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Doovy


오늘 돌아볼 선수는 시리즈 마지막을 위해 아껴놓은 선수, "Jimmy Baseball" Jim Edmonds 이다.





Jim Edmonds (Jimmy Baseball)

Center Fielder

DOB: 1970년 6월 27일 

Birth: Fullerton, California

Time with Cardinals:  2000-2007


Draft and Minors


양손잡이였던 Edmonds 는 어린 시절부터 풋볼, 농구, 축구, 모든 스포츠에서 또래들보다 우월했으며, 천부적인 운동신경과 신체조건을 타고 났다. 감각적인 Hand-Eye Coordination, 20/15로 완벽에 가까운 시력, 남들보다 유난히 길었던 팔과 강한 손목힘. 신체조건 뿐 아니라 환경도 빵빵했다. 4계절 내내 밖에서 뛰놀 수 있는 Southern California 출신이었으며, LA 근교에 오랫동안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대가족들이 SoCal 이곳 저곳에 퍼져 있었다. Edmonds의 리틀리그 게임이 열릴 때면 많은 친척들이 Jimmy를 보겠다고 경기장으로 찾아왔다. Edmonds의 낙천적인 성격은 타고난 부분도 있었지만, 환경적인 요인도 분명 작용한 듯 싶다. 고교 시절의 Edmonds는 힘들이지 않고 또래 선수들보다 월등한 기량을 가졌음을 뽐냈으며, 좀처럼 얼굴을 찡그리거나 힘들어하는 법 없이 무엇이든 쉽게쉽게  (Effortlessly) 해내는 선수였다. 타격 재능과 빠른 발도 분명히 매력적이었지만, Edmonds의 매력은 역시 고교시절부터 "True CF" 로 평가받던 그의 수비였다. 


Anaheim의 바로 옆동네인 Fullerton에서 태어나 근방의 Diamond Bar에서 고교시절을 보낸 Edmonds는 어린 시절부터 하드코어 Angels 팬으로 자랐으며, 이에 1988년 드래프트 7라운드에서 고향 연고팀 Angels가 그를 지명하자 몹시 기뻐했다. 그러나 프로에 와서 Edmonds는 그다지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는데, (아래 성적 참조) 첫 4년간 그는 200경기를 넘게 출장하면서 홈런 6개를 치는데 그쳤다. 예쁘다는 평가를 받던 그의 스윙은 좀처럼 타구에 힘을 싣지 못했다. 조금 타격감을 찾나 싶으면 부상으로 주춤하면서 상당한 시간을 소비했으며, 스트라이크 존 판단력이 떨어져 많은 삼진을 당했다. 이 때까지만 해도 Edmonds의 프로젝션은 "수비에 비해 타격은 떨어지지만, 수비가 워낙 좋아 4th OF로 경쟁력이 있을 것" 이라는 정도였다. (Angels 스카우트의 말)


Jim Edmonds' Minor League Track Record


YearAgeTmLgLevGPARH2B3BHRRBIBBSOBAOBPSLGOPS
198818BendNORWA-351432327400132044.221.329.254.583
198919Quad CitiesMIDWA319911244014734.261.313.337.650
199020Palm SpringsCALLA+9134636921863562775.293.351.417.768
199121Palm SpringsCALLA+6023128551512274057.294.417.417.834
199222MidlandTLAA7028942771528324183.313.413.488.901
199222EdmontonPCLAAA5021237581526361455.299.343.490.833
199323VancouverPCLAAA95403591122849744181.315.382.492.873


Edmonds가 더딘 성장으로 4년동안 A+ 레벨도 졸업하지 못하고 빌빌거리는 사이, 드래프트 1년 후배이던 Tim Salmon은 1991년 더블 A에서 홈런 23개 94타점을 기록하고 당당히 BA 선정 Top 100에 이름을 올리며 Angels의 미래로 등극했다. 이듬해인 92년 Edmonds는 Salmon의 뒤를 좇아 AA볼로 승격, .313/.413/.488로 모처럼 활활 타올랐지만, 이 시즌 Salmon은 타자 친화 리그인 PCL을 마음껏 누비고 다니며 타율 .347 28홈런 109타점으로 폭격하자 이에 묻혔다. 게다가 이맘 때는 1990년 Draftee로 Edmonds의 2년 후배였던 Garrett Anderson도 치고 올라오기 시작했는데, Anderson은 Edmonds와 비슷한 Skill Set 을 가졌으나 2살이 어렸고 더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그 뿐 아니라 Edmonds보다 1년 늦게 드래프트된 GCU출신 외야수 Chad Curtis는 AA를 스킵하고 2년동안 도루 110개를 기록한 뒤 Edmonds보다 빅 리그에 먼저 올라가 주전 CF 자리를 꿰찼다.


