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ovy님이 또 한명의 추억의 선수에 대해 훌륭한 글을 준비하시고 계시는데, 무료한 시간을 이용해 몇가지 뉴스만 간추려 봤습니다.

아직 본격적으로 꼬꼬마들에 대한 이런저런 리포트들이 나오기엔 좀 이른 타이밍이라 팜 뉴스가 몇 개 없어, 몇가지 주요 언론에서 크게 다뤄지지 않은 빅리그 뉴스를 더했구요.

글 뒤로 밀리게 만들어 번거롭게 해서 죄송합니다 Doovy님.

먼저 쪽지로 연락을 드리려고 했는데, 쪽지 시스템이 없어서... 일단 질렀습니다 -_-;;;


1. Sam Freeman과 Knuckle Curve

Rays의 2012년 draftee이자 Freeman의 고교 동창인 Nick Sawyer의 조언으로, Freeman은 새로운 구종을 장착했습니다. 그간 자신의 breaking ball(slider)을 쓸만한 수준까지 발전시키지 못해 어려움을 겪어 왔던터에, Sawyer의 주무기인 'knuckle curve'를 배우기로 결심한 것이죠.

첫 술에 배부를 순 없다고, grp 잡는 것에 불편함을 겪던 Freeman은, 걸을 때도, 영화를 볼 때도, 운전을 할 때도 공을 들고 다니며 grip을 잡기로 합니다. 어딜 가든 Freeman은 야구공을 들고 다녔습니다.

Freeman이 이야기 합니다.

"달리 할 일도 없었어요."

"먹을 때를 제외하면 정말 어디든 공을 들고 다니며 grip을 손에 익혔습니다."

Freeman과 구단, 양 쪽 모두 이 새로운 구질이 실전에서 통할지 여부에 대해 알고 싶어 합니다. 아직 수차례 side session을 통해서 테스트 했을 뿐이지만, 긍정적인 평가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주 좋습니다."

Matheny 감독이 이야기 합니다.

"새 구질과 더불어 mechanic을 좀 더 깔끔하게 수정했죠. 과거보다 더욱 반복 가능해진 투구폼이 그 결과 입니다. 이번 겨울 동안 많은 발전을 이끌어 냈습니다."


2. Michael Wacha와 Curve

4가지 구질(two, four seam fastball, change up and curveball)을 구사하는 Wacha는 특별히 curve를 가다듬고 있습니다.

Wacha 왈,

"좀 더 날카로운 curve를 던질 수 있기 위해 오프시즌 부터 내내 가다듬고 있어요."

"올 한해 이러한 노력이 성과를 거둘 수 있길 바랍니다."


한편 John Mozeliak이 스캠에 참가해 첫 투구를 한 Wacha에 대해 말하길,

"지난 해 제가 Wacha를 지켜보았을 때, 두가지 off speed 구질은 이미 메이저 리그 급이었습니다. 95-96mph의 직구와 함께였구요."

"만약 우리가 당장 불펜투수가 급했다면, 아마 Wacha는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을 겁니다."


아, 이거 적어놓고 보니 어제 Goold가 Wacha와 Q&A 기사 ( http://www.stltoday.com/sports/baseball/professional/birdland/cardinals-prospect-q-a-michael-wacha/article_6ffdf559-1a2f-5c83-b35f-8afac3d27e94.html ) 올렸네요.


3. Seth Maness와 James Baldwin의 인연

13 년 전인 2000년, White Sox 소속으로 올스타전에 출장한 바 있는 전 빅리그 투수 James Baldwin은 자신의 모교인 Pinecrest High school에서 감독 Jeff Hewitt을 도와 투수코치 역할을 수행 중입니다. Cardinals 마이너 리그 투수인 Seth Maness의 아버지 Michael Maness는 Baldwin이 Pinecrest High school을 다닐 당시 감독이었구요. Baldwin이 빅리그에 데뷔 한 1995년부터 거진 20년이 지난 현재, 재미있게도 Michael의 아들 Seth Maness는 Baldwin의 발자취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습니다.

Baldwin 은 또 다른 instructor인, Cleveland Indians에서 빅 리그 커리어 대부분을 소화한 바 있는 Paul Shuey와 함께, 그저 스프링 트레이닝을 즐기라는 말을 Maness에게 전해주었다고 밝혔습니다.

Baldwin이 말하길,

"언젠가 Maness는 빅리거가 될 꺼에요. 그 녀석의 남다른 투쟁심이 그렇게 만들 겁니다."

"지금까지 Cardinals에서 보여 준 성적도 정말 대단하지 않나요?"

" 그의 피칭 스타일은 누군가를 떠오르게 합니다. 네, Greg Maddux요. 타자들을 속이고, 또 속이고, 또 속이는 타입의 투수지요. 덕아웃에서 Maness의 피칭을 바라보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호, 저녀석 공은 칠 수 있겠어.' 하지만 4타수 무안타에 그친 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 당황스러워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많은 타자들을 삼진으로 잡아내는 투수가 될 순 없을 겁니다. 하지만 타자들을 스스로 무너지게 만드는 투수가 될꺼에요. 그리고 바로 이런 투수를 당신은 원할 것이구요."


4. Sinker를 가다듬는 Trevor Rosenthal

라디오 인터뷰에서,

Q: 작년 스캠에서 당신은 cutter를 새로 배웠죠. 올해도 새로운 구질을 시도할 생각인가요?

A: 아뇨, 언제나처럼 fastball, curve, changeup을 가다듬고 있구요. sinker에 조금 더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5. Mozeliak이 밝힌 철학

Q: 선발 자리는 하나고 둘은 떨어지잖습니까? 그렇다면, 영건들을 AAA로 보내 선발로 계속 테스트하는 것, 그리고 불펜이라도 메이저리그에 냅두는 것, 어느 쪽이 나을까요?

