의 Front-of-rotation starter로 제몫을 다했으며, 이후 이 계보는 Chris Carpenter-Adam Wainwright 등으로 이어져왔지만 이 중 드래프트를 통해 팀에 들어와 Cardinals 팜시스템에서만 성장한 선수는 Morris가 유일하다.  

여러분들의 폭발적인 댓글 요청으로 인해서 분신술을 실시할 예정이다....는 농담이고 최대한 반영해보도록 할 것을 약속하며, 특히 Craig Paquette이나So  Taguchi, Kerry Robinson 등을 묶어서 다뤄보는 이른바 "쩌리특집"과 "릴리버 모듬" 역시 생각중이다. 일단은 "포스팅 로테이션을 거르지 않고 스프링 트레이닝까지 버텨보는" 것을 목표로 삼고있으며, 옛 생각을 하시며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필자는 더 바랄 게 없다. (매 포스팅마다 스크롤 압박을 드려서 죄송하나 시리즈 특징 상 불가피할 듯 싶다)


자체 생산 에이스


Matt Morris

RHP (Starter)

DOB: 1974년 8월 9일 

Birth: Middletown, NY 

Time with Cardinals:  1995-2005


Draft & Minors

Morris는 1974년 Middletown, NY 출신인데, 공교롭게도 이 도시는 필자가 잠시 거주했었던 동네이며, (Upstate 뉴욕이 다 그렇긴 하지만, 좋게 말하면 Blue-collar 동네, 나쁘게 말하면 상당히 못사는 동네이며, Morris의 아버지는 철광부였다), Morris가 나온 Central Valley High School 역시 그다지 야구로 알려진 학교는 아니다. Morris는 고등학교 때 그냥 조금 잘하는 수준의 유격수였다. 어느 날 친척 결혼식에 가야 했던 Morris는 트라이아웃에 참가할 시간이 없음을 깨닫고 팀 코치에게 부탁, 공식 트라이아웃 전에 공 10개를 던지고 결혼식을 간다. 그러나 코치는 Morris에 공에 깊은 인상을 받아 그를 투수로 발탁하고,, 이게 인연이 되서 Morris는 투수로써의 삶은 시작한다. 고교 졸업 당시 6'5의 큰 키와 91마일에 이르는 빠른 공 덕분에 92년 드래프트에서 Brewers에게 26라운드 지명을 받지만, 낮은 사이닝 보너스를 쌩까고 Seton Hall University로 진학한다. 

대학에 가기로 한 결정은 결과적으로 상당히 잘한 일이었다. Morris는 대학에서 선발투수로 수업을 받으며 투구폼을 가다듬었고, "기복이 있지만 구위는 좋다"는 평가속에 BA 선정 Top College Pitchers로 분류되었으며 1994년 미국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95년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전체 12픽, 대졸 투수 중에서는 3번째로 St. Louis Cardinals에 드래프트된다 (계약금 850K). 참고로 Cardinals는 1992~1996년까지 5년 연속으로  아마추어 드래프트 첫 픽을 대학 투수로 뽑았는데, 이는 90년대 초중반 투수난으로 힘겨워했던 구단 사정을 잘 보여주는 예이다. (1992년 Sean Lowe, 1993년 Alan Benes, 1994년 Bret Wagner, 1995년 Matt Morris, 1996년 Braden Looper, 이 중 Wagner는 Stottlemyre 트레이드 때 사용되었고 Looper로는 Renteria를 데려왔으니 이 정도면 성공인 듯 싶다)


추억이 돋는 1995년 드래프트 1라운드 (필자는 정말 Ben Davis가 엄청나게 클 줄 알았다 ㅎㅎㅎ;;)

Year OvPck Tm Pos WAR Type Drafted Out of
1995 1 Angels Darin Erstad (minors) OF 29.8 4Yr University of Nebraska at Lincoln (Lincoln, NE)
1995 2 Padres Ben Davis (minors) C 2.3 HS Malvern Prep HS (Malvern, PA)
1995 3 Mariners Jose Cruz (minors) OF 17.1 4Yr Rice University (Houston, TX)
1995 4 Cubs Kerry Wood (minors) RHP 26.2 HS Grand Prairie HS (Grand Prairie, TX)
1995 5 Athletics Ariel Prieto (minors) RHP 2.9
1995 6 Marlins Jaime Jones (minors) OF HS Rancho Bernardo HS (San Diego, CA)
1995 7 Rangers Jonathan Johnson (minors) RHP -1.1 4Yr Florida State University (Tallahassee, FL)
1995 8 Rockies Todd Helton (minors) 1B 58.4 4Yr University of Tennessee (Knoxville, TN)
1995 9 Brewers Geoff Jenkins (minors) OF 20.0 4Yr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Los Angeles, CA)
1995 10 Pirates Chad Hermansen (minors) SS -4.0 HS Green Valley HS (Henderson, NV)
1995 11 Tigers Mike Drumright (minors) RHP 4Yr Wichita State University (Wichita, KS)
1995 12 Cardinals Matt Morris (minors) RHP 18.6 4Yr Seton Hall University (South Orange, NJ)
1995 13 Twins Mark Redman (minors) LHP 7.9 4Yr University of Oklahoma (Norman, OK)
1995 14 Phillies Reggie Taylor (minors) OF -0.6 HS Newberry HS (Newberry, SC)
1995 15 Red Sox Andrew Yount (minors) RHP HS Kingwood HS (Kingwood, TX)
1995 16 Giants Joe Fontenot (minors) RHP -0.9 HS Acadiana HS (Lafayette, LA)
1995 17 Blue Jays Roy Halladay (minors) RHP 62.3 HS Arvada West HS (Arvada, 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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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Florida State League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한 Morris는, A볼에서 말그대로 날라다니며 타자들을 씹어먹었는데, 20살에 처음 프로야구를 경험하는 선수치고 상당히 "Polished" 되었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대학 시절 보여준 모습보다 더욱 완성도가 높은 투수라는 평을 받았다.  (Michael Wacha도 올 해 비슷한 평가를 받지 않았는가!)  1996년 ML 스프링 트레이닝에 초대를 받은 Morris는, Grapefruit League 초반 타자들을 압도하는 구위를 선보였고, 당시 Cards 로테이션의 주축 투수들이 부상을 당하면서 파격적인 "AA도 스킵하고 바로 빅리그 진출"을 이룩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시범경기 막판에 부진하면서 "아직은 때가 아니다"라는 Duncan의 조언에 따라 결국 1996시즌을 AA볼에서 시작하게 되는데, 이 역시 Morris에게는 상당히 결과적으로 좋은 결정이었다. 은사이자 당시 Arkansas의 투수코치, Marty Mason을 만나게 된 것이다. 