당시 Elite-Outfielder 재목들을 팜에 여럿 거느리고 있던 Angels는 외야진의 교통정리가 미처 다 되기 전에 Edmonds가 1992년 PCL에서 상당히 뛰어난 성적을 올리자 그를 일단 스프링캠프로 초대했다. 여기서도 Jimmy가 미친듯이 맹타를 치며 무력시위를 했으나, 이 때 Angels 외야에는 빈 자리가 하나 뿐이었고, 그 자리는 PCL을 부숴버리고 가장 먼저 올라온 Tim Salmon의 것이었다. (결국 Salmon은93년 Angels 역사상 최초의 ROY 영광을 안으며 성공적으로 데뷔한다) 이 해 Edmonds는 프로 입문 이래 처음으로 부상없이 한 시즌을 소화하며 95경기에서 .315/.382/.492에 타점 74개를 쏟아낸 뒤 9월 로스터 확장 때 "Cup of Coffee"를 마시러 Anaheim으로 내려갔다. 


1993-1997: Carew's Crew


"Human Highlight Reel" 이라는 영광스런 별명이 익숙한 Cardinals 팬들에게는 믿기 힘든 내용이지만, Edmonds는 Angels 시절 초창기에 좌익수로, 그것도 4th OF로 주로 출장해야 헀다. 또 40홈런을 쉽게 쳐내던 슬러거 Edmonds를 기억하던 우리들에겐 익숙치 않지만, 커리어 초창기 Edmonds는 파워히터보다는 교타자에 가까웠으며, 몸쪽 공을 Derek Jeter 처럼 Inside-out 스윙으로 밀어쳤고, 장타보다는 라인드라이브 히팅에 주력하는 타자였다. 잠시 여기서 루키 시즌 (1994년) 이 끝나고 나온 Stats. Inc의 스카우팅 리포트를 참조해본다.


"Edmonds can expect to see his playing time diminish. While he showed some signs of developing as a hitter, his role will probably be reduced to fourth outfielder. This more closely suits his abilities."  This reflected the scouting consensus on Edmonds heading into 1995."

-Scouting Report, 1994




타자 Edmonds 에게 큰 전환을 가져다준 인물은 당시 Angels 타격 코치이자 통산 7차례 리딩히터 타이틀 + 3000안타에 빛나는 전설적인 교타자 Rod Carew였다. 타격의 과학 (Science of Hitting)과 이론에 정통했던 Rod Carew는 약간 변칙적이었던 Edmonds 의 No-Stride 메카니즘을 바꾸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Edmonds는 스윙시 Stride 도 없고 발도 거의 땅에서 떼지 않은 채 무게중심을 이동, 공에 힘을 실어냈는데, Carew는 Edmonds에게 이 타격자세를 그대로 유지하되, 대신 공을 띄우는 것에 (Lifting) 집중하기를 추천했다. 유리한 카운트에서 작정하고 공을 Drive & Pull 할 수 있게 된 Edmonds는 1995년 전반기에 무려 13홈런 52타점을 기록했으며, 23경기 연속 안타 행진으로 팀 최고 기록에 근접했다. (Angels 최고 기록은 스승 Rod Carew가 가진 25경기.) 


Carew는 또한 Edmonds가 이전 타석에서의 실수를 빨리 잊고 다음 타석에 집중할 수 있도록 심리적인 조언을 끊임없이 해주었으며, Carew's Crew 라고 불렸던 당시 Angels 로스터의 젊은 타자들 (Carew의 제자들) 중에서도 유난히 돈독한 친분을 유지했다. 둘은 1995시즌 올스타 브레이크 때 함께 콜로라도 강으로 제트스키를 타러 가기로 했었는데, Edmonds가 전반기에 타격에 눈을 뜬 뒤 마이너리그에서조차 한 번도 선정된 적이 없었던 올스타에 뽑히는 바람에 여행을 가지 못하게 되자, 제자에게 껄껄 웃으며 기꺼이 올스타전에 갔다오라고 얘기한 것도 Carew 였다. Edmonds는 올스타전 이후에 홈런 20개를 더 치고 33홈런 106타점, 그리고 Angels 구단 역사상 단일시즌 최다 득점 기록인 120득점을 기록하고 풀 타임 첫 시즌을 마쳤다. (이 기록은 이후 Erstad, V-Guerrero, 그리고 Trout에 의해 3차례 경신되었다)


Carew와의 만남은 타자 Edmonds뿐 아니라 선수 Edmonds에게도 결정적인 인연이었다. Southern California 특유의 넉살과 여유가 몸에 배어있었던 Edmonds는 종종 베테랑들 혹은 보수적인 코치들로부터 "열심히 하지 않는다" "진지함이 부족하다" "건방지다" 는 평을 받곤 했는데, Carew는 Edmonds가 이런 오해를 사지 않도록 조금 적당히 낙천적으로 (?) 굴 것을 지도했다. 어린 시절부터 Angels 팬으로 자랐던 Edmonds는 소년 시절 우상이자 Angels에서 6년을 뛰었던 스타 Rod Carew의 말을 크게믿었고, 행동을 조심히 하려고 노력했다.


