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1996 오프시즌은 그동안 구단을 소유하고 있었던 맥주회사 Anheuser-Busch가 Cardinals를 Bill DeWitt Jr.이 이끄는 투자자 그룹에게 매각했던 때이며, TLR이 감독으로 고용된 시기이기도 하다. 이전의 Jocketty 시리즈에서 살펴봤듯이 Jocketty는 이러한 오너쉽의 변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정력적으로 일을 해서 팀을 단숨에 컨텐더로 바꾸어놓았다.


그럼 드래프트와 팜 시스템은 어땠을까?


Walt Jocketty's Farm System & Draft(2): 1996 Season

(B-Ref 1996 시즌 페이지)


비록 구단 경영층이 바뀌긴 했으나 Jocketty 단장을 비롯한 프런트의 핵심 인물들은 거의 그대로 유임되었다. 선수 육성의 책임자는 여전히 Mike Jorgensen이며, 스카우팅 디렉터도 그대로 Marty Maier가 담당하여 1996년의 드래프트를 지휘하였다.


1996 년의 산하 마이너리그 팀은 모두 7개로 팀 수는 1995년과 동일했지만, 구성에는 변화가 있었다. Savannah Cardinals와 결별하여 South Atlantic League 리그에서 발을 빼고, 대신 도미니카에 DSL Cardinals를 만든 것이다. 또한, Midwest League의 팀을 Madison Hatters에서 Peoria Chiefs로 바꾸었다.


AAA :  Louisville Redbirds (American Association)

AA : Arkansas Travelers (Texas League)

A+ : St. Petersburg Cardinals (Florida State League)

A : Peoria Chiefs (Midwest League)

A- : New Jersey Cardinals (NY-Penn League)

R : Johnson City Cardinals (Appy League), DSL Cardinals(DSL)



1995-1996 오프시즌의 BA Cardinals TOP 10 리스트는 아래와 같았다.

(괄호 안은 전미 TOP 100 리스트 순위)


1. Alan Benes, rhp (5)

2. Matt Morris, rhp (56)

3. John Frascatore, rhp (97)

4. T.J. Mathews, rhp

5. Bret Wagner, rhp

6. Mike Busby, rhp

7. Mike Gulan, 3b

8. Eli Marraro, c

9. Kris Detmers, lhp

10. Brian Barber, rhp


BA Organization Talent Ranking: 13위


리스트에서 5위에 올라 있는 Bret Wagner가 96년 1월 9일에 Athletics로 트레이드 되었으니, 이 리스트는 그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1위부터 6위까지가 모두 우완투수이고, 10명 중 투수가 8명이나 될 만큼 투수쪽으로 치우친 모습이다. 그래도 Benes와 Morris라는 막강한 영건 듀오에 힘입어 팜 시스템은 13위에 올랐다.


전년도 TOP 10 유망주 중 John Mabry는 팜을 졸업하고 메이저리거가 되었으며, 한때 프리미엄 유망주였던 Dmitri Young은 AA에서 고작 10홈런에 머무르며 발전이 없는 모습을 보여 아예 랭킹에서 빠졌다. 


Alan Benes는 1995년에 역시 AAA를 씹어먹은 뒤 9월에 콜업되어 이미 메이저리그를 경험한 상태였다. 95마일의 강력한 패스트볼에 우수한 제구력까지 갖춘 그는 당시 최고의 투수 유망주 중 하나였다. 1996 시즌부터는 풀타임 메이저리거가 되므로, 이것이 그를 유망주 리스트에서 보는 마지막이다. 1997년 25세의 나이로 2.89 ERA, 8.9 K/9를 기록할 때만 해도 에이스로서 팀을 오랫동안 이끌어줄 것 같았으나, 7월부터 어깨에 이상이 감지되었고, 결국 어깨 수술을 두 번 받은 이후 다시는 이전의 기량을 회복하지 못하게 된다.


전년도 1라운드 픽이었던 Matt Morris는 계약 후 A-, A+ 레벨에서 45이닝을 던지며 2.20 ERA, 8.8 K/9, 3.14 K/BB로 순조로운 프로 데뷔 시즌을 보냈다. 


John Frascatore는 1991년 24라운드 지명으로 입단했으며, 이후 메이저리그 불펜에서 활약하다가 2000년대 들어서는 대만에서 뛰었다. 2003년에는 퉁이 라이온즈 소속으로 평균자책 1위(1.80)를 기록하여 우수투수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플로리다의 Canterbury 고교에서 야구팀 감독과 영어 교사를 겸임하고 있다고 한다.


T.J. Mathews는 92년 드래프트 36라운더였는데, 이후 전설적인 Big Mac 트레이드 때 Athletics로 건너간 3인방 중 하나로 메이저리그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된다. -_-;;; 불펜투수로 성적은 그저 그랬지만, 그래도 2002년까지 8년이나 메이저리그에서 뛰었다.


8위에 Eli Marrero가 랭크되어 있는 것이 흥미롭다. 1993년 드래프트 3라운드 지명으로 입단한 Marrero는 이때까지만 해도 실적보다는 툴이 앞서는 고졸 유망주였고, 특히 1995 시즌에는 .590 OPS를 기록하며 폭망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TOP 10에 포함시킨 것은 마치 1996, 97 시즌의 폭발을 예견한 것 같은 느낌이다. 다음 시즌에서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나머지 선수들은 모두 망한 유망주들로 딱히 할 말이 없다.



1996년 드래프트는 Scott Boras가 당시 드래프트 규정의 헛점을 파고들어 Bobby Seay, Travis Lee 등 무려 1라운더 네 명이 지명된 팀과 계약을 하지 않고 FA를 선언하여 큰 파문을 일으켰다. Boras는 "구단은 드랩 후 15일 안에 정식 오퍼를 제시해야만 한다"는 사문화된 규정을 활용, 자신의 고객들로 하여금 MLB 사무국에 이의신청을 하도록 했고, 결국 이겨서 FA가 되었다. 이들은 곧 익스팬션 팀인 DBacks, Devil Rays와 FA로서 거액의 메이저리그 계약을 맺었고, 이들을 1라운드에서 지명했던 구단들은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했다.



1996 Cardinals 드래프트 정리 - The Baseball Cube, Baseball-Reference


첫 5픽. <라운드(전체 픽 순위). 이름, 포지션>


1(3). Braden Looper, rhp

3(68). Brent Butler, ss

4(98). Bryan Britt, of

5(128). Jeff Rizzo, 3b  (계약 실패)

6(158). Jim Gargiulo, c


오프시즌에 Type A FA Ron Gant와 계약하여 2라운드 픽을 Reds에 넘겨 주었으며, 보상으로 받아온 픽은 없다. 전체 3순위로 지명한 선수가 Braden Looper라는게 안습인데, 드랩 당시에는 BA로부터 "top college prospect"로 꼽혔을 만큼 나름 잘나가던 유망주였다. Braden Looper 역시 Travis Lee 등과 더불어 FA가 되려고 사무국에 이의신청을 한 상황이었으나, FA가 되기 직전에 $1.675M에 계약하여 Cardinals에 남았다. 이것은 당시로서는 구단 역사상 최대 규모의 아마추어 계약(구단 최초의 밀리언달러 규모 신인 계약이었음)이었으나, 전체 5픽으로 지명된 John Patterson이 FA가 되어 DBacks와 6M에 계약했음을 생각하면 나름 저렴하게 잡았다고 해야 할 정도였다.


결과론이기는 하지만, Looper 지명 당시 드랩 보드에는 Mark Kotsay(전체 9픽), Eric Chavez(전체 10픽), Eric Milton(전체 20픽), Jake Westbrook(전체 21픽), Gil Meche(전체 22픽), Jimmy Rollins(전체 46픽) 등이 남아 있었다.


3라운드 픽 Brent Butler는 역시 전설이 된 Darryl Kile 트레이드 때 트레이드 칩으로 활용되었으며, 이후 597타석에서 .248의 타율을 남기고 사라졌다. Britt과 Gargiulo는 싱글A를 벗어나지 못하고 은퇴했다.


이후의 주요 픽.


21(608). Randy Flores, lhp  (계약 실패)

36(1058). Stubby Clapp, 2b


놀랍게도 이게 다다. 그나마도 Flores는 계약에 실패했다...!


그러니까 이 드래프트에서 뽑은 가장 좋은 선수는 Braden Looper였고, 두 번째는 트레이드로 팀에 기여한 Brent Butler(Rockies에서 3년동안 -2.0 fWAR 기록), 세 번째는 메이저리그에서 고작 26타석에 나온 뒤 사라진 Stubby Clapp인 것이다. 이정도면 2000년대 초반의 드랩 흑역사와 비교해도 별로 꿀리지 않는 90년대 최악의 허접 드래프트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이 드래프트의 스타들. 위에서부터 Braden Looper, Brent Butler, Stubby Clapp.


Clapp은 Memphis Redbirds에서 4시즌을 뛰었는데, 출장(425)과 안타수(418)에서 모두 팀 역대 2위에 올라 있으며, Memphis는 2007년 그의 등번호 10번을 영구결번했다...!!! AAA팀에도 영구결번이라는 게 있다. ㅎㅎ  그러나 등번호 10번은 이후 TLR의 등번호가 메이저리그 팀에서 영구결번되면서 자동으로 모든 마이너리그 팀에서도 결번 처리되게 되었다. -_-;;;



TO BE CONTINUED...

Posted by FreeRedbird
:

팜 소식들

Cardinals/Prospects 2014. 2. 25. 20:18 |

Ramsey가 메일을 보낸지 열흘이 다 되가는데 묵묵부답이라 독촉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생각중입니다, 이눔 시키...

올해는 이것저것 생각만 하다 접지 않고 자잘한 뉴스 둘-셋 모일때마다 자주 포스팅 할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라 아마 작년보다 얇은 포스팅이 잦아질 것 같습니다. 적어도 양질의 정보의 공유 차원에서는 작년보다 낫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1. 마이너 풀시즌 4개팀에 1명씩 보충된 코치들

Cardinals 산하 마이너 팀들은 감독-타격코치-투수코치, 이렇게 3명의 코치진이 배치되어 있는데요. 이번에 풀 시즌 4개 팀들이 코치를 한명씩 새로 고용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역할이 꽤나 재미집니다.

이들은 다순한 coach가 아니라 scout 역할도 동시에 수행한다는군요.

먼저 coach로서, 이들은 유니폼을 갖춰 입고 선수들과 함께 훈련에 참가합니다. 수비훈련시 펑고, 타격훈련시 공을 던져주는 역할 등을 수행하죠. 그리고 훈련이 모두 끝난 뒤, 이들은 scouting mode로 전환, 경기를 지켜보며 상대팀을 분석하게 됩니다.

farm director Gary LaRocque가 새로 도입된 코치직에 대해 말하길,

"player development 측면에서, 이는 오너쉽이 저희에게 제공하고 있는 서포트의 연장선이라 할 수 있죠."

"새로 도입된 이 코치직은 저희가 도입하고 싶었던 몇가지 새 시스템 중 하나입니다."

"coaching과 scouting을 모두 경험하면서, 연말까지 이들은 양 분야에서 광범위한 지식과 경험을 축적할 수 있을겁니다."

"그리고 만약 인원을 충족시킬 일이 발생했을 때, 이러한 환경 속에서 길러진 이들이 그 자리를 무리없이 대체할 수 있겠지요."

실제로 몇년 뒤, 이들은 coach와 scout로서 준비가 될 것이며, 수년간 조직 내에서 이들을 지켜봐온 팀은 누가 어느쪽에 적성을 가졌고, 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 보다 손쉽게 결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수년간의 경험으로 팀과 조직의 문화에 적응할 필요가 없다는 것 역시 큰 장점이겠지요.

이러한 움직임은 player development와 scouting의 협력 추구는 물론, 일찍이 John Mozeliak이 그 누가 팀을 떠나더라도 내부에서 그를 (문제없이) 대신할 인사로 대체하는 시스템이 이상적이라 표현한 것의 현실화라 말할 수 있을겁니다.

4명의 코치들은 현지시각 3월 1일부로 spring training camp에 집결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morning workouts에 참가한 뒤 프런트 오피스 인사들로부터 scouting class session 교육을 받게 될 것이고, 많은 시범경기들을 통해 곧바로 배운 것들을 실전에서 적용할 기회도 제공받을 것입니다.

이 모든 내용을 한마디로 줄이면 "Cardinals는 coach와 scout도 키워서 쓰겠다"는 의지라 생각되네요.

그럼 4명의 새 코치들과 그들의 이력을 간단히 한번 보겠습니다.


Greg Byron(AAA Memphis Redbirds 배정)

대학에서 투수였던 Byron은 2011년까지 여러 독립리그를 전전했습니다. 선수로 뛰는 와중에도 2008-09년 Berthany College의 assistant로, Ontario Blue Jays의 assosicate head coach/pitching coordinator 역할을 수행했으며, 2013년 University of Iowa팀의 volunteer assistant coach로, 시즌종료 후 Thunder Bay Border Cats팀의 pitching coach직을 맡았었습니다.

스카우팅 경력은 09-10년 Blue Jays 구단의 아마추어 드래프트 정보수집을 도왔다 전해지며, 2011년 Blue Jays 구단이 후원하는 Scout School을 수료하였다네요.


Patrick Elkins(AA Springfield Cardinals 배정)

Elkins는 카디널스 아마추어 드래프트 2010년 37라운더였습니다. Cardinals에 드래프트 된 뒤 일찍 은퇴하고 요직에 오른 이들로는 scouting director Dan Kantrovitz와 State College manger oliver Marmol이 있지요. Elkins는 유격수 출신으로, 3년간 마이너에 머물다 지난 2012년 가을 방출되었는데, Gary LaRocque는 Elkins의 선수시절을 떠올리며 field 위의 또 하나의 coach같은 선수였다 평했습니다. 그가 보좌하게 될 Mike Shildt는 2010년 데뷔 당시 Johnson City 팀의 감독이기도 합니다. 


Ricky Meinhold(A+ Palm Beach Cardinals 배정)

Meinhold는 St. Louis 로컬 출신으로, 대학시절 좌완투수였습니다. San Diego Padres 소속으로 Australian Winter League를 뛴 뒤 방출, 이후 09-10 2년간 독립리그를 전전하였습니다.

짧은 선수생활을 마무리한 뒤 Drury University, Lindenwood University의 pitching coach로 각각 1년 재직하였고, Coker College로 옮겨 2년간 pitching coach로 있었습니다. 2013 드랩 21라운더로, 포수에서 투수로 전환한지 1년 밖에 안된, Meinhold의 도움을 꽤나 많이 받았다던 Zach Loraine이 바로 이 Coker College 출신이지요. Loraine이 JC에서 뛰었으니 성장속도가 가파르다면 올해 조우할 수도 있겠네요.


Steve Moritz(A Peoria Chiefs 배정)

Moritz는 정말 안해본게 없는 이력을 가졌습니다, 한번 보시지요. 선수 출신인지, 또 어떤 포지션을 거쳤는지는 검색에 걸리질 않는군요.

06-09 시즌 Middle Georgia College의 hitting coach, strength and conditioning coach, assistant recruiting coordinator를 번갈아 맡은 뒤 09-10시즌 Darton State College의 pitching coach이자 recruiting coordinator로, 그리고 11-12시즌 Georgia College와 State University의 first base coach와 assistant recruting coordinator, catching and outfield instructor를 동시에 수행했구요. 11시즌 여름엔 Edenton Steamers 팀의 hitting coach, 12시즌 여름엔 동 팀의 head coach직을 맡았습니다. 작년엔 Kansa City Royals서 part timer로 scouting, batting practice pitcher 등등, 언제나 그렇듯 다역을 맡았다네요.



2. Jim Callis의 Cards Farm에 대한 몇가지 의견

말 그대로 Callis의 의견입니다. 제가 집에 오는 지하철에서 폰에 끄적인걸 그대로 옮겨온지라 중간중간 빠진 내용 때문에 어색한 부분이 있을 수 있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쿨럭.


Oscar Taveras: 마이너 통틀어 best pure hitter. 이미 big league ready된 상태지만 현 cardinals 로스터는 당연스레 한자리 보장될 상황이 아니다.

Stephen Piscotty: 빠따질은 이미 준비된 것 같아보인다. 시즌 말미에 승격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둘 다 문제는 자신들의 실력도 실력이지만 어떻게 이들을 라인업에 포함 시킬 수 있겠냐(cardinals outfield depth가 너무 두툼하다)는 것.

Patrick Wisdom: inconsistent하지만 power와 defense의 조합이 훌륭하다. 좋은 3루수. 앞으로 낮은 타율을 어떻게 make up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Charlie Tilson: 우리 아들들이 다닌 학교 출신이라(Callis도 Chicago 근방에 삽니다) 의도치 않게 자주 봤다. 지난 1년간 high level서 뛰는 법을 익혔을 것이다. cf로 좋은 수비를 갖췄고, 빠른 speed와 좋은 line drive swing도 돋보인다. 올해는 좀 더 꾸준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Carson Kelly: 아직 포수로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평가하기엔 너무 이르다. Mike Matheny와 Yadier Molina를 옆에 두고 있다는게 크게 도움이 될 것. 포수로 어떻게든 안착할 수 있다면 value는 분명 증가할 것이다. 3루로 뛰기엔 not quick enough. first step에 문제가 있다. 즉 range가 부족하다는 말. 하지만 strong arm과 soft hands가 돋보여 포수로 뛰기엔 충분하다. 다시 한번, 어떤 포수가 될 수 있을지 평가하기엔 너무나 이르다.

Zach Petrick: 이정도 나이의 선수가 low level을 폭격했다는건 사실 크게 돋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내 top 20 (팀별) 리스트엔 포함시켰다. 괜찮은 fastball과 curve. ok changeup. good command and control. 빅리그에서 뛸 확률이 어느정도 있다고 본다.

Rob Kaminsky: 3개의 average to plus 구질을 구사한다. 특유의 투쟁심이 돋보인다. high ceiling pitcher.

Alex Reyes: 팀내 highest ceiling pitcher. frame도 좋고, 최고 97mph까지 나오는 직구도 훌륭하다. Kaminsky만큼 다듬어진 투수는 아니다. very, very live arm. 

Chris Rivera와 Oscar Mercado도 high ceiling.