1994년 미국 국가대표팀 시절


Matt Morris' Minor League Track Record

Year Age Tm Lg Lev Aff W L ERA GS CG SHO IP H R ER HR BB SO BF WHIP H/9 HR/9 BB/9 SO/9 SO/BB
1995 20 New Jersey NYPL A- STL 2 0 1.64 2 0 0 11.0 12 3 2 1 3 13 45 1.364 9.8 0.8 2.5 10.6 4.33
1995 20 St. Petersburg FLOR A+ STL 3 2 2.38 6 1 1 34.0 22 16 9 1 11 31 134 0.971 5.8 0.3 2.9 8.2 2.82
1996 21 Arkansas TL AA STL 12 12 3.88 27 4 4 167.0 178 79 72 14 48 120 711 1.353 9.6 0.8 2.6 6.5 2.50
1996 21 Louisville AA AAA STL 0 1 3.38 1 0 0 8.0 8 3 3 0 1 9 32 1.125 9.0 0.0 1.1 10.1 9.00
AA (3 seasons) AA 12 12 3.89 29 4 4 178.0 190 84 77 14 52 129 759 1.360 9.6 0.7 2.6 6.5 2.48
A+ (2 seasons) A+ 3 3 3.30 8 1 1 43.2 34 23 16 1 13 46 177 1.076 7.0 0.2 2.7 9.5 3.54
A- (1 season) A- 2 0 1.64 2 0 0 11.0 12 3 2 1 3 13 45 1.364 9.8 0.8 2.5 10.6 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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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Arkansas에서 Morris의 성적은 (Texas League에서 던졌다는 사실을 감안해도) 사실 그다지 Impressive할 게 없었다. 그러나 이 시즌 그는 Mason 코치로부터 많은 가르침을 얻으며 본격적인 "Hurler --> Pitcher" 로의 진화를 감행했고,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투수로써 많은 발전을 이룩했다. 1997년 Morris를 다시 만난 Duncan는 작년과 비교해 "It's like day and night" 이라며 Morris의 성장을 높이 평가했다.

"When I got sent down, I thought I would dominate [in the Texas League]. What happened was, though, is that I learned more last year than in ten years of pitching...learning how to face adversity...Marty Mason (Arkansas' pitching coach) was a big help...and after a while I starting learning how to pitch."

-Matt Morris, on his Double-A experience 

 1996년 BA Prospect 랭킹 56위였던 Morris는 AA에서의 풀 시즌을 마치고 BA 랭킹 25위에 랭크되었으며, 명실상부 Cardinals 팜 시스템 최고 기대주로 떠올랐다. 스카우팅 리포트에서는 "a consistent 92-95 MPH fastball, along with an above-average curve and rapidly improving changeup"으로 Morris를 묘사했으며, John Sickels는 Morris를 전미 7번째 투수 유망주로 꼽았다. 특히나 훌륭한 패스트볼, 느린 Overhand delivery, 큰 키와 Arm swing을 들면서 무려 Jim Palmer Projection까지 나왔다 (Jim Palmer는 70년대를 씹어드신 Orioles 레전드로, 사이영 3회 수상에 통산 268승 HOF 멤버이다). 추억이 돋는 이 랭킹을 잠깐 살펴보도록 하면...

1997년 Baseball America's Top Prospects

23. Roy Halladay, rhp, Blue Jays
24. Jose Guillen, of, Pirates
25. Matt Morris, rhp, Cardinals
26. Aramis Ramirez, 3b, Pirates
27. Carlos Guillen, ss, Astros
28. Chris Carpenter, rhp, Blue Jays
29. Dmitri Young, 1b, Cardinals
30. Adrian Beltre, 3b, Dodgers
31. Mike Cameron, of, White Sox
32. Braden Looper, rhp, Cardinals
33. Neifi Perez, ss, Rockies
34. Jay Payton, of, Mets
35. Mike Drumright, rhp, Tigers
36. Juan Melo, ss, Padres
37. Eli Marrero, c, Cardinals

1997년-1998년: 성공적인 데뷔

1997년 시즌 개막을 앞두고 Morris는 스프링 트레이닝에 다시 한 번 초청되었고, 이번에는 한 단계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며 당당히 로테이션 한 자리 (4선발)를 꿰찼다. "마이너를 씹어잡수신 1라운더 출신 대졸 투수"에 HOF 투수 컴패리즌까지 나오면서 Morris에 대한 구단의 기대는 더 이상 올라갈 데가 없었다. Morris는 4월 4일 Astros 원정에서 빅 리그 데뷔를 앞두고 구단의 배려로 하루 먼저 Houston에 가서 대기했으며, 잠을 설쳐가며 기다린 끝에 Astrodome 마운드에 올랐다. 

1회 선두타자 Biggio가 안타를 치고 나가고 2루를 훔쳤으며, Bagwell의 적시타로 1실점. 그러나 이후 Morris는 추가 실점 없이 5이닝 7피안타 1실점 (투구수 79개)의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렀으며, TLR은 경기 후 Morris의 데뷔전을 어떻게 지켜봤냐는 질문에 "Outstanding. He did a good job under tough circumstances. He'll do a better job each time out." 이라며 이 신인 투수의 기를 북돋아주었다. 이 시즌 Morris는 12승 9패 ERA 3.17 (FIP 3.51)을 기록하며 리그  신인왕 투표에서 Scott Rolen에 이은 공동 2위를 차지했으며, 149개의 탈삼진을 잡는 동안 69개의 볼넷을 허용하고 Whip 1.28을 찍었다. 가장 고무적이면서도 우려되었던 부분은 무려 217이닝을 소화하며 데뷔 첫 시즌에 팀내에서 가장 많은 이닝을 소화했다는 점이다.


1997년 루키 시절의 Matt Morris.


1997년 ROY 투표 결과: 공동 2위는 억울하다

Voting Results Batting Stats
Rank Tm Vote Pts 1st Place Share WAR
1 Scott Rolen PHI 140.0 28.0 100% 4.3
2 Livan Hernandez FLA 25.0 0.0 18% 1.7
2 Matt Morris STL 25.0 0.0 18%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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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시즌 4월, Morris는 시즌 첫 등판 후 어깨 부상으로 3개월을 쉬었다. 후반기에 돌아온 그는 이후 3개월동안 무려 108이닝을 던지며 ERA 2.53으로 시즌을 마감했는데, 언뜻보면 이 시즌에 엄청난 성장을 이룩한 것같지만 FIP는 전년도보다 크게 높아진 3.85였다. 잔루율 (LOB%)가 무려 80.9%에 달할만큼 유난히 적은 실점을 헀을 뿐, 세부스탯 (K%, K/BB, HR/9 등) 측면에서는 1997년과 비슷한 시즌을 보냈다 (물론 빅리그 2년차 투수에게 이 정도면 충분히 성공적인 시즌이다). 9월 22일 Astros전에서는 5피안타 무사사구 10K 완봉승으로 본인의 커리어 첫 shutout을 기록했다. 커리어 첫 2년간의 Morris는 아직 스트라이크 존 내에서의 커맨드가 완전히 잡히지 않아있었으며, 위에서 아래로 냅다 꽂는 그의 패스트볼을 믿고 힘으로 압도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1999년-2000년: TJS, 그리고 배움의 시간

1999년 4월 8일, 전년도 신인왕 수상과 20K에 빛나는 Cubs의 Kerry Wood는 James Andrews 박사로부터 Tommy John Surgery를 받는다. 그리고 5일 후인 4월 13일, 1995년 드래프트 동기이자 (위에 1라운더 명단 참조) 라이벌 Cardinals의 기대주 Matt Morris 역시 이 분야의 권위자 Frank Jobe 박사로부터 팔꿈지 인대 접합 수술을 받는다. 거의 같은 시기에 대수술을 받았으나, 이 둘의 이후 향방은 사뭇 달랐다.

