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Doovy


이번 주 주인공은 TLR 시대의 대표적 클로저이자 프랜차이즈 세이브 리더인 "Izzy" Jason Isringhausen 이다. 



Jason Isringhausen (Izzy)

Closer

DOB: 1972년 9월 7일 

Birth: Brighton, Illinois 

Time with Cardinals:  2002-2008


Draft and Minors


1991년 드래프트, Mets는 2라운드 전체 66번으로 Virginia 출신의 고졸좌완 Bill Pulsipher를 지명했다. 강력한 패스트볼과 슬라이더 조합을 가지고 있던 6'3인치의 이 어린 좌완투수는 이 드래프트에서 가장 Ceiling이 높은 고졸 투수로 손에 꼽혔다. 그리고 1000명이 넘는 선수들이 지나간 후, Mets는 44라운드, 전체 1156번으로 Illinois의 한 커뮤니티 칼리지에 다니는 19세 선수를 지목했다. 6'3인치의 프레임을 가진 평범한 외야수였다. 고등학교에서 포수를 보았던 이 선수는 팀 주전 포수 경쟁에서 패배해 외야로 밀려나 있었다. 


야구를 커리어로 삼을 생각이 크게 없던 이 어린 선수는 드래프트 지명을 일종의 "여름알바 (Summer Job)" 수준으로 생각했다. 그도 그럴것이, 44라운드 지명 선수가 무슨 포지션에서 뭘 어떻게하든 무슨 상관인가. 현실적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가서 재밌게 놀다오고 끝나면 와서 일할 준비를 해라" 라고 말했고, Isringhausen은 7천달러의 계약금을 받아들고 신이 나서 GCL이 열리는 플로리다로 내려갔다. 이게 우리가 아는 Izzy의 시작이다.

 “My dad said, ‘Go have a fun summer and get ready to go to work when it’s over.’ We both figured it would be a little summer fling thing. For a summer job, it worked out all right.”

-Jason Isringhausen, reminiscing his draft day

GCL Mets의 코치들은 Izzy를 보자마자 "외야수로 뛰기에는 스피드가 형편없는데 어깨는 쓸만하니 투수를 시켜보자" 는 주먹구구식 포지션 변경을 제안했다. Izzy는 싫다고 할 이유가 없었다. 결과는 웬걸, 12경기 65이닝에서 고작 2피홈런. 이 44라운더 외야수의 어깨는 "쓸만한" 정도가 아니고 96마일을 상회하는 강력한 패스트볼을 뿌릴 수 있었다. 하위 마이너에서 29BB/49SO의 비율을 기록한 것은 문제가 있으나, 본격적인 피칭을 사실상 처음 시도해보는 선수가 이 정도의 성적이라는 것은 놀랄만한 일이었다. 피칭 메카닉을 다듬고 패스트볼 커맨드를 잡는데 주력한 Izzy는 이듬해인 1993시즌에는 로우A 레벨에서 90.1이닝 104탈삼진을 잡는다. 같은 해 하이A 레벨에서 뛰던 2라운더 Bill Pulsipher가 96.1이닝 102탈삼진을 잡았으니, Mets 는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93년, 무려 59승 103패의 성적으로 당당히 전체 1번 드래프트 픽을 확보한 Mets는 1994년 드래프트에서 모두가 기다리던 FSU 출신의 우완 Paul Wilson을 지명했다. 당시 이미 6'5인치의 큰 체구, 대학 마지막 시즌에 ERA 2.08과 134이닝 154K을 기록했던 그의 압도적인 패스트볼-슬라이더 콤보는 이미 어느 정도 완성형으로 뽑혔었다. ML 레벨에서 즉시전력감이 될 것으로 평가받던 Wilson은 몇 년 전의 David Price나 십수년 전 Mark Prior가 받던 수준의 각광을 받으면서 Nomar Garciaparra, Jason Veritek 등 당대 최고의 유망주들을 제치고 전체 1번의 영광을 안았다. Wilson은 Tom Seaver, Dwight Gooden의 뒤를 잇고 싶다는 당찬 포부를 밝히며 Mets 산하 A+ 팀인 St. Lucie로 들어간 뒤 이듬해 AA볼을 마음껏 씹어먹는다. (16경기 120.이닝 127삼진 평균자책 2.17) 



왼쪽부터 BA Top 100 Prospect 37위 Izzy, 16위 Wilson, 12위 Pulsipher (1995)



Jason Isringhausen, Paul Wilson, 그리고 Bill Pulsipher. 이것이 소리만 요란했던 빈 수레이자 일종의 신기루와도 같았던 Mets의 Generation K의 탄생이었다. 당시 신조어처럼 번지고 있던 Generation X (X세대?) 라는 단어를 빗대 만든 말인데, Dwight Gooden의 빠른 쇠퇴와 David Cone의 이적 이후 순식간에 투수진이 붕괴되어 골머리를 썩던 Mets 입장에서는 이 Generation K에서 한 명만이라도 살아남기를 간절히 바랬을 것이다. 결과론이지만 세 투수 중 선발 투수로 성공한 투수는 한 명도 없으며, Izzy를 제외하곤 누구도 올스타에 선정된 적이 없다.


1995-1998: 용두사미


아래 Izzy의 마이너리그 트랙 레코드를 보시면 포수-->외야수를 거쳐 프로에 와서야 비로소 처음으로 마운드를 밟아본 선수치고 거의 시행착오가 없이 굉장히 빠른 속도로 발전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강력한 Mid-90s Fastball-Knuckle Curve 조합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1995 시즌에는 12경기에서 완봉 3차례를 포함 9승 1패 ERA 1.55의 압도적인 성적으로 투수로써는 드물게 International League MVP를 수상했으니, 사실상 Generation K 멤버들 중 가장 덜 주목받으면서 프로에 입문한 선수가 결국 가장 화려한 성적으로 팜을 졸업하고 콜업되는 인생역전인 셈이었다. 이 해 Mets 산하 AAA팀의 Norfolk에는 Mets의 미래를 짊어진 Generation K 투수 3명이 모두 뛰었는데, 이들 중 Izzy의 성적이 가장 압도적으로 좋았음은 말할 것도 없다. (Paul Byrd 3승 5패 ERA 2.79, Pulsipher 6승 4패 ERA 3.14) 


그리고 그 해 올스타 브레이크가 끝난 직후 콜업된 Izzy는 7월 17일, Izzy는 Wrigley Field에서 Cubs를 상대로 가진 데뷔전에서 7이닝 2피안타 2실점 6K의 뛰어난 피칭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다. 당시 Mark Grace-Sammy Sosa-Todd Zeile-Luis Gonzalez 등을 위시한 Cubs 라인업을 상대로 데뷔전에서 2피안타만을 허용했을 뿐이니 Mets 입장에서는 로테이션에 안착시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후 Izzy는 남은 2달 반의 정규시즌동안 14차례 선발등판, 9승 2패 평균자책 2.81의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으며, 경기당 평균 6.2이닝을 소화하는 철완을 과시하는 한편 8월 20일부터 9월 25일까지는 7경기 연속 선발승을 기록하기도 했다. 비록 신인왕 투표에서는 Hideo Nomo, Chipper Jones 등 걸출한 다른 루키들에게 밀리긴 했지만, 후반기만 뛰고 3.0의 WAR를 적립했으니 효율면에서는 그 해 어떤 신인들에게도 뒤지지 않는 활약이었다. 


슬픈 일은 선발투수로써 Izzy의 커리어는 이것이 정점이었다는 것이다. 


망나니(?) Isringhausen 의 화려한 마이너리그 트랙 레코드 


YearAgeTmLgLevWLERAGGSCGSHOIPHRERHRBBSOHBPWPWHIPH/9HR/9BB/9SO/9SO/BB
1992192 Teams2 LgsRk653.7413121165.058412722949441.3388.00.34.06.81.69
199219MetsGULFRk244.34660029.026191401725321.4838.10.05.37.81.47
199219KingsportAPPYRk413.25761136.032221321224121.2228.00.53.06.02.00
199320PittsfieldNYPLA-743.2915152090.1684533728104381.0636.80.72.810.43.71
1994212 Teams2 LgsA+-AA1182.61282883193.11546656850128491.0557.20.42.36.02.56
199421St. LucieFLORA+642.23141463101.076312522759241.0206.80.22.45.32.19
199421BinghamtonELAA543.0214142092.178353162369251.0947.60.62.26.73.00
1995222 Teams2 LgsAAA-AA1121.97181843128.09032283361345100.9846.30.22.59.43.72
199522BinghamtonELAA212.85661041.026151311259360.9275.70.22.613.04.92
199522NorfolkILAAA911.5512123387.064171522475241.0116.60.22.57.83.13


우리가 본 2000년대 초 Cardinals 클로저 Izzy는 이미 프로 7년차의 어엿한 베테랑이었지만, Mets 시절, 아니 보다 정확히 Generation K 시절의 Izzy는 상당히 문제아였다. 1995년 자신의 첫 메이저리그 스프링 트레이닝 캠프에 도착한 Izzy는 캠프 도중 술에 취한 채로 여자친구의 집 발코니를 기어올라가다가 건물 3층에서 떨어져 발가락과 정강이가 부러지고 머리를 60바늘을 꿰매는 큰 부상을 당했는데,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당시 의사의 소견이 더 기가 막힌데, "환자가 술에 취해서 근육들이 이완되어 있어서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즉사했을 것" 이라는 것이다. -_-)


메이저리그에 콜업된 이후인 1997년 스프링 캠프에서는 팔꿈치 부상으로 피칭을 쉬던 중에 동네 소프트볼 게임에 나가서 우익수를 보며 코치진들에게 야단을 맞았으며, AAA Rehab 게임에서는 자신의 투구 내용에 화가 나서 분을 못 이겨 쓰레기통을 주먹으로 쳤는데, 이 과정에서 오른쪽 Wrist가 골절되었다. 1997년 정규시즌 막판에는 소포 패키지를 열어보다가 테이프를 뜯던 칼로 자기 허벅지를 크게 베어버리는 등 Zumaya의 기타 히어로 사건을 우습게 만들 수준의 에피소드가 많았다. 클럽하우스에서 시끄러운 음악을 듣고 고함을 지르는 등의 일은 예사였다. 당시 Mets 클럽하우스에는 딱히 제대로 기강을 잡고 있던 베테랑들이 별로 없었고, 팀이 전반적으로 젊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선발투수 Izzy의 루키시즌은 상당히 대단한 것이었다.


1996시즌 9월말에 팔꿈치와 어깨 수술을 받은 Izzy는 1997시즌 스프링캠프에서 당시 TJS를 받고 막 돌아온 Bill Pulsipher**와 함께 Rehab과 시뮬레이션 피칭을 하며 시즌을 준비했으나, 연이은 Set-back으로 결국 시즌을 DL에서 시작한다. 4월 11일,  AAA 리햅 등판에 나섰던 Izzy는 스스로에게 치밀어오르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클럽하우스 쓰레기통을 주먹으로 때려 부쉈는데, 이 과정에서 오른쪽 팔뚝의 작은 뼈들이 부서져버리면서 최소 3개월은 결장할 것이라는 진단을 받는다. 자신의 멍청한 행동에 화가 난 Izzy는 "필드로 돌아가고 싶어 미치겠다. 내 자신이 너무 멍청하다" 면서 자책했고, 클럽하우스에 들어온 Izzy에게 베테랑 좌완 릴리버 John Franco는 자신의 오른쪽 Knuckle에 난 흉터를 보여주면서 "빡치는 건 이해하지만, 정 필요하다면 왼손을 써라" 라며 상당히 실용적인 조언을 해주었다. 


팀 복귀가 가까워진 시점인 7월, 그는 부상 정도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흉부 X-Ray를 찍었는데, 여기서 종양 비슷한 물체가 발견되었다. 의사들은 이를 암으로 진단했고, 나이 스무 살에 암선고를 받아버린 Izzy는 호텔방에서 며칠간 두문불출하며 하염없이 정밀진단 결과를 기다렸는데, 다행히 일주일 후 정밀 진단 결과로 Tuberculosis, 즉 폐결핵 진단이 나왔다. 스프링캠프 때만 해도 "예정보다 빠르게 재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다" 며 자신에 찼던 그의 선발 3년차 시즌은 잇따른 예기치못한 부상에 어느덧 반환점을 지나고 있었다.

"I try to keep it in more. But I still snap once in a while. I've just got to use my left." 


- Jason Isringhausen, on his temper

8월 27일이 되어서야 자신의 시즌 첫 데뷔전을 치른 Izzy의 몸 컨디션은 정상이 아니었다. 시즌 첫 등판에서 그는 Giants를 상대로 5이닝동안 무려 17명의 주자를 허용하며 (11피안타 6볼넷) 6실점하는 최악의 투구내용을 보였다 (그런데 승리투수가 되었다-_-). 그 다음 경기에서는 6이닝 6볼넷 무실점으로 버텼으나 이미 패스트볼 커맨드는 제어 불가능 상태였다. Mets는 9월 23일까지 더 기회를 주었으나, Izzy는 끝까지 잃어버린 제구와 구위를 찾지 못한채 시즌을 마무리했고, 정규시즌 후 팔꿈치 부상 진단을 받는다. Izzy가 받을 3차례의 TJS 중 그 첫번째가 온 것이다.


** 처참하게 무너지긴 했지만 그래도 ML 마운드를 밟아본 Izzy는 그래도 양반이다. 함께 재활등판을 준비하던 또다른 Generation K의 멤버 Pulsipher는 1997시즌 단 한 차례도 마운드를 밟아보지 못했다. 재활 때문에 내려갔던 A+볼에서 36.2이닝 동인 35볼넷, 폭투 14개, 보크 5개를 기록하면서 소위 "맛이 가버린" 것이다. 전미 12위 유망주였던 Pulsipher의 커리어는 이 시점을 끝으로 사실상 끝나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1998년: 첫 TJS


TJS 로 1년간 힘든 재활과 무료함을 견뎌야했던 Izzy는 그의 아내 Lorrie를 만나는데, 당시 이미 어느 정도 성공한 뉴욕의 커리어우먼이었던 Lorrie를 만나면서 Izzy의 망나니스러움은 많이 벗겨졌다. 1998시즌을 그렇게 날리고 1999시즌 그가 Mets 클럽하우스에 다시 들어서서 조용히 자기 라커룸 앞에서 책을 읽자 (훗날 그의 멘토가 되는) John Franco, Al Leiter 등이 다가와 먼저 손을 내밀었다. 당시 Mets 클럽하우스의 기강을 잡던 Al Leiter, Robin Ventura, Mike Piazza 등 베테랑들은 강속구밖에 모르던 천방지축 망나니에게 의외로 의젓한 면이 생긴 모습을 기특하게 생각했다. 

He respected the hierarchy of the older players. As much as he was outgoing and goofy, he also knew his place.


-Al Leiter, on Izzy's character

1999시즌 5월 24일, Izzy는 Pirates 원정에서 오랫동안 기다린 복귀전을 치르지만, 홈런을 2개 맞으면서 심상찮은 조짐을 보인다. 몇 차례 더 기회가 있었으나 패스트볼 커맨드가 계속 들쭉날쭉했고, 투구수 60개를 넘은 뒤에는 통증 때문에 공의 위력이 현저히 떨어졌다. 본인의 5번째 선발 등판이 있던 6월 19일, Cardinals 전에서 마운드에 선 Izzy는 1회에 Mark McGwire에게 쓰리런을 맞으면서 경기를 시작하더니, 3회에는 영점을 완전히 잃어버리며 볼질을 시작했다. 투구수 50개를 넘기면서 팔꿈치가 다시 말썽을 부린 것이었다. 통증이 극심해지는 사이 Cards 타선은 타자 일순하며 순식간에 6점째를 뽑아냈고, 이내 Izzy는 3회를 채 채우지 못하고 2.2이닝 6피안타 4볼넷 6실점의 기록을 남긴 채 내려왔다. 선발 유망주 Izzy의 마지막 선발 등판이었다. 

Bobby Valentine 감독은 Jason Isringhausen을 불펜으로 돌리는 것에 대해 "그것은 마치 *Indy 500 (레이싱 대회)용 레이스카를 택시로 쓰는 것과 같다" 며 Izzy의 선발 기용에 대해 미련을 표시했었는데, 이렇게 되니 어쩔 수가 없이 불펜으로의 전환이 유일한 해결책이었다(왠지 "차고에 넣어놓은 페라리"로 불리고 있는 한 선수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그리고 이는 서서히 망가져가던 Izzy의 커리어를 부활시키는 신의 한 수가 된다. 

 Izzy는 "망쳐도 내일 또 나와서 다시 잘 할 기회가 있으니 좋다" ("You know coming in the next day, no matter how it went, you'd have a chance to do it again") 며 릴리버로의 전환에 만족해했다. 7월 31일, 불펜 고령화로 인해 젊은 피가 필요했던 A's가 Izzy의 클로저로써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데려간 뒤에는 더더욱 잘 하기 시작했다. 이적 후 첫 한 달간 11경기에서 15이닝 2실점 2세이브. 1이닝 전력 투구 모드로 바뀌자 패스트볼 커맨드도 잡히기 시작했고, 구위도 살아나기 시작했다. 이미 9월달에 실질적 A's의 마무리는 Izzy가 되어 있었다. A's의 Art Howe 감독이 Izzy를 처음 클로저로 내정했을 때 영 못미덥다는 눈초리를 보내던 여론도 Izzy가 단 한 차례의 블론세이브도 기록하지 않고 시즌을 끝내자 잠잠해졌다.

*사족이지만 Izzy 를 보내고 Mets는 Billy Taylor라는 릴리버를 받아왔는데, 18경기에서 ERA 8.10을 찍고 방출당했다. Beane-Ricciardi 콤비의 혜안이 적중한 것도 칭찬할만 하지만, 반면에 Valentine이 대체 월드시리즈를 어떻게 올라갔던 것인지 알 수가 없다.

''When I scouted him, I had gone to see other guys. I saw Izzy and I called Billy Beane and said, 'His stuff is just unbelievable.' He had an above-average fastball, a plus curve. But around four innings in he would start to lose focus. I mentioned to Billy that I'd really like to get this guy. His stuff for one inning was just incredible.

- J.P. Ricciardi, A's Director of Player's Personnel (2000)

2000-2001 : 클로저로써의 도약 


"깡"과 "배짱", 그리고 강력한 패스트볼과 커브 조합의 Hard stuff로 무장한 Izzy는 흔히 말하는 "클로저 체질" 이었다. 마운드에서 Izzy는 당당했으며, 살얼음판 리드에서도 적어도 표정만큼은 냉담했다. 가끔가다 좌타자 상대로 고전하는 모습, 패스트볼 커맨드가 흔들려서 투구수가 늘어나는 모습을 노출하던 그는 결코 완벽한 마무리 투수는 아니었다. 그러나 기본적인 의무인 "매일 리드를 지키러 나온다"는 측면에서 Izzy는 그다지 흠잡을 곳이 없었다. Oakland에서 그가 뛰는 동안 홈 팬들은 9회 세이브 상황이 되면 Coliseum 불펜을 바라보며 Boom-boom, Boom-boom-boom, Is-Ring-Hau-Sen! 이라는 구호로 그들의 클로저를 소환했다.



2000년 8월 8일 Yankees전, Barry Zito와 Roger Clemens가 팽팽한 투수전을 펼치며 9회까지 3:2 오클랜드의 리드가 이어졌다. 9회 클로저 Izzy가 껌을 짝짝 씹으며 Yankee Stadium 마운드에 올랐다. 첫 타자 Bernie Williams가 작정하고 Izzy의 초구 몸쪽 패스트볼을 후려서 우측 담장을 넘기는 동점 홈런을 쳤고 (3:3), 두번째 타자 David Justice는 관중들의 환호성이 끝나기도 전에 Izzy의 바깥쪽 낮게 빠지는 초구 패스트볼을 걷어올려서 우중간으로 넘겨버렸다. 공 2개로 동점홈런-끝내기홈런. 4:3 Walk-Off.  

Yankee Stadium이 광란의 도가니로 변하는 사이에 클로저 Izzy는 아무렇지도 않게 마운드를 내려왔다. 클로저로써 어쩌면 굴욕적일 수도 있는 그런 경기를 끝내고도 Izzy는 기자들의 질문에 "솔직히 좀 웃겼다. (힘을 안썼으니) 암튼 내일을 위해 충분한 휴식을 취했다." (That was actually comical. Well, I'm well-rested for tomorrow.") 라고 대답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 경기 이후 Izzy는 17경기에서 1승 8세이브를 거두는 동안 단 한차례의 블론도 없이 시즌을 끝냈다. 