"Jim could always hit. But if he missed a pitch he thought he should have hit, he'd get angry and let that at bat stay with him. I can't let my hitters get down on themselves. I tell them, 'I'm going through every swing with you. If I don't get down on you, don't get down on yourself.' "


- Rod Carew, on Jim Edmonds (Sports Illustrated, 1995) 




1997-1999 : 불화


어린 시절부터 응원했던 고향 팀에 드래프트되어, 5년 안에 메이저리그를 밟았고, 올스타에 뽑혔으며, 전설적인 타격왕이 직접 개인 지도를 해주고 있었으니, Edmonds에게 더 이상 아쉬울 것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의외로 Angels와의 인연은 1995년을 기점으로 조금씩 뒤틀리기 시작했다. 


일단 첫 사건은 1995년 아마추어 드래프트였다. Angels가 포화된 외야진에 전체 1번으로 U of Nebraska 외야수 Darin Erstad를 뽑은 것이었는데, Erstad는 이미 대학야구를 제패하고 Golden Spike 상을 수상한 완성형 / 즉시전력감 유망주였기에 마이너리그에 오래 둘 수가 없는 선수였다. 교통정리가 필요해지는 시점이 다가오자 지역 언론에서는 조금씩 Edmonds의 트레이드 루머를 흘리기 시작했다. (오죽했으면 동료 Tim Salmon은 Edmonds가 Ken Griffey Jr. 삼각 트레이드에 포함되지 않고 Angels에 잔류한다고 하자 깜짝 놀라며 "그 인간은 목숨이 9개구만" 이라고 했다고 한다)


California Angels 에서 Anaheim Angels으로 팀 공식 명칭까지 바꾸고 새로운 출발을 외친 Angels는 1997시즌부터 Terry Collins 에게 팀 사령탑을 맡겼는데, 이것이 본격적인 불화의 시작이었다.  Angels는 당시 팜에서 공수된 Core Players (Edmonds, Salmon, Garrett Anderson으로 뭉친 Angels 팜 출신의 리그 정상급 외야진 + 95년 드래프트 전체 1번 Darrin Erstad + 자체생산 마무리 Troy Percival 등) 들이 주축이 된 비교적 젊은 로스터를 (평균나이 28.3세) 가지고 있었고, 충분히 비전이 있었는 전력이었다. 그러나 팀의 선발진이 워낙 허접했으며, 선발진 강화를 위한 투자가 제대로 되지도 않아 포스트시즌에서 대권을 노려볼만하기에는 약점이 뚜렷했다. 1997시즌 Angels는 디비전 타이틀 레이스에서 8월부터 힘에 부쳐하며 마지막 두달한 24승 30패에 그쳤고, 결국 84승으로 6게임차 지구 2위에 그쳤다. 


이 와중에 Terry Collins 감독은 엄청나게 "떽떽거리는" 스타일로 선수들을 밀어붙였고, 조금이라도 여유를 가지려는 선수가 있으면 몹시 질책했다. 어떤 선수들에게는 이런 어프로치가 먹혔으나 Edmonds는 이런 스타일의 매니징에 질색을 했고, 역으로 Terry Collins 역시 Edmonds처럼 "flair"가 넘치는 선수를 좋아하지 않았다. Edmonds가 평소처럼 Over-the-sholuder 캐치를 해놓고 스스로를 축하하는 제스처를 보이면, Collins는 이를 "잘난체" 한다고 생각해 Edmonds를 질타했으며, 옆에서 1루코치 Larry Bowa도 이를 거들었다. 이들은 Edmonds가 어떤 플레이를 하던 (Scott Rolen처럼) 고개를 숙인채 묵묵히 덕아웃으로 뛰어들어오기를 바랬는데, Edmonds는 그런 류의 선수가 아니었다. 


1998시즌 역시 전년도와 크게 다르지 않은 시나리오로 흘러갔고, Angels 구단의 상처는 성적을 초월해 이제는 구단 내부로 곪고 있었다. Edmonds는 이 기간동안 어깨, 엄지손가락, 복사근, 허벅지 등 이곳 저곳에 부상을 당하는 와중에서도 각각 133, 154경기를 소화했으며, 2시즌동안 홈런 51개 타점 171개, 골드 글러브 2개를 수상하며 제 몫을 충분히 해주었다. 그러나 1999년 정규시즌 개막 무렵 Edmonds가 어깨 수술을 받기로 결정하면서 드디어 쌓아왔던 감정들이 폭발했는데, 당시 이미 Edmonds를 좋게 보지 않던 팀메이트들은 "오프시즌에 수술을 받아야지 시즌이 개막하고 수술을 받는거냐" 며 불만을 표시했다. Edmonds는 정규시즌 내내 무릎 부상 때문에 고생을 한 터라 몸이 회복된 후 어깨 수술을 받고 싶어했는데, 이미 어느 정도 "미운 털이 박힌"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주려는 동료들은 거의 없었다.