수술에서 복귀한지 정확히 12개월이 되는 2000년 스프링 트레이닝부터 Wood는 로테이션에 복귀하기 위해 준비하기 시작했고, 무리해서 페이스를 끌어올린 끝에 5월 1일 시즌 첫 선발 등판, 그리고 그 경기에서 6이닝 1실점의 호투로 깔끔하게 복귀했다. 그러나 여름을 못 넘기고 다시 탈이 났고, 시즌 중 57일을 DL에서 보내면서 8승 7패 ERA 4.80의 그답지 않은 성적을 냈으며, K/9은 극히 평범한(?) 수치로 떨어졌다 (12.7 --> 8.6). Wood가 이 시기를 인내하며 보냈다면 그의 커리어가 조금은 다르지 않았을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해본다.

"We felt it wasn't in anyone's best interest. Matt was still testing himself. He needed to answer the question, Am I O.K.? He didn't need the additional test of having to worry about starting."

-Dave Duncan, on spot-starting Matt Morris during 2000 season


 

반면 Morris는 TLR와 Duncan의 보호 아래 천천히 빅리그 연착륙을 시도했다. 1999시즌을 힘겨운 재활속에 보낸 그는 2000시즌 DK-Hentgen-Benes-Ankiel-Stephenson으로 이어지던 로테이션에 합류하는 대신, 불펜에서 릴리버로 뛰게 된다. 5월 30일 D-Backs 전에서 선발 Ankiel이 6이닝을 던지고 물러나자 Morris는 무려 20개월만에 빅 리그 마운드에 다시 섰고, 초구로 96마일짜리 싱커를 뿌렸다. 3이닝 무실점 세이브. Morris는 이후 투구수 관리를 받으며 주로 7~8회에 2이닝 미만을 던졌으며, 31경기 중 4경기를 제외하고는 40개 미만의 투구수를 기록했다. 중간 중간 선발투수들의 잔부상으로 Spot-starter가 필요했을 때 Morris의 이름이 가장 먼저 올라왔으나, Duncan과 TLR은 Morris를 철저히 보호하며 단 한 번도 선발 등판시키지 않았다. (땜빵 임무는 주로 Britt Reames에게 돌아갔다)

매일같이 구장에 출근하면서도 지루한 재활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던 1999시즌, Morris는 타팀의 에이스 투수들을 연구하고 배우는 노력을 부단히 했다고 한다. 특히 Greg Maddux, Randy Johnson, Tom Glavine, Kevin Brown, Mike Hampton 등 당대 최고의 투수들은 거의 다 NL 소속이었고, 이들이 던지는 모습은 선발투수로써 부활을 꿈꾸던 Morris에게 진부한 표현을 빌리자면 "살아있는 교과서" 였다. 

 

"I remember seeing Kevin Brown pitch against us, and his attitude and aggressiveness screamed, I'm coming at you! It was a prime example of how presence can dominate. He psyched us out..... I started paying attention to pitchers. I learned how to compete. Kevin Brown came out one game, you could hear him grunting, we couldn't touch him. Five days later, he was less intense. We hit him. It taught me a lot about presence on the mound. You see guys out there hanging their head after giving up a homer. You can't do that.

-Matt Morris, on how he studied his contemporaries in 1999 (SI interview)



 

2001년-2002년: 전성기 그리고 The Duel

인고의 세월 끝에 선발투수로 돌아온 Matt Morris의 2001시즌은 역대 Cardinals 선발 투수들이 보낸 시즌 중에 손에 꼽을만큼 훌륭한 것이었다. 만 26세 시즌의 Morris는 패스트볼+커브+체인지업을 적절히 섞어쓰며 무려 22승을 따냈으며 (물론 Albert Pujols의 등장과 함께 물오른 Cards 타선 덕도 많이 보았지만), 이 기록은 1950년대 이후로 구단 역사상 공동 2위의 기록이다 (1위 1970년 Bob Gibson 23승). 세부스탯에서도 20.4%의 K%, FIP 3.05, 그리고 무엇보다 5.9%로 확 끌어내린 BB% (이전까지 7.7~9.0% 사이) 등 모든 면에서 커리어 최고 기록을 찍었다. (3.16 ERA, 185K/54BB, 조정 ERA+ 137 , WAR 6.0) TJS로부터의 적절한 회복, 절정의 구위 (Morris는 당시 95마일의 포심과 리그 최고 수준의 커브, 체인지업을 구사했다) 당대 최고의 수비형 포수였던 Matheny와의 조합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커리어 최고 시즌이었다. 


2001시즌 캠페인을 통해 순식간에 TJS 홍보대사가 되어버린 Matty Mo


아무래도 Morris의 2001시즌을 얘기하면서 빼먹을 수 없는 부분이 NLDS에서 Curt Schilling과 펼친 두 차례의 투수전이다. 

2001년 10월 9일, D-Backs 대 Cardinals의 NLDS 1차전이 Bank One Ballpark에서 열렸다. 사실 정규시즌 22승 투수 두 명이 맞붙는 매치업에서 한 쪽을 "underdog"으로 표현하는 것이 어색하긴 하다. 그러나 (Morris가 커리어 최고 시즌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 Schilling은 거의 모든 면에서 Morris보다 나은 시즌을 보냈으며, 이미 포스트시즌의 강자로 명성을 떨친 바 있는 승부사였다 (반면 Morris는 포스트시즌 첫 선발등판). 게다가 원정에서의 시리즈 1차전 (이 시즌 Morris의 원정 평균자책은 5.15였다). 다음 경기 상대 선발은 Randy Johnson. 더 이상 부담스럽기도 힘든 경기였다.   

 1차전 1회말, Morris는 무사 2,3루의 위기에 몰렸으나 상대 클린업 Luis Gonzalez를 삼진, Sanders를 파울플라이, Grace를 1루땅볼로 유도하며 실점하지 않고 이닝을 넘어갔다. 4회에도 1사 1,3루의 위기를 무실점으로 넘어가면서 5회까지 0:0. 그러나 5회말 선두타자 Damian Miller가 종아리에 공을 맞고 나갔고, Schilling이 2스트라이크 이후에 절묘하게 1루측으로 번트를 성공시키며 1사 2루를 만들었다. Morris는 무사히 Womack을 잡아냈으나 결국 Steve Finley에게 중전안타를 허용했고, 이 점수가 결승점이 되었다. 계속된 2사 1루에서 Luis Gonzalez가 Morris의 커브 실투를 제대로 후려쳐 워닝트랙쪽으로 타구를 띄웠으나 중견수 Edmonds가 Leaping catch로 홈런 타구를 걷어내면서 추가실점 없이 이닝 종료. 중계를 보면서 감탄과 동시에 "아, 이 수비를 기점으로 분위기가 바뀌겠구나" 하고 헛꿈을 꾸었던 것이 기억난다. 그러나 Schilling은 이닝이 거듭될수록 힘을 내는 듯 했으며, 101개의 공으로 3피안타 완봉승을 거둔다. 