그가 오클랜드 유니폼을 입고 뛰던 2년간 A's는 ALDS에서 매번 Yankees를 만났고, (다들 잘 아시다시피) 두 번 모두 2승 3패로 패배했는데, Izzy는 팀의 4승 중 3경기에서 깔끔한 1이닝 무실점 세이브를 따냈다. 특히 Yankee Stadium에서 펼쳐진 2001년 ALDS 2차전은 백미였다. 선두타자 Bernie Williams에게 2루타, Tino Martinez에게 볼넷을 허용한 후 3타자를 삼진-파울 플라이-파울 플라이로 잡아내고 포효하던 모습은 Izzy 의 짧지만 굵었던 오클랜드 시절에서 잊을 수 없는 하이라이트이다. (이후 Izzy의 회고에서는, Posasa 타석을 앞두고 Jason Giambi가 마운드로 다가와 "Calm Down" 하라고 하자 Izzy는 "I can't feel my legs" 라며 글러브로 입을 가린채 엄청나게 웃었다고 한다. 물론 Posada는 삼진을 당했다.)

2002: 바라고 바라던 Elite Closer

무려 4명의 선수가 돌려가면서 9회를 맡았던 2001시즌의 집단 마무리 체제를 벗어나고 싶었던 Jocketty, 그리고 TLR은 Top Closer를 FA로 영입하는 것이 목표라고 오프시즌을 앞두고 공공연하게 밝혔다. John Smoltz, Jeff Shaw 등 다른 옵션들도 있었으나, TLR의 눈에는Oakland에서의 2년간 75세이브를 거두며 리그 정상급 클로저로 순식간에 발돋움한 28세의 투수 Izzy가 가장 매력적인 타겟이었다.

2001년 12월 11일, 양측은 4년간 27M이라는 조건에 합의를 본다. 당시 Texas Rangers가 4년간 30M으로 더 큰 규모의 계약을 제시했으나, Izzy는 소년 시절부터 응원해왔던 팀이자 현재 가장 포스트시즌에 가까운 전력을 구축해놓은 팀인 St. Louis Cardinals 에 입단하기로 결정한다. Izzy의 고향인 일리노이 주의 Brighton은 St. Louis에서 45분이면 갈 수 있는 곳으로, 가족과 가까운 곳에서 뛸 수 있다는 사실에 Izzy는 매우 흡족해했다.

"Down at the end it was between the Cardinals and the Rangers. But my final choice was being with the Cardinals. My main goal is to win, and I think they have the right group of guys here to win for a very long time."


- Jason Isringhausen, after signing a 4-year contract with the Cardinals

새 클로저 Isringhausen은 강력했다. 그는 5월달에 무려 12세이브를 기록하면서 구단 월간 최다 세이브 기록과 타이를 이루는 등 전반기에만 42이닝을 소화하며 19세이브 평균자책 2.57을 기록했다. 94-97마일에서 형성되는 그의 패스트볼은 구속과 무브먼트를 모두 동반해 스트라이크 존을 찔렀으며, Duncan으로부터 조련받은 커터도 충분히 효과적이었다. Izzy는 우타자들을 상대로는 저승사자였으나 (피안타율 .164) 딱히 좌타자들을 상대로 던질만한 구질이 마땅치 않아 좌타자 상대 피안타율 .247을 기록했으며, 가끔가다 패스트볼 커맨드를 전혀 잡지 못하는 모습을 노출하며 몇몇 경기에서 자멸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37번의 기회에서 32세이브를 거둔 Izzy의 첫 시즌은 전반적으로 성공적이었다. 특히나 단 한 차례도 홈런을 허용하지 않은 점은 Izzy의 Hard-stuff를 여실히 보여주는 기록이다.




그러나 이 시즌 Izzy의 최대 문제점은 바로 내구성이었는데, 이미 TJS를 많이 받았던 Izzy는 구단 측에 본인의 팔 상태에 대해서 명백하게 의사표현을 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후반기에 두 차례나 DL에 올랐으며 정규시즌 마지막 몇 경기도 뛰지 못했다. Izzy의 내구성을 우려한 구단에서는 Izzy에게 10월에 어깨 수술을 받은 뒤 오프시즌 내 Conditioning을 확실히 하라고 당부했다.


2003시즌, Izzy는 다른 투수들보다 약간 늦게 스프링 캠프에 도착할 예정이긴 했으나 회복 속도가 더뎠다. 당초 4월 중순쯤이면 복귀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재활에서 몇 차례 Setback 이 생기면서 결국 6월이 되서야 복귀했다. Izzy가 늦게 오는 사이 Cardinals 불펜은 망가질대로 망가져있었는데, 2003시즌의 너덜너덜한 불펜 상황을 보시면...(LINK)


2004시즌 스프링캠프에 Izzy는 어느 때보다도 건강하고 준비된 모습으로 나타났고, 결과는 환상적이었다. Izzy 개인적으로나 여태 Cardinals 클로저 역사상 가장 위력적인 시즌 중 하나였다. 그는 74게임에 등판해서 그 중 57경기를 무실점으로 막았고, 프랜차이즈 단일시즌 최다 세이브 타이 기록을 세움은 물론 NL 세이브 리더 타이틀을 획득한다. 특히 Cards에 와서 던지기 시작한 그의 파워커브는 이 무렵 어느 카운트에서나 던질 수 있는 구질이 되었으며, 이 시즌 Izzy는 좌우 스플릿이 .205 (L) .195 (R)로 거의 균등해졌다.


2004 NLCS는 Izzy 라는 투수의 매력이 제대로 드러난 시리즈였다. NLCS 5차전에서 (그렇다, Brandon Backe와 Woody Wiliams가 나란히 인생투를 던진 그 경기이다) 0:0이던 8회 TLR은 너무도 당연하게 Izzy를 출동시켰다. Izzy는 상대 8-9-1번 타순을 가볍게 삼진-내야플라이 2개로 돌려세웠는데, 9회 Beltran이 안타를 치고 2루를 훔치자 Berkman을 고의사구로 거르고 1사 1,2루에서 Jeff Kent를 상대했다. 


Jeff Kent가 누군가. 초구 좋아하고 직구 좋아하기로 리그 내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운 그런 타자이다 (통산 홈런 377개 중 18.3%에 달하는 69개가 초구 홈런, 초구 타율 .322). 그리고 Izzy는 그런 타자들에게 초구 패스트볼을 안던지고는 못배기는 그런 투수였다. 이 타석에서 나온 초구 끝내기 쓰리런은 어찌 보면 그다지 놀랍지도 않은 결과였다. 5차전을 본인이 직접 날려먹은 Izzy는 NLCS 6차전에 똑같은


등판했다. 그리고 무려 3이닝 (2피안타 1실점) 을 소화해주며 팀 승리에 크게 일조했으며, 초구 공략에 맛들린 Jeff Kent를 초구 내야 플라이로 잡아냈다. 7차전에서 9회 선두타자로 나온 Kent를 또다시 초구 내야 플라이로 잡아냈다. 결국 시리즈 승리를 확정지으며 NLCS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아낸 것은, 5차전에서 충격적인 쓰리런을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툭툭 털고 던지던 Izzy였다. 7차전까지 간 이 명승부에서 Izzy는 무려 6경기에 등판했고, 그 중 5경기를 본인 손으로 마무리했다 (다른 한 경기는 연장 12회에 Edmonds의 홈런으로 이긴 경기). TLR의 두터운 신뢰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이 포스트시즌이 끝나자, 4년 계약의 마지막 해인 2005시즌을 앞두고 Cardinals는 Izzy에게 2년 연장 계약 (+1년 팀 옵션)을 안겼고, Izzy는 흔쾌히 계약서에 싸인했다. 

 

2005시즌 스프링 캠프를 앞두고 Izzy는 좌완 릴리버를 찾고 있던 Jocketty 에게 옛 동료이자 Generation K의 일원으로 한때 촉망받는 유망주였던 Bill Pulsipher를 추천한다. 당시 팀에는 이미 Ray King 이라는 걸출한 왼손 릴리버가 있었으나, 매치업을 선호하는 TLR은 이미 좌완 릴리버 2명으로 톡톡히 재미를 봤던 터라 Secondary LOOGY를 25인 로스터에 포함시키길 원했다. Pulsipher는 스프링 캠프 초대를 수락했는데, 이미 당시 25인 로스터의 마지막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선수로 반평생을 LOOGY 역할로 살아온 Mike Myers와 2000년 드래프트에서 Cardinals 가 뽑았던 Undersized 대졸 좌완 Carmen Cali 등이 눈에 불을 켜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Pulsipher은 의외로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무려 탁월한 기록을 내며 선전했고, Cardinals는 Mike Myers를 트레이드한 뒤 Pulsipher를 LOOGY로 낙점했다. Generation K 시절 이후 떨어져있던 두 선수가 처음으로 다시 같은 유니폼을 입고 뛰는 순간이었다.


아쉽게도 이 훈훈한 Feel-good story는 Pulsipher가 잠깐의 기회를 살리지 못한 채 개막 후 한 달을 못 버티고 방출당하면서 씁쓸한 엔딩으로 끝나게된다. Pulsipher는 잇따른 부상과 마이너리그, 독립리그 생활로 인한 우울증과 싸우고 있으며, 2005년을 마지막으로 메이저리그에서 자취를 감췄다. Izzy와는 종종 연락을 하고 지낸다고 한다.


TLR 시대를 상징하는 클로저, Izzy 


YearAgeTmWLERAGGFSVIPHRERHRBBIBBSOHBPWPBFERA+WHIPH/9HR/9BB/9SO/9SO/BBAwards
200229STL322.4860513265.1462218018168102571620.9806.30.02.59.43.78
200330STL012.3640312242.0311411218141061741761.1676.60.43.98.82.28
200431STL422.8774664775.1552724523471213081481.0356.60.62.78.53.09
200532STL122.1463523959.0431414427551122451991.1866.60.64.17.81.89AS
200633STL483.5559513358.14725231038352332571261.4577.31.55.98.01.37
200734STL402.4863543265.1422118428354232671781.0715.80.63.97.41.93
200835STL155.7042271242.248282752203651200751.64110.11.14.67.61.64
STL (7 yrs)17202.98401332217408.03121511353017417373141617081431.1916.90.73.88.22.14


 Izzy는 2003년과 2006년 플레이오프를 제외하고 상당히 Durable했으며, 2004년의 커리어하이 시즌 이후에도 3년 연속 최소 32세이브 이상, 59게임 이상을 출장했다. 2006년 성적이 커리어 라인보다 유난히 안좋은 이유는, 이 해 8월부터 그가 부상을 숨기고 정상이 아닌 구위로 던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시즌을 9월 초에 접고 마무리 자리를 루키 Adam Wainwright에게 넘겼는데, 마지막 한 달간 Izzy의 성적은 1승 4패 4세이브 3블론, 9.2이닝 14피안타 8실점 (3피홈런)으로 뭔가 구위가 정상이 아님을 짐작케했다. 아쉽게도 2006년 포스트시즌을 뛰지 못하기는 했지만, 이 시즌에 Izzy가 반지를 가져가는 것에 불공평함을 느꼈을 팬들은 아무도 없다. 2005년 NLCS 이후 Izzy는 포스트시즌에서 뛴 기록이 없으며, 포스트시즌 통산 23경기 11세이브 26.2이닝 23K 평균자책 2.36으로 커리어를 마무리했다.


2007시즌이 끝나고, 지난 수년간 든든하게 뒷문을 지켜준 Isringhausen의 팀 옵션은 당연히 실행되었는데, 이는 양측 모두에게 재앙이었다. 2008시즌은 Elite Closer로써 쌓아온 Izzy의 명성에 먹칠을 하는 시즌이었다. 한때 95마일을 쉽게 찍던 포심 구속은 평균 91마일대로 떨어진 지 오래였고, 들쭉날쭉한 제구는 2008시즌 급격히 안좋아졌다. 4월 25일 Astros전에서 2:0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Carlos Lee에게 역전 쓰리런을 허용한 것을 제외하면 시즌 초반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5월 전까지 13경기 1승 2패 9세이브, 12이닝 3볼넷). 그러나 우타자들 상대로 한때 몸쪽 패스트볼 승부를 즐기던 Izzy는 패스트볼이 맞아나가면서 우타자 상대 피안타율이 무려 .327에 이르게 되었고, 이로 인해 몸쪽 패스트볼을 사실상 못던지게 되자 볼넷이 급격하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8월 16일 Reds전을 끝으로 Izzy는 시즌을 접었고, 이것이 결국 Cardinals 유니폼을 입고 그의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Photo Credit to Spokeo



Cardinals와의 마지막 시즌 에 보여준 기량 저하가 너무 급격했기에, 나이 37세 시즌을 맞이하는 한 물 간 우완투수에게 어떤 팀도 새로운 둥지를 제공하지 않았다. 은퇴를 고려하던 Izzy에게 Rays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750K짜리 마이너리그 딜을 제안했다. Izzy는 한 달 만에 Rays 불펜의 일원으로 데뷔했는데, 잘 던지다가 6월 중순에 오른쪽 팔꿈치의 통증을 호소하며 DL에 올랐다. 세번째 TJS 선고였다. 


그를 아무도 클로저 취급하지 않던 2011년, Izzy는 Mets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고 익숙한 Mets의 플로리다 스프링 캠프에 입소한다. 아무도 나이 38세에 갓 TJS를 받고 돌아온 투수에게 뭘 기대할 지 몰라했으나, 친정팀 불펜에 돌아온 Izzy는 구속이 줄었을 뿐 여전히 효과적인 피칭을 해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해 7월, Mets 클로저는 "불펜에 두기 아까운 레이싱카" 라던 Izzy였다. 자신의 첫 세이브를 거두었던 팀에서 (Mets에서 1세이브 기록 후 트레이드) 자신의 마지막 세이브를 거두게 된 것이다. Izzy를 위해 Jason Bay는 자신의 등번호 44번을 기꺼이 내주었다.

"I've seen a lot more than I expected at any time. The ball is coming out of his hand great. He still has the Izzy curveball, and he's added a nice little cutter and changeup. I couldn't be more pleased. If Izzy can come in and continue to do exactly what he's doing right now, he is a major part of this.

-Dan Warthen on Izzy, Mets Pitching Coach (2011)


TLR이 A's 시절 Dennis Eckersley를 시작으로 "1이닝 클로저" 라는 개념을 본격적으로 정착시켰다는 사실은 야구팬들 사이에서 보편적으로 알려진 사실인데, 조금 더 깊이 들어가보면 TLR은 "클로저" 라는 개념의 창시보다 "불펜"의 역할을 재조명/재정립한 감독이었다. Dave Duncan과 TLR은 전반적으로 투수의 평가 기준과 야구 이념이 일치했기에 오랜 시간 붙어다니면서 어느 정도 동화되었는데, 그 사이에 끝까지 서로 의견을 좁힐 수 없었던 부분은 Duncan이 선발 투수들을 더 중시하고 TLR이 불펜을 더 중시했다는 점이다. 


서로의 의견차를 존중했던 이들은 암묵적 분업으로 충돌을 줄였다. 선발투수들에 관련된 일이면 TLR이 Duncan의 의견에 많이 의지했으며, 불펜 투수들의 운용에 대해서는 TLR 본인이 조금 더 목소리를 크게 냈었다. TLR에게 Closer 란 25인 로스터에서 유일하게 "제 몫을 할 경우 팀이 100% 이기게 해주는 선수"였고, 그랬기에 그는 유능한 클로저에 욕심을 냈었다. TLR은 Izzy를 "배짱과 Attitude와 Stuff를 모두 갖춘 Real-Deal Closer" 로 평가했으며, 이는 클로저 자리에 큰 의미를 두는 TLR의 입에서 나온 대단한 칭찬이다.



장난스러운 Izzy는 불펜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유지하는 선수였다. Izzy, Tavarez, Ray King.



총평 - 긴장감을 즐겼던 Real-deal Closer

마무리라는 보직은 그 자리에 올라가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훨씬 힘든 자리이며, 개인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팀의 Development Stage 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팀 사정이 열악하면 Kevin Gregg 같은 투수도 마무리를 할 수 있으며, 기존 클로저가 견고하다면 Rafael Soriano 같은 투수도 셋업맨일 뿐인 것이다. 올 시즌 Edward Mujica, 혹은 커리어 후반기의 Brad Lidge 등의 예에서 볼 수 있듯 짧은 이닝을 소화하는 마무리 자리는 확실히 믿을만한 구질 하나만 있어도 One-pitch pitcher로 살아남는 게 가능한 자리이다. (비록 롱런은 못할지라도), 


강속구를 뿌리는 싱싱한 젊은 어깨들이 무지하게 많아지고 있는 추세에 힘입어, 현대 야구에서의 25인 로스터 관리에서 점차 마무리 투수는 "자체보강"하기 쉬운 보직이 되어가고 있다. 구단 컨트롤 하에 있는 젊은 투수들에게 1~2년 불펜 경험을 쌓게 한 후 마무리로 돌려버리는 패턴이 점차 증가함에 따라 Trevor Hoffman이나 Mariano Rivera 처럼 한 팀에서 5년, 10년씩 마무리로 뛰는 선수들은 요새 점차 보기 힘들어졌고, Cardinals 역시 이러한 트렌드에 뒤쳐지지 않고 있다.  


1996시즌 (TLR 부임) 이후 역대 Cardinal 클로저


1996~1997 - Dennis Eckersley

1998 - Jeff Brantley / Jose Acevedo

1999 - Ricky Bottalico

2000 - Dave Veres

2001 - Dave Veres / Steve Kline 

2002~2007 - Jason Isringhausen

2008 - Jason Isringhausen / Chris Perez

2009~2010 - Ryan Franklin

2011 - Fernando Salas

2012 - Jason Motte

2013 - Edward Mujica



Izzy의 등번호가 44번인 이유는?



점차 늘어나고 있는 클로저 자리의 유동성을 생각해봤을 때, 거의 7년간 Cardinals 마무리 자리를 맡아준 Izzy 같은 케이스는 한동안 보기 힘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2013 시즌만 봐도 풀타임 마무리 2년을 채 못채운 Motte이 부상으로 시즌을 날린 사이 생전 클로저 역할을 해본 적도 없던 Mujica가 리그 내에서 가장 안정적인 마무리로 잠깐의 명성을 누렸고, 이후에는 Rosie가 클로저 자리를 맡아주었다. 2014시즌 마무리 역시 Rosie로 낙점되있지만, 2015년에는 다른 얼굴이 클로저 역할을 맡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 않으면 주인장님을 비롯해 이 블로그의 많은 "Rosie를 Rotation으로!"를 외치시던 분들이 거품을 무실지도...)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인 2008시즌을 제외하고 Izzy는 안정적인 편이었으며 (필자는 Ryan Franklin에게 이런 안정감을 느껴본 적이 없다) 전통적인 "마무리" 라는 개념에 정말 잘 어울리는 투수였다. 그는 타석에서 패스트볼을 기다리는 타자에게 그냥 패스트볼을 냅다 꽂아버리는 배짱이 있었으며, 주자가 나간다고 해서 흔들리지 않았다 (특히 Izzy는 많은 클로저들이 그렇듯이 주자 견제라던가 수비 측면에서 약점을 노출했는데, 그가 Cards 유니폼을 입고 뛴 기간 동안은 내-외야에 골드 글러버들을 숱하게 깔아놓고 공을 던졌던 터라 큰 문제는 없었다). 전날 경기를 본인 손으로 직접 망치고도 다음 날 아무렇지도 않았다는 듯 껌을 짝짝 씹으면서 마운드로 올라가는 그의 "뻔뻔함"(?) 은 그를 효과적인 클로저로 롱런하도록 만들어주었다.


음료수를 담아놓은 아이스박스에 바퀴를 달아서 막내 투수에게 배달을 시키자는 것도 Izzy의 아이디어였다. (사진은 당시 "막내"였으나 이후 선수협 대표로 성장하는 Kyle McClellan)


비록 Mets 시절에는 혈기를 참지 못하고 망나니짓을 하고 다닌 적도 있으나 Cardinals 시절의 그는 Bullpen에서 무궁무진한 소재의 "소싯적 얘기"를 하는 것으로 투수들 사이에서 "재밌는 형"으로 인기가 많았다. 특히 마운드 위에서의 두둑한 배짱은 동료들에게 신뢰를 주었으며, 불펜 투수로써의 마음가짐에 있어서 다른 선수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아 코치들도 좋아했다. 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Izzy가 세이브 상황에서 오는 긴장감을 즐길 줄 아는, 타고난 클로저 멘탈리티를 보유한 투수였다는 점이다.


"You do have to be a little bit of an adrenaline junkie. It's what makes it fun. I get nervous a little bit, but you put that to good use. Even that little bit of fear you channel to your advantage. It makes you focus a little better."