A: 나는 memphis 로테이션에서 선발 등판하는 것 보다 빅리그에서 불펜 등판 하면서 경험을 쌓고 성장하는게 더 낫다고 봐요. 이건 이미 Waino와 Lynn의 예에서 성공적으로 증명됬습니다. Motte, Boggs, Mujica의 필승조는 확고하고, 감독에게 six inning을 책임져줄 옵션을 더 다양하게 만들어줄 수도 있구요.


'어쩌면' Miller, Rosenthal, Kelly 전부 개막전 로스터에 포함될지도 모르겠네요.


6. Daniel Descalso

break out할 후보 하나 꼽아달라는 질문에 타격코치 John Mabry 왈,

"Daniel Descalso요."

"선수가 빅리그에 진입해서 편안히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기까지, 자기 자신, 게임, 그리고 투수들의 공략법을 좀 더 확실히 이해할 때 까지 필요한 learning curve가 있어요. 작년 DD의 부진은 이러한 learning curve의 일환이었죠."

"Descaslo는 'gamer'입니다. 타고난 리더이기도 하죠. 딱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위치에 있어주는 그런 알짜같은 선수에요. 이런 선수들은 자기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는 어떠한 'tool'을 깨달았을 때, 보통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곤 합니다."


한편 Descalso는 자신이 메이저리그 레벨에서 플레이할 수 있는 수비력을 갖췄다 생각하고 있으며, 이제 offense에 초점을 맞춘다고 얘기 했습니다. 특히 투수들의 유인구에 속지 않도록 좀 더 'selective'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네요.


7. Leadership?

Berkman, Carp, Lohse, Skip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면서 clubhouse leadership의 부재가 문제라며 이래저래 말이 좀 있죠.

이에 대해 몇몇 선수들이 입을 열었는데,

David Freese자신과 Jay 같은 선수들이 좀 더 leader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밝혔구요.

Daniel Descalso는 Skip이 자신에게 해 준 것 같은 호의를 이제 자신이 젊은 선수들에게 보여야 할 것이라 얘기했네요. Descalso는 지난 겨울 Lohse의 입을 통해 clubhouse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선수 중 하나로 꼽혔죠.

Jason Motte와 Mitchell Boggs도 40인 로스터에 넘쳐나는 젊은 불펜투수들 사이에서 이전보다 많은 역할을 수행해줄 것을 요구받고 있다는군요.


8. Alex Gonzalez, Marco Scutaro, Kolten Wong

이건 mlb.com에도 나온 이야기긴 한데,

Mozeliak은 지난 12월 Alex Gonzalez에게 접근했다 합니다. workout까지 가졌다는데, 협상이 잘 풀리지 않았던 모양이더군요. 당시 Mo는 Gonzalez에게 SS가 아닌 2B를 주 포지션으로 뛰어 줄 것을 요청했다 합니다.

한편 Mo는 Marco Scutaro에게 2년 18M 오퍼를 던진 것에 대해서도,

"(Wong의 존재 때문에) Giants처럼 3년 계약을 던질 수는 없었다. Scutaro는 2B 포지션 뿐 아니라 Furcal이 부상으로 나가 떨어질 시 SS 포지션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던 선수였다."

마지막으로 Mo는 Wong이 25인 로스터에 합류하지 않을 것이라 얘기해도 무관하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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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kip55

드디어 판타지 베이스볼 시즌이 돌아왔습니다.


작년의 흥행(?)에 힘입어 올해에도 다같이 판타지 리그를 해볼까 합니다.


원래는 작년에 하셨던 분들께 초청메일을 먼저 보내 드리려고 했는데... 야후코리아 폐업 후 미국야후 계정으로 옮기질 못해서 야후 계정이 날아가 버렸습니다. -_-;; 새로 계정을 파서 들어가 보니 작년 리그 페이지에 접근을 할 수가 없는 상태입니다.


규칙은 작년과 동일하게 가고요. 참가 팀 수에 따라 로스터 크기를 조정하려고 합니다.


1. 판타지 리그는 야후에 개설합니다. 야후코리아 폐업 후 1개월 유예기간(~1/31) 사이에 미국 야후로 계정 안옮기신 분들은 비밀번호가 틀리다면서 로그인이 안될 겁니다. us.yahoo.com 으로 가셔서 미국야후 계정을 새로 만드세요.


2. Head-to-Head 리그이며 로스터 변동은 일간 단위로 가능합니다.


3. 스탯은 작년과 동일하게 7x7 로 갑니다. Traditional 5x5에 투수는 QS와 HLD, 타자는 BB, 3B를 추가한 형태입니다.


4. 드래프트는 라이브로 진행되며 3/16(토) 밤 11시 30분부터 시작할 예정입니다. 미참시에는 오토픽으로 진행됩니다. 작년 리그를 보니 오토픽이 상위라운드에서는 꽤 잘 뽑더군요.


참가팀은 최대 20팀까지 가능한데요. 작년처럼 16팀 정도가 딱 재미있는 것 같긴 합니다만... 참가팀이 많으면 20팀 리그도 고려해 보겠습니다. 


참가팀이 정원을 초과하는 경우, 작년에 참가하셨던 분들께 우선권을 드립니다.


이 글에 참가 신청 댓글을 남겨 주세요.

초대장을 보내 드려야 하니 이메일 주소를 꼭 같이 남기셔야 합니다.

작년에 참가하셨던 분들은 작년 팀 이름도 같이 남겨 주세요.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비밀댓글로 하셔도 무방합니다.