Curt Schilling vs. Matt Morris. 둘 중 한 판만 이겼어도...


Morris는 이 경기에서 무려 122개의 투구수를 기록하면서 혼신의 힘을 다했고, 위기때마다 집중력을 잃지않고 최소한의 실점으로 막아내며 제몫을 다했다. 경기 후 TLR, McGwire, Bob Brenly 등은 양측 투수를 모두 칭찬했으며, 특히 McGwire는 "Probably the best pitcher's duel I've seen" 이라고 했는데, 이 양반은 아무때나 "best"를 갖다붙이니 뭐...

Division Series는 2차전에서 Woody Williams가 Randy Johnson을 상대로 승리투수가 되면서 전혀 의외의 방향으로 흘러갔다. DK57이 등판한 3차전은 졌으나 Bud Smith (참으로 오랜만이다 이 이름!) 가 등판한 4차전은 승리하면서 결국 5차전에서 다시 똑같은 매치업으로 경기가 열렸다. Morris는 4회말 선두타자 Reggie Sanders를 상대로 엄한 커브를 스트라익존에 걸치다가 솔로홈런을 허용했으나, 이를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1차전보다 더 나은 투구내용을 보여주며 7회까지 0:1 경기를 유지했다. 그리고 8회초 2사 주자 없이 J.D.Drew가 근 17이닝만에 Schilling으로부터 처음 점수를 뽑아내는 솔로 홈런을 치며 마침내 경기를 동점으로 만들었다 (Schilling은 4년 전 Drew가 Phillies와 계약하지 않았을 때 Drew를 대놓고 Punk라고 부르면서 도발한 바 있다) 

He's an elite pitcher. I'm honored to sit back and watch how he executed in a situation like this. That's not easy for a guy that's been here 100 times, and he's still a young pitcher.

-Woody Williams, on Matt Morris' performance in NLDS

8회말, Morris는 투구수 103개에서 다시 마운드에 올랐고, 2사 후 안타-볼넷으로 1,2루 위기에 몰린 상태로 좌타자 Mark Grace와 맞섰다. TLR은 Morris를 믿고 교체하지 않았고, Morris는 7구만에 Grace를 삼진처리하면서 투구수 130개를 채우고 내려왔다. 

에이스의 투혼으로 위기를 벗어난 상황에서 맞는 9회초, 이제 점수도 동점이고 분위기는 오히려 Cards쪽이 좋았다. 선두타자 Edmonds가 안타를 치고 나가면서 벤치도 슬슬 에너지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이 때 다음타자인 McGwire 대신 TLR은 Kerry Robinson을 대타로 투입하고 번트를 대게하며, 번트 성공으로 1사 2루가 된 상황에서 후속 Renteria와 Matheny는 Schilling의 98마일 패스트볼에 방망이가 잇따라 허공을 가르며 삼진으로 물러난다. (TLR의 Kerry Robinson 드립은 이후 one of the most controversial moves of his career 로 남게된다. 당시 McGwire의 타격 슬럼프는 공공연히 알려진 바였고, Renteria가 Schilling을 상대로 1차전에 안타 2개를 친 바 있긴 했으나, 이게 과연 맞는 콜이었는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이후 시리즈의 결말은 여러분이 다 아시다시피 Tony Womack의 walk-off-bloop-single로 허무하게 막을 내린다.


“To be sitting on the bench and watching Curt Schilling and Matt Morris, that isn’t major league, it’s a league above this one. I’m not a betting man, but 15 innings, two runs (for Morris), you would have thought he would have won both.”

-Tony La Russa, after NLDS was over 


결과적으로 Morris는 두 차례 등판에서 모두 Schilling에게 패배했으나 (5차전은 비긴 셈 쳐도 되지 않을까 싶다) 전국구 에이스로 크게 발돋움하는 퍼포먼스를 무려 두 차례나 선보였으며, Curt Schilling의 아성에 전혀 꿀리지 않는 모습과 2경기에서 무려 252구를 던지는 투지로 크게 어필을 했다. 팀은 아쉽게 DS에서 탈락했으나, 2001년 포스트시즌은 Morris 커리어의 최정점으로 생각해도 무방하다. Morris는 플레이오프 이후 3년간 27M의 계약을 체결, St. Louis에 그의 20대를 바치기로 한다.

2002년에도 Morris는 17승 9패 ERA 3.42 (FIP 3.32) 210.1이닝 171삼진 64볼넷으로 2001년과 비슷한 레벨의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정규시즌에 Curt Schilling과 다시 대결한 Morris는 이번에는 7이닝 4실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Schiling이 엄청나게 두들겨맞으며 (6이닝 9피안타 6실점) 승리투수가 되었다. 또한 이 해 NLDS에서 다시 D-Backs를 만났고, 다시 1차전 투수로 낙점되어, 이번엔 Randy Johnson을 상대로 7이닝 2실점 승리투수가 되며 작은 복수를 한다.  

이렇게 2년간 Morris는 ML 전체 투수들 중 9위에 해당하는 WAR 10.6을 기록했으며 (Greg Maddux와 Rocket이 10.5, 1위 Randy Johnson 19.4 -_-), 그가 거둔 39승은 전체 투수들 중 5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쉴링, 존슨, 페드로, 로켓 등 괴물 및 거물들이 너무 많던 시대여서 그렇지 Morris가 이 당시 기록한 성적도 상당히 뛰어난 것이었다. 2002년 시즌 중반, 멘토이자 절친한 동료였던 Darryl Kile의 죽음은 유난히 Morris에게 큰 영향을 끼쳤는데, Morris는 원정을 가면 Kile과 함께 주변의 학교, 동물원이나 공원 (San Diego 동물원, Denver의 Estes Park, UCLA 캠퍼스 등) 으로 쏘다니며 함께 많은 추억을 쌓았다고 한다.   


Morris는 승부사 기질이 강했고, 클럽하우스에서도 인기 있는 선수였다.



2003년-2005년: 잃어버린 패스트볼, 그리고 내리막

Morris의 커리어는 2001~2002년을 정점으로 서서히 decline을 시작하는데, 2003시즌에 Morris의 나이가 고작 28세였음을 생각하면 상당히 내리막이 빨리 시작한 편이다. 2003년, 커리어 내내 0.5~0.6 수준이었던 Morris의 HR/9은 드디어 1을 넘어갔고, 이 수치는 결국 내려오지 않았다 (1.04-->1.56-->1.03).  구속 저하 트렌드도 벌써 시작해서 2002년 91.6마일이었던 패스트볼 구속은 2003년 90.6 --> 2004년 89.4 --> 2005년 89.2로 서서히 떨어졌다. 