-Jason Isringhausen, on closing 9th inning


Izzy는 Generation K의 체면을 살린 유일한 투수이다. 그는 44라운더로 지명되었다가 순식간에 Generation K의 일원이 되었고, 이들 중 가장 혹사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오래 버틴 잡초같은 투수였다. 3차례의 TJS와 정말 다양한 종류의 부상들이 (결핵, 흉부골절, 자해) 그의 커리어를 위협했으나, 자신의 커리어를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재생시켰고, 이후 성공적인 FA 계약을 통해 고향 연고인 컨텐더 팀에 안착, 이후 오랜 기간 Elite Closer로 뛰면서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경험했다. 커리어 막판에는 베테랑 투수 답게 Angels에서 Jordan Walden, Mets에서 Bobby Parnell 등 어린 클로저들에게 마인드셋에 관해서 조언을 아끼지 않았으며, Mets로 돌아와서 통산 300세이브를 딱 채운 뒤 클로저 자리에서 미련을 내려놓았다. 이듬해인 2012년 Angels에서 그는 커리어 마지막 시즌을 보냈는데, 7월말까지 3승 4홀드에 평균자책 2점대를 유지했으며 (마지막 두 달간 많이 맞았으나), 총 50경기 42이닝을 던지며 삼진 31개를 잡았다. 만 39세 투수의 3번째 TJS 이후 2번째 시즌 치고 훌륭했다고 하면, 팬심일까?


그의 커리어에는 돌아보면 꽤나 많은 시련과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그 순간 순간의 위기들을 꾸역꾸역 잘 넘기고 결국은 리그 내에서 가장 풍성한 역사를 자랑하는 팀에서 프랜차이즈 세이브 리더로 남아 은퇴했으니, 성공한 야구인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부록: Cardinals 역사에서 Izzy 의 위엄


Career Saves (우측은 이닝)

1.Jason Isringhausen217408.0
2.Lee Smith160266.2
3.Todd Worrell129425.2
4.Bruce Sutter127396.2
5.Ryan Franklin84312.1

Single Season Saves

RankPlayerSavesYear
1.Jason Isringhausen472004
 Lee Smith471991
3.Bruce Sutter451984
4.Lee Smith431992
 Lee Smith431993
6.Jason Motte422012
7.Jason Isringhausen392005

Games Finished

1.Jason Isringhausen332408.0
2.Todd Worrell232425.2
3.Lee Smith209266.2
4.Bruce Sutter203396.2
5.Lindy McDaniel188884.2





Did you know...

  • Izzy는 2013년 2월, 고향인 Brighton 근처의 Southern Illinois University (SIU) 피칭코치직을 수락했다. 이 팀의 감독 Tony Stoecklin은 Izzy가 노하우를 전수하는 교수법이 좋다면서 코치로써 커리어를 쌓을 수 있을 것이라 낙관했는데, 한번 두고 보도록 하자.
  • Izzy는 어머니가 자기를 임신했을 때 임신 7개월까지 동네 소프트볼 팀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면서, 그것 때문에 자기가 이렇게 망나니 기질이 생긴 것 같다는 진담 반 농담 반의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 Izzy의 등번호가 44번은 그가 드래프트에서 44라운드에 뽑혔던 것을 상징한다. 
  • 2009년 Rays에서 뛸 당시, Izzy는 5월 25일 Indians 전에서 대기록 수립에 동참한다. Rays가 8회까지 10:2로 앞서던 이 경기는 9회 Ryan Garko가 만루홈런을 치면서 10:8까지 점수가 좁혀졌다. 당시 High-leverage 상황에서 나오는 릴리버가 아니던 Izzy는 Grant Balfour가 무너져버리자 급히 불을 끄기 위해 등판했는데, 무사 1루에서 3연속 볼넷으로 1점을 더 내주더니 Victor Martinez에게 2타점 적시타를 맞고 경기를 자기 손으로 끝내버렸다. 10점차 리드를 7회까지 유지한 후 뒤집힌 몇 안되는 경기를 직접 뒤집은 것이다. Izzy는 그 경기를 제외하면 단 한 번도 Rays 유니폼을 입고 실점한 적이 없다.



  by Doovy




Posted by Doovy+
:

좀 늦었네요. 사실 가장 중요한 인터뷰 중 하나인 Gary LaRocque의 인터뷰를 아직 확보하질 못했습니다. 아무리 뒤져도 없네요. 좀 기다렸다 합쳐서 같이 올릴 생각이었는데, WWU 끝난지 벌써 3일이 지난지라 더 미루긴 좀 그렇지요.

추후 확보되는대로 LaRocque의 팜 관련 인터뷰 부분만 따로 포스팅하겠습니다.

쓸데없이 양이 많습니다. Mo 인터뷰와 그 밖에 눈이 가시는 선수들만 쓱쓱 읽으셔도 충분하실 것 같아요.


John Mozeliak

Chris Carpenter의 추후 롤에 대해: 프런트에 합류한다. 그가 바라던 대로 1-2년간 프런트 오피스의 여러 역할에 대해 경험할 수 있는 커리큘럼을 구상중이다. 스카우팅 업무도 겪어 볼 기회를 가질 것. 올 봄 팀 내 젊은 스카우트들을 위해 준비된 program에 등록될 것이며, 스카우팅에 대해 많은 걸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정확히 프런트 내에서 어떤 일을 하게 될지에 대해선 다음주나 그 다음주 쯤 결정될 것 같다. 난 오랜기간 Carp를 알아왔고, 그의 통찰력은 분명 큰 가치를 지닐 것이라 생각한다. 중요한건 우리가 그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느냐 아닐까.

유일하게 남은 Descalso와의 계약에 대해: 딜은 전혀 근접하지 않았다. 서로간의 큰 격차가 계속 유지중이다. (1999년 이래로 없었던) arbitration hearing까지 가게 될 지도 모르겠다.

(Goold는 이에 대해 단순히 금액의 차이 뿐 아니라 클럽과 DD측이 선수의 입지에 대해 견해차이가 커 보인다며 아마도 올해가 마지막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단 추측을 던지더군요. 뭐 이미 많은 분들이 그렇게 생각하시고 계십니다만.)

Oscar Taveras에 대해: 지난 주 세인트루이스에 도착해 재활 중이다. 아주 좋아 보인다. 이미 꽤 강도 높은 웨이트 트레이닝도 하고 있다. 피지컬적인 관점에서 보면 감히 the best shape of his life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의료진도 어떤 setback도 없다고 보고해왔다. 스캠 전 까지 준비 될 것이며, 거의 100%에 가깝게 회복될 것이라 확신한다.

좀 지켜볼 여유가 좀 생긴건가?: 항상 스스로에게 되뇌어야 할 것 중 하나가 바로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로스터에 Adams와 Craig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 팀에 유연함을 제공하고 있기도 하고.

Taveras가 개막 로스터에 들 확률은 있나?: 물론이다. 그 확률이 반드시 크다고 말할 순 없겠지만 말이다. 클럽은 무엇이 그에게 최적의 옵션인지 (스캠에서) 찾아내야 한다. 빅리그에서 15번의 타석에 서는 것과 AAA에서 45번 타석에 서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그에게 도움이 될 것인가? 그의 나이와 현재 그의 위치를 고려할 때, 내 생각에 '발전'이 정말 중요하다고 본다.

(결국 빅리그 벤치에 멍하니 앉아 제한된 기회를 받는 것 보다 AAA서 주전으로 뛰며 발전할 시간을 가지는게 더 나아 보인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거죠.)

물론 그럼에도, 우린 클럽이 앞으로 어떻게 구성되는지 지켜봐야 할 필요성도 있다. Taveras를 빅리그에서 좀 더 확실히 써먹을 길이 있을 것인지, 현 시점에선 알 수 없다. 3월 중순 쯤 되면, 우린 그 답을 알 수 있을 것이다.

Taveras의 중견수 플랜은 지속되는가?: Bourjos를 영입했기에 CF로 뛸 확률은 낮아졌다. Taveras는 코너외야에 가장 적합한 선수이다. 물론 난 1년 전 그를 중견수로 뛰게하는 안의 지지자였다. 하지만 상황은 살짝 바뀌었다.

(완전히 부정하지 않는 걸로 봐서 아주 접은 것은 또 아닌 것 같습니다, 당연하지만.)

Taveras와 2001년 Pujols의 데뷔 시점을 비교해보면?: Pujols가 올라왔을땐, 누구도 그가 빅리그 로스터에 들꺼라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그가 훌륭한 재능이라는건 우리도 알고 있었지만, 그정도로 대단할 것이라곤 생각치 못했으니까. Taveras는 부상으로 늦춰진 것 뿐, 그에 대한 기대감은 Pujols 때보다 훨씬 크다.

Craig은 건강한가?: 아직 그를 보진 못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리포트들은 모두 긍정적이다. 걱정 없다. 100%로 스캠에 들어설 것이다. 

Craig의 홈런수가 작년 크게 줄어들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꼭 홈런만이 파워의 조건은 아니지 않나. Craig은 여전히 gap power를 보여주었다. 걱정하지 않는다. 우리팀은 작년 팀홈런 순위에서 하위권을 차지했지만 득점 부분에선 상위권에 속했다. 낮은 홈런이 높은 득점으로 상쇄될 수 있다면 매주 그렇게 하겠다. Mcarp와 함께 둘이 비슷한 성적을 내년에도 올려주며 꾸준한 출루와 득점을 올리는데 공헌해준다면 행복할 것이다.

리드오프는 누군가?: 내가 라인업을 짜는 건 아니지만, 올해도 Mcarp를 리드오프로 고정시키고 싶다. 리드오프로서 Mcarp의 OBP는 매력적이기 때문. 물론 Bourjos가 빠르긴 하지만, 빠르다는 것이 Mcarp나 다른 이들만큼 높은 OBP를 보장해주진 않는다. 지난시즌 우리 타선 성공의 레시피는 Mcarp가 1번 자리에서 꾸준히 출루함으로서 시작된 것 아니겠는가. Bourjos는 하위타선에 어울리는 타자다. 하위타선 또한 Bourjos가 제공할 수 있는 스피드가 필요하다. 

Mcarp의 3루 이동에 대해: 그가 3루로 이동한다고 더 많은 홈런을 목표로 삼을 필요는 전혀 없다.

Mcarp 등의 연장계약에 대해: 임박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스캠기간 내 딜이 이뤄질 가능성은 물론 존재한다.

Peralta의 계약에 대해: 여러 트레이드 루머들이 팀원들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걱정했기에, 되도록 빨리 움직여야만 했다. (여러모로 시끄러웠던) 법률적, 도덕적 판단에 대한 건 내 권한 밖의 일이다. 모두가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에 대해선 물론 이해한다. 한번의 실수였다 믿고 있으며, 모두가 그로부터 move on할 수 있었으면 한다.

Peralta의 타순은?: 그가 주로 들어서던 6-7번이나, 우리의 사정상 필요한 2번이나, 둘 모두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난 그가 상위타선 역할도 충분히 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우리가 밸런스를 어떻게 잡아가느냐, 스캠에서 어떤 상황이 펼쳐지고 자리잡아지느냐에 달려있다. 2번이건 4-5-6번이건, 우리에겐 (각 타순을 소화할 수 있는) 후보들이 많이 있다. 무엇보다 Peralta의 좌완상대 생산력은 팀에 아주 중요한 포인트다.

Jaime Garcia는 '죽어도 선발'인가, 선발 한 자리를 두고 싸우는 '선발 후보'인가?: 좋은 질문이다. 답은, 팀에 최적의 상황을 찾는 것, 이라 할 수 있다. 물론 Jaime가 불펜으로 뛰는 모습을 상상하긴 좀 힘들겠지.

Peter Bourjos에 대해: 엄청난 재능이다. 팀내에서 가장 운동능력이 좋은 선수 중 하나 아닌가. 훌륭한 수비수이고, 메이저 전체를 통틀어 5손가락 안에 드는 준족이다. 우리는 이런 타입의 선수를 오랜기간 동안 가져보지 못했다. Bourjos와 Kolten Wong의 존재는 우리 팀이 리그에서 가장 느린 팀 중 하나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게 해줄 것이다.

Jason Motte에 대해: 인내심을 가지고, 또 영리하게 (그의 재활차도와 복귀시점을) 판단해야 한다. 아직 어떤 롤을 맡게 될지 결정되지 않았다.

Michael Wacha에 대해: 그는 로테이션의 한 축을 맡기기에 충분한 투수다.

Randal Grichuk에 대해: 파워와 스피드의 유니크한 조합을 가져다줄 선수. 물론 코너외야에 좀 더 어울리지만, 중견수로도 뛸 수 있다.

Any open needs?: 아무래도 벤치에서 한방을 제공해줄 타자 아닐까. 하지만 지금 현재로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위 Peralta 경우도 그렇고, 오프시즌 상당히 빨리 움직였는데?: 너무 길게 끌면 (쓸데없이) 혼란스러워 질 수 있었다. 오랜기간 유격수 보강을 못하고 있을 수록, 언론에선 우리가 누굴 트레이드해서 누굴 데려오게 될지 오만가지 추측들을 쏟아내기 시작했겠지. 트레이드 루머가 선수들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David Price나 Chris Sale를 트레이드로 업어오는 아이디어에 대해: 대가가 너무 비싸다. 6년간 컨트롤 가능한 3-4명의 어린 선수들을 1-2년 남은 엘리트 선수에게 쏟아부울 순 없다. 그보다는 Wacha와 Miller가 두 선수 같은 엘리트 피쳐로 발전하길 희망하고 있다.

유망주들에 대해: 2013년은 신인들이 가장 큰 임팩트를 준 해로 길이길이 남을 것 같다. 외야 유망주들은 넘쳐나고, 여기에 Craig과 Holliday까지 더하면 당분간 큰 걱정이 없다. 포수, 유격수, 그리고 내야수 포지션에서 신인들을 발굴해야 한다. 난 우리 팜 시스템이 여전히 손에 꼽히는 좋은 팜이라 생각한다. 지켜봐야 할 선수? Carson Kelly와 Seth Blair.

Cubs가 좋은 유망주들을 잔뜩 쌓아가고 있는데 걱정되는가?: 그들은 꾸준히 최상위픽을 얻고 있고, 유망주들을 비축하기 위해 계속 선수들을 트레이드 하고 있다. 글쎄, 이는 우리의 '지속 가능한 성공'과는 대조적인데... 아무튼 Cubs가 그들을 발판으로 위닝시즌을 가져가기 시작할 때, 그때부터 걱정해보겠다.

내년부터 도입되는 리플레이 판독에 대해: 개인적으로 크게 지지한다. 4만명이 넘는 팬들이 심판의 콜이 잘못된 것을 보았음에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건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이 건을 마무리하는데 큰 역할을 해준 TLR과 Torre에게 박수를 보낸다. 안그래도 그 역할을 담당할 인원을 새로 채용할지 여부에 대해 내부에서 토론중에 있다.

홈 플레이트 충돌 금지에 대해: 그게 포수던 주자던, 선수를 보호해야 하는거 아니겠나. 이기적인 이유 중 하나를 들자면, 우리는 최고의 포수를 보유하고 있고, 이 포수를 확실히 (룰에 의해) 보호할 수 있다는건 분명 좋은 일이다.


Mike Matheny

예상했던 것 보다 월드시리즈 패배의 후유증에서 벗어나는게 힘들었다.

경쟁에 대해: 선발 경쟁은 치열할 것이다. 모두가 (안주하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얻기 위해 싸워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스캠에 합류했으면 한다. 팀내 최고의 선수들(Waino, 잉여 등)도 자신의 자리보존을 위해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참가하지 않는가.

투수들이 선발로 준비해 스캠에 들어서는건 좋은 일이다. 덕분에 레퍼토리 전체를 다듬고 발전시킬 수 있을테니까. 선발이 불펜으로 전환하는 것은 불펜이 선발로 전환하는 것 보다 훨씬 쉽기도 하고.

경쟁은 중요하다. 하지만 팀은 그보다 더 중요하다. (그러니 선발경쟁서 탈락해 불펜에 짱박히더라도 불만 가지지 마라)

Rosenthal의 마무리 고정에 대해: 올해 마무리 역할을 수행하지만, 선발로 뛸 가능성을 아주 배제하진 않는다. (어느쪽이든) 그는 팀에 정말 중요한 선수다. 뒷문을 단단히 하는 건 (중요한 선수가 맡아야 할) 중요한 역할이다.

불펜에 대해: 선발 후보들이 많은 조명을 받고 있지만, 불펜투수들의 능력과 지난시즌 그들이 거둔 성적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나는 지난시즌 막판, 많은 타자들이 우리 팀 승리조를 보고싶지 않아 할꺼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시즌에도 작년처럼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선 Motte의 건강과 선발에서 탈락한 투수의 역할이 중요할 것이다.

Jaime는 다른 선발투수들과 같은 페이스로 스캠을 시작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라인업에 대해: 아직 어떤 라인업이 짜여질지, 어떻게 새로 보충된 선수들의 능력을 이용할지 예측하긴 이르다. 스캠 들어가봐야 안다.

팀의 숨은 강점 중 하나는 모든 레벨을 망라하고 서로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모난데 없이 물 흐르듯 운영되는 것이다. 우린 모든것을 긴밀히 협력해서 일한다. 무엇이 이상적인 길인지 파악하고, 또 마켓에서 어떤 선수들을 데려올 수 있는지 파악하는 것 등등.

리플레이 제도에 대해: 현재 우리가 가진 기술력으로, 한발짝 나아가기 위해 뭔가를 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는건 모두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리플레이 제도가 완벽한 시스템일까? 아닐 것이다. 하지만 옳은 방향으로 한발 나아갈 수 있는 제도임은 분명하다.


Adam Wainwright

Kershaw의 계약을 보고 나도 더 받을 수 있었다며 빡치지 않았나?: 전혀. 팀과 나 양쪽 모두 만족스런 계약이었다. 난 너무나 행복하다. 이런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다. 물론 Kershaw의 계약은 정말 입이 벌어지는 엄청난 계약이다, 의심할 여지 없이. 하지만 이곳에서 난 이미 2개의 반지를 얻었다. 좋은 기억들도 산더미 같이 쌓여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깔이 무엇인지 아는가? 빨간색이다. 나에겐 Cardinal red의 피가 흐른다. 그 어떤 다른팀의 유니폼도 입고 싶지 않다.

훈련은 시작했나?: 보통 해가 바뀌면서 throwing program을 시작하는데, 지난 시즌 내가 소화한 많은 이닝을 고려해 2주 더 늦췄다.

지난시즌 깜짝스타인 Wacha에게 받은 인상에 대해 말해달라: 사실 난 Miller가 더 인상깊었다. Miller는 15승을 거두었고, (의도적으로 한두번 건너 뛴 경우를 제외하고) 정규시즌 정해진 선발등판을 모두 소화해 냈으며, 비록 Wacha보다 소화한 총 이닝 수는 적지만, 빅리그 기록만 따지고 볼 때 Wacha보다 훨씬 많이 던졌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면 Miller는 크게 칭찬받아 마땅하나, (포스트시즌 일 때문인지) 그러지 못하고 있다. 시즌 내내 훌륭한 성적을 거둔 선수들을 두고, 우리가 잠깐 반짝한 경우에 너무 사로잡혀 있는게 아닌가, 생각도 든다.

(누가봐도 의도적으로 Miller 얘기를 꺼낸 것 같습니다. 아마도 팀의 주축으로서 자칫 자신감을 잃었을 지도 모를 Miller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함이겠지요.)

그럼 이제 진짜 Wacha에 대해 얘기해달라: 만약 작년의 기세를 그대로 이어나가, 풀 시즌동안 그대로 해줄 수 있다면, Wacha는 사이영상 수상 후보에 이름을 올릴 것이다. Wacha는 내가 본 투수들 중 가장 재능있는 투수 중 한명이지 싶다. 거의 노히터에 근접한 경기를 치룬 뒤, 그 다음경기에서 또 노히터에 근접했던 투수 아닌가. 정말 인상적이었다. 이제 (짧은 1-2달이 아닌) 풀 시즌을 소화하며 활약하는 Wacha를 보고 싶다. 그는 이미 우리에게 중요한 존재다. 그를 로테이션에서 빼기 전에 나부터 빼야될지도 모른다.

이번에도 아쉽게 탈락한 사이영 수상에 대해: 하하, 내가 Kershaw에게 밀릴지 알고 있었다.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어느 날, Kershaw가 한 경기 삐끗해 크게 무너지고, 이 경기가 내가 (그를 제치고) 사이영상을 수상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게 될꺼라고.