기한은 일단 목요일까지로 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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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FreeRedbird

by Doovy

이번 주 TLR ERA 시리즈는 90년대말 Cardinals의 핵심멤버이자 근대 Cardinals를 거쳐간 선수들 중 순수 운동능력에 관한 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던 외야수, Brian Jordan이다. TLR 시절에 Tony의 리더십과 그의 스타일에 불화 및 갈등을 겪었던 선수들은 한 두명이 아니었으나, Brian Jordan는 Ozzie Smith, Ron Gant 등과 함께 초창기 반 TLR '살생부' 명단의 일원이었으며, 잘 알려져있지는 않지만 풋볼과 야구를 병행했던 몇 안되는 Dual-Atheletes 중 하나이다. 사실은 다른 선수 포스팅을 준비하고 있었으나, 요새 연속으로 이어지던 2000년대 초반 Cardinals 포스팅 난무 및 중복을 피하기 위해 이번 주는 특별히 90년대 후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Brian "투잡" Jordan



Brian O'Neal Jordan 

Outfielder

DOB: 1967년 3월 29일 

Birth: Baltimore, Maryland

Time with Cardinals: 1988-1998


Draft and Minors

Brian Jordan는 Baltimore 태생으로, 이미 고등학교 (Millford Mill Academy) 때부터 가을엔 풋볼, 겨울엔 농구, 봄에는 야구를 하는 만능 선수였다. 키는 6'0 으로 (183cm) 그다지 특출나게 큰 것은 아니었으나, 순간 스피드와 점프력이 뛰어났으며 모든 스포츠에 있어서 뛰어난 경기 감각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Jordan은 고등학교 시절 농구를 가장 좋아했으나, 어차피 자신이 NBA에서 뛰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풋볼과 야구에서 커리어를 탐색했다. (그도 그럴 것이, 6'0으로 NBA를 꿈꾸는 것은 엄청난 테크니션이 아닌 이상 모든 코치들이 만류할 일이다). 

고등학교 Senior 때 야구에서는 .479의 타율과 40개의 도루, 풋볼에서는 21개의 터치다운과 1,014 러닝야드를 기록하며 지역 내에서 가장 촉망받는 운동선수였던 그는 1985년 드래프트에서 20라운드에 Indians에 지명이 되었다. 그러나 이를 거부하고 University of Richmond에 진학한 그는 대학에서도 풋볼과 야구에서 모두 두각을 나타냈으며, 야구에서는 학교 단일 시즌 최다 도루 기록을 세움과 동시에 풋볼에서는 역대 최다 Punt Return 기록을 세운 뒤 1988년 Sociology (사회학과) 학사를 받고 졸업했다. 

1988년 Draft에서 아직 야구로 갈지 풋볼로 갈지 정하지 않은 Brian Jordan을 Cardinals는 1라운드 Supplement 픽으로 뽑았다. 훗날 Jordan는 "사실 당시 (연고팀이었던) Orioles 쪽에서 나를 2라운드에 뽑으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Cardinals가 먼저 채갔다" 고 회고했다. (소스: Baltimore Sun) Cardinals는 드래프트 당시 이미 운동능력과 순수 스피드, 강한 어깨가 검증된 Jordan이 타격에서의 성급함을 가다듬고 특유의 탄력을 살릴 수만 있다면 올스타 외야수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는데, 어찌하면 비슷한 시기에 Cardinals에 들어왔던 Ray Lankford와 비슷한 스타일이었다. 한편 1988년 드래프트에는 훗날 Cardinals 유니폼을 입게 되는 선수들이 심심찮게 눈에 띄는데, 다음과 같다. (참고로 Orioles는 Jordan을 놓치자 2라운드에서 Arthur Rhodes를 뽑았다 ㅎㅎ)

Cardinals를 거쳐간 1988년 드래프트 1라운더들

Year RdPck

Tm

Pos WAR
1988 1 Padres Andy Benes (minors) RHP 28.5
1988 14 Mariners Tino Martinez (minors) 1B 25.1
1988 15 Giants via Reds *Royce Clayton (minors) SS 16.4
1988 22 Cardinals via Yankees *John Ericks (minors) RHP -0.2
1988 23 Cardinals Brad Duvall (minors) RHP
1988 30 Cardinals *Brian Jordan (minors) OF 30.8
Provided by Baseball-Reference.com: View Original Table
Generated 2/11/2013.

Jordan는 결국 야구와 풋볼 중 어느 것도 포기하지 않기로 하고, 고되고 빡센 (그만큼 돈을 많이 벌수 있는) Dual-Athelete 이 되기로 하여 같은 해 NFL 드래프트에도 참가한다. 7라운드에서 Buffalo Bills에게 지명당한 Jordan은 그 해 트레이닝 캠프에서 엔트리에 들지 못하고 짤렸으나, 방출되자 마자 그를 눈여겨 보고있던 Atlanta Falcons에서 데려가 Defensive Back, 더 구체적으로는 Strong Safety라는 포지션에 그를 기용한다.

※풋볼에서 Safety란 포지션은 Defensive Team의 일원으로, 보통 Defensive Line이 상대 Offensive Line에 맞서 대인마크가 되는 반면 Safety들은 라인 뒤에서 서있다가 그때 그때의 약속된 플레이나 상황에 맞춰서 태클을 걸어야 하며, 상대 와이드 리시버의 움직임 및 러닝백을 마크하는데 있어서 큰 책임을 지고 있는 포지션이다. 뛰어난 운동신경과 순간 판단력은 물론이고, 상대 러닝백이 공을 놓칠만큼  강하고 저돌적인 태클을 걸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Jordan은 1988~1989년에 Cardinals 싱글 A에서 충분히 자신의 재능을 검증받았으며, NFL 시즌이 시작할 무렵에는 Falcons에 합류해 풀 시즌을 치른 뒤 다시 야구에 복귀하는 식의 '투잡'을 뛰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Jordan의 운동능력은 대단한 것이어서, 1989년 그는 BA 선정 Top 100에 이름을 올렸고, 1991년 AAA에서 비교적 성공적인 마이너리그 시즌을 보낸 이후에는 BA 랭킹 67위까지 진입했는데, 이 당시 Cards 팜은 선수층이 얇은 편이어서 (특히 가장 유망하던 Ray Lankford와 Gilkey가 팜을 졸업한 지 얼마 안되던 시점이다) 31위의 Dmitri Young, 35위의 Donovan Osborne, 64위의 Allen Watson을 제외하면 별다른 유망주도 없었다.


