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 마무리 불가론에 대하여 : 세이버메트릭스의 관점에서
Sabermetrics_Stats 2009. 9. 1. 17:14 |올 시즌 불펜에서 놀라운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박찬호. (사진:Daylife/AP Photo)
어제 Ryan Franklin에 대해 글을 쓰기 위해 NL 릴리버들의 스탯을 들여다보다가, 박찬호의 이름이 최상위권에 있는 것을 보았을 때에는 솔직히 조금 놀랐다. 박찬호가 언제부터 이렇게 뛰어난 릴리버가 되었을까 라는 생각을 하던 도중, 이번에는 우연히 모 일간지의 해외 특파원이 작성한 "박찬호 마무리 불가론"을 읽게 되었다. 헉... 이건 도대체 뭐지...???
기사에서 언급한 마무리의 조건은 마무리 경험(?), 강한 심장(?), 단순한 구종(?), 숏메모리(?), 제구력 등이다. 제구력이 좋은 것은 마무리 뿐 아니라 모든 투수에게 당연한 조건이고... 나머지 네 가지는 어딘가 문제가 있어 보이는데... 증명이 어렵거나 수긍하기 힘든 조건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각각의 조건들에 대한 논리적인 반박은 이미 많은 네티즌들에 의해 이루어진 것 같으므로... 이 글에서는 기사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은 생략하고, 대신 스탯을 들여다봄으로써 박찬호의 마무리 기용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모든 스탯은 Fangraphs와 Baseball-Reference, Baseball Prospectus를 참고하였고, 일부는 직접 계산하였다.
박찬호는 7번의 선발 등판 이후에 전업 불펜 투수가 되었는데... 비결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완전히 다른 투수가 된 것 같아 보인다. (시간이 허락된다면 매 경기의 Pitch F/X를 자세히 보고 싶지만 여기서는 일단 넘어가자...)
선발투수일 때 : 7 G, 33.1 IP, 5.67 K/9, 4.59 BB/9, 1.24 K/BB, 1.35 HR/9, 1.74 WHIP, .330 BABIP, 7.29 ERA, 5.58 FIP, 40.2 GB%
구원투수일 때 : 32G, 45.2 IP, 10.25 K/9, 2.36 BB/9, 4.33 K/BB, 0 HR/9, 1.07 WHIP, .325 BABIP, 2.36 ERA, 1.73 FIP, 49.1 GB%
특히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K/BB와 HR/9인데, 불펜으로 보직을 변경한 뒤 압도적인 모습으로 변신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홈런이 하나도 없는 것은 약간 운이 따라 주고 있다고 생각되지만, BABIP가 거의 그대로 유지되고 있으므로 이러한 변화를 운의 탓 만으로 돌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제 구원투수로 뛰었을 때의 스탯을 좀 더 집중적으로 들여다 보자. 비교 대상은 NL 릴리버 중 규정이닝을 채운 76명이다.
K, BB, HR의 세 가지 스탯만을 가지고 산출되는 FIP는 투수의 순수한 구위를 보는 데에 매우 효과적인 스탯이다. 구원투수 박찬호의 1.73 FIP는 NL은 물론이고 메이저리그 전체 1위이다. Joe Nathan이 2.18, Jonathan Broxton이 2.25로 박찬호의 뒤를 따르고 있다.
박찬호의 K/BB 비율은 4.33으로 Chad Qualls, Huston Street에 이어 NL 3위이다.
또한 K/9(9이닝당 삼진) 비율은 10.25로 NL 12위이다.
팀 승리에 대한 기여도를 보는 스탯으로 WPA(Win Probability Added)가 있다. 구원투수 박찬호의 시즌 WPA는 1.58로 NL 15위이다. 그런데, WPA를 쌓기 위해서는 투수가 중요한 순간에 많이 등판해야 하는데, 박찬호는 특히 구원투수로 보직을 바꾼 직후에 감독의 신임을 잃고 주로 롱맨으로 등판한 경기가 많았으므로, WPA 입장에서는 오히려 손해를 보고 있는 셈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한 스탯으로 WPA/LI(Leverage Index)라는 것이 있는데, WPA에서 등판 상황의 난이도로 인한 레버리지 효과를 제거하기 때문에, FIP와 함께 투수의 순수한 활약 정도를 평가하기에 적절한 스탯이다. 박찬호의 WPA/LI는 1.23으로 NL 7위이다. 이는 Trever Hoffman(8위), Francisco Cordero(13위), Heath Bell(17위) 등의 투수들보다도 뛰어난 것으로, 구원투수 박찬호가 얼마나 훌륭한 투구를 하고 있는지를 다시 한 번 보여주는 것이다.