종종 Carp에게 내가 뒤를 받춰주겠다 말하곤 했다. (이제 내가 젊은 투수들을 이끌게 된 입장에서) 다른 투수들이 step up 해주는건 정말 환영할 일이다. 그들이 에이스로 거듭나게 된다면, 우리 팀은 정말정말정말 좋은 팀이 될 것이다. 왜냐고? 난 지금의 모습을 계속 유지할 테니까.


Yadier Molina

오프시즌은 어떤가?: 지난시즌 성가셨던 무릎 부상 때문에 평소보다 좀 더 하체훈련을 자제하며 할수 있는 한 최대한 쉬었다. 올해는 아무 부상도 없었으면 좋겠다. 좀 지루하기도 했다. 당장 경기장에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다.

Peralta의 영입에 대해 한마디 해달라: 좋은 선수다, 공수 양면에서. 팀에 도움이 될 것이다.

MVP 투표서 top3안에 들지 못해 실망하지 않았나: 전혀. MVP로 이름이 거론되서 영광이었다. Mccutchen은 훌륭한 선수고, MVP를 받을만한 자격이 있다.

Matheny가 좀더 많은 defensive shift를 예고했는데 당신의 calling에 영향을 주지 않겠는가?: 크게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 난 그저 내가 하던대로 할 뿐이다. 그건 나보다는 코치들이 수행할 역할이라 생각한다.

Freese와 Carpenter가 팀을 떠났다: 슬픈일이다. 하지만 두 선수와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을 생각이다.


Matt Holliday

오프시즌은 잘 보내고 있는가?: Rosenthal과 함께 (특별히) strength training에 매진했다. 풋볼 선수들이 주로 하는 트레이닝으로, 썰매 끌기, 타이어 뒤집기, 들쳐업고 달리기 등으로 구성된 프로그램이다. Rosenthal의 discipline과 effort level은 지켜보는 입장에서 참 뿌듯했다. 그는 최고가 되길 원한다.

PED에 대해: PED 적발자에 대한 처벌 수위는 확실히 강화되어야 한다.

그럼 PED에 극히 부정적인 이로서 Peralta의 영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Peralta의 영입전에 Mo가 먼저 연락을 해 왔다. 딱히 내 허락을 받거나 뭐 그런건 전혀 아니었다. 그저 Peralta를 영입할 생각이라 얘기하며 내 의견을 물었었다. 난 여전히 PED 사용 처벌에 대해 단호하며, 앞으로 영원히 그럴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관대하다. Peralta는 현재의 rule에 따라 징계를 받았고, 그럼 된 것이다. 디트로이트 팀 동료들도 그를 따뜻하게 맞아주지 않았던가. 그를 팀메이트로 삼게 되서 행복하다.

Bourjos의 영입과 그에 따라 좀 더 다이나믹해진 공격력에 대해: Bourjos의 능력이 어떻게 라인업에 녹아들어갈지 아직 결정된 바는 없다. 좀 다른 얘기지만, Jay의 존재를 무시해서도 안된다. Jay는 정말 좋은 선수고, 크게 과소평가 당하고 있다. 내가 볼땐 Bourjos와 Jay가 타석수를 두고 경쟁하게 될 것 같다.

어린 외야수들과 함께 훈련하게 된 것에 대해: Grichuk과 Taveras같은 어린 선수들과 함께하게 되서 정말 흥분된다. 그들이 어떻게 해 나가는지 지켜볼 것이다.

Taveras에 대해: 팀과 협약을 맺은 트레이닝 센터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같이 소화했다. 올해 꼭 빅리그에 올라와 활약하고 싶어하는 것 처럼 보이더라. 또한 작년 부상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운 것 같아 보였다, 그의 커리어에서 처음으로 겪은 시련 아니겠는가. 내 생각에, Taveras는 좀 더 성장한 것 같다.

Beltran이 나가고 리더쉽에 공백이 생기지 않겠는가?: 내가 여기 오고서나부터 줄곧 리더쉽은 내 역할 중 하나였다. 물론 Beltran은 팀 리더쉽의 큰 역할을 담당했고, Freese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Yadi, Waino, 나, 그리고 이 팀에 오래 있었던 많은 다른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기에 걱정하지 않는다.


Matt Carpenter

오프시즌에 대해 말해달라: 분가해서 마침내 내 집을 샀다. 행복하다. 보통 시즌이 끝나면 몇일 쉬고 바로 훈련에 들어서는데, 올해는 2주를 통째로 쉬었다. 쉴 시간이 필요했다. 160경기가 넘게 뛰어보기는 처음이었다.

다시 3루로 돌아가게 되는데?: 집으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작년을 제외하고 3루는 내 커리어 전체를 통틀어 내 본 포지션이었으니까. 2루수로 배우고 경험한 것에 대해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생각중이다. 이 경험이 나를 이전보다 좀 더 나은 3루수로 만들어줄 것이다. 현재 3루수 훈련 중인데, 예상했던 것 보다 더 앞서있다. 딱히 새로운 걸 배울 필요가 없지 않은가, 3루는 내 원래 포지션이었다.

2루에 있으면서 투수가 던지는 것부터 Yadi의 게임 콜링까지 쭉 지켜보면서, 전반적인 야구에 대한 이해도를 더 넓힐 수 있었다.

다음시즌에 대해: 지난시즌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잘하고 싶다. 개인적으로나 팀의 성적이나 둘 다. 3루로 돌아간다고 예전과 다른 무언가를 시도할 생각은 없다. 항상 해오던 대로 할 것이다.

타순은 어떻게 된다고 하나?: Matheny가 아직 언급해준 바 없다.


Allen Craig

발목부상에 대해: 괜찮다. 시즌종료 후 1달간 쉬며 회복을 기다렸고, 그 이후부터 재활훈련을 거쳐 현재 flexibility training, weightliftling 모두 소화중이다. 얼마 전부터 running도 시작했다. 지금 현재 상태는 아주 좋다. 스캠까지 100% 준비되는데 지장 없을 것이다.

외야수로 뛰게 되는데?: 때문에 throwing program을 좀 수정했다. arm strength를 위해 더 많은 롱토스 훈련을 하고 있다. 난 외야에서 뛰는 걸 좋아한다. 외야를 뛰어다닐 생각에 흥분된다. 사실 내가 건강하기만 하다면 어느 포지션을 뛰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Adams를 라인업에 포함시켜야 하는 문제도 있고.

Beltran과 Freese가 떠나고 새 선수들이 오면서 타선이 재편되었다, 어떨 것 같나?: 일단 (스캠을) 좀 지켜봐야 할 것이다.

지난시즌 타선은 강력했다, 비결이 있나?: 그 이유 중 하나는 타자들의 끊임없는 커뮤니케이션에 있지 않았나 싶다. 우린 계속해서 마운드에 서 있는 상대 투수에 대해 이야기하며 경기 중 adjustment를 가했으며, 함께 결과를 창출하기 위해 노력했다.


Michael Wacha

뭔가 새로 준비하고 있는게 있나?: 아니. 특별히 레퍼토리에 뭘 더하고 하진 않고 있다. 좀 더 꾸준한 location을 유지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내가 원하는 곳에 공을 던질 수 있고, 또 (성공적으로) 스피드의 변화를 꾀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은 자연스레 다 좋아질 것이다.

나에 대한 기대가 큰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거기에 너무 신경쓰진 않을 것이다. 물론 나도 나 자신에게 높은 기대를 걸고 있다. 때문에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다.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 하지만 플레이오프에서도 내가 신경썻던 것 중 하나는 바로 '너무 많은 것을 하려하지 말자' 였다. 다행히 결과가 좋았고, 올해도 같은 멘탈리티를 유지할 것이다.

선발경쟁에 대해 한마디 해달라: 분명 경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즐거울 경쟁이 될 것이다, 경쟁자들은 모두 내 팀메이트들이니까.

많은 이들이 플레이오프의 중압감에 실패한다. 그들에겐 때때로 그 무대가 너무 클테니까. 운좋게도 나에겐 Waino, Carp, Westy같은 베테랑들이 곁에 있었고, 그들과 많은 것을 두고 얘기할 수 있다는 점은 나에게 큰 도움이 되어주었다.

개인적으로 몇몇 목표들이 있다, 하지만 공개하진 않겠다. 하지만 그 목표들을 다 이룰 수 있다면, 훌륭한 시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Trevor Rosenthal

오프시즌은 계획대로 잘 보내고 있는 중인가?: Matt Holliday와 함께 훈련했다. 좀 더 근육량도 늘렸고. 공을 던지기 시작한지 이제 3주차쯤 되었는데, 증가한 근육이 딱히 flexibility나 마운드 위에서 공을 던지는데 방해가 되는 것 같진 않다.

시즌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아 바로 closer로 임명된 것에 대해: damn it. 이게 내 첫 반응이었다. 아마 이건 모를꺼다. 난 여전히 (나 스스로) 선발 경쟁을 하고 있다는걸. 농담이고 ㅋ 진지하게 말하자면, (중요한) 클로저 역할을 맡게 되어 정말 흥분된다.

작년까지 마무리였던 Motte와 불펜에 같이 앉아있게 된다: 아, Motte이 날 많이 괴롭힐꺼 같다 ㅋ

Taveras에 대해: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트레이닝에 합류했던 첫날보다 그의 몸이 크게 좋아졌다는 것이다. 정말 열심히 했다.


Shelby Miller

포스트시즌서 외면받은 것에 대해: 좀 빡치긴 했다. 하지만 미스터리가 풀리지 않은 그대로 봉인할 생각이다. 과거는 그저 과거일 뿐. 해명을 요구하지도 않았고, 앞으로 그럴 생각도 없다. 분명 이해할 수 없는 경험이었지만, 그렇다고 답을 찾기 위해 몸부림 칠 정도도 아니다. 뭐, 내가 여기서 해줄 수 있는 최고의 답변은 내가 들어가기엔 팀의 투수진이 너무 잘 돌아갔다는 것 아닐까. 선발투수진도 좋았고, 불펜에서 98mph 뿌리는 투수들이 줄줄이 나왔다. 난 그 정도로 빠른 공을 던질 수 없다. 그렇기에 아마 누군가를 그 사이에 넣는 것은 좀 힘들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럼 부상은 없었다는 말인가?: 몸상태는 충분히 좋았다. 롱토스도 문제없이 하고 있었고. 시즌때와 똑같은 상태였다. 팀이 내가 소화한 이닝을 걱정했을 수도 있을테고, 뭐, 잘 모르겠다.

중요한건, 언제까지나 예전처럼 아이같이 행동할 순 없는 노릇이란 것. 이 건(포스트시즌 제외)은 나 스스로 상당히 (성숙하게) 잘 다루었다고 생각한다.

다음시즌 목표는?: 모든것이 생각대로 흘러줄 경우 200이닝과 20승, 그리고 월드 시리즈 우승팀의 일원이 되는 것. 3가지다. 또 pitch count를 좀 더 효율적으로 이끌어 더 오랜 이닝을 책임지고 싶다. 이닝을 더 많이 먹으면 먹을수록 승리할 확률은 높아지니까. 그만큼 불펜에게도 득이되기도 하고. 마지막으로, 언젠가 제 2의 Adam Wainwright로 거듭나고 싶다.

Waino를 비롯한 클럽하우스의 베테랑들은 젊은 선수들이 최선을 다하고 모든 것을 뽑아낼 수 있도록 만들어 주고 있다. 나와 Waino는 오프시즌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았다. 

(Waino는 Wacha에게도 정기적으로 연락을 하며 트레이닝을 잘 하고 있는지 체크했다고 합니다.)

다음시즌을 위해 새로 준비중인게 있나?: 물론. 너클볼을 준비하고 있다.

진지하게 하는 말인가, 그냥 약빨고 하는 소린가?: 아니, 설마 진짜겠나 ㅋ 체중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지만 근육량을 더 늘렸다. 작년보다 더 강해졌다. 좀 더 많은 공을 던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종종 Holliday, Rosenthal과 함께 훈련했다. CCarp와도. 새 구질을 추가하진 않는다. 하지만 더 많은 groundball을 이끌어내 손쉽고 빠른 아웃카운트를 잡아내기 위해, 올 봄 sinker를 좀 더 가다듬으려 생각중이다.

트레이드 되지 않아서 기쁘다. 이곳은 내가 쭉 함께하고 싶은 팀이기 때문이다.


Carlos Martinez

오프시즌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6주간 크로스핏 등으로 core muscle strength 향상 및 체력증진에 힘썻고, 선발 로테이션에 들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훈련에 임했다. 단 하루의 offday도 가지지 않았다.

유일하게 winter ball을 뛰었는데?: 선발로서 경험을 좀 더 얻고 싶었다. 더 퀄리티 있는 타자들을 상대해보고 싶었고, 또 구질들도 테스트해보고 싶었다. 특히 changeup. 어떤 상황에서도 changeup을 염두해두고 던졌다. 앞으로 어떤 카운트에서도 changeup을 던질 수 있는 자신감을 기르고 싶다.

지난해 선발과 구원 두 역할을 다 경험했다, 어떤가?: 구원투수가 조금 더 쉬운 편이다. 선발투수는 페이스 조절을 해야 하니까. 하지만 선발로 뛰고 싶다. 그리고 올해 그 기회를 얻을 수 있길 희망한다. 매 이닝을 7-8회라 생각하며 (죽어라) 던질 것이다.

시즌 막판에 갑자기 좋아진 이유가 무엇인가?: 음, off speed pitches 구사가 좀 더 편해졌다.

앞으로의 계획은?: 마이애미로 향할 것이다. 그곳에서 스캠 집합일까지 쭉 워크아웃을 진행할 예정이다.


Jhonny Peralta

(나에대한 의문에 답하기 위해서) 올 시즌을 훌륭히 보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정말 나쁜 실수를 저질렀다. 팬들과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팀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을 증명해야만 할 것이다. 과거는 과거로 넘기려 노력할 것이며,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안좋은 기억들은 잊고자 한다.

카디널스 팀 동료들은 모두 좋은 사람들이기에, 그들 모두 나를 환영해줄 것이라 생각한다. 자신있다. 스캠까지 준비되도록,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한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정말 열심히 하고 있다. 카디널스가 다시 한번 월드시리즈 타이틀을 움켜쥐는데 도움이 되고 싶다.

카디널스가 오프시즌 유격수 자리를 보강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특히 무엇보다 오펜스를 중요시 생각할 것이란 것도. 다른 몇몇팀들에서도 오퍼가 왔지만, 이곳이 (다른 후보지들보다) 더 좋은 클럽이라 생각되었다. 그래서 이곳을 선택했다. 나는 오랜기간 카디널스를 지켜봐왔는데, 내가 함께하고 픈 클럽 중 하나였다. 훌륭한 팀이다. 그리고 챔피언이 될 수 있는 많은 기회를 갖추었고. 나 역시 (팀의 일원으로서) 챔피언이 되고 싶다.


Joe Kelly

Strasburg와 골프를 쳤는데, 내가 선발 로테이션에 들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말하니 그거 미친거 아니냐고 하더라. 그녀석 뿐 아니라 내가 아는, 나와 같이 트레이닝 하는 선수들이 모두 팀의 depth에 경이로워 한다.

다른 팀 선수들은 또 "도대체 그런 선수들은 어디서 찾아낸거야?," "이거 Cardinals 팀에선 어떻게 하고 있어?"라고 항상 묻는다. 팀의 draft / development department팀에 속한 똑똑한 이들 덕이다. 물론 약간의 운도 감안해야겠지만. 이 팀 staff들은 정말 스페셜하다.

경쟁할 준비는 되었는가?: 물론이다,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던질 것이고, 그 이후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지켜볼 것이다. 역할을 결정하는 것은 선수들의 몫이 아니니까. 오해하지 말아달라. 아무 역할이나 상관 없다는게 아니다. 최선을 다할 것이고, 음, 희망컨데 Waino의 선발 자리를 한번 뺏어보고 싶다 ㅋ

지난시즌을 통해 확실히 자신감이 생겼다. 플루크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며 다시 한번 좋은 활약을 보여줄 것이다. 

개막전 선발 로테이션 5인이 끝까지 가는 경우는 드물다. 혹 불펜으로 강등되더라도 기회는 반드시 온다. 난 작년 이와 꼭 같은 상황이었는데, 결코 좌절하지 않았고, 기회를 잡았다. 올해도 다르지 않다.


Lance Lynn

선발 경쟁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 경쟁이라. 난 선발투수다. 지금 이 media session에서 많은 사람들이 선발자리를 놓고 경쟁이 있을거라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팀은 내가 로테이션에 들 것이라 확실히 예상하고 있다. 내가 선발 한 자리를 두고 경쟁해야 된다는 말은 어디에도 없다. 난 그저 (완벽한 상태로 스캠에 들어서길) 준비할 뿐이다.

오프시즌 훈련에 대해: 집을 장기리스로 계약해서 세인트루이스에 오래 머무를 수 있었다. Chris Carpenter와 함께 훈련했다. 이미 Carp와 레퍼토리가 동일하기 때문에 특별히 새로운 구질 등을 배우진 않았다. 1년 전처럼 체중감량에 포커스를 맞추지 않고, 어떻게 하면 좀 더 강해질 수 있을까에 포커스를 맞췄다. 가능한 한 최대로 강해질 수 있다면, 나머지 것들은 알아서 따라올 것이다. 


Matt Adams

몸이 좋아보이는데?: 6-7 lbs 정도 감량했다. 무엇보다 지방을 태우고 근육으로 채워넣는데 중점을 뒀다.

팔꿈치에 대해: 괜찮다. 작년에 보호대를 해보니까 좋더라. 스윙에 방해도 되지 않았다. 올해 예방차원에서 통증이 없어도 보호대를 쭉 착용해보는 안에 대해 스탶들과 논의하고 있다.

오프시즌 훈련에 대해: 작년 겨울 (트레이닝/식단) 프로그램을 올해도 동일하게 이수하고 있다. hitting practice는 크리스마스 직전부터 1주일에 4-5차례 정도 하고 있다. 특히 좌타상대 approach를 발전시키려 훈련 중인데, 피칭머신 상대로 좌투들의 투구, 특히 slider에 쓸데없이 방망이 나가는 것을 고치려 노력중이다. 대학 좌완투수들을 상대로 좀 더 확실히 연습하고도 있다.

내년에도 shift가 자주 걸릴텐데 계획이 있나?: 딱히 그때마다 approach를 바꿀 생각은 없다. 투수가 던진 공이 어디로 오는가를 중점에 두고 쳐야지, 수비가 어떻게 바뀌는지 감안하며 계속 approach를 바꾸는건 좋지 않다.


Jason Motte

재활은 어떤가: 윈터미팅 끝나자 마자 Jupiter로 떠날 것이며, 하루이틀 뒤 throwing program을 시작하게 된다. 다른 선수들과 같은 스캠을 소화할 순 없을 것이다. day-by-day process랄까. 언제 복귀하게 될지 나도 모르겠다. 일단 경과를 쭉 지켜봐야 한다.

Waino와 Carp에게 (TJS 재활에 대해) 많은 조언을 얻었다.

경기에 출전하지 못해 힘들진 않았는가?: 그리 힘들진 않았다.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고, 재단(암환자들을 위한)활동에 많은 시간을 쏟았다. 몇년 전에 같은 질문을 했다면 그랬겠지만(분명 힘들었겠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선발투수와 구원투수의 재활과정은 명백히 다르다. (선발투수는 어느정도 경기를 치르며 감을 찾아갈 수 있지만) 구원투수는 한번 마운드에 오르면, 그걸로 100%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한 경기 소화하고 그 다음날 팀이 나를 또 필요로 할 때, 그때 역시 (제한없이) 출격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MM이 Rosenthal을 마무리로 공표하기 전에 미리 직접 연락을 해 왔다. 나 역시 동의했다. 100%가 아닌 상황에서 마무리를 맡을 순 없다고 생각했다.

2014년 이후 FA로 풀린다, 딱히 생각하고 있는거라도?: 없다.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나든, 일어나는거지.


Peter Bourjos 

올해부터 Cardinals 유니폼을 입게 되었는데?: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최근 많은 성공을 거두고 있는 팀에 합류하게 되서 정말 기뻤다. 오프시즌 접어들며 애너하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단 촉이 왔다. 트레이드될 것 같다 예상도 했었고.

트레이드 된 날 Pujols가 연락해 왔다. 카디널스에서 뛰는 것, 훌륭한 팬들 앞에서 뛰는 것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을만큼 행복하다고 말해주었다.

다음시즌 목표는?: 아직 내가 주전으로 뛸 수 있을지 확정된 것은 아니다. 만약 많은 출장시간을 받게 된다면, 40개 남짓한 도루를 기록하고 싶다. 마이너에서 1번의 50도루 시즌을 기록한 적이 있다. 여러번의 30도루 시즌도 있었고. 따라서 30-40개의 도루를 기록한다면 만족스러울 것 같다. 내 스윙에 모든게 달려 있겠지.