반 Edmonds 운동의 선두에 있던 인물은 1999년 오프시즌 Angels의 핵심 FA 영입 중 하나였던 90년대 탑 클래스 슬러거 중 하나인 Mo Vaughn이었는데, Vaughn은 인터뷰에서 "Some guys want to get better, some don't. Some play with pain, some don't. The bottom line is, you have an obligation to the guys who are paying you and to the guys who are playing to get better." 라며 사실상 대놓고 Edmonds를 디스했다. Vaughn는 1998년까지 Red Sox에서 뛰다가 시즌이 끝나고 Angels와 계약한 터라 사실상 Edmonds와는 한  번도 같이 뛰어본 적이 없는 (그러나 당분간 같이 지내야하는) 사이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렇게까지 강한 디스를, 그것도 시즌 시작과 거의 동시에 저런 말을 했다는 것은 이 당시 Angels가 얼마나 콩가루집안이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Edmonds 디스에는 꽤나 많은 선수들이 참가했는데 (대표적으로 Darrin Erstad가 앞서서 Edmonds의 "자기 관리 실패"를 비방했다), 웃기는 것은 Vaughn도 Edmonds를 배척함으로써 클럽하우스를 장악하려고 했으나 이도 보기좋게 실패했다는 점이다. Angels 클럽하우스는 이미 마이너시절부터 수년을 같이 뛰어온 선수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고, 과체중 때문에 발목 부상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한 뚱뚱한 지명타자가 갑자기 Players-only 미팅을 소집한다고 선수들이 말을 들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Angels는 결국 어수선하게 시즌을 시작했고, Tim Salmon의 부상 이후 최하위로 떨어진 뒤 70승 92패라는 "당연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Trade to St. Louis


끔찍했던 1999시즌이 끝나고 이미 Edmonds의 트레이드는 기정 사실화되었고, Angels는 구미에 맞는 옵션들을 저울질 하기 시작했다. 가장 성사에 가까웠던 딜은 Mariners와의 딜이었는데, 당시 프랜차이즈 스타 Ken Griffey Jr. 가 시애틀을 떠나고 Edmonds가 그 자리를 대체하는 시나리오가 상당히 유력했었다 (Angels는 댓가로 Brett Tomko를 원했다.) 그러나 Edmonds 본인이 워낙 시애틀에서 뛰는 것을 싫어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었기에, 시애틀도 어차피 묶어놓지 못할 Edmonds 를 Ken Griffey Jr.의 적합한 후계자로 데려올 생각을 포기했고, 곧 Reds에서 Mike Cameron을 얻어왔다. Mariners행이 무산된 뒤에 가장 Angels가 원했던 것은 Yankees에서 Alfonso Soriano 를 받아오는 딜이었으나, Yankees가 이를 거부했다. 


2000년 3월 23일, 수년째 무성하던 Edmonds의 트레이드 루머에 단 한 차례도 언급되지 않던 팀이었던 Cardinals가 이 때 슬쩍 모습을 드러내더니 Adam Kennedy + Kent Bottenfield 패키지로 Edmonds를 영입하는데 성공한다. 정규시즌 개막을 열흘 도 채 앞두지 않고 터진 이 트레이드는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는데, Angels GM 이었던 Bill Stoneman은 트레이드 직후 "우리 입장에서는 검증된 선발투수와 1라운드 출신 2루수를 얻을 수 있는, 정말 매력적인 딜이라서 거부하기가 힘들었다" 고 소감을 밝혔다. Bottenfield는 전년도 올스타 + 정규시즌 18승은 물론 트레이드 당시 스프링캠프에서도 호투하며 모든 이들이 그를 "Proven Starter" 감으로 보고있던 상황이었고, Adam Kennedy는 전년도 Cardinals 팜에서 Minor League Player of the Year로 뽑혔던 전국구 유망주였다. 이 두 선수의 커리어를 통틀어 이들의 가치가 가장 높았던 시점이 아마 이 딜이 일어났던 2000년 정규시즌 개막 직전이 아닐까 싶은데, 두 선수를 얻고 마치 너무 훌륭한 트레이드를 한 것 마냥 살짝 흥분한듯한 Stoneman의 소감 고백이 이해가 안 가는 바도 아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귀엽기까지 하다)





2000-2007: Flying CF with Flair


Cardinals도 트레이드를 통해 리그 최고의 중견수를 얻었지만, Edmonds에게도 Cardinals 행은 그의 커리어에 있어서 더할 나위없이 좋은 인연이었다. Edmonds가 Birds-on-the-Bat 을 가슴에 새기고 처음 타석에 들어선 날, 팬들은 아직 아무것도 보여준 게 없는 Edmonds에게 환영의 의미로 기립박수를 선사했고, Edmonds는 이에 크게 감동받았다. 클럽하우스에서도 모두들 Edmonds를 환영했으며, 특히 같은 고향 출신이자 USC 레전드였던 Mark McGwire는 Edmonds는 만나는 순간부터 오래된 친구처럼 그와 붙어다니기 시작했다. 