스트라이크존에 공을 꽂아 넣는 비율인 Zone%에서도 박찬호는 53.0%로 NL 9위를 달리고 있으며, 최근 강조되는 첫 스트라이크를 잡는 비율 (First Strike%)에서도 63.4%로 리그 10위이다.
투수가 Replacement Level에 비해 종합적으로 팀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를 평가하는 WAR에서, 박찬호는 1.6으로 NL 4위에 랭크되어 있다. NL에서 박찬호보다 높은 WAR를 기록하고 있는 구원투수는 Brian Wilson, Jonathan Broxton, Rafael Soriano 단 3명 뿐인 것이다.
약간의 사족을 덧붙이자면... 지금까지 나온 모든 스탯... FIP, K/BB, K/9, WPA, WPA/LI, Zone%, First Strike%, WAR 모두에서 박찬호는 팀내 구원투수중 1위이다.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생길 수 있다. WPA에서 언급했듯이 감독이 박찬호를 중요한 순간에 별로 기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담이 적은 널널한 상황에서 박찬호가 잘 던졌을 뿐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과연 이러한 반론이 타당한 것인지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박찬호가 널널한 상황에서 많이 던졌던 것은 사실이다. 총 32번의 구원 등판 중에서, 게임 상황의 중요도를 나타내는 aLI(average Leverage Index)가 1(평균)을 넘는 등판은 10회에 불과하다. 이 10회의 중요한 등판에서 어떠한 성적을 냈는지 보면 다음과 같다.
15.1 IP, 0 HR, 19 K, 2 BB, 1 HBP, 5 ER
위의 데이터를 가지고 ERA와 FIP를 계산하면...
2.93 ERA, 1.20 FIP
2.93의 ERA도 괜찮은 편이기는 하나... ERA는 "지금까지의 성적"을 보여주는 스탯일 뿐 미래를 예측하기에는 부적절하므로, 수비의 개입을 배제하고 순수한 투수의 구위만을 평가하는 FIP를 지표로 삼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전체 32번 등판의 FIP는 1.73이었는데 그중 중요도가 높은 10번의 등판에서는 1.20이었으므로, 오히려 중요한 고비에서는 평소보다도 더욱 잘 던졌다는 점이 입증되는 것이다. 15.1이닝에 불과하므로 샘플이 너무 적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어떻다 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널널한 상황에서 더 잘 던졌기 때문에 기록이 좋은 것이다"라는 반론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도 2%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을 위해서, 이번에는 Baseball Prospectus의 스탯을 보여 드리고자 한다. BP는 ARP(Adjusted Runs Prevented from scoring)라는 구원투수 전용 스탯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해당 투수 대신 리그 평균 구원투수를 투입했다면 얼마나 더 실점을 했을까를 나타내는 스탯이다. 박찬호의 경우 올 시즌의 ARP는 12.1인데, 이는 박찬호가 구원 등판한 32번의 등판 기회 때 박찬호 대신 리그 평균 투수를 투입했다면 Phillies는 12.1점 더 실점했을 것이라는 의미가 된다. 박찬호의 12.1 ARP는 팀내 1위이며, NL 전체에서는 14위에 해당하는 좋은 성적이다. 유력한 경쟁자로 거론되는 Ryan Madson의 ARP는 10.7이다.
지금까지 본 바와 같이, 어떤 스탯을 동원해서 어떻게 보더라도, 박찬호는 Phillies 불펜에서 가장 뛰어난 투수이다. 리그 전체를 놓고 보아도 올 시즌 박찬호는 최고의 릴리버 중 한 명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만약 마무리 투수가 가장 뛰어난 구원투수(Bullpen Ace)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Phillies에서 그 자리는 박찬호에게 돌아감이 지극히 타당하다. 물론 박찬호가 막상 마무리로 기용되고 나면 심적 부담감 등의 알 수 없는 이유로 갑자기 난타당하는 불상사가 벌어질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어느 투수를 기용하더라도 똑같이 갖게 되는 위험 부담이다. 근거없는 추측을 바탕으로 하기 보다는 지금까지 실제로 쌓아 온 스탯을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일 것이다.
박찬호는 단지 한국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국내 팬들로부터 맹목적인 칭찬과 근거없는 비난 모두를 겪어 왔다. 세이버메트릭스의 관점에서 볼 때,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LA에서 선발로 활약하던 시절의 박찬호는 어느 정도 과대평가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예를들면 2000년 18승에 3.27 ERA로 무척 화려한 성적을 올린 듯 하지만, FIP는 4.23으로 리그 평균보다 조금 나은 수준에 불과하였다.) 하지만, 올 시즌의 박찬호는 반대로 뛰어난 성과에 비해 과소평가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비판할 때는 비판하더라도, 인정할 때에는 인정해 주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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