나는 OBP guy보단 좀 더 gap to gap guy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난 공격적인 타자다. 많은 볼넷을 얻어내는 스타일이 아니며, 그럴려고 노력하지도 않을 것이다. 볼넷을 얻어내려 끙끙거리는건 내 장점이 아니다. 마이너에서도 그러지 않았다. 하지만 하위타선에 위치하게 된다면 어느정도 approach의 변경은 필요하게 될 것 같다. 투수타석 앞에서 투수들은 좀 더 많은 볼을 던지는 점을 고려한다면 말이다.

계속되는 부상에 대해: 외야수비시 full-speed approaach를 문제삼는 사람들이 있던데, 최근의 부상들은 그와 관련된 부상이 아니었다. hamstring 부상은 유달리 쌀쌀했던 오클랜드 원정 연장 14회에 일어났던 일이며, 이후 손목부상은 HBP 때문이었다. 지난시즌 부상들은 일종의 fluke라고 생각한다. 지난시즌 부상들로 내 durability를 평가하는건 정확하지 못하다.

Jay와 출장시간을 나눠야 될 수 있다, 괜찮은가?: 난 그에 대해 열려있다. 이미 Matheny도 스캠에서 Jay와 경쟁해 이겨야 주전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해주었다. (꼭 주전이 아니더라도) 경기 후반 대수비 교체든, 번트를 위해서든 핀치러너든, 그저 어떤 식으로든 팀에 공헌하고 싶을 뿐이다.


Kolten Wong

월드시리즈 pick-off에 대해: 이후에 나 자신에게 그리 큰 영향을 미치진 않았다. 내가 견제사 당한 유일한 선수도 아니지 않나. 오래가지 않았다. 실수를 통해 확실히 배웠고, 그로부터 한발 더 나아갈 것이다. 그런 (쪼다같은) 이미지로 기억되길 바라지 않는다. 난 내가 좋은 선수라는걸 알고 있고, 분명 더 나아질 수 있는 기회도 있다.

지난시즌 부진에 대해: 스윙이 좀 길어졌었다. 난 보통 짧고 컴팩트한 스윙을 하는데... 이번 오프시즌 스윙을 좀 더 짧게 가다듬고 있다. 주어진 시간과 주전으로 출장하는 것이 (타격성적에) 도움이 되었으면 싶다.

팀은 (무려) Freese를 트레이드 시키고 기회를 주려 하고 있다: 그러한 사실이 나에게 많은 자신감을 안겨주었다. 팀이 그만큼 나를 믿는다는 증거니까. Freese의 자리를 대신한다는건 영광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동시에 내가 팀의 호의에 보답해야만 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다음시즌 목표는?: 3-40개의 도루를 기록하고 싶다.


Kevin Siegrist

마치 내가 선발투수인것 처럼, 꾸준히 내가 가진 모든 구질들을 확실히 응용하는 것이 내 발전에 더 도움이 될 것같다. 이렇게 준비하여 스캠에 돌입할 것이다. 맞다, 선발 욕심을 버리진 않았다. 물론 다음시즌 릴리버로 뛸 것이라는건 나도 잘 알고 있다.

지난시즌 특별히 피로함을 느낀 시기는 없었다. 릴리버로 자리잡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가르쳐준 Mujica와 Choate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Mark Ellis

(좀 하다보니 대부분이 입단 인터뷰와 겹치더군요, 한게 아까워서 그냥 붙입니다, 쿨럭)

팀의 pitching depth에 대해: 팀의 젊은 투수들은 카디널스에서 가장 끌리는 점이었다. NLCS에서 그들을 상대해봤다. 우완 파워피쳐들과 그밖의 어린 투수들... Wacha는 마운드 위에서 마치 Waino같았다. Joe Kelly나 Lance Lynn같은 투수들을 데리고 있는 것도 그렇다. 이들은 다른 많은 팀들에서 1-2선발을 할 수 있는 좋은 투수들이다. 이런 많은 좋은 투수들을 필요한 어디에나 위치시켜 써먹을 수 있는건 분명 행운이다. 이런 팀에 속하고 싶지 않은 이가 어디있겠나. 모두가 승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길 원한다. 그리고 좋은 투수력은 결코 슬럼프가 없다.

role에 대해: Wong과 플래툰을 이루던, Wong의 백업이던, 특별히 걱정하지 않는다. 카디널스 측은 나에게 아무런 보장도 해주지 않았다. 그리고 나 역시 그들에게 그저 이곳에서 플레이할 수 있다면 족하다고 했다.

누구든 단순한 멘토가 되려하진 않지만, 그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베테랑 플레이어의 몫이다.

팀이 이기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은 뭐든 하고자 한다. 월드시리즈 트로피를 들어 올리고 싶다. 그때문에 이곳에 왔다. 여태 월드시리즈를 경험해본적도 없고, 따라서 반지를 얻을 기회도 없었다. 그 꿈을 위해, 이곳이 최선의 선택이라 생각했다.

다른 포지션에서 뛸 수 있겠나?: 어디든 뛸 수 있다. 유격수와 3루로 뛰어본 경험도 있다. 뭐든 다 할 수 있다.

카디널스와 다저스의 차이점에 대해 말해달라: 마치 낮과 밤처럼 완전히 다르다. 물론 카디널스 클럽하우스를 아직 겪어본건 아니지만, personalities가 완전히 다르달까. 어느쪽이든 부정적인 의미는 아니다. Dodgers쪽은, 뭐랄까, 화려하달까. 클럽하우스 내부에 들어가보면 모두가 즐겁다. 클럽하우스 밖에서는, 누군가는 건방지거나, 거만하거나 뭐 그렇겠지만. 반대로 카디널스는 모두가 겸손히, 묵묵히 자기 일만 하는 분위기로 알고 있다. 물론 카디널스도 클럽하우스 내부에서 모두가 즐거운건 마찬가지고.


Jon Jay

Bourjos와의 경쟁에 대해: 이전에도 있던(vs Rasmus) 일이다. 이 모든 것들은 챔피언이 되기 위해 거치는 과정 아니겠는가. 이해한다. 경쟁할 준비를 갖추고 스캠에 들어설 것이다.

부진했던 2013년에 대해: 노력은 예전과 똑같이 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다. 후반기엔 내 커리어 성적과 비슷한 성적을 찍었지만, 전반기와 플옵땐 그렇지 못했다. 좋지 않았던 수비력에 대해서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외야 3포지션 모두 소화하게 될 지도(백업으로 뛸 지도) 모른다는 것, 인지하고 있다. 이것도 예전에 해봤던 일이다.


Daniel Descalso

계약에 대해 묻지 말아달라. WWU에서 언급하지 않을 생각이다. Mo와 나의 에이전트 간의 문제다.

오프시즌에 대해: 결혼한 것을 제외하면 똑같다. 여전히 내야 3 포지션 수비 훈련 중이며, 아직 팀에서 딱히 내 롤이 무엇이라 규정해주진 않았다. 팀은 Peralta에게 큰 계약을 안겨주었고, 좋은 베테랑인 Mark Ellis도 영입하였다. 내가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어디에 어울릴지 한번 지켜보자.


Shane Robinson

치열한 외야 경쟁에 대해: 너무 깊게 생각하려 하지 않으려 한다. 또다른 외야수가(Bourjos) 합류하면서 좀 더 복잡해지긴 했다. 하지만 이러한 경쟁에 이미 익숙하며, 이번 스캠도 예년들과 전혀 다르지 않다.


Oscar Taveras

발목은 좀 어떤가: 괜찮다. 100%라고 생각된다. running과 hitting 모두 소화중이다. 꾸준히 재활 및 훈련중이다. 올 겨울 1달에 최소 1번은 세인트루이스에 들러 부상부위를 점검받고 있다. 스캠까지 확실히 준비될 것이다.

Holliday, Rosenthal, Miller의 워크아웃에 간간히 꼇는데, Holliday로부터 많은 피드백을 받았다.

지난해는 꽤 좌절스러웠었다. 당시 난 꽤 잘 하고 있었을 때니까. 더군다나 지난시즌 부상당하기 전 팀으로부터 콜업될 것이란 말을 들었었다.


Stephen Piscotty

얘도 fangraphs 인터뷰 중복이 너무 많아서 몇개만 골라냈습니다.

올해 안에 빅리그에 승격할 거라는 말들이 많다, 알고 있나?: 난 트위터도 안하고 이런저런 뉴스들도 잘 읽지 않는다. 하지만 몇번 들어서 알고 있다. 영광으로 생각한다. 신경쓰고 싶진 않다. 내가 컨트롤 할 수 없는 일이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할 뿐이다.

선수들의 발전과정에서 Cardinals의 역할에 대해 말해달라: 드랩 전에 내 에이전트가 모든 팀 리스트를 쫙 깔아놓고 그들이 어떻게 어린 선수들을 발전시키는지 설명해주었다. 당시 카디널스는 최상단에 위치해있었다. 1년 반 동안 이곳에서 뛴 이후, 난 그것이 분명한 사실이라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카디널스는 각 레벨마다 선수들을 잘 대해주는 좋은 코치들을 데리고 있다. 그리고 내 생각엔 (이 모든게) 드래프트서 어떤 선수들을 뽑는지서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카디널스는 (실력도 실력이지만) high character guy들을 찾고 있다. 내 주위의 많은 팀동료들이 실제로 그랬고. 그들은 좋은 팀 동료이자 좋은 친구들이며, 또 좋은 사람들이다. 다시 한번, 내 생각엔, 여기서부터 모든게 시작되는것 같다.

AFL서 잘했는데, 기대가 좀 더 커졌나?: 사실 첫주는 좋지 않았다. 11타수 1안타, 6삼진 정도 됬던 걸로 기억한다. 3주 정도 쉰지라 감이 없었다. 하지만 곧 전환점을 돌았고, 운 좋게 괜찮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좋은 투수들을 많이 상대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Stanford에선 3루가 주 포지션이었다. RF로도 뛰어본적 있나?: 아니, LF, 1B, 3B, 그리고 투수로 뛰었다. RF는 처음이다. LF로 뛰는 것과는 앵글도 달라서 적응과정이 좀 필요했다. 고맙게도 팀이 작년 스캠 전에 미리 통보해줘서 새 glove를 비롯해 준비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통보를 받고 바로 아버지와 공원에서 연습을 시작했고. 지난시즌은 성공적인 포지션 전환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럼 말 나온김에, Mcarp처럼 여러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 빅리그 승격에 도움이 될꺼라 생각하나?: 당연하다. 많은 좋은 선수들이 여러 포지션을 소화하고 있지 않나. 아울러 Jermaine Curtis와 caravan때 함께 했는데, winter league서 포수를 제외하고 전 포지션에서 다 뛰어봤다고 하더라. 이처럼 여러 포지션을 소화하며 경쟁력을 높이려는 훌륭한 선수들이 많다.

작년 A레벨부터 빠르게 많은 레벨을 지나쳐왔고, AFL도 뛰었다. 어느 레벨로 올라설때 투수들의 수준차이가 가장 컸나?: A+에서 AA로 올라갈때였다. A+엔 좋은 stuff를 갖춘 선수들이 많다. 예를들어 좋은 fastball과 slider 콤보 같은. 하지만 AA에 들어서면, stuff는 물론, command까지 좋은 선수들이 많다. mental game의 역할도 중요해진다. 투수들이 타자를 어떻게 요리해낼지 알고 있기 때문에, approach에 실수가 있어서는 안된다. 힘든 적응과정이었다.

같이 뛰었던 투수들 중에서 조만간 빅리그 투수진에 기여할 것 같은 선수가 있나?: Tim Cooney. 제구가 정말 좋다. Cooney가 선발로 등판하는 날은 외야에서 뛰는 것이 즐겁다.

빅리그/AAA 외야는 포화상태다. 이러한 상황이 선의의 경쟁을 만들어낼까?: 내 생각이 그거다. 좋은, 선의의 경쟁. 또 그것 역시 이 시스템이 훌륭한 이유 중 하나겠지. 경쟁은 많은 선수들을 쉴새없이 움직여 스스로 최고가 되어야 한다 다짐하도록 만들 것이고, 나 역시 장기적으로 더 좋은 선수로 발전시킬 것이다.


Randal Grichuk

트레이드 되고 나서 처음으로 받은 메세지들 중엔 Holliday가 팀에 오게 된 것을 축하한단 메세지가 있었다.

bat speed와 quick hands, 이 두가지를 바탕으로 하는 power가 나의 최대 강점이다. AA에 올라와 가장 큰 숙제는 plate discipline이었고, 여전히 이에 중점을 맞춰 훈련중이다.

카디널스는 트레이드 이후 나에게 중견수로 뛰게 될 것이라 통보해왔다. 코너로 많이 뛰었지만, 중견수 포지션 소화 가능하다. 물론 일단 스캠에서 내가 (풀타임 중견수로서) 어떤 모습일지 봐야겠지만.


Greg Garcia

좀 더 꾸준해 지는것이 최우선 목표다. 나 자신을 믿고, 중간중간 mechanic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겠다.

스캠에 1루 제외한 내야 3자리용 글러브 모두 들고 갈 것이다. 유격수, 2루수, 3루수 3 포지션에서 뛸 것으로 예상한다.

hitting approach의 원칙은 "find a good pitch and hit it as hard as I can."


Keith Butler

25인 로스터에 들고 싶다. 그렇지 못한다면 Memphis에서 다시 빅리그 콜업되기 위해 팀이 원하는 무엇이든 하며 때를 기다릴 것이다.

알고보니 몇몇 팀들이 2루에서 내가 어떤 공을 던질지 훔쳤다고 한다. 좀 더 공을 잘 숨겨나올 수 있게 연습중이다.



+

Non-Roster Invitees 


PITCHERS (7): Jose Almarante, Tim Cooney(6위), Sam Gaviglio(15위), Marco Gonzales(5위), Zach Petrick(13위), Lee Stoppelman(17위), Jordan Swagerty.

CATCHERS (5): Ed Easley, Carson Kelly(10위), Casey Rasmus, Cody Stanley, Travis Tartamella.

INFIELDERS (4): Luis Mateo, Scott Moore, Xavier Scruggs, Patrick Wisdom(HM).

OUTFIELDERS (2): Stephen Piscotty(4위), James Ramsey(9위).


그젠가 그 전인가 발표된 NRI 명단입니다. 괄호 안은 저희 블로그 선정 유망주 랭킹이구요.

포수야 공 받아줄 사람이 필요하니 어중이 떠중이 다 불러모으는건데, 그럼에도 Kelly를 빅리그 켐프에 부른건 그만큼 기대가 크다는 의미겠지요.

지난 2년간 NRI 명단을 보면, 포수와 몇몇 저니맨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빅리그 데뷔를 치뤘거나, 데뷔가 코앞인 선수들입니다. 고로 이번 NRI들도 포수와 두 저니맨을 제외하고, 또 두어녀석 빼면 전부 AA 이상 레벨에 안착해 있는 만큼, 올해나 내년 데뷔 확률이 높은 선수들이라 할 수 있겠지요. 이들의 스캠 활약, 한번 눈여겨보시길 바랍니다.

아, Swagerty는 자기 입으로 아주 건강하다고 얘기하더군요, 이놈이 turn around해주면 참 든든한 set up, 또는 closer로 써먹을 수 있을텐데 말이죠. 지켜봐야겠습니다.



STEP camp

더불어 올해로 4년째 몇몇 선수들을 추려 정해진 마이너 캠프 소집일(3월 초)보다 일찍 훈련을 시작(2월 말)하며 특별히 관리하는데요. 그 명단도 공개되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올해부터 Spring Training Early Program, STEP camp라는 쓸데없이 거창한 이름으로 명명되었더군요. 역시 괄호 안은 저희 블로그 유망주 랭킹입니다. Wick, Popkins, Sosa를 제외한 나머지 HM+쩌리모듬 멤버들 모두 STEP camp 명단에 포함되었네요.


PITCHERS (10): Seth Blair(쩌리), Kurt Heyer(쩌리), Cory Jones(HM), Rob Kaminsky(8위), Dixon Llorens(쩌리), Mike Mayers(쩌리), Alex Reyes(7위), Sam Tuivailala(쩌리), Boone Whiting(쩌리), Logan Billbrough.

CATCHERS (2): Steve Bean, Jesus Montero

INFIELDERS (7): Jonathan Rodriguez(쩌리), Juan Herrera, Oscar Mercado(HM), Alex Mejia, Greg Miclat, Breyvic Valera(HM), Jacob Wilson(18위)

OUTFIELDERS (5): Anthony Garcia(쩌리), C.J. McElroy, Kenny Peoples-Walls(16위), Tommy Pham, Charlie Tilson(14위)


살짝 뜬금없이 Logan Billbrough의 이름이 낀 것과 Colin Walsh와 Starlin Rodriguez의 이름이 없는 건 조금 의외입니다. 마이너 rule 5로 주워온 Greg Miclat도 껴 있는거 보면 우리의 유격수 depth가 얼마나 처참한지 알 수 있지요...

Posted by skip55
:

by Doovy

 4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딱 4건의 Major Transaction이 있었던 작년 오프시즌에 이어 올 오프 시즌도 다들 잘 아시다시피 Peralta 계약과 Freese-Bourjos 트레이드, Mark Ellis 영입 이후로 사실상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올 시즌은 아주 확고하고도 공공연한 팀의 최대 겨울방학과제인 "유격수 보강" 이 있었기에 필자는 솔직히 약간 설레는 마음으로 오프시즌을 맞이했는데, 너무 일찍 모든 일들이 정리가 되버린 탓에 조금 김이 샌다이에...올 해도 블로그의 간판 이벤트인 유망주 리스트에 이어서, 오프시즌의 지루함을 같이 견뎌보자는 마음에...추억팔이용 TLR ERA 시리즈를 다시 꺼내들어 작년에 미처 다루지 못한 선수들을 돌아보고자 한다.

첫 주인공은 MV3의 일원이자, 여태 필자가 본 최고의 3루수, Scott Rolen이다. 제2의 Mike Schmidt 라는 부담스러운 평을 듣고서 데뷔한 Rolen은 이후 공수에서 리그 최고의 3루수로 거듭났으며, 길고 풍성한 Cardinals 역사에서 1960년대 Ken Boyer 이후 역대 최고 3루수로 꼽히는 데 아무도 이견을 달지 못할 것이다. 

Scott Rolen

3rd Baseman

DOB: 1975년 4월 4일 

Birth: Evansville, Indiana 

Time with Cardinals:  2002-2007

Draft and Minors

고등학교 농구팀 코치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Rolen은 농구와 야구를 병행했으며, 두 스포츠 모두에서 대단한 두각을 나타냈다. 특히 Rolen의 농구 선수로써의 자질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는데, 9학년때 고등학교를 입학하자마자 주전 포인트가드로 뛰게 되었음은 물론, 키가 더 큰 이후에는 (6'4, 193cm) 포워드/스윙맨 역할까지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는 선수였다. 졸업학년 당시 Rolen은 Indiana 주에서 뽑는 Mr. Basketball 투표에서 3위에 올랐는데, Rolen이 나온 고등학교가 인구수 1만명을 넘지 못하는 "깡촌'의 작은 시골 공립학교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는 대단한 업적이다. 

1992년 겨울, Rolen의 Senior 농구시즌이 끝나고 나서 Kentucky, Oklahoma State, Georgia 등 BIG 10 디비전 내의 "농구 좀 한다는" 대학교들이 앞다퉈 Rolen에게 장학금 패키지를 던지기 시작했다. 6피트 4인치의 건장한 프레임과 탁월한 운동신경, 그리고 작전에 대한 출중한 이해도와 우직한 Work Ethic으로 뭉친 Rolen은 NBA 레벨까지는 아니더라도 NCAA에서는 충분히 군침을 흘릴만한 포인트가드였다. 

  


마지막 야구시즌을 앞둔 1993년 초, University of Alabama 와 University of Georgia에서 제시한 농구 장학금을 앞두고 저울질하던 (Rolen의 회고에 따르면 아마 Alabama로 갔을 것이라고 한다) Rolen을 말리는 이가 두 명 있었다. 그 중 하나는 학교의 야구팀 코치였던 Terry Gobert였다. Gobert 코치는 수년간 팀의 에이스 투수이자 유격수였던 Rolen을 12학년 때 갑자기 3루수로 옮겼는데, 그 이유는 상대적으로 공을 더 많이 처리해야하는 유격수에 비해 3루가 어깨/팔꿈치 피로와 부담이 덜하다는 것이었다. 이 작은 시골 고등학교의 야구팀 코치의 현안은 이후 Rolen의 커리어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다른 하나는 Rolen의 재능을 알아본 Phillies의 스카우트 Scott Trcka*였다. Trcka는 Rolen을 1라운더 감으로 구단에 천거했으나, Phillies 측에서는 이미 농구 장학금을 받아놓고 저울질하고 있던 Rolen이 궁극적으로 야구를 선택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게다가 Rolen의 부모님이 둘 다 (교육을 우선시하는) 학교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었다는 점 때문에 Phillies 측에서는 Rolen이 어련히 농구 장학금을 선택하고 대학교로 진학할 것이라 믿었었다. 그러나 Trcka는 Rolen의 부모님과 Phillies 프론트 양측을 진득하게 설득해 Rolen의 마음을 돌렸다.