Falcons 시절 Brian Jordan


Brian Jordan's Minor League Track Record

YearAgeTmLgLevAffGPAABRH2B3BHRRBISBCSBBSOBAOBPSLGOPS
198821HamiltonNYPLA-STL19817112223141233615.310.388.549.937
198922St. PetersburgFLORASTL114543715412110208.349.378.6281.006
1990232 Teams2 LgsAA-A+STL258380713110102222.163.193.200.393
199124LouisvilleAAAAASTL6123821235561144241031741.264.342.410.752
199225LouisvilleAAAAASTL43169155234531416132821.290.337.400.737
199326LouisvilleAAAAASTL381651442454132535941617.375.442.5971.040
Provided by Baseball-Reference.com: View Original Table
Generated 2/11/2013.


1991년: 결정

1991시즌 Brian Jordan은 AAA에서 비교적 성공적인 시즌을 보냄과 동시에 NFL 올스타전이라고 할 수 있는 Pro Bowl에 NFC (NFL은 NFC와 AFC, 양대 컨퍼런스로 나뉜다) 대표로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Jordan이 야구에만 전념하기를 바랬던 Cardinals는 Brian Jordan에게 3년간 2.4M의 비교적 큰 계약을 안겨줬고, 특히 사이닝 보너스로  1.7M을 쏘면서 풋볼을 그만두기를 요청했다. Jordan은 이를 수용했고, 이를 들은 Dual-Athelete 계의 대표 주자이자 Brian Jordan의 팀 (Falcons) 동료였던 Deion Sanders는 "아니 그 정도 돈에 풋볼을 관둔다고?" 하는 반응을 보였다.

"I can't believe he gave up football. Doesn't he realize there are baseball and football players who make $6 million a year?"

-Deion Sanders, on Brian Jordan quitting football

90년대초 당시 NFL 최고 연봉자는 Dolphins QB였던 Dan Marino 였는데, 심지어 Marino 의 연봉도 4M 근처에 불과했다. Sanders의 6M 드립을 들은 Falcons 관계자는 "만약 Sanders가 Jordan을 위해 6M을 받아준다면 우리 구단 대표 협상자로 삼겠다" 며 껄껄 웃었다.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당시 Deion Sanders에게 6M은 그렇게 꿈같은 수치만은 아니었다. 이미 당시에도 수비수로써는 드물게 1M 이상의 연봉을 받던 Sanders는 이후 무려 8년연속 올스타에 2차례 Defensive Player of the Year 상을 받는 등 NFL에서 역대급 커리어를 쌓고 이후 NFL HOF에 들어간다. 당시 Sanders와 Jordan은 하위팀 Falcons Defense의 핵심으로 굉장히 강력한 듀오를 형성했으며, Sanders가 엄청난 순수 스피드를 지녔으며 스타성과 언론의 관심을 즐기는 스타일이었다면, Jordan은 (상대적으로) Sanders보다는 덜 까불거리는 성격이었으나 더 저돌적이고 강한 태클러였다. 이 둘은 1991년 Falcons를 하위권팀 Falcons를 플레이오프에 진출시켰고 둘 다 Pro Bowl에 출전했는데, 이 시즌을 마지막으로 Jordan이 NFL을 떠난다고 했으니 Sanders도 섭섭할만 하다. Sanders는 Jordan이 풋볼에 집중한다면 훌륭한 커리어를 쌓을만한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 당시 Sanders는 그의 ML 커리어에서도 정점을 찍고 있었는데, 1992년 Braves에서 97경기만에 WAR 3.1을 기록했으며 무려 14개의 3루타로 .304/.346/.495의 아름다운 슬래시라인을 찍는다 (좌타자였던 Sanders는 Turner Field의 깊은 우측 외야의 덕을 제대로 이용했다). Deion "Prime Time" Sanders에게 있어서 당시 MLB와 NFL을 겸업하며 6M을 받는 것은 충분히 실현 가능한 일이었다.

(Source: LA Times)

앳된 Brian Jordan



1992-1994년: 4th Outfielder

힘든 결정을 하고 야구에 전념한 첫 시즌. 1992년 4월 8일, 개막전 로스터에 이름을 올린 Jordan는 4월 8일 선발 우익수로 데뷔에 성공했으며, 데뷔전에서 5타수 2안타 4타점에 도루까지 기록하는 만점 데뷔전을 치렀다. 그러나 5월 중순 Hamstring 부상으로 DL에 올라가면서 일이 꼬였다. 복귀 후에도 Jordan은 타석에서 너무 뻔하게 수를 읽히는 모습을 노출하며 스트라이크 존 바깥쪽으로 유인구를 매번 쫓아가는 (chase) 모습을 보여 Torre 감독의 신임을 얻지 못해 결국 4th Outfielder로 AAA와 ML를 왕복하며 한 시즌을 보냈다.

이 시기 Cardinals 감독이었던 Joe Torre는 Bernard Gilkey-Ray Lankford-Brian Jordan의 자체생산 외야수 3명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이 중 Jordan의 출장기회에 있어서 상당히 인색한 면을 보였다. 풋볼과 야구를 병행하던 Jordan은 타자로써 ML에서 롱런하기 위한 Plate Discipline이 준비가 안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는 훌륭한 배트 스피드로 Fastball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쳐냈으며, 웬만한 빠른 공에는 눌리지 않는 큰 장점이 있었다. 1993년~1994년 그는 각각 1.0과 1.1의 WAR를 기록하며 벤치에서 충분히 제 역할을 해냈으나, 대학을 졸업하고 프로에 온지라 1994시즌이 끝났을 때 이미 그의 나이는 27세였다. 

훗날 Jordan은 "이 시절 경기 출장 기회가 적다보니까 매 경기 깊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정말 몸을 사리지 않고 뛰었다" 고 말했다. 뼛속까지 밴 그의 Football Mentality는 그가 웬만한 잔부상은 그냥 참고 뛰도록 만들었고, Jordan은 타구가 날아오면 마치 그 공이 상대 러닝백이나 리시버인 마냥 냅다 달려가 몸을 던졌다. 그리고 그러한 자세로 외야 전 포지션을 모두 소화해냈다.