2003년 Morris는 6월들어 어깨에 불편함을 느끼며 자꾸 투구 메카닉이 흔들렸고, Dave Duncan과 함께 이를 고치려 노력했으나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6~7월 두 달간 거의 매 경기 무너지던 그는 결국 7월 21일에는 라인드라이브 타구를 맞고 오른손이 부러졌었고, 부러진 와중에 팀 동료들과 호텔에서 말뚝박기 비슷한 놀이를 하다가 발목이 부러졌다. 그나마 9월에 복귀한 후 한 달간 5경기에서 35이닝을 던지고 3승 2패 ERA 2.83을 찍으며 아직 죽지 않았음을 과시했는데, 이게 사실상 Morris가 Morris답게 던진 마지막 한 달이었다.

"Whether it was due to shoulder weakness or mechanical troubles, Morris was no longer the power pitcher who could blow any opponents with his hard stuff. A tell-tale sign that he often could not get his shoulder loose was that three times in second half, he was knocked out within the first two innings. Except on rare occasions, his fastball rarely topped 90-92 mph level. As a result, Morris had to rely more on his breaking stuff and sinker. 

- Scouting Notebook 2005, on Matt Morris

2004년 그의 패스트볼은 구속과 구위를 동시에 잃으며 -13.4의 Pitch Value (구종가치)를 찍었는데, 이 시즌을 기점으로 Morris는 사실상 커브와 체인지업, 그리고 싱커와 커터에 의존하는 투수로 변신해야했다. Morris가 개인적으로는 최악의 시즌 (ERA 4.72, 피홈런 리그 2위 35개) 을 치르면서 "세월의 무게"와 '내 공의 한계" 깨닫는 사이, Cardinals는 Murder's Row의 위엄을 앞세워 WS까지 진출한다. 

Morris는 WS 2차전에서 3년 전 만났던 Schilling과 운명처럼 다시 한 번 대결하는데, Morris는 3년 전 그 투수가 아니었다. (그리고 이미 DS와 CS에서 더 이상 그 정도 구위로는 플레이오프에서 버틸 수가 없음을 보여주었다).  그는 매 이닝 고전한 끝에 Varitek에게 2타점 3루타 (Varitek에게 3루타라니 참 -_-) Bellhorn에게 2타점 2루타를 맞았고, 5회말 1사 1루에서 Cal Eldred에게 공을 넘기며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WS 등판을 마감했다. 그리고 필자는 눈물을 머금고 TV를 껐던 기억이 난다. (당시 Morris는 3일 휴식만에 등판한 것 치고는 나쁘지 않은 구위를 보여주었으나, 커리어 첫 3일 휴식 등판을 하필 Fenway에서 Red Sox를 상대로 했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인정은 하지만 좋아하긴 힘든 양반


이 해 11월 어깨 Labrum 수술을 받은 Morris는, 이로 인해 조금 시즌을 늦게 시작했으나, 커리어 로우인 4.5%의 BB%를 기록하면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쳤다. 떨어지는 구속을 커버하려면 공격적이면서 보다 정교한 제구력이 필요했고, 이를 위해서 Morris는 커브, 체인지업, 싱커 위주의 레퍼토리로 완전히 돌아섰다. 

시즌 첫 8번의 decision을 모두 승리로 따내며 8연승을 구가한 Morris는 전반기를 10승 2패 3.10으로 마무리하며 Carpenter-Mulder 원투펀치의 뒤를 잘 받쳐주었는데, 후반기에는 크게 고전하며 4.11의 (나쁘지는 않은) 평균자책으로 시즌을 마무리한다. 2004년 장기계약이 끝나고 Morris는 Cardinals과 인센티브가 많이 포함된 1년 2.5M의 계약을 했는데, 2005년의 활약은 그 수준의 연봉을 합리화하기에는 충분한 수치였다 (운빨이 있든 없든간에). 그의 K/9와 패스트볼 구속은 2001년을 기점으로 꾸준히 떨어지고 있었고, 2005년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7.70 --> 7.32 --> 6.27 --> 5.84 --> 5.47)

2005년 NLDS에서 Morris는 한 수 아래 전력으로 평가된 Padres를 상대로 PETCO Park에서 자신의 커리어 마지막 플레이오프 승리를 거두며 (6이닝 2실점) 시리즈 클린처에서 승리투수가 된다. 그리고 이 등판이 Morris의 커리어에 있어서 가장 마지막으로 빛난 순간이었으며, Morris는 NLCS에서 Astros를 상대로 한 차례 더 등판한 후 그의 Cardinals 시절을 마감한다. 


2006년-은퇴: 

2005시즌을 성공적으로 보내면서 Morris의 시장 가치는 "한 물 갔지만 그래도 아직은 쓸만한 3선발 내지는 Back-of-the-rotation guy" 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Morris의 현저한 구위 저하로 인해 어떤 팀도 Morris에게 장기 계약을 안겨주지는 않을 것으로 보였다.  

 Morris는 2006년 (대체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를) Giants와 3년 26M에 계약했고, 5.5M의 연봉을 받았던 첫 해 10승 15패 ERA 4.98로 리그 패전 부문 2위를 기록했으며, K/9는 이제 5.02로 더욱 떨어졌다. 2007년 시즌 Morris의 연봉은 10M이 넘어갔고, Sabean은 Morris를 처분하기 위해 수많은 팀들에게 오퍼를 했으나 (많은 연봉 부담을 하기로 약속하고) 어떤 팀도 이제 Morris를 데려가려고 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그러던 중 Pirates가 Morris를 데려가는데, 필자가 굳이 사족을 다는 것보다 "최악의 트레이드" 포스팅에서 FreeRedbird님이 쓰신 코멘트를 한번 돌이켜보도록 하자.

20. The Pittsburgh Pirates traded Rajai Davis(CF) and Steve MacFarland(RHP) to the San Francisco Giants for Matt Morris(RHP). (2007년 7월, Pirates GM: Dave Littlefield, Giants GM: Brian Sabean)
이 리스트의 모든 트레이드가 어처구니없는 일방적인 딜이긴 하지만, 사실 대부분 시간이 지나고 나서 결과를 보고 이야기하는 것이며, 딜 당시만을 생각하면 한쪽을 일방적으로 비난하기는 약간 어려운 경우도 많다. 심지어 Pedro Matinez-Delino DeShields와 같은 트레이드도 딜 당시에는 어느정도 이해가 가는 구석이 있었다. 하지만, 이 트레이드만큼은 어떻게 생각해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것 같다. 이 트레이드는 데드라인 직전인 7월 31일에 일어났는데, 당시 Pirates는 42승 62패로 1위에 14.5게임 뒤져 있었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가능성은 제로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도 Littlefield는 무슨 생각인지 Rajai Davis같은 유망주를 내주고 노쇠한 Matt Morris를 영입한 것이다...!! 당시 Morris는 2008년까지 무려 13M이 넘는 연봉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그는 Pirates에서 16게임에 선발 등판하여 7.04 ERA를 기록하고는 2008년 4월 말에 방출되었으니, Pirates는 그의 선발등판 1회 당 1M에 가까운 돈을 지불한 셈이다. Morris는 Pirates에서 방출된 후 은퇴하였다.