C.J. McElory도 폭발적인 스피드를 지녔다.

Steve Bean은 좋은 (수비형) 포수.

Sleeper? Cory Jones와 인민의 벽. Jones는 내가 받은 리포트에 따르면 최고 94-95mph의 직구와 very good breaking ball이 돋보인다. speed 변화에도 능숙한듯. 역시 무엇보다 건강유지가 관건이다. 인민의 벽은 외야수로 전환했는데 아마 cf 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speed도 갖추었고, arm strength도 좋다. promising bat. 물론 discpline에 보완이 필요하지만, 내 눈엔 꾸준한 line drive swing이 꽤 괜찮아 보였다.



3. ETC

Goold는 Tim Cooney가 AAA Memphis 로테이션을 예약해 놨다고 합니다.

Goold는 또한 Greg Garcia의 수비력을 "above average"라고 평했습니다. 이제 AAA서 작년과 비스무리하게 3/4/4 찍어주기만 하면 DD자리 꿰찰 수 있겠지요.

Dan Kantrovitz는 the cardinal way도 그렇지만, 그보다 scouting, player development, 그리고 front office(아마 executives들을 의미하는듯) 세 파트가 너무도 훌륭하게 혐업하고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게 팀의 성공요인 중 하나란 의견을 밝혔습니다.

Marco Gonzales의 changeup이 여러 타자들의 이목을 끌었다는군요. Gonzales는 다시 한번 자신이 타자들을 overpower하는 투수가 아님을 밝혔고, 이번 스캠에서 curve와 slider(본인은 cutter에 더 가깝다고 합니다) 향상을 목표로 두고 있다 합니다.

Jordan Swagerty가 또 뻗었다(inflammation)는 소식은 밑에 lecter님이 리플 달아 주셨지요. MRI 찍으러 가긴 했는데 크게 염려할 단계는 아닌 듯 합니다. 사실 이녀석 수술부터가 잘못된거 같아요, 수술하고 이식한 인대가 잘 녹아들지 않아(?) 문제가 있었고, 이후 재활 프로그램 수행하면서 또 문제가 생겨 waino가 거쳤던 프로그램으로 바꾼 전력도 있죠. 그리고 지난 여름 다시 통증을 느껴 조기 shut down 된 후, 마침내 불펜피칭 7-8차례 통증없이 소화하며 된건가 싶었는데, 또 말썽이군요. 이쯤되면 수술 자체가 실패했다 봐도 무관할 것 같습니다, 하아... 누가 수술한건지 알아봐야겠어요.

스캠에 1루수가 Adams와 Scruggs밖에 없어서 Greg Garcia가 1루 훈련도 하고 있다 합니다. 출전시간 보장은 확실히 받겠네요.

Goold는 오늘까지 스캠을 지켜보며 눈에 띄는 선수로,

Gaviglio(stuff looked good, and he looked bigger/stronger than expected during his live BP),

Scruggs(20파운드 감량해서 저지 사이즈를 2 사이즈 다운했을 정도로 티가 확 난다던데 부작용은 전혀 없어 보인다고 합니다),

Casey Rasmus(a strong receiver with a good feel behind the plate),

그리고 포수로 순조롭게 전환중인 Carson Kelly와 Stephen Piscotty 꼽았습니다.

담당 기자들끼리 어느 minor leaguer가 먼저 빅리그 콜을 받을까 얘기가 좀 있었는데 Eric Fornataro와 Tim Cooney가 가장 많은 표를 받았다네요.

팜과 연관된 뉴스는 아니지만 Mabry와 Matheny가 Bourjos와 new approach에 대해 이야길 나눴다는 군요. 8번타자로 나설 경우 OBP 향상에 대한 이야기였다고 전해집니다.

역시 팜 소식은 아니지만 이것저것 뒤적이다보니 Kelly가 새 changeup과 curve 연마하고 있고 motion과 arm swing도 좀 줄이면서 delivery를 좀 더 안정적으로 고쳐잡았다더군요. 가장 변화가 많은 투수인 것 같습니다. 그밖에 Goold발 뉴스들에 따르면 Wacha는 curve, Siegirst는 slider, Miller는 curve, Rosenthal은 cutter 각각 시간 들여 연습중이라네요. 아직까지 구속상승이 눈에 띄는 투수는 없는 듯 합니다.

Posted by ski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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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ck Ankiel - Part II (타자 편)


Rick Ankiel


2005년 - 투수 포기 선언

스프링캠프가 막 시작한 3월 8일, Ankiel이 등판할 예정이었던 Marlins와의 스플릿 스쿼드 경기가 비로 취소되었다. 그리고 그 날 저녁, Ankiel 은 TLR의 사무실을 찾아가 "할 만큼 했다" (I've had enough) 며 투수 포기를 선언한다. TLR도, Jocketty도, 말리지 않았다. 아니, 말릴 자격이 없었다. 지난 몇 년간 수 차례의 재활과 승격, 그리고 재발, 중간 중간 심심치않게 찾아온 부상들까지 이겨내면서 여기까지 온 Ankiel을 알고 있었기에 아무도 말릴 생각을 못했다. 3월 9일 아침, Ankiel이 메이저리그에서 투수로 은퇴한다는 보도 자료가 나갔다. 

다음은 당시 MLB.com Cardinals 담당 리포터였던 Matthew Leach의 3월 9일자 기사에서 발췌했다.

"I just felt like after Puerto Rico, I had changed mechanically...Just coming back, I couldn't seem to replicate it. This whole time, the frustration I built up into it. It just seemed like it was beginning to erode my spirits, and affect my personality, off the field as well. The frustration as it was, it was time for me to move on and pursue being an outfielder."

-Rick Ankiel, on deciding to give up pitching (March, 2005)


Ankiel의 외야수 전향은 Ankiel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가 아니었다. 야구를 관두기에 너무 강력한 그의 어깨, 그리고 운동신경이 아까웠던 TLR과 Jocketty 가 외야수로의 전향을 제안했고, Ankiel은 흔쾌히 허락했다. 이 둘은 Ankiel의 커리어와 시련에 있어서 일말의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고, 어떤 방식으로든 이 천재적인 선수의 빅 리그 복귀를 돕고 싶어했다. 스프링캠프가 끝나기 전, Ankiel은 Cardinals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고 커리어의 리셋 버튼을 누른다. 당시 그의 나이 25세 8개월. 그러나 아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측면에서 그에게 시간이 그다지 많은 것은 아니었다. 

Ankiel이 루키 리그로 내려가서 재활을 하던 2001년, TLR과 Jocketty는 Ankiel의 자신감 회복과 긴장 완화를 목적으로 Ankiel에게 종종 "DH 알바" 를 뛸 것을 제안한 바 있었다. 이 방침에 따라 Ankiel은 등판하지 않는 날은 지명타자로 뛰었는데, 44경기 118타석에서 홈런 10개 35타점 .286/.364/.638의 성적을 냈었다. 야구에 흥미를 잃지 말라고 투입했다기엔 상당히 무시무시한 성적으로, 아무리 루키 리그라지만 11타석 당 홈런 1개씩을 뽑아낸 그의 파워는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이미 Ankiel의 타격실력은 그의 짧았던 빅 리그 커리어에서도 증명이 된 바 있었는데, 데뷔 한 지 갓 한 달이 안된 4월 셋째 주에만 홈런을 2개 뽑아낸 것이었다. (결국 그는 투수로써 아주 준수한 .250/.292/.382의 타격 성적으로 2000 시즌을 마무리했다.)


수염 기르는데는 딱히 재능이 없는 듯 하다.


2005~2007: Transition

외야수 전향 첫 시즌은 성공적이었다. Ankiel은 A볼의 Quad City을 51경기만에 OPS .881을 기록하며 쉽게 졸업헀고, AA볼의 Springfield에서도 34경기만에 홈런 10개를 쳐냈다. 선구안과 컨택에 분명 문제가 있었으나, 25세에 처음으로 전문 타자로 나선 것 치고는 상당히 성공적이었다. 특히 수비에서 Ankiel의 발전은 상당히 빨랐고, AA로 승격되었을 즈음에는 이미 "ML 레벨에서 중견수를 볼 수 있을 것" 으로 기대되었다.

점점 메이저리그를 향해 한 발짝식 전진하고 있던 그는 2006년 스프링 트레이닝 캠프에서 Patellar Tendinitis (J.D. Drew가 겪었던 바로 그 무릎 부상이다) 진단을 받고 그 해 6월 무릎 수술을 받으며 시즌 전체를 날린다. 그러나 다른 선수라면 모를까, Ankiel에게 이런 정도의 Set-back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2007년을 AAA 멤피스에서 시작한 그는 초반부터 절정의 타격감을 보이며 시즌 첫 두 달만에 홈런 22개를 쳐냈다. 당초 투수에서 타자로의 전환에 희망적이지 않았던 언론에서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5월 28일 그는 Arkansas 전에서 무려 530피트 짜리 홈런을 쏘아올려서 타격코치 Rick Eckstein (그렇다, David Eckstein의 형이다) 의 입을 쩍 벌어지게 했다. 6월 16일 Ankiel이 Iowa 전에서 한 경기 3홈런을 때려내자 ESPN에서 단독 인터뷰 제의가 들어왔다. "그 날" 이후로 언론과의 접촉을 극히 불편해하던 Ankiel은 조심스럽게 수락했다. Ankiel의 절친 Tagg Bozied는 팀 동료 Ankiel에게 대해 한 마디 해달라는 부탁에 "그 친구는 자기 얘기가 언론에 실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며 멘트 요청을 거절했으나, Ankiel이 직접 "괜찮다" 고 말하자 입을 열었다.

“He’s got a ton of talent and strength. He’s a hard worker. He’s only going to get better. He works out. He eats great. He’s dedicated — 100 percent....But he is really high-strung on baseball. He’s got that dynamic in his brain that he really believes he can be successful every time he goes up there."

-Tagg Bozied, on his teammate Ankiel

Ankiel의 죽마고우이자 고등학교 때부터 같이 야구를 했던 친구 Chad의 2001년 인터뷰에 따르면, Ankiel은 어렸을 때부터 팀에서 그 누구보다 일찍 운동하러 (고교시절 매일 아침 6시반에 Work-out을 했다고 한다) 나오는 선수였으며, 자기가 여태껏 본 어떤 선수들보다 Hard-worker였다고 했다. TLR, Adam Kennedy, Matt Morris 등도 공개적으로 Ankiel의 Work-Ethic을 크게 칭찬한 바 있었기에 Ankiel이 열심히 노력하는 선수라는 사실은 그다지 놀라울 게 없다. 그러나 Ankiel이 스스로에게 얹는 부담감 측면을 짚어냈다는 측면에서 Tagg Bozied의 코멘트는 주목할만 하다. 매 타석 스스로에게 잘 해야한다는 압박감을 주는 선수가 10번 중 7번은 실패하게 마련인 직업을 선택했으니, 힘들 수밖에 없었다. 

당장 Ankiel을 보고싶었던 팬들의 성화가 있었으나, TLR와 프론트는 Ankiel에게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고, "Give him all the time he needs" 라며 Ankiel에게 여유를 주었다. Ankiel은 그 사이 전반기를 무사히 마쳤으며, 102경기에서 32홈런을 때려내고 리그 최다 득표 선수의 영예를 안으며 마이너리그 올스타에 뽑혔다. 투수로 마이너리그를 지배했던 그가 타자로 다시 마이너리그를 제패하는 데에 걸린 시간은 8년에 불과했다.

Rick Ankiel's Minor League Track Record (Batting)

YearAgeTmLgLevGPAABRH2B3BHRRBISBCSBBSOBAOBPSLGOPS
2005252 Teams2 LgsA-AA8536932151831712175003766.259.339.514.853
200525Quad CitiesMIDWA5122318533501011145002737.270.368.514.881
200525SpringfieldTLAA341461361833701030001029.243.295.515.809
200727MemphisPCLAAA102423389621041533289432590.267.314.568.883


그 날 #2 (2007년 8월 9일) 

Padres와의 홈 3연전. TLR이 무려 6년 반 만에 선발 라인업 카드에 Rick Ankiel이라는 이름을 써넣었다. 다만 9번타자 투수가 아닌 2번타자 우익수로였다. Ankiel이 지난 몇 년간 어떻게 커리어를 연장해왔는지 잘 알고있었던 동료들은 Ankiel 어떤 데뷔전을 가질지 기대할 수 없었다. 아니, 기대하기 두려워했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다만 시즌 초부터, 아니 어쩌면 2001년부터 그를 기다려왔던 홈팬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고, Ankiel의 첫 타석부터 그에게 열광적인 박수를 보냈다.

첫 세 타석에서 안타를 치지 못한 Ankiel이 7회말 2사 2,3루에서 4번째 타석에 들어섰다. 릴리버 Doug Brocail의 슬라이더가 몰렸고 Ankiel의 방망이가 돌았다. 우측 담장을 넘는 3점 홈런. 수줍고 조용한 Ankiel 도 감정을 완전히 억제할 수는 없었다. 베이스를 돌며 그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하지만 아마 Cardinals 팬들이라면 Ankiel보다 덕 아웃에서 마치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웃으며 행복해하던 Tony La Russa의 모습이 더 신기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La Russa가 이 정도로 기쁨을 표현하는 모습을 본 것은 딱 3번 있었는데, 나머지 두 번은 2006년 WS 우승 때와 2011년 6차전 Freese의 홈런 때이다.  동영상 링크 

(동영상 링크의 중계를 들으시면 Fox Midwest 의 Al Hrabosky가 "혹시 Ankiel을 거르고 Pujols를 상대할 가능성은 없을까요?" 라며 시답잖은 농담을 하는 걸 감상하실 수 있으며, 혹시 이 영상을 안보셨던 분이 있다면 꼭 Ankiel의 curtain call 장면까지 보시길 바란다.


그가 돌아왔다.


이틀 후인 8월 11일, Dodgers 전에서 Ankiel은 1회 Derek Lowe의 싱커를 걷어올려 투런 홈런을 작렬했고, 7회에는 Roberto Hernandez의 패스트볼을 넘기며 타자 전향 후 3경기만에 멀티홈런 게임을 만들어냈다. 이미 홈런을 두 개 친 상황에서 그는 타구판단 실수를 미친듯한 운동능력으로 극복하는 Reverse-Over-the-Shoulder 캐치로 팬들을 감동시켰으며, 이미 Ankiel의 복귀 자체에 잔뜩 흥분해있던 Cards 팬들은 High-Intensity 수비와 폭발적인 장타력을 보여주는 Ankiel을 금세 Fan Favorite으로 흡수해버렸다. 

그 다음 주에 Rick Ankiel은 Wrigley Field에서 라이벌 Cubs를 상대로 7회 쐐기 홈런을 치면서 팀 승리를 이끌었고, 8월 31일에는 자신을 상대하려고 올라온 좌완 릴리버 Eddy Guardado를 상대로 7회 자신의 데뷔 첫 만루홈런까지 쳐냈다. 9월 2일에 벌어진 Reds와의 홈 3연전에서는 무려 2홈런 9타점을 몰아쳤다. 팀 타선이 폭발한 9월 6일 Pirates 전에서는 혼자 2홈런 7타점을 기록하며 팀의 16:4 대승을 이끌었다. 언론에서는 Ankiel을 Babe Ruth 에 비교하기 시작했고, Robert Redford 주연의 영화 제목이자 한때 Ken Griffey Jr.의 별명이었던 "The Natural"이란 말이 Ankiel을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비록 9월 한 달간 팀이 무려 12연패를 당하면서 한  때 .358이었던 타율은 결국 .285에서 마감했지만, Ankiel의 2007시즌 마지막 두 달간의 활약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2008시즌 - The Comeback Kid

Ankiel의 외야수 커리어에서 몇 안되는 풀 타임 주전 시즌. Jim Edmonds가 떠난 Busch의 광활한 센터 자리에는 2005년 드래프트에서 건진 차세대 중견수 Colby Rasmus가 차근 차근 단계를 밟고 올라오고 있었다. 그 사이의 Gap을 메우기에 "자체생산" Ankiel은 아주 적절한 선수였다. Schumaker - Ankiel - Ludwick 로 구성된 당시 Cardinals 외야진은, 세 선수가 모두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내면서 Edmonds의 공백을 최소화했다. Schumaker는 3할을 쳤고, Ludwick은 Break-out 시즌을 보내며 올스타에 선정되었다. 그리고 Ankiel은 전반기에만 무려 20홈런 50타점을 기록하며 "이러다가 40홈런을 치는게 아니냐" 는 반응도 있었다. 

Ankiel은 2번부터 8번까지 많은 타순을 소화헸으나 (이건 TLR의 팀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120경기 중 75경기에서 클린업 (주로 4번) 을 쳤다. 2007~2008시즌의 성공의 가장 큰 원인은 그의 재능 자체였겠지만, 필자는 2006년 Ankiel이 부인 Lori Ankiel을 만나 결혼에 성공하고 정신적으로 그를 지켜줄 반려자를 만난 것이 결정적이지 않았나 싶다.

2009시즌 

2009년 5월 5일, Ankiel은 Phillies 전에서 Pedro Feliz가 친 좌중간 큰 타구를 워닝 트랙 근처에서 다이빙 캐치로 멋지게 잡아낸다. 그러나 타구를 잡자마자 머리를 펜스에 크게 박은 뒤 쓰러져 관중들은 물론 경기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긴장시켰다. Ankiel은 의식을 잃지는 않았으나 잠시 펜스 앞에 누워있다가 들것에 실려나갔는데, 실려나가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주변을 안심시켰다. 큰 부상이 있지는 않았으나 구단 측에서는 Ankiel을 DL에 올리고 휴식을 취하게 했다.

정말 큰일 나는 줄 알았다.


이미 크게 좁아졌던 Ankiel의 입지는 부상 이후 더더욱 안좋아졌다. 오프시즌에 그는 연봉 조정에서 2.8M의 연봉을 받아내 구단 입장에서 "그냥 벤치에 데리고 있기에는 부담스러운 4th OF가 되어버렸고, 좌투수 상대로 극악의 스플릿을 기록하면서 TLR의 플래툰 기용을 합리화시켰다. 이 와중에 2005년 드래프티인 Colby Rasmus는 어느 새 Cardinals의 차세대 중견수로 자리를 잘 잡아버렸다. Ankiel은 커리어 최다인 122게임에 출장했으나 받은 타석 수는 404타석에 그쳤고, Holliday 영입 이후에는 사실상 벤치로 밀려버렸다. 타석에서 스스로에게 주는 압박감 때문에 조급했던 Ankiel은 나가지 말아야 할 공을 건드리기 시작했고, 결국 .285의 창피한 출루율로 시즌을 마쳤다.  

