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Doovy

Revisiting TLR ERA [1] Ray Lankford

Revisiting TLR ERA [2] Edgar Renteria

Revisiting TLR ERA [3] Matt Morris

Revisiting TLR ERA [4] Steve Kline

Revisiting TLR ERA [5] J.D. Drew - Part I




2001년: 비상

Drew의 포텐셜이 가장 잘 반영되었던 시즌. 5월 한 달간 10홈런 26타점 .366/.443/.762를 기록한 Drew는 MVP 페이스로 홈런과 타점을 쓸어담았다. 그러나 6월 17일 벌어진 White Sox와의 3연전 마지막 경기 (Bud Smith vs. David Wells) 에서 Drew는 David Wells의 패스트볼에 손을 정통으로 얻어맞고 Broken Hand로 DL에 오른다 (전날 쓰리런 홈런을 쳤던 그였기에 더욱 아쉬웠다). 결국 그 경기는 Drew의 전반기 마지막 경기가 되어 버렸다 (전반기 성적 64경기 21홈런 49타점 .330/.426/.688).

7월 31일이 되서야 간신히 복귀한 Drew는 복귀 첫 경기에서 4타수 2안타(3루타) 2득점을 기록하면서 다시 페이스를 끌어올렸으나, 일주일만에 다시 "Lower Back Sprain"으로 DL에 오르면서 또 2주를 결장한다. 8월 20일~21일, 부상에서 복귀하고 난 첫 2경기에서 모두 홈런을 친 Drew는 그러나 이후 꾸준히 장타 페이스가 떨어지면서 결국 27홈런 73타점 .323/.414/.613에 OPS 1.027로 시즌을 마감했다. 이 시즌은 Drew는 데뷔 초 TLR이 "얘는 3할에 40홈런을 칠 수 있는 애다" 라고 평가한 자신의 재능을 그대로 드러냈고, 특히 웨이트로 몸을 불리면서 장타력이 급상승, 무려 .291의 ISO를 찍어냈다. 또한 지난 2시즌간의 경험으로 투수들과의 카운트 싸움에서도 치기 싫은 공은 커트해내는 노련미를 보이기 시작했으며, 좌투수 상대로 성급했던 모습도 많이 줄이면서 .289의 준수한 좌투수 상대 타율을 기록했다. 특히 그는 볼카운트 3-1에서의 타율이 .778에 이르렀는데, 이는 ML 전체에서 1위였다. 
 
Drew는 이 해 108경기 443PA만에 NL 16위에 해당하는 WAR 5.9를 기록했는데, 풀 시즌을 치렀다면 8~9 사이의 WAR를 기록할 페이스였다. 만약 풀시즌을 소화했다면 아마도 당시 57홈런 142타점의 Luis Gonzalez (WAR 9.4, 3위) 와 Larry Walker (38홈런 123타점 WAR 8.0) 사이에 충분히 끼지 않았을까 싶다 (wRC+ 162 (6위) ISO .291 (8위))




2002-2003년: 부상

2002년은 Drew의 커리어에서 가장 초라한 시즌 중 하나였는데, 나름 135경기 496PA로 꽤나 많은 타석을 견뎌내면서 (Drew의 Cardinals 시절 6년간 가장 많은 PA) 역대 최악의 K% (21%, Drew의 커리어 평균은 18.5%)를 기록하면서 BB%는 11.5%에 그쳤고 (커리어 평균은 14%), OPS는 오랜만에 다시 7할대로 복귀했다 (.252/.349/.429).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장타율의 급격한 하락이었는데, 이미 2001년에 Drew가 건강하다면 어떤 걸 해낼 수 있는지 본 팬들에게는 상당히 실망스런 시즌이었다. 장타력 하락의 큰 원인은 Drew가 2002시즌 내내 싸워야했던 무릎 부상 (Patellar Tendonitis)으로, 시즌 종료 후 Drew는 무릎 수술을 받아야했다. 이 시즌 그는 도루 시도도 10번에 그쳤고, 424타수에서 고작 19개의 2루타밖에 생산해내지 못하는 실망스런 모습을 보였다. Arbitration Eligibility가 생기게 되는 시점부터 Drew의 고질적 무릎 부상이 생겼으니, Cardinals 입장에서도 이제 3.1M을 받고 1.9의 WAR를 찍어낸 Drew를 계속 기다려줄 여유가 없었다.