Cardinals 클럽하우스는 불화와 냉전, 서로에 대한 책임 전가로 점철되었던 90년대말 Angels 클럽하우스와는 차원이 달랐으며, 무엇보다 야구를 즐겁게 해야한다고 생각했던 Edmonds는 이렇게 좋은 환경이 조성되자 더욱 신이 났다. 그는 개막 후 첫 한 달간 .382/.515/.776에 홈런 8개를 쏘아올리며 파괴력을 뽐냈고, 순식간에 Cardinals 중심 타선의 핵심으로 부상했다. Busch Stadium의 관중들은 여태껏 본 적 없는 수준의 미친듯한 센터 수비를 보여주는 Edmonds의 끼 넘치는 다이빙캐치에 매료되었고, Jocketty 역시 기대 이상의 결과에 흡족해했다. 트레이드 후 채 두 달이 지나지 않은 2000년 5월, Cardinals와 Edmonds는 6년 $57M (+1년 선수옵션 10M) 짜리 대형 FA 계약을 맺었다. 당시만 해도 이 정도 규모의 FA 계약은 흔하지 않았고 (구단 역사상 최고 규모였는데, 얼마 지나지않아 Scott Rolen이 이 기록을 깬다)


"아직 온 지 두달도 안 된 선수에게 6년 계약은 리스크가 너무 크지 않느냐?" 는 우려에 Jocketty는 "뭐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내가 한 달간 지켜본 바로 Jimmy는 향후 몇년간 우리에게 중요한 선수가 될 것이다. 리스크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또 반면 초대박이 터질 수도 있다 (It could be a bonanza for us)" 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It's been a pleasure to play here for the first month, and I'm looking forward to staying here for the rest of my career. I wasn't trying to get a dollar for every person through the turnstile and a free house and a free plane and all that stuff. I just want to play baseball and have a place where I knew I could be for a while. I knew what I wanted and it made it pretty simple, pretty easy."

-Jim Edmonds, on signing with the Cardinals (May, 2000)



TLR 역시 Terry Collins보다 훨씬 합리적인 감독이었다. TLR은 Edmonds가 팀에 들어오자 평소 친분이 있던 Rod Carew에게 전화해 "이 놈이 정말 물건이긴 한거냐?" 고 물었고, Carew는 "Let the kid play and he'll do a heck of a job for you." 라고 대답했다. Carew의 한 마디에 TLR은 Edmonds를 정규시즌 내내 3번타자-중견수로 고정해서 썼으며, Edmonds는 이에 보답하듯 매 달 최소 홈런 6개를 쏘아올리며 올스타에 선정되었을 뿐 아니라 MVP 투표에서 리그 4위에 올랐다. (물론 167개의 삼진은 NL 좌타자 최고 기록이었다)


오자마자 MVP? - 2000년 NL MVP Ballot 


Voting ResultsBatting StatsPitching Stats
RankTmVote Pts1st PlaceShareWARGABRHHRRBISBBBBAOBPSLGOPS
1Jeff KentSFG392.022.088%7.2159587114196331251290.334.424.5961.021
2Barry BondsSFG279.06.062%7.71434801291474910611117.306.440.6881.127
3Mike PiazzaNYM271.03.060%5.11364829015638113458.324.398.6141.012
4Jim EdmondsSTL208.00.046%6.21525251291554210810103.295.411.583.994
5Todd HeltonCOL198.01.044%8.9160580138216421475103.372.463.6981.162



2003시즌, Edmonds는 전반기에 307타수에서 .303의 타율과 28홈런을 치는 괴력을 뽐내며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내는 듯한 기대를 갖게 했다. 그러나 올스타전 홈런 더비에 출전한 것이 실수였는데, 여기서 예전에 다쳤던 어깨를 다시 다치면서 후반기에 20여경기를 결장해야했고, .214 11홈런으로 생산력이 툭 떨어져버렸다. 결국 Edmonds는 39홈런 89타점으로 시즌을 마감했는데, 당초 50홈런 페이스로 홈런을 치다가 홈런 더비를 기점으로 흐름이 끊겨서 아쉬움이 더했다. Edmonds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수당 홈런 수 리그 2위로 시즌을 마감했는데, 더 놀라운 것은 Edmonds가 어깨 부상 전에도 전반기 내내 종아리, 엉덩이, 갈비뼈 부상을 달고 뛰었다는 점이다. (11.5 AB / HR, 1위는 뭐 당연히 Bonds)


2004시즌, Edmonds는 3할 타율과 40홈런을 동시에 넘어서는 기록을 달성했고, Rolen-Pujols와 함께 살인 타선의 일원으로 군림했다. 그러나 정규시즌 막판 2주간 Edmonds는 홈런을 치지 못했고, 마지막 4경기를 21타수 무안타 슬럼프를 벗어나지 못했다. 전반적인 타격감 저하는 포스트시즌으로 이어졌는데, NLDS 1차전에서 Edmonds는 Odalis Perez를 강판시키는 결정적 홈런을 한 개 치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그다지 홈런을 한 개 치긴 했지만 볼넷 한 개를 골라내는 동안 9개의 삼진을 당하면서 영 제 모습이 아니었다. 