              -FreeRedbird, in "최악의 트레이드 25선"


2008년 스프링캠프에서 Morris는 18.2이닝동안 39피안타 20자책점을 기록하면서 먼지나게 두들겨 맞았다. 그리고 정규시즌이 시작하자 4월 한 달간 다음과 같은 처참한 등판일지를 기록하고 4월 28일 방출되었으며, 며칠 후 은퇴했다. 선수생활 막판의 Morris의 모습은 자신감과 의욕을 모두 잃은듯한 모습이었고, 마지막 불꽃을 태우려는 의지도 없어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구위는 이미 떨어질 대로 떨어져 있었다.

※Morris가 방출이 된 직후 바로 은퇴를 해버리면서, Pirates는 잔여 연봉 10M을 Morris에게 지불해야 했다. 이를 두고 한 측에서는 "어차피 은퇴할 거였으면 그냥 은퇴를 했었어야지 치사하게 연봉 받을려고 방출되기를 기다렸냐" 는 비난이 나왔고, 이로 인해 커리어 내내 신사같은 이미지로 사랑받았던 Morris의 가는 길이 조금 지저분해졌다. 

Matt Morris' Final Month of his career

Rk Date Opp Rslt Dec IP H R ER BB SO HR ERA Pit GB FB GSc
1 Apr 4 FLA L,4-5 5.0 8 4 3 2 2 1 5.40 98 7 15 37
2 Apr 10 CHC L,3-7 L(0-1) 7.0 11 7 4 2 3 2 5.25 113 12 18 34
3 Apr 15 LAD L,2-11 L(0-2) 4.2 7 6 6 1 1 0 7.02 79 8 10 26
4 Apr 21 FLA L,4-10 L(0-3) 4.0 9 8 8 1 2 2 9.15 99 9 9 13
5 Apr 26 PHI L,4-8 L(0-4) 1.2 6 6 3 1 1 1 9.67 71 3 9 25
22.1 41 31 24 7 9 6 9.67
Provided by Baseball-Reference.com: View Original Table
Generated 1/16/2013.


La Russa 영구결번식에 참석한 Matt Morris. 아직 살이 찌지 않아서 보기 좋다.


총평

Morris는 TLR ERA와 거의 동시에 커리어를 시작했으며, TLR 시절의 Cardinals를 대표하는 투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꽤 오랜 기간동안 Morris가 없는 Cards 로테이션은 상상하기 힘들었으며, 전성기 시절 12-6 커브는 많은 감독들과 선수들로부터 극찬을 받았고, 2004년의 갑작스런 쇠퇴 전까지는 매년 "Cy Young stuff" 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비록 28세 시즌부터 급격히 쇠퇴하게 된 것은 정말 아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일찍 데뷔했기에) 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을 표방했던 투수들 중 하나로 볼 수 있으며, 특히 Cardinals 역사에 있어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훗날 Chris Carpenter나 Adam Wainwright과 같은 역사적 상징성을 가질 투수이다. 포스팅을 하면서 다시 곱씹어보았을 때 아쉬운 부분이 한 두개가 아니었는데, 1) 28세 시즌부터 그렇게 급격한 구위하락을 겪게 된 것과 2) TLR ERA에서 일궈낸 2차례 우승 중 한번도 끼지 못했다는 점이다. 

At his peak, Morris was one of the best pitchers in baseball, but his body couldn't sustain dominance past the age of 28, and by the end he was surviving with mirrors and moxy. Although the Jim Palmer comps he got in college didn't pan out, he was a very good pitcher.

-John Sickels, on Matt Morris' Career

All-time Cardinals Strikeouts Leaders

Rank Player Strikeouts IP
1. Bob Gibson 3117 3884.1
2. Dizzy Dean 1095 1737.1
3. Chris Carpenter 1085 1348.2
4. Bob Forsch 1079 2658.2
5. Matt Morris 986 1377.1
6. Jesse Haines 979 3203.2
7. Steve Carlton 951 1265.1
8. Bill Doak 938 2387.0
9. Adam Wainwright 908 1073.0
10. Larry Jackson 899 1672.1



Did you know...?

  • Morris는 2004년 6월 20일 Busch Stadium에서 Ken Griffey Jr.에게 그의 개인통산 500호 홈런을 허용했다.

  • 2002년 Morris는 NL 올스타에 선발되었는데, 당시 Darryl Kile의 사망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Morris는 올스타전에서 던지지 않을 것을 요청했으며, Braves의 릴리버 Mike Remlinger가 그를 대신해 들어갔다. 그리고 2002년 올스타전은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전무후무한 "무승부" 올스타전으로, 연장 11회에 양팀을 통틀어 뛰지 않은 선수는 Matt Morris 단 한 명이었다. 

  • 2001시즌 Busch Stadium에서 Morris는 가히 Unbeatable이었다. 그는 홈에서 15승 2패 1.62의 평균자책을, 원정에서 7승 6패 5.15의 평균자책을 기록했다. Jaime Garcia는 이거에 비하면 양반이다.

  • 2004시즌 Morris는 원정에서 무려 6.02의 평균자책을 기록했다. 홈 보이인줄은 알고 있었는데 이 정도일 줄이야.

  • Morris는 현재 부인인 Heather Reader를 2000년 불펜에서 (TJS 수술 때문에 릴리버로 뛸 당시) 만났다고 한다. 2000년 9월 당시 Cubs 원정에 가있던 그는 원정팀 불펜 옆에 앉아있던 MLB.com의 Cubs 담당 리포터 Reader에게 말을 걸게 된다(Morris는 당시 곁에 있던 Alan Benes에게 "저 여자 정도면 결혼해도 되겠다" 는 진부한 드립을 쳤다). 결국 둘은 2002년에 결혼했다.




by Doovy
















Posted by Doovy+
:

Walt Jocketty Years(2)

Transactions of 1995-96 Offseason, 1996 Season

1996 Season: 88승 74패, NL Central 1위

(Baseball Reference 1996 시즌 페이지)


(TLR & Bill DeWitt Jr.)


1995 시즌이 실망스러운 결말을 맞이한 후, Cards는 Tony La Russa와 2년 계약을 맺었다. 당시에도 TLR은 연봉이 $1M이 넘었다고 한다. 그런데... TLR과의 계약이 발표된 지 일주일도 채 안되어서, 그동안 구단을 소유해 왔던 Anheuser-Busch(버드와이저를 만드는 바로 그 맥주회사이다)가 월드시리즈가 한참 진행중이던 10월 말에 Cardinals를 매물로 내놓았다고 공식 발표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이것은 감독으로 계약한 TLR도 전혀 모르던 일이어서, 이 발표에는 그도 꽤 당황했었다고 한다.