2003년은 2002년에 비해 조금 나았으나 실망스러운 것은 매한가지였다. 오프시즌에 받은 무릎 수술로 시즌 첫 5주를 놓친 Drew는 5월에 팀에 합류했으나 결국 다시 8월에 Oblique 부상으로 풀타임 5년만에 6번째 DL행을 맞는다. 이 시즌에도 Drew는 고작 100경기 출장 (70경기 선발) 에 그쳤는데, 단순히 TLR의 Platoon 기용을 탓하기에는 Drew가 부상으로 놓친 기간이 너무 길었다. 물론 이 와중에도 Drew는 이 시즌 타석에서 한층 더 성장했다는 평을 들었는데, 특히 몸쪽으로 파고 드는 공에 대한 대처가 크게 좋아지고 (추신수가 치는 좌중간 2루타 타구를 생각하시면 될 듯 하다) Breaking stuff에 대한 참을성과 대처력이 개선되었다는 평을 받으며 .289/.374/.512의 여전히 훌륭한 슬래시라인을 찍었다. 무릎 수술 이후로 Drew는 더 이상 누상에서의 큰 위협이 되지는 않았다 (물론 Drew의 탁월한 운동신경은 그를 여전히 좋은 주자로 만들었지만, 이제 그에게 누구도 30-30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이미 이 시즌에 이 3.7M짜리 외야수를 두고 구단 측에서는 어느 정도 인내심이 다했으며, 좀 되나 싶으면 다양한 이유로 DL을 들락날락하고, 한 시즌 500 PA를 단 한번도 채워본 적이 없는 이 젊은 외야수를 둘러싸고 트레이드 루머가 무성하게 퍼졌다.
 

"We saw signs from him that made you say, 'This kid is unbelievable.' But teammates ultimately respect guys who go to the post the most. When something keeps happening that prevents you from going out there, they're not forgiving."

-Tony La Russa, on J.D. Drew's Injury-ridden career (2003)





Trade: Good News and Bad News

2003년 12월 13일, 고향인 Georgia에서 조용한 오프시즌을 보내던 Drew는 GM Walt Jocketty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I've got good news and bad news. The good news is, you're moving closer to home. The bad news is, we're trading you." 
Gary Sheffield가 빠진 외야를 지켜줄 수 있으며 중심타선을 맡아줄 수 있는 외야수를 구하던 Braves의 John Schuerholtz가 Drew를 낚아채간 것이었다.

(주인장님의 Jocketty 시리즈에서 곧 다루시겠지만 이 트레이드는 굉장한 성공이었다. Marquis는 Cardinals에 와서 3시즌간 거의 100경기에 등판하고 600이닝을 먹어주며 든든히 버텨주었다. Ray King 역시 Steve Kline의 부담을 덜어주며 TLR의 좌우놀이에 큰 도움을 주었고, Wainwright은 더 말할 것도 없다. Drew가 이후 Break-out Season이 있긴 했지만, 어차피 Franchise Player로 키우지 못할 것이었으며 Marrero 역시 충분히 대체할 수 있던 자원이었다. 이 트레이드의 평점은 Excellent??)

Drew는 트레이드 직후 충격애 빠졌었다. Rasmus와 다르게 Drew는 (믿거나 말거나) St. Louis에 큰 불만이 없었고, TLR과도 그렇게 나쁜 관계가 아니었다. 그러나 Cardinals 수뇌부에서는 Drew에 대한 인내심이 바닥이 났는데다가, 클럽하우스 내에서 Drew의 지나칠 정도로 "열정없어 보이는" 침착함과 건조함, 그리고 (보기에 따라서 부담스러울 수 있는) 신앙심은 인기가 없었다. 심지어 당시 Cards 소속이던 한 선수는 Drew가 트레이드되자 "Do we miss him? I don't think anyone really does." 라고 대답할 정도였다.

"It's funny when you hear about J.D.'s religious convictions as a negative. We're always reading about people who do wrong, be it drugs, crime, whatever. Then when someone comes along with convictions and character, he gets ripped. I think that's unfair. We're talking about a player who came up with great fanfare, has incredible tools, but whose career has been up and down. If anyone will be motivated and intense, I expect it'll be J.D. Drew."