2009년 정규시즌이 끝나고, Ankiel은 10년간 함께한 Cardinals와 이별했다. 그 해 오프시즌, Royals과 계약하면서 Ankiel은 지역 유력지인 St. Louis Post-Dispatch에 Cardinals 팬들을 향한 무려 Half-page짜리 감사 광고를 냈다. 뛰는 기간 내내 언론과의 접촉을 몹시 불편해하던 Ankiel이었기에 모두를 놀라게 한 제스처였다. 

Many thanks to Cardinals fans and the city of St. Louis for your support and cheers over the years. It was a privilege and an honor.

- Rick Ankiel's personal ad on STL Post Dispatch



2011~2012 - Nationals 시절

오프시즌에 Ankiel은 Nationals와 1.5M 짜리 (+ 인센티브) 1년 계약을 체결하는데, 여기에는 Ankiel이 마이너리그에서 타자 수업을 받던 시절 그의 인스트럭터였던 Jim Riggleman (당시 Nats 감독) 의 입김이 컸다. Cardinals 마이너리그 시스템의 인스트럭터로 일하던 Riggleman은 TLR을 직접 찾아가 "이 팀의 최고 타자 유망주는 Ankiel이다" 며 그의 스윙과 재능을 극찬한 바 있었고, 2008년 Ankiel이 Break-out 시즌을 가지며 화려하게 부활하자 누구보다 앞장서서 그의 복귀를 환영한 바 있었다. 

Riggleman과 재회한 Ankiel은 다시 한 번 좋은 시즌을 보냈다. 저렴한 연봉을 감안해서 본다면 Ankiel의 Upside는 꽤나 괜찮았다. 그는 중견수를 소화할 수 있는 4th OF였으며, 우투수 상대로 평균 이상의 파워를 지니고 있었고, 어깨는 확실히 리그 정상급이었다. 또한 어느새 빅 리그 12년차의 베테랑이 된 그는 꼬맹이 Bryce Harper가 콜업되었을 때 그에게 많은 조언을 아끼지 않았으며, 워낙 조용한 선수라 트러블을 일으키지도 않았다. 그러나 2012년에는 시즌 내내 타격 슬럼프로 고생을 하자 그를 방출하고 싶지 않았던 Nats 단장 Rizzo가 Ankiel을 DL에 올리려고 했으나, Ankiel은 이를 거부하고 자유 계약 선수가 되었다.


Nats로 간 것은 Ankiel에게 잘 한 결정이었다.


Rick Ankiel - 첫 끗발이 X 끗발?

2007년 8월 9일 데뷔전에서 쓰리런 --> 첫 한 달간 23경기 9홈런 29타점 .358/.409/.765

→ 이후 9월 6일~시즌 최종전까지 --> 24경기 2홈런 10타점, 삼진 20개, .220/.250/.330

2010년 (Royals 이적 후) 개막 후 첫 2주간 11경기 .308/.349/.615, 3홈런 9타점 2루타 3개. 그리고 부상.

→ 트레이드 당할 때까지 16경기 .226/.293/.358, 16경기 1홈런 6타점 2루타 4개, 5볼넷 18삼진

Braves로 트레이드 된 직후 --> Turner Field 데뷔전에서 Johan Santana 상대로 2타점 2루타 

→ 그 이후 45경기 2홈런 7타점 .205/.321/.321

2013년 Astros 개막전 정규시즌 첫 타석에서 3점홈런 

→ 이후 14타석에서 12삼진 --> 이후 .183/.222/.433 60타수 11안타 (4홈런, 2루타 3개), 3볼넷 34삼진

2013년 Mets 이적 직후 첫 9경기 .323/.364/.710, 31타수 10안타 2홈런 6타점 

→ 그 이후 11경기 35타수 2안타



냉정하게 평가해보자. 외야수 / 타자로써의 Rick Ankiel은 기량이 정점일 때 5할 승률 팀의 주전 혹은 컨텐더 팀의 4th OF였으며, 기량이 퇴보하기 시작한 이후에는 "Pop와 강견을 제공하는 벤치 외야수" 수준에 그쳤다. 풀 시즌 25홈런을 친 것은 경이적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투수 하다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 선수 출신 치고는" 이라는 단서가 붙을 때 얘기였다. 그는 야수로써 뛴 7년간 통산 3.9 WAR를 적립하는 데 그쳤으며, 풀 시즌을 뛰며 1.0 이상의 WAR를 기록했던 것은 (2007년의 광분은 제외) 2008년과 2011년, 두 차례에 불과했다. 

타격에서 Ankiel의 문제는 너무 간단헀다. 컨택트가 안됬다. 마이너리그 어느 레벨에서도 Ankiel은 3할을 쳐 본 적이 없으며, 그의 스윙은 정확도 상실을 어느 정도 감수하고 파워에 더 집중한 스윙이었다. 2007년~2008년의 성공은 타자 Ankiel에 대한 분석이 충분히 되지 않은 상황에서 나온 것이었으며, 투수들이 Ankiel에게 어떻게 승부하면 되는지 알게 된 이후에는 Ankiel은 더 이상 풀 타임 보장을 받을만한 공격력을 보여줄 수가 없었다. 변화구에 대한 약점도 분명했을 뿐더러, 스트라이크 존 바깥쪽에 높게 형성되는 패스트볼에 Ankiel은 사족을 못썼는데, 이 약점은 2013년까지도 고쳐지지가 않았다. 

The kid has more guts than most people. Maybe someone needs to say that to him once in a while."

-David Chase, the GM of Memphis Redbirds (2007)

Ankiel의 Plate Discipline 문제는 Tagg Bozied, Rick Eckstein이 지적한 Anxiety 이슈와도 큰 관련이 있었다. 그는 배팅 케이지에서 엄청난 타구들을 양산해내다가도 막상 압박이 있는 상황에서는 나쁜 공에 손이 나가기 시작했다. (통산 득점권 K% 28.4%, 주자 없을 때는 25.9%). 지난 5년간 Ankiel의 wRC+는 단 한 번도 리그 평균을 넘어본 적이 없으며, 그의 Z-Contact %인 66.1%는 실로 극악의 수치인데, 이에 대해서는 Fangraph의 Dave Cameron이 제대로 분석해놓은 글을 참조하셔도 좋을 것 같다. (요지는 리그 최악의 Z-Contact %, 즉 스트라이크 존 안에 들어오는 공에 대한 컨택율이 리그에서 가작 안좋았던 타자도 80%에 육박하는 반면, Ankiel의 스탯은 지나치게 비정상적이었다는 점이다.)

Rick Ankiel - Plate Discipline (Last 5 Years)

 

 K%

Z-Contact %

SwStr % 

 wRC+

 2009

 24.5%

 85.2%

 15.0%

 75

 2010

 29.6%

 76.4%

 17.8%

 92

 2011

 23.1%

 83.2%

 12.9%

 82

 2012

 34.5%

 76.5%

 17.9%

 82

 2013

 44.1%

  66.1% 

 21.2%

 79


두번째 문제는 Ankiel의 소위 "좌상바" 기질이었다. Ankiel은 데뷔했던 2007시즌에는 두 달간 좌투수 상대로 무려 홈런 7개 (11개 중) .391/.400/.783의 말도 안되는 리버스 스플릿을 보였는데, 이는 오래가지 못했다. 

점점 반쪽 선수가 되어버린 Ankiel (2008~2011년 4시즌간 좌투수 상대 성적)

2008년 116타석 7홈런 15타점 6볼넷 24삼진 .224/.268/.448

2009년   98타석 0홈런   8타점 2볼넷 29삼진 .234/.265/.298

2010년   64타석 0홈런   4타점 6볼넷 23삼진 .164/.270/.182

2011년   88타석 1홈런   9타점 6볼넷 21삼진 .228/.282/.304

Ankiel의 외야수로써 본격적으로 뛰기 시작한 것은 2005년으로, 이는 Ankiel이 은퇴를 앞둔 지금도 아직 채 외야수 10년차가 아니라는 말이 된다. Ankiel은 기본적으로 외야수들에게 있는 타구 방향 판단과 추적 센스가 있는 선수가 아니었으나, 판단 미스들을 뛰어난 운동신경으로 극복해내는 스타일이었고, 노력과 연습을 통해 빅 리그 중견수로 발돋움했다. Ankiel 은  몸을 사리지 않는 다이빙 캐치로 많은 박수를 받았으나, 베테랑 외야수들에게는 어렵지 않은 플레이들을 어렵게 해내는 경향이 강했다. 



수비에서의 Ankiel는 공을 잡기 전과 공을 잡은 후가 정말 판이하게 달랐다. 데뷔 초기 메이저리그에서 주전 CF로 뛰기에 그의 타구 판단력과 중견수로써의 Field Coverage는 좋은 편이 아니었으나 이를 뛰어난 운동신경과 주력으로 극복해냈다.  풀타임 첫 해인 2008년, 그는 중견수 자리에서 UZR -6.6을 기록했으며 좌익수 자리에서도 UZR -5.3을 찍었다. 그러나 수비에서 Ankiel은 경험이 쌓이면서 지속적인 발전을 이루었고, 2011년 Nationals에서 그는 중견수 자리에서 UZR +6.1을 기록했다. 그리고 그의 어깨는 백문이 불여일견. (동영상 링크마운드에서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했던 그는 이제 광활한 외야에서 베이스를 향해 스트라이크를 쏘아대기 시작했다. (2011년 보살 리그 3위 (Kemp-McCutchen-Ankiel), Range Factor 리그 3위 (Gomez-McCutchen-Ankiel.)  

HGH 스캔들

2007년 New York Daily News에서 Ankiel이 인간 성장 호르몬 (HGH = Human Growth Hormone)을 복용했다는 기사를 보도하면서 Ankiel 의 화려한 복귀에 커다란 오점이 남았다. Ankiel 은 "당시 나는 재활 중이었고, 의사의 처방전을 받아서 복용하고 있었다" 고 진술했고, 당시 HGH가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 금지한 물질이 아니었기에 스캔들은 더 커지지는 않았다. 당시 Ankiel은 팀 동료 Troy Glaus로부터 온라인 HGH 및 스테로이드 사이트를 소개받았다고 밝혔다. Ankiel 이 몇 년간 고생한 것을 인정하며 그에게 동정론을 펼치는 이들도 있었으나, 어떤 이들은 "의사의 처방전을 받았으면 왜 굳이 불법 사이트에서 구매를 했느냐" 며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이 부분은 Ankiel의 커리어에서 어찌 보면 가장 안타까운 얼룩 중 하나이다.



총평 - Re-Creating Yourself.

야구는 야구 선수들에게 생계수단이다. 우리는 때때로 Baseball-Reference와 Fangraph에서 제공하는 화려한 숫자의 향연에 취해 이 기본적인 사실을 종종 망각할 때가 있다. Player Stats에 2012년도 이후로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면 우리의 기억 속에 그 선수는 2012년 이후로 더 존재하지 않는 것 같지만, 삶은 계속 지속된다. Ankiel의 투수로써의 기록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2001~2004년, 보여지지 않는 곳에서 Ankiel은 외로운 사투를 계속했다. 

Ankiel에게도 야구는 생계 수단이었다. University of Miami 진학을 포기하고 거액의 계약금을 받았을 때부터 그에게 야구는 생계 수단이었다. (좀 미안한 표현이지만) 풍비박산이 나서 뿔뿔히 흩어진 가족, 중소기업에서 비서로 일하면서 살아오며 뒷바라지한 어머니, 연락이 잘 안되는 이복 형제들, 그리고 올스타급 전과를 가진 아버지. 만 18세에 전미 최고의 고교야구 선수로 프로에 입문했고, 2000년 10월 3일 (그 날 #1) 전까지 단 한 차례도 질주를 멈춘 적이 없었던 Rick Ankiel. 야구만 알고 달려온 이 수줍음 많고 예민한 20대 청년은, 야구가 주는 시련에 아파하면서도 야구를 놓을 수가 없는 딜레마에 빠져서 20대 초반을 보냈다. 야구를 그만둔다면 그는 대학 졸업장을 가지지 못한 20대 실업자에 불과했고, 그에게는 서포트를 기대할 가족들보다는 챙겨드려야 할 어머니가 있었을 뿐이었다. 



투수에서 타자로의 드라마틱한 컴백을 이뤄낸 Ankiel의 스토리는 이미 언론에 수백차례 회자되어 이제 많은 야구팬들에게 익숙하다. Ankiel은 스포츠 저널리즘에서 늘 침을 질질흘리는 소재 중 하나인 "불운/비운의 천재"에 너무도 걸맞는 선수였고, 마치 만화 주인공처럼 극적인 커리어를 보냈기에 그의 복귀 스토리는 팬들의 Soft spot을 자극하는 매력적인 헤드라인이었다. 그러나 Ankiel의 딜레마와 고통은 사실 매년 수십, 수백명의 마이너리거들이 겪는 시련과 그 근본적인 면에서 큰 차이가 없다. 매년 많은 선수들이 자신의 인생을 바쳐서 쫓아온 빅 리거의 꿈을 중간에서 멈춰야하는지, 더 쫓아가야하는지 하는 딜레마에 빠지며, 갑작스런 (회복 불가능 수준의) 제구 난조 또한 생각보다 많은 투수들이 겪는 문제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Ankiel에게는 보통 실패한 투수들에게서 찾기 힘든 "빅 리그에서 풀 시즌 30홈런 포텐셜"의 타격 재능이 있었고, 이 재능을 단시간 안에 끌어올려 "기량"과 "실력"으로 만들어낸 절박함이 있었을 뿐이었다. 

어쩌면 Ankiel은 포기를 하지 않은 게 아니고,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 그리고 좋아하는 야구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 커리어를 이어나갈 수 있던 재능의 소유자 Ankiel은, 그런 의미에서 행운아가 아니었을까. 커리어 연장을 통해 그는 (루키시절 계약금을 포함해) 커리어 내내 1500만 달러 가까운 돈을 벌었고 이는 일반 사람들은 평생 만져보지 못하는 액수의 재산이다. 데뷔 15년차 시즌인 2013년도 어찌어찌 저니맨으로 메이저리그에서 남아있었다. 투수 시절 그가 누렸던 짧지만 화려했던 명예와 스포트라이트, 듣기만 해도 부담스러운 칭송들을 생각하면 그의 지금 모습은 남루하기 짝이 없다. 기록중인 성적, 선수로써의 위치, 모든 면에서 참으로 초라하다. 그러나 30대 중반의 야구인이자 사회인, 혹은 인간 Rick Ankiel 에게는 감히 초라하다는 말, 불운하다는 말을 함부로 붙이고 싶지가 않다. 



에필로그 

2010년 가을은 Cardinals가 Reds에 밀려 포스트시즌에 나가지 못했던 해였기에, 필자는 어쩌면 차라리 잘됬다는 마음으로 오랜만에 감정적 동요 없이 가을야구를 볼 생각에 은근히 부풀어 있었다. 저녁에 집에 와서 TV를 켜니 Braves와 Giants의 NLDS 2차전이 진행 중이었고, 스코어는 이미 4:1 Giants 리드. 전날 Lincecum에게 호되게 당한 Braves 타선이 Cain을 상대로 여전히 쩔쩔매고 있었다. 리플레이와 광고가 대충 끝나고 7회 선두타자로 익숙한 이름 Rick Ankiel이 등장했다. 결과는 어느 순간부터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버린 시원한 헛스윙 삼진.

8회초 Braves가 Romo-Wilson 계투진을 흔들어 극적으로 4:4 동점을 만들고 계속된 1사 2루 찬스에서 Ankiel 이 또 등장했다. 이번에는 밸런스가 흐트러진 채로 공 밑을 때리며 좌익수 플라이. 경기는 Kimbrel과 Wilson의 삼진쇼로 넘어가면서 순식간에 연장 11회까지 흘러갔고, 연장 11회 1사 주자 없이 Ankiel에게 이 날 5번째 타석이 돌아왔다. 볼카운트 2-2에서 Ramon Ramirez의 94마일짜리 패스트볼이 살짝 몰렸다. Ankiel의 방망이가 돌았고 공은 AT&T 파크 밖 바다에 떨어졌다. 이 역시 어느 순간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버린 "맞는 순간 바로 아는" 특유의 호쾌한 홈런이었다. 그렇게 Ankiel은 자신의 처음이자 마지막 포스트시즌 홈런을 쏘아올렸다. 동영상 링크


왜 더 활짝 웃지 못하니. 왜.


TV 카메라가 Ankiel이 주먹을 쥐며 다이아몬드를 도는 모습과 Braves 덕아웃의 광적인 분위기를 번갈아 비추었고, 그 짧은 몇 초간 많은 생각이 필자의 머리를 스쳐갔다. Rick Ankiel. 현대 Cards 팬들에게는 더할 수 없는 애증의 이름. 정확히 10년 하고도 5일전, Ankiel은 야구 역사상 가장 창피한 모습으로 포스트시즌 무대를 떠나야 했다. 세상을 다 가진 듯 보였던 만 스무 살짜리 투수. 그가 던졌던 94마일 팔팔한 패스트볼에서 보였던 창창한 앞날은 온데간데 없었다. Old Busch Stadium의 따뜻한 오후 햇살이 참으로 야속해보였던 바로 그 날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Ankiel을 가슴에 묻지 않았는가. 그리고 내가 보고 있는 이 선수는 지금 나이 서른 살의 8번타자 중견수이며, 그 누구도 이 선수의 미래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스윙하자마자 손가락으로 Braves 덕아웃을 가리키며 빠른 속도로 베이스를 돌던 Ankiel의 입가에 웃음이 희미하게 보였다. 긴장과 기쁨을 동시에 머금은 그 웃음에 10년전 마운드에서 보았던 어린 투수 특유의 자신감과 배짱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Braves는 이 경기를 잡아내고도 홈에서 2경기를 내리 지면서 시리즈를 패배했고, Ankiel 에게 그 날 이후로 더 이상의 포스트시즌 안타는 없었다.