벌써 여러차례 언급하는 2004 NLCS는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지만, 그래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으니 동영상을 링크하도록 한다. 아래에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Edmonds가 High-Fastball에 쉽게 방망이를 내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었는데, 장면을 다시 보시면 Astros 릴리버 Dan Miceli가 작정하고 아예 High-Fastball 승부를 해오는 것을 Edmonds가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이 "받쳐놓고" 후려넘기는 청량감 넘치는 장면을 보실 수 있다. 링크


사실 Edmonds의 클래스는 극적인 6차전 Walk-Off보다 7차전에서 더 빛났는데, 6회 2사 2루 위기를 맞은 Roger Clemens가 대기 타석에 있는 Edmonds를 흘깃 보더니 Rolen을 거르지 않고 정면 승부를 하다가 결승 투런을 허용하는 장면이었다. (Edmonds는 이 시리즈 3차전에서 Roger Clemens를 상대로 홈런을 쳤던 바 있었다.)


2006시즌, Edmonds는 커리어에서 유일한 월드시리즈 우승을 일궈냈다. 이 시즌 Edmonds는 잔부상으로 DL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고 110경기밖에 출전하지 못했고, 특히 9월에도 첫 3주간은 경기에 나오지를 못했었다. 그러나 포스트시즌 개막을 앞두고 돌아온 Edmonds는 대타로 출장한 복귀 첫 타석에서 대타 쓰리런을 쳤고, Mets와의 NLCS에 홈런 2개를 기록했으며, 월드시리즈 3차전에서 4회 Nate Robertson을 상대로 결승 2타점 2루타를 치며 충분한 제 몫을 했다.


Jimmy Baseball - 8 years in St. Louis


YearAgeTmGPAABRH2B3BHRRBISBCSBBSOBAOBPSLGOPSOPS+TB
200030STL15264352512915525042108103103167.295.411.583.994147306
200131STL15060850095152381301105593136.304.410.564.974149282
200232STL1445764769614831228834386134.311.420.561.981158267
200333STL1375314478912332239891377127.275.385.6171.002160276
200434STL1536124981021503834211183101150.301.418.6431.061171320
200535STL1425674678812337129895591139.263.385.533.918137249
200636STL110408350529018019704053101.257.350.471.822110165
200737STL11741136539921521253024175.252.325.403.72888147
STL (8 yrs)11054356362869010332341124171337246451029.285.393.555.947143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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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 성격 빼고는 약점이 없던 역대 최고의 중견수

2003년 Edmonds의 Scouting Report를 보면 재미있는 평이 나오는데, 바로 Edmonds가 타구가 자신에게 날아올 때 일부러 각을 어렵게 잡고 ("Style his way") 더 힘들게 (고로 더 멋있게) 타구를 잡는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Edmonds의 플레이를 보면서 (팬심 가득) 단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한 적은 없지만, 이런 여론이 있었다는 자체가 분명히 Edmonds의 캐릭터에 대해서 시사하는 바가 있다.


Edmonds는 Angels 시절 "부상을 달고 뛸 줄 모르고, 몸을 사린다" 는 평이 있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Edmonds는 실제로 많은 잔부상들을 달고 시즌을 보냈으며, 건강하게 한 시즌을 난 경우는 거의 없다. 진짜 문제는 Edmonds가 남들이 뭐라고 하든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데 있었다. 1999년 초, Edmonds가 수술 타이밍을 하필이면 정규시즌 개막과 거의 비슷하게 잡는 바람에 욕먹을 여지를 만들어 주었는데, 이 때 분위기가 워낙 안좋았던 Angels 클럽 하우스는 누구라도 실수를 하면 마녀사냥을 할 준비가 되어있는 곳이었다. 





쌩뚱맞게 갑자기 들어와서 리더 역할을 하려고 했던 Mo Vaughn과의 충돌, "Drill Sergeant" (군대 조교) 라는 별명이 있던 감독 Terry Collins와의 불화, Old-School 로 치면 어디 가서 밀리지 않는 1루코치 Larry Bowa (Scott Rolen 편을 기억하시는가!) 와의 충돌도 비슷한 이유였다. Edmonds는 열심히 하는 티를 내려고 하질 않았고, 딱히 겸손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Edmonds는 Angels 시절 한 번 "나는 홈경기에서 Leadoff로 나가기 싫다" 고 말했는데, "Leadoff로 나가면 1회초 상대팀 공격 후 덕아웃까지 뛰어가서 빨리 방망이를 챙기고 타석에 나가야되는데, 그게 좀 피곤하다" 는 게 이유였다. 그리고 "야구는 늘 재밌게" 라는 그의 모토와 걸맞게 늘 필드 위에서의 플레이들을 즐기려고 했다. 이런 모습들을 "돈은 돈대로 쓰고 잔뜩 기대하고 있는데 성적이 안나는 대도시의 2인자 구단" 클럽하우스에서 보였으니, 눈치가 없는 일일 수밖에 없었다. 