Rolen이 궁극적으로 농구 대신 야구를 택한 것에는 25만달러라는 큰 액수의 사이닝 보너스가 큰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결정적인 이유 두 가지가 있었다. 한 가지는 Rolen의 야구에 대한 열정, 그리고 다른 하나는 냉정하게 봤을 때 Rolen같은 6피트 4인치 정도의 언더사이즈 백인 포워드/가드가 웬만한 재능이 아니고서는 NBA의 벽을 두드리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농구를 택할 경우 Rolen의 농구 커리어는 NCAA 레벨 이상은 보장할 수 없으나, 야구를 택하면 확실히 프로에 갈 수 있는 재능이다 - 라는 것이 Trcka의 셀링 포인트였다. 

Rolen이 참가했던 1993년 드래프트***는 유난히 대어가 많았다. Alex Rodriguez, Torii Hunter, Trot Nixon으로 시작해서 여기에 골든 스파이크 수상자이자 이후 당대 최고 수준의 먹튀로 거듭나는 Darren Dreifort 까지...이 정도의 Draft Pool에서 깡촌 Indiana 출신의 고졸 3루수**가 "고졸"이라는 딱지를 넘어서서 1라운더가 된다는 것은 어지간해서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 당시 고졸 출신들 중 Rolen은 10번째로 드래프트 되었는데, Rolen보다 먼저 뽑힌 고졸 선수들 중 ML에 제대로 정착한 선수들은 Torii Hunter, A-Rod, 그리고 훗날 동료가 되는 Chris Carpenter 뿐이었다. Trcka의 꾸준한 설득에 힘입어 결국 Rolen은 1993년 드래프트 2라운드 전체 46번으로 Phillies에게 지명되었는데, 이 대어들이 넘쳐나는 드래프트에서 전체 46번으로 지명되었다는 것은 당시 Rolen의 재능이 확실히 인정받았음을 의미한다.

입단 이후 Rolen은 마이너리그를 한 단계 한 단계 차근차근 씹어먹고 올라왔다. 1994시즌, 프로에서 맞이한 첫 풀시즌에서 그는 .294/.363/.462의 뛰어난 타격 성적은 물론이고, 코치들의 조언을 놀랄만큼 빨리 흡수하며 순식간에 Top Prospect로 도약했다. 1995년 A+ 레벨의 Clearwater에서 전반기를 맞이한 그는 조금도 주눅들지 않고 OPS .880을 찍더니 후반기에 AA로 승격되었다. 로우레벨 마이너를 Raw Talent 하나로 빠르게 씹어먹고 올라오는 이 고졸 야수 유망주에 필리스는 흥분했다.

당시 91년 드래프트 출신이자 Phillies의 차기 3루수로 Rolen보다 먼저 치고 올라오고 있었던 Rob Grable이란 3루수는 AAA로 승격된 뒤 갑자기 좌익수로 포지션을 변경해야 했다. Rolen의 빠른 성장세를 본 Phillies가 3루를 비워놓고 싶었던 것이다. 1994시즌 직후 BA 선정 유망주 랭킹 Top 100 중 91위였던 Rolen의 순위는 1995시즌이 끝난 이후에는 27위로 올라가 있었다. 고졸 3루수가 루키리그부터 시작해 AAA까지 올라오는데 3년도 걸리지 않았으니, 당시 Phillies 팜의 실정과 Rolen의 확실한 툴을 동시에 보여주는 예라고 하겠다. 

Scott Rolen's Minor League Track Record

YearAgeTmLevGPAABRH2B3BHRRBISBCSBBSOBAOBPSLGOPS
199318MartinsvilleRk25988082550012341015.313.429.375.804
199419SpartanburgA138580513831513451472685590.294.363.462.825
199520ClearwaterA+6628323845691321039403746.290.392.487.880
199520ReadingAA20867616223031510714.289.353.447.800
199621ReadingAA612742304483222942833432.361.445.5911.037
199621Scranton/Wilkes-BarreAAA451971682346170219452828.274.376.411.786

 * Trcka 이 양반은 Phillies 구단에서 오랫동안 일한 베테랑 스카우트로, Scott Rolen에 이어 Brett Myers 등을 발굴한 바 있다. 작년부터 Phillies 스카우팅 부서에서 Mid-West Supervisor로 재고용되어 일하고 있다.

**고졸 3루수가 빅 리그에서 3루수로 살아남는다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은 일이다. 3루는 대체로 Retention Rate (어설픈 번역으로 포지션 유지률? 정도로 해두자) 이 낮은 포지션인데, 1989-2008년까지 20년간의 드래프트에서 Top 100 안에 뽑혔던 고졸 3루수들 중 47%만이 3루수로 빅 리그에 안착했으며, 대졸 3루수의 경우에도 Retention Rate은 60%가 채 되지를 않는다. 많은 경우에 그들은 1루수나 좌익수 등으로 포지션을 바꿔야했다 (Alex Gordon, Ryan Braun, Jason Giambi, Mark Teixeira 등.) Scott Rolen처럼 고졸 3루수로 드래프트되어 3루수로 데뷔하고 은퇴할 때까지 3루수로 뛰는 경우는, Rolen 정도의 클래스가 아니더라고 해도 대단히 드물다고 할 수 있다.

***참고로 이 드래프트에서도 Cardinals는 Low Ceiling/High Floor 대학 출신 우완 Alan Benes를 뽑아갔다. 강산이 정말 두 번 변했을까?



1997-2001: Phillies 의 꿈과 희망

1996년 7월 31일, AAA레벨의 Scranton에서 뛰던 Rolen은 당장 Philadelphia로 내려오라는 "The Call"을 받는다. Cardinals와의 경기가 우천으로 취소되고 다음 날 더블헤더가 잡힌 것이었다. Rolen은 기쁨에 겨워 급히 부모님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하필 이 때 Rolen의 부모님은 여름방학을 맞아 멀리 Florida의 아들네 (Rolen의 형) 집에 가 있었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Rolen의 어머니 Linda Rolen은 비행기 공포증이 있어서 못 타신다고 한다. 콜업 소식을 들은 Rolen의 부모님은 아들의 데뷔전을 보기 위해 Sarasota 부터 Philadelphia까지 1100마일의 거리를 운전을 해서 올라갔다. Rolen의 부모님은 밤새도록 달렸으나 결국 당신 아들 Scottie가 주전 3루수이자 6번타자로 데뷔전을 가지는 모습을 보지는 못했으며, 4회말 Cardinals의 투수 Donovan Osborne을 상대로 2루타를 때려내며 첫 안타를 신고하는 모습도 달리는 차 안에서 라디오 중계로 들으며 눈물을 훔쳤다고 한다. (다행히 이 날 경기가 더블헤더라서 이들이 도착한 이후 2차전은 직접 관람했다고 한다.)

이후 Rolen은 꾸준히 기회를 받으면서 더 이상 AAA로 내려가지 않았다. 데뷔 한 지 1달이 가 넘은 1996년 9월 7일, Rolen은 Cubs 투수 Steve Trachsel 의 공에 맞아 팔을 부러지는 바람에 시즌이 끝나버렸는데, 공교롭게도 Rolen이 다친 타석은 "신인 자격 유지"의 마지노선인 130번째 At Bat 이었다. 즉, 다치지 않았더라면 Rolen은 131번째 타석을 갖게 되면서 신인 자격을 상실, 이듬해 Rookie of the Year 투표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게 되었을 것이다. (만약 그랬더라면 아마도 Matt Morris가 신인상을 타지 않았을까 하는 게 필자의 사족이다.)

이후 Rolen의 Phillies 생활은 탄탄대로였다. 1997시즌 새로 부임한 젊은 감독 Terry Francona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스프링 트레이닝부터 Rolen을 주전 3루수로 낙점했다 (사실 기존 3루수 Zeile이 Orioles로 트레이드 됬을 때부터 이 자리는 Rolen의 것이었다). 개막전에서는 6번타자였으나 한 달 후 이미 Rolen은 클린업에 들어가 있었다. 1997시즌 그는 21홈런 92타점 wRC+ 121, OPS .857의 화려한 성적을 거둔 뒤 1위표 14장을 모두 획득하며 만장일치 신인상을 거머쥐었다. 이제 갓 루키시즌을 마친 이 젊은 3루수에게 Phillies는 4년간 10M짜리 계약을 안겨주며 미래를 약속했고, Rolen 역시 그에 상응하는 디스카운트로 훈훈한 계약을 성사시켰다.

그저 장밋빛으로만 보이는 Rolen의 Phillies 시절 성적 

YearAgeTmGPAABRH2B3BHRRBISBCSBBSOBAOBPSLGOPSOPS+
199621PHI37146130103370418021327.254.322.400.72290
199722PHI15665756193159353219216676138.283.377.469.846121
199823PHI1607116011201744543111014793141.290.391.532.923139
199924PHI11249742174113281267712267114.268.368.525.893120
200025PHI128541483881443262689815199.298.370.551.920129
200126PHI151653554961603912510716574127.289.378.498.876127
200227PHI10043837552972141766525268.259.358.472.830123
PHI (7 yrs)84436433125533880207191505597125426714.282.373.504.877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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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len의 Phillies 시절은 언뜻보면 그저 장밋빛이었다. 2년차이던 1998시즌에는 31홈런 110타점으로 팀의 간판 타자가 되었음은 물론이고, 커리어 첫 골드 글러브 수상 및 MVP 득표에 성공했다. 1999시즌에는 등 부상으로 50경기를 결장하는 Down Year를 보내는 와중에도 26개의 홈런과 .893의 OPS를 유지했다. 이듬해인 2000시즌에는 다시 골드 글러브를 수상했으며, 2001년에는 다시 100타점 고지를 밟으며 MVP 투표에도 처음으로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이미 2001시즌 무렵, 훈훈하기만 해보였던 Rolen과 Phillies의 사이의 갈등은 이미 상당히 곪아있었는데, 이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2001시즌: Phillies/Bowa 와의 갈등

Phillies에서의 Scott Rolen은 팀의 현재이자 미래, 그 자체였다. 그는 타석에서 뛰어난 클러치 능력을 발휘했으며, 굉장히 빠른 배트스피드로 많은 라인드라이브 타구들을 양산해냈다. 수비에서는 역대 3루수들 중 가히 최고라고 할만한 Range와 어깨, 그리고 수년간의 농구를 통해 몸에 배어버린 뛰어난 Pivot 능력과 위치선정 센스가 있었다. 특히 그는 오른쪽 방향 움직임이 워낙 빠르고 기민해서 유격수쪽으로 남들보다 더 치우쳐서 수비해도 다른 3루수들보다 더 많은 그라운드를 커버했고, 타구에 대한 빠른 리액션과 정확한 First Step에 관해서 Rolen은 타의추종을 불허했다. 클럽하우스에서 리더 역할이 익숙했던 Rolen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Phillies의 리더로 부상했다. 90년대 후반 Phillies에게 Scott Rolen이란 Braves에게 Chipper Jones가 가지는 의미, 혹은 Mets에게 David Wright가 가지는 의미와 비슷했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Phillies 와 Rolen에게 Bobby Cox와 같은 감독이 없었다는 점이다.

"Defensively, he is a shortstop playing third base. He compares favorably to Mike Schmidt at a similar stage in development, and gets to balls that Brooks Robinson never dreamed of reaching. "

-Scouting Report 2002, on Rolen's Defense 

Rolen에게 첫 감독이었던 Terry Francona는 젊고 유능했지만 감독 경험이 일천했고, Phillies처럼 문제가 많은 팀을 맡아서 단기간에 성적을 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1999시즌에 허접한 투수진에도 불구하고 (팀 FIP 5.05) 타선에 새 얼굴들이 등장하며 무려 77승이나 해냈던 Francona는 결국 2000시즌 Fluke였던 선수들이 제 기량을 찾고 주축 멤버들이 부상에 신음한 끝에 97패를 안고 해고되었다. 오프시즌에 제대로 된 마운드 보강은 하지도 않고 쓸데없이 기대치만 높아져있는 구단 수뇌부는 시즌 중반에 Curt Schilling, Rico Brogna 등을 트레이드 해버리면서 시즌을 포기했다. Rolen은 97패라고 적힌 팀 성적표보다 시즌을 이렇게 포기해버리고 키 플레이어들을 팔아버리는 Phillies 의 운영방침이 실망스러웠다. 

새로 부임한 Larry Bowa는 Scott Rolen와 "물과 기름" 처럼 다른 성격의 사람이었기에 처음부터 팀의 리더인 Rolen과의 관계가 껄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Bowa는 야구가 없으면 못사는 천생 야구인인데다가 야구 역사, 야구 기본기에 대해 상당히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고, 야구 말고도 다른 스포츠에서 월등했던 Rolen에게 야구는 생계 수단의 일환일 뿐, 야구를 하지 않을 때는 농구나 골프로 소일했다. 대도시 Philadelphia에서 선수생활을 오래한 Bowa는 다혈질에다가 거침없는 성격이었고, Mid-West 출신의 Rolen은 화려함을 자제하는 행동들이 몸에 배어있었다.

실수나 패배에 대해 굉장히 야박하게 질책했던 Bowa는 선수단을 전혀 장악하지 못했는데, 전반적인 선수들 사이에서의 여론은 "Bowa는 경기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기본기에 빠삭하나, 내가 감독이라면 저렇게 선수들을 대하지 않았을 것" 이라는 비판적인 의견이 대다수였다. 한 Phillies 선수는 인터뷰에서 Bowa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He can manage. He knows baseball. But if we win, it will be just to spite him. Everybody hates him that much." 이는 선수들의 큰 형같은 스타일로 인기가 많았으나 정작 성적을 못내던 전관 Terry Francona와 정반대의 모습이다.

2001시즌, Bowa는 시즌 초반 중심타선의 Abreu와 Rolen이 부진하자 "These guys are killing us" 라며 비난했고, 이에 Rolen도 지지 않고 대들었다. 둘은 6월 Tampa 원정에서 말다툼을 벌였고, 이후 Phillies가 홈스탠드를 위해 필라델피아로 돌아왔을 때 관중들은 Rolen에게 야유를 퍼부었다. Phillies 팬들은 팀이 잘 나갈때나 못 나갈때나 야유에 있어서는 어디 가서 꿀리지 않는 관중들 아니던가. 이후 시즌 내내 Rolen의 타율이 떨어질 때마다 Phillies 팬들은 서슴없이 야유를 던졌다.

2001년 8월, Larry Bowa와의 갈등이 있는 와중에 프론트 오피스의 임원급이자 단장 Ed Wade의 Senior 보좌관이었단 Dallas Green이 지역 라디오에 나가서 "Rolen은 그저 그런(So-so) 선수이며, 특히 그의 성격 (Personality) 때문에 스타가 되기 힘들 것" 이라며 친Bowa 발언을 서슴없이 던졌다. 이후 필라델피아 지역 언론의 Beat writer들이 Dallas Green에게 발언을 확인해달라고 하자, Green은 "내가 말한 그대로" 라며 시큰둥하게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Rolen을 이를 듣고 분개했으며, 곧장 Dodgers와의 시리즈에서 11타수 8안타 1홈런으로 맹타를 친 뒤 인터뷰에서 Green의 발언을 빗대 ""I thought I had a so-so series" 라고 받아쳤다.

재미있는 것은 선수시절 Bowa 본인도 Rolen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Phillies에서 데뷔 후 12년간 주전 유격수로 뛰었던 Bowa는 1980년 자기 팀 경기가 시작하기 전에 본인의 라디오 쇼를 직접 방송하며 대놓고 청취자들에게 감독과 동료 선수들은 물론 팬들까지도 Worst Fans in Baseball이라며 질책했었던 바 있다. 이 당시 Bowa가 그렇게도 까대던 Phillies 감독은 다름아닌 Dallas Green이었으며, Bowa를 필두로 한 Phillies 팀은 Green에 대한 불만와 반발심으로 똘똘 뭉쳐 결국 1980년 WS에서 Royals를 꺾고 우승한 바 있다. 이 당시 Dallas Green은 선수단에게 Bowa와 흡사한 이유로 민심을 잃고 있었는데, 21년 후 각자 다른 위치에서 같은 역사를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 내에서 탑 5에 드는 빅 마켓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Montreal Expos와 크게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팀을 운영하는 모습에 Rolen은 "이 팀이 과연 우승할 생각이 있는 것인가" 하는 류의 발언을 공석에서 하기 시작했다. 2001시즌이 끝난 후, Phillies는 Rolen과의 장기계약을 1순위 과제로 삼고 오프시즌에 들어갔으나 Rolen이 11월에 Phillies의 재계약 협상을 일방적으로 중단하면서 양측의 인연은 슬슬 막바지로 치달았다. Rolen은 2002년 1월에 Phillies와 8.6M짜리 1년 계약을 맺었으며, 2002시즌이 끝나고 나면 FA가 될 것을 선언했다. 그는 또한 "Phillies와 재계약 할 가능성도 있긴 하지만, 그들이 정말 우승에 관심이 있는지 행동으로 보여줘야할 것" 이라고 말했다. 자린고비 구단으로 보여서 대외 이미지가 나빠질까 우려한 Phillies측에서는 급히 "Rolen에게 우리가 10년간 140M짜리 계약을 오퍼했으나 Rolen이 싫다고 한 것임" 이라며 보도 자료를 내고 그들이 간판 스타를 잡기 위해 얼마를 투자할 "뻔" 했는지를 과시했다. Rolen은 이에 "오퍼는 감사하지만 This is about winning, not money" 라면서 틀어진 마음을 굽히지 않았다.

Phillies 리빌딩의 타이밍도 Rolen에게는 큰 걸림돌이었다. Rolen이 팀 중심에 서게된 1998시즌부터 필리스에는 젊은 야수들이 하나 둘 등장하기 시작했다. Cubs에서 데려온 Doug Glanville은 마치 보급형 Kenny Lofton 처럼 쏠쏠한 리드오프로 활약해주었고, Astros에서 데려온 Bobby Abreu는 1998년을 기점으로 주전으로 발탁, 그의 길고 긴 커리어를 시작했다Rolen과 팜에서 같이 올라온 포수 Mike Lieberthal과 Rico Brogna는 모두 리그에서 어느 정도 인정을 받은 선수들이었으며, 대학야구에서 받을 상은 다 받고 올라온 "Pat the Bat" Burrell 까지 승격되 상당히 괜찮은 타선을 구축했었다. 반면 Curt Schilling을 제외하고는 도저히 믿을 구석이 없던 마운드는 답이 없었다. 1997년 Phillies의 팀 ERA는 4.87 에 달했고 (타고투저 시대였다는 점을 감안해도), 이후 2000시즌까지 이 수치는 4.64 --> 4.93 --> 4.79 로 전혀 개선이 되질 않았다. (1997-2001년까지 5년간 Phillies 평균 팀 ERA는 4.68로, 같은 기간 더 안 좋았던 NL 팀은 Pre-Humider 시대의 Rockies와 Cubs 뿐이었다)

즉시전력감 투수라고는 팜을 갓 졸업하고 올라온 Randy Wolf가 고작인 상황에서, Phillies는 투수 보강에 돈을 썼어야 했다. 그러나 당시 Phillies는 2004시즌 Citizens Bank Park 개장을 앞두고 모든 전력 보강을 2004년에 포커스를 맞춘 상황에서 하고 있었다. 아직 어린 Bobby Abreu와 장기 계약을 맺고, 팜에서 자란 자체생산 포수 Mike Lieberthal과 연장계약을 맺은 것, 1998년 드래프트 전체 1번 Pat Burrell과 1996년 2라운더였던 Jimmy Rollins, 1995년 2라운더였던 Marlon Anderson을 차세대 코어 플레이어로 낙점하고 키운 것 모두 2004년을 염두에 두고 진행한 움직임이었다. 자체 생산한 Burrell, Rollins, Marlon Anderson 등이 ML레벨에 무사히 안착한다면 Scott Rolen과 함께 리그에서 가장 경쟁력있고 젊은 내야진을 꾸릴 수 있었을 것이며, 이들은 Abreu-Glanville-Lieberthal 등과 함께 상당히 짜임새있는 타선을 구축한다...적어도 이것이 Phillies 단장 Ed Wade가 그린 "2004년 새 구장 개장에 맞춘 Phillies 리빌딩 프로젝트" 의 청사진이었다. 1996년에 루키 시즌을 치른 Rolen으로써는 데뷔 9년차가 되는 2004년에 비로소 팀이 포스트시즌에 도전할 것이라는 명제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Rolen이 저렇게 대놓고 FA가 될 것을 선언하고, 팀의 장기 계약 오퍼를 거절하자 Phillies는 갑자기 급해졌고, Boston에서 열린 윈터미팅에서 Rolen 세일에 들어갔다. 그러나 FA 전 마지막 시즌을 보내고 있던 선수에게 유망주를 마구 퍼줄 팀들은 없었다.