제스처를 보아하니 그랜드슬램이 터진 것 같은데...이 경기의 날짜를 맞춰보실분?



1995년: 주전 발탁

1995년 4월26일, 느즈막히 열린 개막전에서 Brian Jordan은 주전 우익수로 선발 출장, 첫 타석부터 Curt Schilling을 (이 양반 정말 자주 나온다!) 상대로 적시타를 치며 첫 시즌을 상큼하게 시작했고, 이 경기에서 투런홈런 포함 2안타 3타점으로 팀의 승리를 이끌며 주전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시즌 중 Torre가 경질되고 새로 Mike Jorgensen이 부임하면서 Jordan의 입지는 더욱 굳어져갔다. Jorgensen은 "BJ는 그가 이미 최고 수준의 리그에서 플레이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면서 그를 Lankford와 Gilkey 앞에 3번타자로 투입하는 신뢰를 보였고, Jordan는 자신의 첫 풀시즌에서 525PA에서 22홈런 81타점 24도루, .296/.339/.488에 WAR 4.5를 기록하는 굉장히 훌륭한 시즌을 보냈다.

Jordan의 공/수/주 모든 면에서 경기의 흐름을 바꿀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Lankford가 먼저 자리를 잡았기에 우익수를 맡았을 뿐, 다른 팀이었다면 충분히 CF로 통했을 Range를 갖추고 있었다. 또한 탁월한 센스와 순발력으로 도루 성공률도 높았다. 7월 25일 Mets전, 1회에 솔로 홈런, 3회에 투런을 친 Jordan은 연장 11회말 1사 1,2루에서 끝내기 안타를 치며 사실상 혼자 힘으로 팀의 8:7 승리를 이끌었는데 (이 경기 WPA+ .609), 이는 2012시즌 초 (결과가 달라서 그렇지) Braves 전에서 혼자 북치고 장구친 현 Cardinals 우익수 (공교롭게도 둘 다 백넘버 3번이다) 가 생각나는 기록이다. 

"I feel like this is really my rookie season. They're finally letting me play all the time. I know they expected Lankford to do it, but they didn't really know what to expect from me."

-Brian Jordan, on becoming a full-time player


1995시즌이 끝남은 곧 Jordan이 1991년에 맺은 3년간 2.4M의 Baseball-Exclusive 계약이 만료됨을 의미했다. 28세의 Jordan은  충분히 이 때도 NFL로 돌아갈 수 있었고, 실제로 그를 다시 NFL로 부르는 구단들도 있었다. 그러나 1995년 말, Cardinals는 Jordan에게 3년간 9M 과 500K의 사이닝 보너스가 추가된 계약을 안겨주면서 다시 그를 야구에 붙들어놓았다.

1996년: Mr. Clutch

TLR 부임 첫 해, Gilkey가 Mets로 트레이드되고 베테랑 Gant가 합류하면서 Ron Gant-Ray Lankford-Brian Jordan의 제1대 '간지외야' 가 탄생했다. 이 해 팀 멤버가 많이 바뀌면서 타순을 어떻게 짤까 고민하던, TLR은 뛰어난 운동능력과 빠른 발을 갖고 있는 Brian Jordan을 Leadoff로 쓸 생각을 했다. 이에 5월말, 6월초에 이르러 Jordan로  Leadoff로 투입하는 실험을 11경기에 걸쳐 진행했는데, Jordan은 1번타자로 나서서는 45타수 10안타 .222/.260/.311의 굉장히 저조한 성적을 냈다. 이에 Jordan은 TLR에게 자신은 Leadoff 타입이 아니라며 이 실험을 그만하자고 말렸고 (그도 그럴 것이, Jordan의 통산 BB%은 6.3에 불과하며, 첫 풀타임이였던 1995년에는 고작 4.2%에 그칠만큼 볼넷을 고르는데 흥미가 없었다), 자신은 무조건 타점을 올릴 수 있는 타순에서 뛰고 싶다고 얘기했다.

결국 Jordan은 시즌 내내 중심타선에서 활약하게 되었는데, 이 시즌을 기점으로 Jordan은 "Mr. Clutch"로 불리며 TLR에게 보란듯이 타점을 쓸어담기 시작했다. 이 시즌 Brian Jordan의 득점권 성적은 다음과 같은데, 우리가 그토록 칭찬했던 2012시즌 Allen Craig의 득점권 성적도 Jordan에 비하면 남루해보일 지경이다. (특히 맨 밑에 만루 성적에 주목하시길;)

Brian Jordan in RISP (1996)

Split G PA AB H 2B 3B HR RBI SB CS BB SO BA OBP SLG OPS TB
RISP 104 173 147 62 11 0 10 93 11 1 13 19 .422 .453 .701 1.154 103
--- 128 303 287 76 22 1 6 6 0 0 12 45 .265 .304 .411 .715 118
Men On 120 257 226 83 14 0 11 98 22 5 17 39 .367 .404 .575 .979 130
123 25 24 19 13 5 0 1 31 0 0 1 1 .684 .625 1.105 1.73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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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rated 2/13/2013.

Jordan은 시즌 초 Wrist Soreness로 첫 2주를 결장한 이후에는 거의 전경기를 소화하며 140경기에서 17홈런 104타점 .310/.349/.483의 성적을 기록하며 팀의 Playoff 진출에 큰 공헌을 했고, 이를 인정받아 MVP 투표에서도 8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이는 Jeff Bagwell보다 높은 순위, WAR은 5.2였다) 당시 Jordan은 득점권에서는 "내 뒤엔 아무도 없다" 는 식으로 파워업, 굉장한 집중력으로 어떻게든 주자를 불러들이는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으며, 볼넷을 골라나가나는 데는 전혀 흥미가 없었다. RISP에서 그가 가진 173PA 중 볼넷은 단 13번이었는데, 그 중 고의사구가 4개였다. Jordan은 "넌 피해라 난 칠테다" 식의 진정한 타점 오타쿠였다.