-John Schuerholz, on acquiring J.D. Drew



2004년: 기다리던 Break-out 

그렇게나 고대하던 J.D. Drew의 Break-out 시즌은 고향팀 Braves에서 바로 터졌다. 무려 145경기 645PA (당연히 커리어 하이) 를 DL이나 잔부상 없이 치러낸 Drew의 풀 시즌은 훌륭했다. .305/.436/.569의 무서운 슬래시라인과 31홈런 93타점도 그랬지만, Drew는 어떤 방법으로든 출루를 해내는 능력이 탁월했다. 무려 118개의 볼넷을 골라내며 리그 5위에 오른 그는 (BB 18.3%), 이 해 6월 10일부터 7월 27일까지 무려 41경기 연속 출루기록을 세웠고, 145경기 중 133경기에서 출루에 성공했다 (91%). 또한 무릎 부상에서 완연한 회복세를 보이며 8개의 3루타와 12개의 도루까지 기록했고, Sheffield보다 훨씬 나은 우익수 수비로 Braves 팬들의 환호를 받았다. 

Braves의 Bobby Cox는 (당초 5번타자로 영입했던) Drew를 가리켜 "the perfect No.3 hitter"라고 칭찬했는데, 지난 수 년간 Chipper Jones를 3번으로 써왔던 Cox가 이런 말을 할 정도였으니 알만하다. 이 시즌 Drew는 115경기에 3번타자로 출장하며 팀내 거의 모든 공격 카테고리에서 1위를 했고, 그가 기록한 8.9의 WAR는 ML 전체에서 4위, 162의 wRC+는 ML 전체에서 5위의 성적이었다. 당연히 MVP 투표에도 이름을 올렸다.

Dodgers 입단식에서 Drew와 그의 아내 Sheigh, 그리고 Lasorda




2005-2006: Dodgers

오프 시즌에 Braves는 '홈보이' Drew를 잡고 싶어했다. 그도 그럴것이, DL에 한번도 들어가지 않은 Drew의 2004시즌은 공수에서 완벽했으며, 심지어 어떤 이들은 Drew가 Hank Aaron 이후 팀 역사상 최고의 외야수가 (굉장한 설레발이다 고작 한 시즌에...)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바람을 넣었다. 그러나 Braves는 Mike Hampton과 쌍존스 등 고액연봉자들을 여럿 거느리고 있던 팀 사정상 도저히 AAV 10M 이상은 올라갈 수가 없었고, 3년 25M의 오퍼에 그쳤다. 결국 Drew는 이 해 12월 23일, Dodgers와 5년간 55M짜리 계약을 맺고 서부로 건너간다. Dodgers는 당시 Randy Johnson을 중심으로 한 3각 10인 트레이드를 추진했으나, 이 딜이 파토가 난 후 바로 Drew와의 계약에 집중해 결국 딜을 따냈다.

2005시즌도 Drew는 건강하게 시작, 5월말을 기점으로 서서히 방망이가 뜨거워지더니 6월 한달간 .347/.466/.625를 치면서 페이스를 올렸다. 홈인 Dodger Stadium에서 0.331을 쳤고 중견수 알바도 자주 뛰면서 Dodgers 3번타자로 완전히 자리매김을 했다. 7월 초 D-Backs와의 3연전, Drew는 3연전 첫 2경기에서 7타수 4안타 3홈런을 쳤다. 그러나 세번째 경기에서 상대 선발 Brad Halsey의 패스트볼에 Wrist를 얻어맞았고, 이 경기를 마지막으로 2005시즌을 접어야했다. 72경기만에 WAR 2.8을 찍었으니 Drew가 그대로 풀시즌을 뛰었다면 충분히 WAR 5짜리 시즌은 만들었을 것이다.

2006시즌 그는 20홈런 100타점 .283/.393/.498의 준수한 성적을 올리고 Opt-out을 실행한다. 남은 3년 계약 기간을 깨고 다시 FA가 된 것. Dodgers 단장 Ned Colletti는 "분명 LA에서 행복하다고 했는데 이렇게 일이 진행되서 놀랍다" 고 유감을 표시했으며, Drew는 결국 2006시즌을 앞두고 Red Sox과 5년간 70M짜리 계약을 맺는다. 프로야구 선수인 Drew가 법적으로 전혀 문제 없는 수단을 통해서 새로운 팀을 찾아 떠난 것은 태클걸 여지가 없는 부분이지만, 불과 새로운 계약을 하기 며칠 전에 "나는 LA에서 행복하다" 라는 기사를 냈던 터라 그를 향한 시선은 결코 곱지가 않았다. 그리고 이 중심에는 다시 한 번 10년 전 그를 도왔던 Scott Boras가 있었다.