감동? 눈물? 인간 승리? 인생 역전? 글쎄...그 순간을 Ankiel이 평생동안 달고 지내왔던 그렇게 무겁고 드라마틱한 단어들로 수식하고 싶지는 않다. 아쉬움? 미련? 서러움?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그냥 고개만 끄덕여질 뿐이다.

연장 11회말을 Farnsworth가 무사히 막아내고 카메라가 Player of the Game으로 Rick Ankiel 을 비춘다. 어느 새 서른이 넘어 얼굴에 연륜이 나타나는 Ankiel 이 센터에서 마운드를 향해 무표정으로 달려오며 동료들과 시리즈 동점을 축하한다. 10년 전 NLDS 마운드에서 고개를 떨구었던 그 젊은 청년의 모습을 나도 모르게 찾고 있음을 느끼지만, 더 이상 그에게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바다 건너 먼 나라에서 그의 소식을 오랫동안 지켜봤을 뿐인, 한 면식없는 팬으로써, 그에게 이런 순간이 온 것에 괜히 감사하다.

이래서 야구를 보는구나, 하고 새삼 느낀다. 

Did you know...

  • 역사상 포스트시즌 선발 등판 + 포스트시즌에서 야수로써 홈런을 기록한 선수는 딱 두 명이다. Babe Ruth와 Rick Ankiel.
  • 선발 투수로 40차례 이상 등판하고 야수로 통산 홈런을 40개 이상 친 선수 역시 Babe Ruth와 Rick Ankiel 뿐이다.
  • 커리어 첫 홈런은 투수로 치고, 이후 야수로 또 홈런을 친 선수 역시 1947년 이후 Ankiel이 처음이다.
  • Ankiel은 2009년에 부인 Lori Ankiel와 함께 자기 이름을 내건 Rick Ankiel 와인을 런칭했는데, 2009년 이후로는 와인 관련 기록이 별로 없다. 부인 Lory Ankiel은 NFL Miami Dolphins의 치어리더 출신이다.
  • 드래프트 직후 Ankiel을 Busch Stadium으로 초청해 Work-Out을 시켰던 그 날, Ankiel은 마운드에 오르기도 전에 배팅 케이지로 먼저 가 타격부터 했다고 한다. Matt Morris는 그 날을 Ankiel이 쳤던 홈런을 회상하며 "어쩌면 그 때부터 타자를 했어야했는지도 모른다" 며 껄껄 웃었다.
  •  어려서부터 Braves 팬으로 자란 Ankiel은 2009년 Cardinals가 John Smoltz를 영입했을 때 그에게 다가가 그가 자기의 우상이었다고 말하려했다. Smoltz가 먼저 Ankiel에게 다가와 말했다. "자네가 한 일은 정말 대단한거야." (“I’ve got to give you props for what you have done.")
  • 2001년 스프링캠프를 앞두고 TLR과 Jocketty는 Ankiel에게 쏟아질 언론의 관심이 (전년도 Melt-down에 관한) 어린 투수에게 얼마나 부담스러울 지 알고 있었다. TLR은 Ankiel을 불러 "어차피 아무리 인터뷰를 거부해도 계속 괴롭힐 게 분명하니, 차라리 캠프 첫 날 기자회견을 해서 할 얘기 다 해주고 트레이닝을 시작하자" 고 말했다. 스프링 캠프 첫 날,  Jocketty와 TLR은 Ankiel을 가운데에 두고 나란히 앉아서 Ankiel이 손으로 직접 쓴 Statement (성명) 를 발표한 뒤 기자회견을 했다.  이 일이 있고 며칠 후 Ankiel은 그 기자회견이 있던 날 아침, Jocketty가 부친상을 당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Ankiel의 프레스 컨퍼런스를 모두 마친 6시간 뒤에야 아버지의 상을 치르러 갔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크게 감동했다고 한다.


by Doovy

Posted by Doovy+
:

Cardinals를 10년 이상 지켜보신 분들이라면 아마도 공감하실 수 있을 것 같은데, 주인장은 여전히 구단의 팜 시스템이나 드래프트 및 유망주 육성 능력에 대해 쏟아지는 칭찬이 어색하게 느껴진다. 언제까지나 똥팜일 것 같던 팜 시스템이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draft & development beast에 model franchise라니...


Jeff Luhnow가 드래프트를 지휘하기 시작한 것이 2005년이다. 이 시리즈에서는 Jocketty의 재임기간 중에서 Luhnow가 등장하기 이전인 2004 시즌까지의 팜 시스템 및 드래프트를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참고로, Luhnow의 드래프트에 대해서는 다음 오프시즌에 skip님께서 다뤄주실 예정이다.



Walt Jocketty's Farm System & Draft(1): 1995 Season

(Baseball-Reference 1995 시즌 페이지)


이 시리즈를 1995년부터 시작하는 것은 어쩌면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다. Walt Jocketty가 단장으로 취임한 것이 1994년 10월의 일이긴 하나, 팜 시스템과 드래프트에 관여한 주요 인사들은 그 이전부터 재직했기 때문이다. 당시 프런트의 핵심 인물들을 보자.


자료: BA Executive Database


구단주는 August Busch 3세였고, 사장은 Mike Lamping이었다. Jocketty와 비슷한 시기에 사장으로 임명된 Lamping은 이후 Jocketty 재임기간 내내 사장으로 재직하다 Jocketty가 해고된 이듬해인 2008년에 역시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다. Jocketty 밑의 부단장으로는 Jerry Walker라는 인물이 있었다.


(Marty Maier, 당시 Scouting Director)


당시의 Scouting Director는 Marty Maier였는데, 이미 94년부터 디렉터가 되어 드래프트를 지휘한 바 있었다. 선수 육성 책임자로 보이는 인물은 Director of Player Development 직함을 가지고 있는 Mike Jorgensen인데, 그는 BA의 데이터베이스에 의하면 1992년부터 이 자리를 지켜 왔다. BA의 프런트 DB는 가다가다 오류가 보이는데, 이 시기는 주인장이 메이저리그를 안보던 시기라 기억도 없고 검증할 방법이 마땅치 않으니 일단 그냥 인정하도록 하겠다. 유일한 방법은 이베이 같은 곳에서 과거의 구단 공식 Yearbook을 모두 구입하는 것이 아닐가 싶은데 그러기에는 돈이 좀... -_-;;; 어쨌거나, Jorgensen은 이후에도 한참동안 이 자리를 지켰으며, 현재는 Special Assistants to the GM 으로 여전히 프런트에 남아 있다.


당시의 산하 마이너리그 팀은 모두 7개였는데, 지금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특히 SALLY에도 팀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94년까지만 해도 AZL에도 루키 팀을 가지고 있었으나, 95년으로 넘어오면서 없어졌다.


AAA :  Louisville Redbirds (American Association)

AA : Arkansas Travelers (Texas League)

A+ : St. Petersburg Cardinals (Florida State League)

A : Savannah Cardinals (South Atlantic League), Madison Hatters (Midwest League)

A- : New Jersey Cardinals (NY-Penn League)

R : Johnson City Cardinals (Appy League)


당시에는 PCL, IL 말고도 American Association이라는 AAA 레벨 리그가 있었다. 이 리그는 무려 1946년부터 있었던, 나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리그였지만, 1997 시즌 후 폐지되고 소속팀은 PCL과 IL에 흡수되어 지금과 같은 AAA 양대리그가 확립되었다. 이후 American Association은 뜬금없이 독립리그로 2000년대 중반에 부활하는데, 이는 이 글과 전혀 상관이 없는 이야기이므로 생략한다.



1995년 시즌 개막 전, Cardinals의 BA TOP 10 유망주는 다음과 같았다.

(괄호 안은 BA 전미 TOP 100 리스트 순위)


1. Alan Benes, rhp (14)

2. Brian Barber, rhp (47)

3. Bret Wagner, rhp (84)

4. Terry Bradshaw, of

5. John Mabry, of

6. Corey Avrard, rhp

7. Allen Battle, of

8. Jay Witasick, rhp

9. Aaron Holbert, ss

10. Dmitri Young, 1b/of


TOP 100 리스트에 세 명 밖에 들지 못하긴 했으나 아래 순위에 Mabry, Witasick, Young 등이 있는 것을 보면 팜이 꽤 괜찮아 보인다. BA는 이당시 Cards의 팜을 메이저리그 28개 구단(아직 Rays나 DBacks가 생기기 전이다) 중 8위에 랭크하여 역시 후한 평가를 내렸다. Jocketty 팜 = 똥팜 이라는 인식은 사실 잘못된 것이다. 90년대의 팜 시스템은 그럭저럭 괜찮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고, 뒤에 보겠지만 Ankiel이나 Drew를 지르는 등 투자에도 인색하지 않았다. 이 팜 시스템이 대책없는 똥팜으로 전락한 것은 Jocketty가 유망주를 죄다 팔아서 메이저리그 팀에 Dynasty를 구축하려고 했던 2000년대 들어서의 일이다.


Alan Benes는 다들 아시다시피 Andy Benes의 동생으로, 당시만 해도 마이너리그를 대표하던 최고의 영건 중 한 명이었다. 93년 1라운드 지명으로 Cards에 입단한 그는 94년 1년 동안 Sabannah에서 St. Petersburg, Arkansas를 거쳐 Louisville까지 무려 4개의 레벨에서 뛰었는데, 30경기에 선발 등판, 205.2 이닝을 던져 17-3, 2.28 ERA, 3.54 K/BB라는 압도적인 스탯을 찍으며 마이너리그를 초토화시켰다. 프로 풀타임 1년차치고는 이닝수가 꽤 많은데, 당시는 요즘처럼 철저한 workload 관리 같은 개념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어쨌거나 그는 시즌 말미에 AAA에서 두 경기에 등판하여 15.1 이닝에서 16 삼진을 빼앗으며 단 5실점으로 호투하여 엄청난 기대를 받았다.


Brian Barber는 1991년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Cards에 지명된 고졸 우완투수로, 93년부터 95년까지 계속 BA TOP 100 리스트에 들었을 만큼 역시 각광받던 유망주였다. 94년에는 AA, AAA에서 121.1 이닝을 던지며 149삼진을 기록하여 무려 9이닝 당 11개가 넘는 뛰어난 탈삼진 능력을 뽐내고 있었다. Barber는 95년에 메이저에 데뷔하지만, 제구불안과 함께 장타를 많이 허용하여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모습을 보이다 1996 시즌 이후 방출되었고, 결국 2000년을 끝으로 은퇴하였다.


Bret Wagner는 바로 직전의 1994년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전체 19순위)에 지명된 투수였다. 입단 후 A-, A 레벨에서 뛴 10경기에서 2.08 ERA, 1.6 BB/9, 8.5 K/9를 기록하여 역시 기대를 모으고 있었다. 이후 Jocketty의 전형적인 유망주 트레이드 칩이 된다.


Terry Bradshaw는 1990 드래프트 9라운드 지명으로 입단한 중견수였다. 94년에 AA와 AAA에서 14홈런, 18도루, .803 OPS를 기록하며 나름 파워와 스피드를 보여주긴 했는데... 이후 메이저리그에서 기회를 잘 잡지 못하고 마이너리그 베테랑으로 전락하여 결국 1999년에 은퇴했다. 지금은 KC 산하의 마이너리그 타격 코치로 재직 중이다.


John Mabry는 94년에 이미 메이저리그에 데뷔하여 25타석에서 2루타 3개 포함 안타 7개에 볼넷 2개로 가능성을 보여준 상황이었다. 94 시즌 AAA에서 262/311/423, 15 홈런을 기록했던 그는 마이너리그 내내 이와 비슷한 스탯을 기록했고, 심지어 이후의 메이저리그 커리어 스탯도 263/322/405로 그와 무척 유사했다. 코너 외야/내야수로 풀타임 주전이 되기에는 파워가 부족했으나, 코너 4포지션을 그럭저럭 때울 수 있는 versatility와 벤치멤버로서는 제법 쓸만했던 컨택과 갭파워 덕에 무려 2007년까지 메이저리거로서 긴 커리어를 이어가게 된다.


Corey Avrard는 94년 드래프트 3라운드에서 지명한 고졸 투수였는데, 이후 제구 난조로 AA를 벗어나지 못하고 망했다.


Allen Battle(91년 드래프트 10라운더)과 Jay Witasick(93년 드래프트 2라운더, 이때만 해도 아직 선발 유망주였다)은 96년 1월 위의 Bret Wagner와 패키지로 묶여 Todd Stottlemyre와 트레이드된다. 이 트레이드는 지난 오프시즌의 Jocketty 시리즈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Jocketty의 압승으로 끝났는데, Battle은 그대로 폭망했고 Witasick은 선발로 몇 년 삽질한 뒤에 2000년대 들어 릴리버로 새로운 커리어를 열어 가게 된다.


Aaron Holbert는 나름 1990 드래프트 1라운더였고, 1992년에는 싱글A에서 도루를 62개나 했을 만큼 조금은 주목받았던 유망주였으나, 이후 AAA 베테랑으로 전락하여 2006년까지 AAA에서 무려 12시즌을 뛰었다. 1996년 메이저리그에서 한 게임에 출전한 것이 고작이었다가, 은퇴 직전이었던 2005년에 메이저리그에 다시 올라와 32타석에 출장했으니 이쯤되면 인간승리라고 할 수 있겠다.


Dmitri Young은 1991년 드래프트 1라운더(전체 4순위)로 뽑은 고졸 3루수였는데, 타격 재능을 높이 인정받아 1992-1994 3년 연속으로 BA TOP 100 리스트에서 50위 안에 들었다. 아무래도 거대한 몸집 덕분에 3루수비가 되지 않아 결국 1994 시즌에는 AA 레벨 Arkansas 팀에서 1루수와 좌익수로 수비 포지션을 바꾸게 되었는데, 포지션 전환의 부담 때문인지 이 시즌 그는 8홈런, .736 OPS에 그치며 유망주로서의 주가가 폭락하고 있었다. 물론 그는 이후 AAA에서 폭발하며 다시 특급 유망주로 떠오르게 되는데...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살펴보게 될 것이다.



1995년의 팜이 꽤 괜찮았던 반면 드래프트는 전혀 좋지 않았는데, 1라운드 전체 12픽으로 지명한 Matt Morris를 제외하면 변변한 메이저리거가 거의 없었다.


1995 Cardinals 드래프트 정리 - The Baseball Cube(**표시는 계약 실패를 의미), Baseball-Reference


첫 5픽. <라운드(전체 픽 순위). 이름, 포지션>

1(12). Matt Morris, rhp

1(29). Chris Haas, 3b

2(44). Jason Woolf, ss

3(71). Billy Deck, 1b

4(99). Brian Barfield, rhp


Cards는 Type B FA Danny Jackson과 계약하여 2라운드 픽을 Phillies에게 내주었으나, Cards 출신의 Type A FA Gregg Jeffries가 Phillies와 계약하면서 1, 2라운드 픽을 보상으로 받아왔다. 이 보상픽으로 뽑은 선수들이 Chris Haas와 Jason Woolf이다. Haas는 당시 raw power로 꽤 주목받던 고졸 내야수였으나 결국 프로에 와서 망했다.


이후의 주요 픽. 


5(127). Cody McKay, c  --> 계약 실패

28(771). Junior Spivey, 2b --> 계약 실패

34(939). Kerry Robinson, of

54(1439). Cliff Politte, rhp


드랩에서 두 번째로 좋은 선수가 Cliff Politte이고, 세 번째로 좋은 선수가 Kerry Robinson이라면, 그 드랩은 거의 똥망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나마 1라운드에서 지명한 Matt Morris가 몇 년 동안 확실히 에이스 노릇을 해줬다는 것이 큰 위안이다.



(1995 드래프트의 스타 플레이어들: Cliff Politte(상), Kerry Robinson)


참고로, Kerry Robinson은 현재 Cardinals의 스카우트로 재직 중이다.



TO BE CONTINUED...

Posted by FreeRedbird
:

에, 발렌타인 데이 기념...은 아니구요, Scarlett Johansson이면 또 모를까, 뭣하러 덩치 큰 남자를, 흠흠.

사실 2월 안에 Jeff Luhnow Draft Review를 2-3개 정도 끝내 포스팅 할 생각이었는데 일이 갑자기 미친듯 터져나와 다음 겨울로 미뤄두었습니다. 대신 뭘 해볼까 곰곰히 생각하다, VEB 자주 들어가시는 분들이라면 요새 VEB 필진들 바뀌면서 마이너리거들 인터뷰가 곧잘 올라오는 걸 보셨을 텐데요. 다음주인가 Randal Grichuk 인터뷰도 뜬다지요. 지켜보면서 저희도 한번 1-2명 정도 인터뷰를 따보면 재미있겠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해서, 제가 직접 카메라 들고 플로리다까지 찾아갈 순 없는 노릇이고, 조심스레 지난 유망주 리스트서 가장 인기가 많았던 2인 중 하나인 James Ramsey에게 email interview를 부탁해봤는데요.



알려진 이미지에 부합하듯 아주 흔쾌히 받아주었습니다. (이름 옆 email 주소는 privacy 보호 차원에서 지웠습니다)

대략 7-8개 정도의 질문을 던져보려고 합니다. 더 많아도 좋지만 너무 많으면 좀 짜증날 수도 있으니 맥시멈 10개 정도가 좋지 않을까 싶은데요. Ramsey에 대해 궁금하신 점이나 하시고 싶었던 말씀들 있으시면 거리낌없이 리플로 적어주세요. 영어로 옮겨서 Ramsey에게 보내고, Ramsey가 답을 보내오면 다시 한글로 바꿔서 포스팅하도록 하겠습니다.

Posted by skip55
:

조금 늦은 Farm Director LaRocque 인터뷰와 winter warm up 이후 1-2주 사이 쏟아진 몇몇 마이너 녀석들의 신선한 인터뷰입니다. 저번 포스팅서부터 어째 인터뷰만 줄창 올리는군요, 허허.


1. Gary LaRocque 인터뷰

사실 별거 없습니다. 제가 WWU에 참가하지 않는 한 그가 평가하고 질답에 응했다던 2013 Player Development Review에 대한 상세 자료는 넷상에선 구할 방도가 없는지라... 알려진 부분들만 한번 쓱 보겠습니다.