당시 이 발표는 파업 이후 관중 감소로 어려움을 겪던 메이저리그를 더욱 곤란하게 만드는 난감한 행위로 생각되었는데, Anheuser-Busch는 40년이 넘게 Cardinals를 소유해 온 역사와 전통의 구단주였을 뿐 아니라, 메이저리그의 주요 광고주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2개월 뒤에는 Bill DeWitt Jr.를 중심으로 한 투자자 그룹이 $150M의 금액에 구단을 매입하는 것으로 확정되었으며, 이 딜은 1996년 3월 21일에 최종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이 계약에는 구단과 구장 및 주차사업에 대한 권리까지 포함되어 있었는데, DeWitt 및 투자자들은 계약 직후 주차장 사업권을 즉시 다른 사업자에게 재매각하여 상당한 차익을 챙겼다. 주차장 사업권 매각으로 벌어들인 돈을 제외하고 나면 실제로 DeWitt과 투자자들이 지불한 금액은 $100M 남짓한 수준이었다고 하는데, 당시 포브스(Forbes)에서 Cardinals 구단의 가치를 $300M 후반대로 추정했음을 감안하면, 거의 사기에 가까울만큼 저렴한 가격에 구단을 매입한 셈이었다.


이렇게 저렴한 가격에 구단이 넘어가게 된 것은, Cardinals를 St. Louis에 계속 남겨두기 위해서였다. 당초 투자자들은 구단을 매입한 후 다른 지역으로 연고지를 옮길 생각이었으나, Anheuser-Busch의 강력한 의지에 의해 계약서에 연고지 이전을 하지 않는다는 약속이 포함되었고, 대신 매각금액이 낮아진 것이다.


나중에 별도로 다룰 기회가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간단히만 언급하자면, Bill DeWitt Jr.는 사실 단순한 사업가 내지 투자자가 아니었다. 그의 아버지 Bill DeWitt은 St. Louis Browns(현 Baltimore Orioles), Detroit Tigers, Cincinnati Reds 등에서 단장으로 일했으며, 그 중간 중간에는 Browns와 Reds의 구단주가 되기도 했었던,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꽤 유명한 인물이다. Bill DeWitt Jr. 자신도 아버지가 Browns 구단주 겸 단장을 하던 시절에 Browns의 배트보이를 했었던, 야구소년이었다.


어쨌거나, DeWitt을 비롯한 새 오너쉽 그룹은 Jocketty 단장과 Tony La Russa 감독을 그대로 유임시켰는데, 오래 지나지 않아 이것은 탁월한 결정이었음이 드러나게 된다. Jocketty는 구단주 교체의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도 매우 정력적으로 일을 하여, 활발한 트레이드와 FA영입으로 팀을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바꿔 놓았는데, 새로운 Cardinals는 베테랑 위주의 로스터로 짜여진, 그야말로 TLR 스타일의 팀이었다.


이번에는 내맘대로 무브에 등급을 매겨 보았다. Scale은 역시 맘대로 정했는데, Atrocious - Terrible - Bad - Average - Good - Excellent - Outstanding 이다.



1995/12/07  FA Jeff Parrett(600K), Jose Oquendo, Mike Morgan(1.25M) 계약   Bad

이들은 모두 1995 시즌 종료 후 FA가 된 선수들로, 재계약을 한 것이다. 이중 Oquendo는 스프링캠프 종료 후 25인 로스터에 들지 못하자 그대로 은퇴하였고, 이후 코치로 변신하여 1998년에 NY Penn 리그의 New Jersey Cardinals 감독이 된다. Parrett과 Morgan은 모두 시즌 중에 방출되었다. 결과적으로는 모두 실패작이었던 셈이다.


1995/12/14  Giants에 Allen Watson(LHP), Rich DeLucia(RHP), Doug Creek(LHP)을 보내고, Royce Clayton(SS)과 PTBNL(Chris Wimmer(2B))을 받아옴   Outstanding

이 트레이드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무브였는데, Clayton이 주전 유격수가 되면서 Ozzie Smith가 벤치워머로 밀려났고, 이 과정에서 TLR과 Ozzie의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Wizard of Oz는 결국 시즌이 끝난 후 은퇴했다.

TLR과 Ozzie 사이의 이야기는 이 글의 주제가 아니므로, 트레이드 자체에만 주목해 보면, 이것은 꽤 훌륭한 트레이드였다. Clayton은 노쇠한 Ozzie를 대체하여 공수에서 꽤 준수한 활약을 했으며, 1998년 시즌 중에 트레이드 되기 전까지 2시즌 반 동안 5.9 WAR을 기록했다. 반면 Giants에 보낸 선수들은 모두 1~2년 사이에 Giants를 떠났는데, 0.9 WAR을 기록했던 좌완 선발 Watson이 그나마 조금 기여를 해줬고, DeLucia와 Creek은 제대로 망해 버렸다. 마침내 Jocketty의 사기 트레이드 능력이 제대로 발현되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Royce Clayton)


1995/12/15  FA Willie McGee(OF) 계약 (1yr/500K)   Good

80년대 Cards의 스타 플레이어였던 McGee는 37세의 노장이 되어 백업 외야수로 팀에 돌아왔다. McGee는 96 시즌 331 PA에서 307/348/417, 104 wRC+의 준수한 활약을 해 주었고, 이후 1999년까지 벤치에 계속 남아 있게 된다.


1995/12/18  FA Gary Gaetti(3B) 계약 (1yr/2M)    Good

1995 시즌에 의욕적으로 영입했던 3루수 Scott Cooper가 폭망함에 따라, Jocketty는 37세의 노장 Gary Gaetti를 FA로 영입하여 땜빵을 시도하였는데, 이게 또 성공적인 무브가 되었다. 1996 시즌에는 타석에서 109 wRC+를 기록하여, 2.1 WAR을 기록한 것이다. Gaetti는 98년 중반까지 팀의 주전 3루수로 계속 남아 있게 된다.

(Gary Gaetti)


1995/12/21  Yankees에 현금을 주고 Rick Honeycutt(LHP)을 받아옴    Good

연속으로 37세의 노장들을 영입한 것으로도 모자라서, 이번에는 무려 42세의 좌완투수 Honeycutt을 현금 트레이드를 통해 영입하였다. 이 해에는 정말 뭐가 되는 해였던 것인지, 이 무브도 꽤 성공적이어서, Honeycutt은 TLR의 좌완 스페셜리스트로 기용되며 61게임, 47.1이닝에서 2.85 ERA, 3.17 FIP의 훌륭한 활약을 해 주었다. 특히 1.3 BB/9의 제구력이 인상적이었다.