2007-2011: Red Sox

2006년 12월, J.D. Drew의 계약 건수를 앞두고 Boston Globe에서는 지면에 Drew의 계약에 대한 찬/반 Poll을 걸었다. 무려 81%의 독자들이 Drew의 계약을 반대했다. 그러나 Red Sox는 결국 Drew에게 70M짜리 계약을 안겼고, 팬들은 결코 이 무브를 지지하지 않았다 (이 정도로 새로운 팀과 새로운 계약을 할때 푸대접받는 경우도 드물다.) 특히 필드에서 거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빠른 타구판단으로 다이빙 없이 수비하던 Drew의 모습은 Grit과 Hustle로 사랑받던 Red Sox의 전 외야수 Trot Nixon의 모습과 큰 대조를 이뤘다. 

Drew의 Red Sox 커리어는 짧게 얘기하자면 결코 이상적이진 않았으나 생각보다는 나쁘지 않은 계약이었다. 2007년 그는 140경기에 출장하면서 고작 1.9의 WAR를 기록했는데, 커리어 로우나 다름없는 .152로 떨어진 ISO 탓이 컸다 (SLG .423, 최저수치). 이는 좌타자에게 인색한 Fenway Park의 여건과 처음으로 AL에서 뛰는 시즌이었다는 점에서 조금 정상참작을 할 수는 있겠으나, 연봉 14M을 받으면서 Replacement Level 의 생산성을 보였으니 욕을 먹을만한 시즌이었다.

Credit: Larry Johnson




데뷔 이후 줄곧 "Future All-Star"라는 마크를 달고 Scouting Report 페이지에 등장했던 Drew는 2008년, 데뷔 10년만에 처음으로 올스타에 선정되고 무려 올스타게임 MVP까지 수상하는데, Drew가 All-Star에 선정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David Ortiz였다. 이적 후 주로 6번에 머물던 Drew는 Ortiz가 부상당한 6월 한달간 4번에 Manny Ramirez를 업고 3번타자 자리로 복귀헀는데, 이 기간동안 12홈런 27타점 .337/.462/.848이라는 괴물급 성적을 냈고, 이 활약에 힘입어 올스타전까지 출장한 것이었다. Drew가 이 시즌 내내 친 홈런은 총 19개밖에 안되는데 그 중 12개가 6월에 3번타순에서 나왔는데 1) Manny를 업는 효과를 제대로 본 것인지 2) 아니면 3번 타순이 편한 것인지 3) 아니면 NL팀들과 많이 붙는 6월달에 스케줄 이득을 본것인지 여러가지 이유를 생각해보게 된다. 결국 이 시즌도 Drew는 8월부터 DL에 올라감으로써 109경기 456PA에 그쳤다.

2008~2009년 두 시즌간 Drew는 9.0의 WAR를 기록했는데, 이는 AL에서 12위에 해당하는 수치로, Mark Teixeira, Carl Crawford보다 높았다. 적어도 이 2시즌은 14M의 밥값을 했다고 봐야할 것이다. 범위를 3시즌 (2008-10) 으로 넓혀봐도 (2010년 Drew는 OPS가 .793으로 떨어지면서 Down year를 보냈다) Drew가 기록한 11.4의 WAR는 Robinson Cano, Curtis Granderson보다 높은 수치이며 B.J Upton과 같았다. 2011년 Drew는 286타석에서 4홈런에 그친데다 부상과 부진이 겹치며 최악의 시즌을 보냈고, 그 시즌을 마지막으로 계약이 종료된 뒤 은퇴했다.


J.D. Drew as a Christian

Drew에 관해서 가장 널리 알려진 사실은 "엄청난 재능을 가졌으나 한번도 제대로 꽃피운 적이 없으며, 늘 잔부상을 달고 다녔던 선수" 라는 부분이다. 그러나 그만큼이나 Drew라는 선수를 되돌아보는데 있어서 중요한 부분은 그의 독실한 기독교 생활이다.