거의 원론적인 이야기가 전부여서 별로 재미가 없어요.

정리하면서 Doovy님의 Ankiel 포스팅 이후 마지막 부분을 다시 읽어보니 살짝 씁쓸합니다.


2013 recap을 해보자: Memphis에서 무려 19명의 선수들이 빅리그로 올라갔다. 이에 따른 연쇄작용으로 54명의 선수들이 (풀시즌 4개 클럽으로) 승격했고. 분명 많은 선수들이 higher level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웠을 것이다. (작년처럼 뜻하지 않은 많은 승격에 비교적 잘 대응한 것 처럼) 올해도 잘 준비되었으면 한다. 

클럽은 늘 winning environemnt, 정확히 마이너에서의 플레이오프 경험을 높이 사오고 있는데?: 맞다. 안타깝게도 4개의 풀시즌 클럽 모두 플옵 진출에 실패했다. A-, short season State College는 플옵 진출에 성공했지만, 마지막 경기에서 패하며 챔피언쉽 타이틀을 아쉽게 놓쳤지. 하지만 많은 승격들을 감안하면 그리 나쁘지 않은 성적이라 생각한다. 이렇게 많은 선수들이 승격했다면 그 과정에서 learning curve가 생기는 것도 이해해야 하고. 다시 말하지만, 많은 선수들이 다음 레벨에서 무엇을 준비하고 뭘 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을 것이다. 악조건 속에서도 우리 감독들과 스탶들, 그리고 선수들 모두가 끝까지 경쟁하려 했다는 것을 높이 평가한다.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좀 더 많은 팀들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을 것이다. 물론 무엇보다 가장 큰 포인트는 도합 19명의 선수들이 빅리그로 승격했다는 것이고, 이들이 팀의 월드시리즈 진출에 도움이 되었다는 것 아닐까.

35명의 선수들이 참가한 instructional camp에 대해 설명해달라: 긍정적인 결과를 얻었다. Dominican Academy 소속의 많은 어린 선수들에게 특히 중점을 두고 진행했다. 그들 모두 미국 땅에 첫 발을 디디고 많은 새로운 것들을 경험했다. 캠프에서 position 전환이나 mechanic 변경 같은 많은 변화들이 일어났다.

정확히 Voit는 포수에서 1루수로, 인민의 벽은 유격수에서 외야수로, Kelly는 3루에서 포수로 옮겼다, 이들의 transition 과정은 어떻게 진행중인가?: 처음 포지션 변경을 시도한 instructional camp에서 겨울 (개인훈련)에 이르기까지, 순조롭다. (스캠에서도) 계획대로 꾸준히 진행할 예정이다.

Winter league에 뛴 선수들에 대해: 모두에게 productive experience가 되었을 것이다. 특히 투수들의 경우 (발전 여부를 떠나) 얼마나 많은 이닝을 던질 것인가 주의깊게 살펴졌다. International Director, Moises Rodriguez가 가까이서 밀착해 관리했다. 우리가 미리 정한 inning limit에 도달하면, 소속팀에 shut down을 요청했고, 이 역시 미리 이야기가 된 지라 갈등은 없었다. 또한 정규시즌 이닝소화가 부족했던 선수들에게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아, 아이러니 하지만 우린 이러한 상황에도 소속팀이 2월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면 참가하길 장려했다. 플레이오프 경험은 (그 무대가 어디든) 정말 좋은 경험이니까. 

(실제로 주워온 선수지만 Angel Castro는 레귤러 시즌 48.2이닝을 소화했는데 플레이오프까지 뛰며 22.2이닝을 더 던져 겨울내 무려 71.1이닝을 던졌습니다. 작년 PCL서 116.1이닝을 던졌으니 도합 187.2이닝을 던진 셈이지요.)

Angel Castro 등의 영입과 depth, Mike Shildt에 대한 이야기도 있는데 시덥잖은 이야기고 여러번 나온 말들인지라 건너 뜁니다.

Rule 5 선수들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면?: Jesus Ustariz는 젊은(93년생) 선수로, 1루수로 스캠에 참가하게 될 것이다. 그를 지켜본 이들이 매력적인 스윙을 갖췄다 평했다. 유격수 Greg Miclat은 depth를 더해줄 선수다. Jake Lemmerman을 Padres가 데려가면서 팀은 그를 대신할 depth player가 필요했다.

트레이드로 데려온 Randal Grichuk은?: AAA에서 뛰게 될 기회를 잡게 될 것이다. 역시 팀의 depth를 더해줄 것이고, 그가 가진 훌륭한 tool이 팀에 어떤 식으로 도움을 줄지 기대된다.

최근 claim 건 Rafael Ortega는?: AA, 또는 AAA에서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개인적으로 아직 AA에서 자신을 증명할 기회가 충분히 주어지지 않았다는 말에 동의한다. 또한 AA에 있는 선수들에게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바로 빅리그에 올라가 도움이 될 수 있는지 여부라 생각한다. 작년 AA에 있던 선수들 중 5명이 최종적으로 빅리그 로스터에 올라 팀에 힘이 되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할 수 있을 것. 따라서 Ortega가 이미 빅리그를 경험해봤다는 걸 우린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Rzep 대가로 얻어온 Juan Herrera는?: instinctive SS, good hands, nice arm, good defensel... 빠다질은 꾸준히 발전중이다. 이렇게 어린 선수들은 offense에서 공헌하기 위해 2-3년간의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적어도 이미 solid한 defensive player 임은 확실하다.

DH 룰이 적용될 상황들에서, 많은 아웃필더 중 하나 DH 넣어서 플레잉타임 보장해줄 생각이 있나?: 너무나 당연한 말이다.

STEF(Spring Training Early Program)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해 달라: 알다시피 24명의 선수들이 참가한다. 특히 투수들의 경우 흥미로운데, 이들은 빅리그 스탶들과 선수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불펜피칭을 한다. Mike Matheny와 그의 스탶들은 불펜피칭, 실전, 또 빅리그 선수들이 연습을 마친 뒤 그 경기장에서 연습하기 위해 몰려든 선수들을 지켜보는 것 등을 통해 이들을 지켜보게 될 것이다. 어린 선수들 입장에선, 그들의 이름을 빅리그 스탶들에게 각인시킬 수 있을 것이고, 빅리그 선수들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이런저런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빠른 적응을 통해 훨씬 편안한 마음가짐으로 캠프를 보낼 수 있겠지. 이 얼마나 소중한 기회인가. 

알려지지 않았던 Cardinal Core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해 줄 수 있는가?: 2년 전 창설된 프로그램이다. 마이너 클럽당 2-3명의 선수들이 참가한다. 전체적으로 15-20명 정도? 그들의 앞에 당면한 과제들을 해쳐나갈 길 부터, 빅리그에 도달하기 까지, 또 도달한 이후 다뤄야 할 많은 것들을 좀 더 바르고, 빠르고, 정확하게 받아들이고 이겨낼 수 있도록 주로 character building에 초점을 두고 가르친다. 꼭 야구에 관련된 것만 다루지 않는다. self-awareness나 inner confidence같은 부분들을 중요하게 다루는데 이런 것들은 꼭 야구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볼 순 없을테니. 선수들마다 이수받는 기간이 다르다, 누구는 더 길고, 누구는 더 짧고. 참가한 선수들 모두 이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특별히 야구 이외의 것들에 대해 다루는데 신경쓰는 이유라도 있나?: 우린 선수들에 대해 강한 책임감을 지닌다. (사회에 첫 발을 딛는) 그들에게 life skill을 가르쳐야 할 의무가 있다. 통계적으로 90%가 넘는 마이너리거들은 빅리그에 승격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선수들이 꼭 언젠가 빅리그서 활약하게 되지 못하더라도) 그들을 팀에 입단할 때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야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것들이 꼭 야구와 관련되어야 할 필요는 없지 않나. 그렇다고 아주 동 떨어진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우린 더 좋은 팀메이트로 거듭나는 법 등에 대해 강조하는데, 이는 빅리그 팀에 도달하기 위해, 또 도달해서도 굉장히 중요하게 여겨지는 가치 아니겠는가.



2. Rob Kaminsky 인터뷰

"올 겨울 (레퍼토리를 완성시켜 줄) changeup을 마스터하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mechanic도 좀 더 효율적이기 위해 손보고 있죠."

"이번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좋은 모습 보여서 팀이 제게 Peoria(A레벨/풀타임) 선발 로테이션에 들게 해줬으면 좋겠어요."

"팀은 저에 대해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저에게 만족하는 한, 전 행복할꺼구요."


changeup 연습이야 뭐 당연한거고, 한껏 주목받았던 그 mechanic을 어떤 식으로 손보고 있는지 사뭇 궁금하네요.


http://mlb.mlb.com/news/article/stl/chasing-lofty-goals-cardinals-phenom-rob-kaminsky-up-to-the-task?ymd=20140127&content_id=67183288&vkey=news_stl

더해서 공홈에서도 인터뷰를 하나 실었더군요. 이제는 지겨우시겠지만, 다시 한번 Kaminsky의 야덕후 기질과 성숙함에 대해 다루는 기사입니다. 실력은 근접하기 힘들겠지만 attitude 하나는 이미 Waino 뺨 치는 수준입니다. 머리도 좋다 들었는데 꼭 야구가 아니었어도 뭘 해도 평타 이상은 쳤을 것 같아요.

그나저나 왜 저는 이 추남 좌투수의 "I ran into some tough outings, but you just bounce back. You really have to have a short memory in baseball and make adjustments." 란 멘트를 읽으면서 또다시 Ankiel 생각이 날까요...



3. Zach Petrick 인터뷰

이 인터뷰는 조금 깁니다. 대부분 이미 다루었던 내용들이지만 당사자가 직접 겪고 느낀 것들을 술술 털어놓는지라 좀 더 세밀하게 Petrick의 1년을 돌이켜 볼 수 있네요.


"선발 전환 후 팀은 제 몸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충분한 휴식시간을 보장해줬어요. 처음 전환 후 몇경기선 철저히 4-5이닝만 던지게 했구요. 팀은 선수들의 몸상태를 건강하게 유지시키고 성공을 위해 거쳐야 할 올바른 spot에 배치하는 일에 정말 능한 것 같습니다."

"Springfield에서의 부진은, 제 생각엔, high level의 벽이나 role change 때문이라기 보단, 피로가 원인이라 생각합니다. 전 단 한번도 한 시즌에 90이닝 이상 던져본 적이 없어요. 제가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던 시기는 90이닝 후반, 100이닝에 접어들 무렵이었죠. 몸이 지치기 시작하면, 종종 예전과는 다른 것들을 생각하기 시작하고, 이에 따라 mental에 여러가지 (부정적인) 변화가 생깁니다. 전 제 리듬을 잃었고, 마운드 위에서 너무 많은 것들을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레벨을 올라갈 수록 타자들의 수준은 높아졌고, 특히 확실히 가다듬어진 타자들이 많아지더군요."

"특히 Ace Adams(Palm Beach 투수코치)와 대화를 나누면서 몇가지 수정을 가했습니다. 거기까지 가면서, 전 단순히 fastball command 하나 만으로도 타자들을 압도할 수 있었어요. 전 제가 던지고 싶은 어느곳에든 fastball을 던질 수 있었으니까요. 여전히 전 offspeed 구질들을 좀 더 가다듬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PB에서 changeup을 발전시켰는데, 정확히 말해 changeup을 사용할 수 밖에 없었지요. 아웃사이드 코너에 살짝 빠지는 fastball로 타자들을 상대한 뒤, 이어서 zone에 꼳히는 changeup을 던지는 수는 상당히 괜찮은 방법이었거든요."

"Cardinals 입단 후 코치들은 제게 curve에 대해 다시 가르쳐줬죠. 그러니까, professional curveball이라 표현하면 되려나요? 대학시절 제 curve는 loopy하고, 또 아주 slow했어요. 솔직히 제 fastball과 잘 융화되지 못했죠... 하지만 지금 제 curve는 아주 sharp합니다."

"전 changeup에 대한 감도 점차 잡아가고 있습니다. 고등학교때 좀 던지긴 했지만, 그당시엔, 음, 좀 웃기지만, 제가 뭘 던지고 있는진 알고 있었는데, 그냥 그게 전부였거든요. 말 그대로 '그냥' 던진거죠, 별다른 생각 없이, 그냥. 그리고 대학진학 후엔 changeup을 던질 필요가 없었습니다. 대부분 fastball-curve, two pitch로 타자들을 상대했죠. 네, PB에 다다르기 전까지 전 changeup을 발전시킬 기회가 없었어요."


2달 가량 Petrick을 지켜본 Mike Shidlt는 Petrick이 AA에 올라오며 부진할 것을 예상했었다고 합니다. 그가 말하길,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Petrick이 자기 자신을 컨트롤한 방법에 대해 전 정말로 기쁩니다. 힘들었을 꺼에요. 하지만 투수가 난타당하기 시작하며 여러가지 도전에 부딪혔을 때, 거기서 자기 자신에 대해 확실히 깨닫고 배울 수 있는 길이 생깁니다. Zach은 그런 도전들을 충격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된 단단한 선수였고, 실제로 잘 받아들였습니다. 전 이런 Zach의 approach가 그를 한단계 더 발전시키고 앞으로 전진시키는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전체 마이너를 통틀어) 2012년에 입단한 선수들 중에서 AA까지 도달한 선수들은 몇 없습니다. Petrick은 그 중 한명이에요. Petrick은 좋은 fastball command를 갖췄고, changeup도 (배우기 시작한지 얼마 안되었음에도) 훌륭하죠. 여전히 발전시켜야 할 부분들이 남아있습니다만... 다시 한번, 그가 이렇게나 빨리 AA에 도달한 것을 우리는 과소평가 해선 안됩니다."

Rob Kaminsky, North’s Jersey’s favorite left-hander, is getting ready to leave for his first professional spring training with the St. Louis Cardinals. The former St. Joseph star has, for the most part, been enjoying a leisurely winter, taking in some local high school sporting events and working out with some of his former teammates.

But Kaminsky also has been working at his craft, throwing regularly while trying to perfect a change-up that will round out his pitching arsenal and perhaps help speed his rise to the major leagues.

"I’ve also been working on my mechanics," Kaminsky said. "My mechanics can always get better."

There are a lot of great expectations surrounding his future, but Kaminsky seems to be handling it with the same poise and maturity that he handled the hype that surrounded his senior season at St. Joseph. That even keel that carried him through last spring still is one of his major assets.

Kaminsky pitched in eight games in the Gulf Coast League last summer, starting five times. He was 0-3, allowing 23 hits, nine walks and nine earned runs while striking out 28 in 22 innings with a 3.68 ERA.

But don’t judge his debut by the numbers. A little fatigue set in by the end of the summer, but he was throwing the ball well and learning a lot about what it takes to be a professional pitcher.

- See more at: http://www.northjersey.com/sports/242165531_MLB__Rob_Kaminsky_has_eyes_on_spring_training.html#sthash.5kVRWhfs.dpuf



Kevin Siegrist의 말

"저는 지난 2년간 빅리그 스프링 캠프에 참가했습니다만, 그보다는 저와 마이너 생활을 함께했던 많은 선수들이 빅리그서도 함께 했다는 점이 제겐 정말로 큰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젊은 선수들끼리 어울리고 또 서로를 의지할 수 있었어요. 우린 하나의 큰 가족과도 같습니다."

이건 뭐 중요한건 아닌데 Mo와 프런트가 그렇게 강조하는 패밀리, 유대의식을 선수가 직접 이야기하는건 처음봐서 그냥 가져왔습니다. 그러고보니 1기인 Craig, DD, Jay, Freese 중 내년엔 Craig만 남겠네요.



4. Eric Fornataro 인터뷰

"많은 젊은 선수들이 그들의 이름을 (사람들에게) 인식시키고 있다는걸 알고 있어요."

"하지만 매년 스캠에선 (누가 더 유명한가를 떠나) 공정한 경쟁이 일어나죠. 저희 팀엔 참 좋은 영건들이 많아요. (때문에) 만약 제가 빅리그 로스터에 들지 못하고 AAA서 다시 시즌을 시작한다 해도, 제가 건강하기만 하다면야, 전 괜찮습니다."

"팀동료들이 빅리그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지켜보는건 분명 즐거웠습니다. 하지만, 솔직하게, 정말 솔직하게, 모든 것을 좋게만 받아들일 수는 없었죠."

"5 월 짧게 DL을 다녀온 뒤 계속되는 통증을 무시해서는 안되는 거였어요. 빅리그 팀 투수들이 부상으로 DL에 오르고 마이너 리거들을 콜업하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결국 전 제 자신을 곤경에 빠뜨리고 말았죠. 제가 부상을 입었을 때 전 제 실력대로 던질 수 없었으니까요. 계속 공을 던지려 했던 제 잘못이죠. 커리어를 통틀어 단 한번도 DL에 등재된 적이 없었습니다. DL을 피하기 위해 (바보처럼) 계속 노력했죠."

"꼭 부정적으로만 바라보고 싶진 않습니다. 전 빅리그서 공헌했던 투수들의 스터프를 잘 알고 있고, 제가 그들에게 뒤진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따라서 저 역시 빅리그에 그리 멀지 않다고 할 수 있겠죠. 그저, 음, 타이밍이 좋지 않았달까요."

"누구든 얼마든지 빠르게 다시 궤도에 진입할 수 있습니다. 제작년 저는 AA에서 좋은 활약을 보였고, 때문에 저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꺼에요."



5. 다시 한번 부활을 꿈꾸는 Jordan Swagerty와 Tyrell Jenkins

http://jordanswagerty.mlblogs.com/2014/01/28/healthy-and-ready-to-go/

"It has been a day or two (4 months) since I’ve updated ya’ll on what’s been going on over the off-season! First things first, I feel healthy!  It has been a long time since I could say that. It feels great to be throwing, letting it loose, and having the relief of knowing my arm is going to feel good doing what it’s supposed to do. I am anticipating the countdown for camp to start!"

"This off season I have been extremely dedicated to working out hard to make sure I am in baseball shape for camp. What is being in baseball shape? I can tell you, it’s not beach workouts, no heavy bicep and chest workouts. It is just the core muscles that will keep you healthy for an entire season; core, legs, and shoulders. It has been fun watching my body progress into what it needs to be able to get that uniform back on and get back on the field to start going at hitters again."

아시는 분들 아시겠지만 Swagerty 이녀석 종종 블로그에 글 올리는데요. 예, 마침내 건강하댑니다. 이제 완전히, 답이 안나올 정도로 망가졌던 제구를 다시 찾아야 할 시간입니다.


2월 5일

2nd day of mound catch today! Arm felt great, even had some zip behind it. Excited for the future.

Jenkins 녀석도 공 던지기 시작한 모양입니다. had some zip이라... 수술 상태 좋은거 같죠. 작년 8월 수술 이후 6-8개월 재활기간이 예상됬는데, 운동신경이 워낙 탄탄한 놈이라 회복력도 빠른건가 예상보다 이른 2월 부터 공 던지기 시작하네요. 재수 좋으면 개막전부터 PB 로테이션에 합류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한때나마 top100 언저리에서 놀던 이 두 선수에겐 정말 무엇보다 소중할 2014년이죠, 올해마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면 미래는 없습니다.



6. 뜨거워지는 Alex Reyes

요새 Reyes에 대해서 조명이 쏟아지고 있는데요. 그 중 하나가,

http://www.fangraphs.com/fantasy/alex-reyes-the-best-pitching-prospect-youve-never-heard-of/

보기 쉽게 정리되어 있으니 핵심들만 한번 쓱 보세요, 움짤들도 있고 볼만한 분석입니다.

BP 101 prospects list에 Reyes를 98위로 올린 Jason Parks 역시 2개의 70 potential pitches와 60 changeup을 가진 very legit #2 ceiling으로 꼽았습니다. Parks는 이후에도 여름 즈음에 그를 98위에 랭킹시킨 것은 멍청한 판단으로 비춰질 것이라며 감히 top 50 talent라 다시 한번 크게 칭찬했구요.

Parks는 또한 Wong을 Billy Hamilton과 함게 NL ROY 후보로, Taveras의 ceiling을 .315/.380/.550 with 30+ HR stat line으로 평가했으며, 카즈 팜내 슬리퍼 2명으로 2013 드랩 7라운더 SS Chris Rivera와 38라운더 RHP Blake McKnight를 꼽았습니다.


추가로 2013 international signing들은 아직까지 CMART나 Reyes처럼 1M에 가까운 계약금을 지불한 대어가 없습니다. 하지만 카디널스는 여전히 1.2-3M 가량의 international signing bonus money를 남겨두고 있기에 좋은 자원이 발견된다면 돈을 쓸 수는 있는 상황이구요. 2-3달 동안 그마만큼 높이 평가하는 꼬맹이를 찾아낼 수 있느냐가 관건일 것 같습니다.



7. 여기까지고, 우연히 접하게 된 BA TOP 30 List로 마치겠습니다.

1. Oscar Taveras
2. Carlos Martinez
3. Kolten Wong
4. Stephen Piscotty
5. Marco Gonzales
6. Tim Cooney
7. Alex Reyes
8. Jason Ramsey
9. Rob Kaminsky
10. Randal Grichuk (Kelly를 밀어냈군요)
11. Carson Kelly
12. Charlie Tilson
13. Patrick Wisdom (저희 리스트보다 Wisdom에 대한 평가가 후하군요)
14. Greg Garcia
15. Zach Petrick
16. Mike O'Neill
17. Tyrell Jenkins
18. Peoples-Walls
19. Oscar Mercado
20. Juan Herrera
21. Keith Butler (흠)
22. Lee Stoppelman
23. Tommy Pham (BA 답습니다)
24. C.J. McElroy (흠)
25. Edmundo Sosa
26. Boone Whiting
27. John Gast
28. Steve Bean
29. Jacob Wilson
30. Xavier Scruggs
31. Jordan Swagerty


아차, 진짜 마지막으로, 2014 Caribbean Series에 60명이 넘는 scout들이 몰려들었다는데요. 우리쪽에서는 international director Moises Rodriguez와 또 한명의 scout가 참석했다고 합니다. Moises는 특히 정보를 모으기 힘들었던 쿠바 선수들에 대해 관계자들의 관심이 쏠렸다 밝혔으며, 특히 두 선수, 얼마 전 MLB에서 뛰고 싶은 열망을 드러낸 3B/2B Yuliesky Gourriel과 OF Alfredo Despaigne이 큰 주목을 받았다고 얘기했구요. 우리쪽에서 이 두선수나 다른 이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Caribbean Series는 30개 팀 모두 scout들을 보내는 대회입니다만, 저번 강정호건도 그렇고 어지간한 쿠바 선수들과 대어급 한/일 선수들은 가리지 않고 다 꾸준히 자료를 모으고 있는 것 같네요.

Kantz, Slater, Rodriguez 모두 관심을 인정했던 Aledmys Diaz도 약 1주일 뒤(2.19) 부터 사인 가능합니다.

Posted by skip55
:

많은 투수들이 빅 리그에 올라오기 전에 각자 소속한 하위 레벨의 마이너리그들을 소위 "초토화" 시키면서 올라오고, 그 과정에서 "예전의 어떤 사이영상 투수와 비슷하다"느니, 조금만 다듬으면 누구보다 낫겠다더니, 별 소리를 다 들으면서 올라온다. 그렇지만 Sandy Koufax 에 대한 비교는 흔하지 않다. 2014년 시즌 개막을 앞둔 현재, 사이영상 3차례에 빛나는 현존 최고의 투수 (Wain아 미안하구나) Clayton Kershaw만이 무리없이 Sandy Koufax 컴패리즌을 소화해낼 수 있다. 심지어 아직도 Kershaw가 Koufax에 비교되기는 시기상조라며 향수에 젖어계신 올드 팬들도 많다.

Raw Talent로 밀어붙이는 폭발적인 잠재력을 지닌 유망주에 대한 갈증에 아직 목말라하는 2014년의 Cardinals 팬들에게는 참으로 믿기 힘들겠지만. 16년 전, 우리 팜에는 Sandy Koufax 컴패리즌이 유효하다는 고졸 좌완 투수가 있었다. 

오랜 Cardinals 팬으로써, 오랜 야구팬으로써, 머리에 떠올릴 때마다 정말이지 만감이 교차하는 선수, Rick Ankiel 을 돌아본다. Part I 에서는 투수 Ankiel을, Part II 에서는 타자 Ankiel을 다뤄보려 한다.


Rick Ankiel (Richard Alexander Ankiel Jr.)

RHP / Outfielder

DOB: 1979년 7월 19일 

Birth: Port St. Lucie, Florida

Time with Cardinals:  1997-2009

Childhood

훗날 한 스카우트로부터 "여태 내가 본 최고의 좌완 투수들 중 하나" ("one of the best left-handers I've ever seen") 라는 극찬을 받은 Rick Ankiel이지만, Ankiel이 투수로 두각을 나타낸 것은 11학년이 (고2)  되고 난 후였다. 그 전까지 Ankiel은 남들보다 늘 작은 키에 그다지 대단할 게 없는 재능이었고, 리틀리그 시절에도 이는 마찬가지였다. 다만 Ankiel의 정신적 성숙함과 마운드 위에서의 차분함, 소위 "멘탈" 만큼은 유난히 훌륭했다. 지금 2000년 포스트시즌에서 역대 최악의 "멘붕" (Melt-down) 을 보였던 선수의 멘탈을 얘기하는게 맞냐고 물으신다면, 그렇다.

Florida의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자란 Ankiel은 고등학교 이전까지 "실수에 대한 두려움" 으로 꽁꽁 싸매진, 소심하고 겁이 많은 소년으로 자랐다. Ankiel 은 야구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야구는 나의 길" 이라고 생각할만큼의 열정은 없었다. Ankiel보다 야구를 잘하는 아이들은 많았다. 팀에서 키도 덩치도 가장 작았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 Rick Ankiel Sr. 는 아들에게 반강제로 야구를 시켰다.

그의 아버지 Rick Ankiel Sr. 는 화려한 전과를 자랑한다.1975년 대마 소지 혐의로 체포된 것이 시작으로 이후 25년간 그는 14차례 체포 당했으며, 6차례 구속당했고, 전과의 종류도 마약 밀수, 총기 은폐, 강도, 특수강도, 음주 운전 이후 경찰로부터 도주 등 정말 다양했다. 범죄자 테크를 타기 전까지 아버지의 직업은 낚시 가이드였으나, 이 업계에서 일하던 중 마약 밀매단과 엮이게 되면서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고 말았다. Ankiel이 자란 작은 마을에서 아버지의 과거와 전과, 그리고 심심찮게 일어나던 범법 행위들과 불안한 가정 분위기는 지역 사회와 이웃들의 지나친 관심과 손가락질을 불러왔고, Ankiel이 성장하면서 이로 인한 스트레스는 어린 소년이 감당하기 힘들 수준으로 부풀어올랐다. 








아버지는 어린 Ankiel에게 가혹하게 훈련시켰다. 리틀야구 선수였던 어린 아들에게 기합과 엄포는 물론이고 미국 아버지들에게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따뜻한 부정은 전혀 없었다. 강압적이었던 아버지는 본인이 결코 아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어린 Ankiel을 더더욱 강하게 몰아붙였다. 실수를 용납하지 않던 아버지 밑에서 Ankiel은 아버지의 폭언을 피하기 위해서 야구를 했고, 늘 실수하면 안된다는 공포에 떨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 때문에 늘 소위 "군기"가 바짝 들어있었던 Ankiel은 훗날 고교야구에서 보기 드문 성숙함과 인성, 그리고 근면함으로 칭찬을 받는다.

"My dad was hard on me all the time. If I swung at a bad pitch in Little League, he'd make me run wind sprints when I got home. It was always, I could've done better. But maybe if he wasn't hard on me, I would've gone down the wrong path. He always said, 'Do what I say, not what I do."                                                                                                                                          

   -Rick Ankiel, on his father


14세가 되던 해, 어린 Ankiel은 야구를 그만두고 그냥 친구들처럼 서핑이나 낚시를 하면서 놀고 싶다고 얘기했으나, 이런 푸념을 들어줄 아버지가 아니었다. 아들이 "나는 어차피 메이저리그에 갈 재능은 안되요" 라고 하자 "If you love the game, good things will happen." 이라며 정말 무식하게 아들을 몰아붙였다. 10학년 때, 될성부른 떡잎이라면 지금쯤 고교 야구를 씹어먹고 있어야 할 그 시기에 Ankiel의 패스트볼 구속은 84마일이었다. 야구팀 코치 Messina는 "필드 밖에서 정말 훌륭한 아이지만 그다지 Exceptional 한 선수인지는 모르겠다" 라고 Ankiel을 표현했다. 

Ankiel 이 11학년 때, 갑자기 키가 급성장하면서 몸집이 커졌다. 꼬마였던 Ankiel이 6피트가 넘는 키에서 특유의 다이내믹한 투구폼으로 패스트볼을 꽂자 92마일이 넘게 찍혔다. 무브먼트도 장난이 아니었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모인 한 경기에서 Ankiel은 첫 15타자 중 14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이제야 뭔가 희망이 보였다. 그 경기 이후 Ankiel이 던지는 경기마다 스카우트들이 몰려서 구속을 측정했다. 아버지가 말한 "Good things will happen" 이 실현되는 순간이다. 

아버지의 강압에 못이겨 어쩔 수 없이 야구를 지속했지만 자신의 재능에 대해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Ankiel은 순식간에 그 지역의 자랑으로 떠올랐다. 에이전트 Scott Boras와 계약한 것도 이맘때였다. 한때 Ankiel의 재능을 알아보지 못했던 코치들은 스위치히터였던 Ankiel이 혹시라도 왼팔에 HBP를 당할까봐 이제부터 우타석에 서지 말라고 했다. 가장 좋아했던 것은 아버지였다. 아들이 던지는 경기마다 그의 아버지는 관중석이 아닌 포수 뒤에 자리를 잡고 앉아 "커브를 던져라" "직구를 던져라" Game-Calling을 했다. 한번은 6회까지 노히트를 하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갑자기 "Throw him the funk!" 라고 냅다 소리를 질렀다. Ankiel은 그 말을 듣고 너클볼 (Funk가 Knuckleball 이라고 한다) 을 던졌으나 홈런을 맞았다. 

코치들은 동네 깡패 / 건달 같은 Rick의 아버지가 와서 시끄럽게 구는 것도 모자라 팀 에이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이 못마땅했으나, 또 한편으로는 Ankiel의 아버지였기에 쉽게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 아들 Ankiel은 이런 와중에서도 삼자범퇴로 이닝을 끝낼 때는 혹시라도 칭찬을 들을까 해서 어머니가 앉아있는 관중석보다는 백스톱 뒤의 아버지를 흘깃흘깃 쳐다보며 마운드를 내려왔다.  

1997년, 고등학교 마지막 야구시즌이 끝나고 Rick Ankiel은 USA Today 선정 올 해의 고교 선수 (High School Player of the Year) 로 선정되었다. 그의 마지막 고교 시즌 성적은 11승 1패 평균자책 0.47, 74이닝 162탈삼진이었다. 


배우 Zach Efron을 닮았다는 의견도 있다.

1997년 드래프트에서 Ankiel을 2라운드 20픽, 전체 72번으로 뽑은 Cardinals가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접근해왔다. 2년 전만 해도 Ankiel은 University of Miami 진학이 최종 목표였으나, 패스트볼 구속과 함께 그의 기대치도 높아진 상황이었다. Scott Boras는 Ankiel이 마치 당장이라도 Miami 대학에 진학할 것처럼 Letter of Intent를 작성해 Cardinals의 애를 태웠고, 결국 $2.5M의 계약금을 받으며 계약한다. 프로 데뷔 전에 받는 계약금으로는 당시 역대 5위에 랭크되는 정도의 큰 규모였다. 

Ankiel과 계약이 성사된 후, Cardinals는 아직 고등학생에 불과한 Ankiel을 홈 구장으로 불러 클럽 하우스를 구경시켜주고, 그의 이름이 적힌 유니폼을 선사했다. 그리고 그가 곧 서게 될 Busch Stadium 마운드에 서서 공을 던지게 했다. Tony La Russa, Dave Duncan은 물론 프론트 직원들부터 구장 잔디 관리인들까지 다들 나와서 이 열 여덟살 짜리 투수가 시범 피칭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포수의 미트에 공이 Pop! 하고 꽂히며 모두들 그의 구위에 경악했다. 95마일의 구속도 구속이었지만, 부드러운 투구폼과 플레이트 근처에서의 매서운 무브먼트, 그리고 우타자 바깥쪽 낮게 떨어지는 싱커는 이미 아마추어 수준이 아니었다. 그 날부터 Ankiel은 Cardinals의 금송아지였다.

"They got excited because a lefty like that comes up once in a millenium. He was the real deal, and the world, the entire world, was Rick Ankiel's, blowing away the game with that arm born and bred in the Florida sun, able to do whatever he wanted to do whevnever he wanted to do it and nothing more Wild West in all of sports, a pitcher on a mound simply blessed with it."

 -Excerpt from 3 Nights in August, page 77

Rick Ankiel's Minor League Track Record

YearAgeTmLgLevWLERAGSCGSHOIPHERHRBBSOHBPWPWHIPHR/9BB/9SO/9SO/BB
1998182 Teams2 LgsA+-A1262.632810161.01064785022214110.9690.42.812.44.44
199818PeoriaMIDWA302.0670035.015801241210.7710.03.110.53.42
199818Prince WilliamCARLA+962.792110126.0913983818112101.0240.62.712.94.76
1999192 Teams2 LgsAAA-AA1332.352411137.29836962194961.1620.64.112.73.13
199919ArkansasTLAA600.9181149.125521675200.8310.42.913.74.69
199919MemphisPCLAAA733.16160088.17331746119761.3470.74.712.12.59

Ankiel의 마이너리그 시절은 그다지 언급할 부분이 없다. 너무 짧았고, 너무 일방적이었다. 흔히 말하는 "마이너리그에서 스스로를 다듬는 시간들" "교정" "세련" 이런 단어들은 Ankiel의 사전에 없었다. 그냥 Ankiel은 있는 그대로 압도적이었다. 첫 프로팀이었던 Peoria를 단 7경기만에 졸업. 이후 나머지 시즌은 A+ 레벨에서 126이닝 181탈삼진을 기록한다. 1999시즌은 AA레벨의 Arkansas에서 출발했는데, 8경기 49.1이닝 5실점이었다. AAA로 안보내기도 힘든 성적이다. 넘어져봐야 일어날 줄도 아는데, Ankiel은 차마 넘어질까 하는 우려를 표시하기가 민망할 정도로 빠르게 달려나가고 있었다. 

보통 프로에 첫 입문해 고달픈 마이너리그 생활을 시작하는 어린 선수들, 특히 대학을 맛보지 않고 프로로 직행한 고졸 선수들은 고향과 가족, 친구들을 그리워하며 정신적으로 힘들어하게 마련이다. 강압적이었던 아버지와 결코 행복하지 못한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일까. Ankiel은 집을 떠나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마냥 즐거웠다. 매 경기 사람들은 그의 놀라운 구위에 감탄과 칭찬을 연발했고, 함께 마이너리그에 입문한 1라운더 Adam Kennedy 등 동료 선수들도 그저 Ankiel에게 좋은 말밖에 해주질 않았다. 

Cardinals는 Ankiel의 어마어마한 성장 속도에 불안함을 느꼈고, 이에 경기당 투구수 100개의 제한을 두었다. 마이너리그 투수코치들은 Ankiel에게 팔꿈치에 무리가 가는 슬라이더를 가르쳐주면 안된다는 지령을 받았고, 이런 정도의 관심을 받는 투수를 함부로 조련하려고 하는 코치들은 아무도 없었다. Ankiel이 혹시라도 어이없는 폭투 (마이너리그 성적에서도 유난히 폭투가 많은 것을 보실 수 있다)를 던진 뒤 자문을 구하면, 코치들은 "그냥 하던대로 해라 잘하고 있으니" 라며 넘겼다. Ankiel이 답답해서 재차 물어보면 그들은 "우린 널 건드리면 안돼" ('I'm not allowed to mess with you") 라고 대답했고, Ankiel은 그제서야 자신을 향한 구단의 특별대우의 이면에 그림자가 있음을 알게 되지만, 19살의 Ankiel이 그렇다고 질주를 멈출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 해 그는 마이너리그 탈삼진 1위 타이틀과 함께 Player of the Year 상을 수상했고, 올스타전에 선발로 등판했다. 1999시즌을 앞두고 Baseball America 는 Ankiel을 전미 유망주 랭킹 2위에 올랐다.

마이너리그에서 어떤 조련도 받지 않은 Ankiel은 키가 조금 더 컸을 뿐이지 사실상 Port St. Lucie 고등학교 시절과 투수로써의 기량이 거의 다를 바가 없는 상태에서 메이저리그 콜업을 받는다.

"If you've got a race car that's leading the Daytona 500, you don't bring it in for a tune-up. All we did was fine-tune a couple of things with his motion, but nothing major. We have a pitch count for all pitchers in the minor leagues."

-Mike Jorgensen, the Cardinals' director of player development (1999)


Pitching Mechanic

유일하게 아버지 Ankiel이 아들 Ankiel에게 전수한 것들 중 좋은 것이 있다면 바로 그의 투구폼인데, 사실 이 부분도 따져보면 악영향이 더 크다. Ankiel이 성공 가도를 달리던 시절에도 그의 제구는 결코 좋은 편이 아니었는데 (2000시즌 BB/9 = 4.63, 1999시즌 BB/9= 4.1), 이는 그의 딜리버리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간지가 나는 딜리버리 치고 문제없는 경우를 거의 못보지 않았는가. Ankiel 역시 마찬가지이다. 위 Ankiel의 투구폼 사진을 참조하시면, Ankiel은 투구시 앞발 (Front-foot, 즉 오른발) 보다 머리가 먼저 타자쪽으로 나가는 (Out), 소위 Out-in-front 증상을 보이고 있으며, 이 증상은 Tim Lincecum에게도 종종 볼 수 있다. 몸은 아직 준비가 안되어 있는데 머리가 먼저 예전 Okajima 마냥 3루 쪽으로 가고 있으니, 당연히 Pitching Arm이 앞으로 차근차근 나오지 못하고 급작스럽게 나오게 되고 릴리즈 포인트가 굉장히 높아진다. 무게 중심의 이동이 부드럽지 못하니 팔꿈치, 어깨에 무리가 가는 것은 당연하거니와, 릴리즈 포인트가 너무 앞에서 형성되거나 높이 형성되면서 포수 머리 위, 혹은 바닥에 패대기 치는 듯한 공이 나올 수밖에 없다. 실제로 마이너리그에서나 빅 리그 데뷔 이후에나 Ankiel은 릴리즈포인트가 흔들릴 경우 포수 머리 위로 던지는 폭투의 비율이 다른 투수들에 비해 월등히 높았는데, (Ankiel 본인도 인정한 부분이다) 이는 부드러운 듯 보이지만 사실은 팔 스윙이 너무 급작스럽게 이뤄지는 그의 투구폼 탓이 컸다. 

설령 포스트시즌에서의 Melt-down이 없었더라도 이런 투구폼으로 그가 롱런을 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으며, 필자도 동의하는 부분이다. 피칭 메카닉에 대한 심도있는 이해가 바탕이 된 코치들이 용기있게 쓴 소리를 해주었다면 Ankiel의 데뷔가 좀 늦어질 지 언정 조금 더 투수로 오래 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Call-Up

"최대한 그에게 압박을 주지 않으며 천천히 콜업할 것" 이라는 한 구단 관계자의 말이 무색하게 Ankiel은 1999년 8월 23일, 만 20세의 나이로 ML 마운드를 밟았고, Adrian Beltre를 제치고 리그 최연소 선수로 등재된다 (2위는 벨트레). 데뷔전 상대는 묘하게 외인구단 느낌을 주던 추억의 팀 Expos 였는데, 선발로 등판한 그는 괴수(V. Guerrero) 에게 솔로홈런을 허용하긴 했으나 5이닝 5피안타 3실점으로 무난히 데뷔전을 마쳤고, 이후 4차례 정도 더 선발 등판을 한 뒤 불펜에서 시즌을 마감했다. 평균자책 3.27에 33이닝 39탈삼진. 약간의 제구불안이 있긴 했지만 선발 로테이션에 들어가기에 충분히 합격점인 투구였다. 

아들 Ankiel이 찬란하게 데뷔하던 이 시기, 아버지 Ankiel은 다시 한 번 체포당했다. Florida에서 멀지 않은 섬나라 Bahamas의 마약 밀매단과 연계되어 있던 Ankiel의 아버지는 마리화나와 코카인을 (미국 시장에 유포할 목적으로) 소지한 혐의로 1999년 시즌 도중에 검찰에 기소되었다. 이 때 최대 80년형의 징역과 $4M의 벌금형을 선고받게 되면서 Ankiel의 어머니는 남편과 이혼하게 된다. 이제 막 피어나려는 20살짜리 어린 투수에게, 그것도 전미 최고의 유망주 투수의 아버지가 State도 아니고 연방 검찰에 구속되었으니 언론이 가만 있지를 많았다. 

슬프게도 Ankiel은 이런 관심들이 익숙했다. 마운드에서 본인이 흔들리지 않으면 이런 일들은 결국 지나갈 것이라는게 Ankiel의 비정상적으로 강인한 정신력이었다. 자라는 내내 "너의 아버지는 뭐하는 분이시니?" "왜 너네 집 앞에는 경찰차가 와있니?" 같은 질문들에 익숙해져있던 Ankiel은 아버지의 옥살이와 부모님의 이혼, 가족의 분열 (형과 누나도 뿔뿔히 흩어졌다) 을 그저 삼켜버렸다. 가슴 복받치는 자신의 풀타임 첫 정규시즌 개막전을 한 달 여 앞둔 2000년 3월, Ankiel은 아버지 Ankiel의 재판을 위해 Florida 연방 법원에 출두해서 그의 아버지가 징역 6년형을 받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한 달 후, 4만여 관중 앞에서 당당히 Cardinals 로테이션의 일원으로 선발 등판을 했다. 아버지와 가족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어린 투수답지 않게, 마운드 위에서 Ankiel은 흔들리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재능있는 투수들 특유의 보기좋은 건방진 아우라까지 풍겼다.

씁쓸하게도 "마운드 위에서 감정을 컨트롤하라" 는 그의 아버지가 Ankiel을 코치하면서 가장 강조하던 부분이었다. 


2000년 NL Central 우승을 확정 짓고.

2000시즌

드디어 정식 발매된 Ankiel의 황금팔은 확실히 강력했다. Ankiel은 시즌 첫 선발 등판 Brewers전에서 6이닝 10K 2실점 승리를 따내면서 쾌조의 출발을 했고, Coors Field에서 3피홈런을 맞으며 주춤했으나 이후 Padres전 5이닝 무실점, Brewers 전 7이닝 무실점을 잇따라 승리투수가 되었다. 5월 13일에는 한국 야구팬들에게 잘 알려진 박찬호와의 맞대결을 펼쳤는데, 당시 박찬호가 워낙 잘 던져서 (8이닝 1실점 12K) 묻히긴 했지만 7이닝동안 무려 118구를 던지면서 4피안타 9K 무실점을 기록한 Ankiel 역시 칭찬받을만 했다. (언론은 앞날이 창창한 두 젊은 투수들의 Pitcher's Duel로 관심을 모았으나, 사실 정말 관심가는 부분은 나란히 고질적 제구 불안병을 앓고 있는 두 투수가 도대체 몇 구나 던질 것인지였다.)

Ankiel의 구위는 베테랑 포수 Mike Matheny와의 호흡이 부드러워지면서 더더욱 강화되었다. 어린 투수들의 응석을 받아주지 않던 Matheny는 구위를 제외하고는 모든 면에서 부족했던 Ankiel에게 딱 맞는 포수였다. 그는 리그 내에서 가장 뛰어난 블로킹 능력을 지녔기에 Ankiel의 제구 불안 데미지를 최소화 할 수 있었고, Ankiel의 구위와 구질에 대해서 투수 본인보다 훨씬 뛰어난 이해도를 지니고 있었다. 5월 7일 Reds전에서 Ankiel이 5이닝만에 볼넷 4개 폭투 4개를 기록하며 유난히 "Wild' 했던 날, Matheny는 플레이프 앞에서 흙을 튀기는Ankiel의 원바운드 공들을 전부 막아내고 마운드에 올라가 "내가 다 막을 테니 넌 똑바로 던지기만 해라" 라고 말했다. 다음 경기에서 Ankiel은 Matheny의 리드를 그대로 따르며 7이닝 무실점을 기록한다 (박찬호 경기.) 이어서 6월 20일, Ankiel은 당시 Jeff Kent와 Barry Bonds를 위시한 Giants 강타선을 상대로 6이닝 8K 2실점의 압도적인 피칭을 하고 승리투수가 된다. 당시 Giants 감독이었던 Dusty Baker는 "저런 20살 짜리는 흔하지 않다. 20살에 저 정도라면 앞으론 대체 뭘 이루려고 하는가" 며 상대팀 신인을 칭찬했다.

Ankiel의 피칭 레퍼토리는 93-95마일의 패스트볼, 그리고 88~90마일에서 형성되었던 싱커, 그리고 마이너리그에서 수많은 탈삼진을 솎아내게 해준 그의 플러스 커브였다. 특히 우타자들은 5마일의 구속 차이와 함께 탁월한 무브먼트를 동반한 그의 싱커에 타이밍을 맞추지 못했으며, 어느 카운트에서나 낙차 큰 커브가 아웃피치로 들어올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Ankiel 공략을 굉장히 힘겨워했다. (2000시즌 우타자 상대 피안타율 .213) TLR은 Ankiel이 장기적으로 체인지업만 장착한다면 리그를 오랜 기간 지배할 선수라고 표현했고, 이는 결코 과찬이 아니었다.

정규시즌 후반기, Ankiel을 제외하면 대부분 노땅들로 채워진 Cardinals 로테이션은 슬슬 힘에 부쳐하기 시작했다. 팀내 최고령 투수이자 6'6피트의 장신이었던 Andy Benes는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후반기 컨디션이 이미 정상이 아니었고, 노장 Pat Hentgen는 8월이 되자 체력적인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Garret Stephenson 는 8월달에 혼자 4승 평균자책 2.63을 기록했으나 9월달이 되자 피로 누적으로 차차 구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정규시즌 마지막 한 달간, 사실상 Cardinals 로테이션은 Darryl Kile-Rick Ankiel 두 투수가 이끌기 시작했다.  그리고 Ankiel 은 신인답지 않게 시즌이 진행될수록 더 구위와 제구가 나아지며 구단의 기대에 부응했다. 그는 최종 7경기에서 4승 무패 평균자책 1.97. 45.2이닝 54탈삼진을 기록했고 이 기간동안 팀은 6경기를 이겼다. (평균 103구, 경기당 6.2이닝). 

정규시즌 종료 후 Ankiel의 성적은 11승 7패 평균자책 3.50, 175이닝 194K. 신인왕 투표에서 그는 Braves의 Rafael Furcal에 이어서 2위에 올랐다. 만 20세 시즌에 규정이닝을 소화하면서 K/9이 9.0을 넘었던 투수는 (그 때까지) 역사상 단 2명에 불과했다. (1984년 Dwight Gooden, 2000년 Rick Ankiel)

Ankiel's Last 5 Games (2000)

DateOppIPHRERBBSOERAPitStrStLStSGBFB
SeptemberOppIPHRERBBSOERAPitStrStLStSGBFB
Sep 3NYM7.0211583.8011166221249
Sep 8@MIL6.0411253.7110664171179
Sep 13@PIT6.27420113.6710671161488
Sep 20HOU7.0432283.6210159121488
Sep 27@SDP6.0500283.5096601715410
175.01378068901943.50


순식간에 조롱거리로 전락하기에 그의 재능은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그 날 (2000년 10월 3일) - NLDS Game 1

Atlanta Braves와의 NLDS를 앞둔 상황, TLR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5인 로테이션에서 건강한 투수는 20승을 올린 에이스 Kile와 약관의 신인 Ankiel 달랑 2명 뿐이었고, 이들에게 많은 경기를 맡기고 싶어하는 것은 5전3승제 단기전을 앞두고 감독으로써 당연한 어프로치였다. 게다가 Ankiel은 4일 휴식을 줘야했지만 Darryl Kile은 3일 휴식으로 등판할 수 있었다. 즉 (정상적인 로테이션 순서대로) Kile이 1차전, Ankiel이 2차전을 던질 경우 Ankiel은 시리즈에 한 번 밖에 나올 수 없지만, Kile이 2차전을 던지고 Ankiel이 1차전을 던지게 된다면 이 시리즈에서 두 투수를 2번 쓸 수 있다는 소리였다. 정규시즌 마지막 한 달간 Ankiel 이 보여준 모습까지 감안했을 때, TLR의 결정은 "도박" 이라고 불리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TLR은 전국에 중계되는 첫 포스트시즌 선발이 이 젊은 투수에게 어떤 중압감으로 다가올 지에 대해 충분히 경계하고 있었다. 게다가 상대 투수는 지난 10년간 리그를 지배했던 베테랑 Greg Maddux. 호들갑을 떨만한 이유가 충분했다. 시리즈가 시작하기 전날, TLR은 불펜 피칭을 하고 나오는 Ankiel을 재빨리 언론 접촉없이 클럽하우스에서 내보냈다.  그리고 베테랑 투수 Kile에게 인터뷰실로 들어가서 마치 그가 당연히 1차전을 던지는 양 언론을 상대하도록 했다. Kile은 당시 기자들의 질문에 충실히 대답하면서도 단 한 차례도 자신이 1차전에 던질 것이라는 언급을 하지 않았다. 언론에서도 이미 Kile이 1차전을 던질 것이라는 게 너무 당연했기에 물어보지 않은 것이다. 인터뷰가 다 끝나고 미디어팀이 철수하자 그제서야 TLR은 1차전 선발이 Ankiel임을 발표했다. 수많은 리포터들이 그 날 TLR에게 얼마나 욕을 퍼부었을지 자명하다.

TLR의 머릿속이 복잡한 이유는 하나 더 있었다. NLDS가 열리기 며칠 전인 9월 28일, Darryl Kile의 정규시즌 20승 경기가 있었던 바로 그 날, 주전 포수 Mike Matheny가 생일 선물로 받은 사냥용 칼 (Hunting Knife) 을 잘못 놀려 자기 손을 크게 베어버리고 만 것이다. (MM의 생일은 9월 22일이다.) 이 부상으로 인해 정규시즌 잔여 경기는 물론 Matheny의 플레이오프 출장 기회도 날아가버렸다. 투수 리드와 호흡에 있어서 Ankiel에게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짝꿍이던 Matheny가 결장한 것도 문제였지만, 제구가 불안한 Ankiel과 등 부상으로 인해 활동폭이 좁던 포수 Carlos Hernandez의 조합은 결코 이상적이지 않았다. 


Hernandez가 아닌 Matheny였다면, 뭔가 달랐을까?


Braves와의 1차전이 시작했고, 마운드에 Ankiel이 올랐다. 1회 2사 후 Chipper Jones와 Andres Galarraga에게 연속 볼넷을 허용했지만 Brian Jordan을 파울 플라이로 잡아내면서 무실점. 주자를 3명이나 허용하긴 했으나 뭐 경기 초반 Ankiel의 제구 난조가 그다지 특별할 일은 없었다. 오히려 1회말 Cards 타선이 Maddux를 상대로 타자일순하며 6득점한게 더 신기할 일이었다. TLR은 훗날 이 날 Maddux를 상대로 뽑아낸 6득점은 "말도 안되는 숫자 ("Crooked Number") 라고 회상했다.

2회에도 Reggie Sanders를 삼진으로 잡으면서 시작한 Ankiel은 무실점으로 무사히 이닝을 마쳤다. 그리고 마의 3회... 

Score Out RoB Pit(cnt) R/O @Bat Batter Pitcher wWPA wWE Play Description
0-6 0 --- 4,(3-0)  ATL G. Maddux R. Ankiel -2% 91% Walk
0-6 0 1-- 4,(1-2)  O ATL R. Furcal R. Ankiel 2% 93% Foul Flyball: 1B
0-6 1 1-- 2,(0-1)  ATL A. Jones R. Ankiel -0% 92% Wild Pitch; Maddux to 2B
0-6 1 -2- 4,(2-1)  ATL A. Jones R. Ankiel -1% 92% Wild Pitch; Maddux to 3B
0-6 1 --3 5,(3-1)  ATL A. Jones R. Ankiel -2% 90% Walk
0-6 1 1-3 5,(2-2)  ATL C. Jones R. Ankiel -1% 89% Wild Pitch; Jones to 2B
0-6 1 -23 7,(3-2)  O ATL C. Jones R. Ankiel 3% 93% Strikeout Looking
0-6 2 -23 7,(3-2)  R ATL A. Galarraga R. Ankiel -3% 90% Walk; Maddux Scores/Wild Pitch; Jones to 3B
1-6 2 1-3 1,(0-0)  R ATL B. Jordan R. Ankiel -4% 85% Single to LF; Jones Scores; Galarraga to 2B
2-6 2 12- 3,(1-1)  ATL R. Sanders R. Ankiel -1% 84% Wild Pitch; Galarraga to 3B; Jordan to 2B
2-6 2 -23 5,(3-1)  ATL R. Sanders R. Ankiel -1% 82% Walk
2-6 2 123 2,(0-1)  RR ATL W. Weiss R. Ankiel -12% 71% Single to LF; Galarraga Scores; Jordan Scores; Sanders to 2B
Provided by Baseball-Reference.com: View Original Table
Generated 2/6/2014.