스프링 트레이닝 첫 날, 무성한 트레이드 소문과 구단과의 공개적인 관계 악화 때문에 Rolen은 지역 언론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인터뷰 대상이었다. Phillies 측의 10년간 140M 계약 오퍼를 거절했다는 소문을 확인해주길 바라자, Rolen은 "I am an idiot (for not accepting the offer)" 라면서, Phillies 구단 운영 방침을 무려 45분동안 비난했다. Rolen의 의도는 (1) 사실 140M이라는 거액을 거절하는 바보가 어디 있겠는가, (2) 그러나 나에게는 돈보다 승리가 중요하다 (3) 나에게 돈을 퍼주느라 다른 선수들을 영입하지 못한다면 이 팀은 절대 이길 수가 없다 는 식의, 상당히 설득력있고 공감가는 말이었다. 비슷한 예로, Oakland의 Jason Giambi 역시 A's에 잔류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되면 팀의 넉넉치 못한 주머니 사정상 Competitive 한 로스터를 유지할 수가 없게 되고, 그래서 Giambi는 Yankees를 선택한 바 있지 않던가.  

 이 일이 있고 며칠 후, Larry Bowa는 Rolen에게 다가가 쓴 소리를 했는데, 하필 이 대화가 언론에게 노출된 상황에서 벌어졌다. Bowa는 말다툼 이후 Ed Wade 당시 필라델피아 단장에게 찾아가 Rolen을 트레이드 해버리라고 말했는데, 이는 요즘같애선 참으로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이 이후 Rolen의 트레이드는 사실상 시간문제였는데, 그에 개의치않고 Rolen은 잔부상 없이 거의 모든 경기를 출장하고 전반기에만 17홈런을 쏘아올리며 첫 올스타에 선정, 자기 할 일을 했다. 

"I don't think I can put a time frame on falling in love with St. Louis. I fell in love with St. Louis probably when I was 7 years old and Mom and Dad brought us here to a ballgame and I got to watch Tommy Herr and Ozzie Smith and Willie McGee and everybody like that.''

-Scott Rolen, on his trade to St. Louis-

2002년: Play Like a Cardinal

2002시즌 Cardinals는 에이스 Darryl Kile의 갑작스런 죽음에 흔들리지 않고 탄탄한 전력을 앞세워 순항하고 있었다. 트레이드 데드라인을 앞둔 7월 28일까지만 해도 Cardinals는 58승 44패 승률 .569로 NL Central 1위를 달리고 있었으며, 2위 Reds와는 5게임, 3위 Astros와는 6게임 차이였다. 트레이드를 통해 전력 보강을 꾀한다면 오히려 투수 쪽 보강이 절실했다. 당시 Woody Williams가 7월 초 부상을 당하면서 결장이 불가피했고, Kile의 비보 이후 Jason Simontacchi라는 그다지 검증안된 신인에게 지나치게 많은 이닝이 돌아가고 있던 참이었다. Jocketty가 7월 19일에 Chuck Finley를 수혈해오면서 (왠지 이 Move는 2009년 Jake Westbrook 영입과 굉장히 흡사하다) Cardinals의 트레이드 데드라인은 그렇게 넘어갈 듯 보였다. 

그러나 Jocketty는 많은 이들의 예상을 뒤엎고 기존 3루수 Polanco에 뜬금 노히터로 주가에 거품이 껴있던 좌완투수 Bud Smith, 그리고 베테랑 릴리버 Mike Timlin을 사용한 패키지로 Phillies와의 인연이 다한 Scott Rolen을 데려오는 강수를 둔다. Jocketty 특유의 뚝심과 배짱, 그리고 적절한 공격성이 돋보이는 이 트레이드 소식에 Marlins 원정을 가고 있던 Cardinals 선수단은 비행기 안에서 환호성을 질렀다고 한다. 이쯤에서 주인장님의 Walt Jocketty 시리즈에 나온 코멘트를 잠깐 돌이켜보도록 하자.

"이 시즌 Jocketty는 정말 올인의 끝을 보여 주는 것 같다. Kile에게 월드시리즈 우승을 헌정하고 싶었던 것일까? Jocketty는 트레이드 마감시한을 앞두고 Scott Rolen을 영입하는 승부수를 던졌는데, 이게 또 훌륭한 트레이드가 되었다. Rolen은 공수에서 눈부신 활약을 하여 남은 두 달 동안 무려 3.3 WAR을 쌓았다. 한편, Phillies의 입장에서는 Bud Smith가 폭망해 버렸으나, Polanco가 상당히 우수한 3루수로 성장하여 그럭저럭 선방한 트레이드가 되었다. (이후 5년간 Rolen은 25 WAR, Polanco는 19 WAR을 기록하였다. 여기에 둘의 연봉 차이까지 감안하면 Phillies도 밑진 것이 별로 없을 정도이다.)

-FreeRedbird, on Scott Rolen trade

Rolen이 Cardinals 유니폼을 입은 후 첫 40타수에서 고작 6안타에 그치고 Cardinals가 7연패에 빠지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으나, 이는 그저 "동트기 전 고요함" 에 불과했다. Rolen은 이후 후반기 남은 48경기에서 홈런 14개에 40타점을 쏘아올리며 31홈런 110타점으로 시즌을 마무리했고, 개인 통산 4번째 골드 글러브 수상과 첫 실버 슬러거 수상에 성공했다. 조금 터질만 하면 DL에 오르면서 감질만 나게 하는 J.D. Drew 에게 조금 지쳐가던 이 팀은 Rolen의 합류로 파괴력이 어마어마한 중심타선을 갖게 되었다. Rolen 영입이 확정된 7월말 이후 Cardinals가 올린 성적은 39승 21패에 승률 .658로, 이 기간 동안 Cardinals보다 좋은 성적을 올린 팀은 없었다. 

공격에서 Rolen은 Phillies에서의 마지막 2년간 잦은 등 부상으로 배트 스피드가 나이에 비해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고, 이 때문에 몸쪽 패스트볼 승부에 약한 모습을 노출한 바 있었다. 그러나 St. Louis 로 이적한 후 플레이트에서 살짝 떨어져서 스윙 각도를 바꾸었는데, 교정 후 다시 배트 스피드를 회복하면서 좌우 가리지않고 강한 타구들을 양산해내기 시작했다. 또한 인조잔디를 깔아놓은 Veterans Stadium에서 천연잔디 구장인 Busch로 넘어온 것은 3루에서 High-intensity 플레이들을 많이 만들어내는 Rolen의 커리어에 대단히 긍정적인 변화였다.

기존 3루수 Polanco도 당시 수비가 나쁜 선수가 아니었으나, Rolen의 3루 수비는 차원이 달랐다. 당시 유격수 Renteria는 Rolen의 수비에 대해 "The guy can cover third AND shortstop" 이라며 혀를 내둘렀는데, Rolen의 Range는 Renteria가 2루 쪽으로 조금 더 붙어서 수비할 수 있도록 만들었고, Up-the-middle 식의 2-유간 빠지는 타구들을 Renteria가 더 쉽게 걷어내도록 해주었다. Renteria 덕에 2루수 Vina 역시 1루 쪽으로 조금 더 붙어서 수비할 수 있었다. Rolen 한 명의 가세로 내야 전체가 혜택을 받는 이러한 모습은 Terry Gopert 코치가 가르치던 Jasper High School 때와 다를 바가 없었다.

2002시즌, Rolen은 그토록 기다리던 포스트시즌에 올라갔고, 디비전 시리즈 1차전에서 곧 HOF에 올라가실 D-Backs의 장신 좌완투수를 상대로 투런 홈런을 치며 기세등등했다. 그리고 2차전, 1:0로 앞선 7회말 2사 1,2루에서 D-Backs의 Junior Spivey가 3루 쪽으로 땅볼을 굴렸다. 하필 풀 카운트에서 나온 인플레이 타구였기에 2루 주자 Alex Cintron은 진작에 스타트를 끊은 상태였다. 타구 처리중이었던 Rolen에게 Cintron이 충돌했고, 이 과정에서 Rolen은 왼쪽 어깨가 나가버리고 만다. Rolen 왼쪽 어깨의 수난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순간이다.

이렇게 Rolen의 첫 포스트시즌은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끝나버렸다. Rolen이 없이 NLCS로 올라간 Cardinals는 할 수 없이 유틸리티맨 Miguel Cairo를 3루에 투입하거나 때론 Pujols를 3루에 넣으면서 버텼고, 특히 Cairo는 NLCS 1차전에서 투런 홈런 포함 3타점을 치는 대활약을 포함해 이 시리즈에서 13타수 5안타를 기록했다. 그러나 결국 2002시즌 Cardinals는 결국 NLCS에서 Giants에게 무릎을 꿇는데, 이 시리즈의 허망함에 대해서는 예전에도 자주 이야기한 바가 있으니 참도록 하겠다.

""I told him once, my happiest day would be if there's a game where 27 groundballs get to third base. The way he plays that position, the way he runs the bases, the way he takes his at-bats, he is a complete player.''

-  Tony La Russa, on Rolen's defensive prowess



오프시즌에 Jocketty는 Rolen에게 8년간 90M의 대형 계약을 안겨주었는데, 이는 여전히 Reasonable Spending으로 기억되는 무브이다. Rolen는 계약 첫 해가 28세 시즌이었고, 이미 리그 최고 3루수로 등극한 선수의 28~35세 시즌을 AAV 12M도 안되는 가격에 쓸 수 있다면 요즘 시세에서는 염가봉사였겠지만, 12년 전 당시 총 페이롤 75M선을 지키고 있던 Cardinals 입장에서 이는 크게 지갑을 연 것이었다. Rolen이 유년기부터 Cardinals/Reds 팬으로 자랐다는 사실은 익히 잘 알려져있는데, 때문에 Rolen은 어느 정도 검증된 전력을 구축한 컨텐더 팀이었던 Cardinals 잔류에 이미 마음이 기운 상태였고, NTC와 5M짜리 사이닝 보너스까지 포함된 이 계약을 따낸 뒤 흡족해했다. 트레이드로 데려온 뒤 장기 계약으로 묶어놓는 전형적인 Jocketty 식 영입으로, McGwire-Edmonds-Rolen의 뒤를 훗날 Holliday가 잇게 된다.

 "We are very excited that we were able to work out a new contract with Scott. In the short time he has been in St. Louis, our fans have really come to appreciate the talent that he brings to our club. Scott is a proven run producer and one of the best defensive players in the game. He will be a great cornerstone for our organization for years to come."

-Walt Jocketty, on signing long term contract with Rolen


2004년: MV3

등 부상에서 회복되어 건강하게 시즌을 시작한 Rolen은 정규시즌 초반부터 정규시즌 막판 부상자 명단에 오를 때까지 거의 계속 리그 타점 선두를 유지했으며, 전반기를 무려 .330 18홈런 80타점이라는 말도 안되는 기록으로 마치며 올스타전 최다 득표의 영예를 누렸다. Rolen은 9월초에 왼쪽 종아리에 타박상을 입어서 전력질주를 못하게 되는 부상을 입었는데, 워낙 2위팀과 경기차이가 많이 났기에 La Russa는 Rolen을 주저없이 쉬게 해주었다. 이미 트레이드 데드라인을 앞두고 Jocketty가 Larry Walker를 데려오는 또 한번의 강수를 두었었기에 팀 공격은 Rolen 없이도 활화산처럼 돌아갔다.

다만 전반기에 미친듯이 쌓던 타점 페이스가 부상으로 인해 뚝 떨어진 점이 아쉬운데, 이 시즌 Rolen은 만루에서 .583의 타율을 포함해 득점권 타율 리그 3위를 기록했으며, 넉넉히 140타점을 바라볼 수 있는 페이스였다. 건강하게 시즌을 마치고 타점 1위 타이틀을 놓치지 않았다면 이미 리그 내에서 소문난 Rolen의 수비를 고려했을 때 Beltre보다는 더 득표하지 않았을까?

2004년 MVP 투표 - MV3의 위용인가 Bonds의 위용인가

Voting ResultsBatting StatsPitching Stats
RankTmVote Pts1st PlaceShareWARGABRHHRRBISBBBBAOBPSLGOPS
1Barry BondsSFG407.024.091%10.6147373129135451016232.362.609.8121.422
2Adrian BeltreLAD311.06.069%9.615659810420048121753.334.388.6291.017
3Albert PujolsSTL247.01.055%8.415459213319646123584.331.415.6571.072
4Scott RolenSTL226.01.050%9.114250010915734124472.314.409.5981.007
5Jim EdmondsSTL160.00.036%7.1153498102150421118101.301.418.6431.061

2004년 Dodgers와의 NLDS에서 Rolen이 12타수 무안타로 부진하자 언론은 정규시즌 막판 입은 종아리 부상과 타격 슬럼프를 연결시켰는데, 그 때마다 Rolen은 "부상과 상관없다. 그냥 내가 못 친 것" 이라며 자책했다. Sox와의 World Series에서 Rolen이 15타수 무안타로 부진했을 때도 같은 반응이었다. Rolen은 핑계를 대는 선수가 아니었다.

2004년 NLCS는 디비전 라이벌 Astros와 7차전까지 가는 혈투를 벌였던 명승부로, Astros의 몰락으로 어느 순간 사라져버린 2000년대초 Cards-Astros 라이벌리의 최고점이라고 감히 부를 수 있는 시리즈였다. 비록 Cards 팬이었지만 이 시리즈의 포인트는 MV3를 필두로 쉬어갈 틈이 없는 정규시즌 105승짜리 타선의 위엄을 가을 본즈 Beltran 과 당시 Berkman 두명이 상대하는 듯 한 모습이었다. 특히 Beltran은 유비 관우 장비를 동시에 상대하며 창 쓰는 법이 가지런했다는 여포를 연상시키는 모습이었고, Berkman 역시 변방의 마초 쯤 되는 느낌이었다.

Rolen은 이 포스트시즌에서 팬들에게 극단적으로 다른 인상을 남겼다. Dodgers와의 포스트4경기 18타석에서 한 개의 안타도 치지 못하면서 부상 의혹을 받았었다가, Astros와의 NLCS에서 비로소 명예회복을 했다. 그는 2차전에서 혼자 홈런 2개를 치면서 승리를 이끌었고, 7차전에서 6회 Pujols가 동점 2루타를 치면서 분위기를 끌어올리자 곧바로 좌측 라인드라이브성 홈런을 꽂으면서 Clemens를 넉다운시켰다. (링크) 그러나 월드시리즈가 시작되자 Red Sox 투수들에게 4경기 15타수 무안타로 꽁꽁 묶이면서 결국 무기력한 모습으로 시즌을 마무리했는데, 정규시즌 내내 MVP 페이스로 시즌을 보낸 선수의 커리어 하이 시즌으로는 조금 억울한 면도 없지않다. 



2005-2006: 우승과 바꾼 부상

커리어 하이 시즌을 뒤로 하고 시즌을 시작한 Rolen은 5월 10일 Dodgers전에서 훗날 커리어의 반환점이 되고 마는 부상을 당한다. 투수 땅볼을 치고 1루로 냅다 뛰기 시작했는데, 투수 Scott Erickson의 악송구를 잡기 위해 1루 선상으로 나와있던 Dodgers 1루수 최희섭과 부딪친 것이다. 이것으로 어깨가 탈골되어 DL에 등재된 Rolen은 어깨 수술을 받은지 한 달후인 6월 18일에 복귀했으나 공격과 수비에서 모두 정상이 아니었다. 26경기에서 홈런없이 8타점에 .207/.293/.264에 그치며, Full Range of Motion을 회복하지 못했다고 하소연했다.

부상 기간 도중 MRI 촬영 결과 Torn Labrum을 발견했는데, Rolen은 재활을 하면서 시즌 막판 복귀를 노리느니 차라리 수술을 받고 내년 시즌을 기약하기로 한다. 2010년까지 계약이 되어 있던 Rolen의 장기적 건강을 Cardinals에게도 굉장히 중요한 문제였으며, Rolen의 시즌은 7월 21일자로 마감되었다.

8월 중순에 수술을 받은 Rolen은 6개월간의 회복 및 재활을 거치고 스프링 트레이닝에 모습을 드러냈고, 건강을 되찾자 그의 생산성도 돌아왔다. 그는 시즌 내내 허접한 마운드와 주축 선수들의 부상으로 고생하던 와중에 142게임에서 22홈런 95타점 wRC+ 126을 기록했고, Cardinals 유니폼을 입고 마지막으로 골드 글러브와 올스타 선정의 영예를 누린다. 이 해에 Rolen은 7월 초까지만해도 OPS 10할에 육박하는 성적을 기록하는 페이스를 기록하며 전반기를 14홈런 49타점 .331로 마쳤으나, 후반기 들어서 페이스가 급격히 떨어지며 타율 .253에 그쳤다. 특히 이 시즌 나온 홈런 22개 중 19개가 당겨친 것이었을만큼 밀어치는 타구의 비거리가 현저히 감소하기 시작했는데, 이 현상은 자연스러운 Decline이라기보단 2005년 어깨 부상으로 배팅 스피드가 떨어진 탓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며, Matt Kemp도 올 시즌 비슷한 증상을 보인 바 있다. 

"There have been times where he’ll make one of those great plays and I’ll just be standing there staring. Then I’ll see the other guys running off the field because there are three outs.”

-Jim Edmonds, on Rolen's defense

Cardinals/TLR과의 갈등

2007시즌이 끝나고 Cardinals가 TLR과의 2년 연장 계약을 체결하자, Rolen은 당시 단장 대행직을 맡고 있던 Mozeliak에게 트레이드를 해줄 것을 요청한다. 지난 시즌부터 어긋났던 TLR과의 불화가 수면에 올라온 것이다. Mozeliak은 "조건이 맞지 않으면 트레이드 하지 않을 것" 이라고 말했으나 Rolen과의 이별은 TLR과의 연장 계약으로 이미 기정사실화 된 것이었다. 팀이 잘 나가고 Rolen이 건강하던 2005년까지는 별 무리없이 두 사람의 불편한 동거가 유지가 되었으나, 팀 전력이 약해지고 Rolen이 부상으로 기량이 쇠퇴해지자 양측은 자주 충돌하기 시작했다.

중부지구 1위 경쟁이 치열하던 2006년 9월 23일, La Russa는 Oswalt를 상대할 Astros전을 을 앞두고 9월 내내 현저하게 떨어진 페이스를 보이던 Rolen에게 휴식일을 제공했다. TLR은 경기 전 Rolen을 불러 그의 Oswalt 상대전적이 안좋다는 점과 어깨에 누적된 피로를 쉬게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들어 Rolen에게 Day-off를 주겠다는 그의 결정을 설명했다 (Oswalt는 이 시리즈에서 3차전에 등판했는데, 이미 1-2차전에서 Rolen은 7타수 무안타로 부진한 바 있었으며, 그게 아니더라도 9월달 내내 .225/.303/.393 으로 급격히 페이스가 떨어진 모습을 보였다). 막판 페넌트레이스 경기에서 제외당한 것이 불만스러웠던 4번타자 Rolen은 "Benched" 당했다며 곧장 언론에 불편한 심기를 전했고, 이 소식이 TLR의 귀에 들어가면서 양측 관계는 걷잡을 수 없이 불편해진다.

이후 어찌어찌 디비전 타이틀을 차지한 Cardinals와 Padres와의 NLDS가 시작했고, Rolen은 첫 3경기에서 11타수 1안타로 부진한다. TLR은 Rolen에게 한 마디 언질 없이 4차전 라인업에서 Rolen을 빼고 3루수로 Scott Spiezio를 선발 출장시켰는데, 이에 Rolen은 크게 자존심 상해했다. 이후 언론에서 왜 Rolen에게 미리 말해주지 않았냐고 묻자 "어차피 말해줬든 안말해줬든 그에게 만족스러운 설명을 해줄 순 없었을 텐데 무슨 차이가 있으냐" 라며 한 치도 양보하지 않겠다는 모습을 보였다. 이후 NLCS 2차전에서도 TLR은 Rolen 대신 Spiezio를 기용했는데, 하필 Spiezio가 2안타 3타점으로 펄펄 날고 Rolen은 대타로 나왔다가 무안타에 그치면서 TLR의 밉상은 (Rolen의 눈에) 극에 달했다.