FSU 시절, 훗날 자신을 학교 명예의 전당에 헌액시킴과 동시에 "Player of the Century" 투표에 이름을 올리게 할 만큼 화려한 실력을 뽐냈던 Drew는 학교에 재학중이던 3년간 단 한 차례도 술, 마약, 담배, 섹스에 손을 댄 적이 없다고 고백한 바 있다. 많은 State University들이 그렇지만 FSU 역시 노는 걸로는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 학교인데, 이 학교를 다니면서 이 정도로 깨끗하게 살았다는 것은 대단한 의지나 신념이 아니고서는 힘든 일이다. Drew는 고등학교 때 그 흔한 Prom 에 간 적도 없고, 대학교 1학년 때 딱 한번 팀 선배들의 성화로 Club에 놀러갔었으나 "Miserable"한 시간을 보내고 45분만에 집에와서 성경을 읽고 기도한 뒤 잠을 청했다고 한다. Drew는 신앙심이 없는 여자는 만나고 싶지 않아했으며, 이에 25세 시즌이자 첫 Break-out campaign이었던 2001년 시즌이 끝나고 나서야 교회 Youth Leader (청년부 부장?) 의 딸 Sheigh를 만나 결혼했다. 

J.D. Drew와 그의 가족들



My friends really understand my beliefs, so they'll ask a girl lots of questions before they introduce her to me. It always ends up, 'Well, I'd like to set you up, but he'd never go out with you for these reasons.' In the Bible it says you shouldn't be with nonbelievers. Hopefully one day I'll find a good Christian girl.

-J.D. Drew, in his interview with SI (1998)



모든 일을 "예수님의 뜻"으로 받아들였던 Drew의 이러한 Attitude와 가치관은 필드 위에서도 그대로 반영이 되었다. 그에게 있어서는 홈런이나 삼진이나 다 같은 "Thy Lord's will" (주의 뜻) 이며, 자신은 그저 인간 야구선수이기 때문에 고개를 숙이고 나아갈 뿐이라고 입버릇처럼 밝혔다. 그랬기에 그는 홈런을 치든 호수비를 하든 삼진을 당하든 거의 늘 같은 표정으로 일관했고, 이에 그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Drew를 오해하기 십상이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University of Maryland에 원정을 가서 여느 때처럼 그의 5-tool을 모조리 과시하며 FSU의 승리에 크게 일조한 Drew는 어느 선수들보다도 빨리 샤워를 끝내고 원정팀 라커를 비운 뒤 버스에 올라탔다. 이를 수상히 여긴 Mike Martin 감독이 버스에 올라타자 Drew는 고개를 떨구고 의자에 앉아있었다. Martin이 Drew에게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보자 Drew는 이렇게 대답했다.

""Hi Coach. Thank-you. I was looking something up that I could not remember after the game today. I wanted to remember it. I found it though. It was about Joshua." 

그제서야 Martin은 Drew가 고개를 떨군 채 버스에서 성경을 읽고 있었음을 알아챘다.

"That sort of talk has come up before, and it really burns me. It's garbage. Yes, I love Jesus. But if you're a true believer, you're gonna be devoted to the ability God has given you. It's your obligation. Anything less than 100 percent is a repudiation of God's gifts. And I can promise you one thing—I give 100 percent.

-J.D. Drew on his reputation as a 'slacker' (2004)



아직도 많은 Sox 팬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2007 ALCS 만루홈런




J.D. Drew in Postseason

Drew의 포스트시즌 커리어는 55경기 206PA 7홈런 25타점 .261/.333/.408  18BB 36SO로 그다지 특출날 것은 없는 성적이다. 다만 2000년대 초 Cardinals와 2000년대 후반 Red Sox같은 강팀에서 뛰었기에 꽤 많은 Playoff 경기를 치렀을 뿐이다. 그러나 표면 성적 이상으로 Drew는 중요한 홈런을 많이 쳤었는데 몇 개만 꼽아보자면 다음과 같다.

1) 2001년 NLDS 1차전 8회초 vs. D-Backs, 상대 선발 Curt Schilling의 공을 당겨서 어린 Drew가 동점을 만든다. 자주 언급했으므로 패스.

2) 2002년 NLDS 2차전 3회초 vs. D-Backs, 또 상대 선발은 Schilling. 개인적으로는 사실 이 홈런이 더 머리에 생생히 남아있는데, 설마 또 칠까 했는데 Schilling의 패스트볼을 그대로 밀어서 또 넘겨버린 Drew의 무서운 스윙이 기억에 남는다 (Drew는 커리어 내내 몸쪽 공에 굉장히 강한 면모를 보였다) 이 홈런 덕분에 Cardinals는 8회까지 리드를 잡았었고, 결국 9회초 Miguel Cairo의 안타로 결승점을 내고 2차전을 가져갔으며, 시리즈 스윕에 성공한다.