1995/12/23  FA Ron Gant(LF) 계약 (5yr/25M)    Terrible

Jocketty는 계속해서 베테랑 선수들을 영입하였는데, 이번에는 두 번이나 30/30을 달성했을 만큼 장타력과 도루 능력을 겸비한 FA 대어였던 Ron Gant와 5년 25M의 (당시로서는 꽤 큰 규모의) 계약을 체결하였다. 이제 팀은 수준급 외야수를 4명(Gant, Gilkey, Lankford, Jordan) 보유하게 되었는데, 특히 이중 포지션이 겹치는 Bernard Gilkey의 트레이드는 시간 문제로 보였고, 실제로 한 달 뒤에 트레이드 된다. 그 트레이드 이야기는 조금 아래에서 다시 하기로 하고, Gant 계약만 놓고 보면... Gant는 96년에 30홈런을 날려서 Jocketty가 기대한 대로 라인업에 파워를 보강해 주었으나, 97년에는 무려 162개의 삼진을 당하면서 82 wRC+, 1.1 WAR의 매우 저조한 성적을 기록하였고, 결국 98년에 트레이드 되고 만다. 2년차부터는 먹튀가 되어 버려서, 이 영입은 망작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

(Ron Gant)


1995/12/23  FA Andy Benes(RHP) 계약 (2yr/8.1M)   Outstanding

이렇게 마구 질러댄 것을 보면, 오너쉽의 교체 따위는 Jocketty에게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던 것 같다. Gant 계약과 같은 날에, 구단은 FA 투수 Andy Benes와도 계약을 체결한다. 95년 선발진의 붕괴를 경험한 Jocketty는 Staff Ace를 원했고, Benes는 기대에 부응하여 1996 시즌에 230이닝을 던지며 3.83 ERA를 기록했다. 비록 FIP는 4.44로 평균에 근접한 수준이었으나, 많은 이닝과 18승이라는 승수 덕분에 사이영상 투표에서 3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1997 시즌에는 더욱 위력적인 투구를 하여 5.1 WAR을 기록, 제대로 에이스 노릇을 하였다. 이정도면 충분히 성공적인 FA 계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Benes는 1997 시즌 종료 후 Cardinals와 5년 30M의 연장계약에 합의하였지만, 원소속팀과의 협상 시한을 넘겨 버렸기 때문에, 결국 Cards와 계약을 하지 못하고 Diamondbacks로 이적하게 된다.

(Andy Benes. Cards에서 6시즌을 뛰었다.)


1996/01/09  Athletics에 Allen Battle(OF), Carl Dale(RHP), Jay Witasick(RHP), Bret Wagner(LHP)를 보내고, Todd Stottlemyre(RHP)를 받아옴   Outstanding

그러나 Jocketty의 Staff Ace를 찾는 노력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Oakland에 4명을 내 주고 Todd Stottlemyre를 받아온 것이다. Stottlemyre도 96시즌에 223.1이닝, 3.87 ERA, 4.48 FIP로 Benes와 아주 닮은꼴의 시즌을 보내며, 로테이션 안정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 트레이드는 Clayton 트레이드의 뒤를 잇는 Jocketty의 명작이었는데, Stottlemyre가 96년에서 98년 중반까지 2년 반 동안 10 WAR을 기록한 데 반해, Athletics에 보낸 4명의 유망주는 아주 별 볼일 없었기 때문이다. Battle, Dale, Wagner는 모두 거의 아무 존재감을 남기지 못하고 일찌감치 은퇴하였고, Witasick이 불펜투수로서 오랜 커리어를 가지게 되는데, 그나마도 Witasick이 1 WAR 이상 기록한 시즌은 1999년 Royals에서였고, A's에서는 3년 동안 -0.7 WAR만 기록하고 팀을 떠났다. 이쯤되면 대박이라고 해도 괜찮을 것이다. Clayton 때도 그랬는데, 주로 투수 유망주들을 보내고 있고, 이들이 모두 죄다 폭망해버렸다는 것이 흥미롭다.

(Todd Stottlemyre. 실력도 있고 성깔도 있는 투수였다.)


1996/01/14  FA Pat Borders(C) 계약 (1yr/350K)   Average

Borders는 백업포수로 계약하였는데, 별로 존재감 없이 지내다가 시즌 중 트레이드 되었다.


1996/01/22  Mets에 Bernard Gilkey(LF)를 보내고 Erik Hiljus(RHP), Eric Ludwick(RHP), Yudith Orozio(RHP)를 받아옴  Atrocious

아마도 이 무브가 없었다면 95-96 오프시즌은 거의 만점에 가까웠을 것 같다. Gant의 영입으로 자리가 없어진 Gilkey를 Mets로 트레이드 했는데, 96 시즌에 Gilkey가 30홈런, 955 OPS를 기록하며 무려 7.1 WAR을 기록한 것이다. (이 트레이드는 Cards 입장에서는 최악의 무브인 동시에, Mets 역사에 길이 빛나는 명 트레이드로 남아 있기도 하다.) 특히 Gant가 96년에 3.4 WAR을 기록했고, 이후에는 폭망했음을 생각하면, 이 무브는 무척 아쉬움이 남는다.

데려온 우완 유망주 3명은 모두 처절하게 망해 버렸다. 역시 Jocketty는 이런 유형의 트레이드에 별로 소질이 없다. ㅎㅎ


1996/02/13  Athletics에 Steve Montgomery(RHP)를 보내고 Dennis Eckersley(RHP)를 받아옴   Excellent

Jocketty는 만만한(?) Athletics를 상대로 또다시 사기 트레이드를 감행하는데, 41세의 클로저 Eckersley를 받아오면서 우완 유망주 Steve Montgomery를 내준 것이다. Eckersley는 나이가 나이인지라 기량이 예전같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96-97 2년간 66세이브를 기록하며 Tom Henke의 빈자리를 메꿔 주었다. 반면 Montgomery는... "투수" "유망주" 였다. 이거 설명이 필요한가? ㅎㅎ 이친구는 Oakland에서 2년간 12게임에 나와 9점대의 ERA를 찍고는 사라졌다. 이후 99년 Phillies에서 1년 반짝 하기도 했지만, 결국 2000년을 끝으로 메이저리그를 떠났다.

(Dennis Eckersley)


1996/03/19  Red Sox에서 웨이버 공시된 Luis Alicea(2B)를 클레임하여 데려옴   Good

95시즌에 Jocketty는 Alicea를 허접 유망주들과 맞바꾸는 실수를 저질렀었는데, 이번에는 Red Sox가 무슨 이유인지 Alicea를 웨이버 공시하여 그를 클레임으로 다시 데려올 수 있었다. Alicea는 주전 2루수가 되어 93 wRC+, 1.1 WAR의 그저 그런 성적 시즌을 보냈다. 1시즌 땜빵으로는 무난한 성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편, 이 무브로 인해 자리가 없어진 Jose Oquendo가 은퇴하게 되었다.



결국 Gilkey를 좀 더 비싼 Gant로 대체했다가 실패한 것 이외에는, 이 오프시즌의 전력보강은 모두 성공적이었다. 이전 시즌을 62승 81패로 마무리했던 Cards는 이렇게 새로 영입된 선수들과 기존 스타 플레이어들인 Rankford, Jordan이 고른 활약을 펼치면서 88승 74패로 NL 중부지구 1위를 차지하였고, 87년 이후 9년만에 플레이오프에 처음으로 진출하였다. NLDS에서 Padres를 스윕하고 기세 좋게 NLCS에 올라간 Cards는 Maddux/Glavine/Smoltz 3인방과 Chipper Jones, Ryan Klesko, Fred McGriff등 초호화 로스터를 보유한 Braves와 7차전까지 가는 접전을 펼쳤으나, 7차전에서 투수들이 장단 17안타를 얻어맞으며 0-15로 대패하고 시즌을 접었다.



To be continued...

Posted by FreeRedb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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