"He has so much talent, if you challenge him to do something, to make more contact or go the other way, he's the kind of guy who accepts that challenge and applies himself."  

- Tony La Russa, on Jim Edmonds' talent


Edmonds는 Cardinals 클럽하우스에서 큰 충돌 없이 잘 지냈는데, 이는 Mark McGwire의 존재가 그의 적응을 쉽게 만들어준 덕도 있었다. TLR 역시 그다지 Flair를 좋아하는 스타일의 감독은 아니었지만, Collins처럼 멀쩡히 성적을 잘 내고 있는 선수들을 족쳐서 역효과를 만드는 감독도 아니었고, 부상을 달고 뛰라고 강요하는 스타일도 아니었다. 특히 Edmonds는 2002년 Darryl Kile의 급사 때 발벗고 나서서 리더 역할을 자청했고, 이 시즌을 통해서 조금 더 믿음직스러운 베테랑으로 거듭났다. (Edmonds는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마음으로 "DK 57"을 그의 왼쪽 팔뚝에 새겼고, 2007년에는 Josh Hancock의 이니셜인 JH 32를 다른 쪽 팔뚝에 문신으로 새겨 동료를 기렸다.)


"If it doesn’t seem like I'm working hard sometimes, that's someone else's problem."

- Jim Edmonds




그는 Cardinals에서 뛴 8년간 마지막 두 시즌을 제외하고는 모두 골드 글러브를 수상했고, 8년간 WAR 37.8을 (첫 6년간은 36.3, 마지막 2년간은 1.5) 적립했다. 포스트시즌에서도 절대 약하지 않았으며 (통산 포스트시즌 13홈런 42타점 .273/.361/.513) 선수라면 누구나 꿈꿔보는 드라마틱한 홈런도 여러 차례 쳤다. Edmonds는 특히 Mark McGwire와 만난 이후 Plate Discipline에서 드라마틱한 발전을 이룩했으며, 리그 내에서 가장 플라이볼을 잘 만들어내는 선수 (그리고 병살도 잘 안치는) 로 거듭났다.


Angels 시절 BB% / K% =   9.2% / 18.9%  (평균 wRC+ 106)

  Cards 시절 BB% / K% = 14.8% / 23.6 % (평균 wRC+ 140)


그리고 수비. Edmonds의 수비는 "우리가 다시 저런 중견수를 볼 수 있을까" 싶을 수준의 Flair을 자랑했으며, 엄청난 레인지와 정확한 어깨로 Busch Stadium의 외야 한 가운데를 8년간 책임졌다 (이 모든 것을 무릎 부상과 어깨 부상을 달고 다니면서 해낸 일이다.) 특히 타구를 쫓아가는 경로에 있어서 Edmonds는 동물적인 감각을 자랑했고, Frank Thomas는 "Edmonds같은 선수가 외야에 있는 것은 Edmonds의 수비가 조금 특별했던 이유는 그가 워낙 화려한 장면들을 자주 만들어내서 Defender 보다는 Entertainer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Edmonds는 단 한 번도 Overrate 된 적이 없으나, 그렇다고 Underrate 된 적도 없는 선수였다.  (Edmonds의 미친 수비들 보러가기)


타자로써 Edmonds는 거의 약점이 없었다. 그는 패스트볼, 변화구에 대한 대처 능력이 모두 뛰어났으며, Strike Zone 판단능력도 훌륭했다. Opposite-Field Power, 즉 타구를 밀어쳐서 장타로 만드는 능력은 정말 어마어마 했는데, 2000년대 초 Edmonds보다 좋은 Opposite-Field Power를 보여주는 선수는 Bonds 밖에 없었다. (스프레이 차트를 봐도 Edmonds는 우투수의 공들을 매년 10개씩은 쉽게 좌측으로, 좌중간으로 밀어쳤다.) 바깥쪽 공을 워낙 잘 밀어치니 투수들은 Edmonds를 쉽게 공략하지 못했고, 특히 Cardinals 유니폼을 입고 나서 그는 더더욱 타석에서 인내심있는 모습을 보였다 (Pitchers per AB 리그 2위)


타자 Edmonds에게서 굳이 흠을 찾자면 (1) 파괴력은 있지만 너무 큰 스윙과 (2) 하이 패스트볼에 유난히 약했다는 점이다 (High-Fastball Chase). Edmonds는 높은 패스트볼을 상당히 좋아했는데, 종종 이로 인해 "버리는 타석" 이 많아질 때가 있었다. 즉, 2스트라이크 이후 약간 말도 안된다 싶을 정도로 터무니없이 높은 패스트볼에 쉽게 헛스윙을 하는, 약간은 성의없는 모습도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는 Edmonds가 전반적으로 타격 컨디션과 리듬이 좋지 않을 때 나오는 증상이었으며, 그 외의 시간에는 Edmonds만큼 참을성있는 타자들도 드물었다.



"Not really, there wasn't one. Any day a pitcher can be on and make your day hard. The other way around, a pitcher can have a tough day and make it easy for you. Each day is a challenge and each pitcher is a challenge. Whether it was Roger Clemens or whoever, you never know what kind of day you'll have until it's over.


- Jim Edmonds, when asked "which pitcher did you hate to face?"


Jim Edmonds의 성격은 팀 동료이자 TLR 시리즈 10편의 주인공 Scott Rolen과 정반대였다. Edmonds는 "내가 할 일은 야구를 잘하는 것일 뿐, 나는 내 방식대로 게임을 하겠다" 며 본인의 넘치는 끼를 주체하지 않았고, "야구는 결국 놀이" (It's just a game) 이라는 생각이 짙게 깔려 있었다. 반면 어려서부터 절제와 겸손이 몸에 철저히 배어있던 Rolen은 캡틴 아메리카의 아우라를 풍기며 "오직 승리만이 나의 것, 열심히 하면 안될 것이 없다" 를 되뇌이는 모범생이었다. 정반대의 성격을 지닌 두 명 모두 Larry Bowa와 불화가 있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물론 둘 다 정말 고집은 세다)


Edmonds는 2008년 Cardinals를 떠난 이후 Reds, Brewers, Cubs 등 디비전 라이벌들의 클럽하우스를 순회공연 다니다가 결국 2011년, Cardinal로 은퇴하기 위한 단기 계약을 맺고 돌아왔다. 낙천적인 Edmonds는 뛰는 모든 도시에서 야구를 즐겼고, 어느 곳에 가든 그 도시와 소속팀에 대해 좋은 점만을 늘어놓는 선수였으나, Angels 구단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그는 Angels에서 떠밀리다시피 팀을 나온 그를 따뜻하게 맞이해준 St. Louis 팬들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았고, 2000년대 Cardinals 중흥기를 이끌며 많은 포스트시즌에 출전했던 좋은 기억들, 그 곳에서 맺은 인간 관계들과 리그 최고 수준의 선수로써 누렸던 영광들 때문에 커리어를 접는 순간만큼은 Cardinal로 기억되기 원했다.


2011년, Brewers와 Cardinals의 NLCS가 열렸을 때 한 기자가 (최근까지도 Brewers 유니폼을 입고 있던 Edmonds 에게 어느 팀을 응원하냐고 물었다. 


Edmonds는 어깨를 으쓱했다. "I'm a St. Louis guy, I'm rooting for the Cards."



Did you know...

  • Edmonds는 계약 마지막 해이던 2007년, 다운타운 St. Louis에 자기 이름을 걸고 식당을 냈다. Pujols의 스포츠 바보다 위치는 더 좋긴 한데 (Busch Stadium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이다) 딱히 음식이 대단하다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 Edmonds는 은퇴 이후 Cardinals 경기를 전담중계하는 Fox Midwest의 해설자로 활동했다. (전임자는 Cal Eldred)
  • 2012년, Jim Edmonds와 그의 부인 Allison Edmonds는 "The Real Housewives of Orange County" 라는 리얼리티 쇼 (시즌8) 에 캐스팅되었다가 촬영 며칠을 앞두고 발을 뺐다. 
  • 어릴 때 투수였던 Edmonds가 소년 시절 가장 좋아했던 선수는 Nolan Ryan, 타자가 된 이후에는 Don Mattingly 였다.
  • 예전에 한번 댓글에서 언급된 바 있는 경기인데, 2004년 8월 Cubs-Cardinals 경기에서 Carlos Zambrano가 Edmonds에게 사사구를 두 개 던진 경기가 있었다. 몇 년 후 Edmonds는 Cubs 유니폼을 입고 Carlos Zambrano와 동료로써 재회하는데, 이 때 Zambrano가 먼저 다가와 Edmonds에게 사과했다고 한다. (When I played for the Cubs, he was one of the first people to come up and apologize, saying sorry for whatever. Ended up being a good teammate.)
  • Cardinals 시절 Edmonds는 오프시즌에 NHL팀 St. Louis Blues 선수들과 함께 스케이트를 타며 몸관리를 했다. 이는 Edmonds가 St. Louis에 살던 시절, 바로 이웃에 Blues의 디펜더 Chris Pronger가 살고 있어서 둘이 친해지게 된 게 결정적인 계기였다. 
  • Edmonds는 연봉 중 $1M을 떼어서 St. Louis 의 시민공원인 Forest Park에 자신의 이름을 딴 시민 야구장 "Jim Edmonds Field" 건설에 쾌척했다. 


Edmonds 편을 마지막으로 이번 오프시즌 TLR ERA 시리즈는 마감합니다. 지난 해부터 시작해서 총 16편에 걸쳐 14명의 선수들을 돌아보았습니다만, 아직도 소재는 무궁무진하게 많이 남아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추억은 이제 그만 팔고, 게임 쓰레드로 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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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Doovy


Posted by Doov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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