"The last time in Houston I sat him down for 10 minutes and explained it to him. My explanation was worthless, so what am I going to say? The last time I talked to him it was a worthless exercise. He didn't want to hear it. He didn't believe it. He didn't understand it. I 'benched' him, which is so opposite what that conversation was about."

-Tony La Russa, on his decision not to notify Rolen

2006 WS 1차전, Rolen은 Justin Verlander의 패스트볼을 당겨서 넘기며 WS 팀 첫 득점을 자신의 홈런으로 만들어낸다. 이후 Rolen은 월드시리즈 내내 .421의 맹타를 치며 Eckstein과 함께 우승을 이끌었고, 포스트시즌에서의 침묵에 대한 어느 정도의 자존심 회복도 했다. 그러나 TLR과의 관계는 회복하기에는 너무 급격히 곪아가고 있었다.

2007시즌, Rolen은 시즌 내내 어깨 부상으로 고생하면서 커리어 로우 시즌을 보냈다. 고질적으로 아팠던 목과 등 부상은 물론 약해진 어깨까지 공수에서 Rolen은 올스타 레벨의 기량을 보여줄 수 없었다. 자연스럽게 결장이 잦아졌고, TLR과의 충돌도 많아졌다. Rolen과의 계약은 3년이 남아있던 상황이었으나 TLR은 계약 마지막 해였다. Rolen은 Cardinals 프론트의 결정을 기다렸고, 구단 측에서 TLR과 예상대로 재계약을 맺자 도저히 안되겠다는 듯 곧장 트레이드를 요청했다. 당초 St. Louis에 뼈를 묻겠다는 심정으로 NTC가 포함된 8년 계약을 했던 선수가 감독과의 불화 때문에 NTC를 풀고 트레이드를 공개적으로 요청했으니 이례적인 경우이다.

12월 7일, TLR은 인터뷰에서 "대체 무엇때문에 Unhappy하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라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고, Rolen은 TLR의 언론 인터뷰 내용들에 대해 무반응으로 일관했다. 당시 Bernie Mikslaz는 STLPD의 다른 야구 기자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TLR과 함께 Rolen 사태에 대해서 얘기했었는데, 당시 TLR의 상태에 대해 "Tony feels burned.And when he feels burned, that person usually goes." 라고 표현했다. TLR은 이후 Rolen에게 자신이 다가오는 2008시즌에 Rolen으로 부터 기대하는 모습들에 대해 편지를 써보냈고, Rolen은 이후 이적에 대한 결심을 더욱 굳혔다. 이 편지의 내용은 아직까지도 공개되지 않고 있다.

비록 2007시즌의 급격한 성적 하락이 있긴 했으나, Rolen은 아직 충분히 많은 바이어들을 유혹할만한 선수였다. 특히 Ryan Braun을 아예 좌익수로 전향시켜 3루가 시원찮은 (Bill Hall) Brewers에서도 그를 탐내했고, Dodgers에서도 그를 원했다. 2008년 1월 12일, Cards는 그나마 즉시전력 출혈이 가장 적은 조건을 제시한 Blue Jays로부터 Troy Glaus 를 받고 Rolen을 넘겨주는 맞트레이드를 단행했다.  Mid-West에서 태어나고 자란 Rolen은 훗날 인터뷰에서 캐나다 팀인 Blue Jays로 이적하는 결정이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했다고 했는데, 이는 충분히 이 트레이드를 거부할 수 있었던 Rolen이 얼마나 TLR로부터 탈출하고 싶어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렇게 Rolen의 Cardinals 커리어는 대략 5년 반만에 끝이 나고 만다.

다시 보기 힘든 클래스의 3루수, Scott Rolen

YearAgeGPAABRH2B3BHRRBISBCSBBSOBAOBPSLGOPSOPS+Awards
200227552292053757841444322034.278.354.561.915139
200328154657559981604912810413382104.286.382.528.910138AS,GG
20042914259350010915732434124437292.314.409.5981.007158AS,MVP-4,GG
200530562231962846121528122528.235.323.383.70684AS
200631142594521941544812295745669.296.369.518.887126AS,GG
20073211244139255104242858533756.265.331.398.72989
STL (6 yrs)66127372373421678173131114533317292383.286.370.510.879127

2008-2012: Decline

트레이드 이후 Rolen은 중심타선의 Run-Producer 역할에서 벗어나 "모범적인 베테랑" 역할이자 2선으로 물러나게 되었는데, 하필이면 인조잔디 구장을 홈으로 쓰는 Blue Jays 뛰게 되면서 등, 목, 어깨 등 잔부상이 다시 그의 스윙을 방해하기 시작했다. 부상에 시달리며 115경기 출장에 그친 그는. 2009 시즌을 앞두고 홈런과 장타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철저히 라인 드라이브 생산에 집중하기 시작했는데. 2009시즌 전반기를 .320의 타율로 마감했다. 이를 기특하게 본 Reds 단장 Jocketty는 트레이드 데드라인을 앞두고 클럽하우스에서 젊은 선수들을 다독여줄 베테랑 역할을 기대하며 Rolen을 영입했고, 이는 신의 한 수가 되었다. 

2010년, 믿어주는 단장 Jocketty와 베테랑을 선호하는 Baker 감독 밑에서 Rolen은 마지막 불꽃을 불태웠다. Reds의 홈 개막전에서 친정팀 Cardinals를 상대한 그는 4회 옛 동료 Chris Carpenter로부터 홈런을 때려냈고, 5월 16일에는 또 Cardinals의 Brad Penny로부터 투런홈런을 쳤다. 6월 28일에는 또다른 친정팀 Phillies의 Kyle Kendrick으로부터 통산 300홈런째를 빼앗았다. 

전반기에만 무려 17홈런을 때리고 올스타전에도 나갔으며, 그의 리더십을 높이 평가한 몇몇 기자들은 MVP 투표에서 그에게 표를 행사했다. 타자에게 유리한 GABP에서 장타율 .534를 기록하며 20홈런을 채웠고, 골드 글러브도 집에 한 개 더 가져갔으니, 한 물 간 것으로 평가받던 "제2의 Mike Schmidt" 에게 어울리는 화려한 컴백 시즌이었다. 비록 이 시즌 라이벌 팀의 4번타자로 활약하긴 했으나, 마지막 불꽃을 제대로 태운 그의 2010시즌은 많은 이들의 입에 미소를 띄웠다. 

왜 저를 빼셨습니까. 왜.

총평: Scott Rolen - Keeping your head down

고등학교에서 농구 인스터럭터였던 Scott의 아버지 Ed Rolen은 자식들에게 종종 "뭔가를 잘했을 때 다른 이들에게 이를 알리지 않아도 된다. 사람들은 다 안다." 라고 누차 가르쳤는데, 이는 Rolen의 행동과 모습에 고스란히 드러나있다. ("If you do something well, you don't have to tell anyone. They will know."). 그의 집안은 경제적으로 결코 어려움이 없었으나, 부모님이 모두 교육자였던 Rolen 의 집안에서는 겸손함 최선의 미덕이었다. 특유의 우직한 Work Ethic이 몸에 배어있는 Rolen은 프로에 가서도 자신의 재능에 안주하지 않고 모든 플레이에 열과 성을 다했으며, 결코 우쭐해하는 법이 없었다. Braves 에서 코치를 지낸 바 있으며 Rolen의 마이너리그 시절 감독이었던 Roy Majtyka는 이런 Rolen의 Work Ethic을 Chipper Jones와 Dale Murphy에 비교한 바 있으며, 그뿐 아니라 Rolen과 같이 뛰었던 거의 모든 선수들 및 감독들 (심지어 그와 사이가 안좋았던 사람들도) 역시 타의모범이 되는 Rolen의 성실함과 진지함을 굉장히 높이 평가했다.

Rolen이 필드에서 보여주는 모습들을 복기해보자. Rolen은 타구를 처리할 때 타구를 "Surround" 즉 몸으로 둘러싸면서 처리한다는 야구의 기본기에 누구보다도 충실했던 3루수였다. 그는 다른 3루수들은 시도도 못할 플레이를 쉽게 해낸 뒤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양 고개를 숙였다. 홈런을 친 뒤에도 Rolen은 고개를 숙인 채 거의 전력질주 하는 듯한 속도로 다이아몬드를 도는 걸로 유명했으며, 홈을 밟은 후에도 큰 세레모니 없이 바로 덕 아웃으로 직행했다. TLR이 누누히 칭찬했던 Rolen의 주루 플레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누상에서 가장 공격적이고 지능적인 주자들 중 하나였으며, 어떤 상황에서든 Extra-base를 가는 것에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멋진 슬라이딩으로 득점한 후에도 별다른 반응없이 훌훌 털어내며 다시 고개를 숙이고 덕아웃으로 들어갔다. 남들은 감히 시도하지고 못할 High-intensity 플레이들을 창조해낼 수 있는 재능이 있었으나, 그 플레이를 하는 과정에서 차오르는 아드레날린과 열정을 내적으로 삭혀버리니, 어찌보면 정말 Cardinal Way에 어울리는 선수였다. Dodgers의 한 신인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커리어 내내 두 차례나 감독과 불화가 있었다는 사실과 Phillies 시절 "Clubhouse에서 암적인 존재"로 꼽힌 바 있어서 Rolen을 마치 "클럽하우스 부적응자" 처럼 몰아가는 여론도 있었는데, 이에 대해 돌이켜보자. 정말 Rolen은 불화를 몰고 다니는 선수였을까?

위에서 언급한대로 Rolen과 Phillies 사이의 갈등에는 감독인 Larry Bowa와의 불화 외에도 Dallas Green, Phillies의 리빌딩 타이밍 등 여러가지 부수적인 요인들이 많았다. 그러나 Rolen이 Cardinals에서 트레이드 된 것은 사실 TLR과의 대립을 제외하면 딱히 이유가 없다. 비록 어느 정도 Rolen의 타격 Decline 및 부상으로 인한 쇠퇴에 대한 우려가 있긴 했으나, 여전히 Rolen은 지역 팬들 사이에서 굉장히 인기있던 선수였다. 계약의 규모와 세부 조항들에서 알 수 있다시피 Rolen은 트레이드 되는 순간부터 Cardinals에서 자신의 남은 커리어를 보낼 의지가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Mid-West 특유의 사실상 "닥치고 일단 열심히" 하자는 "Believing in Hard Work" 철학을 신봉하던 Rolen의 Work Ethic과 Hustle은 Cardinal Way 에 정말 잘 어울렸던 선수였다. 많은 동료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배팅 케이지에서의 연습 스윙 하나도 대충 하지 않았으며, 골드 글러브를 수 차례 수상한 뒤에도 땅볼 타구 처리 연습을 누구보다 많이 했다. 필드 안에서나 밖에서나 최선을 다하는 성실함, 그리고 누구에게도 꿀리지않던 재능은 그를 St. Louis에서 특히 빛날 수 있는 선수로 만들었다.  

그러나 Rolen의 최대 약점은 이 성실함, 그리고 그 이면의 고집이었다. Jasper High School 시절부터 Phillies 시절까지 어느 팀에서든 기둥 역할을 하던 Rolen은 Elite Athlete 특유의 자존심에 상처를 받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으며, 경기에서 자신이 빠지는 것을 상상하기 힘들어했다. TLR은 훗날 Rolen이 2004년 월드시리즈에서의 부진을 어느 정도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으며, 포스트시즌에서 유난히 명예회복을 하고싶어 했는데, 그런 부분들이 그에게 부담으로 작용했다고 밝혔다. TLR은 Rolen이 부상으로 쇠퇴하기 이전까지는 "Rolen이 부상을 입고 뛸 때도 리그의 대부분의 다른 3루수들보다 낫다" 고 말했고, 이런 방식의 기용은 Rolen와 잘 맞았었다. 그러나 부상 이후에 TLR은 Rolen의 타석숫자를 조절하기 시작했고, 점차 마찰은 커져만갔다.

Rolen은 또한 본인에게 미디어의 관심이 쏟아지는 것을 굉장히 부담스러워 했는데, Boston에 결코 뒤지지않은 Philadelphia의 극성스런 스포츠 언론들과 팬들은 그런 의미에서 Rolen의 성격과 아주 상극이었다. 그가 St. Louis로 이적한 후 첫 면담에서 TLR은 Rolen에게 "여기는 Phillies와 다르다. 우리 라인업은 이미 강력하며, 그냥 자네는 하던대로만 쳐주면 된다. 제 스윙만 해준다면 홈런 하나도 못쳐도 상관없다." 면서 "결과"에 대한 부담감으로부터 Rolen을 자유롭게 해주었다. Phillies 시절 커리어 초반부터 팀 타선을 홀로 이끌어야했던 Rolen으로써는 반가운 변화였고, 이때만 해도 양측의 관계는 원만함을 넘어서 상당히 우호적이었다.



필자는 TLR의 매니징 스타일의 오랜 팬이지만 Scott Rolen과의 불화는 TLR의 꼰대 근성이 가장 제대로 투영된 에피소드가 아닌가 싶다. Rolen이 비록 라인업에서 빠진 것에 대해 언론에다가 불만을 표시한 것도 그다지 칭찬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자신의 권한에 불만을 가졌다는 것에 일종의 괘씸함을 느껴서 포스트시즌 라인업에서 사전에 논의 없이 혹은 일언반구의 경고도 없이 Rolen 정도의 베테랑을 제외한 것은 "포용력 부족"이다. 자신의 결정과 판단이 Question 받는 것을 극도로 못 견디는 TLR이었기에 어찌 보면 아무 일도 아닐 수 있는 사건이 (베테랑 선수가 부상/부진 때문에 라인업에서 빠져서 불만을 갖는 것이 어디 그리 드문 경우인가) 일종의 Powertrip으로 이어져버린 것이다. 훗날 Colby Rasmus의 아버지 Tony Rasmus는 Rolen을 들먹이며 TLR을 비난했는데, TLR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There was a question about if you don't get along with the manager you don't last in St. Louis. That's the most senseless thing I've ever heard. I have never in my memory seen a front office or ownership pick a manager over a productive pitcher or player. That's ridiculous."

-Tony La Russa, after Rasmus trade

오히려 Rolen 특유의 조용히 "내 할일만 하자" 성격은 그의 커리어 막판에 빛을 발했다. 트레이드 이후 Blue Jays 에서나 Reds에서나, Rolen은 팀에서 모범적인 베테랑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며 젊은 선수들에게 본보기가 되었다. 그는 클럽하우스에서 시끄럽지 않았으며, 라커룸 앞에서 주로 Steinbeck의 소설을 자주 읽었고, 땅볼을 치고도 1루로 열심히 뛰었으며, Joey Votto, Todd Frazier 를 포함한 많은 젊은 선수들은 20대선수들에게 뒤지지않은 연습량을 철저하게 소화하는 Rolen에 대한 존경을 아끼지 않았다.

 

"What drives me in life is to be a good person. You help each other, you help yourself, you try to be the best person you can be. That's drive enough for me. I just want to be happy. I think that's what life's about. Happiness is what drives me, not fame or fortune. With all TV interviews and some of the fame and some of the celebrity status, I guess, that goes with this game, sometimes. ... The way I look at it, if I wanted to be on TV, I'd have been an actor. But I don't want to be on TV. I want to play baseball."

-Scott Rolen-

비록 예기치못한 불협화음 때문에 모두의 바램대로 St. Louis 유니폼을 입고 은퇴하지는 않았으나, 그가 가슴에 Birds on the Bat을 달고 뛰는 동안 우리에게 좋은 기억을 많이 심어준 것은 부인할 수 없다. 6'4인치의 풋볼 Linebacker 같은 건장한 사이즈와 긴 팔, Soft Hand, 유연함으로 3루 수비의 교과서를 보여주었으며, 계약 기간 중 3년 반동안은 리그에서 가장 생산적인 타자 중 하나였다. 비록 2004 월드시리즈에서의 부진과 전반적인 포스트시즌에서의 약세, 그리고 몇 차례의 부상 때문에 명성에 흠집이 간 건 사실이나, Cardinals 유니폼을 입고 5년 반의 기간동안 OPS .879에 홈런 111개를 쳤고, 3개의 골드 글러브와 4번의 올스타를 포함해 WAR 27.4 를 적립했으며, 성실한 선수 생활을 지속하면서 반지도 하나 가져왔다. 누가 감히 Rolen에게 돌을 던질 것인가.


Rolen 트레이드 이후 Cardinals의 3루 자리에는 다음과 같은 선수들이 왔다가 또 갔다.


2008 - Troy Glaus (4.9 WAR, wRC+ 123)

2009 - Mark DeRosa / Brian Barden (0.6 WAR, wRC+ 76)

2010 - Felipe Lopez / David Freese (1.3 WAR, wRC+ 96)

2011 - David Freese / Daniel Descalso (2.8 WAR, wRC+ 106)

2012 - David Freese (4.0 WAR, wRC+ 133)

2013 - David Freese (0.3 WAR, wRC+ 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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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시즌이 끝나고 Rolen은 현재 공식 은퇴선언을 하지는 않았으나 사실상 은퇴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2013시즌을 앞두고 Rolen은 Red Sox, Yankees 등과 접촉이 있었으나, Rolen은 Reds 복귀를 원했다. 그러나 "베테랑 리더십" 을 위해 5M을 쓰기 싫었던 Reds는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였고, 결국 Jocketty가 Rolen이 스프링 트레이닝에 오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후 Rolen은 "Right now I’m simply not ready to make a commitment. I would like to leave my options open, without closing any doors..." 라는 모호한 발언을 했으나, 이후 그의 행보를 보았을 때 사실상 은퇴 쪽으로 마음이 많이 기운 듯 싶다.

  • Rolen은 고향 Indiana와 Florida에 집을 두고 왔다갔다 하면서 살고 있으며, IU Hoosiers의 열렬한 팬인 부모님을 위해 자기 모교도 아닌 Indiana University 야구 프로그램과 새 구장 건설을 위해 크게 한 턱 쐈다고 한다 (Major donation). 이러다가 인디애나에서 지역구 국회의원이라도 나갈 기세.

  • Rolen의 고향 집 앞에는 Indiana Baseball Hall of Fame 이 위치해있으며, 당연히 Indiana가 낳은 최고 야구스타 중 하나이자 1993년 Indiana Mr. Baseball 출신 Rolen도 헌액되어있다. 아직도 이 동네 고등학교 야구팀 코치는 Rolen을 가르쳤던 Terry Gopert이다.

  • 2011년 7월 4일, Rolen은 친구 Chris Carpenter로부터 통산 2000안타째를 뽑아냈다.

  • 2009년 8월 10일, Reds 유니폼을 입고 Busch에 들린 Rolen은 TLR 방에 먼저 찾아 들어가 인사를 건네고, 대화를 나눴다. TLR은 당시 DL에 올라있던 Rolen에 부상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며 "빨리 회복하길 바란다"며 덕담을 건넸는데, 이에 대해 많은 이들이 "TLR이 또 괜히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다" 는 식의 조소를 보낸 바 있다. 글쎄, 필자는 TLR이 정말 Rolen에게 개인적인 감정이 있었다고 생각하지는 않기에 이들의 만남을 그렇게 꼬아서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 시대를 풍미한 3루수 Scott Rolen은 그렇다면 HOF에 들어갈 수 있을까? 이 부분에 대해서 다룬 많은 좋은 글들이 Fangraph나 Hardball Times에 게시되어 있는데, 수박 겉핥기 식으로 종합해보면 Rolen은 (1) 이른 은퇴, 부상 전적으로 인해 누적 스탯 (316홈런, 1211타점, 2077안타)에서는 부족하지만 (2) 통산 비율 스탯 (.281/.364/.490) 에서는 합격점을 받고 있는 이른바 "Edgar Martinez" 스타일로, 약간 부족한 명예의 전당 프로필을 압도적인 수비와 집에 남아도는 골드글러브들로 메꿔야 하는 상황이다. Rolen의 라이벌로는 Adrian Beltre가 꼽히고 있는데, 그는 비율 스탯은 딸리지만 Rolen보다 건강하고 오래 커리어를 유지한 덕에 더 나은 누적 스탯과 WAR를 찍고 은퇴할 것으로 보인다. Rolen이 명예의 전당에 가느냐 마느냐에 대한 이슈는 나중에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겠지만, 그보다는 올라간다면 과연 어떤 유니폼을 입고 올라갈 지가 더 궁금하다.


by Doov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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