강판된 후 덕아웃으로 돌아온 Ankiel에게 아무도 위로의 말을 쉽게 건내지 못했다. Ankiel은 Andy Benes에게 다가가 "A joke. You've got to laugh." 라며 자신이 저질러놓고도 도대체 믿을 수가 없는 이 상황에 허탈해했다. 이 때만해도 Ankiel의 투수로써의 커리어가 이 경기를 기점으로 사실상 재생 불가능 상황이 될 것이라고 상상한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Mets와의 NLCS를 앞두고 Ankiel은 자신의 문제가 투구폼 관련된 Mechanical한 문제라며 이제 해결책을 찾았다고 이야기했다. NLCS 2차전에 Ankiel이 등판했고, 초구 91마일 패스트볼이 상대 타자 Timo Perez의 머리를 향했다 (Perez는 가까스로 피했다). 삼진-볼넷-폭투-볼넷-희생플라이-볼넷-2루타. 20구 중 5개가 포수 뒤로 날아갔다. Duncan 은 볼만큼 봤다고 생각했는지 Ankiel을 내렸는데, 질책성이라기보다는 보호 차원의 강판이었다. Duncan은 경기 후 지금 Ankiel에게 필요한 것은 쉽게 한 이닝을 던지고 감을 회복하는 것 ( "have a nice easy inning and probably get back on track") 이라고 얘기했고, Low-leverage 상황에서 Ankiel을 등판시켜 감각을 회복하도록 도와주기로 한다. 시리즈 최종전인 NLCS 5차전 7회, 0:6으로 크게 뒤져 있던 상황에서 Ankiel이 올라왔다. 볼넷-번트-삼진-폭투-폭투-볼넷. 

시리즈가 끝난 후 Rick Ankiel은 감옥에 있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경기를 본 아버지는 아들에게 다쳤냐고 물어봤고, 아들은 괜찮다고 대답하자 이에 "아니 그럼 대체 뭐하는 짓이야!" 라고 말했다. 이 경기를 TV로 지겨보던 Ankiel의 고등학교 팀 투수코치 Charlie Frazier는 "Ankiel에게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Mechanical한 문제들이 많았으며, 딜리버리 막판의 Follow-Through 단계에서 몸을 꼿꼿이 세우고 있었다" 며 어이없어했다. 동영상을 보시면 릴리즈 포인트에 신경을 쓰고 있던 Ankiel 의 상체가 부자연스럽게 거의 직선으로 서있는 모습을 보실 수 있다. 동영상 링크 


그 날이 있던 후 Ankiel이 웃고 있는 사진을 찾는 것은 굉장히 힘들어졌다.


"I never saw him lose his motion like that before. I saw mechanical flaws. He was throwing across his body; he was standing up in his follow-through. I asked him what his pitching coaches told him. He said, "They don't tell me anything!"

-Charlie Frazier, Ankiel's high-school pitching coach

NLCS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 Ankiel에게 Boras가 연락이 왔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Florida를 떠난 적이 없는 Ankiel에게 그는 "지금 당장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캘리포니아로 떠나라"고 설득했다. 다른 곳에 가서 머리를 식히라는 것 빼고는 딱히 어떤 이유가 있지는 않았다. Boras는 Ankiel에게 "모든 것을 그대로 놔두고 그냥 떠나라. 내가 도와주겠다" 고 했다. Ankiel은 잠시 Florida 집에 들려 짐을 싼 뒤 그 길로 Boras의 사무실이 있던 캘리포니아 Newport Beach로 떠났다. 마이너리그 때부터 같이 올라온 드래프트 동기 Adam Kennedy (당시 Angels로 이미 옮겨가있던) 가 기꺼이 숙소를 제공했다. 둘은 야구 관련된 일은 일체 하지 않았으며, 바닷가에서 조용히 휴식을 취했다. Ankiel은 이 기간 동안 자신의 멘토이기도 했던 Darryl Kile과만 꾸준히 연락했을 뿐 은둔한 상태로 5주를 보냈다. 

5주간의 휴식이 지나고 12월 중순 Ankiel이 Florida로 다시 돌아왔을 때, 그의 연락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 스포츠 심리학계의 거장인 Harvey Dorfman 박사였다. Dorfman은 3일간 심도있게 Ankiel의 어린 시절과 그를 둘러싼 공포들, 무의식을 분석하기 위해 상담했다. Dorfman 박사와 Ankiel의 두터운 관계는 이 때부터 시작되었다.

"...there's a lot of things in his life that could have triggered what happened in the playoffs. You're raised in that kind of environment, anything can happen. He's a very sensitive guy, and he had to be mature awfully quick. These things can have a very calamitous potential . I've seen it happen to other players where it became career threatening. So the best thing we can do is listen, understand and cover all of the possibilities."        

-Scott Boras, on Rick Ankiel's recovery (2001)

2001년 4월 8일, Ankiel은 Chase Field 원정에서 Randy Johnson과 D-Backs 라인업을 상대로 시즌 첫 등판을 치루었다. 1회 Matt Williams에게 투런 홈런을 맞았으며, 제구불안 문제도 여전했다. 그러나 전반적인 구위에 있어서 만큼은 Ankiel은 예전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5회에는 세 타자를 모두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기세등등했고, 6회에 투구수 100개를 채우고 강판되었다. 5이닝 3피안타 3볼넷 2실점 8탈삼진. Cardinals는 Big Unit을 상대로 홈런 3개 포함 11안타를 쳤다. 9:4 승리. Ankiel의 커리어 마지막 선발승이었다. 

그러나 이 경기 이후 Ankiel 이 보여준 모습은 2000년 플레이오프와 비슷했다. 도저히 봐주기가 힘들 정도로 아무데로나 가는 공들. 잦은 폭투. 24이닝에서 볼넷 25개, 폭투 5개, 사사구 3개. 2001년 5월 홈에서 Pirates 상대로 등판한 Ankiel은 Pat Meares를 상대로 다시 포수 뒤 스크린에다가 공을 던졌다. Duncan이 올라오자 Ankiel은 고개를 떨구었다.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Cardinals 구단 측에서는 Ankiel의 커리어를 "리셋" 하겠다는 의도로 그를 루키리그로 보냈고, 세간의 관심이 없는 이 곳에서 Ankiel은 신기할만큼 빠르게 영점을 잡았다. 그리고 제구가 되는 이상 ML에서 이닝당 한 개 이상의 삼진을 잡아내던 Ankiel의 구위는 루키리그 타자들이 건드릴만한 것이 아니었다. 14경기에서 87.2이닝동안 탈삼진 158개 (K/9 = 16.2) 평균자책 1.33. 이 정도면 괜찮다 싶어서 Memphis로 승격시키자 다시 병이 도졌다. 4.1이닝동안 3피안타, 17볼넷, 10실점, 폭투 12개. 공이 미친듯이 백스톱 뒤로 날아가자 상대적으로 작은 마이너리그 구장에서 관중들의 웃음소리가 Ankiel의 귀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것이다.



2004년, TJS를 받고 돌아온 Ankiel에게 아직도 Cardinals는 희망을 놓지 않고 않았다. A+ 볼에서 시즌을 시작한 Ankiel은 3차례의 선발 등판에서 8.2이닝 0볼넷 11탈삼진을 기록했고, AA볼로 승격된 이후에는 2경기에 걸쳐 9이닝 3피안타 1실점 2볼넷을 기록했다. 이어서 Memphis로 올라와서 선발 등판한 경기에서는 6이닝 1피안타 1실점. 역시 볼넷은 없었다. "그 날" 이 있기 전에도 Ankiel이 마이너리그에서 이렇게까지 좋은 제구력을 보여준 적은 없었다. 드라마틱한 부활이 가시권에 있었다.

2004년 9월 7일, Ankiel이 무려 3년 6개월만에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섰다. 1이닝 무실점. 15구 중 12구가 스트라이크였다. 4일 후 Dodgers 전에 다시 구원등판한 그는 19구 중 14구를 스트라이크 존에 꽂았다. 9월 19일에는 재앙이 시작되었던 Busch Stadium 마운드에 참으로 오랜만에 섰고, 관중들은 돌아온 Ankiel을 기립박수로 환영했다. 2이닝 4K 무실점. 5차례의 등판에서 10이닝을 던지는동안 Ankiel은 삼진 9개를 잡고 볼넷은 Chad Tracy에게 내준 한 개가 유일했다. 구속은 3년 전 그의 모습에 비해 확실히 떨어진 90마일 선에 그쳤으나, 커브는 여전히 리그 정상급 낙차를 보였고, 싱커도 여전했다. 

2000시즌 이후 제대로 된 정규시즌을 치루어 본 적이 없는 이 투수는 수년 간의 방황에도 불구하고 아직 24세였다. 오프시즌에 그는 Puerto Rico 에서 열린 윈터리그에서 한층 발전된 모습을 보였고, 구단 수뇌부에서는 Matt Morris 의 자리를 Ankiel이 대신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까지 품기 시작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간신히 ML에서 통할 수 있는 수준의 상태로 기어올라온 Ankiel은 시뮬레이션 피칭에서 Edmonds, Rolen 등 Cardinals 중심타자들을 배팅 케이지에 세워놓고 다시 한 번 "나는 누구고 여긴 또 어딘가" 식의 붕괴를 겪는다. 23구를 던졌으나 스트라이크는 3개. 원바운드성 폭투는 물론이고 배팅 케이지 밖으로 아예 나가는 공도 여러개였다. 2005년 3월, Ankiel은 "더 이상 던지지 않겠다"며 투수 포기를 선언한다. 

Sandy Koufax의 재림은 신기루였다.

"I just lost it right there on the mound. I don't know what I was thinking. I'd go blank before I'd throw the ball, and then after I'd say to myself, 'How the hell did that happen?' It was definitely weird. I mean, I'd been doing it so many times in my life, and suddenly I can't throw a ball?"

-Rick Ankiel, on his melt-down (2001)


2003년 스프링캠프를 앞두고 Walt Jocketty는 Ankiel의 진로를 결정할 순간을 맞이한다.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에 참여시킨 뒤 이후 마이너리그로 보내서 다시 재활하게 하는 것이 잠재적 방안이었는데, 과연 어느 레벨의 마이너리그로 그를 보내느냐는 정해지지 않았다. TLR의 사무실에 Duncan이 찾아와 Jocketty의 결정을 알리자 TLR이 물었다. "무슨 레벨로 가는지에 대해 우리가 어느 정도의 영향력이 있지?" Duncan 이 대답했다. "뭐 어느 정도 input은 있겠지." TLR은 버스 이동거리가 많은 AA 레벨보다 조금 더 이동이 수월한 Memphis로 Ankiel을 보내는 게 어떠냐고 물었다. 그러자 Duncan은 Ankiel을 Double-A 레벨의 Tennessee로 보내는 게 좋겠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덧붙였다. 

"He's 23-years old. He should be in Double-A."

(Excerpt from 3 Nights in August, page 82)


(Part II에서 계속)

자료 출처: Hardball Times, New York Times Magazine, USA Today, Palm Beach Post, STL Post-Dispatch, 3 Nights in August, Baseball-Reference, ESPN, Fangraphs






Posted by Doovy+
:

2014년 2월 2일은 Cardinals의 레전드 Red Schoendienst의 91번째 생일이다. 그의 생일을 기념하여 UCB 차원에서 다같이 특집 포스팅을 하게 되었다. 세대차이가 너무 나다보니 비록 그가 플레이하는 모습을 본 적은 없으나, 요즘도 매년 스프링캠프에 어김없이 나타나 까마득한 후배들에게 배팅볼을 던져주며 일일이 조언을 해주곤 하는 이 위대한 인물에 대해 이 기회를 빌어 간단히 소개하는 글을 써 보고자 한다.



Red Schoendienst(발음은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쉐인딘스트" 라고 한다)는 1923년 2월 2일에 일리노이 주 Germantown이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Red는 물론 닉네임이고, 본명은 Albert Fred Schoendienst이다. 1942년, 그는 트라이아웃을 거쳐 Cardinals와 계약하였고, 이후 2년간 마이너리그에서 뛰다가 1943년 말에 군대에 징집되었다. 그러나, 군에 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왼쪽 눈과 어깨 부상으로 의사 제대를 하기에 이르렀다.


원래 우타자였던 그는 왼쪽 눈 부상 때문에 우완투수의 공을 제대로 볼 수 없게 되었는데, 이에 굴하지 않고 반대쪽 타석에서 타격 연습을 하여 아예 스위치히터로 변신하였다. Red는 1944 시즌 당시의 AA팀이었던 Rochester Red Wings에서 .373/.443/.500 이라는 뛰어난 성적을 기록하였고, 결국 1945년에는 풀타임 메이저리거가 되었다. 메이저 데뷔 시즌에 그가 기록한 26개의 도루는 NL 1위의 기록이었다.


Happy Birthday, Red  4

(현역시절의 Red, 사진: George Dorrill)


데뷔 시즌에 좌익수, 유격수, 3루수 등 여러 포지션을 전전한 뒤 이듬해인 1946년 2루에 정착한 그는 안정적인 수비력으로 팀의 월드시리즈 우승에 기여하였다. 커리어 내내 메이저리그 최고의 2루 수비로 명성을 떨쳤으며, 올스타전의 단골 손님(올스타 10회 선정)이기도 했다. 초기에는 주로 수비력으로 인정 받았지만, 타격 능력도 점점 더 발전하여 1940년대에 6할대 OPS에 70-80 wRC+를 기록하다가 1951년에는 95 wRC+, 1952년에는 111 wRC+, 1953년에는 134 wRC+까지 올라가기에 이른다. 1953 시즌 그의 slash line은 .342/.405/.502 였는데, 홈런도 커리어 하이인 15개를 기록했다. 타석에서 그의 최대 장점은 엄청난 컨택 능력이었는데, 커리어 삼진/타석 비율이 고작 3.8%에 불과하며, 1957년에는 2.2%(694 타석에서 15 삼진)라는 경이적인 수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커리어 통산 볼넷/타석 비율은 6.6%로, 볼넷이 삼진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많다.


1956년, 그는 시즌 도중 New York Giants로 트레이드 되었고, 이듬해인 1957년에는 Milwaukee Braves로 다시 트레이드되었다. 이 시즌 그는 예의 뛰어난 수비와 함께 타석에서도 118 wRC+의 준수한 성적을 올리며 Braves를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는 Braves의 첫 번째 월드시리즈 우승이었다.) 그러나, 1958 시즌 후 그는 폐결핵 진단을 받았고, 폐 절제 수술로 인해 1959년을 날리게 된다. 1960 시즌에 필드에 돌아오긴 했으나 이제 더 이상 과거와 같은 모습은 아니었고, 결국 시즌 종료 후 Braves에서 방출되었다. Red는 커리어를 시작했던 Cardinals에 복귀하여 주로 대타 요원으로 활약하였는데, 대타로서의 통산 타율이 .304에 이를만큼 전문 대타 요원으로 우수한 모습을 보였다.


1963년, 그는 은퇴와 동시에 Cards의 코치가 되었고, 1964년 월드시리즈 우승 후 당시 감독이었던 Johnny Keane이 사임한 뒤에는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그는 1976년까지 12년 동안 감독으로 재임하였으며, 이 기간 동안 Cards는 1967, 1968 두 차례 NL 1위를 차지하였고, 이중 1967년에는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하였다. 그는 1980년과 1990년에도 잠시동안 임시 감독을 맡기도 했는데, 감독으로서의 총 재임 기간은 Cardinals의 긴 역사를 통틀어 Tony La Russa에 이어 2위에 해당한다. 감독으로서의 그는 철저한 기본기와 경기에 임하는 마음가짐을 강조하는 원칙주의자이기도 했지만, 작전지시를 많이 하지 않고 선수들을 믿어주는 player's manager로 선수들의 존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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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시절의 Red, 사진: UPI Telephoto)


1976년 시즌을 72승 90패로 마친 뒤 해고된 그는 이후 2년간을 Athletics의 코치로 지낸 뒤, 1979년 다시 Cardinals로 돌아와 "Special Assistant Coach" 및 "Special Assistant to the General Manager"가 되었다. 이 직함은 현재까지도 유지되고 있는데, 레전드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주어지는 단순한 명예직이 절대 아니다. 그는 여전히 스프링캠프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선수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보며 일일이 지적을 해 주는 현역 코치이며, 시즌 내내 단장과 감독에게 직언을 하고 있다. 90 평생을 야구장에서 보내 온 그의 통찰력과 지식,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겸손한 태도는 선수부터 코칭스탭, 프런트에 이르기까지 모두를 귀 기울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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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 & Mo, 사진: USA TODAY)


다음은 Yahoo의 Scott Wuerz가 전해주는 일화이다.


Tony La Russa가 Cards 감독을 처음 맡았을 무렵, 하루는 스프링 트레이닝의 연습게임에서 허접한 경기를 한 끝에 패했다. 그날, Bob Gibson과 Lou Brock이 TLR의 사무실에 쳐들어와 "Cardinals는 스프링캠프의 연습경기나 월드시리즈 7차전이나 똑같이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열과 성을 다해 플레이해야만 하는 팀"이라고 일장연설을 늘어놓았다. 당시 이미 월드시리즈 우승 경험도 있고 감독으로 연륜이 꽤 있었던 TLR에게 있어서 이것은 무척 황당한 사건이었던지라, 그는 좀 더 고참인 Red Schoendienst를 찾아가 "이 사람들 좀 오지랖 떨지 못하게 막아 주세요" 라고 부탁을 했다. 그러자 Red가 윙크하며 대답하길, "그 친구들을 당신에게 보낸게 누구일 것 같소?"


(Red & TLR, 사진: The Cardinal Nation)


Red는 안정적인 2루 수비로 인정받긴 했지만, Stan Musial이나 Bob Gibson처럼 압도적으로 훌륭한 퍼포먼스를 보인 선수는 아니었다. 19년의 메이저리그 커리어 동안 그의 통산 slash line은 .289/.337/.387로 그렇게 뛰어난 수준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커리어 fWAR은 37.4, bWAR은 42.2로 역시 아주 인상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그에게는 남들과는 정말 차원이 다른 꾸준함이 있다. 1945년에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이래, 그는 68년 동안 선수, 감독, 코치로서 계속 메이저리그 유니폼을 입어 왔다. 그것도 Giants와 Braves에서 선수생활을 한 1956년 중반-1960년과 A's에서 코치로 지낸 1977-78년을 제외하면, 무려 62년 동안이나 Cardinals 유니폼을 입고 필드에 나간 것이다. 이 기록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으로, 그는 올해의 스프링 캠프에도 어김없이 나타나 아침 일찍 출근하여 선수들에게 배팅볼을 던져줄 것이다. 이런 분이야말로 "살아있는 전설"이 아닐까...?


(사진: STLTODAY)


Happy Birthday, Red...!!



<스탯 링크>

선수 커리어 스탯: Baseball-Reference, Fangraphs

감독 커리어 스탯: Baseball-Reference

Posted by FreeRedb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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