3) 2007년 ALCS 6차전 1회말 vs. Indians. 이 시리즈는 개인적으로 Indians가 올라가길 바라면서 정말 열심히 봤던 시리즈였는데, 5차전을 Indians가 패배했을 때 시리즈 전적은 3승 2패로 앞서고 있었는데도 마치 시리즈가 이미 끝난 듯 암울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6차전은 Fausto Carmona 대 Curt Schilling의 대결이었는데, Carmona가 무사 만루에서 Manny를 삼진처리하고 Mike Lowell을 얕은 플라이로 잡아내며 실점 없이 넘어가려는 순간 Drew가 만루홈런을 때려냈다. 이 홈런 한 방에 Fenway는 열광의 도가니가 되었으며, 이 순간은 Drew는 이 시즌들어 가장 밥값을 제대로 한 순간이었다. 

4) 2008년 ALDS 2차전 9회 초 vs. Angels. 홈팀 Angels가 5:1의 리드를 차근차근 따라와서 8회 동점을 만들었기에 분위기는 Angels 쪽이 더 좋았다. 마운드에는 K-Rod. 그러나 이 당시 포스트시즌에서 Angels는 Red Sox만 만나면 (마치 Twins가 Yankees를 만나는 것처럼) 굉장히 약했고 9회 Drew가 결승 투런을 때리면서 7:5 승리. 9회말 Papelbon이 올라왔을 때 Angels는 이미 경기를 포기한 듯 보였다.





총평

Drew는 당초 Ken Griffey Jr. 프로젝션을 받으면서 드래프트에 입성했으며 (게다가 Drew가 입성한 시즌은 Griffey가 MVP를 탄 시즌이었다) 그와 플레이했던 감독과 동료들 중 그의 재능을 의심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스윙이면 스윙, 주루면 주루, 그리고 그의 우익수 수비는 탁월했으며, 어디 하나 흠잡을데가 없었다. 그의 출루 능력은 특히 발군이었는데, 그가 2000년대 들어 기록한 10년간의 출루율 (.396)은 전체에서 16위로, Carlos Delgado나 Gary Sheffield보다도 높았다. 

또한 "게으른 천재" 라는 오명 역시 조금 깊숙히 들여다봐야 하는데, (3 Nights in August에서 TLR이 Drew가 왜 100% 를 쏟아붓지 않고 75% 정도만 하고 마는지에 대해 열통터져 하던 부분 때문에 유난히 확대 해석이 되었다) 커리어 내내 Drew는 자신의 약점을 고치려는 모습을 보이고 진지한 노력을 했으며, 늘상 "하늘이 내게 주신 재능을 이용해 최선을 다해서 플레이하는 것이 나의 사명" 이라고 입버릇처럼 얘기하며 종교적 이유로 자신의 노력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에 대해 분통을 터뜨리곤 했다. Drew는 또한 탁월한 타구 판단력으로 어느 구장에 가든 어려운 타구들을 힘들이지 않고 잡아내는 Beltran식 외야수비를 펼쳤고 (특히 Fenway의 넓은 우측 외야에서 Drew의 수비는 발군이었으나, 많은 Sox 팬들이 그가 다이빙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과소평가했다), 강하고 정확한 어깨를 커리어 후반까지 유지했다. 

Drew의 부상 이력이 화려한 건 사실이며, 잘 나가던 시즌을 꼭 부상으로 망쳐버린 경력이 (2001년, 2005년, 2008년) 한두번이 아닌 Drew였기에 팬들에게 "유리몸"으로 각인된 것은 사실이다. Drew는 부상으로 얼마나 많은 경기를 놓쳤으며 얼마나 부상을 당했을까?

1999/05/16 - Quad Strain (DL)
2000/07/08 - Ankle Sprain (DL)
2001/06/18 - Right Hand Fracture (DL)
2002/06/28 - Right Knee Inflammation (DL)
2002/10/17 - Right Knee Surgery (Patellar Tendon Debridement)
2003/01/31 - Left Foot Cyst Surgery
2003/03/30 - Surgery Recovery (DL)
2003/08/09 - Oblique Strain (DL)
2005/07/04 - Left Wrist Fracture Surgery (Ulnar Styloid Process) (60-day DL)
2008/08/18 - Herniated Disc Cartilage (DL)
2009/11/19 - Shoulder Surgery
2011/02/06 - Hamstring Tendonisis Surgery
2011/07/20 - Shoulder Impingement (60-day DL)

