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ited Cardinal Bloggers 에서는 Jack Buck과 Darryl Kile의 사망 10주기를 맞아 이들에 대한 추억을 함께 나누는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렇다. 이들이 며칠 사이의 간격으로 세상을 떠난 것도 벌써 10년이 지났다. 시간은 정말 빠르게 흘러간다.


나는 2000년 무렵부터 Cardinals의 팬이었기에, 솔직히 Jack Buck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다. 그가 매우 오랜 세월동안 Cardinals 게임을 중계했으며, 단순히 한 사람의 방송인이 아니라 St.Louis 커뮤니티의 일원으로 지역사회에서도 많은 활동을 하여 지역 팬들에게 아주 깊은 사랑을 받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한국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그에게 특별한 감정적 유대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런데, Darryl Kile의 경우는, 비록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가 Cardinals 유니폼을 입고 뛰었던 2년 반을 지켜보았기에, 조금 달랐던 것 같다.


Darryl Kile (1968-2002)


2000년대의 Cardinals는 대충 세 시기 정도로 나누어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Big Mac과 Fernando Vina, Jim Edmonds, Matt Morris, Darryl Kile 등이 주축이었던 2000년대 초반과, MV3과 Chris Carpenter로 대표되는 2000년대 중반, 그리고 MV3이 해체된 후  Pujols와 Adam Wainwright가 투타의 핵이 되고 Matt Holliday가 가세한 2000년대 후반이 그것이다. 개인적으로는 2000년대 초반 팀에 가장 큰 애착을 가지고 있는데, 뭐라고 딱 꼬집어서 이유를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이 팀이 가장 보는 재미가 있었던 팀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팀을 하나 꼽으라면, 역시 2000년의 팀이다.


2000년 팀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역시 유력한 트리플 크라운 후보였던 Jim Edmonds와 타자들을 압도하는 강력한 구위로 뛰어난 탈삼진 능력을 선보이며 새로운 에이스로 등극하는 듯 했던 Rick Ankiel이다. 당시 타선은 Edmonds 외에도 Big Mac, Fernando Vina, Edgar Renteria, Fernando Tatis, Ray Rankford, J.D. Drew 등이 포진하여 2004년의 Murderer's Row나 2012 시즌 초반(Berkman 부상 이전)의 타선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모습이었다. 비록 Big Mac이 시즌아웃 되는 불행한 사고가 있었으나, 빈자리를 메꾸기 위해 영입된 Will Clark이 거의 Big Mac과 비슷한 레벨의 활약을 해 주었다. 이 시즌은 당대 최고의 수비형 포수였던 Mike Matheny의 첫 시즌이기도 했다. 로테이션에는 화려한 탈삼진 쇼를 벌이던 Rick Ankiel과 대조적으로 묵묵히 많은 이닝을 소화하며 버팀목 역할을 하던 투수가 있었으니, 바로 Darryl Kile이었다. 그는 좀처럼 튀지 않는 캐릭터를 가지고 있었고, 팀의 수많은 스타 플레이어들에 가려서 언론의 주목을 많이 받지는 못했으나, 팀 내에서의 위치나 중요도는 어느 선수 못지 않았다고 본다.



Kile은 Houston Astros에 의해 1987년 드래프트에서 고졸 유망주로 30라운드에 지명되어 프로 무대를 밟게 되었다. 4년 뒤인 1991년에 Astros에서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그는 이후 1997년까지 Astros에서 뛴 후 FA가 되어 Rockies와 계약하였다. 많은 투수들이 그러했듯이, Kile도 Coors Field에서 변화구가 제대로 말을 듣지 않으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FA계약 2년째였던 1999년에 그가 제구력을 잃어버리면서 거의 1:1의 K:BB 비율을 기록한 뒤, Rockies는 오프시즌에 그를 Cardinals로 트레이드했다. 이 트레이드는 Kile/Dave Veres/Luther Hackman과 Manny Aybar/Jose Jimenez/Brent Butler/Rick Crousehore를 맞바꾼 3대 4 트레이드였는데, Aybar와 Jimenez가 그저 그런 불펜투수 이상 되지 못했고 나머지 둘은 존재감이 없었음을 생각하면, Walt Jocketty의 걸작 트레이드였다고 봐도 될 것이다.


어쨌거나... 이렇게 해서 산에서 내려온 Kile은 커브의 무브먼트와 함께 제구력을 되찾았는데, 그냥 되찾은 정도가 아니라 BB/9를 커리어 최저 수준인 2.25까지 끌어내리면서 단숨에 staff ace로 올라섰다. 2000시즌에 그는 무려 5번이나 완투승(완봉 1회 포함)을 거두며 232.1이닝을 던지고 20승을 기록, 팀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데 크게 공헌하였던 것이다. 당시 NLDS에서 Kile 대신 Ankiel을 1차전 선발로 기용한 TLR의 결정은 지금 생각해도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 있지만... 이 부분은 여기서는 자세히 다루지 않도록 하겠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맞이한 2001년 시즌에서도, Kile은 특유의 12-6 커브와 훌륭한 제구력을 바탕으로 227.1이닝을 던지며 로테이션의 버팀목 역할을 하였다. 2000년 플레이오프 이후 다시는 이전 모습으로 돌아가지 못한 Ankiel 대신 이번에는 Matt Morris가 그와 함께 로테이션을 이끌었고, 타선에서는 트레이드로 팀을 떠난 Tatis를 대신하여 Albert Pujols라는 무명 선수가 나타나 단숨에 리그 최고의 타자 중 한 명으로 자리를 잡았다. 당시 Edmonds-Big Mac-Drew-Pujols의 중심타선은 컨택/출루/파워 모든 면에서 리그 최고의 수준이었다. 비록 NLDS에서 Big Unit과 Curt Schilling 두 괴물이 이끄는 Diamondbacks와 숨막히는 명승부를 벌인 끝에 2승 3패로 탈락하였지만, Edmonds, Kile이 전성기를 보내고 있고, Morris와 Pujols, Drew등 젊은 스타 플레이이들이 새롭게 떠오르고 있었으므로, 이 팀이 계속해서 컨텐더로 남을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2002년에도, Kile은 묵묵히 자기 역할을 하고 있었다. 6월 22일이 되기 전까지 말이다. 그 날은 Cubs를 상대로 한 원정 경기였는데, 늘 경기 시작 시간 4시간 전에 경기장에 오곤 했던 Kile이 아침에 나타나지 않았고, 결국 호텔 방에서 숨을 거둔 모습으로 발견되고 말았다.  당시 그의 나이는 33세였고, 사인은 심장마비였다. 당시 Cubs의 선수 대표였던 Joe Girardi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경기가 취소되었음을 발표하였는데, 지금 들어도 가슴 한켠이 아련해진다. (링크)


당시 나는 mlb.tv 계정도 없었고(mlb.tv 자체가 그당시에 존재했었는지 잘 모르겠다), 우리나라의 중계방송은 공중파나 케이블이나 하나같이 한국인 메이저리거들이 소속되어 있는 Rangers(박찬호), Diamondbacks(김병현), Red Sox(김선우) 등의 경기만 줄창 중계해 주었으므로, 주로 ESPN에 접속해서 ESPN Gamecast로 게임을 보고 나중에 mlb.com의 하이라이트를 보며 아쉬움을 달래곤 했었다. 그날도 별 생각없이 아침에 ESPN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첫 화면에 걸려있는 "KILE FOUND DEAD"라는 타이틀을 보고 경악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Cards는 물론이고 그와 한때 팀 동료였던 Astros나 Rockies 선수들까지 울먹이며 인터뷰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하루 종일 우울한 기분이었던 것 같다.



그의 사망 후, 그의 유니폼은 Cardinals 덕아웃에 계속 걸려 있게 되었다. 로테이션에서의 빈자리는 트레이드로 합류한 Chuck Finley가 메꾸었다. 모자에 "DK57"을 새긴 선수들은 스포츠를 한다기보다는 전쟁터에 나가는 것 같은 엄숙함과 진지함으로 남은 시즌을 플레이하였고, 결국 또다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였다. 개인적으로 TLR에 대해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있고, 특히 2000년대 후반에 보여준 꼰대스러운 모습들은 정말 맘에 들지 않았지만, 2002 시즌에 팀을 잘 추스려서 플레이오프에 진출시켰던 공로만큼은 절대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2002년 9월 20일, Astros를 9-3으로 꺾고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지은 날, 선수들은 Kile의 저지를 꺼내 들고 그라운드에 나왔다. 그것은 플레이오프 진출을 자축한다기보다 차라리 종교 의식 같은 모습이었다. 아... 다시 한 번 가슴이 짠해진다.


이 저지는 NLDS에서 Diamondbacks를 3-0으로 스윕한 뒤에도 또 그라운드에 나왔다.

CARDINALS Photo: DIANE L. WILSON / SF


당시 이 장면은 참 이상한 느낌을 주었는데.. 선수들은 기뻐한다기보다도 마치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의무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아쉽지만, 이 저지는 더이상 그라운드에 나오지 못했는데, NLCS에서 Giants에게 4-1로 패하여 탈락했기 때문이다. 2000년이나 2004, 2005년 등의 플레이오프 탈락도 아쉬웠지만, 이 때만큼 아쉬운 때는 없었던 것 같다.




그 후, 그를 기리기 위하여 Darryl Kile Award라는 것이 생겨났다. 이 상은 "a good teammate, a great friend, a fine father and a humble man"에게 주어지는 것으로, 매년 Cardinals와 Astros 선수 각 1명에게 수여되고 있다. 2003년 최초로 이 상을 수상한 Cardinals 선수는 바로 현 감독인 Mike Matheny이다. 지금까지 Cardinals의 수상자는 다음과 같다.


2003 Mike Matheny

2004 Woody Williams

2005 Cal Eldred

2006 Chris Carpenter

2007 Russ Springer

2008 Adam Wainwright

2009 Skip Schumaker

2010 Matt Holliday

2011 Lance Berkman



가끔 잊어버리곤 하는 것이 있는데, 야구는 사람이 하는 스포츠이고, 엄청난 연봉을 받는 메이저리그 선수도 결국은 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Darryl Kile은, 무척 좋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덤으로 실력도 참 괜찮았던 투수였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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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FreeRedb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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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ecter 2012.06.25 14:38 Address Modify/Delete Reply

    전 2002년부터 카디널스 팬이 되기 시작해서 카일에 대한 기억이 쥔장님보다도 더 적습니다만...그의 죽음이 충격이었던 건 기억합니다. 제가 카일을 잘 기억하고 있는건 오히려 컴퓨터 게임 하드볼 때문인데...애스트로스 에이스 시절의 빠른 패스트볼과 커브의 조합을 아예 칠 수 없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_-;

    카일이 죽은 이후로 남은 시즌에서 카디널스가 거둔 승수가 정확히 57승이었다죠. 당시 카디널스 beat writer 초년병이었던 Mattew Leach도 그때의 기억을 블로그에 올렸던데...이 문단이 인상 깊게 남네요.

    "And then there’s one last memory I have of that team and that season. I’ve been in a lot of losing locker rooms, including World Series and LCS. I’ve seen some teams take some hits. And I have never, in my time covering baseball, been in a clubhouse as silent, as dejected, as punched in the stomach over the outcome of a game, as the Cardinals after the 2002 NLCS."

    정말로 시즌 자체가 전쟁이었나 봅니다.

  2. BlogIcon skip 2012.06.25 15:01 Address Modify/Delete Reply

    저도 지금도 정확히 기억이 납니다. 졸린 눈을 부비고 espn을 들어갔는데, Kile이 메인에 있길래 뭐야 노히트라도 했나 하고 보니...-_-;;;

    TLR도 힘든 상황이었다고 나중에 털어 놓았단 글을 본 기억이 납니다. 그 특유의 프로의식을 강조하며 선수들을 다독였다던걸로 기억해요. 음, 저 역시 지난 몇년간 TLR의 행동이 썩 맘에 들진 않았지만, 지금의 프런트가 주창하는 그 'cardianal way'에 마침표를 찍은건 TLR이 아닐까 생각해요.

    Morris를 오랜만에 보는군요. Waino에게 Carp가 대부였다면, Morris에겐 Kile이 대부였는데... Eldred처럼 instructor라도 돌아오지 않을까 싶었는데, 쭉 가족 곁에서 머무나 봅니다.

    http://www.stltoday.com/sports/baseball/professional/kile-s-death-still-shakes-those-who-were-close-to/article_a2340214-c63a-517e-8a48-c827ac0baf48.html

    아무튼... 몇일 전 Strauss가 쓴 기사인데... 아주 좋은 글입니다. 한번 읽어들 보세요.

    REST IN PEACE, KILE.

  3. yuhars 2012.06.25 20:09 Address Modify/Delete Reply

    전 2002년 당시에는 카즈팬이 아니라서 카일에 대한 기억이라곤 제가 눈으로 본 선수중 가장 좋은 커브를 던진 선수였다는것 밖에 없습니다만 당시 카일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카즈가 플옵 올라가는걸 보고 경약을 금치 못했던것 또한 사실입니다. 카일이 죽은지 10년이나 되었는되도 이렇게 회자되면서 추모하는걸 보면 카일이 실력뿐만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참 좋은 선수였었구나 하는걸 느끼게 되네요.

  4. BlogIcon jdzinn 2012.06.25 23:37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당시엔 카즈 경기 보기가 힘들어서 하드코어 팬은 아니었고 월드컵 광란 중이기도 했지요. 해서 카일이 급사했을 때 그렇게까지 충격은 아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끔찍합니다. 팀의 에이스이자 클럽하우스 리더였던 선수를 잃고도 좋은 시즌을 보낸 선수단과 코칭 스탭에 경외감마저 들구요. 쥔장님 포스트와 유저님들 코멘트, 관련 기사를 읽는데 마음이 뭉클합니다.

    카일처럼 카즈에 큰 족적을 남긴 선수는 아니지만 교통사고로 운명을 달리한 조쉬 핸콕 생각도 납니다. 핸콕은 사고 며칠 전 경기에 늦은 적이 있는데 새로 산 침대가 너무 안락해서 늦잠을 잤다지요. 지각 사유가 참 우스꽝스럽습니다만 카일의 전례를 겪어본 선수들은 당시 굉장히 불안해 했다고 합니다. 여하튼 2002년, 2007년 이렇게 5년 간격으로 비극이 일어났었는데요. 요즘 부진한 팀을 신나게 까곤 했는데 성적이고 뭐고 반드시 무탈한 시즌이 되어야 겠습니다.

  5. Q1 2012.06.30 16:17 Address Modify/Delete Reply

    2001 WS를 제가 리얼플레이어 기반 MLB TV로 본 기억이 있으니 있었을 겁니다.
    생각해보니 저도 카일 경기는 두어 경기 본게 전부였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