플레이오프에서도 Jordan의 활약은 훌륭했다. 하이라이트는 1996년 NLDS 3차전. 9회초 5:5 로 맞선 상황에서 상대 클로저 Trevor Hoffman이 던진 슬라이더가 밋밋하게 몰리자 Jordan은 이를 그대로 좌측 담장으로 넘겨버리는 투런홈런으로 7:5 승리를 가져온다. (이 홈런은 Hoffman의 Cardinals 상대 흑역사의 일부분일 뿐이다ㅎㅎ). 

``I wasn't comfortable and happy and I let that affect my game. Whether it's hitting third, fourth or fifth makes no difference to me. As long as I'm going to have an opportunity to drive in runs, I'm going to be comfortable.''

-Brian Jordan, on his return to 4th spot



1997년: 부상

96시즌의 활약으로 Jordan은 Fan-Favorite 위치에 올라섰다. 미친듯한 타점본능과 굉장한 도루능력도 그랬지만, 몸을 전혀 사리지 않으며 이 펜스 저 펜스에 온몸을 던지는 그의 허슬은 어떤 야구팬들도 미워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Jordan의 바로 옆 자리에서 뛰던 중견수 Ray Lankford가 "그렇게 하다간 몸이 남아나지 않는다"며 "You can't keep running into those walls"라고 경고하기도 했었으나, 풋볼 멘탈리티로 무장된 Jordan에게는 동물적인 반사신경이 우선이었다.

1997년 5월 첫째주, Jordan은 스프링 트레이닝부터 자신을 괴롭혀왔던 Low-back 문제로 결국 DL에 오르고, Herniated Disc (추간판 탈출증으로 일종의 허리디스크가 아닐까 싶다), 6월 중순까지 약 6주를 결장한다. 복귀 후에도 2주만에 다시 통증을 호소, 또 DL로 올라가며 1997시즌을 사실상 망쳐버렸다. 허리가 받쳐주질 못하니 그의 장타율은 0.269로 급락했고, 스윙은 무너질대로 무너져서 161PA에서 .234/.311/.269에 그쳤다. Jordan의 공백은 John Mabry와 Willie McGee가 돌려가며 막았다.

맥과이어와 그의 조연들




1998년: 커리어 하이

St. Louis에서의 마지막 시즌. 허리 부상에서 돌아온 Jordan은 5월 한달간 무려 .424의 타율을 기록하면서 커리어 하이 및 FA 대박을 향해 힘찬 스타트를 끊었으나, 언론의 관심사는 오로지 McGwire의 홈런 레이스 뿐이었다.  그의 타율이 6월 중순 한때 .343에 이르며 NL 리딩히터 타이틀의 강력한 후보로 부상했을 때에도 경기 후 Jordan에게 오는 기자는 한 두명에 불과했으며, 그마저도 팀 동료의 신기록 페이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관한 것이었다. 이에 McGwire는 Jordan의 재능과 그의 1998시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He is a great, great player. He's better than Bo Jackson. He's a two-sport player. He was an All-Pro. He's leading the league in hitting. He's in his free-agent year. There are so many things to talk about with him, and I've seen maybe one thing written about him this year.........................He's just learning how to play the game. He's been playing on raw talent. It's scary to think what he can do when he really understands the game.

-Mark McGwire, on Brian Jordan and his superstardom (1998)



이 신기록 드라마에 Ray Lankford와 함께 조연으로 출연하기로 한 Jordan은 Lankford와 함께 이 역할을 사이좋게 나누었다. Lankford가 4번을 칠 때는 Jordan은 보통 2번 타순에서 McGwire 앞에 주자를 안내보내려던 투수들을 심히 응징했고, 그가 4번을 칠 때는 마음놓고 타점 찬스를 즐겼다. Lankford가 전반기보단 후반기에 McGwire의 크게 도왔던 반면, Jordan은 전반기에 무려 .339/.385/.576의 공포스런 성적과 함께 15홈런 56타점을 기록하며 McGwire의 전반기 홈런 쌓기에 크게 일조했다. 비록 7~8월에 월간 타율이 2할대에 머물며 결국 타격왕과는 거리가 먼 성적에 그쳤으나, FA 계약을 따내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성적이었다. (WAR 6.8, 25홈런 91타점 17도루, .316/.368/.534)


Braves로 이적

FA를 앞두고 Jordan은 풋볼로 복귀할 의사가 있음을 언론에서 밝혔는데, 이에 Cardinals 측에서는 "이건 그냥 협상용 뻥카"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Jordan은 1991년 야구에 집중하기로 한 후에도 꾸준히 풋볼에 대한 사랑을 밝혀왔고, St. Louis에 있는 동안에는 St. Louis Rams 풋볼팀을 찾아가 트레이닝을 지켜보기도 하고, 팀이 원정을 떠났을 때는 시간이 날때마다 그 도시에 있는 풋볼팀에 찾아가 구경을 하고 옛 동료들과 조우하곤 했다.  또한 자신의 풋볼 백그라운드를 자랑스럽게 여겼으며, 시즌이 끝난 후 "NFL팀을 물색해볼 생각이 있다" 고 공언했다.

전 정말 풋볼이 좋은걸요?


어차피 드래프트에서 J.D. Drew라는 완성형 대졸 외야수를 뽑아놓은 Cardinals 입장에서는 부상 위험을 안고 있으며 Club-friendly 계약을 맺을 생각이 전혀 없는 Brian Jordan을 굳이 애써가며 붙잡을 이유가 없었다. Jordan은 St. Louis에서의 생활을 즐겼으며, Cardinals 팬들 사이에서 인기도 많았으나, 프로 운동선수로써 큰 계약을 따내고 싶은 의지가 더더욱 강했다. 오프시즌, Jordan은 Orioles와 Braves 두 팀을 놓고 저울질을 했다. Orioles는 자신의 고향 Baltimore 연고팀이었고, 외야수를 보강할 생각이 있는 팀이었으나, 더 강한 어필은 Atlanta Braves로부터 왔다. Atlanta는 대학에서 만난 아내 Pam Jordan (All-conference Team 에 선정된 농구선수이다) 의 고향이었으며, 현재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는 도시였다. 게다가 Jordan은 자신의 커리어 초창기를 Atlanta Falcons에서 보냈기에 각별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Braves 단장이던 John Schuerholz는 처음부터 Jordan을 타겟으로 생각하고 자리를 만들기 위해 Denny Neagle과 Michael Tucker를 묶어서 Bret Boone과 바꾸는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그리고 11월 23일, Jordan은 마치 처음부터 원했던 것처럼 Braves과 5년간 40M의 계약을 체결하고 Braves 유니폼을 입는다. 드래프트 때 Jordan을 놓쳤던 Orioles는 Jordan에 관심이 있었으나 Braves가 선수를 치자 곧장 대어 Albert Belle을 질러버리고 만다. 이 당시 Braves 못잖게 Jordan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Mets였는데, 그들은 5년 35M 수준의 선에서 더 이상의 오퍼는 하지 못하고 물러났다. Mets는 이후 Jordan에게 크게 데이게 된다.


1999-2001년: Braves 시절

Braves로 옮긴 첫 시즌 Jordan은 전반기에만 무려 17홈런 71타점을 올리며 팀 공격을 거의 혼자 이끌다시피 했으나, 후반기에 타오르던 방망이가 급격히 식어버렸다. 여전히 그는 득점권에서 무서운 타자였고 (득점권 .316) 붙박이 4번을 치기에 적격이었으나, 나이로 인해 그의 좌투수 상대 장타력과 우투수 상대 장타력은 조금씩 차이가 나고 있었다 (커리어 초기 Jordan의 좌우 스플릿은 상당히 균등한 편이었다). 

비록 후반기에 6홈런을 추가하는 데 그치긴 했으나 Jordan의 방망이는 다시 플레이오프에서 타올랐다. 1999년 Astros와의 NLDS 2차전에서는 결승 희생플라이를 치며 Millwood의 완투승을 도와줬고, 3차전에서 Jordan은 6회초 당시 리그 최고의 좌완투수 반열에 올라있던 Mike Hampton을 상대로 역전 쓰리런을 후리며 4경기에서 1홈런 7타점을 기록해 Braves 팬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다. Mets와의 NLCS에서도 Kenny Rogers 상대로 결승 투런을 치며 2차전 승리에 크게 일조했으며, 4차전에서는 7회까지 흑마술같은 피칭으로 1:0 완봉을 할 기세이던 Mets 선발 Rick Reed를 상대로 동점홈런을 때렸다 (이어서 Klesko의 Back-to-back으로 역전, 그러나 John Rocker가 불지르면서 패배. 이 NLCS도 정말 재미있었다.)

2000시즌 Jordan은 시즌 내내 허리통증을 안고 싸웠으며, 통증을 줄이기 위해 타격 메카닉과 스탠스에 손을 댔다가 오히려 결과를 악화시키며 실망스러운 성적을 냈다. 17홈런 71타점을 뽑아내긴 했으나 우투수 상대 타율이 0.223에 그치는 등 전체적으로 Braves가 기대했던 모습은 아니었고, 슬래시라인도 .264/.320/.421로 풀타임 외야수가 된 이후 가장 안좋았다. 

2001년 Jordan은 다시 St.Louis 시절로 수정했고 제대로 반등했다 (25홈런 97타점 .295/.334/.496). A. Jones와 C. Jones 사이에서 그는 절대 꿀리지 않는 성적을 냈고, 오히려 Andruw Jones보다 많은 어시스트를 기록하는 작은 위업을 이뤄냈다. 또한 그는 약해진 무릎 때문에 도루를 많이 시도하지는 않았으나, 후속타시 Extra Base를 따낼 확률에서는 71.2%로 NL 1위를 기록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넘어서, Jordan은 96시즌부터 이어져 온 그의 "클러치" 모드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Rise up to the occasion, Mr. Jordan


9월 23일, 2경기차로 추격중이던 Mets와의 경기. 한때 13경기까지 벌어졌던 차이를 엄청나게 줄인 Mets는 홈에서 벌어진 시즌 막판 Braves와의 3연전을 스윕하기 위해 에이스 Al Leiter를 냈다. Leiter는 8회까지 Braves 타선을 3안타 8K 1실점으로 막았다 (Braves 선발 Glavine) 그리고 4:1로 뒤지던 9회초 Mets 마무리 Benitez가 올라왔는데, 2사 1루에서 Brian Jordan이 보란듯이 투런을 작렬하면서 분위기가 묘하게 흘러갔고, 이어서 B.J. Surhoff의 극적인 동점 적시타로 경기가 연장에 접어들었다. 연장 11회 선두타자로 들어선 Jordan이 또 솔로홈런을 치면서 Braves의 5:4 승리. Mets는 이 경기에서의 패배로부터 회복하지 못했다.

6일 후, 이기면 Braves가 10년 연속 지구 우승을 결정짓는 경기가 또 Mets 상대로 벌어졌다. 또 이 경기에서 Mets는 Leiter의 호투에 힘입어 5:1의 리드를 안았고, 9회에 Benitez를 또 투입했다. Benitez는 결국 Marcus Giles에게 2타점 2루타를 허용하면서 멀쩡하던 경기를 드라마로 만들었고, 2사 2,3루에서 마운드를 John Franco에게 넘겼다. Franco는 Wes Helms를 거르고 이 날 4타수 무안타이던 Jordan을 상대했다. 결과는 끝내기 만루홈런, Braves 8:5 승리, 10년 연속 지구 우승 확정. 이 다음 날 Jordan은 또 쓰리런 홈런을 쳤다. 


1999-2001년 3년간 Brian Jordan은 Braves의 중심타선에서 10.3의 WAR를 기록했는데, 같은 기간동안 그의 후계자인 Drew가 Cardinals에서 12.5의 WAR를 찍은 걸 생각하면 (Cards 입장에서는) 수지타산이 맞는 성공적인 세대교체였다. 데뷔가 늦었던 Jordan은 1998년 St. Louis에서의 임기(?) 가 끝났을 때 이미 만 서른 하나의 나이였고, 그가 96년과 98년에 보여준 공격력은 이제부터 조금씩 내리막을 걷는다고 봐야했었다. Jordan은 지역 사회에서의 왕성한 자선활동과 특유의 클러치능력, 그리고 플레이오프에서의 좋은 활약으로 지역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는 성공적인 시간을 보냈으며, Braves 입장에서도 3년을 잘 써먹고 Dodgers로 보냈으니 결코 나쁜 FA 계약은 아니었다.


Talent-wise, he's a Gold Glove outfielder and a great player. But he plays so hard he abuses himself. To get to that echelon of the top guys in baseball, you have to play 140 games a year. He beats himself up. When he's out there, he puts on a show, but for him to take his place among the elites, he will have to generate enough games."

-Tony La Russa, on Brian Jordan





총평

비록 Bill James가 한때 "Most Inconsistent Player of all-time"으로 뽑긴 했으나, Jordan은 풀타임 주전으로 발탁된 95년부터 2002년까지 단 한 시즌 (폭망했던 1997시즌)을 제외하고는 소속팀을 위해 매해 최소 128경기 515PA 이상을 뛰었으며, 4차례의 90타점 이상 시즌과 6차례의 타율 .280 이상 시즌을 제공했다. 95~2002년까지 Jordan은 8시즌에 걸쳐 30.8의 WAR를 적립했는데, 이는 같은 기간동안 NL에서 15위에 해당하는 수치이며, Barry Larkin과 거의 같은 수준이다. Jordan은 대학 졸업 후 풋볼과 야구를 병행한 기간이 길었기에 드래프트 후 7년만인 1995년 (만 28세)이 되서야 주전으로 자리를 잡았으며, 만약 조금 더 일찍 자리를 잡았다면 더욱 화려한 커리어를 보낼 수 있는 재능이 있던 선수였다. Greg Maddux와 Tony Gwynn이 야구를 예술처럼 하는 법을 보여주었다면, Brian Jordan 같은 선수들은 야구의 가장 야성적인 면을 드러냈던 선수들로 기억이 된다. 

Jordan의 최대 약점인 동시에 최대 매력은 공수에서 모두 볼 수 있었던 풋볼 선수 특유의 Aggressiveness 였다. 수비에서 그는 Edmonds 못지않게 멋진 장면들을 많이 연출해냈으며, 엄청나게 뛰어다니면서 몸을 던져 벽에 충돌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또한 그는 "풋볼에서 그렇듯, 내가 몸을 사리기 시작하면 더욱 다칠 것" 이라고 얘기했다 (Jordan은 풋볼 대신 야구를 선택한 결정은 후회하지 않지만, 매 경기 사이의 회복시간이 짧은 야구가 풋볼보다 부상 당하기 더욱 쉬운 종목인 것 같다고 회고했다.)  또한 타석에서도 그는 1995~1999년까지 2000타석 이상 출장한 선수들 중 5번째로 안좋은 BB% (6.3)을 기록할만큼 (1위 Mark Grudzielanek) 극악의 참을성을 보였는데, 본인 또한 이 문제를 알고 있었다.

"There is so much to learn and I am trying to pick up on things. The one thing I haven't learned is patience. I have almost 200 at-bats and I have only five walks. If I took some walks, I could be hitting .400 right now, but I swing at a lot of bad pitches."

-Brian Jordan, on his plate discipline


그러나 Jordan은 자신의 타격 어프로치를 수정하고 보완하는 것보다 자신의 강점을 최대한 살리는 데 주력했으며, 이 전략은 그대로 먹혔다. 이에 Jordan은 2001년까지 리그에서 가장 Fastball을 잘 치는 타자 중 하나로 꼽혔으며, 초구 공략도 몹시 즐겼다. 또한 몸쪽으로 들어오는 빠른 공들을 빠른 배트스피드로 응징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으며, 나이를 먹어서도 수비와 주루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였고 클럽하우스에서 리더 역할도 발벗고 나섰다 (물론 Cardinals 시절에는 McGwire와 Lankford 앞에서 대장 노릇을 할 순 없었다. 그의 Veteran Leadership은 Braves와 Dodgers에서 크게 가치를 인정받았다.) 

Jordan은 2004년 Rangers와의 계약이 끝난 뒤 2005년과 2006년 Braves로 돌아와서 두 시즌을 더 백업멤버로 뛰고 은퇴했으며, 개인적인 소망이라고 누누히 밝혔던 200홈런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184홈런). NFL와 MLB 에서 모두 올스타에 선정된, 생각해보면 굉장히 대단한 기록을 가지고 있는 그는, 이 두 차례 올스타를 모두 Atlanta 팀 소속으로 했으며 현재 Atlanta에서 Brian Jordan Foundation 이라는 자선기금(주로 아동 교육과 소아복지를 위한) 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Braves 경기 Pre-game Analyst로 활약하고 있으며, Braves AAA팀 중계까지 하고 있다고 하는데, 커리어의 절반인 7시즌을 Cardinals에서 보내고 5시즌만을 Braves로 (게다가 중간에 트레이드까지 한) 보냈음을 생각하면 조금 서운하기도 하다. 


When I hit one, the first thing I feel is relief. Then, I circle the bases, I feel on the top of the world, I've conquered that pitching, I am the king.

-Brian Jordan, on hitting home runs



by Doov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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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oov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