  • 2000년대 (2000시즌~2009시즌) 에 Drew는 4850의 PA를 기록했다. 이는 ML 전체에서 이 기간동안 62위에 해당하며, 외야수들 중에서는 30위이다. 놀랍게도 Jim Edmonds, Jason Varitek, Carl Crawford 등 Drew보다 더 뛰었을 것 같은 선수들이 Drew보다 낮은 순위에 랭크되어 있다. 물론 Edmonds는 2009시즌을 뛰지 않았고, Varitek은 포수였기에 직접적인 비교는 의미가 없다. 또한 10년간 평균치가 연평균 122게임 485PA라는 것은 어디가서 자랑할 수준은 되지 못하며, Drew가 Durability 에 관한 질타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이긴 하다. 그러나 Drew가 당한 부상 빈도수에 비하면 생각보다 많은 경기를 뛰었다는 생각도 든다. 

From a straight objective standpoint, what he contributes offensively and what he contributes defensively, and add in baserunning, so it’s the total value of the player, on a rate basis he was outstanding, and there aren’t too many outfielders who compare to what he did.

                                                                                    -Theo Epstein on J.D. Drew (2009)


  • Red Sox 팬들은 Drew가 툭하면 잔부상으로 경기를 안뛴다고 믿었으며, 그가 충분히 참고 출장할 수 있는 수준의 부상인데 몸을 사리기에 출장경기수가 얼마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위 Injury Transaction History를 보시면 아시다시피, Drew가 부상으로 가장 고생했던 시절은 Cardinals 시절로, 99-2003년까지 5년간 6차례 DL에 가면서 평균 440PA에 그쳤다. 
  • 2000년대 (2000시즌~2009시즌) 에 Drew는 41.6의 WAR를 기록했는데, 이는 Manny Ramirez의 41.4보다 높은 순위로, 외야수들 가운데 Vladimir Guerrero-Jim Edmonds-Brian Giles에 이어 11위를 기록하고 있다. 물론 10년간 Ramirez의 Offensive Production에 비해서 Drew가 보여준 성적은 귀여운 수준이었으나, 수비와 주루를 포함했을 때 Drew의 가치는 무시받을 수준이 결코 아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또한 wRC+ 순위에서도 Magglio Ordonez, Brian Giles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으며 (135) Edmonds (140)에 크게 뒤지지 않는다.
Drew의 커리어는 결코 후지지 않았다. 다만 그는 사람들이 그를 야구선수로 좋아하는 것에 대해 어쩌면 지나치리만큼 무신경했다. 그는 신이 주신 재능을 발판으로 야구라는 직업을 우직히 수행하는 것만을 생각했으며, 거만한 슈퍼스타라기보단 겸손하고 온화하며 내성적인 선수였으며, Humility의 아이콘이었다. 부상이 없었다면 그는 더 화려한 기록을 세울 수 있었고, 끝내 Ken Griffey Jr. 라기보단 Cliff Floyd에 가까운 커리어를 보냈다. Core Player로 성장할 것이라는 구단의 기대와는 달리 일종의 계륵/미운오리로 전락했기에 TLR 시대와 Cardinals Organization 관점에서 본다면 아쉬움이 더 많지만, 90년대말~2000년대초 Cardinals에서 그의 20대를 모두 바칠 당시 그가 필드에서 보여준 모습이 개인적으로 그리운 것도 사실이다. (여담이지만 당시 High Heat Baseball을 열심히 하던 시절 필자는 늘 Drew를 3번으로 썼었다 ㅎㅎㅎ).


Did you know...?
  • J.D. Drew는 2008년 Fenway에서 무려 500피트짜리 홈런을 쏘아올렸는데, 이는 Fenway Park 개장 역사상 2번째로 나온 500피트 짜리이며 비거리 역대 2위이다. 
  • FSU 시절 Drew는 라커에 "You are not a great player until you learn how to bunt" 라는 Mike Martin 감독의 말을 종이에 써서 붙여놨다고 한다. 
  • 현재 Drew는 은퇴해서 자기가 나고 자란 Georgia의 한 농장에서 5마일 떨어져있는 인근에 큰 농장을 짓고 사냥과 낚시, 교회 일을 보며 가족들과 평화롭게 지내고 있다고 한다.



by Doovy








Posted by Doovy+
: